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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화 된 감사생활

다니엘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666 추천 수 0 2010.01.24 15: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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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단6:10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지난 주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 공장에 준공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예배를 다 드리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다 하고 나오는데 그만 집사님이 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밥은 먹었는데 당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는 회사 대리의 글을 보니까 결혼 1주년이 되어 아내에게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자고 약속한 뒤 출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퇴근을 하자 그는 습관대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내와의 약속이 생각난 것은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한참 누른 후였다고 합니다. 부리나케 집을 나와 택시를 탔지만 이번에는 약속 장소가 생각나지 않아 망신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지 않아도 요즈음 건망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손자 손녀 이름도 자신의 결혼 날짜도 나이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백화점 쇼핑을 갔다가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사실을 깜박 잊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딸의 결혼식 날 미장원에 들렀는데 퍼머할거냐고 묻는 미용사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해달라고 말해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주부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음식 접시를 넣으려고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전화가 와서 받고 다시 음식 접시를 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접시를 넣으려고 했는지 꺼내는 중이었는지 생각이 안나 어벌쩡하게 서있는 주부도 있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중 이웃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눈 후 다시 가려고 할 때 내려가는 길인지 올라가는 길인지 몰라 헤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올해 이사를 하였는데 이사한 후 두 차례나 차를 타고 옛집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뭐 실망할 것은 없습니다. 세계적인 천재 아인슈타인도 건망증이 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인슈타인이 한 번은 차를 탔는데 차장이 검표를 하였답니다. 아인슈타인이 아무리 찾아도 차표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차장이 '한 사람 걸려들었구나' 하면서 얼굴을 쳐다본 순간 놀라고 말았답니다. 당대 유명한 아인슈타인 선생님인 것입니다. 당황한 차장이 떨리는 음성으로 “서 서 선생님, 선생님 같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호주머니를 뒤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답니다 "선생님, 괘 괜찮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아인슈타인이 화를 버럭내며 "야, 이 양반아! 당신이야 필요없지만 나한테 필요하단 말일세. 차표가 있어야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알 것 아닌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에빙하우스(Ebbinhaus)는 무의미한 철자 1200개를 통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동안 기억하는 가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자 55.8%를 잊었고 하루가 지나자 66.3% 한달이 지나자 78.9%를 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건망증이 심하다고 자괴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자신들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에 꼭 기억해야 할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국경일 등과 같은 기념일을 만들어 살아 있는 동안 지키고 그 후손들에게도 그 뜻을 전달합니다. 인간의 속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도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일어난 일들 중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기념일로 만들어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안식일 지금의 주일입니다. 규칙적으로 돌아오는 그 날을 통하여 세상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재창조하신 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절기로 구약에 큰 세 가지 절기를 주었습니다. 그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그 절기는 신명기 16장에 유월절(1-8), 칠칠절(9-12), 초막절(13-17) 등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고 초막절은 광야에서 집도 없이 텐트를 치고 자던 때를 기억하고 지키는 절기이며 칠칠절(맥추절, 초실절, 오순절) 역시 애굽에서 종 되었던 때를 기념하여 첫 수확을 거두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 모든 절기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감사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감사를 회복하는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감사에 대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조건화된 감사 생활이 아니라 인격화된 감사 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감사로 볼 때 인간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부모님께서 열심히 길러주었더니 어머님 아버님 왜 날 나셨나요?라고 말하는 타락한 아들과 같습니다. 눅17: 11-19에 나오는 9 문둥이와 같은 사람, 요 5: 1-9에 나오는 38년 된 병에서 고침 받은 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롬1:21에 나오는 이방인의 죄 가운데 하나는 감사할 줄 모르는 죄요, 딤후3:2에는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감사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감사 불감증, 감사 건망증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은혜를 받으니 감사하는 자입니다. 부자가 되어서 감사합니다. 질병을 낳게 하여 감사합니다. 합격하여 감사합니다. 등과 같은 감사합니다. 조건부 감사입니다. 눅 17: 11-19에 나오는 한 문둥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감사할 일이 있으면 감사하나 없으면 못하고, 나아가서는 원망도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애굽에서 해방 받아 나올 때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넜을 때에는 감사하다가, 마라에서 물이 쓸때, 므리바에서 물이 없을 때, 홍해로 길이 막혔을 때에는 원망합니다.
