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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생태여성신학과 지구화 문제

논문신학성경 김애영 박사............... 조회 수 2615 추천 수 0 2010.01.31 00: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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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생태여성신학과 지구화 문제

(Ecofeminist Theology and Globalization Problem)

김애영 박사

한신대 신학과 교수, 조직신학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전도서 1:8)

Ⅰ. 시작하는 말


일찍이 1869년에 에른스트 헥켈은 생태학(ecology)을 "생명체와 그것의 환경 사이의 관계에 관한 연구"라고 정의하였다. 이처럼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과 인간관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형태의 생태학적 논의들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전(全) 지구적 공동 노력을 촉구하고 있는 환경위기, 생태계 문제는 1970년대 초부터 활발해졌다고 볼 수 있다. 1972년 로마클럽(Club of Rome)이 생태학적 파국에 관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of Growth)를 출판함으로써 생태계 위기에 대한 경종과 관심을 전 세계적으로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생태문제에 대한 자각과 이에 따른 환경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라고 볼 수 있다. '심층생태학', '에코페미니즘', '사회생태학'과 같은 개념들이 1970년대 초 이래로 발전되어 왔지만 그런 제목들을 가지고 출판된 영어 서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기라고 한다. K. C. 아브라함(K.C. Abraham)에 의하면, 가난한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생태계 위기가 그들에게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빈곤과 경제적 착취 문제에 집중하였으며 환경문제를 산업화된 나라들의 사치로 치부했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인권과 민주화 투쟁, 그리고 분단극복과 통일운동이 고조되었던 1970-80년대 초까지 생태계 문제는 우리에게 급박한 문제로 등장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에서 고조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시련, 그리고 더 나아가 아시아에 닥친 경제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경제 문제가 환경문제 보다 더 긴박한 문제로 여겨지도록 만듦에 의하여, 환경친화적 혹은 생태학적 산업구조 조정 문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 상황은 환경보존을 위해 경제성장을 억제해야 하느냐 혹은 경제성장을 위해 환경보존을 희생 혹은 유보해야 하느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논의를 넘어서서 환경의 세기가 될 21세기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이미 진입했다.


미국의 환경보호단체인 월드워치는 1999년 1월 15일 발표한 새로운 천년시대를 맞는 "밀레니엄 특별 환경보고서"에서 20세기의 서방 산업화 모델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면서 세계 각 나라들이 환경친화적 새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천년의 세기에서는 이처럼 세계 모든 나라들이 환경친화적 성장과 환경보호를 위한 공동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 생태학과 경제문제는 불가분적 주제이다. 예컨대 1992년 리우 기후변화협약의 후속조약을 맺기 위한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UN 환경회의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한 규제 등이 다루어졌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해서 선진국들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한 규제 문제로 인해 한국의 대기 오염 역시 중요한 국제적 쟁점이 되고 있다. 개발도상국가들은 선진국들과 똑같은 배출량 규제 기준에 동의할 경우 선진국을 따라 갈 수 없다는 불평을 해 왔으며 또한 가장 큰 오염 배출국인 선진국들이 환경 개선을 위해 가장 큰 경제적 희생을 부담해야 하며, 개도국들에게 선진국들과 똑같은 부담을 떠 안겨 경제성장을 저해함으로써 선후진국들 간의 빈부격차를 더 이상 벌려서는 안 된다는 나름대로의 정당한 주장을 펴고 있다고 한다. 북반부의 부유한 나라들이 생태계 보존을 촉진하는 기술적 수단들을 제공하지 않은 채 가난한 남반부가 환경문제에 집중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위선적이며 불의하다는 것이다. 기후변화협약에서 유엔이 요구하고 있는 실행계획은 현재 우리나라 에너지 사용량을 50% 가까이 줄이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 우리 국내총생산은 지금의 60% 이하로 줄어들게 되는데 이는 IMF 사태가 몰고 온 생산성 저하가 30%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거의 치명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환경규제 문제는 그 중요성과 긴박성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이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을 거의 영구히 따돌리기 위한 전술이라는 비판을 받고있다.


