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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종료되기 전 꼭 해야할 일이 있다면

베드로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586 추천 수 0 2010.02.14 23:58:40
.........
성경본문 : 벧전4:7-1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0630

2002 한일 월드컵이 오늘로 끝이 납니다. 우리나라 팀은 어제 경기로 끝이 났습니다. 어제 경기를 보신 분은 아쉬움이 남을 것입니다. 처음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이겼을 텐데 라는 아쉬움입니다. 마지막 공격진이 공격을 하는데 1분만 더 시간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경기는 종료되었습니다. 상황이 공격 상황이던 상황이 아주 좋은 찬스를 만난 상황이든 아무리 아쉬움이 있을 지라도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면 그 누구도 예외없이 하던 경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한 판 경기와 같습니다. 운동장에서 뛰다가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모든 것을 다 놓아두고 홀연히 가야합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했으면 그 어떤 환호와 열광이 있었지라도 종료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서 아무리 후회해도, 아무리 아쉬워해도 필요없습니다. 이미 경기는 끝난 것입니다. 개인 뿐 아니라 세상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생물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종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때는 AD 64년을 전후할 때입니다. 네로 황제의 믿는 사람에 대한 대 박해가 시작되기 전이나 후일 것입니다. 긴박한 상황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농토와 집을 빼앗기고 도망을 가야 합니다. 지하에 무덤을 파고 피신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언제 화형장을 끌려갈지 언제 원형극장에 끌려가 사자들의 밥이 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이 때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합니다. 1장 1절을 보십시오. 어떤 특정한 마을이나 도시에 있는 교회가 아닌 (소)아시아(현제의 터어키)의 넓은 지역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고향을 떠난 나그네입니다. 비난받고 핍박받는 나그네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신앙인을 비방했습니다. (1)그리스도인은 식인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찬식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2)부도덕한 무리라고 했습니다. 아가페 사랑을 강조하자 성적으로 부도덕하다고 했습니다. (3)상업을 방해한다고 했습니다.(에베소 교회 은장색 파동 행19:21-24) (4)가족 파괴주의자들이라고 했습니다(신앙의 형제 중요시). (5)노예 도둑이라고 했습니다.(노예가 그리스도화)
(6)반정부주의자 무정부주의자라고 했습니다. 황제 숭배 반대, 로마시를 불사른 사람들이라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박해를 받아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어떤 비난과 핍박을 받고 있었는지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1:6 여러 가지 시험, 3:16 선한 일을 하지만 악인이라 비난받음, 4:12 불시험이 그들에게 임하고 있었음-4:19]
베드로는 이들을 향하여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1:5-너희가 말세에, 1:7-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 4:13-그의 영광이 나타내실 때, 4:17-하나님의 집에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5:4-목자장이 나타날 때]
경기기 종료될 때가 가까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경기가 종료되기 전 후회없는 경기를 하려면 3가지 것에 열중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인생의 마지막에 꼭 해야할 것 세 가지만 하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1.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7).
