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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약4:1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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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2002.8.11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서로 교제를 하여 결혼하기로 약속한 형제를 부모님께 소개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끝낸 후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그래, 자네의 장례 계획은 무엇인가?" "성경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라고? 훌륭하구먼. 하지만 내 질문의 요지는 내 딸을 좋은 집에서 멋진 인생을 살게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것이냐는 걸쎄." 그러자 "저는 공부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걸 주실 겁니다." "... 그럼 어떻게 결혼반지며 내 딸이 원하는 것들을 살 작정인가?" "전 공부에 전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걸 주실 거니까요." "그럼 애들은? 애들을 어떻게 키울건가?" "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주실 겁니다." 만약 우리가 아버지라고 한다면 이런 청년 사위로 삼겠습니까?
사람이 미래에 대하여 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 믿으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 할까요? 노후 대책을 위해 연금에 가입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동일까요? 아무런 계획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 좋은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등불을 들고 신랑 맞을 준비한 10 처녀 중 다섯 처녀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기름 준비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이 사는 사람에 대하여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살후 3:1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하여 계획을 세우는 것을 참으로 중요합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부흥 계획을 세우고, 수련회를 하기 위해서는 수련회 계획을 세우고, 운동회를 하기 위해서는 운동회 계획을 세우고, 결혼하기 위해서는 결혼 계획을 세우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시험 계획을 세웁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리 위해 인생 계획을 세웁니다. 계획 없는 인생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 계획 어떻게 세워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우리의 인생 계획에 하나님을 모시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13-14)
사람이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데 두가지 극단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없이 그저 하나님이 인도하는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미래를 철저히 계획하면 그대로 되어질 것이라는 방자한 사고 방식입니다. 오늘 13절에 나오는 사람은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까? 자신이 철저히 계획하면 그대로 되어질 것이라는 방자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계획 속에는 인생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얼마나 철저합니까? 때, 장소, 일의 결과, 사업계획 철저합니다. 오늘이나 내일 도시에 가서 사업할 것을 계획합니다. 일년이라는 사업계획을 세웁니다. 사업 종목도 장사할 것을 정확히 계획합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도 이를 보리라고 계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생명 거두어 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가 복음에서는 이런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0)"라고 말씀합니다.
몇 년 전 친구 큰 형님이 갑자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50대 초반입니다. 사업하시는 분이십니다. 신앙 생활하라고 하면 사업 잘 해 놓고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사업에 대한 큰 꿈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돈을 벌어 이런 저런 일을 하겠다고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11시쯤되어 머리가 아프다고 동네 약국에 가서 약을 사가지고 오다 길에 쓸어져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가족들이 나가 보니 길가에서 그대로 쓸어져 돌아가셨습니다. 인생들이 자신이 모든 것을 할 것으로 계획하지만 순간입니다. 요즈음 폭우로 잠긴 농작물과 한 순간 무너지는 집들을 보면서 교훈받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사람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장해 주어야 미래는 계획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 계획에 하나님을 포함시키시기 바랍니다. 결혼 계획도, 사업계획도, 자녀 교육 계획도 노후 계획도 하나님을 포함시키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사고에는 최종적 사고(terminal thinking)와 관련적 사고 (relational thinking)가 있습니다. 관련적인 사고라는 것은 모든 것을 목적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사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그 사람과 관련시켜 생각합니다. 결혼하는 신랑 신부가 결혼식 계획을 세우는데 신부는 신랑을 배제하고 계획하지 않습니다. 결혼을 통해 이루어질 모든 일을 서로 관련시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 홀로의 삶이 아닙니다. 부부가 되어 아이들을 낳게 되면 여름 피서 계획을 세울 때도 홀로가 아닙니다. 가족이 자신의 계획 속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관련시켜 계획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인생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예수님의 신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 영적으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내 인생 계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련시켜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인생의 계획을 아무리 잘 꾸민다고 해고 인생의 주관자,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배제한 계획은 불완전합니다. 미래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임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계획합니다만 미래의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공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리고 계획하지만 공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의 결과가 계획한 대로 나타날 것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기 전에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합니다. 