엄청난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의 부산물로 인한 쓰레기, 유독성과 방사선 폐기물, 환경오염과 환경 호르몬, 오존층 파괴, 종의 멸종 등은 모두 인간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지구자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바,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을 정복했다고 자만했던 인류에 대한 이러한 생태계 공격에 대하여 힘없고 가난하고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은 거의 방어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생태계 위기는 사회적ㅗ경제적 불의와 관련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생태계 위기문제를 여성문제와의 관련 속에서 다루고 있는 생태여성신학자들(ecofeminist theologians)의 통찰들을 고려함으로써, 지구화 시대의 지구경제(global economy)에 의해 더욱 더 가속화될 생태계 파괴와 여성의 억압상태를 저지하고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지구 공동체 형성을 위한 인류의 공동 노력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Ⅱ. 생태살해적 세계현실과 지구화


국제기구와 세계 유수의 연구소, 민간환경단체들이 소위 "21세기 묵시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위기의 지구"를 경고하고 있다. 50년 전 25억이던 지구인구는 1999년 6월 16일을 기점으로 60억을 돌파하고 2050년에는 89억에 이를 것으로 세계인구기금(WPF)은 전망한다. 또한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98 물 회의는 앞으로 25년 안에 마실 만한 깨끗한 물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인구는 5억 명에서 13억 명으로 증가할 것이며, 2050년이 되면 세계인구의 2/3가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57년 남극 하늘에서 발견되었던 오존 구멍이 그 후 남아메리카 대륙 절반 크기로 커지면서 지구촌은 대 법석을 떨었으며 1992년 리우환경회의, 1997년 교토 환경회의,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온실가스 감축문제들이 논의되기도 했다. 종(種)의 멸종문제를 보면, 세계자연보호연맹(WCU) 과 세계보존모니터링 센터(WCMC) 는 몇 년 안에 멸종할 동식물만 적어도 3만1472종을 꼽았다고 한다. 또한 21세기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생명공학도 이른바 유전자 오염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를 보면 앞으로 50년은 사용 가능하다고 여겼던 석유도 10-20년 안에 생산량이 감소세로 돌아서 부족사태를 일으키게 되리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D. 피멘텔 교수는 과학전문지 최근호에서 주장하기를, 세계에서 매년 사망하는 사람의 40%가 인구증가와 이에 따른 각종 공해 및 환경 파괴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인구증가와 함께 더욱 밀집된 도시에서 생활하게 되고 이는 지구 온난화, 공해물질의 증가 등과 겹쳐 과거 유행병이 다시 발생하고 새로운 질병이 출현하는데 유리한 환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 토양, 물, 동식물에 대한 남용과 오용에 의해 단 하나뿐인 지구(Only One Earth)의 기본적인 생명체계 자체의 목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수많은 사례들이 얼마든지 열거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생태계 위기 현상들이 인간들에 의해 구조적 또 인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생태 불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환경에 관한 UN의 첫 번째 국제회의에서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를 지향하는 북반구의 관점과 사회,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는 남반구의 관점이 고려되었는데,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특히 1972년 스톡홀름 회의 이후에 사회 생태학(social ecology)에 대한 관점이 발전했다고 한다. 로지노 지벨리니(Rosino Gibellini)에 의하면 여성신학이 처음부터 생태학을 주요 주제로 다룬 반면에, 해방신학의 근본개념을 주제별로 다룬 방대한 저서 『해방의 신비』(Mysterium Liberationis, 1990)에서 이 주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환경정상회담(1992년)과 {땅의 가치ㅗ생태학-정치-신비}라는 책의 출판(1994년)과 함께 비로소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해방신학에 결정적으로 생태학의 주제를, 그러나 제3세계의 시각에서 포함시켰다고 한다. 사회 생태학의 입장에 서 있는 L. 보프(Boff)는 다음의 네 가지 경향들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첫째, 마치 생태학이 오직 "절멸 위기에 처한 종(種)들"과 관련된 것처럼, 그렇게 멸종에 의해 위협된 종들을 보존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는 의미에서 보존주의(conservationism)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이다. 둘째, 마치 생태학이 자연환경, 식물, 물과 공기 등만을 포함하는 것처럼 여기는 그런 환경주의(environmentalism) 또한 충분치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구의 사탄들로 간주되는 인간들을 제외한 채 자연만을 선호하는 그런 반 인간주의적 경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런 경향은 부유한 북반구의 공통적 현상이다. 셋째, 인간의 거주지에 대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환경을 약탈하기 위한 기술발전에 대한 관심에서만 사회와 환경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정치적 환경주의(political environmentalism)를 경계해야 하는데,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사고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넷째, 우주적 수준에서만 인간행위들과 반응들로 전념하는 인간 생태학(human ecology)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물론 정신적 범주들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나, 인간은 일반적 법칙들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퇴락하는 사회 관계들 한복판에서 살고 있으며,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성향들이 사회적 본질을 지니기 때문에 사회정의를 구체화 할 수 있는 사회 생태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L. 보프는 인간들 상호간의 행동뿐만 아니라 인간과 환경 사이를 규정하는 사회-환경적 윤리(a social-environmental ethic)를 제시하면서 생태계 평형을 파괴하는 두 극단 즉, 자연 환경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 중 어느 한 극단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남미 코스타리카에 몇 년째 살고 있는 스웨덴 사회 생태학자 헤드스트룀(Ingemar Hedström)에 의하면, 지구 생태학적 문제(global ecological problem)에 관한 인식을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정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북반구의 산업화된 국가들에 의한 남반부 국가들의 착취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태학에 관한 남반부와 북반부의 논의들에 있어서 중심이슈는 자연 세계에 대한 보호를 위한 관심이 세계의 가난한 자들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 필요들을 충족시키는데 어떻게 관계하느냐 하는 문제로 압축되며 이러한 맥락에서 L.보프는 "지구가 울부짖고 있다. 가난한 자들도 울부짖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불의와 환경상의 불의의 희생자" 라고 단언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태학적 위기는 바로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지구화 시대의 불의한 지구경제의 한 단면을 보기로 하자. 1999년 3월 25일 미국 뉴햄프셔 대학 캠퍼스에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 대학 학생을 포함한 세 사람이 체포되었는데, 이들은 디즈니사가 개최한 인턴 사원 모집 설명회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행사장 안에서 미키마우스를 본 뜬 해골 가면을 쓰고 침묵시위를 벌이며 디즈니사를 비난하는 전단을 돌렸다고 한다. 문제의 장소는 표현의 자유가 가장 폭넓게 보장된다는 미국, 그것도 대학 캠퍼스에서였다. 이렇게 '거인' 디즈니사는 미국의 최대 기업감시 단체 가운데 하나인 스뛕샵 워치(Sweatshop Watch: 노동착취업소를 감시하는 운동단체)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디즈니사의 캐릭터 상품은 대부분 제3 세계에서 생산되는데, 1997년 베트남 공장에서 10대 소녀들은 일주일 동안 70시간을 일하고 4달러 남짓을 받았으며 아이티에서는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 150여명을 한꺼번에 해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1997년 한해 동안 디즈니사 회장 한 사람이 번 돈은 5억 7500만 달러였다. 새로운 제3의 천년기, 21세기 지구화 시대는 인류의 20% 만으로도 세계를 운영하는데 별 문제 없는, 따라서 나머지 80%는 노동력을 가지고 있어도 직업, 경제력, 사회적 지위와 복지가 박탈당한 채 적당한 오락과 먹을거리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티티테인먼트(titytainment)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소위 "20 대 80의 사회"로서 1%의 초 특권층과 80%의 거의 가진 것 없는 거대한 빈곤층으로 온 인류가 재편되고 있다. 영국의 피터 제이 테일러 교수의 "세계 헤게모니에 대한 반체제적 대응들"이라는 글은, 지구환경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무한 폭주하는 미국식 소비자본주의에 대항할 전지구적 반체제 운동으로서 환경운동의 가능성을 사회주의와의 결합 속에서 찾고 있다. 그에 의하면, 환경운동은 오염, 대양, 오존층 등의 공유지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초국가적이고 전지구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미국적 헤게모니가 영국의 산업혁명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생산혁명에 소비혁명을 보탰듯이 반체제 운동으로서 환경운동은 사회주의를 버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날로 심화하는 전지구적 차원의 물질적 불평등 문제"를 소화하지 못하는 한 환경운동은 반체제운동으로서 근본적 결함을 지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무한 투쟁과 경쟁을 강제하는 전지구적 자본의 공세에 맞서는 전지구적 차원의 민중운동ㅗ환경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예의 주시해야 한다.


