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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으로 고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예레애가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737 추천 수 0 2010.02.06 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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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애3:19-33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요즈음 명성왕후를 재미있게 보시는 분 있을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삼각 관계 사각관계의 복잡하고 불륜적인 연속극을 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사극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 봅니다. 가끔 보아 이야기 줄거리가 잘 정리되지는 않지만 구한말 세계 정치의 변혁기에 개화파와 수구파가 나라의 위한다는 명목하에 반목과 질시를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 나라가 힘이 없어 두 나라로부터 수치를 당하고 대원군은 청나라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수업시간에 빠져 지금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사란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봅니다. 구한말을 통과하면서 우리 나라는 빠르게 개화가 되고 모든 제도들이 바뀌어 버립니다. 일대 변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나라는 분단이 되어 있었는데 두 개의 강대국이 등장합니다. 한 나라는 애굽이라는 나라입니다. 기존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신흥 강대국으로 바벨론이 등장하였습니다. 이 두 나라 사이에 끼여 있는 이스라엘은 두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기존 애굽의 힘을 의지하자는 사람들과 바벨론의 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왕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무능했습니다. 특히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백성은 잘 돌보지 않고 자신의 배만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 때 활동한 선지자가 예레미야입니다. 선지자는 왕의 권력을 견제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왕이 통치하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선지자는 에녹입니다. 유다서에 보면 에녹이 선지자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선지자가 배출되고 활동하게 되는 것은 사무엘 때입니다. 사무엘 때 왕이 세워지니까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선지자도 세워줍니다. 왕의 무한 권력을 견제하면서 왕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그런 역할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왕이나 권력자들이 바치는 재물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어도 매 3년 마다 예루살렘에 와서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일년에 3번씩 예루살렘에 올라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걸어다닐 때인데 100킬로 미터 넘는 곳에서 온다는 것은 한달 넘게 걸릴 수도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주로 제사를 잘 드리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사람이고 예루살렘에는 주로 부자, 권력가들이 많이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재물을 바칠 때 소와 양같은 것을 바쳤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의 재물을 먹고 사는 제사장들은 쉽게 그들의 잘못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범죄할 때 나단 선지자는 과감하게 그 죄를 지적합니다. 선지자가 왕의 죄를 지적하려면 왕의 녹을 받고 살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가난했고 청념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중에는 사이비들이 있었습니다. 권력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부를 누리고 어용선지자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레미야 때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몰락한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0여세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는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나라 정치를 잘 한 요시야 왕 13년부터 시작하여 시드기야왕 11년까지 40년 동안 선지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석달간 왕으로 있다 물러나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유다의 마지막 비극의 왕 시드기야 5대에 걸쳐 선지자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망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그 당시 신학은 시온 신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예루살렘은 결코 망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멸시와 박해를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를 매국노로 생각했습니다. "렘 20: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왕이 싫어합니다. 말씀을 불태워 버립니다. "렘 36:23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항복을 권유하자 결국(렘 27:12) 결국 예레미야는 옥에 가둠을 당하였습니다(렘37:15). 거짓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방인 에벳멜렉의 도움을 감옥에서 나와 오지병을 깨며 미친 사람처럼 회개와 멸망을 외치지만 왕도, 제사장도, 백성도 그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채포되어 구타당하고 감옥에 갖히게 됩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와 스마야는 계속해서 평강을 외칩니다. 성경은 거짓 선지자 분별법을 일찍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신 18: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그러나 이미 유다 사람들의 영적 안목은 어두워졌습니다. 그는 눈물을 흐리며 미친 사람처럼 멍에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참으로 고난을 당한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40년이란 긴긴 세월입니다. 오늘 19절에 그의 어려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고초와 고난 쑥과 담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인생, 험한 인생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선지자들의 삶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교훈하고 있는 내용을 종종 보게됩니다. 호세아를 보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교훈하기 위해 창기를 데려다 결혼하게 하고 결국 아이를 낳고 도망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여기 나오는 예레미야도 자신의 삶의 고난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교훈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당한 고난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십시오. 이것은 그의 고난이고 자신이 속한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이기도 합니다.
