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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유익

고린도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3103 추천 수 0 2010.01.27 13: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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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4:1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 2. 15. 주일 4부 설교 (원로목사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방언의 유익”이 무엇인가. ‘방언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 승천하신 후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일심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이 이르매 갑자기 방안에 큰 소리가 나면서 바람이 가득한 것 같더니 각사람 머리 위에 불길이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대 오순절 사건은 1901년 1월 1일 미국의 벧엘 성서신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학장이었던 찰스 팔함 목사가 학생들에게 성령을 받은 증거가 무엇인지 성경을 연구해서 발표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숙제를 받아서 사도행전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논문을 발표할 때 보니까 한사람도 빠짐없이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말했다’ 그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 방언할 때까지 기도하자. 이래서 전교생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그중에 오스만이라는 여학생이 제일 먼저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더욱 뜨겁게 기도하여 결국 모두가 방언을 하고 성령 충만의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년 후에 1906년 4월에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에서 흑인 목사 시무어 목사님이 설교하던 중 갑자기 성령이 임하여서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소문을 듣자 온 미국 전국과 온 세계에서 사람들이 구름 떼같이 모여서 그 은혜를 받으려고 부르짖는데 교회당에 사람이 너무나 많이 들어와서 교회당 마루가 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때 로스앤젤레스 타임지는 “아주사 집회는 지진과 같았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아주사 집회의 불길은 그 이후에 유럽, 남미, 아시아, 전 세계에 일어나 오늘날 성령운동의 시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때와 같이 성령 충만을 체험하면 대개 방언을 말합니다. 그 체험을 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신기해서 방언을 많이 해요. 방언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방언의 유익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식어져서 나중에는 방언을 안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방언의 유익을 깨닫고 난 다음에 방언을 적절히 사용하면 우리 신앙에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방언 기도는 성령님이 우리의 입을 통해 기도해 주시는 보혜사의 역할
첫째로, 방언 기도는 성령께서 직접 우리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는 보혜사의 역할인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보혜사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 분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눈에 안보이지만 바람같이 항상 우리 곁에 있어서 우리를 도우려고 애를 쓰시는 것입니다. 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직접 기도해 주는 것이 방언 기도입니다. 이는 마치 어머니가 기도할 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손을 잡고 있으나 말을 못해서 더듬더듬 할 때 어린 아이 손을 덥석 잡고 대신 기도를 해줍니다. 어린 아이가 기도하는 것보다도 어머니가 유창하게 대신 기도해 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 훨씬 빨리 상달되는 것처럼 여러분과 제가 더듬거리고 기도를 잘 못하는데 성령께서 보혜사가 되셔서 직접 우리의 입을 통하여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신속히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은 사람 들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기 방언하는 것 자랑하려고 사람들 있는데서 고함을 치고 방언을 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방언은 하나님 들으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은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심지어 마귀들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방언은 오직 내속에 있는 성령님이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 비밀로 기도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비밀 통로인 것입니다. 아무 사람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통역을 하지 아니하면 알아듣는 자가 없고 더구나 마귀가 못 알아들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대책을 세울 수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방언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 우리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피고가 법정에 불려가서 원고 측 변호사의 질문을 받습니다. 피고는 별로 학식도 없고 언변도 없어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몸을 비틀고 당황합니다. 그럴 때 피고 측 변화사가“앉으십시오. 내가 대신 이야기 할 테니까..” 