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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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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9. 27. 주일 4부설교 |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비상한 사랑에 의해서 오늘 우리가 다 주님 나라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상한 갈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갈대밭에 가보면 상한 갈대들이 종종 바람에 이리 불리고 저리 불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짐승들에게 짓밟히기도 하고 바람에 부러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갈대를 보면 자비와 긍휼을 느끼지 아니합니다. 쉽게 그것을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는 등불을 쓸 때 기름이 다하면 등불에서 연기가 나고 불길이 가물가물해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훅 불어서 꺼버립니다. 예수님은 갈대와 같은 상처 입은 인간, 생명이 꺼져가는 등불 같은 인간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돌보심을 이곳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단히 마음에 감격적인 것입니다.
<본론>
1.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
하루는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아침에 일찍이 나오셔서 말씀을 증거하는데 사람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한 여인의 머리채를 끌고 예수님 있는대로 오는데 신발은 벗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고 얼굴은 할퀴어지고 크게 상처를 벌써 입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발 앞에 내동댕이 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들이 예수님께 준엄하게 따졌습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는 돌로써 쳐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아! 쳐죽이려면 현장에 잡힌 그 자리에서 쳐 죽이지 왜 예수께 끌고 왔습니까?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이지 말라면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무시하는데 어떻게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냐? 쳐죽이라고 하면 “당신은 자비와 긍휼이 없는 몰인정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구주라고 말하느냐? 이래도 책을 잡고 저래도 책을 잡으려고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이 여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고개를 숙여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쓴 글을 보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무슨 내용을 적었다고 말하지 않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간음하다가 잡혀서 돌에 맞아 죽는 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도 돌에 맞아 죽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도 돌에 맞아 죽고 다른 죄를 지은 것도 돌에 맞아 죽을 죄들이 많습니다. 그 돌에 맞아 죽을 죄들을 주님께서 나열해 적으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 고개를 들어서 큰 사람부터 작은 사람까지 보시고 난 다음에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이 여자를 쳐라. 그리고 난 다음 고개를 숙여서 또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둘러싼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서 감추인 죄를 손가락으로 적어 내려갑니다. 모조리 다 돌에 맞아 죽을 죄들을 다 감추어 놓고 있습니다. 예수님 손가락이 가는 곳마다 보니까 아이구 나도 죽을 죄를 지었구나. 아이구 내 죄도 감추었는데 드러났구나. 자기의 죄가 드러나니까 돌을 다 놔버리고 슬며시 뒤로 빠져 도망을 치는데 한참만에 예수님이 고개를 드니까 다 달아나 버리고 한 사람도 없어요. 성경말씀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렇게 쟁쟁한 의인이라고 자랑하던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예수님 계시 앞에 다 달아나고 한 사람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고 여자여 고개를 들어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너를 돌로 치는 사람이 있느냐. 살펴보니까 돌만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고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돌로 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하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가서 다시 죄짓지 말라. 주님께서 꾸짖지 아니하시고 그 여자에게 용서와 축복을 해주어서 보낸 것입니다. 간음한 것을 잘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죄해서 너를 돌로 죽이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올바른 생활을 해라. 이 여자는 상처 입은 갈대인데 예수님이 꺾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갈대를 도로 잘 보호해서 살려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쉽게 우리 이웃을 정죄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하고 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근본 목적이 사람들을 건지고 살리는 것이 근본목적이지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마음의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재생의 은혜를 입은 이 여인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율법으로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 여자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어찌하든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살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죄를 이기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자 프란시스(San Francesco d'Assisi)의 일화 중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제자 한 사람이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천국에 가서 구경을 했는데, 아주 보좌들이 많이 놓여 있는데 특별히 그 보좌 가운데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보좌가 있어서 이것은 누구를 위한 보좌입니까? 하고 천사에게 물으니까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란시스를 위해서 예비한 보좌”라고 말했습니다. 이 제자는 굉장히 감격해서 그 환상에서 깨어나서 스승인 성 프란시스를 만나서 “제가 환상 중에 하늘에 가보니까 제일 영광스러운 보좌가 있는데 그것이 선생님의 보좌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선생님은 “네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느냐?” “선생님은 성자지요.” “이 세상에서 나만큼 악하고 더러운 사람이 없다. 나는 악이요, 죄덩어리다.” 그러니까 이 제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그렇게 자기를 비하하지 마십시오. 겸손도 너무 겸손하면 죄가 됩니다.” 그러자 성 프란시스는 제자를 가만히 내려다 보면서 “내가 겸손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주었더라면 나보다 훨씬 거룩한 성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같이 못난 사람에게 하나님 은혜를 주어서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내 힘으로 나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이 택해서 불러서 성령으로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를 도우사 회개하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피로 용서하시고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 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신 것입니다. 만세전에 하나님이 안택했으면 우리가 주님을 알 턱이 없습니다. 또 주님이 보혈을 흘려 주지 않았으면 우리 죄악 덩어리를 씻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서 우리 영의 눈을 열어주지 아니하시면 영의 세계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모두다 하나님께서 해주셨지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대로 순종하여 따라가며 믿고 나왔을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지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상한 갈대를 많이 봅니다. 우리 이웃에서도 상한 갈대가 되어 있는 남녀를 보고 우리 주위에도 상한 갈대가 된 남녀를 봅니다. 상처를 입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을 봅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같이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런 사람의 상처를 쳐매어 주고 고쳐주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잘못 나고 버림받고 슬픔당하고 괴로운 사람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상처 입은 갈대를 주님께서 꺾지 않고 끝까지 살려낼려고 주님께서 노력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잘나고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구해서 살릴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이 못난 사람 나같이 상처 투성이인 사람, 나같이 죄많은 사람을 하나님이 관심을 가져 주겠느냐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죄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한푼의 가치도 없는데 예수님을 보내서 그 고귀한 피를 흘렸습니다. 너무 비싼 값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값이 나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값도 안나가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셨으니 그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감동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여러분과 나를 샀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늘 감격해야 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 지금 연기가 자꾸 나고 불길은 사라져가는 심지가 다 타버린 꺼져가는 등불을 우리 사람들은 쉽게 훅 불어서 꺼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도로 살려 놓습니다.