독일의 저명한 지구환경에너지 전문가인 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체커에 의하면,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자본은 아주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고, 엄격한 환경기준을 피해 아시아로 옮겨가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이러한 자본이전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으로 인하여 아시아 국가들의 환경은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는 것과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이제 더 이상 환경을 파괴하면서 경제개발을 이루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닥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태계 위기는 발전 혹은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인간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것으로서, 특히 서구 자본주의 발전모델은 생태살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지구화 시대의 지구경제 체제는 온 세계를 더욱 더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에 의해 1985년에 처음 사용된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용어는 최근의 애용어이며 자본주의 사전에서 가장 오인되는 용어라고 한다. 어쨌든 지구화의 현 단계의 성격과 방식은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생태학적, 윤리적 문제들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생태학적 파괴와 경제적 불의" 혹은 "지구적 가난"은 "생태학적 지속가능성과 사회경제적 정의에 의해 특징화된 하나의 지구 공동체를 향한 투쟁"을 긴박하게 요청하고 있다.


Ⅲ. 생태여성신학의 통찰


1. 여성억압과 생태계 위기


1970년대에 등장한 두 가지 커다란 사회운동으로서 환경운동과 현대의 페미니즘 운동이 제시될 수 있다.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전환", "생태학적 전환", "생태중심주의"(ecocentrism)와 같은 용어들이 환경관련 문헌들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용어들은 종래의 인간중심의 사고 혹은 세계에 대한 인간중심의 접근에서부터 단 하나뿐인 지구라는 행성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들과 인간이외의 모든 생물체와 무생물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과 관련된 생태학적 관심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미국의 여성신학자 로즈마리 R.류터(Rosemary R. Ruether)는 페미니즘을 "공적 삶으로부터 주변화되게 하는 열등한 그룹으로 여성들을 규정하는 문화적인 그리고 사회-경제적 체계에 대한 비판"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1974년에 프랑수아즈 도본느 (Francoise d'Eaubonne)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지구라는 이 행성에서의 인간 생존을 보증하기 위한 생태학적 해결을 가져올 여성들의 잠재성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생태학과 페미니즘의 복합어인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이라는 용어로써 생태 여성학자들은 생태학과 페미니즘 분야의 탐구들을 결합하며, 어떻게 여성과 자연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문화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조들에 있어서 상호관련 되어 있는가를 탐구해 내었다. 에코페미니스트들 혹은 생태학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지위와 자연의 지위 사이의 상호관련을 분석하는 페미니스트들인데, 이 분석의 중심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1)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억압은 서로 관계되어 있다. 2)이 관계들은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억압을 이해하기 위해 밝혀져야 한다. 3)페미니스트 분석은 생태학적 통찰들을 포함해야 한다. 4)페미니스트 전망은 제안된 어느 생태학적 해결들이든지 그 해결들의 부분이어야 한다.


