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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누가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964 추천 수 0 2010.02.08 21: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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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6:19~31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 5. 17. 주일 4부 설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천국과 지옥”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어느 날 설교를 하면서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단 5초만 지옥을 보여줄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존 웨슬리도 가장 효과적인 설교는 지옥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 세상에서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처사를 볼 때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동물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천국과 지옥이란 개념은 동물에게는 없습니다. 인간도 불신앙에 있는 분들이 종종 천국과 지옥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심지어 불신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그의 마음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후의 세계에만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 속에 이미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 지옥이 어디 있느냐? 죽어서 갈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이미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천국도 체험하고 지옥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체험하는 천국과 지옥이 미래에 있을 천국과 지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론>
1. 마음속에 체험하는 천국과 지옥
육체적인 쾌락과 욕망에 끌려 살며 거짓과 미움과 분노와 불안, 공포, 낙심, 좌절, 절망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이며 사는 삶은 이미 그 마음에 지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불안과 공포와 초조와 좌절과 절망과 미움과 분노에 꽉 들어 쌓여서 술로 세월을 보내고 폭력으로 세월을 보내는 그 사람의 마음에 지옥이 안 들어 있고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지옥 같은 마음의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마음의 지옥을 체험한 사람이 많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보면 자기 동포 3천만에서 5천만명을 죽이고 독재를 행한 독일의 히틀러,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등 사악한 권력을 행한 자는 이미 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지만 살아있을 동안에도 그들은 지옥 속에 살았었습니다. 사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동정이란 한 방울도 없었습니다. 무자비하게 자기 동족 3천만에서 5천만명을 죽였으니 얼마나 무지무지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마음에 평안을 가질 도리가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 같은 자기 생명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할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고 고통을 줄때 자기 마음에 평안이 있을 턱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히틀러도 평안하게 죽지 못했습니다. 스탈린도 눈을 뜨고 미친 듯이 괴성을 부르고 몸부림치다가 죽었습니다. 고통을 당하다가 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히브리서 9장 27절처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든지 반드시 이 세상에 산 그대로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심판을 어떻게 받을 것이냐. 이미 내 마음속에 내 심령이 나를 심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과 불안과 처절한 고통이 있으면 지옥이 벌써 내 마음에 있고 지옥의 심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제작자로 20대에 세계적인 억만장자가 된 미국의 하워드 휴즈는 말년에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머리도 깍지 않고 손톱도 매 손톱같이 길어지고 병균이 있을까 싶어서 사람들과 만나지 아니하고 음식도 닭 스프만 먹다가 영양실조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고 난 다음에 누구 한 사람 와서 울어줄 사람도 없고 위로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억만장자였지만 그 마음은 생지옥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서 무엇 합니까? 벌써 살아있을 동안에 그는 지옥을 체험한 것입니다. 미국의 석유 왕 폴 게이트는 역시 엄청난 부자로, 말년에 그가 영국에 있을 때 한번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폴 게이트씨 당신의 인생은 행복했습니까?” 그러자 그는 “행복이 어디 있느냐?”고 버럭 고함을 치고 말았습니다. 세계적인 부자였지만 그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가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쾌락과 부귀영화와 공명으로 인생의 자랑을 삼고 그것이 인생의 참 가치인 줄 알고 그 안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최후는 이처럼 외롭고 쓸쓸하며 처참합니다. 이들의 삶은 재물과 명예와 영화로움으로 겉으로는 화려한 듯 하지만 마음속에는 지옥을 경험하고 산 것입니다. 벌써 지옥에 내려가기 전에 마음속에 지옥으로 꽉 들어찬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과 욕망으로 꽉 들어찬 그 마음에는 지옥불이 활활 타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은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 평강, 희락, 진실, 거룩함을 갖고 살며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감사하며, 교회에 나가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갖고 살면 이미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옛날에 예수를 모르고 세상에 살다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맡기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마음에 얼마나 놀라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이 강물같이 넘치지 않습니까? 