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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항상 짊어지는 예수님의 죽음

고린도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379 추천 수 0 2010.02.15 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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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4:10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 6. 7. 성찬주일 4부 설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가 항상 짊어지는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하여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아침을 드셨을 것입니다. 점심은 못 드시고 오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또 저녁은 꼭 드실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명령이 있어서 금식을 안 하는 이상 사람들은 먹어야만 삽니다. 초식동물들은 풀을 먹고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들을 잡아먹고 삽니다. 그래서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약한 생명체를 강한 생명체가 잡아먹고 사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좀 비극적인 것 같습니다만 죽음과 생명이 우리 주변에서 동시에 늘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마음속에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은 왜 죽으셔야 했나?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당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로 5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40년 동안 방황할 때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먹고는 못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서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라고 한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 이 말을 들을 때 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식인종도 아닌데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어떻게 마시느냐? 그러나 주님은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우리가 음식을 먹지 아니하면 굶주려서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의 에너지는 음식을 먹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영적인 영생의 생명의 에너지는 예수님을 먹어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먹지 않고 종교를 먹어서 힘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을 행하므로 힘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먹고 마셔야만 우리가 삶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이 정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매일 매일 살아간다는 심각한 내용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살을 주고 피를 흘려 마시게 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당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구원하는 것은 무슨 수양이나 도덕을 통해서 구원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당신이 죽어서 살을 찢어 주시고 피를 흘려 주셔서 먹고 마시게 하시므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로 죽은 우리를 십자가에서 걸머지고 매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하여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살은 우리를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파우스트」라는 책에서, 파우스트는 문학가이자, 법학가이고, 철학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 문제에 부딪혀 마음에 심각한 고민을 한 끝에 도저히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리고 자살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부활절의 종소리가 나면서 “네 문제로 내가 죽었고 너도 나와 함께 부활했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후, 파우스트는 기쁨과 소망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삶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 옛사람을 걸머지고 찢어지고 피를 흘리시고 옛사람을 청산해 버리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기 위해서 찢어진 살과 피를 먹고 마시도록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므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항상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이유는?
성경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무엇 때문에 항상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입니까? 몸에 짊어진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저는 지난 50년 동안 항상 순복음교회를 몸에 짊어지고 살았습니다. 잘 때도 순복음교회를 짊어지고, 깰 때도 순복음교회를 짊어지고,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여행할 때도 항상 순복음교회가 내 어깨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순복음교회를 걸머지고 50년의 세월을 지냈습니다. 순복음교회를 걸머진다는 것은 내 모든 관심이 순복음교회에 있고 내가 순복음교회에 그만큼 친밀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이 날 위해서 죽은 그 심각한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내가 굉장히 친밀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은 이유가 뭡니까? 왜 내가 예수의 죽음을 항상 몸에 질어지고 살아야 됩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죄의 용서를 염려하기 때문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일생의 죄를 짊어지고 빚을 갚으므로 우리는 값없이 빚에서 해방되고 용서와 의로움을 얻게 되었으므로 예수의 죽음이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의 죽음이 내 관심사가 되고 예수의 죽음을 몸이 짊어지고 자고 깨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 부패한 삶이 청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마귀에 잡혀서 꼼짝을 못합니다. 세속적인 인생이요, 마귀의 종으로 살았는데 이 세속과 마귀에서 우리를 놓아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마귀를 멸하고 세속을 청산하고 우리에게 용서뿐 아니라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성령과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함을 공짜로 받은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몸에 짊어지고 친밀할 때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성령충만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과 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헛된 행실에서 값 주고 속량을 받았던 것입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행위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항상 몸에 걸머지고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또한 우리의 병을 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병을 주님께서 청산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가 상함 받기를 원하사 우리의 질고를 당케 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걸머지고 간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 죽음을 통해서 나의 마음과 몸의 병을 짊어지고 청산했다는 것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친밀해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았음으로 너희는 여러분 개인을 보고 말씀합니다. 나음을 얻었느니라. 이미 여러분은 법적으로 2천년 전에 나음을 입었습니다. 