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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중에 감사하는 믿음

요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913 추천 수 0 2010.01.16 13: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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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4-13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오늘 성경에 나오는 오병 이어의 기적은 아마 우리 성도님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설교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어떤 분이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에 처음으로 부임해서 설교를 하게 되었답니다. 아주 심혈을 기울여 설교 준비를 하였습니다. 무엇이든지 처음할 때 얼마나 긴장이 됩니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물고기 2000마리와 보리 떡 5000개로 다섯 명 먹였다고 설교를 하였답니다. 말은 못하고 속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너무 많이 들어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설교가 끝난 후 한 장로님께서 못마땅한 듯 "나도 그 정도는 한다"고 그랬답니다. 이 분이 너무 큰 실수를 해서 다음 주일에 그 본문을 가지고 다시 설교하기로 작정하고 지난 주 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여 설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왔는데 저녁이 되어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였습니다."라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가 다 끝난 후 지난주에 망신을 당했던 장로님에게 질문을 하였답니다. "장로님, 이래도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장로님께서 자신있게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지난 주 먹고 남은 것 주면 된다"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5명분 밖에 먹은 것이 없으니까 남은 것으로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주인이시며 메시야이신 것을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본문을 본문의 근본적인 주제와는 조금 곁길로 나가는 것 같지만 감사라는 주제로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식사시간이 되었는데 남자 장정만 5000명이 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아마 15000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스라는 학자에 의하면 당시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약 85,000-125,000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명절 때이니까 아마 그 중의 일부가 예수님으로부터 병을 낳기 위해 모여들은 것 같습니다(2).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먹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미리 도시락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에게 광야에서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두다 걱정입니다. 우리 성도님 같으면 이런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10대 소년이 가지고 있는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축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축사했다는 말은 감사했다는 말입니다.‘축사’라는 말을 사람들은 축복기도를 드린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축사’란 말은 유카리스테오로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한자어로 빌 축(祝)자에 사례 혹은 감사할 사(謝)자입니다.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많습니다. 먹을 것은 부족합니다. 제자들은 부정적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족한 상황에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부족한 가운데 어떻게 감사해야할 것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부족할 때 어떻게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1. 현실 속에 없는 것 보면서 불가능하다고 하지말고 주신 것 가지고 감사하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오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는냐?"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제가 우리 성도님에게 던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교회를 지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세계를 향한 선교를 감당하고, 외국의 어려운 아이들을 입양하여 기르치고, 장학헌금을 하여 인제를 양성하고, 어려운 사람 집을 지어주려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빌립의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속을 떠보기 위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테스트한 것입니다. 시험은 나무라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더 공부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빌립의 신앙을 더 성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빌립은 이미 기적을 본 사람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각종 병자들이 낫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빌립은 예수님을 잘 몰랐습니다. 신앙이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참 계산이 빠른 사람입니다. 질문하지 마자 금방 준비하였다는 듯이 답이 나옵니다. 조금씩 받게 하여도 200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장정 하루의 품삯입니다. 그러니 지금 돈으로 따진다면 하루 5만원으로 한다면 천만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안된다는 것입니다. 반대합니다. 근거 자료도 내 놓습니다. 논리적인 것같고 현실적인 것같고 이성적인 것같습니다. 그러나 현실만 바라볼 따름이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신앙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힘이 없습니다. 냉철하게 분석은 잘합니다. 현실을 잘 파악은 합니다. 그리고 안된다고 부정해 버립니다. 비판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 대안이 중요한 것입니다. 현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11)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200 데나리온으로 사온 음식이 아닙니다. 전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있는 것으로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꾸 없는 것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 바라보며 부정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집을 사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실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없는 것으로 계속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합니다. 