그의 고난을 살펴 보십시오. (1)육신적 고난에 처합니다. ①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시되(2) ②잠시가 아니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오랫동안 흑암에 거하게 하시고(6) ③흑암 속에 가만히 두신 것만 아니라 종일토록 자주 치시고(3) ④화살로 허리를 맞추시고(12,13) ⑤조약돌로 이를 껏으시니(16) ⑥그의 살과 가죽이 쇠하며 뼈가 꺾였다(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육신적 고난에 처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2) 쓰디쓴 고난으로 싸여 빠져 날 길이 없습니다. ①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시고(15), ②담즙과 수고로 쌓아 그를 에우시되(5), ③그를 둘러 싸서 나가지 못하게 사슬을 무겁게 하시고(7),④쌓되 다듬은 돌로 쌓기 때문에 무너뜨릴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9). 절망적 상황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지했던 하나님 마저도 (3)기도의 응답마저 하지 않고 도리어 맹수같이 대하십니다. ① 기도를 물리칩니다(8), ② 도리어 하나님은 그에게 곰과 사자로 대해 주십니다(10,11). (4)백성들은 그를 조롱을 합니다(14). (5) 평강과 복을 잊어 버립니다(17). (6) 절망에 빠집니다(18-20).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새힘을 얻고 소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자포자기 하고 절망하며 쓰러져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몇가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고난의 현장을 기억하며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19-24)
1) 고초와 재난을 내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기도합니다. 자신이 고초와 재난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을 자신이 붙들고 고민하며 좌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께 의탁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 37:5)"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인생의 고초와 재난, 쑥과 담즙을 주님께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자꾸 내가 그것을 기억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맡긴다는 것은 내가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길 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면 절망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면 벗어날 길이 없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뚫려 있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을 품게 되는 근거를 바로 밑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2절을 읽어 보십시오.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입니다. 자비은 헤세드로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주시는 무한하신 사랑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를 보고 사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계약에 의한 사랑입니다. 그 어떤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끈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이나 적인이나 위험이나 칼 그 어떤 것도 십자가의 피값으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맺은 계약 때문입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아버지는 끝없이 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태에서 조성하여 부른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우리를 아시고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긍휼은 끝이 없습니다. 결코 우리는 진멸되지 아니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인간처럼 변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이 지속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꾸 상황을 보고 실망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금요 기도회 때 이것을 생각하니 찬양을 부르며 눈물이 나왔습니다.(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79장)
3)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2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다 없어져도 하나님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우리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건강이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땅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 한 분으로 무인도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이란 부모 혹은 근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토지 등의 재산을 말합니다. 기업은 한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자신의 소유한 최고의 가치요 소망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만으로 예레미야처럼 우리는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고난의 현장에서 일시적으로 징계를 당하였다고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25-26).
1) 징계를 당하면 원망하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레미야가 그 엄청난 고난의 현장에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노하신 매로 인하여 징계를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싫어합니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의 종류에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1) 연단으로서의 고난입니다. 학생이 공부하고 군인이 훈련하는 것과 같은 고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과 같은 인물이 당한 고난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노예로 팔려가기고 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그를 국무총리가 되게 하기 위해 훈련시킨 것입니다.
