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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누가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86 추천 수 0 2010.02.22 09: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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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22~2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 9. 13. 주일 4부설교 
우리 교회가 자랑하는 것은 제3세계 고난 속에 있는 인류들을 위해서 헌신, 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굿피플을 통해서 많은 제3세계에 어렵고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도우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국내에서는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으로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우리 형제들을 돕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 한분 한분들의 정성과 기도와 헌금과 충성이 이루어 놓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열매인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만 구원을 받고 우리만 잘먹고 잘살려고 하지 말고 지구촌 이웃들과 함께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예수 믿어 천국가는 역사를 가져올 수 있도록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우리 교회가 되고 여러분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하루는 갈릴리 호숫가에 제자들과 함께 섰는데 날씨가 푸르고 맑고 조용하고 훈풍이 부는 아주 좋은 기후였습니다. 주님이 배를 대령시켜서 제자들을 타게 하고 호수 저 건너편으로 가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보통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호수 저 건너편으로 가자. 그런가보다. 그러나 조용기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 말은 인간적인 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통 사람이 하는 말로 그냥 듣고 귀로 넘겨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 날씨가 좋고 훈풍이 불고 기분이 좋으니까 제자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이야기 꽃을 피고 주님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하고 대화를 할 겨를이 없으니까 그만 배한머리에서 주무셨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큰 폭풍우가 육지에서부터 불어와서 바닷물을 뛰게 만든 것입니다. 물이 막 공중으로 뜁니다. 배가 순식간에 뒤엎어질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그때야 너무 놀라서 보니까 예수님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찾으니까 배한머리에 손을 베개하고 아직도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들이 가서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면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죽게 된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나이까?” 이에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바람아 그쳐라! 파도야 잠잠하라!” 그 말씀하니까 바람과 파도가 즉시 그치고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이 놀랬습니다. “야~ 이 어떠한 분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으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저편으로 가자고 가자고 했으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호수 저편으로 갑니다. 주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갖지 않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꾸짖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나눠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자마자 우리는 믿음을 분량대로 받아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믿음이 있으면서도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없는 줄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포켓트에 돈이 있음에도 돈이 있는 줄 모르고 없는 줄 알고 거지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 팔다리가 있으면서도 팔다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사용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본론>
1.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가복음 4장 40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믿음이 있는 대도 믿음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없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주님께서 꾸짖은 것입니다. 아에 믿음이 없으면 왜 믿음이 없느냐 말할 필요가 없어요. 없는 믿음 없지 뭐 꾸짖을 필요 있습니까? 믿음이 있는데도 믿음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주님이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꾸짖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잘못 사용하면 잘못될 수도 있고 믿음이 잘 사용하면 큰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정신 신체 의학 세미나에서 한 저명한 내과 의사가 “만성환자의 90%는 병을 두려워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 기침을 하거나 가슴앓이를 하고 위산 과다 현상을 보이고, 늘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기는 신체적인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그 병이 든 것이 아니라 병을 두려워하므로 말미암아 그 두려움에 대한 신체적인 반응으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비슷하여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늘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말씀을 바라보았더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정반대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쫓겨 나가고 안믿으면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예수님이 보고 “왜 믿음을 어디 두었느냐? 네 믿음이 왜 없느냐?”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이 있으나 나는 믿음이 너무 적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목회할 때 많은 사람하고 신앙상담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목사님, 나는 믿음이 작아요. 믿음을 좀 더 크게 얻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도 한번 예수님께 나와서 말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너희 속에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라 될 것이요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해도 충분하다. 너 무슨 믿음을 더하라고 하느냐.” 겨자씨 한알 얼마나 작습니까? 조그마한 겨자씨입니다. 그만한 믿음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겨자씨 한알보다 더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믿음이 작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생각이지 하나님 생각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로 34절까지 좀 길지만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굉장한 말씀입니다. 주님을 꽉 믿으면 그리고 하늘나라와 하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원천이 되어서 위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내 환경을 보아서 어디 해결할 길이 없어도 우리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해결책이 저기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늘에 우리의 자원이 있습니다. 주님이 하늘에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은 삶의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내 속을 보아도 텅 비었고 내 곁을 보아도 의지할 곳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을 보아도 텅비었고 곁을 보아도 의자할 곳 없어도 위를 쳐다보면 아버지가 계시고 그 옆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를 도와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과학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기적을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믿음이 큰 사람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의 탄원을 들어 보십시오. 예수님이 가나안 지역으로 갔는데 이방인입니다. 이방인 지역으로 갔는데 한 여자가 고함을 치고 따라옵니다.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으니 주여 고쳐주소서.” 주님이 대답을 안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붙잡고 “좀 주님께 말씀해서 우리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와서 “주여, 저 여자가 저렇게 부르짖으니 고쳐 보내시지요.” 그러니까 주님이 “아직 때가 아니다. 지금 나는 이방인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지금은 유대인들을 위해서 온 것이고 이방인의 때가 안왔으니 고쳐줄 수 없다.” 그러셨는데 이 여자가 예수님 길을 막고 앞에 엎드렸습니다. “주여 내 딸을 고쳐주소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주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들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주지 아니한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떡 일어나서 “안고쳐 주셨으니 안고쳐주지 뭐 개라고? 어 어째고 어째?” 당장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고개를 들어 주님을 보고 “주님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밥상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얻어 먹습니다.” 놀라운 여자입니다. 그 말 맞잖아요. 얘들이 밥먹을 때 밥 흘리니까 밑에 개가 와서 먹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에게 부스러기라도 좀 주십시오.”