엄청나게 조리정연하고 유창하게 변호를 하기 때문에 원고 측에서 아무리 해도 이길 수가 없게 되고 나중에 재판관이 피고 측이 무죄 석방되도록 선고를 해 내려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보혜사의 일인 것입니다. 보혜사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서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힘 있고 강해서 도움이 필요 없다면 안하지만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하고 의지하면 보혜사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성경에 우리가 기도하는데 그냥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직접 기도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나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성령님이 나를 통해서 직접으로 기도해 주시니 말할 수 없이 힘 있는 기도지요. 그러니 마음을 살피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성령은 아버지의 뜻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도해서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방언으로 기도하면 많은 응답이 다가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큰 시련과 고난으로 기도하지 못할 때 방언으로 기도함
둘째로, 방언은 큰 시련을 당하여 기도 못할 고난에 처할 때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지간한 고난당할 때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서 “하나님, 고통당하고 괴롭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탄식이라도 하지만 너무 기가차면 말이 안 나옵니다. 여러분도 살아오면서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아예 정신이 아뜩하고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릅니다. 그때는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것 같고 사람이 돌아 버릴 것 같습니다. 그때는 성령님께 의지하면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방언으로 직접 기도해 주므로 그 어려운 고난에서 해방되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시련을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큰 시련을 인생에서 당한 사람은 기도를 해야 그 시련을 이길 수 있는데 기도를 못하지요. 시련 당한 사람 가서 우리가 기도하라.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격려는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데 우리도 기도해 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령은 그 사정을 아시므로 성령께 내어 맡기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기 때문에 그 형언할 수 없는 고난에서 건져냄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많은 사람이 철야기도 할 때 보면 초저녁에는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초저녁이 지나가면 꾸벅꾸벅 졸고 할 말이 없어서 기도를 못합니다. 몇 시간씩 무슨 말로 그렇게 기도합니까? 저는 50년을 목회했어도 1시간만 말로써 기도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요. 되풀이 하지 않고는 할 말이 없다고.. 그러니 하나님께 오래 기도하려고 해도 말 할 줄 알아야 기도를 하지 할 말이 없는데 어떻게 기도를 합니까? 그러나 방언 기도를 하면 다릅니다. 우리가 우리말로 기도하다가 말이 끊어지고 할 말이 없으면 그 다음에는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방언은 내가 노력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직접 내 입을 통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언으로 잔뜩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내 말을 할 수 있는 기억이 돌아오면 방언을 그치고 또 내 말로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또 기도가 막히면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할꼬? 나는 말로써 기도하고, 영으로,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송도 말로써 찬송하고, 찬송을 모르면 방언으로 찬송하면 되는 것입니다.”우리가 찬송을 다 외우지 못하지 않습니까? 산이나 들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찬송가책을 안가지고 왔으면 자기가 아는 정도의 찬송으로 찬송을 한 다음 찬송할 것이 없습니다. 그때는 방언으로 찬송하면 성령께서 직접 여러분의 입술과 목청을 통하여 찬송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고난당할 때 도움을 주는 큰 역사를 합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 권사님 한분이 종로에 살았는데 남편은 경찰서 형사였습니다. 굉장히 남편이 무서웠어요. 남편이 교회를 안 나오고 그 권사님은 열심히 믿었는데 기도회가 있어서 구역예배에 참석하려고 가방을 들고 집 문을 채워 놓고 나왔습니다. 나와서 종로 네거리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마음이 들 끌고 짓누르고 큰일이 생긴 것 같은 위협이 생겨 왔는데 무엇이 어려운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그러다 기도가 하고 싶어서 못 견딥니다. 여러분 그런 체험 해본 적 있습니까? 저는 그런 체험을 종종 하는데요.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에 들어와서 폭발적으로 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하는데 뭘 기도할지 모릅니다. “아이고 하나님!” 하고 엎드렸는데 뭘 위해서 기도하는지 모르겠는데 마음에는 막 기도하라고 성령이 재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권사님은 어쩌나 성령님이 강하게 기도하라고 하시는지 기도할 자리가 없어요. 종로 네거리를 걸어가는데.. 그래서 할 수 없어서 가로등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가지고서 막 입을 힘을 다해서 몸을 떨면서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한참 방언으로 기도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해서 눈을 떠 보니까 구름 떼같이 사람들이 구경꾼이 모여 가지고서 미친 여자가 이상한 말 한다고 그래서 털털 털고 그는 거기에서 피해 나와서 구역예배를 잘보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이고 큰일 났습니다. 