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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6: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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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최장환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smbible/5JQI/254 |
고전 6:12-20 알아야 할 것
사람은 제일 처음에 태어날 때는 다 똑 같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옷도 다 벗고 있고 똑 같이 태어납니다.
10대 정도 가면 공부를 잘 하는 사람 또 못하는 사람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차이가 벌어집니다.
20대에 가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취직도 잘 될 것이고
또 공부를 잘 하지 못한 사람은 취직도 잘 못하게 됩니다
취직을 했느냐 못 했느냐?
직장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이렇게 또 차이가 납니다.
30대에 가면 결혼을 했느냐? 하지 못 했느냐?
또 자식이 있느냐? 자식이 없느냐? 또 어떤 직위를 가졌느냐?
좀 더 차이가 또 벌어집니다.
40대에 가면 이제 노후를 준비하며 퇴직을 하느냐? 안 하느냐?
이렇게 또 갈라지기도 하지만 이제 40대부터는 또 점점 똑같아져 갑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나 공부를 못 한 사람이나 살아가는 모든 과정을 보면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쓰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공부를 많이 안한 사람도 보면 말도 잘 하고
또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돈도 많이 벌어서
자기 나름대로 또 잘 났다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40대에 가면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나
나오지 않은 사람이거나 다 똑같이 됩니다.
50대에 가면은 외모가 20대 30대에서 에스 라인이 있고 근육이 나오고 복근이 생겨서
자랑을 했던 사람도 에스라인도 다 없어져 버리고 앞으로 뒤로 막 나와 가지고
둥글둥글해서 외모가 다 똑같아 버립니다.
60대에 가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고
젊을 때는 남자가 큰 소리 쳤지만 60대쯤 되면 여자가 더 큰 소리를 칩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아내에게 하는 말이 나 좀 대리고 가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점점 남녀 간에 구분도 없어지고
다음에 70대에 가면 다들 아파서 종합병원이라 다 똑 같습니다.
더 건강하냐? 아닙니다. 아프지 않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80대에 가면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다들 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이빨이 없어 잘 씹지도 못하고
아무리 좋은 구경을 가자 그래도 잘못 걸어 다녀서 잘못 갑니다.
그래서 건강이 다 똑 같습니다.
90대에 가면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가 똑 같습니다.
전부 누워 있어서 산 송장입니다.
그리고는 먼저 죽은 사람이 형님입니다.
똑 같이 났다가 차이가 났다가 다 똑같이 갑니다.
그러나 그 중에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똑 같이 왔다가
다르게 지내다가 다 똑 같이 갑니다.
죽음이란 곳으로 똑 같이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한 번은 다 같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또 하나 알아야 될 것은 죽고 나면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가 지옥으로 갈라지는데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꼭 그것을 우리가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준비를 못 한 사람은 실패자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이렇게 지나온 과거 속에서
또 내가 현재 살아오는 속에서 무엇인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었서도
그 사람도 죽습니다. 아무리 예쁜 사람도 죽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죽습니다.
죽고 나면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갈라 지다는 것을 우리는 꼭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 즉 죽어 봐야 알겠다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될 것을 안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사는 동안 잠깐 지식이 좀 많고 외모가 좀 뛰어나고
재산이 좀 많고 건강 하더라도 나중에 가면 다 똑같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될 것을 알아야 하지 그것을 모르고 살면
잠시잠깐 내가 조금 뛰어 나다고 조금 앞서 간다고 조금 많이 가지고 있다고
그 속에 취하다 보면 어느 때인가 우리는 종말을 구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알 것은 꼭 알고 준비하는 삶 속에 살아가야 되는데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바울이 글로에의 집 편에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문제가 있었느냐 하면은 음행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바울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다 가하다. 자유하다 그 말이예요.
그런데 남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유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방종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몸은 자기 자신의 음란을 위해서 있지 않고 몸은 오직 주를 위해서 있다.
그리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해야 된다.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을 알아야 된다고
창기의 지체와 합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보혈 피로 사셔어 소유하신 성전이라고
이것을 알라고 우리에게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본문이 내용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알아야 될 것인지
오늘 본문에서 먼저 알아보면
첫 번째로 13절 14절을 보겠습니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첫 번째로 주님을 위해 일하면 부활 영광이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란 것입니다.
자유를 줬지만 다 방종해서는 안 되고 의무를 가져야 된다고
방종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13절에 그렇게 말합니다.
식물은 배를 위해서 있다. 배는 우리 몸에 있는 배를 말합니다.
즉 식물은 우리의 배를 위해서 있다고 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14절에 바로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잖느냐
그래서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우리 몸이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하면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아야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12절에 자유를 갖되 방종을 하지 말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방종이란 말은 의무를 빼고 자기 좋을 대로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 우리의 몸은 우리의 음란을 위해서 있지 않다.
주를 위해서 우리가 존재한다.