2.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
예수님께서 정오에 사마리아를 지나가다가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점심때가 되니까 제자들은 시내로 음식을 사러 갔습니다. 예수님에 우물가에 앉아 있는데 사마리아에 한 여자가 물통을 어깨에 걸머지고 우물가에 와서 주위를 살펴보지도 아니하고 그대로 물을 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고 “여자여 물을 내게 좀 주십시오.” 깜짝 놀랍니다 여자가, “당신 유대인으로써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어떻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취급했습니다. 사람으로 취급 안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더구나 정오에 물을 기르러 왔습니다. 물은 아침에 기르러 오든지 저녁에 기르러 오지 쨍쨍 해가 비취는 정오에 안옵니다. 정오에 온 이유는 이 여자는 사마리아에서 모두 다 손가락질 받는 소외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피해서 안올 때 정오에 우물 기르러 왔습니다. 마음속에 이미 정죄 받았고 마음 속에 버림받은 심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인 것입니다. 죄 많은 여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까 이 여자가 기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물을 좀 달라는 자가 누군지 네가 알았으면 네가 오히려 물을 구했을 것이요. 내가 생수를 너에게 줄 것이다.” “뭐요? 생수를요? 이 우물물이 얼마나 깊은데 당신은 물 기를데가 없으면서 어떻게 생수를 퍼냅니까?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그 자녀들에게 파준 것이고 그 자녀들이 이 우물을 먹었는데 당신 우리 조상 야곱보다 크니이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른다. 또 물길러 오고 또 물길러 온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다시 물길러 올 필요없다.” “그렇다면 그 물을 내게 좀 주십시오. 나도 물길로 오지도 말고 목마르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니 예수님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당신 남편을 데리고 오너라.”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님이 “맞다. 맞았어요. 당신은 남편이 다섯이 있었는데 다섯하고 다 헤어지고 이제 여섯 번째 오다가다 만난 사람과 살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당신 이제 보니 선지자군요? 내 삶을 낱낱이 다 알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예배할 처소가 예루살렘에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사마리아에서 예배를 드린다. 주님께서 “사마리아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이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왔나니 지금이 그때라.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그러니까 이 여자가 너무 어려워지는 종교적 문제가 되니까 “장차 메시아가 올 것인데 이 메시아가 오시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를 자세히 보시고 “네가 지금 함께 말하고 있는 그 상대인 내가 그 메시아라고..” 깜짝 놀랬습니다. 물동이도 두레박도 다 내버리고 그는 후닥딱 일어나서 그 길로 시내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을 피하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그 생애에 순식간에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죄의 용서와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가 마음속에 홍수처럼 다가왔습니다. 정말 마른 땅에 시냇물이 흐르듯이 말라 비뚫어진 그 마음에 시냇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나가서 사람들에게서 “여러분 나를 따라와 보십시오. 나의 살아온 생애를 낱낱이 들여다 보고 아시는 분을 만났는데 메시아입니다. 이 분이 메시아인 것 같습니다. 한번 와 보십시오.” 온 동리가 다 나와서 보니 예수님을 보고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는 며칠 더 있기를 간청해서 예수님이 며칠 더 있으면서 그들을 기도해 주고 말씀을 전해주니까 큰 은혜를 받고 나중에 말하기를 “네가 말하므로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듣고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믿는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꺼져가던 등불 같은 이 죄인 여자를 주님께서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죄를 자복하게 유도하시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서 생수를 마시게 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
강이 흘러내리면 강가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게 되는 것입니다. 강가에 있는 모든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막에 강물이 말라지면 모든 생물은 다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의 강이 흐르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모든 것이 살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즐거움과 행복이 살아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생수의 강을 반드시 마셔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범죄는 과거에 비해 더욱 잔인하고 끔직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 ‘김대두’를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두 라는 사람은 사형수인데 16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는 체포되어서 형무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형무소에 있을 동안「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간증집을 내었고“사형장의 찬송 소리”라는 제목으로 책을 지었던 것입니다. 사형을 받는 날 당일에, 사형수에게 하는 말이 “너 할 말이 없느냐?” 그러니까 김대두는 말하기를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해 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영영 이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와서 저하고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원목을 보시고 “목사님, 정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 같은 살인 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셔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나는 변하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는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사형을 받았습니다. 많은 생명을 빼앗아간 그를 세상은 정죄했습니다. 세상은 김대두라면 몸서리를 치고 그놈은 열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 김대두의 철창을 통해서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를 용서하고 그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면서 천국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어떤 때는 사랑이 너무 많지 않느냐. 의심이 생길 정도인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좌우에 두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그들은 강도요, 선동자요, 살인자였습니다. 강도질하고 선동들하고 살인한 사람이 예수님 옆에 달렸는데 그 중에 한 강도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 오시는 날에 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그가 무슨 큰 회개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구요. 사람들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있는데요. 다른 강도는 예수님을 보고 욕을 하고 “당신이 하나님 아들이면 우리 함께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라”고 고함 고함 치는데 이 강도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 나라에 오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두말하지 않고 당장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가 회개한 일도 없고 좋은 일 한 것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했을 따름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고백만 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무 간단하고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의심을 하고 안 믿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무슨 조건이라도 조건이 붙으면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믿음으로 그 능력에 의지해서 용서와 사랑과 의를 받아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생명을 앗아간 김대두 같은 사람도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생명이 꺼져가는 등불 같은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 사랑과 은혜를 주신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말로 다할 수 없이 생명수를 주시고 하나님이 감사와 찬양을 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율법과 사랑과 은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율법과 사랑과 은혜에 대한 대조를 종종합니다.