도둑이 들어와서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안방 문이 다 열렸는데 서랍도 다 열리고 옷가지고 방에 늘어져 있습니다. “왜 놀랬냐?” 서랍 안에 금붙이도 좀 있고 예금해 놓은 돈도 좀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잊어 버렸다면 그날 그 남편에게 맞아 죽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교회에 나간다고 호통을 치고 하는 사나운 경찰관인 남편인데 그래서 “아이고 나 이제 죽었다.” 그러고서 들춰 보니까 서랍을 열어서 옷을 다 뒤졌는데 오직 금붙이와 돈을 덮어 놓은 그 보따리는 손도 안대고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그때 방언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눈을 막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눈을 막아 버리면 안 보입니다. 안 보이면 도둑질할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기도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응답을 하시거든요. 하나님은 응답하시려고 기다리고 있어도 우리에게 주문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하라 그래야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래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고 찾아야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기도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자매님 또 한 분은 어린 아기를 업고 부흥회 하는 교회 낮 공부시간에 참석을 했습니다. 남편은 버스 운전기사인데 시외버스를 운전했습니다. 낮 공부시간에 강사님이 한참 말씀 전하는데 “어이구 기도해야 되겠다.” 마음이 막 갈급해서 기도가 나오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혼자서 고함치고 기도할 수 없어서 입을 이렇게 다물고 엎드려 가지고서 막 속으로 조그마한 소리로 방언으로 기도를 억세게 했습니다. 방언을 한참하고 나니까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어서 왜 이러는가 모르는데 저녁에 남편이 들어오는데 얼굴이 새하얗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다. 안 그랬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다.” 시외버스를 타고 경사진 곳으로 올라가다가 버스가 고장이 나서 안 가므로 승객들을 다 내려놓고 타이어에 돌을 받혀놓고 안에 들어가서 기계를 조작하는데 그냥 돌이 핀트가 나가서 버스가 뒷걸음쳐서 벼랑으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주 천길 만길 벼랑인데 거기에 떨어졌으면 틀림없이 죽었는데 벼랑으로 밀려나간 차가 앞바퀴가 벼랑에 달려서 달랑달랑 달렸습니다. 그래서 살살 기어서 차에서 나오자마자 앞바퀴가 턱 떨어지면서 벼랑에 차가 뒹굴어 떨어졌습니다. 아주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죽을 수 있는데 순간적으로 그런 역사가 일어나서 누가 꼭 떨어지는 차를 밀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왜 바퀴가 난간에 걸립니까? 그래서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해서 그 시간을 알아보니까 자기가 성경 공부하는 교회 시간에 기도가 하고 싶어서 기도했던 그때 그 기도하는 시간에 바로 그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만일 그 부인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간절히 기도를 안했더라면 그 남편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성령께서는 그 남편의 위급을 아시고 그 부인을 통해서 기도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어디 계시든지 성령이 마음속에 강하게 충격을 주시면서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시거든 미루지 마시고 곧장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가족이 아니면 여러분 친척이나 이웃이라도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해서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래 전 제가 대만에서 성회를 할 때 성회 위원장이었던 주연아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어요. 그가 상해에서 신학생으로 공부를 할 때 중국이 공산화 되었습니다. 공산화 되면 교회가 문을 다 닫고 교역자들은 다 잡히는데 그래서 공산정권이 와서 신학교를 접수하기 전에 신학생 전체가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강단에 모여 가지고서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를 주셔서 이 고통을 면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으니까 전교생이 다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아 방언을 말하는 것을 알지도 못했는데 전교생이 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고 그 다음에 그 신학교는 공산군이 와서 접수를 하고 신학생들이 다 흩어졌는데 방언을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마음에 충만했는지 모든 신학생들이 다 지하에 들어가서 지하교회를 세우고 끊임없이 공산주의를 대항해서 싸우고 복음을 전도해서 오늘 이제 자유로운 시대가 와서 자유롭게 복음을 증거 할 때, 중국에 복음이 그렇게 빨리 증거 된 것은 그때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지하에서 다 준비를 해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역사가 중국에서 크게 일어나고 있다고 그렇게 제게 말했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어떠한 핍박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경에는 성령이 오시면 능력을 받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3.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귀가 쫓겨나감
셋째로, 마음이 다스릴 수 없이 슬퍼지고 비정상적일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귀가 쫓겨 나갑니다.