모세가 젊은 날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유아를 살해 하는 현장에서 살려 놓고 애굽의 궁중에서 교육을 시킨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계획을 시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방법, 자기 때, 자기 기분으로 자기 계획을 세우고 일을 저질러 버립니다. 살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년 더 훈련시켜 하나님의 계획에 맡는 일을 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한 그릇으로 불렀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예레미야를 복중에 짓기 전에 불렀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김동환 전도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다니엘 학습법' 저자입니다. 그는 2000년도에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입니다. 대학 4년 동안의 평균 점수가 99.26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국비 유학 조건에다가 서울대에서 최연소 교수직까지 보장받다시피 대학원 진학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거절하고 국대 최고의 대기업 비서실 입사도 거절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 갔다고 합니다. 그의 계획은 어머니가 기도했던 영혼 구원이 있었습니다. 달동네 문제 학생들을 불러모아 소위 SKY school 이라는 공부방을 만들어 자원봉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봅니다. 인생을 하나님과 함께 멋지게 살 계획을 꿈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2.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라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15).
하나님과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신앙인의 미래 계획의 출발이라면 좀더 성숙한 두 번째 단계는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보면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계획의 일부에 포함시키지만 더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 위주로 모든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이제 내 위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 대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15절을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개역성경은 15절 번역이 문맥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데 다른 성경 번역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동 번역은 "약 4:15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 보겠다" 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번역했고
현대어 번역은 "약 4: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만일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사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해야겠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표준 새번역은 "약 4:15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주의 뜻, 주님의 허락,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주께 있고 우리의 일도 주님의 손에 있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주님의 뜻을 따라 세우게 됩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 계획은 우리가 세운다고 그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세울 때 그것이 확실하게 보장받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찾아 보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19:21)"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고 조카 롯을 떠나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데라는 죽게 되고 조카 롯과는 재산 싸움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그는 가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아마 그의 계획은 잘 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그가 당한 것은 무엇입니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아내를 이방 왕에게 내어주는 치명적인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자 종을 아들로 삼고 살고자 합니다. 그 계획대로 됩니까? 인류의 비극을 가져오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계획이 가장 형통한 길이고 미래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받는 길입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니느웨로 가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편협한 애국자인 요나는 자신의 계획을 세웁니다. 다시스로 향합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다시스로 가게되었습니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결국 물고기를 통하여 니느웨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머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품으라는 계획은 "예루살렘과 온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인데 그들은 예루살렘에 집착합니다. 결국 스데반 사건으로 흩어집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의 계획에는 고넬료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고넬료가 있습니다. 결국 고넬료를 만나게 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행 16장을 보면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을 마게도냐 사람 환상을 통하여 유럽으로 보내었습니다.(행16:9)
가정의 미래에 대하여, 직장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신앙 생활에 대하여, 자식에 대하여, 노후에 대하여, 사업에 대하여 심지어는 오락이나 피서에 대하여까지 하나님의 뜻에 합치된 계획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치되지 않는 계획은 그날이 되면 아무리 크고 위대한 일을 한 것 같지만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성경 마태복음 7장 22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3. 우리는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 놓고 분명하고 확실한 말씀에 기준하여 현실에 충실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16-17).
