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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일천번제 제사, 알고 보니 '한 번'

논문신학성경 이뿌니............... 조회 수 3776 추천 수 0 2010.01.24 00:41:05
.........
출처 :  

한국교회에 무지한 목회자와 성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대해 통탄하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성경이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음에도 최소한의 살핌과 연구도 없이 임의로 해석하고 무리하게 적용하는 목회자와 성도를 바라볼 때 실로 한국교회의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위 '일천번제'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리자 그날 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으신 성경의 사건을 두고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1천 번의 제사를 드린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일천번제는 '1천 번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 아니라 '1천 마리의 생축을 불태워 제사 드렸다'는 뜻이다. 한자로는 一千番祭가 아니라 一千燔祭인 것이다.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에는 '1천 마리의 생축'으로 표현해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무속신앙과 다를 바 없는 일천번제(?)

 

NIV를 보면, 솔로몬이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The king went to Gibeon to offer sacrifices, for that was the most important high place, and Solomon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on that altar".[왕이 희생물을 드리려고 기브온으로 갔다. 이는 그곳의 산당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그 제단 위에 번제 헌물 천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렸다](왕상3:4).

 

솔로몬이 왜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갔는가. 그것은 그 산당이 그 시대에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곳은 1천 개의 번제 헌물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 천일 동안 매일 매일 바쳤다는 것은 솔로몬의 일천번제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솔로몬이 제사장도 아니고 매일 매일 3년 동안 번제 드리는 일에만 골몰했다면 어떻게 왕국을 다스렸겠는가. 그것은 왕이 되고 나서 드리게 된 한 번의 번제에 1천 개의 헌물을 드렸다는 뜻이다.

 

성경을 바로 보라. 일천번제는 '1천 날 동안 희생을 드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1천 개의 번제 헌물을 드렸다'는 의미다. "솔로몬이 회중과 함께 그 성막으로 나아가 거기서 주 앞 곧 회중의 성막으로 나아가 거기서 주 앞에 곧 회중의 성막 옆에 있는 놋 제단에 이르러 그 위에 번제 헌물 1천 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렸더라"(대하1:5b,6). 역대상 29장 21절과 역대하 7장 4∼7절 등 솔로몬의 제사를 다룬 다른 성경구절을 보더라도 1천 마리의 생축을 태워 제사 드린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굳이 원어를 보지 않고 영어 성경을 한 번만 살펴봐도,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을 한 번만 봐도, 이러한 우를 범하지는 않을 텐데. 무속신앙에서 백일 기도 또는 천일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천번제를 그저 그렇게 막무가내로 이해하는 것은 뿌리 깊이 박힌 샤머니즘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려우면 일천번제 헌금해라

 

이러한 문제는 기독교 백화점에서 일천번제 헌금 봉투가 버젓이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면, 일천번제 헌금을 해 보라고들 말을 한다. 3년은 헌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무지하고 공부 안하는 목회자들의 부끄러운 한 단면이다.

 

더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일천번제운동본부니 하는 것도 생겨나고 있고, 거기에 회장이니 위원장이니 하는 직함들도 무슨 자랑이라도 하듯이 버젓이 내밀고 다닌다. 일반 성도들이 무슨 큰 잘못이 있을까. 잘못이 있다면 너무 분별없이 따른 무지의 잘못일 것이다. 정말 몰라서일까. 아니면 알고도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이용하는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그는 틀림없이 신학도 없을 뿐더러 기복신앙에 물든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일천번제 헌금을 유도하는 목회자의 기복신앙 내지는 세속화된 신앙을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천번제 헌금의 발생은 교회가 점점 돈을 좋아하는 기복신앙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요, 목회자들의 세속화된 목회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의 변질을 주도하는 목회자의 역할을 버리고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만일 내가 바친 천일의 헌물이 내 기도 응답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곧 배교다.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헌물은 우리의 물질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이다.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도 그리하실 것임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 앞에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요일3:20~22).

 

가장 좋은 헌물은 신뢰하는 믿음

 

성경은 결코 돈이나 인간적인 정(情) 때문에 기도가 응답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방종교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듣기로는 한국에 일천번제를 처음 도입한 장본인이 말만 하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모 목사로 알고 있다. 무리하게 성전건축을 벌려놓고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만들어 낸 것이 소위 일천번제란다. 손해 볼게 없는 장사란다. 무지한 성도들이야 복받는 일이라는데, 그것도 솔로몬이 받은 유사한 복을 받겠다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정작 번제를 드리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태도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로도 계속 번제를 드렸는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왜 기록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구약의 제사를 반복해서 드리는 히브리인에게 희생 제물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성전 제사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이제 이것들을 사면하셨은즉 다시는 죄로 인하여 헌물을 드릴 필요가 없느니라"(히10:18).

 

구약에 드려졌던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온전히 드리실 것에 대한 예표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스스로 피를 쏟는 희생 제물이 되시므로 구약의 번제를 더는 필요 없게 만드셨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고자 하는 자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번제의 진정한 의미다.

 

영원한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 돈으로 번제를 드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의 희생을 격하시키는 것이며, 그것에 견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행동이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서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모든 죄들을 사함 받게 하시며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신다. 우리의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으므로 우리는 언제든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라.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정결한 물로 씻겨졌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히 10:19-22).

