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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6: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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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참고 : | 상원교회 |
인도의 항구 도시 캘커타에 배를 여러 척 가지고 국제 무역을 하는 선박 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 본부를 둔 어떤 선교 협의화의 캘커타 지부에서 전도 사업을 위하여 수고하는 감사 전도 인이 선박 왕을 찾아와, 선교비가 필요하니 좀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간곡한 얘기를 하였습니다. 이 선박 왕은 이 구실 저 핑계로 자꾸 사양을 하다가, 나중에 마지못해 어렵게 250달러 짜리 수표를 한 장 끊어주었습니다.
전도인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비서가 들어와 급한 전보가 왔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 든 그 선박 왕은 갑자기 얼굴빛이 흐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아하, 좋지 않은 소식이구나’하고 전도 인은 직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전도 인은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박 왕은 전보를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짐을 가득 실은 배 한 척이 인도양에서 그만 암초에 걸려 좌초되고 말았다는군요. 더욱이 풍랑을 만나 배와 짐뿐만 아니라 많은 선원들도 모두 실종이 되었답니다. 내 재산의 거의 모두가 그 배에 있었고, 이번 일이 잘 되어야 모든 일이 순조로이 해결되는 것인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선박 왕은 “선생님, 조금 전에 드렸던 그 수표를 다시 돌려주시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아, 네, 드리죠. 아무렴, 드려야죠. 어려운 일을 당했으니 뭐 엄두가 안 나시겠죠.”전도인 어렵게 받은 수표 250달러를 되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 든 선박 왕은 잠시 자기 책상에 앉아서 곰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250달러 짜리 수표를 찢어 버리고 새로운 수표를 하나 건네 주는 것이었습니다. 보니까 1,000달러 짜리 수표였습니다. 깜짝 놀란 전도 인이 물었습니다. “아니, 이거 잘못 쓰신 거 아닙니까? 큰 사고를 당해 경황이 없을 텐데, 아까는 250불을 주셨다가 되돌려 받으시더니 이제 다시 1,000달러 짜리 수표를 끊어주시다니……”
“옳게 적은 겁니다 ……. 이것은 하나님의 경종입니다.”그러면서 선박 왕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런데 사실은 저도 크리스천입니다. 사업이 잘 되므로 교회를 멀리 하고, 사업이 잘 되어 재산 불어나는 재미에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 돈을 하늘 창고에 쌓아 두었더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부양하며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일이었겠습니까. 그 돈이 이렇게 없어졌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경종입니다. 이제부터는 여생을 하늘 차고에 많이 저축해 두는 생활을 하려고 결심했습니다.
부디 이 수표를 받아 가십시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좀이, 둘째 동록이, 셋째 도적이, 해하고 구멍을 뚫고 도적질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조심하고 약을 쳐도 옷이고 뭐고 뚫지 못하는 물건이 없습니다. 짠 소금 속에도 병균이 있고, 강철과 금강석도 역시 부패 부식을 합니다.
동록이라는 것은 구리에 생기는 푸른 녹을 말하는 것인데, 그 속에는 아주 강렬한 독성이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놋그릇을 사용할 때는 이 동록을 닦아내는 것이 주부들의 큰 일거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또 한번쯤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아보지 않은 분은 아마 드물 것입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첫째, 땅의 보물은 영원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땅의 보물 중 가장 값지고 귀한 것으로는 다이아몬드를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플로렌이라고 하는 화합물은 더욱 고가라고 합니다. 탄소 원자 60개가 축구공처럼 배열 ·결합된 이 물질은 1990년 9월 미국에서 인공적으로 제조된 것으로, 초전도 고분자 촉매, 컴퓨터 기억 소자 등에 사용될 수 있는 신소재인데, 1g당 가격이 무려 30,000,000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비싼 물질도 그 원료는 연필심과 같은 흑연 분말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비싼 보물로 여겨지는 것들은 실은 전부 연필 가루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무슨 에틸렌, 폴리에스텔이라고 부르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화학 섬유 물질들도 알고 보면 모두 석탄, 석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왕년의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어느 날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수많은 보석들이 사실은 하찮은 것임을 깨닫고 모두 치워 버렸다고 랍니다. 세상의 값비싼 보물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 자체로서 그러하고, 또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그러합니다. 사람의 마음 여하에 따라서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단단하다는 다이아몬드, 그래서 드릴로 암반을 뚫을 때에 드릴의 끝에 붙이는 것이 바로 이 다이아몬드, 곧 금강석이지요. 그런데 그 소량의 다이아몬드 값이 1억 원이라는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비쌀 정도로 단단한 다이아몬드도 기차 바퀴 밑에 놓으면 다른 것보다 쉽게 박살이 나 버려요 강철은 늘어지거나 휘어지기는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조각조각 가루가 되어 부서져 버리고 맙니다. 결국 땅 위의 것은 아무리 단단한 것일지라도 닳아지고 또 부식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땅의 보물은 그 자체로 영원하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 다음으로는 이런 보물을 가지는 소유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평생 60∼70년을 살다 가면 그만이지요. 그런데 죽고 나면 그의 소유이던 보물도 사라지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심판이 땅의 모든 것들을 영원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사람은 물론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물질까지도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헤아림에 의해서 영원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는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새것이 없고 다 없어질 뿐이니까, 그것을 영원히 살 것처럼 땅위에 쌓아 두지 말라는 거죠.
