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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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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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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 권 개종과 모니카의 죽음 - 4.카시키아쿰.네브리디우스(시편)
수사학 교수직에서 해방되는 날이 왔습니다.
그와 더불어 당신은 나의 혀도 해방시켜 주셨으므로
나는 당신을 찬양하면서 기꺼이 동지들과 함께 별장으로 갔습니다.
내가 거기서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거기 있었던 사람들과
행한 토론문과 나 자신과 더불어 홀로 대화를 하던 철학 서적들이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던 네브리디우스와의 시간들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당시 우리에게 베푸셨던 당신의 커다란 은헤를 빼놓지 않고
서술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은 언제쯤 생길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해서 서둘러야 합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주님이시여, 고백하는것 처럼 즐겁습니다.
당신께서는 내 속에 찌르는 가시를 두어 나를 복종시키시고
마음의 기복을 고르게하여 굽은 것을 똑바로 펴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절친한 친구 알리피우스를 당신의 독자
우리의 주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굴복시키신 것입니다.
알리피우스는 초기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의 저작 속에 넣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그는 우리의 저작 속에 뱀의 독을 막는 약초의 향기 보다는
학교에 있는 백향목의 향기가 감돌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백향목은 주께서 이미 꺽어 버리셨습니다.
내가 다윗의 시편을 낭송했을때 당신에게 무엇이라고 외쳤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이시여!
그것은 신앙의 노래이며 오만한 정신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경건함이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당신의 참된 사랑에는 어린애와 같아서
세례 지원자인 알리피우스와 별장에서 쉬고 있었고
우리 옆에는 어머니까지 모시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외모는 여자였지만 남자같은 신앙의 소유자로써
노년기의 성숙한 인격과 모성애와 신도다운 경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시편을 읽고 당신에게 얼마나 불타 올랐는지 모릅니다.
가능하다면 온 세상에 있는 교만한 자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불처럼 타올랐는데
그 시편은 전 세계에서 낭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타오르는 당신의 빛 앞에서는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나는 통렬하고 신랄하게 마니교도들을 비난했으나 한 편 그들을 동정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말씀, 즉 유익한 약을 모르고
저 독약을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했습니다.
나는 오직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근처로 와서 내 얼굴을 알아보고
평온하게 시편 4편을 읽는 내 목소리를 듣고
이 시편에는 무슨 말씀이 씌여있는지 그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을 부르니 의로우신 내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나의 청을 들어 주셨으며 환난 속에 있던 나를 평안하게 해주셨습니다.
주여 나를 가엾게 여기시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시편의 낭송을 나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그동안 한 말이 그들 때문이었다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나를 보고 있다든가 듣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라도 했다면
나는 그것을 절대 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설마 말한다 해도
그들은 내가 당신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나와 더불어
그리고 나에게 얘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미 당신의 성자 그리스도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어 영광을 주시고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하여 거기 높은 곳에서 진리의 영인 구세주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이미 그분을 보내셨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보내셨고 북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승천하셨으므로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예수가아직 영광을 받지 않았으므로 영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언제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있는가?
무엇 때문에 허무한 것을 즐기고 허위를 추구하는가?
주는 성스러운 자를 위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알라.'고.
그는 '언제까지인가?' 라고 외치며 '알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까지 허무한 것을 사랑하고 허위를 추구해 왔으므로
그말을 듣자 겁이 났습니다.
내가 진리 대신에 꼭 붙잡고 있던 환상속에는 거짓말과 허위가 있었습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고는 슬퍼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그들은여전히 허망한 것을 좋아했고 거짓말을 따랐습니다.
이 말씀을 조금이라도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이 만일 불편을 느꼈더라면 그 더러운 것을 토했을 텐데!
또한 그들이 당신을 애타게 찾았더라면
당신께서는 그들을 위로 끌어 올리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께 나아가는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그 육신을 따라 죽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 "분은 품어도 죄는 짓지 말라."는 말씀을 읽고 매우 감동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과거에 대해 화를 낼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화를 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들의 말과 같이 내 속에 있는 어둠에서 나온 다른 본성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화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의로우신 심판의 계시가 나타나는 날에 대비해서
노여움을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이미 나의 '선'이 다시는 밖에 있지 않고
햇빛 아래서 육신의 눈으로 그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밖에서 즐거움을 만들어 보려는 자들은 쉽게 자신을 상실하고
눈에 보이다가 다시 사라져 버릴 형상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 그들이 배가 고파 지쳐서'누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일 것인가.'
