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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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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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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 권 철학적 해명 - 20. 플라톤파에 의한 득실
그 무렵 나는 플라톤파의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비물체적인 진리를 탐구하라는 가르침을 받아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것을 피조물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고
나는 또한 나의 어둠을 뚫고서 보는데 까지도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어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실해졌습니다.
즉 당신은 무한히 존재하고 계시지만 유한,
또는 무한으로 생각되던 공간을 넘어 계시지 않는다는 것과
당신만이 홀로 현실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항상 변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서 나온 그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로써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확신했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같은 확신을 갖기는 했지만
전적인 즐거움으로 당신의 것이 되기에는 너무 약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해 제법 아는 체하며 지껄였지만
우리 구주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에게 가는 길을 발견하는데는
파멸할 지경이었습니다.
나는 온 몸에 벌을 받으면서도
지자(知者)라 자처하며 자신의 학식을 자랑했습니다.
겸손의 바탕이신 예수 그리스도위에 세울 사랑이 어디 있었습니까?
언제 저 책들이 그러한 사랑을 가르쳤단 말입니까?
당신의 성경을 연구하기 이전에 나로 하여금
저 책들을 읽게 하신 것은 당신의 뜻이었습니다.
내가 그 책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무엇인가를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요
내가 그 뒤 당신의 말씀에서 평안을 찾고 당신의 손이 내 상처를 치료하셨을 때
나의 자기 만족과 겸손한 고백 사이에는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즉 그것은 인생 항로가 어느 방향으로 정해져야 할는지는 알면서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그 길 자체 사이에는 차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길은 영생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바라 볼 뿐만 아니라
가서 살아야 하는 지복의 나라에까지도 인도하는 길입니다.
내가 만일 당신의 성경에 익숙해져 있어 거기에 위임함으로써
당신의 단맛을 보고 나서 그 후에야 플라톤파의 책을 읽게 되었더라면
아마 그책들은 나에게서 하나님 경배의 확고한 근거를 빼앗아 버렸거나
혹은 내가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않고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성격이었더라도
그러한 것은 우리가 다른 책을 읽어 보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는 지식이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무렵 나는 플라톤파의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비물체적인 진리를 탐구하라는 가르침을 받아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것을 피조물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고
나는 또한 나의 어둠을 뚫고서 보는데 까지도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어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실해졌습니다.
즉 당신은 무한히 존재하고 계시지만 유한,
또는 무한으로 생각되던 공간을 넘어 계시지 않는다는 것과
당신만이 홀로 현실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항상 변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서 나온 그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로써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확신했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같은 확신을 갖기는 했지만
전적인 즐거움으로 당신의 것이 되기에는 너무 약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해 제법 아는 체하며 지껄였지만
우리 구주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에게 가는 길을 발견하는데는
파멸할 지경이었습니다.
나는 온 몸에 벌을 받으면서도
지자(知者)라 자처하며 자신의 학식을 자랑했습니다.
겸손의 바탕이신 예수 그리스도위에 세울 사랑이 어디 있었습니까?
언제 저 책들이 그러한 사랑을 가르쳤단 말입니까?
당신의 성경을 연구하기 이전에 나로 하여금
저 책들을 읽게 하신 것은 당신의 뜻이었습니다.
내가 그 책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무엇인가를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요
내가 그 뒤 당신의 말씀에서 평안을 찾고 당신의 손이 내 상처를 치료하셨을 때
나의 자기 만족과 겸손한 고백 사이에는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즉 그것은 인생 항로가 어느 방향으로 정해져야 할는지는 알면서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그 길 자체 사이에는 차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길은 영생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바라 볼 뿐만 아니라
가서 살아야 하는 지복의 나라에까지도 인도하는 길입니다.
내가 만일 당신의 성경에 익숙해져 있어 거기에 위임함으로써
당신의 단맛을 보고 나서 그 후에야 플라톤파의 책을 읽게 되었더라면
아마 그책들은 나에게서 하나님 경배의 확고한 근거를 빼앗아 버렸거나
혹은 내가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않고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성격이었더라도
그러한 것은 우리가 다른 책을 읽어 보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는 지식이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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