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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권태현
종이배
- 캄보디아의 호수같은 눈을 가진 엄마는 주정뱅이 아빠에 쫓겨 석달 전 사라지고
- 엄마! 사랑해 빨리 돌아와
- 또박또박 적은 소원 종이배에 실었더니 아빠가 물기 묻은 눈으로 술병을 치웠다
소주를 두 병이나 마신 아빠에게 쫓겨난 나는 뒤따라 나온 윤지 손을 잡고 하늘을 보았습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겨우 그쳐가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라고 밥 대신 술로 아침을 시작한 아빠는 방문을 열고서 엄마 따라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겁을 먹은 동생 윤지는 울기만 합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지도 벌써 석 달이 되어갑니다.
"송아지처럼 멀뚱거리는 눈 말고는 볼 것도 없는 게…."
술을 마시면 아빠가 버릇처럼 엄마에게 하던 말입니다. 먼 캄보디아에서 아빠에게 시집온 엄마는 눈이 아주 컸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서 빛나는 것은 눈동자뿐입니다. 엄마의 눈은 맑은 호수 같았습니다. 이름도 호수라는 의미의 '샵'입니다. 작은 키에 몸도 가냘픈 엄마는 이틀이 멀다하고 아빠에게 손찌검을 당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아빠는 마치 엄마를 때리기 위해 데려온 것 같았습니다.
아빠의 고함이 멈추자 윤지가 칭얼거리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눈동자를 빼다 박은 윤지의 왕방울만한 눈에서 눈물이 샘물처럼 찰랑거립니다.
"울지 마. 울면 엄마 안 온다고 그랬지?"
나는 공연히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과수원의 낡은 사택 안에서 아빠의 처량한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술만 마시면 완전히 변해버리는 우리 아빠. 저럴 것을 왜 날마다 술타령인지 모르겠습니다.
감나무 집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우리 아빠도 처음부터 술주정뱅이는 아니었답니다. 처음에는 말쑥한 농촌 청년이었는데 사기를 당한 후부터 변했습니다. 과수원을 하려고 애써 모은 돈을 어떤 사람이 좋은 땅을 사준다며 속인 후 가지고 달아난 것이죠.
술에 빠져 사는 아빠의 마음을 잡기 위해 할머니는 국제결혼을 시켰습니다. 아빠가 농촌 총각이라 시집 올 여자가 없었던 것이죠. 할머니는 엄마가 나를 낳은지 2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빠가 술을 다시 입에 대기 시작한 게 그때였습니다.
처음에 작은 짜증으로 시작된 술주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남의 과수원 사택에서 일꾼으로 사는 아빠는 걸핏하면 엄마를 때렸습니다. 엄마는 맞으면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습니다. 한국말에 서툰 엄마가 캄보디아어로 말하면 그게 싫다고 더 때렸으니까요. 나와 윤지가 할 일은 우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아빠가 잠이 들면 엄마는 작은 냇가에 나가 먼 하늘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엄마! 아파?"
"아니! 괜찮아."
우리가 물을 때마다 엄마의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엄마가 눈물을 떨어뜨리면 그게 냇물이 되었고 흘러가는 냇물은 곧 엄마의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호수!"
슬플 때마다 엄마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습니다. 엄마의 고향 시엠립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호수가 있습니다. 엄마는 그 호수의 보트 피플이었다고 합니다. 보트 피플이 뭔지 몰랐을 때는 아주 근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하는 말을 들으면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보트 피플들은 가난합니다. 그래도 엄마는 행복했다고 합니다. 엄마와 일곱 남매는 그 호수 위에 나무로 집을 짓고 꿈을 꾸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호수를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엄마의 눈이 맑게 빛났습니다. 아빠와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호수를 보며 얼마나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웃의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한국 땅에서 호수만큼 큰 꿈을 이루리라 다짐했던 거죠.
하지만 엄마의 꿈은 아빠의 술주정과 함께 날마다 조금씩 말라만 갔습니다. 얼굴과 등, 팔 다리 어디에도 멍이 가실 날이 없던 엄마였으니까요.
"너희는 엄마가 품었던 톤레 샵보다 더 큰 꿈을 품어야해!"
맑은 물길이 도란거리며 이어지는 냇물을 바라보며 내 머리를 쓰다듬던 엄마는 이제 곁에 없습니다. 엄마가 없는 아침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엄마의 자리에는 밤새 아빠가 마신 술병이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엄마 아주 안 오려나봐."
콧물이 가득한 윤지가 칭얼거립니다.
"올 거야. 아빠 말 잘 듣고 있으면 온다고 그러셨어."
