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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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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9. 6. 성찬주일 4부설교 |
할렐루야~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와 교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신분이 같아야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과 사람은 신분이 완전히 다르므로 교제가 되지 않습니다.
데미안 신부는 벨기에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19세에 예수님을 영접한 후 선교사의 사명에 불탔습니다. 1873년 33살의 데미안 신부가 하와이(State of Hawaii)에서 선교생활을 9년 째 하던 해에, 당시 극성을 부리던 전염병인 나병이 심각하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전염병인 나병을 막기 위한 해결책으로 환자들을 몰로카이 섬으로 격리시켰는데, 이 때 데미안 신부는 자진해서 몰로카이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몰로카이 섬(Moloka?i)에는 나병 환자들로 악취가 심하고 얼굴과 손발이 썩어 들어간 환자들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좌절과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데미안 신부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병을 치료해 주고 도움을 주고자 원했지만 몰로카이 섬에 있는 나병 환자들은 데미안 신부 근처에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같이 대화를 하려고 해도 대화도 안오고 교회 예배도 참석 안합니다. 데미안 신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안합니다. 데미안 신부는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그때 성령께서 그 마음에 말하기를 “너도 나병환자가 되면 어떻겠느냐? 신분이 같아야 네 말을 듣는다. 너는 건강한 사람이고 저들은 나병환자들 아니야. 그러니 너의 말을 들을 턱이 있느냐. 네가 정말 저들을 사랑하면 너도 나병환자가 되라!” 참으로 그 말을 듣고 그는 고민하고 괴로워 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좋습니다. 나도 나병환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얼마 있지 않다가 데미안 신부는 보니까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손발이 썩어 들어가고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술 취하고 싸우고 무질서하고 요란한 나병환자들이 모인 촌에 들어가서 “나병환자 형제, 자매 여러분, 나도 여러분 같은 나병환자입니다. 이제 나와 함께 우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천국으로 가십시다.” 그가 복음을 증거할 때 모든 사람들이 그의 푸석푸석한 얼굴, 썩어져 가는 손발을 보고 “아~ 우리의 친구로구나. 우리와 똑같은 나병환자로구나.” 그래서 신분의 동일성을 느끼자 데미안 신부의 말씀을 듣고 모두다 예수님을 믿고 그 섬 구석구석이 정돈되고 절망과 고통의 땅인 몰로카이 섬은 희망과 사랑과 생명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1889년 데미안 신부가 숨을 거두었고 데미안 신부가 있던 성당 주변은 오늘날 미국 국립공원으로 꾸며지고 세계인의 성지순례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서로의 처지나 신분이 같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이 처음에는 온전한 데미안 신부를 거부했지만, 그가 그들과 똑같은 나병환자가 되었을 때는 동일한 신분을 느끼고 같이 일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신분으로서는 사람과 대화가 되고 교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어떻게 대화가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과 교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고 사람의 신분으로 태어나서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하고 교제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너무나 신분적으로 차이가 있으므로 그대로는 교제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사람의 신분으로 오셔서 우리와 교제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게 되신 것입니다.
<본론>
1.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자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까? 어떤 특정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까? 어떤 분을 하나님이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십니까? 지위의 고하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위가 아무리 높은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다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빈부의 차이가 문제 아닙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하나님은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민족과 피부색이 문제가 아닙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회색인이든 피부의 색깔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2절로 13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민족과 피부가 같거나 다르거나 관계할 필요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과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국가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보면 국회의원의 40%가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교회 와보면 지위도 없고 권력도 없고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많은데 이들도 예수 믿는 신자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최고의 지위를 지닌 자나,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자나 상관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하여 지위 고하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외모의 추와 미와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너무 추하게 생겼으므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피를 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돌보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혈통을 통해서 구원한 것도 아니고 육정을 통해서 구원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직접 태어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에 있는 말씀처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미쁘다는 것은 성실하다는 말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과 교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 교제의 열매
교제가 있으면 어떤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교제를 하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서로 교제하게 되면은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 오는 사람도 자주 만나고 같이 식사하고 대화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으면 서로를 이해하게 돼요. 내가 저 사람을 알고 저 사람이 나를 아는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우리는 마음을 같이해서 대화를 하면 우리가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2절에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서로 이해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교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남자는 사냥꾼으로, 여자는 집과 자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그 역할을 해 왔습니다. 사냥꾼은 비바람 속에서도 짐승의 발자취 소리나 음성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의 성향은 자기가 몰두하는 일이 아니면 귀담아 들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소리도 듣고 산울림도 듣고 새소리도 듣고 그러면 자기가 잡아 가야 될 짐승의 소리는 못들어서 짐승을 못 잡습니다. 모든 다른 소리는 제껴 놓고 짐승 소리만 귀를 기울여서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수꾼의 역할을 해온 여자들은 집 안팎의 사소한 일 모두를 알아야만 가정과 자식들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와 달리 한꺼번에 많은 일에 관심을 기울여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의 성향은 서로 상반되게 발달되어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남자들이 집에 돌아오면 말을 안합니다. 밥먹고 가만히 있고 텔레비나 보고 신문보고 부인이 무슨 말을 해도 가만 앉아서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어휴 사람이 사람답게 보이지 않나. 왜 말에 대답을 안하노?” 그래도 고개만 끄덕끄덕 하고 정말로 말 안하는 사람은 두마디 밖에 안합답니다. “밥줘.” “자자.” 남자들은 한곳에 집중적으로 마음을 두고서 일을 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여러 것을 다 관심을 가지고 알고 있는 부인과의 대화에 상대가 안 되어서 상당히 어렵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돕는 여자를 돕는 배필로 아담에게 주었으므로 두 사람은 같이 살아야 됩니다. 어떻게 살까요? 대화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통이 될 수 있도록 대화를 많이 해야 되기 때문에 남자들이 아내의 말을 많이 들어주고 그에 대한 대꾸를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양보를 하고 대화를 통해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가 있어야 서로 동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서로 교제가 있어야 이해를 하고 그 다음 동정을 하지요. 아무 교제가 없으면 동정이 안되는 것입니다. 상대편의 생활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이해를 못하는데 어떻게 동정을 하는 것입니까?
