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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강원일보신춘문예동화부문 당선작
- 닭벼슬 머리 우리 형
-이은미
명절 전날이다. 큰집이 시끌시끌하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있는 안방을 빼고는 여기저기 북새통을 이룬다. 꿈쩍도 않는 사람은 형뿐이다.
“형, 거실로 나와. 과녁 맞히기 시합하자.”
“시끄러. 말 시키지 마.” “그래도 조금만 나와서 있으면 안 돼? 아빠가 화내실 텐데.”
베개가 날아온다. 옆으로 몸을 살짝 피하다 책상 모서리에 옆구리를 쾅 박는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형은 가자미눈을 뜨고 나를 흘겨본다.
“너 울면 알아서 해. 아빠가 알면 안 되는 거, 알지?”
닭벼슬이 내게 혀를 쏙 내미는 거 같다. 머리 꼭대기에서 형을 조종하는 저 주홍빛 닭벼슬을 잘라버리고 싶다.
“진이는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데 저대로 그냥 놔둘 거야? 저번에 집 나갔었다며? 참 걱정이다. 학교는?”
“잘 다녀요. 그리고…… 취미로 미용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학원에 등록했어요. 얼마 안 됐지만 잘할 거예요.”
“그래서 저렇게 머리를 닭벼슬처럼 바짝 세운 거야?
큰엄마가 전을 부치며 자꾸 형 얘기를 묻는다. 나는 옆구리를 감싸 쥐며 지나가려다 엄마 얼굴을 바라본다.
큰엄마보다 엄마가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참이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문에 부딪혀서.”
“너, 진이가 때렸지?”
큰엄마가 말을 거든다.
“아니에요. 형 지금 자요.”
“하여튼 어린 게 제 형 때문에 일찍 철이 들어서 의젓하다니깐.”
칭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어른들은 무조건 형을 노는 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 살 터울인 형은 아빠보다 더 많은 걸 내게 가르쳐 주었다. 로봇 조립, 자전거 타기, 모두 형을 통해서 배웠다. 동네 아이들이 내게 함부로 덤비지 못했던 것도 든든한 형이 있어서였다.
엄마 얼굴은 늘 슬퍼 보인다. 엄마는 형이 사춘기가 빨리 찾아온 거라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아빠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같다. 아빠가 언제 형에게 매를 들지 알 수 없다.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니, 이거 누가 이랬어?”
사촌 형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겁이 덜컥 난다. 소리 나는 방으로 달려간다.
“참이야, 네가 이 게임기 점수 지웠냐?”
“아니.”
“그러면, 너지? 야! 일어나봐.”
사촌 형이 씩씩거려도 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개를 까닥거리며 음악을 듣고 있다. 닭벼슬도 춤추듯 까딱까딱 흔들린다.
“너, 계속 이럴 거야?”
“…….”
“이렇게 나오면 너 학교에서 아이들 돈 뺏은 거, 작은아빠에게 다 말할 거다.”
형은 사촌 형과 같은 학교다. 형이 아이들 돈까지 뺏다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하지만 내가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형이 벌떡 일어나 사촌 형 가슴팍을 머리로 받아버린 것이다.
“그러잖아도 억울해 죽겠는데. 네가 봤어?”
사촌 형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라 사촌 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울음을 터트린다.
“무슨 일이야?”
어느 틈에 큰엄마가 방으로 들어온다. 뒤이어 눈에 잔뜩 힘을 준 아빠와, 얼굴이 붉어진 엄마가 보인다.
“사촌끼리 이게 뭐하는 거야? 진이 너, 머리카락을 그 빨강인지 파랑인지 희한하게 물들일 때부터 알아봤다. 할머니도 계신데 어디서 싸움질이야. 그리고 듣자니까, 애들 돈까지 뺏고 다니는 거냐?”
아빠가 숨을 씩씩 몰아쉰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형의 주홍빛 닭벼슬을 움켜쥔다. 형이 정말 돈을 뺏었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사촌 형이 더 잘못한 거 아닌가.
아빠가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엄마를 향해 냅다 소리 지른다.
“당신, 빨리 가서 가위 찾아와. 머리가 단정해야 생각도 올바른 거야. 순 날라리같이 이 꼴이 뭐냐고!”