자꾸 잃어 버린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꾸 실패한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꾸 안될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감사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볼 수는 있지만 자신이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있는 것이 없다하여도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생각할 때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이 분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습니다. 그 분은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하다가 6년 동안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1년 반 밖에 형기가 아니었는데 형기 마친 다음에도 전향하지 않는다고 그 분을 계속 붙잡고 있다가 1945년 8월 20일 지나서 죽이기로 작정했는데, 15일날 해방이 되어 감옥 문이 열려 살아났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나서 그 분은 서울의 큰 교회나 부산의 여러 교회의 초청을 뿌리치고 "내 형제들에게 가야 됩니다."하고 다시 나환자촌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방되어 얼마 안 있다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 아버지의 답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젊디 젊은 아들의 장례식입니다. 오열을 하며 억울해 할 법도 합니다. 그런데 흰 두루마기에 누런 두건을 쓰시고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고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직 양아들 삼기 전입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 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 자매들이 23년 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 큰 것과 비교하여 불평하지 말고 내게 주신 작을 것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안드레라는 제자가 나옵니다. 그 안드레는 음식이 부족한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9) 한 아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소년의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니까?" 비교합니다. 음식을 먹을 많은 사람과 지금 있는 적은 음식과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감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불평섞인 말을 합니다. 비꼬는 듯합니다. 먹일 수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그 말을 듣고 전염되지 않습니다. "그래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이 큰 일을 어떻게 하느냐? 우리 작은 무리들이 어떻게 큰 일을 할 수 있느냐? 내 능력으로 어떻게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느냐?"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10절 보십시오. 잔디에 무리를 지어 앉게 만듭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000명에 비교하면 전혀 보 잘 것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비교하며 불가능하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원대로 다 주십니다. 풍성하게 먹여 주시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남에게 있는 떡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내것 아닙니다. 내게 있는 작은 것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그것이 내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면 내게 있는 것이 아무리 작아도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통하여 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보니 더욱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자꾸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교하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설령 감사한다 하여도 그것은 교만한 감사입니다.
감사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① 상대적인감사입니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비교해서 느끼는 감사이니다. 유치하고 이기적인 감사입니다. ② 결과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루어 진 일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장 고귀한 감사는 ③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감사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가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아는 자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주어지면 그 작으로 것으로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풍성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남게 됩니다. 열두바구니를 거두게 됩니다. 겨우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작은 것 감사하며 드리면 그것을 오천 명이 풍성하게 먹고 남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에서 1달란트 받은 자의 큰 실수가 무엇이겠습니까? 비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주인이 세 명의 종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다섯달란트 줍니다. 얼마나 기대를 했겠습니까? 나도 다섯달란트 주겠지? 그런데 미스코리아 진은 맨 나중에 부르는 것인데 맨 나중에 받은 자신은 겨우 한달란트 밖에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각각 그 재능대로 주었다는 것입니다. 비교하게 되니 주인을 나쁜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감사를 모릅니다. 그리고 땅에 묻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억 억"하고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밥그릇 극는 소리" 들으며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눈이 크고 키가 크고 늘씬하게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곱슬머리 쑛다리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둔합니다. 비교하면 감사도 없고 인생 망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란트와 은사를 주십니다. 재능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주시는 것입니다. 내 재능 보면서 불평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알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 개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족하면 은사를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혜, 지식, 사랑, 능력, 병고침, 방언 등 각가지 은사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입니다.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왜 나만 병들었어라고 원망하며 죽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병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을 내다 보며 감사하며 구하는 것입니다.