주님을 위해서 일할 존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14절에는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살릴 실 것이라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에게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지
우리 몸이 우리 자신의 쾌락이나 우리 자신의 어떤 음란이나
우리 자신의 이 육체를 위해서 일을 하면 그것은 아니다 라고
여기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오직 주를 위하여 있다.
우리 몸이 주님을 위해서 존재한다. 란 것입니다.
우리 몸을 어디다 쓰느냐? 무엇을 위해 쓰느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한번 왔다가 이제 언제인가는 가게 되는데
그 사이에 우리가 우리 주님을 위해서 우리 몸을 얼마나 썼느냐
얼마나 우리 주님을 위해서 일했느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일하면
결국 14절 있는대로 부활의 영광에 참예 할 것이라고
이것을 알라고 바울은 간절하게 부탁을 하고 있듯이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죽은 지 나흘 만에 냄새가 나는데
죽은 나사로를 살리려고 가기 전에 나사로가 죽었는데 왜 빨리 오지 않았느가를
여기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고 가르쳐 주시려고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빨리 안갖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무엇을 말하느냐면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이 있을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것은 부활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을 위해서 일하면 부활의 영광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될 줄 믿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바울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거기서 핍박을 한다 라는 말에
큰 충격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안 보여서 삼일동안 금식하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아나니아에 안수를 받고 비늘이 벗겨지므로
눈이 떠서 바로 우리 주님을 그 때야 올바르게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멕섹에서 우리 주님을 바로 전했던 사람이 바울이였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되겠구나.
내가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였구나. 그것을 깨달아 안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을 통해서 주님의 일을 우리가 방해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주님을 위해서 우리 몸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님 것으로서 일을 해서 부활 영광에 참예할 것을 아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될 것인지
15절 16절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두 번째는 성령으로 주님의 지체가 되었음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15절에 바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와 합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몸과 이 지체가 한 덩어리입니다.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주님의 지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머리입니다.
제가 지금 손을 올리고 있습니다. 손을 올리고 있는데
지금 손이 올리라고 해서 손이 올라갑니까? 머리가 지시를 해서 올라갑니까?
머리가 지시하면 올라갑니다.
머리가 아무 역할을 못하면 손은 하나도 못 움직입니다.
머리가 명령을 하니까 손이 올라갑니다.
즉 예수님은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손이예요. 우리는 발이예요.
우리는 발바닥도 되고 우리는 손가락도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이세요. 그런데 이 머리에 우리 지체가 붙여 있어요.
예수님이 머리로 해서 우리 각자 각자가 다른 지체예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지체인 것을 내가 알아야 되요.
머리에 명령을 받는 지체예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내가 내 손으로 하는 거예요.
명령하면 이유없이 하는 거예요. 그것이 지체예요.
우리는 우리 주님이 명령하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 손만도 못해요. 이 손은 명령하면 그 즉시 합니다.
이 머리가 명령을 하면 손은 즉시 불순중을 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따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주님이 명령하면 어떠하지요.
우리 형편 먼저 계산을 하고 아이고 추운데 미끄러운데 왜 가요. 이유를 말합니다
그럼 뭐만도 못해요? 손만도 못 해요.
손은 말을 합니까 못합니까? 말도 못 해요.
자기 의견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의견 있어요. 의견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다란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순종과 겸손의 그것을 통해 우리가 지체가 되었음을 인정을 하고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가야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주님이 머리가 되고 우리는 주님의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알아야 우리 주님과 한몸이예요.
우리 주님과 하나예요.
어때요? 손이 아프면 모든 것이 다 아픕니다.
발이 아프면 온몸이 아픕니다.
여기 허리가 아프면 온 몸을 못 씁니다.
어때요? 하나의 지체가 칼로 베어지면 온 몸이 아픕니다.
손이 아프면 손 밑에 여기에 무엇이 생깁니다.
다리가 아프면 다리 밑에 여기에 가래톳이 생깁니다.
우리는 주님의 지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꼭 기억을 하고
각 그 지체로서 우리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우리 주님의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지체의 올바른 도리가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주님의 지체가 되었음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각각 지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꼭 알아야 됩니다.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몸은 몸대로 염통은 염통대로
위장은 위장대로 대장은 대장대로 각각이 자기 일을 감당을 할 때 온 몸이 유지가 됩니다.
어느 하나라도 그것을 감당을 하지 못 하면은 온 몸이 유지가 되지 않습니다.
그 지체에 각 그 할 일이 다 다릅니다.
그 일을 우리가 잘 감당하는 그래서 주님의 지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그 일을 담당하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지는
그래서 지체로서 존재 가치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루디아라고 하는 사람은 빌립보교회를 자기 집에서 시작한 사람입니다.
루디아라고 하는 사람은 개인 이름이 아니라 루디아 댁이라고 해야 합니다.
루디아 지방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자꾸 손짓해서
유럽 쪽에서 불려서 그곳을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 만난 사람이 루디아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우리 주님의 지체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았고
바울을 또 영접해서 복음을 듣고 그 집에서 교회가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루디아는 우리 주님의 지체가 되었음을 알고
자기에 있는 것을 다 드려서 교회를 시작한 사람이 바로 루디아였습니다.