이것도 여러분 체험했을 것입니다. 저도 이런 것을 종종 체험합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미운 사람도 없고 싸운 적도 없고 그렇게 답답한 일도 없고 별로 없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꼭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이것 왜 이럴까? 그래서 “하나님 내 마음이 왜 이렇습니까? 왜 이렇습니까?” 그러자 방언기도가 나옵니다. 방언기도를 막 한참 하니까 아 그 다음부터 귀신이 튀어 나가는데 한 놈 튀어 나오고, 두 놈 튀어 나오고,세 놈 튀어 나오고 귀신이 튀어나고 난 다음에 마음이 완전히 쾌활해지고 편안해지고 기뻐지고 즐거워지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귀신이 내 마음을 누른 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비정상적으로 마음이 슬퍼지고 괴로워지고 억압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고 이럴 리가 없는데 답답한 일이 없는데 왜 이럴까? 마귀가 누르는 것입니다. 그때 그대로 두면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면 무슨 마귀든지 쫓겨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새 방언을 말하면 귀신이 쫓겨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으로 기도하면 죄와 사망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이 내 마음을 눌렀다가도 성령으로 기도하면 죄와 사망의 영이 쫓겨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로써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종교 단체에서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 중에 정신병자가 한사람도 없는 것을 통계적으로 발견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사람의 심리는 100%로 말하면 90%는 잠재의식이라고 해서 우리 생각하지 못하는 마음 잠재의식 속에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은 10%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90%는 여러분 마음에 숨어있는 생각이고 우리가 생각하고 사는 생각는 10%밖에 안 됩니다.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을 견디지 못하면 전부 잠재의식 속에 집어넣어 버립니다. 옛날에 얻어맞았던 것, 옛날에 미웠던 것, 옛날에 박대 받았던 것, 자랄 때 부모에게 사랑 못 받았던 것, 원한 있는 것 다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만 속에 다 가라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어려운 고통을 당하면 이것이 떠올라 와서 온갖 정신적인 육체적인 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강물이 평소에 흘러갈 때 죽은 강아지도 던져 놓고 새도 던져 놓고 돌멩이도 던져 놓고 거름더미도 던져 놓으면 강물바닥에 전부 가라앉기 때문에 안보이고 위에는 맑은 물이 흘러서 강이 전부 맑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나서 강이 한번 뒤엎어지면 밑에 있는 쓰레기와 죽은 짐승의 시체와 더러운 것들이 다 위로 떠올라 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잠재의식 속에 여러 가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여러분이 처리할 수 없는 그러한 것들이 마음에 쓰레기 더미가 되어서 숨어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식은 안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렵고 고통을 당할 때 이것이 다 떠올라 와서 여러분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 속을 어떻게 우리가 소제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안 들여다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까지 들어와서 그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낼 수 있는 자가 누구냐? 성령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잠재의식을 소제해 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어릴 때 고통당한 것, 상처 입은 것, 해를 입은 것, 원한, 슬픔, 괴로움 이 모든 것이 마음 밑에 깔아 앉아 있던 것이 전부 방언을 하면 방언이 그를 들춰내어서 소제해서 청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기도를 하면 마음이 건강한 마음이 되고 치료받은 마음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평안한 것 같지요 여러분, 그래도 위기가 닥쳐오면 바닥에 깔려있는 공포와 좌절, 불안과 절망 등이 우리를 괴롭히고 뛰올라오는 것입니다. 청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을 청소 못하는 사람은 병원에 가서 심리학자에 여러 가지 과거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과거이야기를 하고 꿈 이야기를 하면 꿈 이야기를 하면 심리학자들이 하나하나 뽑아내는 것입니다. 당신 이런 점이 모르지만 있습니다. 요런 과거에 상처 입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을 회개하시고 치료 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심리학자를 찾아갈 필요 없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뽑아내는데요. 성령이 소제해 내버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고침을 받고 아주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남아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다 청소해 줍니다. 우리 마음이 다스릴 수 없이 슬퍼지고 비정상적일 때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럴 때 마귀는 쫓겨나가고 마음속에 있는 모든 쓰레기 더미는 청소되고 우리 마음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을 마귀는 못하게 자꾸 하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하면 “야, 네가 하는 기도지 성령이 하는 기도가 아니라”고 자꾸 여러분께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 협박을 들어서 넘어가지 마십시오. 방언은 여러분이 성령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는 것이지 여러분이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잃었을 때 방언으로 기도함
넷째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잃었을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좋습니다.