(2) 자발적으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의를 위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피하면 얼마든지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독립운동 안하면 감옥에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좁은 길을 택하는 고난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자굴 속에 들어가기도 했고 풀무불 속의 시련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 전하다 죽는 스데반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3)징계로서의 고난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당하게 되는 고난입니다. 날마다 술을 먹다 간경화에 걸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간음했다가 결국 아들이 죽습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징계를 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되는 것같습니다. 달꼼합니다. 아름답습니다. 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길지 못합니다. 먼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양심에 조용히 충고하십니다.(요14:26) 그래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채찍을 드십니다. 그 책찍의 방법의 다양합니다. 때로는 육신의 질병을 줍니다. 사업의 실패 줍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①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 12:8)"
②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6).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잠 3:12)"
③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히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히 12:10)"
2) 그러므로 신앙인은 징계로 인한 고난이 있을 때 회개하며 하나님의 베풀어 주시는 구원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합니다(26). 징계를 받을 때는 잘못을 빨리 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가던 길을 돌아와야 합니다. 끝까지 고집하면 결국 망합니다. 죽음밖에 없습니다. 험난한 길이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돌이켰는데도 바로 회복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회복 될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인내하며 겸손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참 소망은 인내의 기다림이 동반하는 것입니다. 2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근신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3)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구하는 영혼에게 선을 베풀어 주십니다(25).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은혜를 준비하셨을 것을 믿고 그 은혜를 갈망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선을 베풀어 주십니다. 기다리는 것은 바로 구원을 베풀어 줄 때까지 선을 베풀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기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을 이룰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3. 고난의 현장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를 고생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님을 깨닫고 이제 고난을 감수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27-33).
3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여 고난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으로 밖에 교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밖에 교훈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해서 않듣기 때문입니다. 더 비참한 길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옥의 형벌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비참한 인생살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자들을 철저히 징계하셔도 그들을 일시적으로 고통스럽게 하신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그들을 향한 품고 계신 하나님의 선하신 마음은 절대 불변하십니다. 징계를 통해 더욱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징계는 택한 백성을 향한 영적 각성을 위한 일시적인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1) 주님께서 일시적으로 멍에를 메우게 했다는 사실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27-28, 30).
젊었을 때 멍에라는 말은 고난은 그것이 최종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 훈련으로 다가오는 고난을 좋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징계로 다가오는 고난의 과정을 불평과 원망속에서 보낼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훈련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주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성장의 법칙이요, 우리의 인격은 이 세계의 폭풍우와 긴장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서양 격언에 "냇물에서 잔잔한 돌들을 치워버린다면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시성 단테는 사랑하는 애인 베아뜨리체와 사랑의 파탄이 생기지 않았다면 저 유명한 단테의 "신곡"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짜르트는 가난과 굶주림과 죽음의 그림자가 위협하는 아래서 불멸의 작품 "진흥곡"이 나왔으며, 헬렌켈러의 눈, 귀, 입,삼중고의 신체의 불구가 아니였다면 새 교육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31세에 죽기까지 피아노한대 없이 가난한 사람이었던 슈베르트였지만 '아베마리아'와 같은 유명한 곡을 남겼습니다. 눈을 잃은 후에 실락원이라는 대작을 쓴 밀턴, 귀머거리가 된 뒤에 9번 교향곡을 쓴 베토벤, 증기기관의 발명가로서 불구였던 위트, 현대의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이며 장애인인 스티븐 호킹 등은 모두 고난을 통하여 대성하였던 인물들입니다. 미국의 시인 라이스 여사는 '고난이야말로 변장된 축복'이러고 노래하였습니다. 고난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도록, 의지하도록 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인생은 고난을 통해서 영글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은 삶을 힘있게 해줍니다. 인생의 맛을 더해 줍니다.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보십시오. 지금까지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외양간에서 태어난 사람있습니까? 태어나자마자 잔인한 헤롯왕의 칼날을 피하여 피난생활을 하였습니다. 시골 나사렛사람으로서 가난한 목수의 일을 하였습니다. 머리둘 곳도 없는 무주택자였습니다. 결혼 한번 못한 노총각으로 33세에 그 무서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도 자기 제자에 의해 30냥에 팔렸습니다.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는 그를 배신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시편 126 : 5)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쨍하고 해뜰날이 돌아 오는 것입니다. 고난은 때때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암은 아픔이 있다면 암으로 죽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에 다가올 때까지 아픔이 없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아픔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느 것입니다.(30) 수욕은 비난 위협을 의미합니다. 모든 비난을 감수하라는 말입니다. 바벨론의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2)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을 때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29).