현재 여러분 몸에 붙어 있는 병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실제로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볼 때는 예수님이 다 청산해 버린 병이므로 거짓되고 헛된 것으로 알고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 원수 병마는 물러가라! 나와 상관이 없다. 이미 청산되어 버렸다고 우리는 늘 믿고 외쳐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진다는 것은 언제나 예수님이 내 병을 청산하고 치료했다는 것을 깨달음을 갖고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저주를 대속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에덴에서 쫓겨나올 때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생활이 고생스럽고 말할 수 없이 괴롭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제3세계 오늘날 그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수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 저주에서 해방시키려고 사람들은 노력을 해도 어느 정도 성공하는지 몰라도 문명국을 내놓고 난 다음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 인류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죽었다는 말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저주를 주님이 다 담당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항상 짊어진다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깊이 관심을 가지고 그 죽음을 통해서 나의 가시와 엉겅퀴 저주가 청산되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내게 다가오는 인생살이의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과 가난이 십자가를 통해서 청산 되었다. 그 사실은 내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 예수의 죽음 속에 나는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깊이 인식하고 그 사실을 친밀히 마음속에 알고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의 죽음을 대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죽어야 돼요. 저는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가 92살이 되셨을 때 할아버지는 영원히 살줄로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결코 세상에서 안 죽을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94살이 된 아버지, 어머니는 세상을 뜨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별 도리 없이 죽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한번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육신이 사라지는 것이지 그 속에 사는 영혼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영혼이 육체라는 옷을 입고 살다가 그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옷을 벗어 버리고 영혼은 새로운 영적인 세계 속에 들어가서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주님이 예비한 아름다운 천국에서 깨어나야지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지옥의 고통스러움 속에 떨어져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죽음에 이른 사람들이 가는 곳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영원한 기쁨이냐, 영원한 슬픔이냐. 영원한 즐거움이냐, 영원한 고통이냐. 둘 중에 한곳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기 위해서 당신이 지옥의 고통을 걸머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그 영혼이 사흘 동안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그리고 지옥의 세력을 멸하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다 썩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썩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영광의 약속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걸머진다는 것은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마음속에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지지 아니하면 그를 통해서 나타나는 용서와 의, 거룩함과 성령충만, 치료, 저주에서 해방, 아브라함의 복, 영생복락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을 통해서 용서도 받고, 의롭다함도 얻고, 거룩함을 얻고, 치료를 받고, 축복을 받고, 영생복락을 얻는 것이지 예수님의 죽음 아니고는 그것을 얻지 못하므로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항상 몸에 짊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 때도 예수의 죽음, 깰 때도 예수의 죽음,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일할 때도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최고 관심을 가지고 마음에 친밀하게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물건을 24시간 걸머지고 평생을 지낸다면 그것하고 굉장히 친해지지 않습니까? 예수의 죽음을 늘 몸에 걸머지고 있다는 것은 예수의 죽었다가 부활하심과 내가 친밀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당 내 천당,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분리 할래야 분리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도망을 쳐도 예수님이 우리 등에 얹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그리스도와 우리는 불가분하게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이 있어야 우리에게 생명이 있지 죽음이 없는 곳에 생명이 없습니다. 어떠한 공로를 세워도 수양과 도덕을 닦아도 연구를 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날 위해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생명이 되지 예수님 떠나서는 생명이 없습니다. 종교 좋지요. 철학 좋지요, 학문 좋지요, 수양과 도덕 좋지요. 훌륭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없습니다. 오직 생명은 날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가 끌어안고 짊어지고 의지할 때 생명이 내 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절로 12절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없는데 무슨 생명이 있어요? 예수님의 생명을 심지 않았는데 무슨 생명이 있어요?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 예수가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평생 교회 나와도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금식을 아무리 하고 철야를 아무리 하고 아무리 헌신해도 예수가 마음속에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의 죽음, 예수의 부활이 나와 하나가 되어서 예수의 죽음을 항상 몸에 짊어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50년 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항상 짊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자나 깨나 먹으나 안 먹으나 순복음교회를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나 깨나 마음에 안고 걸머지고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의지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생명의 원천인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 없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지고 예수 중심으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핍박도 당하고 손가락질도 당하고 고난을 당하나 우리는 결국에 예수와 함께 영원한 천국을 상속으로 받을 상속자인 것을 알고 마음속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물고기 가운데 연어는 큰 바다에서 3~4년 동안 살다가 알을 낳을 시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정확히 찾아오는데, 폭포를 만나도 포기하지 않고 뛰어 오릅니다. 그러다 보니 막상 태어난 강으로 돌아왔을 때는 온 몸이 깨지고 지느러미도 상해 거의 기력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알을 낳기 위해서 연어는 강 바닥에 가로 세로 1미터, 깊이 40센티미터 정도의 구멍을 또 팝니다. 그리고 2~3회에 걸쳐 7백 개에서 7천 개까지 알을 낳은 후 팠던 모래나 자갈로 그 자리를 덮어놓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알을 낳은 후에 연어는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연어가 죽고 난 다음에 그 알이 60일이 지나면 그 알에서 수백, 수천 마리의 연어 치어가 나옵니다. 