빌레몬서 1장 5절로 6절에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믿음으로 교제하고 서로 이해하게 되고 서로 동정하게 되면 믿음이 더 자라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사람과 교제하면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되고 잘못된 일에 같이 동정을 해서 나쁜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양육할 때 좋은 친구를 사귀도록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들과 악한 것을 이해하고 악한 것에 서로 마음을 동정해서 악의 길로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기를 때 시장터 곁에 자식을 기르니까 얼마 있지 아니하여 맹자가 “이것 사세요. 물건이 쌉니다. 이것 사세요. 이것이 진짜입니다.” 그러고 다닙니다. 엄마가 안되겠다 싶어서 고요한 공동묘지 곁으로 이사를 가니까 얼마 있지 않다가 “아이고... 아이고... 어찌 나는 살꼬...” 통곡을 하는 그런 장난을 합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엄마가 서당 근처에 집을 옮겨 가니까 그때부터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한자의 문자를 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와 교제하는가에 따라서 이해와 동정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동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 교제해야 사랑하게 됩니다. 교제도 안하는데 사랑할 턱이 있습니까? 서로 이마를 맞대고 모든 일에 교제하면 마음속에 사랑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을 하자면 우리가 교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서로 교제하고 구역예배 서로 교제하고 봉사생활해서 서로 교제하고 그러면 이해와 동정이 점점 쌓여지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냥 무조건 하고 사랑하라고 한다고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교제가 있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결혼할 때 교제 없이 결혼했습니다. 그저 부모가 정해준 대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택해서 부부가 되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그런 것이 없어요. 요사이는 남녀가 1년이고 2년이고 3년이고 서로 교제를 통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 동정하게 되면 사랑이 싹트게 되고 그래서 결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를 해야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어 주세요. 어떻게 믿습니까? 정치계절이 대게 오면 이름 석자 모르는 국회의원 될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서 “나를 믿어 주십시오. 나를 위해서 한 표를 찍어 주십시오.” 하는데 뭘 했는지 알아야 믿어 주지요. 도둑놈인지 사기꾼인지 올바른 정치인인지 선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요? 교제를 해야지요. 평소에 국회의원으로 나오기 전에 그 동리나 그 도시에서 주민들의 유익을 위해서 많은 선한 일을 하고 착한 일을 해서 교제가 되면은 아~ 그 사람을 이해하고 동정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교제해야 협력이 되지요. 일하는데 교제가 안되면 협력이 안되는 것입니다. 서로 잘 알아야 손을 같이 붙잡고 협력하지요.
빌립보서 1장 27절로 28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우리가 한 마음으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 교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작가 은희경 씨의 "관계"라는 글은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공감을 줍니다. 그 글은 이렇습니다.
“지금 눈앞의 저 낯 모르는 사람이 피를 콸콸 쏟는다 해도 몇 분 후면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잊어 버립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계기로 그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가 고개만 조금 숙여도 내 가슴은 미어질 것이며, 그의 시선이 가는 방향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할 것이다. 특별한 사람이란 없다. 관계에 의해서 특별해질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서로 관계가 없으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무슨 상관 있습니까? 우리가 신문지상에 보면 교통사고가 나거나 자연사태로써 목숨을 잃고 집을 잃는 기사를 읽습니다. 홍수가 나서 동네가 떠내려가고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신문에서 읽어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내 부모나 형제나 자식에게 다가오면 나하고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에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여러분 교제해야 서로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지 교제 없이는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예수님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 교제의 방법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잘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영감을 주셔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도 아무 관심도 없던 사람도 마음에 성령이 임하시면 감동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령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 흘리신 구원을 우리에게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믿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님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지 아니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어떻게 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안하기 때문에 성령이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은 바람과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온 보혜사로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셔서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를 전혀 나타내지 않습니다. 항상 꽁꽁 숨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으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드리고 성령께 의지하고 바라면 성령은 숨어 계시면서도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김우현 씨는「하늘의 언어」라는 책에서 방언이야말로 하늘 문을 여는 "하늘의 언어"로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유익한 하나님이 예비하신 언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우현 씨는 방언을 통해 자신은 물론 주변 인물들이 변화되는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방언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영적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방언을 말하고 기도하는 체험을 하면 할수록 개인과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것으로, 방언은 신앙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체험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언은 성령께서 영으로 비밀로 기도하는 것이므로 사탄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방언은 사랑의 비밀을 하나님께 고하고 나누는 밀어입니다. 사탄의 방해 없이 아버지의 심장으로 곧바로 가는 길이 방언입니다. 방언은 성령님의 역사에서 가장 기초이며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가 우리 신앙생활에 이처럼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마귀도 알아들을 수 없고 아무 이웃 사람도 알아 들을 수 없고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일을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서 많은 시간 방언으로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에게 방언을 못하게 합니다. 방언하기 싫어집니다. 방언하는데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시간 아는 말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므로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놀라운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공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우리가 주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성경을 떠나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 밖의 이야기를 하면 이단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우리 마음속에 영과 혼을 잘라내고 분별을 하게 하고 지혜를 주고 총명을 주고 모략을 주고 재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1850년 12월 6일 주일, 영국의 한 도시가 심한 눈보라 때문에 교통이 두절되었습니다. 