집을 나가기 전날, 엄마는 시장에서 사온 족발을 먹이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분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게 작별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족발 따위를 먹으면서 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내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 난리를 치던 아빠는 이제 조금 나아지긴 했습니다. 한 번도 우리를 챙기지 않더니 이 가을에 들어서는 라면도 끓여주고 새 옷도 사왔습니다.
"누가 또 깜씨라고 그러면 패버려. 아빠가 책임질 테니까!"
우리 편도 들어주었습니다. 깜씨는 나와 윤지의 별명입니다. 엄마를 닮아 피부가 약간 까만 편에 속하거든요. 처음에는 동네 언니 오빠들이 놀리던 말인데 학교에 들어가니 바로 퍼져버렸습니다. 속이 상했지만 울지는 않았습니다. 엄마가 그런 일로 울면 큰 호수가 되지 못한다고 했거든요.
"아빠다."
윤지가 과수원 입구로 나가는 아빠를 보며 말합니다. 아마 술을 사러가는 모양입니다. 일요일이지만 아빠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를 데리고 놀러가는 것보다는 술을 마시는 걸 훨씬 더 좋아하니까요.
"언니! 무지개!"
아빠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던 윤지가 소리쳤습니다. 비가 개인 하늘 위로 무지개가 고운 다리를 놓은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예쁘다!"
"언니! 무지개는 소원 안 들어줘?"
"글쎄! 감나무 집 할아버지가 그런 말은 안 하셨잖아?"
"그럼 우리 종이배 띄우자. 예쁜 무지개가 뜬 날이니까 종이배가 성공할지도 모르잖아?"
종이배는 감나무 집 할아버지가 알려준 소원 빌기 중의 하나입니다. 할아버지는 소원을 이루는 세 가지 방법을 말해주었습니다.
첫째는 밤 12시에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일입니다.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이 사라지기 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답니다. 우리는 시도해보지 못했습니다. 아빠는 아홉시만 넘으면 자라고 불을 꺼버리니까요.
두 번째는 연이었습니다. 정성껏 연을 만들어 하고 싶은 말을 적고 그 연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답니다. 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연? 공부나 해!"
용기를 내어 아빠에게 연을 만들어달라고 말했을 때 돌아온 것은 꾸지람뿐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종이배입니다. 소원을 적어서 종이배로 띄우면, 그게 무사히 강물까지 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윤지와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거의 날마다 종이배를 접어서 엄마가 고향 하늘을 바라보던 냇가에 띄웠습니다. 세 가지 방법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을 좋아하는 엄마니까 어디서라도 종이배를 발견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약한 종이배는 금세 젖어서 멀리가지 못했습니다. 작은 물살에도 뒤집어지거나 수풀에 걸려 찢어져버리곤 했죠. 그래서 지금은 종이배도 포기한 상태입니다.
"언니! 이 종이 어때?"
윤지가 내민 종이는 광고전단이었습니다. 한쪽 면에는 족발광고가 있지만 뒷면은 깨끗했습니다. 두께도 모조지보다 두껍고 반들거려서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엄마와 우리가 좋아하는 족발 사진. 짜잔!"
윤지가 눈물을 잊은 채 생글거립니다. 하긴 엄마와 우리는 족발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엄마는 어쩌다 시장에 가는 날이면 하나에 오천 원 하는 시장표 족발을 잊지 않고 사왔으니까요.
"좋아! 무지개 쟁반 위에 족발을 담아서 엄마에게 보내자!"
우리는 당장 종이에 소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빠가 술 끊게 해주세요.'
'엄마! 사랑해. 빨리 돌아와.'
엄마에게 하는 말은 캄보디아어로 쓰고 싶지만 나는 엄마 나라의 말을 모릅니다. 내가 소원 글귀를 다 쓰자 윤지가 그 위에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윤지는 아직 자기 이름 밖에 쓸 줄 모릅니다. 우리는 배를 접어 평평한 바위 위에 올린 후에 무지개가 떴던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비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엄마가 돌아오시면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반찬투정도 안하고 또…."
윤지의 기도는 오늘따라 좀 깁니다. 나는 기도가 끝날 때까지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자! 이제 간다!"
깊은 심호흡을 마친 내가 종이배를 물살에 올려놓았습니다. 배는 잠깐 기우뚱하더니 물살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윤지와 나는 와아 함성을 질렀습니다. 다른 때보다 훨씬 튼튼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나는 재빨리 윤지를 데리고 마른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다리 위로 아빠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검정비닐봉지가 들려 있습니다. 보나마나 안에는 소주가 들었을 겁니다. 나는 윤지를 데리고 얼른 집으로 갔습니다. 엄마에게 종이배를 띄운 걸 알면 또 화를 낼 테니까요.