라고 말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주여,우리의 내부에 당신 얼굴의 빛이 새겨졌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 그들이 그 말을 들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물론 우리는 당신에 의해 밝혀진 자로써 이제는 어둠 앞에서
당신 안에 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오 그들이 저 영원한 내재자들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이미 그걸 보았으므로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이 당신으로부터 떨어져 외부로 돌린 눈 속에 갖는 마음을 나에게로 돌려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여 줄 것인가.' 하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자신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린 그 장소에서,즉 회한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낡은 자기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며 새 사람이 되기를
당신에게 기도하던 장소에 당신께서 나타나 내 마음에 기쁨을 주셨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겉으로는 크게 소리내어 읽었으며 속으로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나는 시간적인 것을 삼키면서도 또 그 시간적인 것한테 삼킴을 당하면서
지상적인 것의 선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영원 단순하신 자에게서
다른 종류의 "곡식과 새 포도주"를 가졌습니다.
또한 나는 계속되는 구절을 마음속으로 더 크게 외쳤습니다.
"오, 평화 속으로! 오, 같으신 분 안으로!"
"나는 잠들 것이며, 포근히 자리라.!"
"죽음이 승리 안에 삼켜졌도다." 라는 말이 실현될 때
감히 누가 우리에게 항거하겠습니까?
당신이야말로 변함 없이 항상 같으시고
또 당신 안에는 모든 수고를 잊게 하는 안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당신 이외에 아무도 없으며
당신 이외의 어떤 허구의 것을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여, 오직 당신만이 나를 희망 안에 두셨습니다.
나는 그 구절을 읽고 정렬이 끓어올랐지만
저 듣지 못하는 사자들에게 어떻게 주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나 자신 재앙있는 한 사람으로써 천상의 꿀로 달콤하기 이를데 없고
당신의 빛이 환히 비치던 빛의 성경에 대해서 나는 개처럼 짖어 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성경의 적들 때문에 안달하고 있습니다.
휴가 기간에 일어난 일들을 추억할 날은 언제인가.
그러나 나는 당신의 회초리와 놀랍게도 빠른 자비만은 잊지 않을 것이며
절대로 입을 다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무렵 당시은 치통으로 나를 고문 하셨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건강의 주인이신 당신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그 내용을 납판에다 적어서 그들에게 주어 읽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성을 모아 무릎을 꿇자마자 아픔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어떻게 해서 사라졌을까요?
내 주, 하나님이시여!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철이 든 지금 그런 일이라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당신의 뜻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당신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아직 당신의 세례를 통하여
지난 날의 죄사함을 받지 못한 까닭에 나의 마음은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수사학 교수직에서 해방되는 날이 왔습니다.
그와 더불어 당신은 나의 혀도 해방시켜 주셨으므로
나는 당신을 찬양하면서 기꺼이 동지들과 함께 별장으로 갔습니다.
내가 거기서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거기 있었던 사람들과
행한 토론문과 나 자신과 더불어 홀로 대화를 하던 철학 서적들이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던 네브리디우스와의 시간들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당시 우리에게 베푸셨던 당신의 커다란 은헤를 빼놓지 않고
서술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은 언제쯤 생길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해서 서둘러야 합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주님이시여, 고백하는것 처럼 즐겁습니다.
당신께서는 내 속에 찌르는 가시를 두어 나를 복종시키시고
마음의 기복을 고르게하여 굽은 것을 똑바로 펴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절친한 친구 알리피우스를 당신의 독자
우리의 주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굴복시키신 것입니다.
알리피우스는 초기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의 저작 속에 넣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그는 우리의 저작 속에 뱀의 독을 막는 약초의 향기 보다는
학교에 있는 백향목의 향기가 감돌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백향목은 주께서 이미 꺽어 버리셨습니다.
내가 다윗의 시편을 낭송했을때 당신에게 무엇이라고 외쳤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이시여!
그것은 신앙의 노래이며 오만한 정신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경건함이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당신의 참된 사랑에는 어린애와 같아서
세례 지원자인 알리피우스와 별장에서 쉬고 있었고
우리 옆에는 어머니까지 모시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외모는 여자였지만 남자같은 신앙의 소유자로써
노년기의 성숙한 인격과 모성애와 신도다운 경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시편을 읽고 당신에게 얼마나 불타 올랐는지 모릅니다.
가능하다면 온 세상에 있는 교만한 자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불처럼 타올랐는데
그 시편은 전 세계에서 낭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타오르는 당신의 빛 앞에서는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나는 통렬하고 신랄하게 마니교도들을 비난했으나 한 편 그들을 동정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말씀, 즉 유익한 약을 모르고
저 독약을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했습니다.
나는 오직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근처로 와서 내 얼굴을 알아보고
평온하게 시편 4편을 읽는 내 목소리를 듣고
이 시편에는 무슨 말씀이 씌여있는지 그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을 부르니 의로우신 내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나의 청을 들어 주셨으며 환난 속에 있던 나를 평안하게 해주셨습니다.