마음에 아무래도 기쁨이 안 생겨요.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집도 편안한대도 마음이 기쁘지 않고 우울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뻐하는데 왜 마음이 나는 기쁘지 않을까.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늘 불안합니다. 그럴 때 그 마음에 기쁨이 없고 불안할 때 치료하는 것은 방언기도인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1절로 12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떨리는 입술과 다른 방언, 어떤 사람은 성령 받고 부르르.. 어린 아이 입술 떠는 것처럼 떱니다. 떨리는 입술을 가진 사람도 있고, 또 유창하게 방언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떨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이 말씀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다’ 떨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하면 마음에 안식이 다가오고 상쾌함이 다가온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통해서 기도해 주시면서 불안을 제껴 버리고 슬픔을 제껴 버리고 안식과 기쁨을 갖다 주는 역사가 방언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든지 가보면 방언을 많이 하는 교회는 교인들이 다 활기차고 생기가 넘칩니다. 마음에 안식과 기쁨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 중에 한 사람이 이런 간증을 제게 했습니다. 쌍둥이를 낳았는데 둘째 애가 밤에 잠을 자다가 깨면 밤새도록 울어요. 말을 겨우 배우기 시작했는데 더듬거리며 말하는 것 보면 꿈에 무서운 꿈을 꾸어요. 그래서 무서운 꿈을 꾸기 때문에 꿈꾸고 나면 일어나서 새벽까지 벌벌 떨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매달리고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해도 안 되고 정신적으로 어린아이가 완전히 위축되어 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기도하다가 하루저녁에 또 일어나서 막 울고 부르짖기에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나는 왜 이런 일이 얘에게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께서 아시니 고쳐 주십시오.”하고 방언으로 한 시간쯤 잔뜩 기도하니 애가 그냥 조용히 가라앉더니 잠을 자더라. 그 다음 이후로는 다시는 밤에 깨어 일어나서 울지 않더랍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무서운 꿈을 꾸고 울었는데 방언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평안과 기쁨을 주어서 어린아이가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건강하게 자랐다는 간증을 제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꿈자리 시끄럽거든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5. 개인적인 신앙의 덕으로 타인보다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함
다섯째로, 방언을 하면 어떠냐. 개인적인 신앙의 덕이 필요할 때 즉 타인의 유익보다도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할 때 신앙의 덕이 생기는 것입니다. 덕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헬라원어로는 벽돌을 한 장씩 한 장씩 쌓아 올리는 것을 덕(德)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덕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덕 되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신앙의 벽돌이 한 장씩 한 장씩 쌓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신앙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4장 4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예언을 하면 교인들이 다 알아듣기 때문에 교인들이 신앙의 덕이 생기지요. 그러나 방언은 자기도 못 알아듣고 교인도 알아듣지 못하니 교인들 듣는데서 할 필요 없이 개인적으로 자기 혼자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자기 덕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좋은 설교를 들으면 큰 은혜를 받고 덕을 얻는 것처럼 내가 방언으로 유창하게 기도를 하고 나면 개인적으로 큰 은혜를 받고 신앙의 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 하면 좋습니다. 우리 지역장, 구역장 여러분은 지역과 구역을 인도하러 가기 전에 한 시간쯤 방언을 하고 가십시오.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은혜롭고 덕스럽고 놀라운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설교하기 전에 언제나 방언으로 기도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말로써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방언으로 기도하고 또 말로써 기도하고 난 다음 또 방언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혀에 기름이 부어지고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여서 설교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6절에 “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서 하라”