율법은 뭘하는 것이냐. 구약에 율법은 약 600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심되는 것이 십계명이지요. 율법은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 잘했다고 칭찬하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적해서 드러나게 하고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9절로 20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 아래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제가 청주에서 부흥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그때 많이 모였는데 “여러분 중에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내가 상을 주겠다.”고 그러니까 한 30대 젊은이가 손을 탁 들고서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탄성을 했습니다. 저도 아주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래서 “아니 여태까지 살면서 죄를 한번도 안지었다니 어디 한번 나와 보십시오.” 그러니까 그 옆에 있는 젊은 여성이 막 이래요. 그러더니 왜냐 하니까 “우리 남편은 미쳐서 병 고치러 나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보니까 미친 사람만 자기가 죄를 안지었다고 말하지 정상적인 사람은 자기의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비춰보면 죄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죄를 많이 짓고 적게 지은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죄가 전혀 없는 것은 없습니다.
네덜란드의 한 시인이 꿈에 천국을 갔는데 한 천사가 그를 맞으며 금빛 나는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인이 천사에게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물으니까 당신의 일생을 기록해 놓은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첫 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깨알 같이 차곡차곡 기록해 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시인이 내용을 묻자 천사는 당신의 악한 행동을 다 적어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악한 행동이 많은지 몰라요. 시인은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겼는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글씨가 가득했습니다. 천사는“당신이 했던 사악한 말들이 여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쁜 말한 말이 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장은 이보다 더 많은 글씨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천사가 설명을 해 주는데“이것은 당신이 했던 악한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이제 더 이상 다음 장을 넘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넘겨주는데 온통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두려워서 그에게 천사는 이것이 당신의 악한 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검은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오고, 악한 생각에서 악한 말과 행동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 덩어리인가 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 했다는 말을 보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마음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죄덩어리지요.
한경직 목사님이 세상을 뜨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기독교신문 기자가 “한경직 목사님의 평생 살아온 삶을 한마디로 말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나는 죄덩어리입니다. 죄덩어리인 내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힘입고 구원을 받아 천당으로 갑니다.” 우리가 한경직 목사는 우리 한국에 최대의 목사로써 존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훌륭하고 올바른 삶을 살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볼 때는 죄악덩어리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죄덩어리입니다. 의로운 사람일수록 자기가 더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의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 이와같이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율법 앞에 서면 온통 죄덩어리입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하나님 앞에 서면 죄덩어리가 되어서 못섭니다. 예수님의 피로써 우리가 목욕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수 있지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라면 하나님의 밝은 빛이 비취면 엄청난 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나를 견디지 못해서 도망을 칩니다. 장마가 지나고 난 다음에 거적대기를 들추면 그 밑에서 벌레들이 부리나케 전부 달아나는 것입니다. 햇빛이 비취지 않을 때는 그 거적대기 밑에서 잘 살았는데 햇빛이 비취니까 견디지 못해서 산지사방으로 달아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빛이 아직 적극적으로 비취지 않으니까 우리가 지상에서 살아있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직접 우리에게 비취면 살아있을 사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고 살아있을 사람이 없다는 말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영광의 광채에 우리 죄인이 견디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우리 죄를 청산해 주신 예수께 의지해서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은 의인인데 행동으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고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죄를 한번도 안지은 상태가 의입니다. 평생에 죄를 한번도 안지어야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피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보혈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모두다 위선자입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고 삽니다. 위선자입니다. 거짓말쟁이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0절로 11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모든 일에 항상 의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요. 그러므로 율법 앞에서 다 정죄되고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율법을 지켰다고 어깨에 힘주는 사람 같으면 그 사람은 위선자인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법대로 합시다. 법대로 해요.” 법대로 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면서 설교가인 미국의 아이언사이드(Dr.H.A.Ironside) 목사님이 그의 교회에서 당회를 하는데 갑자기 청년 하나가 손을 들더니 큰 소리로 고함을 쳤습니다. “법이요, 법! 법대로 합시다!” 이 말을 듣던 아이언사이드 목사가 그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여보게 젊은이, 법대로 하기를 원하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자네를 법대로 다루셨다면 자네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자네는 벌써 지옥에 가서 앉아 있을 것이다.” 법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지 그 법을 지켜서 법이 우리를 의롭게 만들 정도로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항상 법보다도 사랑과 은혜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법은 정죄하고 심판하지만 사랑은 용서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냈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낸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구원받는 길이 얼마나 쉽습니까? 