티끌은 진흙이나 먼지를 말합니다. 입을 티끌에 댄다는 말은 티끌이 입에 닿을 정도로 하나님께 머리를 숙여 몸과 마음을 모두 완전하게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마치 벙어리와 같이 입을 다물고 자신에게 내려진 재앙에 대하여 항의하거나 반박하지 않도록 자신을 억제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칼빈) 순종할 때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성숙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받을 때 순종해야 합니다. 그 때 고통은 열매를 맺게 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인물을 보십시오. 모세, 아브라함, 다윗, 욥, 요셉, 바울 이들이 이 고난의 간을 건너면서 배운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순종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였던 스탠퍼드는 매우 부자였습니다.대부분 돈많은 사람이 그렇듯 신앙인으로 바람직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홉살된 아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자 이탈리아로 데려갔습니다.그러나 아들은 그곳에서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그는 좌절과 실망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나의 꿈은 재로 변했다.그래서 나는 캘리포니아의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로 만들기로 했다』그는 스탠퍼드대학을 설립한 후 2천 2백만달러를 기부금으로 바쳤습니다.시련을 슬기롭게 승화시킨 그의 노력이 오늘의 명문 스탠 퍼드대학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습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잠깐 근심하게 하나 하나님의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징계를 하는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죄를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한 현실에만 집착하지 말고 약속하신 미래의 회복을 소망하고 현재의 고난을 인내해야 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인생이 고생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이 본심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훈련시키고 결국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합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고난의 강을 건널 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벧전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4)
피할 길을 주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10)"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예레미야애가3:19-33/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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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애가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애3:19-33  김필곤 목사  2010-02-06 3737
2862 고린도후 믿음직스러운 자(청지기 같은) 고후8:16-24  최장환 목사  2010-02-06 1729
2861 사도행전 좋은 두려움과 나쁜 두려움 행23:17-35  이한규 목사  2010-02-04 2973
2860 사도행전 칭찬과 격려의 힘 행23:11-16  이한규 목사  2010-02-04 3831
2859 사도행전 담대함의 3대 원천 행23:1-10  이한규 목사  2010-02-04 2657
2858 사무엘상 사랑의 3대 정의 삼상23:13-17  이한규 목사  2010-02-04 2534
2857 사도행전 사명을 따르는 삶의 축복 행22:22-30  이한규 목사  2010-02-04 2909
2856 사도행전 신앙생활의 36계 행22:1-21  이한규 목사  2010-02-04 2426
2855 사도행전 축복으로 가는 비포장도로 행21:27-40  이한규 목사  2010-02-04 2750
2854 사도행전 리더십의 원천 행21:15-26  이한규 목사  2010-02-04 2626
2853 시편 축복의 4요소 시37:22-29  이한규 목사  2010-02-04 2531
2852 창세기 아브라함의 죽음 창25:1-18  이정원 목사  2010-02-03 2902
2851 창세기 결혼과 하나님의 뜻 창24:50-67  이정원 목사  2010-02-03 3067
2850 창세기 결단과 적용 창24:28-49  이정원 목사  2010-02-03 2049
2849 창세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 창24:10-27  이정원 목사  2010-02-03 4308
2848 창세기 이삭의 결혼 창24:1-9  이정원 목사  2010-02-03 3193
2847 창세기 사라의 매장지 창23:10-20  이정원 목사  2010-02-03 2053
2846 요한복음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20:24-29  이정원 목사  2010-02-03 2362
2845 누가복음 너희를 위하여 울라 눅23:26-31  이정원 목사  2010-02-03 2661
2844 창세기 롯을 보낸 후 창13:10-15  강종수 목사  2010-02-01 2221
2843 창세기 사라의 죽음 창23:1-9  이정원 목사  2010-01-31 3335
2842 창세기 영광과 축복 창22:15-24  이정원 목사  2010-01-31 1651
2841 창세기 여호와 이레 창22:9-14  이정원 목사  2010-01-31 3278
2840 창세기 순종 창22:3-8  이정원 목사  2010-01-31 2290
2839 창세기 시험 창22:1-3  이정원 목사  2010-01-31 1764
2838 창세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창21:22-34  이정원 목사  2010-01-31 2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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