그러므로 옛날 초대교회에는 예배를 보면 찬송가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하나님의 계시도 받아서 증거하는 것도 있고 방언기도도 하고 또 방언통역도 있고 한 것입니다. 예배에 반드시 방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전통을 잃어버리고 방언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로버트 리어든이 쓴「방언기도는 즐겁다」는 책에서 방언기도가 즐거운 이유를 7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여러분 자세히 들어 보세요. 첫째, 방언기도는 표적으로서 성령 충만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자꾸 마귀가 와서 “너는 성령 충만하지 않다. 너는 성령이 안 계신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증거가 있다.” “무슨 증거냐?” “방언을 말한다. 사도시대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했다. 그러므로 나도 방언을 말하기 때문에 나는 성령이 충만하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령이 충만하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신앙의 확신이 생깁니다. 둘째, 방언기도는 영적으로 강한 사람을 만들어 줍니다. 영적으로 약한 사람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점점 신앙에 덕이 쌓아져서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방언을 하면 영적으로 민감하게 하여 영적 사건들을 분별하는데 더욱 민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이 날카로워져서 마귀의 역사를 분별해 내고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내서 하나님의 뜻을 쉽게 순종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이 날카로워 지는 것입니다. 칼이 있어도 잘 갈아 놓으면 칼이 날카로워져서 음식을 만들 때 잘 들어서 잘 요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무딘 칼로써는 무도 안 베어지고 두부 같은 것이나 벨까 소고기도 안 베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칼을 베어 날카롭게 해놓으면 음식물 만들 때 잘 베어지는 것처럼 여러분 그냥 기도하면 그것도 좋지요.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여러분의 기도의 칼날이 날카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카롭게 마귀의 일을 분별해 내고 성령의 역사를 다룰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넷째로, 방언기도는 영으로 하나님과 대화함으로써 믿음을 굳게 하며.. 영으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냐? 안살아 계시냐? 그런 질문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어떤 사람이 저보고 그런 말을 해요. “당신 교회 목회를 하는데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냐?” 그래요 나보고..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왔는데요? 하나님이 안살아 계시면 어떻게 하나님과 이야기 하나요?” “하나님과 어떻게 이야기 하나요?” “하나님 말로써 이야기 한다. 한국말로 영어로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 말로 이야기 한다.” “하나님 말로 어떻게 하느냐?” “방언으로 하나님과 직접 나는 이야기한다.” 그러니 하나님 계셔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왔는데 자꾸 하나님 있냐고 없냐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냐 안계시냐 마음에 의심이 되면 하나님과 방언으로 한번 기도해 보세요. 여러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대화를 했는데 하나님과 이야기 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말할 수가 있나요? 하나님이 계신 것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 지는 것입니다. 다섯째, 방언으로 기도하면 언어 사용에 더욱 신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게 되면 내가 아닌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입술을 사용해서 말을 하기 때문에 발음이 정확해 지는 것입니다. 영어 공부하는 사람은 방언으로 기도 많이 하면 영어 발음이 좋아지고 아마 중국어 공부하는 사람 방언으로 기도 많이 하면 중국어 발음이 좋아질 것입니다. 발음이 똑똑해지는 것은 전혀 우리 한국말이 아닌 하늘나라 말을 할 수 있도록 혀와 입술이 훈련을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성령님께 우리의 입을 복종케 함으로 혀를 잘 다스리도록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섯째, 방언기도는 영적으로 새 힘을 주어 우리 신앙생활에 신선함과 활력을 잃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래 예수 믿은 사람은 그만 늙어서 지쳐 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에 지쳐져서 생동감이 없어요. 막 박수를 치고 찬송을 하고 뛰고 구르면 “우리도 옛날에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 봐라. 너도 다 우리처럼 된다.” 신앙에 늙어서 맥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항상 신앙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이 새로워지고 쾌활해지고 활달해지므로 신앙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째, 여러분이 방언으로 기도 많이 하면 이런 능력을 받아서 세계 전도에 열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온 세계 선교사로 나가있는 사람의 대다수가 방언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성령운동을 하고 방언을 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에게 욕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미쳤다고.. 