이 성경에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받는데 믿기만 하면 멸망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차별이 없어요.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으니 그 사랑을 우리가 항상 마음속에 감격스럽게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4세기에 활동한 사막의 수도사 압바 미오스(Abba Mios)에게 한 군인이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죄인을 용서하실까요?” 수도사는 그에게 용서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는 말하기를 “자네가 입고 있는 그 외투가 찢어지면 그냥 내버리느냐?” “아니요. 기워서 도로 입지요.” “몇푼 안나가는 외투도 찢어지면 도로 기워서 입는데 자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은 존재야. 그것이 찢어지고 흠이 있다고 해서 주님이 그대로 버릴 수 있겠는가? 주님께 나오면 다 주님께 꿰매서 고쳐서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니 주님의 은혜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란다.” 우리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결코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용서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상한 갈대도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상한 갈대 그대로 내버려 놓아도 저절로 꺾일 것도 주님이 붙잡아서 일으켜 주시고 쳐매 주셔서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꺼져가는 심지 훅 불어 버리고 꺼질 것인데 그것을 주님께서 복을 돋워 주시고 기름을 부으셔서 도로 불이 붙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시편 103편 8절로 9절에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십니다. 많이 불쌍히 여깁니다. 부모님은 자식에 대해서 긍휼이 많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부모는 긍휼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이기 때문에 우리에 대해서 긍휼이 많고 우리에게 은혜로우시고 쉽게 노하여 채찍을 들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풍부하신 것입니다. 늘 꾸짖지만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노하실 때도 계시지만 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감격적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으로 보냈지만 존중해서 와서 온갖 곤욕과 고통을 당하시고 못에 박혀 몸찢고 피흘려 죽으신 것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은 죄진 사람이 들어가면 감옥입니다. 한번 죽고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것은 죄를 못 갚으면 영원히 죽음의 감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갚으면 감옥에 갇혀 있지 않고 나옵니다. 다른 모든 성자들은 다 죽고 난 다음에 아직까지도 무덤이 있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감옥에 들어가서 3일만에 죄값을 다 지불하고 살아났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용서받았단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 죄를 걸머지고 죽음이라는 감옥에 들어갔는데 영원히 못나왔으면 우리는 영원히 죄인이지요. 사흘만에 다 갚아버렸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다 청산했습니다.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처럼 주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대로 우리 범죄 때문에 주님이 죽음에 내어짐이 되고 그가 살아나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용서함 받고 영원히 살아난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더이상 괴롭히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 값을 다 갚았다고 큰소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감옥에 들어가서 죄를 다 갚고 나왔으니 나는 죄인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이다. 죄를 한번도 짓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다. 마귀 너는 나를 참수하지 못한다. 네가 참수할 죄가 없다. 우리는 담대하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야~ 이 말씀 참 놀랍습니다. 구원이 그냥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추석이 오니까 우리가 선물을 주고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값을 지불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값을 다 지불하고 우리에게는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선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행위에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도 하나도 없어요. 모두 다 자랑할 자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자랑해야지 우리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 이외에 다른 것이 구원의 조건에 붙으면 안됩니다.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까 주일 예배 나오고 십일조 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고 행동을 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믿음이 그 큰 죄악을 다 사해 버리고 그 무서운 사망을 다 이겨버리고 우리에게 의와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믿으면 하겠네 구주 예수만 믿어 하신 일 힘입고 우리 주께 나오면 영원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실제로 체험해 주기 위해서 일하고 계신 분이 성령 보혜사이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니까 지금도 성령이 바람과 같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면서 여러분 아멘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감동이 오니까 아멘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감동을 누가 주십니까?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 예수님의 은혜가 이렇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것이냐? 우리로 하여금 아멘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과 땅보다 더 크고 예수님의 은혜는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성령이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가지고서 우리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입은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새사람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나를 변화시켜서 새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벗어 버리고 새로 입으라. 우리 힘으로 벗지도 못하고 우리 힘으로 입지도 못합니다. 성령이 도와주셔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하고 옛사람을 탄식하고 미워하고 벗어 버릴 수 있고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감동하므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의 일평생 도와주시는 도우미가 되시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이 일평생 나와 같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께 자꾸 도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 또 옛사람이 살아 일어나니 옛사람을 벗어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나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항상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성령님이 같이 계시고 성령님이 여러분과 나를 새로운 삶으로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디한(M.R.DeHaan) 박사는 율법과 은혜에 대하여 7가지로 아주 간략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첫째,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한다.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죄인으로 정죄하는데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나,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말한다.