여성과 자연 (혹은 땅)과의 연관은 에코페미니스트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경제학자, 물리학자, 신학자, 고고학자들과 같은 폭넓은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서 논해진다. 뉴질랜드의 전 국회의원이었던 메릴린 워링(Mariliyn Waring)은 세계 여성들의 경제적 조건을 탐구했는데, 세계 경제 체제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즉 여성들과 지구를 불가시적이며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남성들의 자유한 사용을 위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또한 『여성: 최후의 식민지』(Women: The Last Colony)의 저자 마리아 미이스(Maria Mies)에 의하면, 여자들과 예속된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생산의 도구 혹은 물, 공기, 땅과 같은 자연 자원들처럼 취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민화 배후에 있는 경제적 논리는 출산이라는 생산수단으로서의 여자들과 그리고 땅이 자본에 의해 생산될 수 없는 것들이라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여자들과 땅에 대한 통제가 착취에 기초된 모든 체계의 기반이라고 한다. 영구적인 것은 이 생산수단들을 소유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것들과의 관계는 전용(appropriation)의 관계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편 케롤린 머천트(Carolyn Merchant)는 동일한 지배의 패턴을 서구 과학혁명의 결과로 본다. 머천트에 의하면, 문화, 역사, 언어에서 존속되어온 여성과 자연 사이의 결합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을 양육하는 어머니로서 간주했던 고대 사고에 의해서 여성과 자연이 연관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서구 과학혁명 이후에 양육하는 어머니로서보다는 야성적이며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자연(그리고 여성들)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이미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해로부터 자연과 여성에 대한 통제의 필요가 자라났다는 것이다. 류터는 신학분야에서 여성들과 자연의 이미지와 그 취급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여성신학자 류터는 가부장제와 가부장제의 초월적 하늘 신들(transcendent sky gods) 안에서 이원론의 형성을 파악하는데, 이원론은 남성을 불멸성과 그리고 남성 신의 형상으로 그 자신이 만든 남성 신과 결부시키는데 반하여 여성과 자연의 유한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저술들에서, 여자와 자연이라는 이슈는 1974년에 발표된 쉐리 B.오트너 (Sherry B. Ortner)의 "자연이 문화에 대해서처럼 여성은 남성에 대해서 그러한가 ?"(Is Female to Male as Nature Is to Culture?)라는 논문에 의해 표명된 용어들로써 자주 말해지지만 여성과 자연에 관한 오늘의 표명은 적어도 1940년대에로 소급해 간다는 것이다. 즉 1940년대에 시몬느 드 보봐르는 자연과 여성들에 대한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연관에 대한 (가부장제 하에 있는) 남성들의 태도들을 검토했을 때 이미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과 자연을 연관시키는 등식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은 여성과 자연의 연관을 끊고 여성을 문화에로 통합시킬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S.B.오트너,S.드 보봐르). 반면에, 여성과 자연의 연관을 강화하고 축하하는 사람들인 급진파 페미니스트들 있는가 하면(M.데일리,Y.킹), 또 어떤 사람들은 여성과 자연이라는 유비의 용어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여성과 자연을 관련시키는 추구 자체가 과연 타당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R.로취).