신앙인의 삶은 크게 나누면 상향적 삶, 내향적 삶, 외향적 삶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상향적 삶이란 하나님을 향한 삶의 원리이고 내향적 삶이란 자신과 신앙인과의 삶의 원리이고, 외향적 삶이란 자신과 세상과의 삶의 원리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사이의 삶의 원리를 말씀합니다. 이제 마지막 인생의 종막이 다가 오고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목회하면서 질병으로 인하여 의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을 마무리하시는 분들을 여러분 돌보았습니다. 그 중에 30대 젊은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아들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자매인데 위암이 걸려 말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살길이 없자 마지막으로 교회에 찾아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남편도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온 교인들과 목회자는 그 자매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어느날 예배드리고 기도하기 위해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살 때 아마 어머님이 돈을 조금 보태어서 산 것같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값이 올랐는데 서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그 당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생명 떠나가면 그 아파트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은금 보화를 집안 가득 담아놓았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똑같은 위암이었지만 신앙 좋으신 50대 집사님은 달랐습니다. 남편에게 재혼할 것을 부탁합니다. 자식들에게 신앙 생활을 잘 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오직 기도로 매어 달렸습니다. 집사님은 한 차례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를 받고 한 7년 동안 사시며 인생을 정리하시다 나중에 재발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님과 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참으로 긴밀한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기도입니다. 이 땅의 인간적인 삶의 마지막이 오신 것을 안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스데반도 기도하였습니다. 삼손도 인생의 마지막을 앞에 놓고 기도합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 기도하다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서 "정신차리고"라는 말은 균형잡힌 정신 상태를 말합니다. 군인들이 보초를 잘서는 상태를 말합니다. 흔들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변덕스럽고 순간적인 열광에 휩싸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근신하여"라는 말은 건전한 마음과 행동 즉 술취해 있다의 반대 개념입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분별력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종말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가 가까울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31세 된 어느 주부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좋은 남편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딸 아이 하나를 낳고 결혼 5년 째 되던 어느날 몸에 이상이 있어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의 진찰 결과는 유방암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밥도 먹기 싫었습니다. 홀로 죽는다는 것은 그리 두렵지 않았는데 4살짜리 딸아이를 두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결국 남편과 가족에게 알렸고 의사는 수술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습니다. 결국 수술을 받았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절망하며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어느 날 절망 가운데 잠을 자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소년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 우리 엄마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 엄마 찌찌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병원에도 가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엄마 말씀 잘 들을 깨요. 꼭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눈을 떠보니 네 살 딸아이가 엄마 옆에 무릎을 끓고 울먹이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렇게 아이가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병을 이기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자신도 기도하였습니다. 7년 만에 의사로부터 암으로부터 해방 선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운동 경기 종료시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십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기도시간을 느리시기 바랍니다. 늙으면 잠이 없어집니다. 새벽에 일어나 쓸데없이 주방에 가서 젊은 사람들 잠깨우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안식입니다.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십니다. 앞길 깜깜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2.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8-9).
신앙인의 내향적 삶의 원리는 무엇이겠습니까? 얼마 남지 않은 인생살이라면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식에게 친구에게 부모에게 가장 진한 감동을 남겨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고 살맛나는 추억을 남겨주고 두고두고 향기주머니를 터뜨리는 것처럼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 있다는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입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서기관이 와서 율법 중에 가장 첫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0-31)"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말세가 되 면 사랑이 식어져 갑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2)" 우리는 마지막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기는 사랑하되
1) 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막12:30-33). 2)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일방적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3) 열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속적으로 시종일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꾸준한 열렬한 지속적인, 식어지지 않는 사랑을 말씀합니다. 상대방의 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랑해야 합니다. 용서할 마음이 들 때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실제적은 행위는 서로 허다한 죄를 덮어두는 것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잠 10:12)" 여기서 덮는다는 것은 '간과한다. 가리운다.'라는 말입니다. 4) 서로 원망없이 대접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물질을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만 말로만 그쳐서는 안됩니다. 행동화되어야 합니다.