셋째, 율법은 죄의 빚을 갚으라고 하지만, 은혜는 이미 죗값을 지불했다고 말한다.
넷째,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은혜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도와준다.
다섯째, 율법은 돌에 새겼으나 은혜는 마음에 기록한다.
여섯째, 율법은 두려움을 가져오나 은혜는 화평과 확신을 가져다 준다.
일곱째, 율법은 복종을 강요하지만, 은혜는 순종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강제로 율법은 하라 하지마라. 명령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가 와서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원해서 순종하고 자원해서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이 죄를 드러나게 하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데 반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그 죄를 덮어 버리고 심판을 무력화 시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마음에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모두 상한 갈대요 생수에 갈급한 인간입니다. 상한 갈대 아닌 사람 누가 있습니까? 우리 다 상한 갈대 아닙니까? 크고 적은 상처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생수가 갈급합니다. 마음이 마른 사막과 같습니다. 어떤 종교도, 철학도, 율법도 우리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살리시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 마음이 텅빈 공허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고 슬픔을 느낄 때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고 희망이 없는가.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꽉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 일에 바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음에 공허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꽉들어 차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만나고 싶은 예수」라는 그의 책에서 현대 경영의 아버지이며 20세기의 가장 명석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인 피터 드러커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몇 년 전에 릭 워렌 목사가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의 집을 방문하여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같이 훌륭하고 지혜가 많고 돈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셨습니까?” 라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은혜를 깨닫던 그 날, 세상에 이보다 수지 맞는 일은 없다는 걸 알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나니까 세상의 어떤 일도 이것보다 더 수지 맞는 일이 없다.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보니 그 수지가 얼마나 맞습니까? 세상 다른 일보다도 그런 수지가 맞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도 철학도 명석한 사상과 신학도, 과학도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살리고 성령의 역사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수지가 맞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오시고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를 감싸 주시고 성령이 우리를 붙들어서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선물로 받게 되었으니 수지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아주 수지 맞았지요. 정말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과 우리 주 예수님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항상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획을 따라 모든 것을 다 실천하시고 성령님은 예수님이 실천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시는 역사는 다르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상한 갈대가 되더라도 아무리 꺼져가는 심지 같은 인생이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축복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부러진 갈대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무시하지 않는데요.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데요. 성령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데요. 우리가 사람의 평론에 좌우될 것 없습니다. 사람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연기와 같은 것입니다. 풀은 시들고 연기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이 여러분을 두 손을 내밀어 끌어 안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에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입니다. 돈도 사라집니다. 지위도 사라집니다. 명예도 사라집니다. 권세도 사라집니다. 청춘도 사라집니다. 저는 착각을 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꼭 17살 같은 마음이 생겨요. 내가 17살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박수칠 것이 못되는 것이 실제 알고 보니까 73살이에요. 이런 착각을 하고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손에 무엇을 쥐고 있으면 영원히 내 것인지 알지만 착각입니다. 다 물거품을 손에 쥐는 것입니다. 쥐었다고 하면 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밖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항상 이 영원을 가슴에 품고 그 영원의 가슴에 안겨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고 심판의 그날까지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용기와 담력을 얻고 하나님 앞에 나오고 예수님께 의지하오니 하나님 붙들어 주셔서 다시 살아나고 다시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우리 둔한 마음을 밝혀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항상 주님을 즐겁게 하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우리에게 충만히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비상한 사랑에 의해서 오늘 우리가 다 주님 나라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상한 갈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갈대밭에 가보면 상한 갈대들이 종종 바람에 이리 불리고 저리 불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짐승들에게 짓밟히기도 하고 바람에 부러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갈대를 보면 자비와 긍휼을 느끼지 아니합니다. 쉽게 그것을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는 등불을 쓸 때 기름이 다하면 등불에서 연기가 나고 불길이 가물가물해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훅 불어서 꺼버립니다. 예수님은 갈대와 같은 상처 입은 인간, 생명이 꺼져가는 등불 같은 인간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돌보심을 이곳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단히 마음에 감격적인 것입니다.