그 날 한 청년이 날씨 때문에 집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예배당 목사님도 눈에 갇혀서 못 왔습니다. 몇 사람 안모였는데 평신도가 대신 일어나서 설교를 합니다. 얼마 안 되는 성도들을 앞에 두고 그 평신도는 더듬거리며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그의 설교는 더듬거리고 서툴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그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게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그 때 설교자는 그를 향해 “젊은이, 그대는 매우 곤고해 보입니다. 그럴수록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밑도 끝도 없이 자기만 쳐다보고서 고함을 칩니다. 이 청년은 그 때 이 말씀이 마음에 깊이 박히게 되어 일평생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가 바로 훗날에 위대한 설교자가 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위대한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주의 종이 된 것이 아닙니다. 설교도 잘 못하고 말씀도 잘 이해 못하는 집사가 눈에 길이 막혀서 못 온 목사를 대신해서 설교를 하고 자기를 가리켜서 정신 차리고 예수 바라보라. 그 말에 확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하여 그는 위대한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죽은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외우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도 살아 있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가 혀를 사용하므로 생사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말도 살아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살아있어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예수님을 깊이 교제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 집에는 골방이 없는데요.” 꼭 기도하려고 골방을 찾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골방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집중적인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텔레비도 틀어 보고 기도하다가 노래도 들어보고 기도하다가 서로 잡담도 하고 또 그리고 기도하고 이렇게 하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예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면 그를 통해서 주님이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늘 마음속에 우리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을 주장하여 유명하게 된 미국의 노만 빈센트 필(Noman Vincent Peale) 박사는 “누구든지 매일 아침 15분만 기도하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15분만 기도하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사실 아침에 15분 집중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상당히 오래 기도했다고 생각해도 5분입니다. 15분이면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우리 한국이 세계적으로 신앙적인 축복을 받고 피선교국에서 선교국이 되고 수많은 선교사가 외국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교회의 기도생활 때문인 것입니다. 주일로 기도하고 수요일도 기도하고 금요일도 기도하고 철야기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새벽기도에 일찍 나와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굉장히 가까이 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한국 사람처럼 열심히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통해서 하니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오늘날 이처럼 잘살게 된 것입니다.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면 단지 15분일지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고 예수님과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예수와 가까워지려면 교회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쓴다”.
교회 와야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시장에 가까워지려면 시장에 가야 되고 학문에 가까워지려면 학교에 가야 되고 예수님과 가까워지려면 교회 가까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로 20절에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오늘 우리는 만명 이상이 모였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주님이 안 계실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그러므로 우리 수만 헤아리지 말고 그 수에 예수님을 보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 자리에 계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는 성경이 예수님이 내가 너와 같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모든 짐을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가까워지고 소그룹 모임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가까워 질수 있는 것입니다. 구역예배 말입니다.
전도서 4장 11절로 12절에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두 사람 이상 세 사람이 되면은 굉장히 강력한 힘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열심히 두 세 사람 모인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복음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됨에 따라 가정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가정에서 모여서 함께 떡을 떼며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놀라운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오늘날 구역예배와 같은 소그룹 모임을 통한 교제와 같습니다. 우리교회도 서대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부흥을 할 때 구역예배가 굉장히 강력했습니다. 구역예배를 통해서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처럼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 요인은 바로 구역예배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 교회의 구역예배는 말로 다할수 없이 역동적이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읽고 서로 간에 신앙의 체험을 나누고 합심으로 기도함으로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 나가고, 성령 세례를 받고 문제가 해결되고 방언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습니다.
잠언 27장 17절에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그룹을 통해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와 더욱 가깝게 교제할 수 있습니다. 서로 친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시작한 소그룹 운동은 전 세계교회에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전 세계 교회가 소그룹을 만들어서 주중에 서로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므로 굉장한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도 두 세 사람 이상 모여서 사연을 알고 기도하니까 힘이 있지요. 교회 오면 내 사연을 다른 사람이 다 알아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 기도는.. 나를 위해서만 하지요. 그러나 구역예배에 가면 누가 병들었다더라. 누가 가정에 어려움이 있더라. 알지요. 그러니 그 소그룹이 힘을 합쳐서 기도하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강한 믿음을 갖게 되고 교회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4. 교제의 결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몸찢고 피 흘린 것은 너의 죄, 나의 죄, 우리의 죄를 대신 청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고 우리를 의롭다하고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교제하면 삶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는데 거룩 안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술꾼하고 교제하면 같은 술꾼이 되고 도박꾼하고 교제하면 같은 도박꾼이 되고 방탕한 자와 교제하면 같이 방탕하고 방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자와 교제하면 학문을 같이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하늘이 가까워지고 생활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하늘과 가까워지고 마음이 거룩하게 안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룩한 영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열매는 삶의 성결화인 것입니다.