연어의 삶을 통해 우리는 생명이란 죽음을 통해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연어가 죽어야 새끼들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연어가 죽지 아니하면 새끼들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태평양인 바다에서 우리 동해까지 와서 강을 타고 또 하천에 자기가 태어난 곳까지 찾아옵니다. 그 동안 돌멩이에 치이고 찢기고 곰에게 잡혀 먹기도 하고 새들에게 찢기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와서 자기가 태어난 그곳에 새끼를 낳고 자기는 그곳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60일 후에 새끼들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죽음과 생명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죽음만 있고 생명이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의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항상 몸에 짊어지라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살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서 온 몸의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져야 돼요. 예수 죽음이 있으므로 내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마음속에 예수 죽음을 내가 걸머지고 예수 죽음을 내가 의지하고 죽음과 함께 있을 때 내게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기 위하여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난다는 것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죽음만 걸머지고 있으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를 죽음을 걸머지면 예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용서와 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생명이 예수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입니다. 치료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활 영생 천국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걸머지면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지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걸머지라고 한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만들어 가지고서 내가 진짜로 등에 걸머지고 다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등에 걸머진 것처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날 위해서 십자가에 죽었는가 그 의미를 끊임없이 묵상하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루도 잊지 말고 예수님이 날 위하여 죽은 의미를 생각하고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깊이 예수님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 로마의 사형 가운데 죄를 가장 크게 지은 사형수는 참으로 고통과 두려움으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죽은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그 시체와 눈은 눈대로 코는 코대로 입은 입대로 몸은 몸대로 맞춰 가지고 같이 매달아 놓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므로 시체에서 썩은 물이 몸에 베어 들어와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선생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은 그 옛날 흉악한 죄수가 시체에 묶여서 시체와 더불어 같이 죽어가는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기록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후서 4장 10절의 말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우리가 끌어안고 그리스도와 함께 늘 죽음을 생각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도 어찌할 수 없이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죽으신 의미를 깊이 생각하여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고 죽음에 대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부활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생명이 있어야 돼요. 증거가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돼요. 씨앗이 심어지면 열매를 맺어야 돼요. 우리에게 용서와 의로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충만과 거룩함과 회개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에게 치료와 건강이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이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활 영생 천국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예수의 죽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을 끌어안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우리 아랫집에 학교가자고 제가 가면 아침을 먹는데 맑은 국물만 있는 죽을 먹어요. 그것을 먹고 힘이 없어서 허덕허덕하는데 그런데 그 윗목에서 볏가마가 한 3개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그 우리 친구 이름이 수진이인데 “수진이 아버지여, 수진이 아버지여, 이렇게 맑은 죽만 먹고 살아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저 윗목에 벼가 3가마니나 있는데 저것을 찌어서 밥을 해먹으면 어떻습니까?” 아이 숟가락을 탁 놓으면서 저를 정면을 보고서 “누구를 죽이려고 그런 소리하느냐? 저 벼 3가마니는 우리 가족의 생명이다. 봄이 오면 벼 이삭을 뿌려야 되는데 봄에 저것을 먹어 버리면 씨가 없어져. 종자 씨앗이 없으면 우리 식구들은 다 굶어 죽어! 지금 굶어서 고생하더라도 종자씨앗은 먹으면 안 돼!”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지금도 쟁쟁하게 울리고 기억나는 것입니다. 종자를 심어야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 종자가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의 종자는 뭡니까? 예수의 죽음인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이 우리 생명의 종자씨앗인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심지 않고는 종자씨앗이 없는데 무슨 새로운 생명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까? 종자씨앗을 항상 우리 마음속에 우리는 간직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늘 꿈 꿀 것은 내가 예수의 죽음을 마음속에 모시고 걸머지므로 내게 예수의 새로운 생명이 나타날 것을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상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유 있는 시간에 헛된 생각하지 말고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이 넘쳐 남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와 의로움이 들어와서 내가 변화 받고 의롭게 되는 나를 상상하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이 들어와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상상하고 내가 치료받아 건강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고 내가 가시와 엉겅퀴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모습을 상상하고 부활영생 천국을 얻는 것을 상상하고 꿈을 꾸고 기뻐하고 그를 믿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생명이 된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바라봄의 법칙으로 예수 죽음은 내 죽음이 되고,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된 것을 늘 마음속에 바라보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항상 바라보고 죽음에 의지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내 몸에 넘쳐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를 채운다는 것을 마음속에 상상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입으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생명 내 생명 늘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의 큰 지방마다 선교회를 설립하고 큰 희생과 겸손으로 복음을 전하여 중국 선교의 문을 연 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자신이 극심한 영적 빈곤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는 죄인이고 무력하고 무능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통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것을 알고 자기는 무능력해서 쓸데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 메카티가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받고 난 다음에 이 테일러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친구 메카티가 쓴 편지 내용은 “이 세상에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으면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 이름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 죽음이 내 죽음이 되면 예수 부활도 내 부활이 되는 것이다. 