그 외에도 야손이나 또 아굴나나 또 브리스길라라는 사람도
주님의 지체인 것을 잘 알고 자기 집에서부터 교회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내가 정말로 우리 주님에 지체인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잘 알아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각각 그 지체로서 감당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19절 20절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세 번째는 보헐로 사신 성전으로 영광돌려야 함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19절에 너희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여기서 값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 값을 이야기 합니다.
피 값으로 샀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그렇게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가 흘려야 할 피를 그 분이 대신 흘리시고
우리가 지은 죄 값을 감당하시고 피를 흘리셨어 우리를 샀다고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그 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도 어떤 물건을 사면 그것은 누구 것입니까?
제가 돈을 주고 전철에서 우산파는 사람에게 삼천원을 주고 제가 우산을 샀다면
그러면 그 우산 누구 것입니까?
그러면 그 우산 내가 내 마음대로 비올 때 펴고 다니고 또 말리고
비오지 않으면 집에 넣어 두었다가 또 필요하면 가지고 나와서 쓰고 다니면 되지요.
그런데 우산한테 내가 물어보면 될까요?
우산이시여 내가 오늘 가지고 갈까요?
그리고 물어 보면 우산이 가지고 가지 마시오.
나 오늘 추우니까 그 우산 주인이 녜 알았어요.
나 오늘 그냥 두고 갈께요. 그럴까요?
우산은 말이 없죠? 내가 우산 삼천원 주고 샀어요.
그러니까 내가 우산을 잃어 버리든 우산을 갖고 다니든
우산을 펴든 우산을 안 펴든 누구 마음대로 해요? 주인 마음대로 해요
그런데 우산이 무엇이라고 대꾸하면 안 되지요.
값을 지불하고 샀으면 그 분 것이예요.
우리도 우리 주님이 샀어요.
그러니까 우리보고 무엇을 하라고 해요.
그분께 최선을 다해 영광 돌려드리라고요.
우산은 왜 샀을까요? 비 안맞으려고 샀지요.
그런데 주인이 비 맞고 나는 주인 속에 넣어 주세요
그려면 될까요? 안 될까요?
우산이 접어 가지고 옷 속으로 들어 가 버리면 주인의 옷은 다 비 맞아요.
그러면 될까요? 우리는 금방 말한 것은 지금 우리가 주님에게 자꾸 그래요.
주님은 어떻게 되든 나만 좋게 되려고 그려잖아요.
보혈로 사신 성전으로서 우리는 영광 돌려 드려야 함을 우리는 꼭 알아야 됩니다.
내가 누구것인가를 아는 것는 정말로 귀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 속에서 내가 우리 주님의 피로 사신 것인 것을
그리고 내가 성전인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바로 나무가 있는데 그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서 거기서 열매를 많이 맺었어요.
그러면은 그 나무는 그 주인에게 무엇 하는 거예요?
영광을 돌려 드리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가지예요.
우리를 통해서 우리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많이 주렁 주렁 열매를 맺어야 되요.
우리는 우리 주님 것이어서 주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어 드려야 됩니다.
전도의 열매를 맺을 사람은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되고
또 봉사의 열매를 맺을 사람은 봉사의 열매를 맺어야 되고
내가 늘 봉사하고 충성스럽게 헌신하고
또 여러 가지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바로 내가 보혈로 사신 성전으로서
하나님 앞에 영광돌려 드려야 할 것을 내가 알았다고 하면
우리가 여기에 나온 대로 과실을 많이 맺어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라고 하는 사람은 의사로서 많이 배운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2차 전도 여행 때부터 동참해서 바울의 주치의로서 가방을 들고
날마다 바울을 따라 다니며 모든 전도 여행을 누가가 따라 다녔습니다.
디모데후서 4;11에보면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바울의 옆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하나님 것 답게 살았던 사람이 누가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성전인 것을 잘 알고
우리 주님 것인 것을 알고 자기의 일생을
우리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 누가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신약성경에서 양으로 보면 바울보다 더 많은 양의 서신을 쓴 것입니다.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쓴 것입니다.
누가는 자기가 우리 주님의 피 값을 산 성전으로서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할 것을 알고 일생을 드림으로
정말로 그 때 많은 의사가 있었지만
누가만큼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을 돌려 드린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이 사람이 성공자입니다.
우리 모두들 다 알아야 될 것을 꼭 알아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열매를 맺어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될 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모르면 우리는 정말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주님 앞에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될 것인가
첫 번째는 주님을 위해서 일하면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고
두 번째로 우리는 성령으로 우리 주님의 지체가 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고
세 번째는 보혈로 사신 성전으로서 영광 돌려 드려야 함을 알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다고 우리 주님에게 발견되어 지고
주님에게 기억된 바가 되어 지고 주님의 뜻을 이루었다는
칭찬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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