2. 자본주의 발전모델과 생태계 위기


여성의 지배와 자연의 지배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탐구했으나 이러한 관계에 대한 역사, 사회, 경제, 문화적 분석에 대한 연구가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하면서, 류터는 성차별주의의 기원 즉 가부장제의 뿌리를 해명해 내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특히 류터는 가부장제 문화와 종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대한 여성신학적 비판을 수행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원론적 세계관은 원시 어머니 신(原始母神) 혹은 땅의 정복과 더불어 시작된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성은 초월적 정신, 이성, 혹은 영혼에 해당하는 것으로, 반면에 여성은 땅 혹은 몸이라는 열등한 저차원의 원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이원론에 의해 몸의 소외, 여성의 소외, 자연 혹은 피조물의 소외를 초래했으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이러한 이원론이 피억압자들의 소외를 조성해 왔다는 것이다. 류터에 의하면 구약의 예언자 전통이 가부장적 문화를 반영하고 있으나 이러한 이원론을 넘어서 있으며, 이원론의 뿌리는 희랍적 헬레니즘에 근거해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 전통에 개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적 2, 3세기경에 등장한 묵시문학적 종말론이 기독교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이 종말론이 헬레니즘적 이원론의 영향을 받은 이래로 기독교 전통은 이원론적 전통을 반영해 왔다는 것이다. 류터는 서구 크리스챤 문화 유산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위해, 고대 근동의 히브리, 그리스, 초기 크리스챤 문화의 신화들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히브리 세계, 그리스 세계, 기독교의 역사 등을 추적해 나갔다. 특히 16세기 후반과 17세기에 발생한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 자연에 대한 서구 개념에 어떤 전환을 가져왔다는 사실, 또한 서구 사회에서 자연을 지배하기 위한 과학의 응용이 식민주의와 결합되면서 서구가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를 점령 식민지화 한 착취의 과정을 통해 축적한 부로써 기술혁명을 이룩한 과정이 바로 생태계 위기를 초래하게된 전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류터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서구의 과학기술 혁명이 얼마나 엄청난 불의와 착취에 기초한 따라서 서구를 살찌게 한 원천이 되었으며, 게다가 극소수의 엘리트 계층만을 먹여 살린 불의한 사회 경제 문화적 구조를 형성해 놓았는지에 대한 류터의 비판은 특히 미국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에 의하면, 지난 50여 년간의 동서 냉전 이데올로기 시기의 지배와 억압 구조 속에서 진행된 미ㅗ소 양 강대국의 군국주의의 폐해가 결정적으로 생태살해ㅗ집단살해적 세계를 구축했다는 사실, 또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의 탈냉전ㅗ탈이념의 시대를 맞아 미국이 생태학적으로 존속 가능한, 평화시기의 경제ㅗ정치 체제에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기보다는 미국 주도의 소위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표방하면서 전면적 헤게모니 강화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류터는 이런 맥락에서 생태계 위기들의 패턴을 인구, 식량, 에너지, 오염, 종의 멸종, 전쟁의 카테고리들 하에서 상론한다. 미국의 교회사가이며 여성신학자 R. 류터는 인구폭발과 식량문제가 상호 관련되어 있으며, 에너지 고갈, 오염 문제는 빈곤, 전쟁과 관련되어 있으며, 종의 멸종은 독극물의 남용, 인구폭발 문제와 상호관련 되어 생태계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류터는 냉전시대의 동서 이념 대결 구조가 오늘날 탈냉전ㅗ탈이념의 세계 속에서 부유한 북반부와 빈곤한 남반부라는 남북 구조로 변형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에 대한 북의 집단살해ㅗ생태살해적 불의 구조로 심화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오래 전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기우려 온 여성신학자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종래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에 의한 여성과 자연에 대한 억압의 그물망(the web of oppression)에 주목해 왔다. 셀리아 D. 콜린스(Shelia D. Collins)에 의하면,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계급착취, 그리고 생태학적 파괴는 가부장적 구조가 의거해 있는 네 개의 서로 연동되어 있는 것(interlocking)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류터의 용어로 말하자면 "서로 구조지움(interstructuring)"에 해당되는데, 이를 생태계 파괴의 주범을 둘러싸고 논해진 문제와 결부시켜 보자. 현재의 생태계 위기의 근본원인을 유대ㅗ크리스챤 전통들에 의해 자라난 바 자연에 대한 서구 문명의 태도 탓으로 돌린 글을 1967년 린 화이트 2세(Lynn White. Jr.)가 발표한 이래로, 이런 견해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약탈적 세계관의 뿌리로서 창세기1:28을 제시하면서 기독교를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린 화이트와 이에 동조하는 경향에 대하여 류터는 동의하지 않는다. 류터는 린 화이트의 견해가 에코페미니스트 문헌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고 하면서, 성서가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식의 비난은 너무 단순하다고 비판한다.