마태복음 15장 28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주님이 감동을 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주께서 우리를 도와 줄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네 믿음이 크구나. 의지할 곳 없는데 나를 믿고 따르는 것을 보니 크구나.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말씀할 것입니다.

2. 믿음과 시련
우리가 일단 주님을 믿으면 믿음은 그냥 평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시련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시련을 통해서 확실한 믿음인지 가짜 믿음인지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었는데 정반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절망할 수밖에 없지요.
누가복음 8장 23절 말씀대로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평안하게 저 바다 건너편으로 가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풍이 다가와서 바다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반드시 주님을 믿고 가는 길에는 마귀가 훼방을 하는 것입니다. 시험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8절로 30절에 보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나가는데 시련이 다가오고 환난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와서 믿음 정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때 믿음을 놓치면 안됩니다. 부르짖고 기도하고 계속 믿음을 잡고 있으면 그 시련은 잠시 후에 지나가고 믿음은 역사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련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믿으면 적은 시련이 오고 큰 것을 믿으면 큰 시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련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보고 예수님이 “네 믿음을 어디 두었느냐?” 하는 것도 믿음을 말씀에 두지 않고 환경에 두었던 것입니다. 바람을 믿고 파도를 믿고 바람이 세고 파도가 크니까 빠져 죽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했지요. 믿음을 예수님 말씀에 두었으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그 말씀은 변치 않는 말씀이기 때문에 안심했을 것입니다. “바람아 불어라. 파도야 쳐라. 우리는 바람과 파도보다 더 크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 말씀을 붙잡으면 믿음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 믿음을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잘못 두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페니(J. C. Penney)에게 하루는 친구가 와서 물었습니다. "페니, 자네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큰 성공을 이루었는가?" 페니는 딱 두 마디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난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 때문이었다.” 하도 가난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그는 주님께 의지하고 가난을 물리치겠다고 믿고 일한 결과에 그 믿음을 통해서 그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난이 클수록 영광도 큽니다. 현재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견뎌 나아갈 때, 우리는 더욱 강인한 성품과 지혜를 얻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더 큰 믿음이 생겨나고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믿었으니까 믿음을 훼방하는 고난이 다가와도 그것을 극복하니까 한 계단 더 믿음도 커지고 성공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러한 고난의 역경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구두 수선공이었던 윌리엄 케리(William Carey)는 인도 선교의 꿈을 가지고 인도 선교사로 파송 되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그는 그 곳에 변변한 인도어 성경이 없는 것을 보고 인도어를 공부하여 성경을 번역한 후, 출판을 하기 위하여 영국에서 인쇄기를 도입하고 기술자들을 불러 조판을 다 마쳤습니다. 이제 찍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케리가 지방 순회를 하는 동안에 불이 나서 인쇄기와 원고가 모두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망적인 것입니다. 성경 한권을 뱉기는 데도 몇 달이 걸리는데 성경을 영어성경에서 인도어로 번역을 해놓은 것이 불타 버렸으니 윌리암 케리는 절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케리는 그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리며 “다시 하나님 시작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나는 반드시 인도에 복음이 증거될 줄 믿습니다. 마귀가 훼방하는 것이니 믿음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1801년도에 벵골어 성경을 필두로 24종의 인도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출판해서 오늘날 인도선교의 기초를 닦은 것입니다. 그가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불이 났느냐. 손털어 버리고 포기하자고 했으면 인도에 복음증거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번 믿었으면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성경에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일단 믿었으면 믿음으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는 것은 없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러한 믿음을 큰 믿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믿을 때 육체적 감각에 의지하기가 쉽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눈에 반대현상이 보이고 몸에 반대현상이 느껴집니다. 