월라드 F. 할리는(Willard F. Harley Jr.) 책에서 행복이란 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어부는 고기를 잡아서 바구니에 담는 것만 할뿐 아니라 그물을 씻어서 언제나 그물이 엉키지 않고 찢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없는 어부는 그물을 가지고 고기만 잡고 그물을 씻지 않고 그물을 깁지 않으므로 그물이 막히고 뚫어져서 나중에는 고기를 못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물과 같아서 항상 그리스도와 교제하므로 우리 신앙의 그물이 찢어지지 않도록 찌꺼기가 끼고 세상이 다가오지 않도록 우리가 정비를 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어떤 열매가 생기느냐. 심신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죄책과 좌절과 절망으로 마음이 병들고 또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병들고 인생과 병은 떠나지 않습니다. 늘 병으로써 사람들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병에서 우리가 확 틀어버리고 놓여나기 위해서는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좌절과 절망, 죄책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용기와 힘이 생겨서 병하고 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결심을 하면 병과 싸워서 이깁니다. 마음은 그 병을 이기거니와 마음이 상하면 누가 저를 이기겠느냐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이 들때도 “나는 예수 이름으로 괜찮다. 나는 예수 이름으로 살아난다. 나는 병을 이긴다.” 이러한 마음에 결심이 있으면 병하고 싸워서 약의 효과가 나오고 치료의 효과가 쉽게 나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에 결심이 없으면 병에 공격을 당할 때 나는 죽겠구나. 이제 나는 힘이 없다. 나는 못한다. 안된다. 이제는 주저앉았다. 이렇게 패배적인 의식을 가지므로 병에게 완전히 항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을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교제하므로 건강에 믿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교제하면 우리는 자연히 우리 생활 속에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못살고 가난하고 실패하고 어렵더라도 주님이 같이 계시면 주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있는 이 말씀대로 주님이 부유한 하나님인데 우리 때문에 이 세상에 가난하게 되어서 말구유에서 침대를 삼아 어린 아기 때 태어났고 목수의 아들로써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가난하게 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하게 되게 하려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주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나는 축복 받을 수 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가 있다. 나는 잘될 수가 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되고 또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면 부활 영생 천국이 마음에 뚜렷해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멀리하면 천당도 자꾸 멀어지고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 천국이 늘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로 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세상살이에 너무 골몰하고 취해 있어서 세상만 꽉 들어차고 주님이 오실 약속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므로 우리 영이 잠에서 깨어나서 항상 하늘을 쳐다보고 주님이 강림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눈물 흘리며 내 주님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항상 주님이 큰 소리로 고함을 치시면서 강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다 부활의 몸을 입고 살아남은 우리도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과 영원히 산다는 주의 약속이 우리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고 확실히 살아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성도의 교제"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성도 간에 어떻게 하면 형식적이지 않고 진정한 교제, 거룩한 교제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는 성도의 진정한 변화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이루어진다는 관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 간의 교제란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교제해야 참 교제가 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해야 그 교제가 참 교제가 되는 것이다. 참다운 교제는 결국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교제만이 성도간의 교제를 거룩한 교제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가족도 친구도 서로 늘 교제해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는 주님 안에서 할 때에 건강하고 진정한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 세상에 속해서 마귀와 교제하며 살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이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라.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성령과 말씀과 교회 출석과 소그룹 기도회와 이런 것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말을 하고 듣고 기도를 통해서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교제하므로 우리 영혼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되고 세상에서 자유를 얻고 병고침을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미래 천국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얻는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제가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 간의 교제를 두텁게 만들고 성도들 간의 교제가 또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두텁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족도 친구도 서로 늘 교제해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교제 안하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만나서 짧은 시간이라도 대화를 해야 돼요. 요사이 부모님과 자녀들이 가까워지지 않는 것은 교제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시간을 내서 자녀들과 같이 낚시도 가고 등산도 하고 놀러도 가고 교제를 해야 친해지지요. 그냥 집에서 옷 입혀 주고 밥 먹여 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제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요사이는 전화가 있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전화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으로 못 만나면 말로써 서로 교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이 이혼하고 파괴된 이유도 부부간에 서로 교제가 없습니다. 그냥 집에서 같이 살지 서로 대화하고 의논하고 함께 하는 삶이 너무나 없이 서로 바쁩니다. 그래서 돈은 벌어놓고 생활은 부요해졌으나 가정은 깨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교제해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 사이도 서로 왕래하고 교제해야 친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북한하고 같은 민족이지만 전혀 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북간에 왕래가 없기 때문에 교제가 안 되므로 친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하고는 가까우므로 늘 왔다 갔다 하니 친해지고 태평양을 건너 저 먼 미국도 많은 우리 동포들이 왔다 갔다 하므로 친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셔서 그리스도를 닮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그리스도와 교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므로 기도를 통하여 방언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찬미와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어찌하든지 많은 시간을 보내고 교제를 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에게 나타나고 예수님의 열매가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고 사람들마다 “아~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다. 저 가정은 예수 믿는 가정이다.” 말 안 해도 예수님의 향기를 맡고 예수님의 열매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만들었으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를 잘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 게을리 되지 마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세상을 우리 안방까지 갖다 놓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온 세계와 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핸드폰을 통해서 멀리 있는 사람과도 교제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등한이 한 때가 많습니다. 신앙이 식어지고 교회 가는 것이 형식적이 될 때가 많은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시고 그에 곁에 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쫒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그리스도 안에 신앙이 깊어지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와 교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신분이 같아야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과 사람은 신분이 완전히 다르므로 교제가 되지 않습니다.