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의 태도는 성서가 쓰여졌던 그 당시의 모든 다른 가부장적 사회들에 존재해 있었다는 점에서 류터는 기독교 집단이든, 어느 사회집단이든 모두 지배관계에 의해 생태계 파괴가 자행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오히려 류터는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서 산업주의와 식민주의의 시대인 현대 즉, 자본주의적 현대의 발전 모델을 지목하고 있다. 생태학적 위기는 이처럼 수많은 상호 연결된 위기들을 지시한다. 즉 공기, 물, 땅의 오염, 자연 자원의 고갈, 인구폭발, 세계 인구의 특히 제3 세계의 기근과 거대한 빈곤 등의 현상들은 현대 발전 모델에 있어서의 위기의 요소들인데, 그 발전 모델은 자원의 회복 혹은 인간들 사이의 정의를 증진시키는 일에 관심하지 않는 채 자연을 착취하는 모델로서 땅을 비롯한 자연과 다른 민족 그룹들을 착취하는 전 세계적 능력의 발전을 이룩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기치를 내건 기업 식민주의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쓰 E. 보울딩(Kenneth E. Boulding)이 자본주의 경제를 '카우보이 경제'(cowboy economy)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경제에 의해 초토화된 중남미의 생태파괴의 실태를 보자. 1955년 맥도널드 훼스트 후드 체인점의 탄생이 중남미의 거대한 생태학적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맥도널드 외식업체는 중남미로부터 값싼 쇠고기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남미의 쇠고기 수출업자들은 보다 값싼 소떼들을 키우기 위한 목초지 확보를 위해 삼림을 벌목하기 시작했다. 1960년부터 1980년 사이에 쇠고기 수출은 160% 증가했고 중남미의 그린벨트는 40만 평방 킬로미터에서 20만 평방 킬로미터로 감소했다. I. 헤드스트룀은 이것을 중남미의 '햄버거화'(hamburgerization)라고 부른다. 또한 아마존 지역은 유명한 다니엘 루드빅(Daniel Ludwig)과 폭스바겐 프로젝트에 의해 영향을 받았는데 자리 데 루드빅(Jari de Ludiwig)에서는 200만 에이커의 삼림이 벌목되었고 폭스바겐은 4만 6천 마리의 소떼를 키우기 위해 14만 4천 에이커를 벌목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패했고, 어느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했으며 삼림들만 완전히 유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환경오염의 80%는 거의 지구 북반부에 있는 산업화된 나라들의 책임이며 그 가운데서 미국 한 나라의 책임은 23%라고 한다. 이처럼 미국은 지구오염의 가장 큰 단일원천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인구는 세계의 4%에 지나지 않으나 에너지 소비점유율은 25.4%에 이르러 매년 지구 전체 사용 에너지의 1/4이 미국에 의해 연기로 날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Ⅳ. 지구화 생태정의 여성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서 인간의식의 영적, 도덕적 전환 혹은 새로운 지구적 양심이 요청된다는 점을 촉구하는 심층 생태학(deep ecology)의 통찰은 중요하다. 노르웨이 철학자 아르네 네쓰(Arne Naess)에 의해 고안된 '심층 생태학'이라는 말은 그가 '피상적 환경주의'(shallow environmentalism)의 임시방편적 접근과 대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심층 생태학은 인간과 자연의 파괴적 관계들에 대한 상징적, 심리학적, 윤리적 패턴들을 검토했다. 특히 기독교에 의해서 성화된 서구 문화를 이러한 파괴적 문화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하며, 새로운 보다 더 통전적 의식과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방법들을 탐구했다. 물론 류터는 서로에 대한 그리고 땅에 대한 치유된 관계가 새로운 의식, 새로운 상징문화와 영성을 요청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류터는 권력의 사회체제로부터 분리된 그런 사사화된 영혼 내적인 행위(privataized intrapsychic activity)의 새로운 형태들을 경계해야만 한다는 지적을 잊지 않는다. 즉 생태정의(eco-justice)의 작업과 영성의 작업은 상호관련된 것으로서 즉 회심과 변혁의 한 과정의 내적 그리고 외적인 양태들로서 보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땅에 대한 지배와 파괴의 관계들이 성차별, 계급차별, 인종차별과 서로 관련되어 있다면, 땅에 대한 치유된 관계는 단순히 기술적 장치들을 통해서 발생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인종과 국가들 사이의 그리고 사회 계급들로 계층화된 그룹들 사이의 정의로운 또 사랑하는 상호 관계를 성취하는 사회적 재구성을 요구하는데, 즉 마치 사회적 지배와 무관하게 발생한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땅의 지배에 관해서 말해서는 안되며, 생태정의에 관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정신적 범주들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나, 인간은 일반적 법칙들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퇴락하는 사회관계들 한 복판에서 살고 있으며,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성향들이 사회적 본질을 지니기 때문에 사회정의를 구체화할 수 있는 사회 생태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L. 보프의 주장은 류터의 견해와 동일선상에 있다. 미국의 기독교 윤리학자이며 여성신학자 베벌리 W.해리슨(Beverly W.Harrison)도 "우리가 신학적 공동체로서, 여성해방적 공동체로서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영성이 역사적인 구체성, 구체적인 몸의 현실과 분리된 그러한 영성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생태여성신학과 지구화 문제"라는 나의 주제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과 맥락과의 동일선상에 있다.