울던 사촌 형은 사촌 형대로, 큰엄마는 큰엄마대로, 방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아빠의 모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친구가 그랬는데 선생님이 저까지 싸잡아 포함시킨 거예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어주잖아요. 그리고 이 머리카락만은 절대 안 돼요. 저에게 힘을 준단 말이에요!”
형의 울음 섞인 소리가 터져 나온다. 갑작스런 형의 말대답에 아빠는 주춤하다가, 다시금 움켜쥐고 있던 주홍빛 닭벼슬을 잡아당긴다.
“네가 평소에 똑바로 행동하면 그래? 당신 뭐하고 있어. 빨리 가서 가위 가져오라니깐.”
“그래도 지금 당장 어떻게 애 머리를…….”
엄마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나는 형의 말을 믿는다. 억울하니까 저렇게 발끈하는 거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이렇게 난장판이 되다니.
그때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나! 어머니 나오셨네.”
안방에서 할머니가 나온 것이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시간 날 때마다 엄마 아빠는 할머니를 보러 큰집에 들렀다. 손자들은 일 년 중에 명절 때나 돼야 할머니를 만난다. 하지만 친척들이 모일 때면 할머니는 항상 형부터 찾았다.
“진이 어디 있냐?”
형 이름만 기억한다. 내 얼굴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빠는 닭벼슬을 움켜쥐었던 손을 슬며시 내린다.
“어이구, 우리 아가. 머리가 왜 이리 이쁘냐. 색이 참 곱다.”
할머니가 형에게 다가가 주홍색 닭벼슬을 어루만진다.
“조막만 하던 것이 언제 이리 컸는가.”
형을 낳았을 때, 외갓집 사정 때문에 할머니가 산후 치다꺼리를 해주셨다고 들었다. 그 후, 형이 할머니와 안 떨어지려고 해서 세 돌이 지날 때까지 할머니가 키우다시피 했다는 거다. 할머니 등에 업혀 본 사람은 손자 가운데 아마도 형뿐일 거다. 할머니는 그 후에 시름시름 병을 앓기 시작했다.
“진이 머리는 내가 항시 바가지 포개놓고 잘랐어.”
할머니의 바짝 마른 손이 또다시 닭벼슬을 쓰다듬는다. 머리에 손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형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하다.
“어머니, 나오신 김에 내일 명절이니까 목욕도 하고 머리 좀 자르면 안 될까요?”
큰엄마가 조심스럽게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머리카락은 형보다 더 까치집이다. 냄새도 난다. 며칠 동안 할머니는 몸이나 머리에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했다고 한다.
“뭐라고? 낼이 명절이라고?”
“그러니 조상님들께 어머니도 예쁘게 보이셔야지요.”
오늘따라 할머니의 작고 마른 몸집이 거인처럼 아주 커 보인다. 할머니가 등장하자마자 혼란스런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되었으니 말이다.
“어머니, 그럼 머리부터 자를까요?” 큰엄마가 어느 틈에 신문이랑 의자, 가위를 준비했다. 이제 할머니가 의자에 앉을 차례다.
“여기 앉으세요. 얌전히 계셔야 새색시처럼 고와져요.”
“오냐.”
할머니가 의자에 앉는다. 조금 전 아슬아슬했던 일들은 다 잊어버렸다는 듯 모두 할머니 주위로 빙 둘러선다. 큰엄마가 앞치마를 입은 채 가위를 든다.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할머니가 갑자기 도리질을 한다. 할머니는 손을 내밀어 형을 가리킨다.
“진이가 잘라 줘.”
모두 어리둥절하다. 아빠도 당황한 기색이다.
“진이가 어떻게 잘라요? 제가 예쁘게 잘라 드릴게요.”
할머니가 큰엄마를 밀쳐낸다.
“무슨. 내가 우리 진이 어릴 때 얼마나 이쁘게 머릴 잘라줬는데. 그러니 지금도 머리색이 저리 꽃같이 곱잖냐. 머리모냥도 이쁘고. 진이가 이 할미 머리카락도 잘 자를 거다.”
“어머니, 진이는 아직 어린 애예요. 어떻게 머리를 잘라요?”
아빠가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진이가 잘라줘야 돼.”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신다.
“진이야, 네가 할머니 머리 잘 자를 수 있겠니? 미용기술 배운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말없이 서 있는 형을 향해 엄마가 묻는다.