벌써 마음속에 천국이 들어와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예수님이 마음 중심에 계시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하면서 살면 마음의 평화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귀영화 공명보다 더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의 평안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돈 주고 못삽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를 주고 살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성령이 임재하실 때 주는 평안 이것이 참된 평안이요, 평안이 있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평안하게 잠자리에 들어가고 평안하게 깨어나고 하루를 살아도 마음속에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요, 천국이 바로 그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이 없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공포가 있고 마음이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도 편하지 않고 깨어나도 편하지 않고 밥을 먹어도 편하지 않고 하루 종일 친구를 만나도 편하지 않고 마음속에 불안이 꽉 들어차면 그는 사는 것이 아니라 벌써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2. 사회적 천국과 지옥
우리가 또한 사회적 천국과 지옥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지옥 속에 있는 세계도 있고 천국 같은 세계도 있는 것입니다. 정부의 권위와 법질서가 무너진 나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폭력과 집단 난투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빈부격차가 심하고 가정과 사회질서가 문란하고, 평화가 사라지고 도적이 들끓고, 신용이 사라지고, 사회보장이 무너지고, 이러한 생지옥의 사회가 되면 벌써 이 세상사는 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여러분,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는 세계 기아 현황이 보고되어 있는데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05년에 기아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은 이렇습니다. 10살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 씩 굶어서 죽었고,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고 있었으며, 세계 인구의 1/7에 이르는 8억 5천 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말했었습니다. 또한 FAO 평가에 의하면 북한은 2006년 식량부족으로 2천 3백만 인구의 다수가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가 바로 지옥 아닙니까?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고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고 부정부패가 심하고 인종차별이 심한 이러한 세계와 상황이 바로 살아있는 지옥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정부의 권위와 법질서가 무너져 폭력과 집단 난투와 부정부패가 만연하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평화가 사라지고 약자는 무참히 짓밟힙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생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문에 보면 범죄천국이라 그런 말이 있는데 범죄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범죄지옥이지.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범죄가 횡행하면 범죄천국이 아니라 범죄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가 생지옥이 될 수 있고 정부가 생지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라크를 봅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날마다 폭력이 있고 테러가 있고 사람은 죽고 파괴가 이루어지는데 생지옥입니다. 그것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에 살지 않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6.25사변을 통해서 나라가 무질서하고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파괴될 때 온 나라 전체가 생지옥 같았습니다. 내일을 예언할 수 없는 비극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우리 한국 사회는 천국입니다. 이만큼 질서가 잡히고 평안하고 안전한 나라가 또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평안한 마음으로 밤거리에 걸어 다닐 수 있는 나라가 오늘날 이 세상에 얼마나 있습니까? 벌써 나라도 지옥 같은 나라도 있고 천국 같은 나라도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마귀는 우리의 환경을 혼란하게 만들고 부정적으로 만들고 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마귀를 경계하고 대적하고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마귀는 수많은 귀신 떼를 거느리고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혼란과 고통 속에 빠뜨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무질서하게 만들어서 생지옥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서 기도하고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치가 안정되고 정부의 법질서가 확실하고 사회질서가 정연하고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사회보장제도가 견실하고, 신용이 살아나고, 집단폭력이 사라지고 윤리와 도덕이 서고,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하여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며, 시민이 평화롭고 꿈과 희망을 갖고 사는 사회는 이미 천국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벌써 그런 나라는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부인이 세상살이가 너무나 힘들어서 자신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는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이 네 기도를 응답 했으니 곧 너를 데려 가겠다. 그러나 네가 할 일이 있다. 집안을 깨끗이 정리해 놓고 와야지 이렇게 어지럽게 해놓고 너만 천당 오면 어떻게 하느냐? 집안을 깨끗이 정리정돈 하라!” 그래서 열심히 집안을 소재하고 정리정돈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집안 정리정돈을 다 했으니까 이제 데려가 주십시오.” 천사가 와서 “저 마당에 저 잡초가 저게 뭐냐? 마당에 잡초가 많아서 보기가 흉하고 다음 사람이 와서 살더라도 이런 집에서 살려고 하겠느냐? 잡초를 정리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고 난 다음에 천당에 오너라!” 