<본론>
1.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
하루는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아침에 일찍이 나오셔서 말씀을 증거하는데 사람들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한 여인의 머리채를 끌고 예수님 있는대로 오는데 신발은 벗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고 얼굴은 할퀴어지고 크게 상처를 벌써 입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발 앞에 내동댕이 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들이 예수님께 준엄하게 따졌습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는 돌로써 쳐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아! 쳐죽이려면 현장에 잡힌 그 자리에서 쳐 죽이지 왜 예수께 끌고 왔습니까?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이지 말라면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무시하는데 어떻게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냐? 쳐죽이라고 하면 “당신은 자비와 긍휼이 없는 몰인정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구주라고 말하느냐? 이래도 책을 잡고 저래도 책을 잡으려고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이 여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고개를 숙여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쓴 글을 보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무슨 내용을 적었다고 말하지 않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간음하다가 잡혀서 돌에 맞아 죽는 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도 돌에 맞아 죽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도 돌에 맞아 죽고 다른 죄를 지은 것도 돌에 맞아 죽을 죄들이 많습니다. 그 돌에 맞아 죽을 죄들을 주님께서 나열해 적으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 고개를 들어서 큰 사람부터 작은 사람까지 보시고 난 다음에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이 여자를 쳐라. 그리고 난 다음 고개를 숙여서 또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둘러싼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서 감추인 죄를 손가락으로 적어 내려갑니다. 모조리 다 돌에 맞아 죽을 죄들을 다 감추어 놓고 있습니다. 예수님 손가락이 가는 곳마다 보니까 아이구 나도 죽을 죄를 지었구나. 아이구 내 죄도 감추었는데 드러났구나. 자기의 죄가 드러나니까 돌을 다 놔버리고 슬며시 뒤로 빠져 도망을 치는데 한참만에 예수님이 고개를 드니까 다 달아나 버리고 한 사람도 없어요. 성경말씀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렇게 쟁쟁한 의인이라고 자랑하던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예수님 계시 앞에 다 달아나고 한 사람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고 여자여 고개를 들어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너를 돌로 치는 사람이 있느냐. 살펴보니까 돌만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고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돌로 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하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가서 다시 죄짓지 말라. 주님께서 꾸짖지 아니하시고 그 여자에게 용서와 축복을 해주어서 보낸 것입니다. 간음한 것을 잘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죄해서 너를 돌로 죽이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올바른 생활을 해라. 이 여자는 상처 입은 갈대인데 예수님이 꺾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갈대를 도로 잘 보호해서 살려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쉽게 우리 이웃을 정죄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하고 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근본 목적이 사람들을 건지고 살리는 것이 근본목적이지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마음의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재생의 은혜를 입은 이 여인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율법으로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 여자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어찌하든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살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죄를 이기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자 프란시스(San Francesco d'Assisi)의 일화 중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제자 한 사람이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천국에 가서 구경을 했는데, 아주 보좌들이 많이 놓여 있는데 특별히 그 보좌 가운데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보좌가 있어서 이것은 누구를 위한 보좌입니까? 하고 천사에게 물으니까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란시스를 위해서 예비한 보좌”라고 말했습니다. 이 제자는 굉장히 감격해서 그 환상에서 깨어나서 스승인 성 프란시스를 만나서 “제가 환상 중에 하늘에 가보니까 제일 영광스러운 보좌가 있는데 그것이 선생님의 보좌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선생님은 “네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느냐?” “선생님은 성자지요.” “이 세상에서 나만큼 악하고 더러운 사람이 없다. 나는 악이요, 죄덩어리다.” 그러니까 이 제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그렇게 자기를 비하하지 마십시오. 겸손도 너무 겸손하면 죄가 됩니다.” 그러자 성 프란시스는 제자를 가만히 내려다 보면서 “내가 겸손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주었더라면 나보다 훨씬 거룩한 성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같이 못난 사람에게 하나님 은혜를 주어서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내 힘으로 나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이 택해서 불러서 성령으로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를 도우사 회개하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피로 용서하시고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 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신 것입니다. 만세전에 하나님이 안택했으면 우리가 주님을 알 턱이 없습니다. 또 주님이 보혈을 흘려 주지 않았으면 우리 죄악 덩어리를 씻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서 우리 영의 눈을 열어주지 아니하시면 영의 세계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모두다 하나님께서 해주셨지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대로 순종하여 따라가며 믿고 나왔을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지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상한 갈대를 많이 봅니다. 우리 이웃에서도 상한 갈대가 되어 있는 남녀를 보고 우리 주위에도 상한 갈대가 된 남녀를 봅니다. 상처를 입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을 봅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같이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런 사람의 상처를 쳐매어 주고 고쳐주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잘못 나고 버림받고 슬픔당하고 괴로운 사람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상처 입은 갈대를 주님께서 꺾지 않고 끝까지 살려낼려고 주님께서 노력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잘나고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구해서 살릴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이 못난 사람 나같이 상처 투성이인 사람, 나같이 죄많은 사람을 하나님이 관심을 가져 주겠느냐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죄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한푼의 가치도 없는데 예수님을 보내서 그 고귀한 피를 흘렸습니다. 너무 비싼 값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값이 나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값도 안나가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셨으니 그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감동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여러분과 나를 샀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늘 감격해야 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 지금 연기가 자꾸 나고 불길은 사라져가는 심지가 다 타버린 꺼져가는 등불을 우리 사람들은 쉽게 훅 불어서 꺼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도로 살려 놓습니다.
