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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나방과 꽃나방 -정채봉-
-제임스 더버 우화에서
옷장 속에 좀이 있었다.
좀은 털 외투를 갉아 먹었고, 순면 속옷을 갉아 먹었다.
배가 부르면 비단 틈에서 잠을 잤고 눈이 떠지면 입맛 당기는 옷들을 찾아다녔다.
먹다 보니 어느 틈에 나이가 찼다. 좀은 한숨 늘어지게 잠을 잤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어깨에 날개가 돋아 있지 않은가!
이때부터 좀나방은 먹는 것보다는 가슴 두근거리는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어느 날, 옷장문이 열린 틈을 타서 좀나방은 바깥으로 나왔다.
좀나방의 앞에 금빛 찬란한 빛살이 부서지는 유리창이 나타났다.
그 유리창의 바깥 쪽에서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꽃나방이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좀나방은 파도처럼 이는 욕정을 느꼈다.
"애 나하고 살림차리지 않을래?"
좀나방이 말을 걸었다.
"가서 수의나 파먹지 그래."
꽃나방이 핀잔을 주었다.
"나한테 시집을 와봐 밍크코트 맛을 보여줄 수가 있어."
좀나방이 으스대었다.
그러나 꽃나방은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꽃과 저녁 놀만으로 충분해."
"정신 좀 차려라. 이집 주인의 연미복을 뜯어 먹는 맛을 알기나 하니?"
"한심스럽다. 애 그것을 먹는다고 안 죽니? 그렇게 먹기 위해서 살아?"
"나는 파란 하늘과 감미로운 바람 속을 날아서 작은 풀꽃들을 사랑하는 기쁨으로 산다."
좀나방은 투덜거리면서 돌아섰다.
"너같이 시시한 것들은 내 배필이 될 수 없어. 가서 쌀나방한테나 장가 들어야겠다."
꽃나방이 활짝 날면서 말했다.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고 사는 불쌍한 녀석아, 계속 먹고 먹다가 끝나거라."
정채봉 <멀리가는향기/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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