그래서 열심히 정원을 가꿨습니다. 잡초를 뽑고 아름다운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정원을 돌보고 난 다음에 “이제 천국 갈 때가 되었으니 이제 나를 데려 가 주십시오.” 하니까 천사가 나타나서 “아직 멀었다. 왜냐하면 너의 집 앞을 봐라! 거지가 나와 있는데 먹이지도 아니하고 입히지도 아니했지 않느냐? 너 이웃집하고 사이가 나쁘지 않느냐. 그것을 정리해 놓고 난 다음 천국 와야지 그것을 그대로 두고 천국 올 수는 없다.” 그래서 그때부터 거지에게 잘 먹이고 입히니까 거지들이 줄을 서서 옵니다. 그래서 다 먹이고 입히고 이웃 사람들에게 친절히 하고 사랑을 베풀고 또 남편과 자식들에게 아주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서 인기 100%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이제는 다 되었지요?” 하니까 천사가 와서 그 부인의 손을 잡고 창문가에 나와서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깥을 한번 바라보라!” 보니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고 나비가 날고 새들이 노래하고 사람들이 보는 곳마다 손을 흔들고 감사하고 남편도 우리 집사람이 제일이라고 하고 자식들도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라고 하니까 가만 보니까 천당에 갈 필요 없이 여기가 천당이거든요. 그래서 천사보고 “아이 나 천당은 좀 있다가 가겠습니다. 여기서 좀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자기가 만들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천국을 만들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 화평을 가지고 가정과 생활에 화평을 가지면 천국을 우리 환경 속에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령이 오시면 소망도 있고 마음속에 평강이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소망과 평화가 넘치면 마음속에 천국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다른데서 찾지 말고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의 환경에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이야기를 적은 것을 읽어보았었습니다. 그가 꿈에 천국에 갔는데 지옥에 갔는데 지옥에도 좋은 방에 사람들이 다 앉아 있는데 모두 다 빼빼하게 야위고 못 먹어서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방 가운데는 큰 항아리가 있고 정말 맛있는 스프가 있는데 사람들이 전부다 스프를 숟가락에 떠가지고서 등 뒤로 자꾸 던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전부 뻐덩팔이라 그러니 스프를 떠서 입에 못 넣고 등 뒤로 던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스프는 많은데 전부 등 뒤에 스프를 던져 버려서 굶주려서 얼굴이 뀅하고 볼모양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천국에 올라가서 똑같은 좋은 방에 스프가 있고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도 전부 뻐덩팔인데 전부 살이 찌고 포동포동하고 좋습니다. 어떤가 보니까 전부 뻐덩팔이지만 스프를 떠서 서로 먹이니까 뻐덩팔이라도 서로 다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 살이 찌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거기에서 잠에서 깨어나서 그가 깨달은 것은 지옥은 욕심과 탐심으로 나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른다. 너는 죽어도 나는 살고, 너는 굶어도 나만 먹고, 너는 발가벗어도 나만 입겠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은 어떤 환경에 갖다 놓아도 지옥이 되고 행복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또 서로 같이 공유하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행복하게 서로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데서 천국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이 천국을 우리 삶속에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지옥도 체험하고 천국도 체험하고 우리 사회생활도 이 천국도 체험하고 지옥도 체험합니다. 그런데 진짜 천국과 지옥은 죽음 그 후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육체에 옷 입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는 언제고 늙어지고 다 썩어지고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를 떠날 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은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내가 지옥 갈까요? 내가 천국 갈까요? 그렇게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은 지금 내속에 천국이 있으면 반드시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내 속에 지옥이 들어 있으면 반드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지금 천국이 있느냐. 지옥이 있느냐가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천국과 지옥
여기에 한 부자가 있어 권력도 있고 돈도 있고 연락하고 즐거움을 가지고 살지만 그 대문밖에 거지 나사로가 병들고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나누지 않습니다. 밥 한 숟가락도 나누지 않고 국 한 숟가락도 나누지 않고 의복 하나도 나누지 않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입고 희희낙락하고 나는 유태인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택받았으니까 천당 갈 것이라 생각하고 행위는 완전히 나쁜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문밖에 있는 거지 나사로는 그 부자의 밥상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개들과 함께 있다가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죽자 천사들이 와서 그를 데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낙원에 들어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안 죽나요? 부자도 나이가 들어서 죽어서 거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영화롭게 화려한 공동묘지를 만들었지만 그 공동묘지 속에 그가 들어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옥에 떨어져서 불꽃 가운데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지옥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꽃과 같은 고통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마음에 지옥도 고통스럽고 사회적인 지옥도 고통스러운데 진짜 지옥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늘을 쳐다보니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낙원에서 즐기는 것을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는 지옥에 떨어져서 이렇게 고생하니 저 나사로를 보내어서 손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주소서.”