행가람 7월호를 보았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약자로 만든 잡지입니다. 거기에 대구 부광교회 장로님으로 봉사하시는 이상영 장로님의 글이 있었습니다. 모신문사 사장도 하시고 북한에 구제활동도 하신 사업을 하시는 사장이신데 1999년 5월 장로님으로 평생 숙원처럼 여기면 6년에 걸쳐 교회당 건축을 마무리 할 때였다고 합니다. 폐암이 걸렸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서 8시간의 수술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암세포가 늑막과 가슴으로 전이되어 생명을 건지기가 어렵다고 의사가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로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온 교인들이 40일 동안 특별기도를 하는데 어느날 새벽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허리 굽히셔서 손을 내밀더라는 것입니다. "힘을 내라,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음성이 뚜렷이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죄악 투성이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답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감사드린다는 기도를 드렸답니다. 무려 2시간 동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도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것이 많이 있습니까? 생명을 구원시켜 주었습니다. 밥 굶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무수히 거짓말하고 양심을 속이고 죄를 지었는데 지금까지도 살려주시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며칠 뒤 병원에 갔답니다. 몸의 모든 암세포가 살아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어떤 어려움에 처하든지 어떤 부족함에 처하든지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현재의 조건에 근거해 미래를 비관하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현재의 것으로 헌신함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꾸 부족한 현실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미래가 불행해 질 것이라고 비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지금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 있다고 영원히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로 끝나는 인생이 아닙니다. 지금 가난하다고 영원히 가난하게 사는 것 아니고 지금 행복하다고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불행하다고 영원히 불행한 것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 다 산 것처럼 사는 사람들 있습니다. 없는 현재만 보지 말고 풍성하게 다가올 미래를 보면서 소년처럼 오병 이어를 주님께 감사로 드려야 합니다. 부족한 현재만 보면 부정적이 됩니다. 부정적인 사람에게 감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늘 비판적입니다. 자신도 피곤하고 다른 사람도 피곤하게 만듭니다. 자식을 볼 때나 부모를 볼 때나, 아내를 볼 때나 남편을 볼 때나, 교회의 식구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흠만 잡으려고 합니다. 흠순이 흠돌이입니다. 삐지기를 즐깁니다. 삐돌이 삐순이입니다. 삐질 건수만 잡습니다. 흠잡는 은사 삐지는 은사받은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이것이 은사가 아니라 사탄이 준 마음입니다. 소년의 순수한 신앙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 자기 음식입니다. 그것 주면 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을 그것 가지고 어떻게 합니까? 아직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5000명 먹을 것이 이미 있는 것처럼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먹을 충분한 음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사람들의 웃음 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풍성하게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게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미래의 주실 것을 미리 내다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살 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를 다 살려 놓고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살 것을 바라 보며 감사한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1)"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불렀습니다.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감사하고 믿고 나가면 그 감사의 조건들이 이루어 지는 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감사로 얼마나 풍족하게 먹고 거두었습니까? 이것이 감사 신앙의 맛입니다. 이것이 감사신앙의 기적입니다(11,12,13).
감사는 삶의 풍성을 가져오며 불평은 빈곤을 가져옵니다. 다니엘은 감사하여 기도할 때 사자굴에서 살아났으며 요나는 불평하다가 큰 물고기 배속에 들어갔으며 그속에서 감사할 때 살아났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방에서 감사하다가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나눔으로 확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나누어 주기 위함이었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최고의 감사로 축제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미국에 하이드 알버트 알렉산더라는 재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1887년, 미국이 경제 공황을 당했을 때도 자기의 신앙을 올바로 지켜서 자신의 소득 중 10분의 9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어려울수록 더 하나님께 드리는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황 중에서도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드리기 위해서 집을 팔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같이 하나님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라며 미쳤다고 그를 조롱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도 확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합니다.”하고 기도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공황이 채 끝나기도 전인 1889년에 그는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맨소래담>이라는 제약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면서 “아니, 먹고살기도 힘든 이 어려운 때 무슨 약품을 만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 공황 중에서도 그의 사업은 번창하고 번창하여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회사로 발전했고, 오늘날까지도 <맨소래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빌헬름 웰러)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합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힘든 일과........ 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옥에서는 하루하루가 대개 불평으로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지적합니다.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입니다"(Aristotle).

부족한 중에 감사하는 믿음/요한복음 6:4-13/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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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73 빌립보서 영광과 찬양의 삶이란? 빌1:3-11  정용섭 목사  2010-01-20 2569
15372 스바냐 그 날이 오면... 습3:11-20  정용섭 목사  2010-01-20 2277
15371 누가복음 두 여자의 만남 눅1:39-56  정용섭 목사  2010-01-20 2757
15370 이사야 솔깃한 말, 터무니없는 말 사30:8-17  정용섭 목사  2010-01-20 2361
15369 에배소서 그리스도의 비밀, 교회의 비밀 엡3:1-13  정용섭 목사  2010-01-20 3418
15368 요한복음 포도주 사건의 실체와 의미 [2] 요2:1-12  정용섭 목사  2010-01-20 4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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