어떤 사람들을 보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미래를 계획하며 허영에 들떠 장담하며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16). 이것은 교만입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자랑하는 것 그것은 오늘 성경에 보면 허탄한 자랑에 불과합니다. 허탄이란 허망한 것을 말합니다. 허망이라는 것은 거짓되고 망녕되다는 것이고 어이 없이 허무함을 말합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놓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마치 그것이 다 이루어진 양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은 [약 4:16 그런데도 당신들은 지금 허영에 들떠서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담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라고 번역하였고
현대어 번역은 [약 4:16 그런데도 여러분은 마음대로 계획을 벌이고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이러한 자기 확신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표준새번역은 [약 4:16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의 시간이란 우리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 가지 계획을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결국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계획한 대로 세상이 다 되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십시오. 계획을 가집니다. 형과 부모가 자신에게 인사하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에게 다가온 것은 무엇입니까? 형들이 인신 매매를 합니다. 요셉이 그것을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갑니다. 계속 좋지 않은 일이 버러집니다. 미래라는 것은 계획대로 다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문제는 어떤 일이 앞에서 일어난다해도 우리가 해야할 것은 분명한 말씀에 기준하여서 선을 해하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어떤 것이 다가와도 지금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계획을 세워놓고 미래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내가 어떤 일을 하면 그 때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하며 오늘 현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지금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해야 할 줄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지금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악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제 기독신문을 보니까 국경 허문 헌신적 사랑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대구 사월 교회에서 안수 집사님으로 봉사하시는 박형근 집사님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분은 경산 시청 공무원입니다. 교회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선교사를 돕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지금 당장 선교사로 갈 수 없지만 정년 퇴임후 평신도 선교사로 봉사할 것을 계획하시면서 사는 부부입니다. 그래서 우즈벡 스탄에 있는 부부를 초청하여 한국 회사에 취업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남편이 선천성 심장 판막증에 걸린 것입니다.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결국 박집사님은 그들을 자신의 아들 딸로 삼았습니다. 한국명으로 김지마 김라자로 이름을 바꾸고 병원에 수술을 시켰습니다. 8000만원의 수술비가 들어가는 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일로 알고 아들을 수술시켰습니다. 그는 삼차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두 번째 까지는 의사가 했지만 세 번째 수술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수술을 통해 확실한 신앙 체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신학을 공부하여 자기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하겠다고 다짐했고 박집사님은 앞으로 자신과 함께할 목회자 아들을 얻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는 고백을 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지만 내일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면 그 안에서 사는 것이지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 놓았을 지라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과장이 되면 부장이 되면 사장이 되면 잘 하리라 그런 사람 인간적으로 볼 때도 인정받기 힘듭니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은 게으르고 악을 행하면서 미래의 삶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미래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현재의 연장입니다. 유능한 운동 선수들을 보십시오. 하루아침에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도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윗이 어느날 갑자기 쓰임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가지고 나간 것이 무엇입니다. 물매와 돌 다섯입니다. 그것은 평소에 다윗이 양을 치며 익힌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어느날 갑자기 쓰임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열심히 주를 위한 열심히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현재는 아무렇게나 해도 미래는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악을 행하지만 미래에는 선을 행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게으르지만 미래에는 부지런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무엇을 심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을 심으면 악의 열매를 거둘 것이고 선을 심으면 선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지금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것을 통하여 결국 미래는 보장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섬기는 것도, 노력하는 것도, 인격을 수련하는 것도, 기업을 이루는 것도 가족을 구원하는 것도, 미워하는 사람과 화해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결국 우리는 미래의 어느날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1)"는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때에 가서 아무리 자신의 형제를 위해 사정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요일날 어느 성도님 장례식을 치루었습니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났는데 아내만 울고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좀 잘 해 줄었을 것"하면서 우시는 것입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 때 잘할 걸 해도 시간이 지나면 필요 없습니다. 그 때 전도 많이 할걸, 그 때 선을 많이 행할 걸, 그 때 봉사할 걸, 그 때 이렇게 할 걸, 그 때 시어머니 잘 모실 걸, 그 때 며느리에게 잘 해줄 걸, 그 때 충성할 걸, 그 때 헌금 많이 할 걸, 그 때 열심히 살 걸, 그 때 남편에게 좀 잘해 줄 걸, 그 때 아내를 더 사랑해 줄 것..., 미래는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감사로 받는 시간입니다. 지금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인생의 미래, 어떻게 계획하십니까?/약4:13-17/2002.8.11 김필곤 목사(열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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