내가 안수기도를 받고 하나님 은혜를 입어 병이 낫는다고 믿고 있는데 점점 병이 더 아파지고 더 괴로워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하시느냐?”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믿었는데도 믿은대로 안되어도 계속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중심을 붙잡는 것입니다. 중심에 믿음을 붙잡았으면 그 반대적인 감각이 와도 감각을 따라서 행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데 환경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는 이 모든 환경이 우리에게 정확하게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정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란 환경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환경을 정복하고 환경을 만드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환경은 3차원이고 믿음은 4차원입니다. 믿음이 환경보다 크기 때문에 믿음대로 환경이 나중에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바람 불고 몸부림을 쳐도 믿음이 그를 정복하고 정리하고 새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졌으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보는 것으로 행하면 안됩니다. 믿음으로 행해야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았으면 그 믿음을 마음속에 가지고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을 따라 살고 보는 것으로 따라서 마음이 좌우로 흔들리거나 변화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결점은 보는 것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서 매달릴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권사님 한분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새로 연결 했는데 그래도 절뚝 거리고 지팡이를 짚어야 걸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교회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오늘 다리가 짧아진 사람 하나님께서 길게 해 주셨다”고 그렇게 제가 말을 하더랍니다. 나는 기억 안나요. 왜냐하면 제가 한말이 아니니까. 성령께서 하라고 한 말씀을 대언했으니까 내가 기억이 안나지요. 그래서 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가족들도 다 좋아했는데 집에 가서 보니 여전히 절뚝거리거든 그 이튿날도 또 절뚝 거리고 그 이튿날도 또 절뚝거리고 한주일이 지나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그 잘못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 보고 한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고 한 말입니다. 어머니 보고 말했으면 나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절뚝 거립니까? 그러니까 포기하십시오.” 그러나 그 권사님 말하기를 “나는 절대 포기 못해. 그 때 말씀을 내가 아멘으로 받아 들였으니까 내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고 육체적 감각이 없어도 내 속으로 나았다. 겉으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나았다. 그러므로 나는 나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감사한다.”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 앞에 섰는데 어깨가 축져진 어깨가 딱 바로 섰거든. 이것 왜그런가 하고 걸어보니까 다리가 길어졌어요. 나았어요. 이 권사님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굉장한 능력과 권세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라. 의심을 하지 말라. 의심하면 바다 물결 같아서 마음이 정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음에 서야 되는데 쉽지 않습니다. 자꾸 의심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에 서야 되고 말씀에 반대되는 것을 받아 들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이 있어야 붙잡고서 의심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성령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성령이 우리를 돕기 위해서 24시간 같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잊어 버립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이 라는 이름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보혜사고 성령은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신 것처럼 예수님의 영인 성령이 24시간 우리와 같이 계셔서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령께 구하는 자를 도와주시지 구하지 않는 자에게 도와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이여 나를 도와서 내 믿음을 굳게 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내 마음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나에게 기름부어 주시고 나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저는 50년간 목회하면서 언제나 구역예배 인도할 때나 부흥회를 할 때나 주일에 강단에 설 때나 나오기 전에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함께 나가십시다. 성령님이 주인이시고 나는 종입니다.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합니다. 나를 도우소서.” 항상 도와 주셨습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곁에 성령이 계시므로 성령께 의지하면 여러분 믿음을 견지하고 의심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고 성령께 의지하고 주님께 기도하면 튼튼한 믿음이 마음속에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시험이 아무리 다가와도 우리는 마귀의 시험과 대적해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마귀는 우리에게 의심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마귀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대적하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 시험할 때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흔들리면 잡힙니다. 