하나님은 땅에 쌓아 둔 보물은 지켜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는 가는 길을 포기하는 자들이라고 말했으며, 시인 번스는 이 세상의 보화는 강물 위에 떨어지는 눈과 같아서 잠깐 희게 보이나 곧 사라져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늘에 쌓아 두면 그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시민증은 우리의 안쪽 주머니 깊이 넣어 둔다고 어떤 분은 말하고 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면 좀이 슬지 못하고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한다고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영원한 보화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 교인들은 마땅히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생활의 가장 소중한 요소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인데, 이 헌금은 첫째 구령 사업에 쓰여집니다. 곧 불쌍한 사람을 돕고 복음 전도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운영하는 모든 진행 비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노력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바치는 것이야말로 충성 봉사요, 그것이 바로 하늘 창고에 보물을 쌓아 두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필리핀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어느 선교사의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교 사업이 너무 고생스러워서 그 선교사의 부인은 아이를 분만한 후 영양실조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는 어느 날 큰 맘 먹고 시장에서 닭 한 마리를 사 왔습니다. 푹 고아서 부인의 보신을 시키려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만 잡기 직전에 닭을 놓쳐서 닭을 잡으려고 이 마당 저 구석을 담을 넘어 지붕까지 쫓아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도망가는 닭의 뒤를 쫓아다니는 선교사의 마음은 ‘주여, 저 닭을 잡게 해주옵소서’하고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지금과 같은 마음과 열정으로 전도해 보았던가’하는 생각이 들자 선교사는 쫓던 닭을 그냥 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부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당신 말씀이 옳아요.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합시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두 부부는 서로의 손을 잡고 “주님, 주님의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오늘과 같이 땀 흘리는 종으로 삼아 주옵소서. 주님의 잃은 영혼을 찾으러 이와 같은 열심을 가지고 이 고을 저 마을을 다니게 하옵소서. 종에게 믿음과 지혜, 사랑과 슬기, 그리고 인내를 더하여 주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장에 가 새로 닭 한 마리를 사서 몸을 보신하고 나니 힘과 용기가 솟구치더라는 글을 제가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깨닫는 믿음, 주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귀한 일에 쓰여지고자 애쓰는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보물을 하늘 나라에 쌓아 두는 생활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환자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60이 지나니까 몸에 고장이 생기네요.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는데 왜 이럴까요?”그러자 의사가 “생각해 보세요.
거 참 옳은 얘기예요. 사람인들 고장이 안 나겠어요. 자동차도 4,5년 쓰면 구식이 되고, 집도 얼마간 살다보면 고장이 납니다. 모든 물건이 다 그래요. 사람이 고장 안 나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인생이 60부터라고 하는 말은 첫째, 60이 지나면 철이 든 다는 겁니다. 60전에는 철이 안 들어서 실수도 있고 화도 부려 보고 천방지축 날뛰어 보고 하지만 60이 지나면 철이 좀 든다는 말입니다.
둘째, 60이 지나면 우리 몸이 기계가 아닌 고로 고장이 나니 조심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 조심해서 썼으면 그런 고장이 덜 날텐데, 60이 들어 철이 들고 보니까 몸을 조심하게 되고 그래서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셋째, 60이 지나면 갈 날이 멀지 않기에 신앙심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신앙을 갖게 되어 주를 믿는 성도들은 하늘 나라를 바라보게 되고 그래서 인생은 60부터입니다.
우리가 경청해서 들을 만한 얘깁니다.
어떤 장로님이 눈이 나빴어요. 젊었을 적에는 눈이 고기 눈알처럼 밝았는데(그래서 눈알을 많이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합니다), 60이 지나니까 눈이 침침해져서 안과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시력 검사를 하고 나서는 의사가 깜짝 놀라더래요. “아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예, 환갑이 지났습니다.” “아이 구, 이 눈 가지고 지금까지 지내왔다는 게 기적입니다. 이 눈은 예전에 벌써 실명해서 맹인이 되었을 눈입니다. 이 눈동자의 세포 조직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아니, 그래 직업은 뭡니까?” “나는 평생 운전만 했어요.” “예? 더구나 운전을 어떻게 했습니까?…… 혹시, 무슨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예, 난 교회 장로입니다.”
“옳거니, 하나님께서 장로님 귀한 직분 잘 감당하시라고 선물로 주신 것이었군요.” 그래서 이 장로님은 눈 검사하러 갔다가 다시 한번 큰 진리를 깨닫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분이 장님이 되었다면 어떻게 운전을 하고 어떻게 처자식을 벌어 먹였겠으며, 어렸을 때부터 장님이었으면 어떻게 배우고 공부했겠습니까. 지금까지 지팡이 짚고 더듬거리며, ‘한 푼 줍쇼’하며 얻어먹는 거렁뱅이 신세밖에 더 되었겠습니까. 이런 감사를 찾자면 우리에겐 한량이 없는 것입니다.