셋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들입니다. 감사할 일이건 아니건, 쓰나 다나, 무조건 감사하는 자입니다. 욥이 그러하였고(욥1:21)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이 그러하였습니다. 이 감사는 신앙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감사입니다. 오늘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 청년으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총명한 사람인지라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특채가 되었습니다.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 바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치가 바뀌면 숙청을 해야할 텐데 다리오 왕은 다시 그를 총리로 삼았습니다. 다리오 왕은 120명의 방백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고 그 위에 세명의 총리가 있었는데 그 세명 위에 한 사람을 세우려 했습니다. 제 2인자입니다. 이 때 다니엘을 세웠습니다. 노예 출신이 다니엘이 이 자리에 올랐으니 사람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습니다.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약점을 찾아 냅니다. 법을 바꿉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알고 왕 외에 누구도 30일 동안 섬기지 못하게 합니다. 만약 다른 신을 섬기면 역적으로 몰려 사자굴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원망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타협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고, 진실되게, 정직하게 살았는데 사자굴은 왠 말입니까?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실되게 살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감사합니다. 이것이 인격화된 감사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어인이 찍힌 것을 다니엘이 알았습니다.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대도 행하던 대로 다시 말하면 습관대로 감사기도를 하였습니다. 습관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인격을 낳는 것입니다. 이미 감사가 인격화되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감사하는 생활이 몸에 배였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는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감사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것은 우연사가 아닙니다. 감사는 체질이 되야 되고 성품이 되야 됩니다. 오랜 동안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 가면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체질적으로 감사를 모릅니다. 고마움을 모르고 불평하고 흠집내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그저 고맙다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이게 체질이 되고 습관이 되고 문화가 되야 되는 것이고 어떤 일을 당해도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감사기도가 일상화 되어 있었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있는 걸 알면서 당당하게 비굴하지 않게 공개적으로 하루에 세 번씩 일상화 했습니다.

2. 우리는 어떻한 상황이든 불평의 해석이 아니라 감사로 해석하는 신앙을 갖자는 것입니다.
감사는 어떤 상황에 대한 해석된 표현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사가 나올 수도 있고 불평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띵크(Think)', '땡크(Thank)'라는 말은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생각의 문제입니다. 각도의 문제입니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인간면에서 바라보는냐 그것을 주신 하나님 면에서 바라보느냐 차이입니다. 한 달란트던 두 달란트던 다섯 달란트던 주신 분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똑같이 눈이 작지만 그것을 감사로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지만 눈이 작은 것을 불평으로 해석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불평의 조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저의 조건에 대하여 지금까지 불평해 본 적은 많지 않은 것같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제가 아랑드롱처럼 생겼어봐요. 제가 제벌 아들로 태어 났어봐요. 여기에 있겠습니까? 바람피우다가 병걸려 병원에 누워있던지 어디 건달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르죠. 남보기에는 불평의 조건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불평의 조건이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약점도 주시는 것이고 우리를 훈련시켜 정금같이 만들기 위해 어려움도 주는 것입니다. 병드는 것도, 감옥에 갇히는 것도, 사업에 실패하는 것도, 대학에 실패하는 것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다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탈무드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한마리 닭과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해가 저물어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에 묶어 두었습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 하고 아침을 알려주는 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천막 안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보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에 등잔이 넘어져 그만 불이꺼졌습니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 기도하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 사이에 맹수가 나귀와 닭을 잡아갔습니다. 그는 찢어진 천막을 챙겨 주의를 보니 바로 동네 가까이서 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강도 떼가 동네를 습격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해 갔던 게 아닙니까? 만일 등불이 켜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도 내었다면 틀림없이 자기도 죽었을 것인데 생각해 보면 잃어버린 것이 많지만 잃은 것보다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았음에 하나님께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포로입니다. 처참하게 죽을 상황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와서도 그는 느부갓네살 치하에서 정치적인 출세를 하였습니다. 순전히 꿈 해석 잘 해 주고 출세한 사람입니다. 배경이 있는 것 아니었습니다. 벨사살 왕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리왕이 되었습니다. 세 정권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그것이 다니엘이 뛰어나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2:19을 보십시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단 2:19)"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만족하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만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고난을 당한다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조건부 감사가 아닙니다. 절대적 감사입니다. 이만큼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산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신앙이 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밥을 먹는 데까지는 88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시편 49편 20절에서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로마서 1장 21절에서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를 아는 사람은 꽃 한송이를 자신만 보기 위해 방안에 가두워 놓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형수를 건져 내어 해방시켜 주었던 명 변호사 Samuel Leibowits는 회고하기를, "내가 평생에 전기 의자에 앉아야 할 사형수를 78명이나 구원해 주었는데, 자기에게 찾아와 감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직업을 알선하는 Art King씨도 술회하기를, "내가 지금까지 2500명에게 직업을 찾아 주었는데, 오직 열명 만이 감사장을 보내 왔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필요를 해결해 주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받고 주님께 감사한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모르는 사람들이 가득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라고 했다." 안소니 안이라는 사람은 "세상에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보다 더 악독한자 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볼 때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도 감사로 해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감사는 감사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으로 해석을 하면 그 불평은 다시 불평을 낳고 불행해 지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며 인격화 된 감사 생활입니다.