데미안 신부는 벨기에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19세에 예수님을 영접한 후 선교사의 사명에 불탔습니다. 1873년 33살의 데미안 신부가 하와이(State of Hawaii)에서 선교생활을 9년 째 하던 해에, 당시 극성을 부리던 전염병인 나병이 심각하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전염병인 나병을 막기 위한 해결책으로 환자들을 몰로카이 섬으로 격리시켰는데, 이 때 데미안 신부는 자진해서 몰로카이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몰로카이 섬(Moloka?i)에는 나병 환자들로 악취가 심하고 얼굴과 손발이 썩어 들어간 환자들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좌절과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데미안 신부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병을 치료해 주고 도움을 주고자 원했지만 몰로카이 섬에 있는 나병 환자들은 데미안 신부 근처에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같이 대화를 하려고 해도 대화도 안오고 교회 예배도 참석 안합니다. 데미안 신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안합니다. 데미안 신부는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그때 성령께서 그 마음에 말하기를 “너도 나병환자가 되면 어떻겠느냐? 신분이 같아야 네 말을 듣는다. 너는 건강한 사람이고 저들은 나병환자들 아니야. 그러니 너의 말을 들을 턱이 있느냐. 네가 정말 저들을 사랑하면 너도 나병환자가 되라!” 참으로 그 말을 듣고 그는 고민하고 괴로워 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좋습니다. 나도 나병환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얼마 있지 않다가 데미안 신부는 보니까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손발이 썩어 들어가고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술 취하고 싸우고 무질서하고 요란한 나병환자들이 모인 촌에 들어가서 “나병환자 형제, 자매 여러분, 나도 여러분 같은 나병환자입니다. 이제 나와 함께 우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천국으로 가십시다.” 그가 복음을 증거할 때 모든 사람들이 그의 푸석푸석한 얼굴, 썩어져 가는 손발을 보고 “아~ 우리의 친구로구나. 우리와 똑같은 나병환자로구나.” 그래서 신분의 동일성을 느끼자 데미안 신부의 말씀을 듣고 모두다 예수님을 믿고 그 섬 구석구석이 정돈되고 절망과 고통의 땅인 몰로카이 섬은 희망과 사랑과 생명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1889년 데미안 신부가 숨을 거두었고 데미안 신부가 있던 성당 주변은 오늘날 미국 국립공원으로 꾸며지고 세계인의 성지순례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서로의 처지나 신분이 같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이 처음에는 온전한 데미안 신부를 거부했지만, 그가 그들과 똑같은 나병환자가 되었을 때는 동일한 신분을 느끼고 같이 일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신분으로서는 사람과 대화가 되고 교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어떻게 대화가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과 교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고 사람의 신분으로 태어나서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하고 교제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너무나 신분적으로 차이가 있으므로 그대로는 교제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사람의 신분으로 오셔서 우리와 교제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게 되신 것입니다.
<본론>
1.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자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까? 어떤 특정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까? 어떤 분을 하나님이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십니까? 지위의 고하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위가 아무리 높은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다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빈부의 차이가 문제 아닙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하나님은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민족과 피부색이 문제가 아닙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회색인이든 피부의 색깔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2절로 13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민족과 피부가 같거나 다르거나 관계할 필요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과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국가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보면 국회의원의 40%가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교회 와보면 지위도 없고 권력도 없고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많은데 이들도 예수 믿는 신자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최고의 지위를 지닌 자나,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자나 상관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하여 지위 고하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외모의 추와 미와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너무 추하게 생겼으므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피를 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돌보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혈통을 통해서 구원한 것도 아니고 육정을 통해서 구원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직접 태어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에 있는 말씀처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미쁘다는 것은 성실하다는 말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과 교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 교제의 열매
교제가 있으면 어떤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교제를 하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서로 교제하게 되면은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 오는 사람도 자주 만나고 같이 식사하고 대화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으면 서로를 이해하게 돼요. 내가 저 사람을 알고 저 사람이 나를 아는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우리는 마음을 같이해서 대화를 하면 우리가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2절에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서로 이해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교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남자는 사냥꾼으로, 여자는 집과 자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그 역할을 해 왔습니다. 사냥꾼은 비바람 속에서도 짐승의 발자취 소리나 음성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의 성향은 자기가 몰두하는 일이 아니면 귀담아 들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소리도 듣고 산울림도 듣고 새소리도 듣고 그러면 자기가 잡아 가야 될 짐승의 소리는 못들어서 짐승을 못 잡습니다. 모든 다른 소리는 제껴 놓고 짐승 소리만 귀를 기울여서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수꾼의 역할을 해온 여자들은 집 안팎의 사소한 일 모두를 알아야만 가정과 자식들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와 달리 한꺼번에 많은 일에 관심을 기울여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의 성향은 서로 상반되게 발달되어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남자들이 집에 돌아오면 말을 안합니다. 밥먹고 가만히 있고 텔레비나 보고 신문보고 부인이 무슨 말을 해도 가만 앉아서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어휴 사람이 사람답게 보이지 않나. 왜 말에 대답을 안하노?” 그래도 고개만 끄덕끄덕 하고 정말로 말 안하는 사람은 두마디 밖에 안합답니다. “밥줘.” “자자.” 남자들은 한곳에 집중적으로 마음을 두고서 일을 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여러 것을 다 관심을 가지고 알고 있는 부인과의 대화에 상대가 안 되어서 상당히 어렵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돕는 여자를 돕는 배필로 아담에게 주었으므로 두 사람은 같이 살아야 됩니다. 어떻게 살까요? 대화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통이 될 수 있도록 대화를 많이 해야 되기 때문에 남자들이 아내의 말을 많이 들어주고 그에 대한 대꾸를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양보를 하고 대화를 통해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가 있어야 서로 동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서로 교제가 있어야 이해를 하고 그 다음 동정을 하지요. 아무 교제가 없으면 동정이 안되는 것입니다. 상대편의 생활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이해를 못하는데 어떻게 동정을 하는 것입니까?