부활은 예수님이 내 속에 계시고 내가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내 힘으로 살지 않고 예수 힘으로 산다. 예수 힘으로 의롭게 살고 예수 힘으로 거룩하게 살고 예수 힘으로 건강하게 살고 예수 힘으로 저주를 이기고 살고 예수 힘으로 영생천국을 누리게 된다. 나를 의지하지 말고 내 안에 계신 부활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살아라.” 이것이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내 속에 예수님이 나의 생명을 살아준다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굉장한 기도의 힘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활력이 생겨서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을 중국에서 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이제 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가 여러분 속에 살아 있다고 믿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죽으시고 나와 함께 부활하셔서 내 안에 지금 사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명을 의지하면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TV를 보고 제게 그런 말을 합니다. “조목사님 몸이 요사이 약하고 그래서 부흥회도 안 나가고 해외여행도 안하고 선교도 안한다고 하는데 TV에서 설교하는 것 보면 빨갛게 거짓말 아니냐? 말도 똑똑하고 기운차고 괜찮은데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 강단에서 일어섰을 때하고 강단에서 내려가는 조용기는 다른 사람이다. 강단에 내려 갈 때는 조용기가 내 힘으로 살기 때문에 힘이 없고 지치고 피곤하고 능력이 없지만 강단에 올라올 때는 내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업고 사는 것이므로 예수의 생명으로 설교한다. 저는 저의 스스로를 봐도 언제는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강단 밑에 내려갔을 때 얼마나 힘이 없고 지치고 피곤한데 강단에 올라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고 새로운 능력과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나타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우리가 인지하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들어오면 우리 생애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김준호 씨는 대학교 2학년 때 기술 병으로 군에 입대하여 탱크 위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목을 다치게 되어서 전신마비가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남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면 못살게 되었습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그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매일 절망과 슬픔 가운데 자신을 저주하며 죽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휠체어를 탄 여자 전도사님 두 분이 그에게 와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평안을 얻으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고통스런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는 분으로 참 구세주가 되십니다." 가만히 보니까 그 여자 전도사 둘이도 서서 걷지 못하는 휠체어에 탄 불구자임에도 불과하고 얼굴이 태양같이 빛나며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를 믿어 새사람이 되라고 해서 거기에 감동을 입고 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칠흑 같이 어두웠던 그의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의 빛, 생명의 빛이 비춰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자 광명한 빛이 마음속에 들어오고 삶의 기쁨이 용솟음치며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희망찬 생각이 들어 왔습니다. 게다가 그가 입원하고 있던 병원에 간호 실습생으로 나온 아가씨와 사랑을 하게 되었고, 병원 원목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소명을 주셔서, 그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게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입술이 부르터서 몇 번이나 좌절하고 포기하려 했지만 아내의 격려와 그 자신의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으로 결국 놀라운 예술의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그린 동양화와 서예 수십 점을 모아 드디어 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절망과 좌절의 운명 속에서 고난을 딛고 일어선 성공적인 모습의 작품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사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완전히 버림받은 사람인데 그 속에 다른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용기와 힘과 능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생명의 영양분이 되신다고 생각하니 황송하지요. 내가 밥 먹듯이 예수님의 살을 먹고 물 마시듯이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산다니 이렇게 황송할 수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날 위하여 그 살을 찢어 양식으로 주시고 피를 흘려 음료로 주셨으니 나는 감히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황송한 일인 것입니까? 성찬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매시간 마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의 몸을 먹고 항상 예수님의 피를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뿌리가 예수님의 죽음에 뻗어있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결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와 하나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같이 되어서 죄인이 되고 고통을 받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할 때는 자기와 같이 되기 위해서 부활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와 같이 되어서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고 예수님의 거룩함이 나의 거룩함이 되고 예수님의 치료함이 나의 치료함이 되고 예수님의 축복이 내 축복이 되고 예수 천당이 내 천당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와 같이 되기 위해서 오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가서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수양도 아니고 도덕도 아닌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처럼 되어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도 예수님처럼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이제는 의롭게 되고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되고 예수님처럼 건강하게 되고 예수님처럼 축복받게 되고 예수님처럼 천국백성이 되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항상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위해서 죽은 예수님, 우리는 예수 위해서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과 생명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그것이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의 생명의 씨앗이 된 예수님 우리가 항상 몸에 짊어지게 도와주시옵시고
그리스도를 떠나서 존재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예수의 죽음을 몸에 받아들이므로
예수의 부활에 참여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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