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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의 문화적 시각을 고려한 설교

목회독서교육 장영일 목사............... 조회 수 2344 추천 수 0 2010.01.29 11: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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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청중의 문화적 시각을 고려한 설교 - 장영일목사

Ⅰ. 설교자의 오류

태국 북부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하던 일본인 고야마씨는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던 한 여인을 만나 전도를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열심히 증거했다. 병석에 있던 태국 여인이 고야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네 기독교 선교사님들은 우리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늘 사람들을 가르치 려고만 하세요. 스님들이 선교사님들보다 오히려 나아요. 전 스님을 부르겠어요. 스님 말씀을 듣겠어요. 그 분들은 절 이해해 주실 거예요. 당신의 법보로 절 위안해 주시리라 믿어요. 그 분은 내가 알아듣는 말씀을 해 주시지요. 여기 계시면 시간만 허비하시는 거 예요. 돌아가세요. (Kosuke Koyama, Waterbuffalo Theology. p.85)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아프리카 앙골라의 민담에 나오는 것이다. 한 여인이 시집을 갔는데 시동 생이 넷이나 있었다 . 그 녀는 정성을 다하여 죽을 끓여 시동생들의 방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시 동생들이 형수에게 요구하기를 우리가 이 죽을 먹을테니 먼저 우리들의 이름을 말해보라는 것이 었다. 그런데 형수는 시동생들의 이름을 몰랐다. 그들은 형수가 가져온 죽을 먹지 않았다. 그 녀 는 시집 생활이 고달파서 시동생들의 이름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형수가 자기들의 이름을 다 알 때 까지 형수가 해오는 죽을 먹지 않았다. 나중에 하는 수 없어 이름을 알아서 그 들을 불러주니 시동생들이 좋아하며 그 죽을 먹었다는 이야기이다(C.S. Song의 「Tell us our names」p. 89f). 태국 여인이 선교사에게 제기한 것은 "우리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과 "내가 알아듣는 말씀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앙골라의 민담에서도 시동생들은 시집온 형수가 음 식을 주기 전에 먼저 자기들의 이름을 알아달라는 것이었다. 즉 설교나 음식보다 자기를 알아주 는 인격적인 만남을 더 원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신실한 설교자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여 강단에 올라간다. 그런데 청중들의 반응이 기대한 것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반 복되면서 설교자는 낙심한다. 그래서 때로는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가 하여 특별한 시간을 내어 기도원을 찾아가서 금식도 해보며 영력을 얻고자 애를 쓴다. 소위 "영감 있는 설교"를 위해 안간 힘을 다 쓴다. 그러다가 성경 본문 해석과 공부를 소홀히 해버린다. 결국 설교의 내용이 부실해지 면서 고함치는 설교자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청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만 되풀이하는 선교사 고 야마나 시동생과의 사귐을 무시한채 음식만 주는 형수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데서 일어나는 것이 다.

II. 설교자의 의식 전환  

설교자는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청중 중심(audience-oriented)의 설교로 전환된 사고를 가져야 한다.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의 간하배 (Harvie M. Conn) 교수는「복음전도와 사회 정의」라는 책에서 "우리들의 복음 코뮤니케이션이 대중들의 구체적인 필요성에 의해서보다 설교 자나 신학 교수들의 생각에 의해 확정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p.19)고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그 는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의 성육신적 모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의 계시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최고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음으로 우리들의 땅에, 우리들의 환경에 , 우리들의 질서 속 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건이라고 했다. 만일 설교자가 청중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중심의 말씀 이해를 선포할 때 그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에 세네파 사람들 처럼 되어버린다. 예수님은 유혹과 고통을 격고 있는 인간의 연약을 체휼하심으로 (히 4:15) 바리새인들의 형식 논쟁으로부터, 사두개인의 궤변으로부터, 에세네파의 금욕주의적 신 비주의로부터 벗어나셨다. 예수님은 세상 가운데 오셔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고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사건들을 가지고 비유와 예화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기원 전후의 팔레스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이용하여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문법적-역 사적 해석」을 중요하게 여기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지금 여기서 복 음을 설교하신다면 현 청중들의 언어와 상황을 이용하여 그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을 치료하실 말 씀을 하실 것이다. 만일 시골 교회 강단에 서시면 아직도 농경 사회적 언어와 비유를 사용하실 것이고, 만일 도시 교회에 서시면 도시 노동자들과 도시 문화에 맞는 언어와 비유를 사용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외인들에게 숨겨야 할 말씀을 비유로 표현하시기도 했으나(막 4:10-12 참조) 제 자들에게는 다시 부언하여 그들이 알아듣도록 설명하셨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성육신적 자세 를 가졌다.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이 되었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없는 자가 되 었다. 까닭은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고 전 9:22)이라고 했다.