3. 우리는 미래를 불평으로 망치는 삶이 아니라 감사로 준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미래는 아직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추측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보면서 잘 못될 것을 생각하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미래를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다니엘은 사자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할 만한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자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자신의 신앙 경험으로 볼 때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다니엘은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 정하고 그들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정결하게 자신을 보존했을 때 그는 그 음식을 먹은 사람들보다 더 건강했고 더 지혜가 있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풀무불 가운데서도 죽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을 보고 두려워 하며 불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앞으로 전개해 줄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감사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문제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에는 세 종류의 감사가 있습니다. ① 상대적인 감사입니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비교해서 느끼는 감사이니다. 유치하고 이기적인 감사입니다. ② 결과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루어 진 일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장 고귀한 감사는 ③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감사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감사가 그런 감사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감사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 감사를 드렸습니다. 축사하였다는 말은 감사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식사시간이 되었는데 남자 장정만 5000명이 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아마 15000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10대 소년이 가지고 있는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제자가 가지고 옵니다. 여러분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감사합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감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은 나사로 무덤 앞에서입니다.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아우성 칩니다. 그 때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1)"라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를 살리십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모든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움이 있습니까? 환란이 있습니까? 잃었습니까? 미래가 망망대해 같습니까? 열어주시고 세워주시고 풀어주시고 이끌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십시오.
에디슨은 청각 장애자였습니다. 에디슨은 신문을 팔며 기차의 한 구석에서 실험을 하곤 했는데 어느날 기차의 진동으로 실험약품이 떨어져 불이 났고 이에 격분한 차장이 에디슨을 떠밀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후에 에디슨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연구에 힘들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나는 귀머거리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딴 소리에 신경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요]
"일본의 테레사수녀"로 불리는 다마키 여인은 평생을 한센씨병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요양원을 만들고 고름이 나는 환자들의 피부를 치료하다가 그만 자신도 한센씨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한센씨병에 걸린 것을 알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하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어 여러가지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1946년 6월 공산주의자들은 일제하에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 영진 전도사를 잡아 갔을 때 주 목사님의 부인 오정모 여사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제물로 받으시더니 또 그 아들까지 받으시려 합니까? 한없는 영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린 종에게 담대한 마음을 주시사 시험에 들지 않게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한국의 성자라고 일컫는 손 양원 목사님은 여수 반란 사건 때 두 아들을 공산당에게 학살당하면서도 열가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끝없는 감사와 사랑의 실천자,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묘지에는 지금도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를 낳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이 순교해도 감사한데 두 아들을 순교하게 하셨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려 했는데 그보다 좋은 천국으로 유학갔으니 이것도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병들어 죽어도 복인데 전도하다 순교를 당했으니 더더욱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글이 새겨져 찾는 이의 마음을 데워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도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시69:30,31)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감사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감사하는 자에게 더 주신다고 하였습니다.(눅17:11-19)

이 시간 마음에 감사가 없이 불평이 가득차 있는 분이 있습니까? 혹 감사 건망증, 감사 무감각증에 걸려 감사에 대한 감동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어진 조건을 볼 때 감사할 조건이 하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은 다시 한번 가정의 감사와 내인 생의 감사를 회복하는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다니엘의 감사 기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조건화된 감사 생활이 아니라 인격화된 감사 생활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어떻한 상황이든 불평의 해석이 아니라 감사로 해석하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미래를 불평으로 망치는 삶이 아니라 감사로 준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본문을 다니엘 대신 내 이름을 넣어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인격화 된 감사생활/단6:10/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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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2 사도행전 승리와 승리 후의 자기관리(자기 우상화의 극복) 행14:8-18  김필곤 목사  2010-01-24 2181
2791 사도행전 악감을 품은 반대자 처리 방법 행14:1-7  김필곤 목사  2010-01-24 1682
2790 사도행전 수용과 거부 행13:42-52  김필곤 목사  2010-01-24 2370
2789 사무엘상 전쟁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 삼상17:45-47  김필곤목사  2010-01-24 2672
2788 이사야 하나님의 약속 사52:1-6  최장환 목사  2010-01-23 2586
2787 에배소서 은혜로 얻은 결과 엡2:11-22  최장환 목사  2010-01-23 2135
2786 히브리서 주님의 심정 히2:1-15  최장환 목사  2010-01-23 1991
2785 시편 하나님의 인도 시138:1-18  최장환 목사  2010-01-23 2372
2784 시편 하나님을 느끼는 자 시18:1-15  최장환 목사  2010-01-23 1978
2783 고린도전 알아야 할 것 고전6:12-20  최장환 목사  2010-01-23 3957
2782 에스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 스2:64-70  최장환 목사  2010-01-23 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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