어느 주일 학교 교사가 쓴 "아빠 사랑해요."라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과 기도제목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직도 선명히 기억되는 것은, 아빠께서 말씀을 전하시던 도중 우리 가족들에게 아버지로서 참으로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꺼내셨다는 것입니다. 아빠께선, 한 가족의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지냈던 것 같으시다며 엄마와 우리 자녀들(4남매)에게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시면서 우셨습니다.…당신의 연약함과 허물을 고백하시며 아내와 자녀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시는 아버지… 이 딸의 눈에 아빠는 그 어떤 모습보다 위대해 보였습니다. 딸과 함께 유치부 교사를 하고 싶으시다는 아빠의 고집으로 인해 결국 저는 또다시 유치부에 남게 되었습니다. 쉰 넷의 연세에도 여전히 유치부 교사를 하시는 우리 아빠. 당신의 눈으로 보시기에도 모든 게 부족하고 모자라는 이 딸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당신의 딸을 자랑스러워 하시며, 함께 가까이에서 주님의 일을 섬기는 것을 사모하시고 또 그것을 기뻐하시는 우리 아빠. 당신에게 주어진 주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나이나 체면을 따지지 않으시고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철부지 딸에게라도 조언을 구하시는 우리 아빠. 그런 아빠를 둔 저는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미진아, 넌 어떤 사람에게 시집갈래?" 하고 사람들이 물으면, "그야 당연히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지요" 라고 큰소리로 대답할 거에요. 아빠, 사랑해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릅답습니다. 사랑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셨고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19세기에 들어 와서 사람들은 자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무수히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자유는 피를 먹고자랐습니다. 자유의 나무에 걸린 커다란 열매는 불평등의 열매였습니다. 그 열매 앞에서 사람들은 그 옛날 보다 더욱 괴로워하였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평등의 열매를 따먹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태동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든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폭력이라도 사용하였습니다. 공산주의는 더 커다란 불평등을 만들고 시베리아의 모진 바람에 꺼져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힘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가고 있고 경제적 불균형은 심각할 정도로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21세기는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이 풀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21세기에 꽃피워 열매맺어야 할 과일은 박애라는 열매일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희망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힘의 원리가 아니라 사랑의 원리가 적용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3. 사회를 향하여서는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서로 봉사하는 것입니다(10-11).
신앙인은 하나님과 믿는 사람과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살아갑니다. 사회로부터 격리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신앙인이 종말 의식을 가지고 해야할 일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베드로 사도는 청지기로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어떻게 봉사하라고 합니까?
(1)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주인의 소유권을 인정, 주인의 사용권을 인정하면서 봉사해야 합니다(10).
존 록펠러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청지기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다 사기 당하고 빚독촉에 시달려 자살을 하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가난의 한 때문에 미국 석유 90%를 차지하고도 만족하지 못하여 노동자를 심하게 착취하고 심한 노이로제와 소화불량, 무력감과 악몽..등으로 의사는 죽음을 준비할 것을 선언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 기도하는 중에 더 파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석유 부자가 되었고 질병에서 치유받아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백만평이 넘는 12개 대학을 건립하였습니다. 그가 세운 대학 중에 시카코대학은 지금까지 노벨상 52명을 배출한 명문대학입니다. 그가 일평생 4928개의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렸다고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 곳에도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 돈은 내 돈이 아니요.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돈이기 때문에 대학 교회 어디에도 내가 돈을 내어 지은 대학이나 교회라고 쓰지 말라고 당부하였답니다.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전재산에 해당하는 45억달러를 드려 3천개의 도서관을 설립했고 8천대의 오르간을 기증했습니다. 시어즈로벅 백화점의 소유주 줄리어스 로즌월드 일생동안 흑인교육을 위해 5,357개의 공립학교 설립을 지원했습니다.

(2)서로 봉사하라고 합니다(10).
(3) 각각 받은 은혜와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합니다(10).
(4)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라고 합니다(11).
2)어떤 봉사를 하라고 말씀합니까?
두가지입니다. 말씀의 봉사와 생활의 봉사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은 먼저는 말씀의 봉사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중 가장 고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의 봉사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구해주는 것만큼 귀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은 종말의 때가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죽음이 임하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사실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썩은 생선은 아무리 커도 가치가 없습니다. 갈대는 재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밖에 변할 수 없습니다.
