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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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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예화 557. 백남준의 멸치 퍼포먼스
<김서령의 家, 황소자리, 79쪽>에서 참 흥미로운 대목을 읽었습니다.
1960년대 가난한 백남준은 뉴욕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화실 근처에 편지봉투 더미가 버려진 것을 보고 중국 식품가게에서 굵은 멸치 한 부대를 사다가 편지봉투에 멸치 한 마리씩을 넣고, 겉봉에 "Liberation sonata for fish" 라고 제목을 달고, 그 아래 "Please, return the fish to the sea" 라고 쓰고, "nam june Back" 이라 서명을 한 후 바닷가에 뛰노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사람들은 웃으면서 멸치를 꺼내서 바다에 던졌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윤명로(서양화가)는 멸치를 바다로 돌려주지 않고, 백남준의 글씨가 적혀 있는 겉봉 아래 멸치를 꺼내 붙여놓고 액자에 소중히 넣어 두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작품은 매우 희귀한 작품이 되었다. 훗날 평창동 윤명로 집에 들른 백남준은 벽에 걸린 멸치 액자를 보고 “당신 말고 스위스의 콜렉터 한 사람도 이 멸치를 소장하고 있더라. 그걸 전시회에 출품 하려고 뉴욕까지 보내달랬더니 보험료만 1만 달러를 요구하데...” 하며 흐뭇해했다. 굵은 멸치엔 아직도 푸른비늘이 번뜩이고 있다.
1960년대 백남준은 무명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윤명로는 1960년대부터 2009년 지금까지 장장 50년 동안 백남준의 멸치를 액자에 담아 소중히 보관하였고, 집 안에다 걸어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는 백남준이나 윤명로 같은 예술가가 아니니 퍼포먼스 같은 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내 좋은 친구들에게 말씀의 샘물 보낼 때 특기할만한 사항이 있으면 나의 재산목록 제1호 몽블랑 만년필로 몇 자 적어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 내가 만년필로 써 보낸 편지를 윤명로 처럼 소중히 액자에 담아 벽에 붙여 둘런지... 그리고 먼 훗날 우연히 내가 그 집에 찾아갔을 때 백남준 처럼 흐뭇하게 웃을 수 있을런지...(참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몽블랑 만년필에는 MEISTERSTUCK No.149 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 만년필을 한 번도 집 밖으로 들고 나간 적이 없다).
한 가지 더, 몇 년 전 텔레비전 광고가 기억납니다. 시골 할배가 자전거 앞에 쇠스랑을 메고 나와서 “야, 서울 있는 아들아, 거 뭐라든가, 무슨 보청기가 새로 나왔는데, 참 좋다고 하더라. 뭐, 사달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렇다는 얘기다!” 해 놓고 떠나는데 곧 바로 자전거가 넘어지는 그런 광고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하면, 나는 몽블랑 만년필은 있는데 몽블랑 볼펜은 없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겁니다. 뭐, 사달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렇다는 말입니다.
<김서령의 家, 황소자리, 79쪽>에서 참 흥미로운 대목을 읽었습니다.
1960년대 가난한 백남준은 뉴욕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화실 근처에 편지봉투 더미가 버려진 것을 보고 중국 식품가게에서 굵은 멸치 한 부대를 사다가 편지봉투에 멸치 한 마리씩을 넣고, 겉봉에 "Liberation sonata for fish" 라고 제목을 달고, 그 아래 "Please, return the fish to the sea" 라고 쓰고, "nam june Back" 이라 서명을 한 후 바닷가에 뛰노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사람들은 웃으면서 멸치를 꺼내서 바다에 던졌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윤명로(서양화가)는 멸치를 바다로 돌려주지 않고, 백남준의 글씨가 적혀 있는 겉봉 아래 멸치를 꺼내 붙여놓고 액자에 소중히 넣어 두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작품은 매우 희귀한 작품이 되었다. 훗날 평창동 윤명로 집에 들른 백남준은 벽에 걸린 멸치 액자를 보고 “당신 말고 스위스의 콜렉터 한 사람도 이 멸치를 소장하고 있더라. 그걸 전시회에 출품 하려고 뉴욕까지 보내달랬더니 보험료만 1만 달러를 요구하데...” 하며 흐뭇해했다. 굵은 멸치엔 아직도 푸른비늘이 번뜩이고 있다.
1960년대 백남준은 무명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윤명로는 1960년대부터 2009년 지금까지 장장 50년 동안 백남준의 멸치를 액자에 담아 소중히 보관하였고, 집 안에다 걸어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는 백남준이나 윤명로 같은 예술가가 아니니 퍼포먼스 같은 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내 좋은 친구들에게 말씀의 샘물 보낼 때 특기할만한 사항이 있으면 나의 재산목록 제1호 몽블랑 만년필로 몇 자 적어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 내가 만년필로 써 보낸 편지를 윤명로 처럼 소중히 액자에 담아 벽에 붙여 둘런지... 그리고 먼 훗날 우연히 내가 그 집에 찾아갔을 때 백남준 처럼 흐뭇하게 웃을 수 있을런지...(참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몽블랑 만년필에는 MEISTERSTUCK No.149 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 만년필을 한 번도 집 밖으로 들고 나간 적이 없다).
한 가지 더, 몇 년 전 텔레비전 광고가 기억납니다. 시골 할배가 자전거 앞에 쇠스랑을 메고 나와서 “야, 서울 있는 아들아, 거 뭐라든가, 무슨 보청기가 새로 나왔는데, 참 좋다고 하더라. 뭐, 사달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렇다는 얘기다!” 해 놓고 떠나는데 곧 바로 자전거가 넘어지는 그런 광고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하면, 나는 몽블랑 만년필은 있는데 몽블랑 볼펜은 없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겁니다. 뭐, 사달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렇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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