아빠는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습니다. 대문 쪽에서 감나무 집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오다가 두 사람이 만난 모양입니다. 방으로 들어선 아빠의 눈과 옷에 물기가 보였습니다. 물론 눈물은 아니죠. 아빠는 울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빠가 술을 구석으로 미뤄둔 것입니다.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아빠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종이배가 소원을 들어준 걸까? 아빠가 술을 안 먹네?"
윤지가 말했습니다. 어쩐지 그런 것도 같았습니다. 일찍 자라고 아빠가 불을 꺼버렸지만 다른 날처럼 불안하지 않은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밥을 먹을 때 아빠가 말했습니다.
"올 때 창호지나 모조지 전지 한 장 사 와라."
아빠의 표정은 다른 날과 좀 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직까지 화도 내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아빠는 대나무를 얇게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모조지를 잘라 대나무 살을 붙였습니다. 바로 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빠!"
윤지와 내가 놀라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졸라도 야단만 치던 아빠였으니까요.
"소원이 있으면 써라. 또 모르지. 네 엄마가 보면 돌아올는지…."
우리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에는 미안함이 가득했습니다.
"아빠!"
윤지와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겼습니다. 늘 술 냄새를 풍기던 아빠의 품이 아니었습니다. 윤지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연의 빈 공간에 소원을 적었습니다. 아빠 몰래 띄우던 종이배가 아니고 하늘을 훨훨 나는 연입니다. 윤지와 나는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연은 잘 날았습니다. 줄을 자르니 하늘 끝까지 닿을 것처럼 씩씩하게 날아갔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혹시 캄보디아에 돌아가 있다고 해도 거기까지 날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아빠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아빠가 족발을 사오겠다고 시장으로 갔습니다. 정말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엄마도 아니고 아빠가 족발을 사러가다니요? 감나무 집 할아버지가 찾아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윤서야! 이리 잠깐…."
할아버지와 나는 창고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서 나는 굉장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빠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건 종이배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술 취한 아빠는 우연히 다리 위에서 우리가 띄워 보낸 종이배를 발견했던 겁니다. 종이배를 집어든 아빠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다리 아래의 작은 보에 그동안 윤지와 내가 띄워 보낸 종이배들이 하얗게 엉겨있었던 것이죠.
백 개도 넘는 종이배는 대부분 초라하게 망가져 있었지만 그 안에 또박또박 적힌 소원들을 읽으면서 아빠는 소리 없이 꺽꺽 울었답니다. 농약을 사러 갔던 할아버지가 오다가 그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제 정신 차리겠다고 그러더라. 그러면 네 엄마도 돌아올 거라고…. 좋지?"
할아버지는 미소와 함께 나를 격려해주시고 돌아갔습니다.
"언니! 할아버지가 뭐래?"
윤지가 빼꼼 고개를 내밀며 물었습니다. 나는 윤지를 꼬옥 품에 안았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일은 어쩐지 비밀로 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종이배에 띄워 보낸 소원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말이죠.
[2010 신춘문예] 동화 당선소감 - 권태현
샛별을 품고 동화로 향하는 먼 길을 걸었다
새벽 동쪽 하늘에서 쏟아질 듯 와글거리던 샛별을 좋아했습니다.
그 맑은 원시의 빛이 고스란히 담긴 캄보디아의 어린 아이들. 그 아이들을 만났을 때 청아한 눈을 보며 동경하던 동화의 나라를 떠올렸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짐을 꾸렸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샛별이 빛을 잃은 문명의 하늘 아래에서 오래 서성인 까닭에 해묵은 때가 너무 두터웠던 것입니다.
게으름과 공연한 자기합리화에서 간신히 벗어나, 살아온 다른 많은 일에 그랬듯이 먼 길을 돌아 이제 동화의 마을 앞에 다다랐습니다.
마음을 다해 샛별을 생각했습니다. 꿈을 꾸듯 도란거리던 별빛들이 제 글에 담겨주기를 빌었습니다. 부족함이 많음에도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당선시켜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작가란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천재이거나 성실하거나. 최소한 그 둘 중 하나가 되기 위하여 오늘부터 더 정진해야겠습니다. 남들이 걸을 때 쉰 자는 뛰어야한다는 말을 상기하며 말입니다.
문학의 주변을 서성이던 못난 시간 동안 제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신 국문학자 안숙원 교수님과 아쉽게도 수년 전 고인이 되어버린 만화가 박봉성 선생님, 그리고 언제나 제 희망의 최고봉에 우뚝 서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문석에게 모든 기쁨을 돌립니다.
〈약력〉▷1962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보건대 임상병리과 졸업 ▷만화 시나리오 작가·판타지 소설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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