2.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
예수님께서 정오에 사마리아를 지나가다가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점심때가 되니까 제자들은 시내로 음식을 사러 갔습니다. 예수님에 우물가에 앉아 있는데 사마리아에 한 여자가 물통을 어깨에 걸머지고 우물가에 와서 주위를 살펴보지도 아니하고 그대로 물을 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고 “여자여 물을 내게 좀 주십시오.” 깜짝 놀랍니다 여자가, “당신 유대인으로써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어떻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취급했습니다. 사람으로 취급 안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더구나 정오에 물을 기르러 왔습니다. 물은 아침에 기르러 오든지 저녁에 기르러 오지 쨍쨍 해가 비취는 정오에 안옵니다. 정오에 온 이유는 이 여자는 사마리아에서 모두 다 손가락질 받는 소외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피해서 안올 때 정오에 우물 기르러 왔습니다. 마음속에 이미 정죄 받았고 마음 속에 버림받은 심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인 것입니다. 죄 많은 여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까 이 여자가 기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물을 좀 달라는 자가 누군지 네가 알았으면 네가 오히려 물을 구했을 것이요. 내가 생수를 너에게 줄 것이다.” “뭐요? 생수를요? 이 우물물이 얼마나 깊은데 당신은 물 기를데가 없으면서 어떻게 생수를 퍼냅니까?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그 자녀들에게 파준 것이고 그 자녀들이 이 우물을 먹었는데 당신 우리 조상 야곱보다 크니이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른다. 또 물길러 오고 또 물길러 온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다시 물길러 올 필요없다.” “그렇다면 그 물을 내게 좀 주십시오. 나도 물길로 오지도 말고 목마르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니 예수님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당신 남편을 데리고 오너라.”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님이 “맞다. 맞았어요. 당신은 남편이 다섯이 있었는데 다섯하고 다 헤어지고 이제 여섯 번째 오다가다 만난 사람과 살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당신 이제 보니 선지자군요? 내 삶을 낱낱이 다 알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예배할 처소가 예루살렘에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사마리아에서 예배를 드린다. 주님께서 “사마리아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이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왔나니 지금이 그때라.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그러니까 이 여자가 너무 어려워지는 종교적 문제가 되니까 “장차 메시아가 올 것인데 이 메시아가 오시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를 자세히 보시고 “네가 지금 함께 말하고 있는 그 상대인 내가 그 메시아라고..” 깜짝 놀랬습니다. 물동이도 두레박도 다 내버리고 그는 후닥딱 일어나서 그 길로 시내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을 피하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그 생애에 순식간에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죄의 용서와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가 마음속에 홍수처럼 다가왔습니다. 정말 마른 땅에 시냇물이 흐르듯이 말라 비뚫어진 그 마음에 시냇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나가서 사람들에게서 “여러분 나를 따라와 보십시오. 나의 살아온 생애를 낱낱이 들여다 보고 아시는 분을 만났는데 메시아입니다. 이 분이 메시아인 것 같습니다. 한번 와 보십시오.” 온 동리가 다 나와서 보니 예수님을 보고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는 며칠 더 있기를 간청해서 예수님이 며칠 더 있으면서 그들을 기도해 주고 말씀을 전해주니까 큰 은혜를 받고 나중에 말하기를 “네가 말하므로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듣고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믿는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꺼져가던 등불 같은 이 죄인 여자를 주님께서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죄를 자복하게 유도하시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서 생수를 마시게 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
강이 흘러내리면 강가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게 되는 것입니다. 강가에 있는 모든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막에 강물이 말라지면 모든 생물은 다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의 강이 흐르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모든 것이 살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즐거움과 행복이 살아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생수의 강을 반드시 마셔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범죄는 과거에 비해 더욱 잔인하고 끔직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 ‘김대두’를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두 라는 사람은 사형수인데 16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는 체포되어서 형무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형무소에 있을 동안「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간증집을 내었고“사형장의 찬송 소리”라는 제목으로 책을 지었던 것입니다. 사형을 받는 날 당일에, 사형수에게 하는 말이 “너 할 말이 없느냐?” 그러니까 김대두는 말하기를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해 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영영 이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와서 저하고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원목을 보시고 “목사님, 정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 같은 살인 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셔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나는 변하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는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사형을 받았습니다. 많은 생명을 빼앗아간 그를 세상은 정죄했습니다. 세상은 김대두라면 몸서리를 치고 그놈은 열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 김대두의 철창을 통해서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를 용서하고 그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면서 천국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어떤 때는 사랑이 너무 많지 않느냐. 의심이 생길 정도인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좌우에 두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그들은 강도요, 선동자요, 살인자였습니다. 강도질하고 선동들하고 살인한 사람이 예수님 옆에 달렸는데 그 중에 한 강도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 오시는 날에 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그가 무슨 큰 회개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구요. 사람들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있는데요. 다른 강도는 예수님을 보고 욕을 하고 “당신이 하나님 아들이면 우리 함께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라”고 고함 고함 치는데 이 강도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 나라에 오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두말하지 않고 당장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가 회개한 일도 없고 좋은 일 한 것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했을 따름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고백만 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무 간단하고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의심을 하고 안 믿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무슨 조건이라도 조건이 붙으면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믿음으로 그 능력에 의지해서 용서와 사랑과 의를 받아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생명을 앗아간 김대두 같은 사람도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생명이 꺼져가는 등불 같은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 사랑과 은혜를 주신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말로 다할 수 없이 생명수를 주시고 하나님이 감사와 찬양을 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율법과 사랑과 은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율법과 사랑과 은혜에 대한 대조를 종종합니다.