로버트 피쳐 목사님은 원로 목사님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목회를 하다가 은퇴를 했어요. 은퇴를 했지만 자신이 맡았던 그 교회에 계속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리처드 피처 목사님이 그 뒤를 이어 담임 목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집은 교회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전임 목사님을 교회에 안 사시게 하는 것은 후임 목사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예배를 드릴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들 목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버지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지요. 겨우 예배를 마치고 나니 그제 서야 허겁지겁 온몸아 흙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급한 숨을 몰아쉬면서 아들 목사 내외가 나타났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사고를 만나서 제 시간에 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무사한 것이 주님께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보다 더 감사할 거리가 있다.” “아니 아버님, 저보다도 더 큰 사고를 당했습니까?”
“아니다, 난사고 당한 거 없어.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고 시간 맞춰 출발하여 예배 시작 10분전에 도착해서 준비 기도하고 네가 안 와서 대신 예배를 인도한 것 뿐이야. 그리고 예배를 잘 마쳤어. 이것처럼 감사한 일이 어디 있냐. 너보다도 내가 더 감사하다. 사고를 당하고서 감사하는 것보다 사고 안 당하고 감사하는 것이 더 기쁘지 않겠느냐?.”
여러분, 이것은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자면 오늘 주님 전에 나오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을 사모하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는 김점순 집사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한 몸으로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를 믿게 된 것만 해도 너무나 감사한일이지요.
어떤 사람이 도둑을 맞고서 감사했다고 해요. 도둑을 맞되 그만하게 맞은 것이 감사하고, 자신이 거기 있었으면 목숨까지 위태로웠을지도 모를텐데 다행이 거기 없어서 그것이 감사하고, 그리고 그 도둑에게 그것이 마지막 도둑질이 되게 해달라고 지금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게 되니 감사하고, 그리고 앞으로는 도둑맞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경각심이 생겨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7,1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었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법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또 잠언 15장 6절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에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자, 보세요. 의롭게 예수님을 믿고 사는 집의 보물은 건강이나 가정의 화평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악한자의 손에 든 칼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헤치고 돈을 훔치는 흉기로 쓰여지니, 건강이 그렇게 쓰이고 물질이 그렇게 쓰여집니다. 또한 악한 자에게는 돈이 있어도 나쁜 일에 쓰여집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의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주의 교단에 맡겨 주신 직분을 감사히 받기 바랍니다. 시간 버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합시다. 물질 바치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지 맙시다. 나에게 귀한 직분 주시는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이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이 직분을 토해 우리 가정의 모든 가족들에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누가복음 17장 2절의, 문둥병자의 감사에 대한 구절을 생각해 봅시다. 아홉 명은 가 버리고 한 사람만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떤 주석은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열 사람이 각각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나환자는 진짜 나았는지 확인해 보자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둘째 나환자는 재발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셋째 나환자는 천천히 가서 인사드리자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넷째와 다섯째는 이제 보니 내 병은 나병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여섯째 나환자는 식구들에게 먼저 보이자며 서둘러 갔습니다.
일곱째 나환자는 주께서 나를 위해 특히 뭐 애쓴 거 있나 하는 말 한 마디를 던지며 갔습니다.
여덟째 나환자는 지금 가진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아홉째 나환자는 사실 나는 회복 단계에 있었다고 생각하며 갔습니다.
그리고 열 번째 나환자만이 주님 은혜에 감사 드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영육간에 끼쳐 주신 감사가 뭐 있나 하며 어둡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맙시다. 저와 여러분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로 하여금 교사의 직분, 성가대원의 직분, 구역 장, 강사, 권찰을 주시니 감사하고 나를 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담스럽게 뭘 해야 되겠는데 하면 어느 부서도 짐이 됩니다. 달가운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작은 일에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동 문학가 최호섭 목사님의 시집 중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
“내가 벌레처럼 땅을 기어다닐 때 눈을 들게 하시고 물질의 사슬에 매일 때 쓴 잔 주어 경고하시며 하잘 것 없는 감정의 노예가 될 때 십자가 바라보며 반성할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내게 호흡할 수 있는 날 연장해 주셔서 또 한번 단풍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시고 일할 수 있는 기회와 회개할 수 있는 여유, 사랑할 수 있는 시간과 배울 수 있는 나날, 주님 뜻 조금 더 이룩할 수 있는 은덕 주시니 감사합니다. 불황 속에서도 이만큼 살아가게 하시고 실수와 실패가 있어도 다시 일어나는 힘을 주시므로 눈물 속에 아주 빠지지 않으며 피곤이 겹치고 누웠을 때도 나를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나로 하여금 감사한 마음을 잠시도 잃지 않게 하시고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할 수 있도록 지혜 주시옵소서. 아멘.
(199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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