빌레몬서 1장 5절로 6절에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믿음으로 교제하고 서로 이해하게 되고 서로 동정하게 되면 믿음이 더 자라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사람과 교제하면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되고 잘못된 일에 같이 동정을 해서 나쁜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양육할 때 좋은 친구를 사귀도록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들과 악한 것을 이해하고 악한 것에 서로 마음을 동정해서 악의 길로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기를 때 시장터 곁에 자식을 기르니까 얼마 있지 아니하여 맹자가 “이것 사세요. 물건이 쌉니다. 이것 사세요. 이것이 진짜입니다.” 그러고 다닙니다. 엄마가 안되겠다 싶어서 고요한 공동묘지 곁으로 이사를 가니까 얼마 있지 않다가 “아이고... 아이고... 어찌 나는 살꼬...” 통곡을 하는 그런 장난을 합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엄마가 서당 근처에 집을 옮겨 가니까 그때부터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한자의 문자를 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와 교제하는가에 따라서 이해와 동정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동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 교제해야 사랑하게 됩니다. 교제도 안하는데 사랑할 턱이 있습니까? 서로 이마를 맞대고 모든 일에 교제하면 마음속에 사랑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을 하자면 우리가 교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서로 교제하고 구역예배 서로 교제하고 봉사생활해서 서로 교제하고 그러면 이해와 동정이 점점 쌓여지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냥 무조건 하고 사랑하라고 한다고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교제가 있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결혼할 때 교제 없이 결혼했습니다. 그저 부모가 정해준 대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택해서 부부가 되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그런 것이 없어요. 요사이는 남녀가 1년이고 2년이고 3년이고 서로 교제를 통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 동정하게 되면 사랑이 싹트게 되고 그래서 결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를 해야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어 주세요. 어떻게 믿습니까? 정치계절이 대게 오면 이름 석자 모르는 국회의원 될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서 “나를 믿어 주십시오. 나를 위해서 한 표를 찍어 주십시오.” 하는데 뭘 했는지 알아야 믿어 주지요. 도둑놈인지 사기꾼인지 올바른 정치인인지 선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요? 교제를 해야지요. 평소에 국회의원으로 나오기 전에 그 동리나 그 도시에서 주민들의 유익을 위해서 많은 선한 일을 하고 착한 일을 해서 교제가 되면은 아~ 그 사람을 이해하고 동정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교제해야 협력이 되지요. 일하는데 교제가 안되면 협력이 안되는 것입니다. 서로 잘 알아야 손을 같이 붙잡고 협력하지요.
빌립보서 1장 27절로 28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우리가 한 마음으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 교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작가 은희경 씨의 "관계"라는 글은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공감을 줍니다. 그 글은 이렇습니다.
“지금 눈앞의 저 낯 모르는 사람이 피를 콸콸 쏟는다 해도 몇 분 후면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잊어 버립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계기로 그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가 고개만 조금 숙여도 내 가슴은 미어질 것이며, 그의 시선이 가는 방향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할 것이다. 특별한 사람이란 없다. 관계에 의해서 특별해질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서로 관계가 없으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무슨 상관 있습니까? 우리가 신문지상에 보면 교통사고가 나거나 자연사태로써 목숨을 잃고 집을 잃는 기사를 읽습니다. 홍수가 나서 동네가 떠내려가고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신문에서 읽어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내 부모나 형제나 자식에게 다가오면 나하고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에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여러분 교제해야 서로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지 교제 없이는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예수님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 교제의 방법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잘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영감을 주셔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도 아무 관심도 없던 사람도 마음에 성령이 임하시면 감동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령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 흘리신 구원을 우리에게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믿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님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지 아니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어떻게 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안하기 때문에 성령이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은 바람과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온 보혜사로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셔서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를 전혀 나타내지 않습니다. 항상 꽁꽁 숨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으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드리고 성령께 의지하고 바라면 성령은 숨어 계시면서도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김우현 씨는「하늘의 언어」라는 책에서 방언이야말로 하늘 문을 여는 "하늘의 언어"로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유익한 하나님이 예비하신 언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우현 씨는 방언을 통해 자신은 물론 주변 인물들이 변화되는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방언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영적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방언을 말하고 기도하는 체험을 하면 할수록 개인과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것으로, 방언은 신앙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체험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언은 성령께서 영으로 비밀로 기도하는 것이므로 사탄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방언은 사랑의 비밀을 하나님께 고하고 나누는 밀어입니다. 사탄의 방해 없이 아버지의 심장으로 곧바로 가는 길이 방언입니다. 방언은 성령님의 역사에서 가장 기초이며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가 우리 신앙생활에 이처럼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마귀도 알아들을 수 없고 아무 이웃 사람도 알아 들을 수 없고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일을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서 많은 시간 방언으로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에게 방언을 못하게 합니다. 방언하기 싫어집니다. 방언하는데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시간 아는 말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므로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놀라운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공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우리가 주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성경을 떠나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 밖의 이야기를 하면 이단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우리 마음속에 영과 혼을 잘라내고 분별을 하게 하고 지혜를 주고 총명을 주고 모략을 주고 재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1850년 12월 6일 주일, 영국의 한 도시가 심한 눈보라 때문에 교통이 두절되었습니다. 