III. 청중과 만나려면  

1. 이야기가 있는 설교여야 한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매우 유능한 이야기 꾼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당시의 선생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르쳤다. 예수님은 관념이나 개념이 아닌 비유로 말씀하셨다. 비유는 일상 생활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짧고도 단순한 이야기 형태의 것이다. 삶에 뿌리를 두고 생겨난 비유는 삶 자체에 영향을 미칠 메세지를 담고 있다. 송천성은 말하기를
대부분의 경우 예수의 비유는 인간 생활 속에, 문제와 고뇌 투성이인 현실 세계 속에 하 나님의 나라를 가져다 준다. 비유로 인간의 삶과 하나님의 나라가 서로 한데 어우러질 때, 비유는 더 이상 단순한 은유, 풍유, 혹은 상식적인 의미에서 쓰는 비유의 차원이 아 니다. 단순한 비유에 머물수 없다. 그 같은 융합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삶 자체가 하나님 의 나라를 암시하는 실례가 되고 실제적인 삶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들 을 수도, 파악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아시아 모태신학」p.85)
이야기에는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한 것도 있고 꾸며진 것도 있으나 대부분 인간 삶에서 발생된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다가 동질감을 느끼고 울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며 또한 웃기도 한다. 한 때 한국 교회를 풍미했던 부흥사들의 공통점이 이 야기 꾼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하여 청중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그들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케했었다. 설교 중의 이야기가 성경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비성경적인 설교라고 할 수 없다. 예수님은 구약에 나오는 삼손 이야기나 다윗의 용맹성을 이야기 재료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분은 씨 뿌리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쳤고 노동자들의 일한 품삯을 가지 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쳤다. 뿐 아니라 예수님은 당시에 회자되던 여러 이야기들을 이용하였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나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이야기들은 당시의 "사람들의 이야기 (stories of people)"속에 있었다고 한다. 소위 민담을 예수님은 설교의 도구로 삼으신 것이다. 그 러므로 오늘 날의 설교자도 민담을 적절히 사용하면 훨씬 가슴에 닫는 "맛"있는 설교를 하게 될 것이다.

2. 설교는 직관적 감화력이 있어야 한다

동양과 서양인들의 사유 양식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서양인의 사유는 논리적이며 합리성을 한다. 그에 비해 아시아인들에게는 직관이 지성과 사유와 행동을 강렬하게 지배하고 있다. 물론 이것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종교적 체험에 있어서 동양은 분 명 직관을 통하여 초월을 경험하는 문화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소위 "깨달음"(覺 또는 悟)을 구 원의 길로 여긴다. 그런데 아시아의 선교 교회들이 신학의 방법론으로 서구의 로고스 신학에 의 하여 길들여져 왔었다. 즉 이성과 합리성을 위주로 하여 관념적이고 분석적으로 성경을 해석해 왔었다. 그래서 조직신학적인 교리적 선언을 성경적인 설교라고 여겨왔다. 아시아 신학자인 송천 성은 서구 선교사들의 중국과 일본 선교에 실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Third-Eye Theology」p.7 참조). 다행하게도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따 라 한국인 목사에 의해서 설교가 시행되었고 초기 목사들은 서구의 분석적 설교보다 직관을 통하 여 은혜 체험이 이루어 지도록 인도하여던 것으로 보인다. 이럴테면 죄에 대한 설교도 "죄란 인 간이 하나님과의 불화 관계"라는 로고스적 설교가 아닌 삶의 현실에서 빚어진 구체적 죄악들을 지적함으로 회개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의 종교적 감성은 눈물을 통한 초월의 체 험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교회의 초기 목회자들과 설교자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생 각된다. 그래서 청중을 울리는데 유능한 설교자가 많았었다.