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예~ 너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살면서 이 나사로가 헐벗고 굶주리고 아프고 죽어갈 때 옷 한 벌, 밥 한 숟가락 나누지 않지 않았느냐? 너만 자신 위해서 살다가 너는 지옥에 떨어지고 이 나사로는 천국에 와서 즐거워하고 있다. 또 그뿐 아니라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그곳에서 이리 오지도 못하고 여기서 거기 넘어가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그 부자가 하는 말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서 우리 집에 가서 전도하게 해주십시오. 내 형제가 다섯이 있는데 전부 다 나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또 다 지옥에 오면 이 고통을 당할 것이니 제발 그들에게 전도하게 해주십시오.” 그것도 아브라함은 거부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성경이 있는데 성경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간증을 해도 믿지 않는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셨는데 우리가 말씀을 저버리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와도 그 말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나는 죄가 너무 많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천국 못 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우편과 좌편에 강도가 들렸는데 흉악한 강도입니다. 살인하고 방화를 하고 흉악한 죄를 짓고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그 강도 중 한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회개하고 주여,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여 달라고 했었습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그는 마음에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인 것을 십자가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고 입술로 시인하니까 주님이 말씀하기를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구원의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구원이 순식간에 그의 마음속에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 아들이 병들었는데 아들이 자꾸 포도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포도를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어머니가 포도를 구하러 온데 돌아다녀도 없는데 왕궁에 담벼락에 포도가 탐스럽게 달려 있는 넝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궁 지기에게 가서 포도를 한 송이만 팔아 달라고 한 송이에 100불 주겠다고 하니까 안판다고. 그러면 한 송이에 200불 주겠다고 해도 그래도 안판다고.. 300불 주겠다고 해도 그래도 안판다고 그래서 그 어머니는 땅에 주저앉아서 울었습니다. 통곡을 하고 울고 있으니까 공주가 나와서 “왜 우느냐?” “포도를 가져가야 우리 아들이 먹고 살겠는데 포도를 안판다고 하니..” 그렇다니까 그 공주가 “이 포도는 파는 포도가 아니다. 이 포도는 임금님의 포도인데 임금님은 포도를 팔지 않고 공짜로 준다고 당신 같이 필요한 사람이 구하면 공짜로 주는 것이지 이것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달라고 구하면 주겠다.” 이러니까 그래서 포도를 달라고 하니까 임금님이 나와서 포도를 따서 탐스러운 포도를 공짜로 주시더랍니다. 여러분 구원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구원은 돈 주고 못 사요. 100불, 200불, 1,000불, 10,000불, 100,000불, 1,000,000불, 10,000,000불, 1억을 줘도 못 사요. 구원은 임금님이 원하는 사람에게 주는데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구원은 공짜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강도가 낙원에 가는 것처럼 낙원에 갑니다. 바울선생이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사람의 말로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선생 같은 분도 낙원에 올라가서 낙원을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그 낙원에 우리는 들어갈 것입니다. 성경에 요한계시록에 요한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고 말한 것입니다. 불신앙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예수님을 끝까지 잘 믿은 사람은 낙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낙원에 못 들어가면 그 다음 갈 곳은 음부 아닙니까? 음부에 들어가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미국의 목사요, 교수요, 시인인 밴 다이크의「대저택」이라는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가서 천국의 안내를 받으며 여기저기 보고 다니는데 굉장히 좋은 저택이 있거든요. 감탄을 하고 “야~ 이렇게 좋은 저택을 누구를 위해서 지은 저택입니까?” “당신 하인을 위한 집입니다.” “우리 하인을 위해서 어떻게 이 저택을 지었습니까?” “하늘은 잘못한 것이 없어 지상에서 올려 보내는 것을 가지고 집을 짓는데 당신 하인이 정성으로 하늘나라에 보화를 심었기 때문에 이런 큰 저택을 지었다.” “아~ 참 놀랍다.” 그 다음 쭉 구경을 하다가 아주 낡은 집을 하나 보았었습니다. 그래서 “이 저택은 누구 것입니까?” 그러니까 “바로 당신 저택이요.” “아, 내 저택이 이럴 수 있습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당신이 하늘나라를 위해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을 위해서 올려온 재료가 없습니다. 하늘은 정직한 곳이니 당신이 올려온 재료를 가지고 저택을 지어보니 이런 저택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고 난 다음부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나라 위해서 수고하고 일했다는 글을 읽어 본적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힘써 일하는 것은 장차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사람이 임종이 되면 그 사람이 천국 가는지 지옥 가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이자 장로교의 창시자였던 존 칼빈은 “사람은 그 죽는 것을 보아야 그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지옥같이 산 사람은 죽을 때 눈을 감지 못하고 얼굴에 흑암의 권세에 잡혀서 이를 갈고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며 온몸이 경직되어서 죽습니다. 저는 50년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을 수의를 입히고 관속에 넣는 일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다 가난했기 때문에 장의사가 와서 못하고 목사가 그 일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보면 아주 옷을 입히는데 팔이 나긋나긋해요. 