그 날 한 청년이 날씨 때문에 집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예배당 목사님도 눈에 갇혀서 못 왔습니다. 몇 사람 안모였는데 평신도가 대신 일어나서 설교를 합니다. 얼마 안 되는 성도들을 앞에 두고 그 평신도는 더듬거리며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그의 설교는 더듬거리고 서툴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그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게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그 때 설교자는 그를 향해 “젊은이, 그대는 매우 곤고해 보입니다. 그럴수록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밑도 끝도 없이 자기만 쳐다보고서 고함을 칩니다. 이 청년은 그 때 이 말씀이 마음에 깊이 박히게 되어 일평생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가 바로 훗날에 위대한 설교자가 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위대한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주의 종이 된 것이 아닙니다. 설교도 잘 못하고 말씀도 잘 이해 못하는 집사가 눈에 길이 막혀서 못 온 목사를 대신해서 설교를 하고 자기를 가리켜서 정신 차리고 예수 바라보라. 그 말에 확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하여 그는 위대한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죽은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외우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도 살아 있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가 혀를 사용하므로 생사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말도 살아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살아있어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예수님을 깊이 교제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 집에는 골방이 없는데요.” 꼭 기도하려고 골방을 찾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골방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집중적인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텔레비도 틀어 보고 기도하다가 노래도 들어보고 기도하다가 서로 잡담도 하고 또 그리고 기도하고 이렇게 하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예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면 그를 통해서 주님이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늘 마음속에 우리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을 주장하여 유명하게 된 미국의 노만 빈센트 필(Noman Vincent Peale) 박사는 “누구든지 매일 아침 15분만 기도하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15분만 기도하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사실 아침에 15분 집중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상당히 오래 기도했다고 생각해도 5분입니다. 15분이면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우리 한국이 세계적으로 신앙적인 축복을 받고 피선교국에서 선교국이 되고 수많은 선교사가 외국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교회의 기도생활 때문인 것입니다. 주일로 기도하고 수요일도 기도하고 금요일도 기도하고 철야기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새벽기도에 일찍 나와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굉장히 가까이 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한국 사람처럼 열심히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통해서 하니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오늘날 이처럼 잘살게 된 것입니다.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면 단지 15분일지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고 예수님과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예수와 가까워지려면 교회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쓴다”.
교회 와야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시장에 가까워지려면 시장에 가야 되고 학문에 가까워지려면 학교에 가야 되고 예수님과 가까워지려면 교회 가까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로 20절에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오늘 우리는 만명 이상이 모였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주님이 안 계실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그러므로 우리 수만 헤아리지 말고 그 수에 예수님을 보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 자리에 계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는 성경이 예수님이 내가 너와 같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모든 짐을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가까워지고 소그룹 모임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가까워 질수 있는 것입니다. 구역예배 말입니다.
전도서 4장 11절로 12절에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두 사람 이상 세 사람이 되면은 굉장히 강력한 힘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열심히 두 세 사람 모인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복음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됨에 따라 가정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가정에서 모여서 함께 떡을 떼며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놀라운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오늘날 구역예배와 같은 소그룹 모임을 통한 교제와 같습니다. 우리교회도 서대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부흥을 할 때 구역예배가 굉장히 강력했습니다. 구역예배를 통해서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처럼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 요인은 바로 구역예배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 교회의 구역예배는 말로 다할수 없이 역동적이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읽고 서로 간에 신앙의 체험을 나누고 합심으로 기도함으로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 나가고, 성령 세례를 받고 문제가 해결되고 방언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습니다.
잠언 27장 17절에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그룹을 통해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와 더욱 가깝게 교제할 수 있습니다. 서로 친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시작한 소그룹 운동은 전 세계교회에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전 세계 교회가 소그룹을 만들어서 주중에 서로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므로 굉장한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도 두 세 사람 이상 모여서 사연을 알고 기도하니까 힘이 있지요. 교회 오면 내 사연을 다른 사람이 다 알아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 기도는.. 나를 위해서만 하지요. 그러나 구역예배에 가면 누가 병들었다더라. 누가 가정에 어려움이 있더라. 알지요. 그러니 그 소그룹이 힘을 합쳐서 기도하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강한 믿음을 갖게 되고 교회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4. 교제의 결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몸찢고 피 흘린 것은 너의 죄, 나의 죄, 우리의 죄를 대신 청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고 우리를 의롭다하고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교제하면 삶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는데 거룩 안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술꾼하고 교제하면 같은 술꾼이 되고 도박꾼하고 교제하면 같은 도박꾼이 되고 방탕한 자와 교제하면 같이 방탕하고 방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자와 교제하면 학문을 같이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하늘이 가까워지고 생활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하늘과 가까워지고 마음이 거룩하게 안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룩한 영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열매는 삶의 성결화인 것입니다.
