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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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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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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 권 철학적 해명 - 19. 그리스도에 대한 착각
그러나 나는 그와 다른 생각을 했는데
그리스도를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특히 그것은 그리스도가 영원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를 가볍게 여겨야만 한다는 것의 모범으로써
기이하게도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 우리를 위하는 하나님의 배려로
위대한 스승의 권위를 받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다만 성경이 그에 대해 보고한 바에 따라
그가 먹고 마시고 주무시고 걸어다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셨다는 것과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
말씀과 육신의 결합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만 알 뿐이었습니다.
당신 말씀의 불변성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내능력의 척도대로 이를 알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로는 육신의 지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나
간혹 움직이지 못하는 때가 있고
심성의 혼란이 일다가도 다시 없어지는 때가 있고
말씀 속의 지혜의 생각을 알려 주는 때가 있다가는
다시 침묵속으로 잠기는 등 변화 무쌍한 하나의 영혼,
하나의 정신이 본래적인 표시입니다.
여기서 그에 대해 기록된 것이 거짓된 가상이라면
모든 거짓말과 같이 의심되어야 할 것이고
이 책들 속에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구원에 대한 지주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쓰여있는 사실은 모두 진실이므로
나는 그리스도 속에서 완전한 인간을 보았습니다.
단순한 인간의 육체만도 아니고 또는 육체는 있어도 정신이 없는
감각적 영혼도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본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간들과 다른 점은 진리의 구현자로써가 아니라
어떤 탁월한 인간성과 지혜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리피우스는 카토릭교도들의 신앙에 의하면
그리스도 속에는 하나님과 육이 있고
인간의 정신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영혼이라든지 인간 정신 같은 것은
결코 그리스도에게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전설이 말하는 모든 것은 오직 정령적,
이성적 피조물에 입각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는 기독교신앙에 별로 친근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폴리나리우스(310 ~ 390년경, 소아시아 라오디게아주교.
그리스 고전에 정통했고 많은 성서주해를 썼다)의 이단자들의
거짓 교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기꺼이 카토릭 신앙에 찬동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명제를 이해하고서
카토릭적 진리는 포티누스(344년경 실미윰의 주교가 되었으며
풍부한 학식과 웅변으로 유명하다)의 오류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지난 뒤에야 시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단적 교설을 배척함으로써 당신의 교회의 판단과
건전하고 올바른 교리가 무엇인지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약한 자들로부터 구별되어 옳다고 인정을 받는 자가 되려면
편당이(고린도전서 11장 19절)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다른 생각을 했는데
그리스도를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특히 그것은 그리스도가 영원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를 가볍게 여겨야만 한다는 것의 모범으로써
기이하게도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 우리를 위하는 하나님의 배려로
위대한 스승의 권위를 받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다만 성경이 그에 대해 보고한 바에 따라
그가 먹고 마시고 주무시고 걸어다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셨다는 것과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
말씀과 육신의 결합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만 알 뿐이었습니다.
당신 말씀의 불변성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내능력의 척도대로 이를 알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로는 육신의 지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나
간혹 움직이지 못하는 때가 있고
심성의 혼란이 일다가도 다시 없어지는 때가 있고
말씀 속의 지혜의 생각을 알려 주는 때가 있다가는
다시 침묵속으로 잠기는 등 변화 무쌍한 하나의 영혼,
하나의 정신이 본래적인 표시입니다.
여기서 그에 대해 기록된 것이 거짓된 가상이라면
모든 거짓말과 같이 의심되어야 할 것이고
이 책들 속에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구원에 대한 지주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쓰여있는 사실은 모두 진실이므로
나는 그리스도 속에서 완전한 인간을 보았습니다.
단순한 인간의 육체만도 아니고 또는 육체는 있어도 정신이 없는
감각적 영혼도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본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간들과 다른 점은 진리의 구현자로써가 아니라
어떤 탁월한 인간성과 지혜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리피우스는 카토릭교도들의 신앙에 의하면
그리스도 속에는 하나님과 육이 있고
인간의 정신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영혼이라든지 인간 정신 같은 것은
결코 그리스도에게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전설이 말하는 모든 것은 오직 정령적,
이성적 피조물에 입각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는 기독교신앙에 별로 친근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폴리나리우스(310 ~ 390년경, 소아시아 라오디게아주교.
그리스 고전에 정통했고 많은 성서주해를 썼다)의 이단자들의
거짓 교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기꺼이 카토릭 신앙에 찬동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명제를 이해하고서
카토릭적 진리는 포티누스(344년경 실미윰의 주교가 되었으며
풍부한 학식과 웅변으로 유명하다)의 오류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지난 뒤에야 시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단적 교설을 배척함으로써 당신의 교회의 판단과
건전하고 올바른 교리가 무엇인지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약한 자들로부터 구별되어 옳다고 인정을 받는 자가 되려면
편당이(고린도전서 11장 19절)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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