마귀의 시험이 오면 믿음을 굳건히 하고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동물에 왕국에 보면 아프리카 대륙을 보면 큰 평원에 많은 동물들이 풀을 먹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노루와 사슴같은 힘이 없는 동물떼들을 사자가 공격할 때 제일 약한 새끼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 노루나 사슴은 다 도망을 치는데 약한 새끼를 집중적으로 가서 그래서 엄마와 아빠와 떼놓고 난 다음에 목을 물어서 죽이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와 같이 뛸 때는 잡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떨어지면 겁을 집어 먹어서 잘 뛰지를 못하고 주저 앉습니다. 잡아 물어 뜯지요.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는 언제나 우리를 예수님과 떼놓습니다. 기도 못하게 만들고 성경 못 읽게 만들고 예수님이 마음에서 떠나게 만들고 그리고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데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계시기 때문에 마귀가 어찌 감히 달라드는 것입니까? 그러나 에수님과 우리를 떼놓으면 마귀는 우리를 쉽게 정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 바싹 붙어서 예수님을 붙잡아야지 예수님과 여러분과의 사이에 거리를 두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시험에서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믿음의 초첨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흩어 놓으면 안돼요. 믿음의 초첨을 맞추는데 어떻게 초첨을 맞추느냐. 주님께 믿고 기도했을 때 언제나 말씀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제가 여러분에게 무슨 약속을 했으면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약속을 안했는데 믿습니다. 할 수 없지요. 제가 여러분 보고 “내가 심방을 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씀은 했으니까 그 말씀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심방하겠다고 말도 안했는데 “심방해 올 줄 믿습니다.” 그 믿음대로 내가 갈 수도 있고 안갈수도 있는 것입니다. 안가도 내가 책임이 없어요. 내 약속 안했으니까. 내가 약속을 했으면 책임을 걸머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이 약속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있으면 믿음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 언제나 말씀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늘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마세요. 말씀을 적어서 늘 손에 들고 보고 말씀을 붙여 놓고 말씀을 보고 말씀 그대로 되리라고 확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말씀을 믿지 환경을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억세게 나쁘더라도 주의 말씀을 의지하면 말씀은 그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은 말씀보다 한단계 높습니다. 말씀이 나아가서 지구 전체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만 믿으시고 말씀에 의지하면 말씀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씀을 늘 고백하십시오. 여러분 많은 성경을 외워서 말씀을 고백하면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리니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라. 요사이 신종인플루인자로서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합니다. 그럴 때 언제나 마음속에 이 성경 말씀을 기억하면서 시편 91편 “저가 너를 새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라” 하나님이 건지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어떠한 극한 염병도 나에게 다가오지 못한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하지 아니로다. 천인이 내 곁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이것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서 어려움이 있으면 내가 밤에 모르는 사이에 큰 어려움이 다가올까 두려워하면 밤에 놀램에서 나를 건지는 주님이 계신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말씀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낮에 붉은 대낮에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가 다가오면 낮에 흐르는 살을 피하게 해주신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 원인을 알지 못하는 염병에 돌더라도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고 믿어야 되고 삼풍사고와 같이 백주에 백화점이 무너지는 그런 사고가 생기더라도 나를 면하게 해줄 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고백하여 믿음을 말씀에 초첨을 딱 맞춰 놓아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을 감각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환경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마귀의 시험에 흔들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초첨을 두십시오.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고 입술로 말씀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믿었으면 기다리십시오. 성격이 급해서 지금이든지 지금 당장 응답이 안온다고 원망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해주는 때를 가지고 계십니다. 때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겨울철에 아무리 벼농사를 짓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하나님은 봄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때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한 것입니다.