사실 성경의 계시 사건 역시 직관적인 성격에 더 가깝게 할 수 있다. 계시가 논리적 추론 끝에 오는 것이 아니다. 계시는 논리에 매이지 않는다. 인간이 전혀 준비하지 않은 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임했다. 모세가 체험한 하나님의 사건이 그렇지 않은가? 모세는 불붙은 떨기 나 무에서 나무 자체는 전혀 소멸되지 않는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순간 깨닫는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 체험으로 인하여 그는 자기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 는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던 사건 역시 그랬다(사 6장). 시몬 베드로 역시 밤새 잡지 못했던 고기를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데서 거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으면서 순간 자기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깨닫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고 고백했었다. 이런 하나님 체험을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교자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적 감동을 순간적으로 이끌어 내는 직관적 감화력이 있어야 한다.

3. 설교는 時·空間的 예술작품이다

설교가 청중들에게 직관적인 깨달음을 줄 수 있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기 보다는 예술적이 어야 한다. 과학은 머리로 하지만 예술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개신교회가 "오직 성경"이 라는 보화를 발견하고서도 이 보화를 기록되고 선언된 객관적 신앙문서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많 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라는 말을 "성경 영감설" 혹은 "성경 무오설"로만 축소하여 취급한 면이 많다. 즉 그 말씀이 "하나님의 숨결"로서 "움직이는 힘"임을 간과 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 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히 4:12) 한 다고 했다. 그러므로 설교를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은 청중들의 마음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는 들을 뿐 아니라 보고 만질 수 있는 예술 품이어야 한다. 설교는 방향을 가르치는 직선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청중의 삶의 자리에 함께 앉 을 수 있는 평면을 가지며 동시에 공간으로 확대되는 풍성함을 느끼게 해주는 "멋"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청중을 향하여 "너희는 소금이다"고 하면서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이 소용있느냐고 청중의 삶의 자리로 옮길 수 있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다"고 하실 때도 역시 "등경을 말 위애 두어야 한다"고 하면서 벌써 청중의 머리에 공간을 느끼 도록 해서 청중이 어디에 서있어야 할 것인지를 결단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있다. 구제와 기도, 염려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도 듣는이에게 직선적 명령으로서 부담을 가지게 하는 율법사와 같 이 하지 않고, 듣는 순간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있도록 그림을 그려주는 부드러운 감화력을 드러내고 있다.

Ⅳ. 나가면서  

청중들은 설교자가 만든 예술품을 감상하는 각기 다른 눈들을 가지고 있다. 송천성은 「제 3의 눈의 신학」(Third-Eye Theology)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 를 본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중국인의 눈으로, 일본에서는 일본인의 눈으로, 한국에서는 한국인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도록 선교사는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 교회는 그 동안 독일인의 관념적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도록 강요 받았고, 미국인들의 실용적인 눈으로 예수 님을 보도록 훈련 받았었다. 간하배도 "성령의 역사는 받는 자 중심이다"고 했다(앞의 책 p. 13). 그러므로 설교자는 하나님 말씀을 청중의 문화적 시각에 친화력을 가진 예술품으로 만들어 던져 줄 때 그 설교는 더 깊은 감화력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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