보프에 의하면 범세계적 자본주의 질서에 나타나는 심각한 반 생태학적 성격이 인간과 자연에 가한 폭력이며 이로 인한 생태계에 대한 무차별적 파괴가 오늘날 외채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외채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침략, 가난한 자들의 사회적 파멸과 생물권의 오염이라는 것이다. 외채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국들은 오래된 채무 이자의 지불을 위해 보다 더 높은 이율로 새로운 차관을 들여 올 수밖에 없으며, 이로써 지배와 종속의 악순환, 신식민주의가 다시금 시작된다는 점에서 외채는 빈곤한 남반부에 대한 북반부의 통제 수단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세계의 노동력에 있어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수많은 세계의 가난한 자들을 죽음에로 내맡기는 효과적 집단학살로서의 "야만적 자본주의", "패권적 자본주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을 신학자들은 수행해야 한다. R. 류터에 의하면, 제3 세계 경제들에 대한 세계 자본주의 정책은 제3 세계 국가들의 국내경제 혹은 사회발전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최대의 이윤을 짜내기 위한 추구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조정 정책을 통하여,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제3 세계 부채국들에게 그들의 교육, 보건, 사회 서비스 부문들에 대한 투자를 삭감하도록 차관협상을 의무지웠다고 한다. 이미 1980년에 행한 한 연설에서 쿠바의 F. 카스트로는 제3 세계들에 있어서의 "혁명의 산출자"로서 IMF, 거대한 외채, 높은 이자율, 저개발, 빈곤, 선진 산업국들의 보호주의, 착취들을 지목한 바 있다. A. 밀러는 국제 경제체제의 7가지 양상들로서 국제무역 체제, 가난한 나라들에서의 사적 투자 자본, 외국 원조의 형태에 있어서의 공공 기금들, 외채 위기, 보다 가난한 나라들에서부터 보다 부유한 나라들에로의 숙련된 사람들의 유출, 지구적 세계에서의 방해적인 미국 정책들을 제시한다. 베벌리 W. 해리슨에 의하면 기업세력의 초국적 통합이 미국 국내경제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 하면서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며, 이러한 초국적 기업에 의한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로 미국이 흡수되기 때문에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다른 나라들의 국내경제를 침몰시키는 바 그런 다른 나라들에 있어서의 반동적 정치 세력들을 후원하려는 그런 미국의 잘못된 외교정책을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지구화 시대의 지구 경제는 바로 국가라는 지정학적 울타리뿐만 아니라 지구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넘어섰다는 의미에서 초국적 기업들의 위력을 극명하게 말해준다. 이처럼 각 나라들의 "국내경제는 국제시장의 노예가 되"는 양상으로 지구화는 전개되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기퇴직, 명예퇴직 현상들 역시 지구화라는 자본주의 그물 망에 예외 없이 포섭된 국내 기업들의 생존전략들의 하나로서 진행되고 있는 바 기업들의 재구조화와 축소경영 등에 의한 근본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나타나고 있다.