 

일천 번의 헛된 경배에서 벗어나라

 

잘못된 일천번제 습관은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돈을 착취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무지한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놓으신 번제를 희석시키게 하는 행습을 속히 중단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구약의 번제를 계속 우리 시대에 끌어오려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갈보리의 희생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먼저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물질을 신뢰하게 하고, 물질을 걸고 기도하게 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종교적인 행태에 대해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당신은 혹시 이런 것에 속고 있지는 않는가. 그것이 헛된 경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백성이 자기 입으로는 내게 가까이 오며 자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거니와 사람들의 명령을 교리로 삼아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 15:8~9).

그리고 목회자와 설교자가 최소한의 공부라도 해야 할 것이다. 성경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설교해야 한다. 비성경적인 것이라면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교인들을 무지와 탐욕으로 이끄는 일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댓글 '2'

빛소리

2010.02.05 18:39:37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해서 신학적으로도 논란은 있습니다.
단번에 일천마리를 드렸느냐 매일 한마리씩 천일을 드렸느냐? 하는 문제인데

영어번역으로 단번에 즉 한번에 일천마리를 드렸다는 것에 동조하는 주장을 가지신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맞다라고 단정 지을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공동번역에도 보면 애매하게 번역되어 나옵니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 번제물을 천마리나 바친적이 있다.......그렇게 나옵니다.

천마리나 바친적이 있다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뜻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천마리를 한꺼번에 바친적이 있냐? 아니면 천마리를 매일 같이 바쳤느냐는 보기 나름이요.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오히려 후자쪽이 훨씬 더 정확성에 가깝습니다.
원문에도 보면-영문보다 원문이 더 정확하겠죠? 영문이 완벽한 번역이라고 볼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한꺼번에 바쳤다는 말보다 오히려 후자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 이유를 몇가지 근거해 드리겠습니다.

1)원문에보면 드렸다라는 말의 아라 : hl;[;-죄송합니다 히브리어가 깨졌네요-라는 말로 사용되어 있는데 이 말 뜻은 올라가다...기어오르다 등등 많은 뜻이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드리기 위해 매일 올라갔다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2)혹시 소 한마리를 태워 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사람의 시신을 태울때 현대 화장문화로 보면 거의 2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봅니다. 소는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소를 잡을때는 예식대로 한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걸 가만하면 한마리를 번제로 드렸다니까 잡아서 태운다고 가정할때,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제사장이 다 동원된다 하더라도 하루에 천마리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그 당시 솔로몬 시대의 성전으로 과연 천마리를 잡을 수 있고 태울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되었을까? 절대 불가능한 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현대식 시설로 구비되어 있다고 해도 천마리를 한꺼번에 잡아서 태울만한 시설은 그 당시에 불가능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하루에 한마리씩 천일동안 드렸다는게 더 설득력을 가집니다. 목사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이런 근거로 후자쪽이 더 성경에 뜻과 솔로몬의 뜻에 합당하기에 그렇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천마리를 드리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천일동안 그렇게 매일 드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루디아님의 의견에 불교식으로 혹은 샤머니즘 식으로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이 우리 신앙에 맞지 않다고 하셨는데 일부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관점에서는 샤머니즘이나 타종교나 우리 기독교가 가지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복적이라고 말하는 신앙 반드시 나쁜것 만은 아니지요. 왜냐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복을 구하라.....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중심, 우리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겠죠. 우리는 언제든지 샤머니즘 신앙으로 빠질 수도 있고, 우상신앙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 있습니다. 우리가 무당처럼 타 종교처럼 우상은 섬기지 않지만 우리 신앙이 자칫 그런 종교처럼 빠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건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 아니겠습니까?

솔로몬이 한꺼번에 일천마리를 드렸느냐? 아니면 매일 천일동안 드렸느냐?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본질은 솔로몬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 아닐까요?
물론,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 나쁘냐? 아닙니다.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천번제에 관한 주장은 어떤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렸다라는 흑백논리에 적용시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는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그것도 목사가 모르냐? 그런 엉터리 해석을 하고 설교하는 목사가 있냐?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다는 이야깁니다.
저도 일천번제 매일같이 드렸다고 가르치는 목사로서 제가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kdhtjd

2014.11.19 23:13:22

글 잘읽었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해서 성경을 보다가 관련된 글을 인터넷상에서 뒤지다가 이곳까지 오게 됫네요 저의 의문사항은 원어에 일천이란 히브리어가 엘레프인데 이것의 뜻이 황소,배우다,멍애를 메우고 길들이다,일천 이런 뜻이 있군요 번제(올라)-속죄,헌신



솔로몬의 일천번제가 1,한꺼번에1000마리 2,1마리씩 일천번 3,황소한마리 번제드리다
처음에는 1번으로 알고있다가 2번으로 이해했구요 지금은


저는 3번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는 중이구요 성막-300평이상 지성소와 성소가20평

번제단-가로(5규빗)2.3미터, 세로2,3미터 높이(3규빗)1,4미터 솔로몬이 본인의 속죄든지 헌신이든지 본인이 소를 잡아서 각을 뜨고 내장을 정리하고 가죽을 벗기고 발목을 꺽고 해야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고 힘도 많이 들것같구요 왕이 하루에 한마리 3년이상을 이것만하고 있을순 없을것 같고 하나님께서도 마음과 정성을 보시지 1000번의 양의 정성 횟수의 정성을 보실까 분명 그럴수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여튼 이런 부분이 의문이 나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분이 있나해서 자료 찾던 중이네요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히브리어 원어에 엘레프가 1000도 되지만 황소란 뜻도 있다구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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