지그 지글러가 쓴 "오늘 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중국의 한 농부가 바닷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논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잠시 허리를 펴고 쉬려던 찰나 농부는 바닷물이 해안에서부터 신속하게 휩쓸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바닷물은 마치 먹이를 보고 덤벼드는 성난 짐승 같은 파도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밀려 나갔다. 순간 그는 그렇게 밀려나간 바닷물은 바로 거대한 해일이 되어 덮쳐올 것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농부는 해안 근처의 논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살리려면 언덕 위로 도망치게 해야 했다. 하지만 뛰쳐 내려가 일일이 알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논에다 불을 질렀다. 불은 멀리서도 잘 보였기에 해안 근처에서 일하던 이웃들은 전부 다 일어난 불길을 보고 그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그리고 언덕 꼭대기의 안전한 지대에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들을 집어삼킬 듯이 바로 뒤를 쫓아온 해일을 보게 되었다. 해일은 그들이 방금 떠나온 논밭을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이웃들은 농부가 자신의 논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른 덕분에 자신들이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눈을 돌려 우리 주위를 보면 봉사해야 할 불우한 이웃이 많이 있습니다. 13만명에 달한다는 굶주리는 아이들, 1만 여명의 소년 소녀 가장, 2만 여 명의 버려진 아이들, 10만 여명의 저소득 장애인, 38만 여명의 근로능력 없는 생활보호 대상자, 40 여만명의 홀로 사는 노인들이 어두운 그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5)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6)"

3) 봉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1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아무리 죽고 싶지 않아도 아무리 죽음을 슬퍼한다 해도 죽음은 인생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찾아옵니다. 죽음만큼 만인 앞에서 평등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파스칼은“인간은 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난 존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에는 모르는 것 셋, 아는 것 셋이 있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 셋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어디서 죽을지 모른다’‘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라는 것이요, 아는 것 셋은‘반드시 한번은 죽는다’'아무도 함께 가지 못한다’'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반드시 한 번은 죽는 것이고 그 때에는 아무것도 아무 사람과도 같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한 부자처럼 살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한 부자 농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땅이 많이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 풍년이 들었습니다. 쌓아둘 창고가 없으니 추수를 많이 한 것도 걱정입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금 있는 창고를 다 헐어 버리고 큰 창고를 지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문제는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죽음 후의 또 다른 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21장 8절을 보면 지옥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했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였든 파스칼은 팡세에서 "천국! 이것은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도박이다! 그냥 우리가 포기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이것은 도박이다." 파스칼은 수학자이니까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천국이 없어도, 천국을 믿고 살았든 나에게 별로 손해볼 것은 사실은 없다. 그러나 천국이 정말 존재했다면, 준비만 했었으면 갈 수 있었든 천국, 그런데 그 천국을 내가 놓쳐버렸다면 이것은 큰일이다. 이것은 놓쳐버리기에는, 이것은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어마 어마한 도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경기는 언젠가 종료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후회없는 삶이 되어 야 할 것입니다.

경기가 종료되기 전 꼭 해야할 일이 있다면/벧전4:7-11/ 20020630 김필곤 목사(열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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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0 창세기 성도가 사는 방식..... 창26:12-25  이정원 목사  2010-02-12 2322
2899 창세기 반복되는 실수, 변함없는 은혜..... 창26:1-11  이정원 목사  2010-02-12 2967
2898 창세기 팥죽과 장자권..... 창25:27-34  이정원 목사  2010-02-12 3914
2897 창세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창25:19-26  이정원 목사  2010-02-12 2470
2896 누가복음 천국과 지옥 눅16:19-31  이동원 목사  2010-02-11 4255
2895 누가복음 잔치에의 초대 눅14:16-24  이동원 목사  2010-02-11 3849
2894 고린도전 예배와 질서의 문제 고전11장  이동원 목사  2010-02-11 2748
2893 고린도전 역사와 현실 고전10장  이동원 목사  2010-02-11 2901
2892 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자. 미6:1-16  최징환목사  2010-02-11 3196
2891 요한계시 목마른 사람을 위한 복음 계22:12-21  정용섭 목사  2010-02-10 2936
2890 요한복음 누가 내 어머니인가? 요19:25-27  정용섭 목사  2010-02-10 3343
2889 마태복음 믿음은 가능한가? 마17:14-20  정용섭 목사  2010-02-10 2620
2888 사도행전 다비타 쿰! 행9:36-43  정용섭 목사  2010-02-10 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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