UN 통계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세계 노동시간의 2/3를 감당하며, 세계의 부 1/10을 세계 토지의 1/100을 소유하며, 세계 문맹인의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굶주리는 사람들의 3/4 이상이 아이들이 딸린 여성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빈곤의 여성화"(The Feminization of Poverty) 현상은 지구화 시대에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인도의 여성신학자이며 WCC여성국 책임자인 아루나 나나다슨(Aruna Gnanadason)은 인도와 제3세계 여성들에게 있어서 생태와 환경, 환경자원의 보호란 생계와 생존의 문제임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논문 제목에 '경제'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포함시킨 글 "여성, 경제 그리고 생태학"을 썼다. 이 글에 의하면, 여자들과 소녀들은 환경 훼손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데, 이는 노동에 있어서의 성 역할 구분이 여자들로 하여금 땅의 자원들과 연관된 가장 격렬한 종류의 일, 즉 그들은 음식을 모으고 물을 저장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물을 길어와야 하는 그런 일들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종 남자들이 낭비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홀로 그런 일을 감당해야 하며 자원이 고갈되면 여자들은 음식과 물, 그리고 호구지책을 구하러 더 먼 곳으로도 가야한다. 코스타리카의 여성신학자이며 제3세계 신학자 협의회(EATWOT) 여성위원회 위원장인 엘자 타메즈(Elsa Tamez)는 1997년 8월 헝가리, 드브래첸에서 "불의의 사슬을 끊고"라는 주제로 열린 제23회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총회에서 여성의 젖, 혹은 우유라는 물질을 화두로 삼아 현대의 세계 경제체제인 자유경제체제, 지구화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 비판하는 강연을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억압과 생태계 파괴의 상호관련이 얼마나 사회경제적 불의와 결부되어 있는가를 생태여성신학은 어느 신학작업보다 더 철저하게 문제삼고 있다. 이 논문에서 나는 이러한 생태여성신학의 문제제기들을 오늘의 자본주의 지구화 문제와 결부시켜서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생태여성신학을 논하는 여성신학자들이 대체로 "생태 정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 더 나아가서 "생태 정의"가 오늘의 지구화의 문제상황과 어떻게 구체적으로 관련되어 있는가를 더 철저하게 분석해 내어야 하며 동시에 오늘의 세계에서의 지배와 억압의 불의한 구도를 극복해 나가는 구체적인 이론과 실천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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