주여 나를 가엾게 여기시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시편의 낭송을 나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그동안 한 말이 그들 때문이었다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나를 보고 있다든가 듣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라도 했다면
나는 그것을 절대 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설마 말한다 해도
그들은 내가 당신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나와 더불어
그리고 나에게 얘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미 당신의 성자 그리스도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어 영광을 주시고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하여 거기 높은 곳에서 진리의 영인 구세주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이미 그분을 보내셨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보내셨고 북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승천하셨으므로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예수가아직 영광을 받지 않았으므로 영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언제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있는가?
무엇 때문에 허무한 것을 즐기고 허위를 추구하는가?
주는 성스러운 자를 위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알라.'고.
그는 '언제까지인가?' 라고 외치며 '알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까지 허무한 것을 사랑하고 허위를 추구해 왔으므로
그말을 듣자 겁이 났습니다.
내가 진리 대신에 꼭 붙잡고 있던 환상속에는 거짓말과 허위가 있었습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고는 슬퍼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그들은여전히 허망한 것을 좋아했고 거짓말을 따랐습니다.
이 말씀을 조금이라도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이 만일 불편을 느꼈더라면 그 더러운 것을 토했을 텐데!
또한 그들이 당신을 애타게 찾았더라면
당신께서는 그들을 위로 끌어 올리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께 나아가는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그 육신을 따라 죽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 "분은 품어도 죄는 짓지 말라."는 말씀을 읽고 매우 감동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과거에 대해 화를 낼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화를 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들의 말과 같이 내 속에 있는 어둠에서 나온 다른 본성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화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의로우신 심판의 계시가 나타나는 날에 대비해서
노여움을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이미 나의 '선'이 다시는 밖에 있지 않고
햇빛 아래서 육신의 눈으로 그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밖에서 즐거움을 만들어 보려는 자들은 쉽게 자신을 상실하고
눈에 보이다가 다시 사라져 버릴 형상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 그들이 배가 고파 지쳐서'누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일 것인가.'
라고 말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주여,우리의 내부에 당신 얼굴의 빛이 새겨졌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 그들이 그 말을 들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물론 우리는 당신에 의해 밝혀진 자로써 이제는 어둠 앞에서
당신 안에 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오 그들이 저 영원한 내재자들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이미 그걸 보았으므로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이 당신으로부터 떨어져 외부로 돌린 눈 속에 갖는 마음을 나에게로 돌려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여 줄 것인가.' 하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자신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린 그 장소에서,즉 회한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낡은 자기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며 새 사람이 되기를
당신에게 기도하던 장소에 당신께서 나타나 내 마음에 기쁨을 주셨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겉으로는 크게 소리내어 읽었으며 속으로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나는 시간적인 것을 삼키면서도 또 그 시간적인 것한테 삼킴을 당하면서
지상적인 것의 선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영원 단순하신 자에게서
다른 종류의 "곡식과 새 포도주"를 가졌습니다.
또한 나는 계속되는 구절을 마음속으로 더 크게 외쳤습니다.
"오, 평화 속으로! 오, 같으신 분 안으로!"
"나는 잠들 것이며, 포근히 자리라.!"
"죽음이 승리 안에 삼켜졌도다." 라는 말이 실현될 때
감히 누가 우리에게 항거하겠습니까?
당신이야말로 변함 없이 항상 같으시고
또 당신 안에는 모든 수고를 잊게 하는 안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당신 이외에 아무도 없으며
당신 이외의 어떤 허구의 것을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여, 오직 당신만이 나를 희망 안에 두셨습니다.
나는 그 구절을 읽고 정렬이 끓어올랐지만
저 듣지 못하는 사자들에게 어떻게 주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나 자신 재앙있는 한 사람으로써 천상의 꿀로 달콤하기 이를데 없고
당신의 빛이 환히 비치던 빛의 성경에 대해서 나는 개처럼 짖어 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성경의 적들 때문에 안달하고 있습니다.
휴가 기간에 일어난 일들을 추억할 날은 언제인가.
그러나 나는 당신의 회초리와 놀랍게도 빠른 자비만은 잊지 않을 것이며
절대로 입을 다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무렵 당시은 치통으로 나를 고문 하셨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건강의 주인이신 당신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그 내용을 납판에다 적어서 그들에게 주어 읽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성을 모아 무릎을 꿇자마자 아픔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어떻게 해서 사라졌을까요?
내 주, 하나님이시여!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철이 든 지금 그런 일이라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당신의 뜻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당신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아직 당신의 세례를 통하여
지난 날의 죄사함을 받지 못한 까닭에 나의 마음은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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