3. 믿음과 인내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75세에 갈대아우르를 떠나서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그가 기도하고 난 다음에 25년의 세월을 기다려서 아들을 얻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0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굉장한 분 아닙니까? 여러분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 약속만 있으면 바라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으면 말씀이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홍해수를 건너가겠다고 했으면 배도 없고 다리가 없어도 건너갑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있으면 바라는데로 되는 것은 홍해수를 하나님이 갈라 재낀 것입니다. 배가 없고 다리가 없으면 물이 갈라지게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살이니까 100살된 노인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은 것 다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져 오셨다. 약속을 의심치 않았다. 아무리 환경이 바랄 수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나는 붙잡는다. 그런 믿음에 견고히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까 100세에 아들을 나은 것입니다. 우리 아브라함에게 많이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 때 홍해 앞에서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셔서 따라 홍해가에 왔는데 다리도 없고 배도 없고 바다를 건너가야 되겠는데 그런데 애굽의 바로왕이 군대를 동원해서 도로 백성들을 잡으려고 습격해 옵니다. 백성들이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을 안합니다. 거의 애굽의 군대가 곁에까지 왔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한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가만히 가만히 두 번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었으면 가만히 기다려야 돼요. 마귀가 온다고 활가닥 뛰어 야단법석을 하고 “하나님 뭘 하십니까? 마귀는 오는데 하나님 주무십니까? 일 그만두셨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돼요. 가만히 있어 잠잠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9절에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다고 했는데 그들이 믿는다는 것은 그들이 마음에 잠잠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오매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 돌기도 보십시오. 한 번에 여리고성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여리고를 7일 동안 돌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첫날 한바퀴 돌고 이튿날 한바뮈 돌고 3일째 한바퀴 돌고 그래도 이중으로 된 철벽성이 무너질 기미가 없습니다. 금도 하나 안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엿새 째 돌아도 안무너졌습니다. 일곱째 날에 일곱 번째 돌고 고함을 치니까 성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장 무너지게 해줄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엿새동안이나 돌고 일곱째 일곱 번 돌게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믿음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네가 기다릴 줄 아느냐. 성급하게 안된다고 포기하느냐.”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기다리게 하는 것이 시험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이 참 힘듭니다.
히브리서 11장 30절에 보면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21일 동안 기도도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강가에 나가서 금식하면서 기도하는데 열흘을 기도해도 아무 응답도 없습니다. 이십일을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다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다니엘은 이십일일 만에 기도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다니엘서 10장 12절로 14절에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
다니엘이 기도할 때 첫날 응답이 하나님께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벌써 하나님이 첫날 응답을 내려 보냈으나 바사왕의 왕이라는 것은 그때 바사 제국이 세계를 다스렸는데 그 배후에 마귀가 바사왕이라는 것입니다. 바사왕의 마귀가 공중에서 기도응답이 못 내려오도록 막았습니다. 이십일 동안 막았습니다. 그런데 천사장 미가엘이 와서 그를 도와주므로 그 마귀의 진을 뚫고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참고 견뎌야 되는 것은 마귀가 기도를 상당한 기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과부의 기도같은 것도 과부가 나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하되 당분간 재판관이 그 말을 듣고 있지 않다가 나중에 네가 이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면 힐란스러워 못견디겠다고서 그 과부의 기도를 들어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여러분 뒤로 물러가지 말고 오래 기다리는 믿음을 반드시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열매를 기다림과 같은 것입니다. 씨를 심어놓고 벼나 보리가 싹이 나면 빨리 자라라고 싹을 쪽쪽 뽑아 놓으면 다 말라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푹 마음을 놓고 기다려야 돼요. 그러면 싹이 나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로 8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참고 기다린다. 정말 참고 기다리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낮에나 밤에나 눈물 흘리며 내 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 라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고대하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응답도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고대하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더 기다리느냐가 승패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세월을 인내하고 기다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100세에 받았으니 25년을 기다렸고 야곱은 하나님께 축복받겠다고 약속을 받은 후에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머슴살이 한 끝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셉은 17세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형들에 의해 애굽의 종으로 팔려서 종살이, 감옥살이 13년이 지난 후에 30세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한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기다리고 난 다음 80세에 하나님이 응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꿋꿋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중에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홍해수도 갈라지고 여리고 성도 무너지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응답 안오는 것이 이상합니다. 응답 오는 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저는 50년 목회의 과거를 돌아 보니까 기도한 것이 90% 이상 이루어졌어요. 안이루어진 것이 이상하고 이루어진 것이 보통인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안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매우 낙심하고 탄식한 것도 한두번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다 이루어 졌어요. 하나님 우리 등뒤에서 우리 알지 못하게 역사하므로 우리 생각대로 이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계획과 생각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루어지고 그것을 체험하고 난 다음에야 “아, 하나님이 응답하셨구나.”그때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대상이지 과학이나 철학적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토론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오감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육감이 있는 것입니다. 제 육감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성경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 그를 따라 기도하고 끝까지 믿으십시오.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시고 영화로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항상 우리 뒤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눈에는 안보여도 우리 손으로 붙잡을 수 없어도 바람과 같이 우리와 같이 계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아,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셨구나. 우리가 깨닫게 되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이곳에 설교를 들은 주의 백성들이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계신 이상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내 이웃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도 위에서 나를 도와주시므로 항상 위를 쳐다보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를 바라보거나 옆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고 주님의 뜻을 찾아서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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