“저 녀석이 어떻게 머리를 잘라. 자칫 어머니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힐끔 형을 바라보며 아빠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꾸 형을 가리키며 머리를 잘라달라고 애처럼 보챈다. 형의 주홍빛 닭벼슬이 꼿꼿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러면…….”
아빠가 잠시 말에 뜸을 들인다.
“자를 수 있겠냐?”
“…….”
“한 번 해 봐라. 할머니가 저리 보채시니. 참.”
형에게 말하는 아빠 목소리가 이제껏 들어본 중에 가장 부드럽다.
“진이야, 한 번 해 봐. 너, 할 수 있어.”
엄마가 미소를 띠며 형에게 말한다. 나도 질 수 없다.
“형, 파이팅! 힘 내.”
나는 한 손으로 주먹을 쥔 채 파이팅을 하고, 또 한 손으로는 브이자를 만들어 흔든다.
주춤거리던 형이 가위를 든다. 분무기로 할머니 머리카락에 살짝 물을 적신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가지런히 매만진다. 그리고 뒷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겨 내린다. 모두 이 광경을 지켜본다. 엄마는 옆에 서 있는 내 손을 꽉 쥔다. 형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형은 할머니의 어중간하게 삐져나온 머리부터 자르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아프기 시작하면서 커트를 했다. 커트머리가 길어지니까 단발머리처럼 됐다. 이제 말이지만 헝클어진 단발머리를 보면 할머니가 꼭 귀신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형은 잠깐 가위를 내려놓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가방에 있던 집게 핀을 여러 개 갖고 나온다. 핀을 가방에 넣고 다녔나? 할머니 머리카락을 귀 옆 부분부터 사등분해서 나눈 후에 집게 핀으로 고정한다. 옆머리부터 사각사각 자르기 시작한다.
모두들 형이 하는 행동을 말없이 지켜본다.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형이 자랑스럽다.
“자식, 학원 다닌 보람이 있네.”
아빠가 미소를 짓는다. 엄마는 큰엄마 뒷머리를 매만지며 말한다.
“형님도 우리 진이가 숙달되면 진이에게 머리 맡기세요. 배운 지 얼마 안 됐는데 소질이 있는 거 같네요.”
“그러게. 진이가 저런 걸 하고 싶어서 그렇게 속을 썩였나 봐. 동서, 이제 걱정하지 말고 진이 일은 진이에게 맡겨.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가만히 형에게 머리카락을 내맡기던 할머니가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모두 귀를 기울인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아.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 아무리 고와도 동네방네 생각나는 내 사랑만 하오리까아. 아리아리 동옹동 스리스리 동옹동…….”
“할머니가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생전 안 하시던 노래를 흥얼거리시네.”
아빠의 말에 모두들 웃는다. 웅얼거리는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구수하게 들린다. 그런 중에도 형은 할머니 머리를 다듬는다. 할머니의 어중간한 머리가 세련된 커트머리로 점점 변해간다. 형은 정말 딴사람 같다. 눈에서 광선이 발사되는 듯 빛이 난다. 손은 또 얼마나 재빠르게 움직이는지.
어릴 적 로봇 조립을 해주던 형의 모습이 생각난다. 주홍빛 닭벼슬도 형의 몸짓, 손짓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살아있는 생물체 같다. 혹시 형은 주홍빛 닭벼슬의 명령을 받고 손만 움직이는 로봇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싹둑 잘릴 뻔했던 닭벼슬이 마음껏 기지개를 켜고 즐겁게 까딱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할머니 머리 손질이 다 끝났다. 와. 십 년은 젊어 보이는 할머니. 십 년 전이면 할머니가 치매에 안 걸렸을 때다. 형이 마술을 부린 것 같다.
“어머니, 너무 예뻐요.”
큰엄마가 할머니에게 거울을 건넨다. 할머니는 거울로 이리저리 머리 모양을 비춰본다. 아빠가 형의 주홍빛 닭벼슬을 쓰윽 쓰다듬는다.
“수고했다. 우리 진이.”
엄마와 나는 눈을 찡긋한다. 긴장이 풀리자 모두들 다시 왁자지껄 정신없다. 방으로, 부엌으로 돌아간다.
할머니와 형만 남았다. 나도 과녁 맞히기 연습이나 해볼까 하고 돌아선다. 그러다가 문득 형이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할머니, 다음에는 내가 파마 배워서 지금보다 더 이쁘게 해줄게.”
“그래. 우리 착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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