이상한 말 하는데 미쳤다고.. 그런데 요사이 우리 한국에 성령 운동하는 교회치고 방언 안하는 교회 있습니까? 방언한다고 미쳤다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한국에 급속도로 부흥이 되고 120여년 만에 천만이 넘는 신자가 된 것은 하나님이 성령의 은사를 주어서 방언으로 기도하므로 믿음이 강해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은혜가 넘쳐나서 담대하게 전도했기 때문에 이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한 것도 성령 받고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옛날에 서대문에서나 여의도에 서나 초창기에는 얼마나 방언을 많이 기도했는지 교회 들어가면 벌이 꿀 따는 것처럼 방언 기도 ‘웅웅웅’ 했는데 요사이는 그런게 없어졌어요.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제가 여러분에게 불 일 듯이 기억을 일으키는 것은 방언을 하면 여러분의 신앙이 새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많은 유익을 주고 상상을 초월한 신앙의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너무 과식하면 몸에 해롭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사인 방언도 질서 있고 절도 있게 하면 정말로 귀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혼자서 고함을 치고 방언을 하면 그것은 절도가 없어요. 찬송하는데 자기는 찬송 안하고 방언만 하면 절도가 없어요. 방언은 사람들 들으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과 나와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성기도 할 때나 방언으로 기도하고 집에서 골방에 들어가서 방언기도하고 산기도갈 때 방언기도, 사람 들으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 듣고 내가 듣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는 말이기 때문에 비밀로 기도하시므로 사람들에게 시험이 안 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질서 하게 하지 말고 자기 과시를 위해서 하면 교회와 하나님께 누를 끼치게 되므로 질서 있게 하면 굉장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많이 은사로 준 것이 방언기도인 것입니다. 다른 은사는 선택해서 받지만 방언의 은사는 누구든지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8절 말씀 사도바울 선생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 원어를 보면 너희들이 다 합쳐서 하는 방언보다도 나 혼자서 하는 방언을 더 많이 한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선생이 그 많은 고통을 이기고 그 먼 여행을 하면서 편만하게 구라파를 복음화한 것은 그 근본적인 힘이 기도에 있고 그 기도에 근본적인 능력이 방언에 있었던 것입니다.
39절로 40절에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고 품위 있고 존경받는 방법으로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한 때 하다가 안 한 사람은 오늘부터 새로운 각오로 방언을 하십시오. 우리말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우리말로 찬송하고 방언으로 찬송하십시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꼭 성령 받고 방언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오늘날은 성령을 선물로 주는 시대이기 때문에 한 시간 이내 성령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해야 여러분이 기초 무장이 되어서 마귀와 싸우고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승리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여러분 혼자 기도의 힘으로는 이겨 나갈 수가 없어요. 보혜사가 와 계셔도 와 계신 줄도 모르고 도움도 못 받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보혜사의 도움을 끊임없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방언을 통해서 보혜사 여러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보혜사가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을 믿을 수 있으니 의지할 수 있고 여러분 혼자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여러분이 함께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능력이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꼭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무장시키기 위해서 성령을 주시고 그 무장 중에 가장 보편적인 무장으로써 방언을 주셨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다 방언을 말했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성령 받고 방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 중에 아직 성령 받지 못하고 방언을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열심을 내어 기도해서 성령 충만하고 방언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방언을 했다가 안 하는 사람은 새로 불 일 듯이 하여 방언기도를 일상화, 생활화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능력으로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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