다리도 나긋나긋 하고 옷 입으라고 하면은 싹싹~ 관에 들어가라고 하면 살살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팔이 너무 뻣뻣하고 다리가 뻣뻣해서 옷을 입힐 수가 없어서 팔을 꺽고 다리를 꺽어야 넣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들이 제게 그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 아버지 천국 갔겠지요? 우리 어머니 천국 갔겠지요?” 내가 보기에는 죽은 시체를 보니까 천국 간 사람도 있고 안 간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간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 갔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몸도 부들부들 하고 야들야들하고 좋은 것 보니 천국 갔습니다.” 그런데 몸이 뻣뻣하고 굳어지고 긴장되어 있는 사람 가족이 “우리 아버지 천당 갔겠지요? 우리 어머니 천당 갔겠지요?” “갔겠지요?” 갔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또 안 갔다고 할 수도 없고 갔겠지요 그렇게 말합니다. 확실히 죽은 시체를 보면 천국 간 사람은 얼굴에 웃음을 웃고 몸에 긴장이 하나도 없어요. 몸이 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워요. 왜냐하면 속에서 너무 즐겁고 기뻐서 할렐루야를 하고 가니까 몸도 긴장이 안 됩니다. 그러나 천국에 못가고 지옥에 가는 사람은 마귀에게 끌려갈 때 이를 깨물고 반발을 하고 주먹을 쥐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몸이 긴장이 되고 뻣뻣한 것입니다.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이며, ‘사랑의 배달부’라고 불리던 길선주 목사님은 임종 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내게 전보가 왔어. 이제 떠나야 돼. 다들 잘 있게.”그렇게 말하고 떠났습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하늘에서 내게 오라는 전보가 왔어. 이제 내가 떠나야 돼. 잘 있게. 그리고 떠났습니다. 천당 간 일이 얼마나 확실합니까?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은 죽기 직전에 그를 임종하려고 모여 있는 자녀들과 많은 일가친척들 앞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광이로다!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내게 다가 오는 도다. 그리고 여러분 내일 아침 신문에 무디가 죽었다고 보도 되더라도 믿지 마세요. 무디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이렇게 하늘로 올라갑니다.”라고 하더니 쓰러져서 눈감고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우리의 사후의 세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든지 낙원 아니면 천국의 음부로 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뿌린 씨앗의 열매를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와 절망을 걸머지고 십자가에서 한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다하여 우리의 죄악을 다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한 행위로써는 결코 천국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어떠한 죄인도 씻어주고 구원해 주고 천국에 가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가장 큰 보배가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세상 부귀영화는 일시로 있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또 그런 것들은 겉으로 보면 호화롭게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절대로 평안과 기쁨과 천국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의 겉과 마음속은 다릅니다. 육체적인 쾌락과 즐거움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은 하나님 앞에 화해해야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과 우리는 화해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므로 우리는 평안하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과 사후의 세계에서 다 같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음에 천국이 임한 분은 저 세상 천국에 반드시 갈 것이요, 이 세상에서 마음에 지옥이 이뤄진 사람은 저 세상에도 지옥에 반드시 갈 것인 것입니다. 나는 우연히 천국 갈 것이고 우연히 지옥 갈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죄를 다 청산하고 평안을 마음에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산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졌으니까 저 영원한 천국에 반드시 들어가지만 이 세상에서 세상의 쾌락을 쫓아 살고 마귀를 따라 살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세상의 자랑을 따라 산 사람은 마음에 벌써 지옥이 이루어져 있는 사람인데 반드시 음부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람들은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천국에 가기 위한 준비기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예비하는 기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준비된 사람은 올라갈 것이고 준비 안 된 사람은 쓰레기 더미인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며 마음속에 천국을 가지고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머리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야만 합니다. 한 사람도 없어지고 사라질 사람이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천국 길을 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죄를 청산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음으로 그 보혈의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이 와서 하나님의 평화로 우리 마음속에 채워 주시고 천국을 마음속에 주심을 감사합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요 우리 마음에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미 마음에 천국을 체험하는 사람도 있고 지옥을 체험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 사회와 국가가 천국 같은 곳도 있고 지옥 같은 곳도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후에는 반드시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다 예수님을 통하여 회개하고 주님 믿고 천국가게 도와 주시옵시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 한사람도 없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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