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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문.....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686 추천 수 0 2010.02.17 16: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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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8:17-22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기독교 신앙은 막연한 교리와 의식으로 되어 있지 않고 전능하신 절대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기초로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이런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대학시절에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연주회에 베이스 파트의 일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한 학기 내내 합창연습을 한 후 이제 연주회를 며칠 앞두고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때 오케스트라가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세계 굴지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한 카세트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각 파트와 악기의 소리를 대강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게 되자 카세트를 통해서 들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생음악이 얼마나 박진감 있고 웅장하던지 그 때의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무대에 서서 연주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 앞에서 메시아를 합창할 때는 마치 하늘나라에 온 듯한 감격을 느꼈습니다. 메시아 공연을 직접 들어보지 못하고 오디오를 통해서만 들어본 사람들은 그 생생하고 웅장한 느낌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연주에 직접 참여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감격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단지 듣고 배워서 아는 것과 하나님을 직접 만나본 것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직접 만난 감격을 알고 계십니까? 도대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본문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난 야곱

  야곱은 자기를 죽이겠다고 벼르는 형을 피해 집을 떠나 먼 길을 가다가 빈들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꿈에 하나님을 직접 만났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약에서 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계시를 주시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꾼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꿈을 꾸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말씀하시던 구약시대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꿈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배워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신 것을 간접적으로 들었으며, 아버지 이삭에게 하신 말씀을 간접적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에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에게 직접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꿈을 통해서 야곱을 생생하게 직접적으로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야곱의 생애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미지근한 신앙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인류의 역사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통치자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기보다는 목사가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들으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어느 정도 은혜를 받고 사람이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두려움과 긴장감과 감격과 영광은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설교를 듣지만 여유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듣습니다. 때로는 주보에 낙서도 해가며, 딴 생각도 잠깐씩 하면서, 또는 아기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면서 설교를 듣습니다. 바쁜 일이 있으면 예배를 빼먹기도 합니다. 다음 주일에 또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에서 은혜를 받지 못했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긴장감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신앙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그의 믿음에는 능력이 없고, 기도에는 확실한 응답이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런 신앙으로 만족합니다. 구태여 깊이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내세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만일 내세가 있다면 이렇게 적당히 믿는 것으로 천국에 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4-16) 긴장감이 없는 신앙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절도와 긴장감이 없으면 보기에 좋지 못합니다. 만일 처녀가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아무데서나 다리를 뻗고 하품을 해댄다면 아무리 예쁘게 생겼다 해도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긴장감이 없고 미지근한 신앙은 좋지 못합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되면 이런 신앙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만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설교를 듣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 깊이 파고 들어와 박힙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일대일로 나를 마주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못된 죄인인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피하거나 숨을 수 없음을 느낍니다. 더 이상 남을 쳐다보며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정없이 몰아붙이십니다. 같은 목사가 설교하고 있는데 다른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제 나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몸을 바로 가누기도 힘들 지경이 됩니다. 예배가 끝나도 쉽게 일어날 수 없게 됩니다.

  이사야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1-5) 그는 하나님을 직접 뵙고는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하고 충격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 가운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데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계속해서 도망 다니는 성도는 기어이 이런 일을 당하고서야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이며 소망 없는 자인가를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만 사모하며 바라보는 성도는 그렇게 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만나는 엄청난 경험은 당신의 신앙과 생애를 완전히 바꾸어놓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문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하나님 만난 것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16-17절) 그는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하나님 만난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 만난 그곳을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여 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축복해주신 것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그곳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전의 실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늘의 문이 되십니다. 우리는 하늘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오늘 우리는 하늘의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문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야곱의 경우보다 하나님 만나기가 훨씬 쉽습니다. 만일 당신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온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열망하면서 하나님께 나아온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당신을 직접 만나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특별히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에 얼마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하나님 만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름을 부음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후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베개했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은 후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18-19절) 여기서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고, 그 모든 말씀을 다 이루실 때까지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는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이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늘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기로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도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주일 지키는 것이나 십일조 드리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고 나니 구속당하는 일과 불편한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에 다른 일도 못보고, 세상 친구들과 맘껏 놀지도 못하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니 손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이기적인 생각입니까? 우리는 아무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야곱의 간구

  야곱은 이렇게 돌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0-21) 야곱의 이 말은 마치 하나님께 조건을 거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야곱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며 그의 앞길은 막막했습니다. 홀로 빈들에 있는 야곱의 처지는 그야말로 외롭고 비참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일을 해결해주시면 더욱 더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다짐합니다. 이것은 조건을 거는 기도가 아니라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아무 소망도 없는 처지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고 낙심하게 될 때에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결단하며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기를 힘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고 사는 일  이전에 믿음으로 살기를 힘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오늘 당신에게 있는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 섬기기가 힘드십니까? 그렇다면 야곱처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일에 방해를 받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맘껏 하나님을 섬기게 해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야곱의 서원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 후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니라”(22절)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런 은혜를 주시면 하나님께 헌신하며,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당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자기의 소유가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번 돈을 다 써도 모자란데 십일조를 바치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이제 자기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바치는 성도는 나머지 돈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생활하는 성도의 삶을 지켜주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십니다. 십일조 드리기를 새롭게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면서까지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뛰어다니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곤고한 인생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하고 능력 있는 삶을 원하십니까? 

  우리의 신앙이 막연하고 미지근한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지는 않았습니까?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나주시고 완전히 장악해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굳게 다짐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되, 직접 강하게 만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00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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