월라드 F. 할리는(Willard F. Harley Jr.) 책에서 행복이란 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어부는 고기를 잡아서 바구니에 담는 것만 할뿐 아니라 그물을 씻어서 언제나 그물이 엉키지 않고 찢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없는 어부는 그물을 가지고 고기만 잡고 그물을 씻지 않고 그물을 깁지 않으므로 그물이 막히고 뚫어져서 나중에는 고기를 못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물과 같아서 항상 그리스도와 교제하므로 우리 신앙의 그물이 찢어지지 않도록 찌꺼기가 끼고 세상이 다가오지 않도록 우리가 정비를 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어떤 열매가 생기느냐. 심신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죄책과 좌절과 절망으로 마음이 병들고 또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병들고 인생과 병은 떠나지 않습니다. 늘 병으로써 사람들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병에서 우리가 확 틀어버리고 놓여나기 위해서는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좌절과 절망, 죄책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용기와 힘이 생겨서 병하고 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결심을 하면 병과 싸워서 이깁니다. 마음은 그 병을 이기거니와 마음이 상하면 누가 저를 이기겠느냐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이 들때도 “나는 예수 이름으로 괜찮다. 나는 예수 이름으로 살아난다. 나는 병을 이긴다.” 이러한 마음에 결심이 있으면 병하고 싸워서 약의 효과가 나오고 치료의 효과가 쉽게 나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에 결심이 없으면 병에 공격을 당할 때 나는 죽겠구나. 이제 나는 힘이 없다. 나는 못한다. 안된다. 이제는 주저앉았다. 이렇게 패배적인 의식을 가지므로 병에게 완전히 항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을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교제하므로 건강에 믿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교제하면 우리는 자연히 우리 생활 속에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못살고 가난하고 실패하고 어렵더라도 주님이 같이 계시면 주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있는 이 말씀대로 주님이 부유한 하나님인데 우리 때문에 이 세상에 가난하게 되어서 말구유에서 침대를 삼아 어린 아기 때 태어났고 목수의 아들로써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가난하게 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하게 되게 하려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주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나는 축복 받을 수 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가 있다. 나는 잘될 수가 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되고 또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면 부활 영생 천국이 마음에 뚜렷해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멀리하면 천당도 자꾸 멀어지고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 천국이 늘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로 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세상살이에 너무 골몰하고 취해 있어서 세상만 꽉 들어차고 주님이 오실 약속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므로 우리 영이 잠에서 깨어나서 항상 하늘을 쳐다보고 주님이 강림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눈물 흘리며 내 주님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항상 주님이 큰 소리로 고함을 치시면서 강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다 부활의 몸을 입고 살아남은 우리도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과 영원히 산다는 주의 약속이 우리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고 확실히 살아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성도의 교제"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성도 간에 어떻게 하면 형식적이지 않고 진정한 교제, 거룩한 교제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는 성도의 진정한 변화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이루어진다는 관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 간의 교제란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교제해야 참 교제가 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해야 그 교제가 참 교제가 되는 것이다. 참다운 교제는 결국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교제만이 성도간의 교제를 거룩한 교제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가족도 친구도 서로 늘 교제해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는 주님 안에서 할 때에 건강하고 진정한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 세상에 속해서 마귀와 교제하며 살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이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라.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성령과 말씀과 교회 출석과 소그룹 기도회와 이런 것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말을 하고 듣고 기도를 통해서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교제하므로 우리 영혼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되고 세상에서 자유를 얻고 병고침을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미래 천국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얻는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제가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 간의 교제를 두텁게 만들고 성도들 간의 교제가 또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두텁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족도 친구도 서로 늘 교제해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교제 안하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만나서 짧은 시간이라도 대화를 해야 돼요. 요사이 부모님과 자녀들이 가까워지지 않는 것은 교제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시간을 내서 자녀들과 같이 낚시도 가고 등산도 하고 놀러도 가고 교제를 해야 친해지지요. 그냥 집에서 옷 입혀 주고 밥 먹여 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제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요사이는 전화가 있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전화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으로 못 만나면 말로써 서로 교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이 이혼하고 파괴된 이유도 부부간에 서로 교제가 없습니다. 그냥 집에서 같이 살지 서로 대화하고 의논하고 함께 하는 삶이 너무나 없이 서로 바쁩니다. 그래서 돈은 벌어놓고 생활은 부요해졌으나 가정은 깨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교제해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 사이도 서로 왕래하고 교제해야 친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북한하고 같은 민족이지만 전혀 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북간에 왕래가 없기 때문에 교제가 안 되므로 친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하고는 가까우므로 늘 왔다 갔다 하니 친해지고 태평양을 건너 저 먼 미국도 많은 우리 동포들이 왔다 갔다 하므로 친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셔서 그리스도를 닮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그리스도와 교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므로 기도를 통하여 방언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찬미와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어찌하든지 많은 시간을 보내고 교제를 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에게 나타나고 예수님의 열매가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고 사람들마다 “아~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다. 저 가정은 예수 믿는 가정이다.” 말 안 해도 예수님의 향기를 맡고 예수님의 열매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만들었으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를 잘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 게을리 되지 마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세상을 우리 안방까지 갖다 놓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온 세계와 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핸드폰을 통해서 멀리 있는 사람과도 교제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등한이 한 때가 많습니다. 신앙이 식어지고 교회 가는 것이 형식적이 될 때가 많은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시고 그에 곁에 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쫒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그리스도 안에 신앙이 깊어지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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