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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 진지하게 듣기

박동현 교수............... 조회 수 1938 추천 수 0 2010.02.04 12:55:49
.........
유신 시대 반정부 운동에 가담했다가 정보 기관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아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선배가 한 사람 있습니다.
이 분이 가끔 제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와 아울러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해 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꽤 오래 늘어 놓으십니다.
어떤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는 부탁까지 합니다.
이 분을 전화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 그지 없습니다.
그 분의 회복을 비는 동시에
이처럼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정치 현실이
다시는 이 땅에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라 안팎에서 개인이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에서 겪는 어려운 일을
자세히 말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제가 도울 길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랫만에 만났는데
몇 시간이고 정신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외국의 어느 도시에 들렀을 때
거기서 한인교회를 맡아 섬기시던 목사님 내외분이
저를 붙들고 사흘 낮밤을 그동안 겪으신 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특히 나이 드신 분들 가운데 많습니다.
심지어는 말도 잘 알아듣는 외국인을 붙들고 온갖 이야기를 다 하시던
독일 할머니 몇 분도 생각납니다.
얼마 전에 나라 안의 은퇴 교역자들이 사시는 어느 기관을 방문했을 때
우리 학생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아, 이 세상에 말이 차고 넘치는데도,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고,
재미있고 쓸모있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적지 않는데도,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 줄 상대를 찾지 못해서
답답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어찌 이다지도 많은지요!
달리 특별한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런 분들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에게는 엄청난 기쁨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런 분들의 말을
그저 귓전으로 흘려듣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를 피하려고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때로는 그 분들의 말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씀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봄직하지 않습니까?

<박동현 교수/장신대학교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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