율법은 뭘하는 것이냐. 구약에 율법은 약 600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심되는 것이 십계명이지요. 율법은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 잘했다고 칭찬하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적해서 드러나게 하고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9절로 20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 아래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제가 청주에서 부흥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그때 많이 모였는데 “여러분 중에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내가 상을 주겠다.”고 그러니까 한 30대 젊은이가 손을 탁 들고서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탄성을 했습니다. 저도 아주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래서 “아니 여태까지 살면서 죄를 한번도 안지었다니 어디 한번 나와 보십시오.” 그러니까 그 옆에 있는 젊은 여성이 막 이래요. 그러더니 왜냐 하니까 “우리 남편은 미쳐서 병 고치러 나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보니까 미친 사람만 자기가 죄를 안지었다고 말하지 정상적인 사람은 자기의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비춰보면 죄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죄를 많이 짓고 적게 지은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죄가 전혀 없는 것은 없습니다.
네덜란드의 한 시인이 꿈에 천국을 갔는데 한 천사가 그를 맞으며 금빛 나는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인이 천사에게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물으니까 당신의 일생을 기록해 놓은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첫 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깨알 같이 차곡차곡 기록해 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시인이 내용을 묻자 천사는 당신의 악한 행동을 다 적어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악한 행동이 많은지 몰라요. 시인은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겼는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글씨가 가득했습니다. 천사는“당신이 했던 사악한 말들이 여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쁜 말한 말이 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장은 이보다 더 많은 글씨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천사가 설명을 해 주는데“이것은 당신이 했던 악한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이제 더 이상 다음 장을 넘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넘겨주는데 온통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두려워서 그에게 천사는 이것이 당신의 악한 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검은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오고, 악한 생각에서 악한 말과 행동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 덩어리인가 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 했다는 말을 보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마음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죄덩어리지요.
한경직 목사님이 세상을 뜨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기독교신문 기자가 “한경직 목사님의 평생 살아온 삶을 한마디로 말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나는 죄덩어리입니다. 죄덩어리인 내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힘입고 구원을 받아 천당으로 갑니다.” 우리가 한경직 목사는 우리 한국에 최대의 목사로써 존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훌륭하고 올바른 삶을 살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볼 때는 죄악덩어리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죄덩어리입니다. 의로운 사람일수록 자기가 더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의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 이와같이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율법 앞에 서면 온통 죄덩어리입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하나님 앞에 서면 죄덩어리가 되어서 못섭니다. 예수님의 피로써 우리가 목욕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수 있지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라면 하나님의 밝은 빛이 비취면 엄청난 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나를 견디지 못해서 도망을 칩니다. 장마가 지나고 난 다음에 거적대기를 들추면 그 밑에서 벌레들이 부리나케 전부 달아나는 것입니다. 햇빛이 비취지 않을 때는 그 거적대기 밑에서 잘 살았는데 햇빛이 비취니까 견디지 못해서 산지사방으로 달아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빛이 아직 적극적으로 비취지 않으니까 우리가 지상에서 살아있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직접 우리에게 비취면 살아있을 사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고 살아있을 사람이 없다는 말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영광의 광채에 우리 죄인이 견디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우리 죄를 청산해 주신 예수께 의지해서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은 의인인데 행동으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고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죄를 한번도 안지은 상태가 의입니다. 평생에 죄를 한번도 안지어야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피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보혈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모두다 위선자입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고 삽니다. 위선자입니다. 거짓말쟁이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0절로 11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모든 일에 항상 의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요. 그러므로 율법 앞에서 다 정죄되고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율법을 지켰다고 어깨에 힘주는 사람 같으면 그 사람은 위선자인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법대로 합시다. 법대로 해요.” 법대로 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면서 설교가인 미국의 아이언사이드(Dr.H.A.Ironside) 목사님이 그의 교회에서 당회를 하는데 갑자기 청년 하나가 손을 들더니 큰 소리로 고함을 쳤습니다. “법이요, 법! 법대로 합시다!” 이 말을 듣던 아이언사이드 목사가 그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여보게 젊은이, 법대로 하기를 원하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자네를 법대로 다루셨다면 자네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자네는 벌써 지옥에 가서 앉아 있을 것이다.” 법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지 그 법을 지켜서 법이 우리를 의롭게 만들 정도로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항상 법보다도 사랑과 은혜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법은 정죄하고 심판하지만 사랑은 용서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냈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낸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구원받는 길이 얼마나 쉽습니까? 이 성경에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받는데 믿기만 하면 멸망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차별이 없어요.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으니 그 사랑을 우리가 항상 마음속에 감격스럽게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4세기에 활동한 사막의 수도사 압바 미오스(Abba Mios)에게 한 군인이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죄인을 용서하실까요?” 수도사는 그에게 용서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는 말하기를 “자네가 입고 있는 그 외투가 찢어지면 그냥 내버리느냐?” “아니요. 기워서 도로 입지요.” “몇푼 안나가는 외투도 찢어지면 도로 기워서 입는데 자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은 존재야. 그것이 찢어지고 흠이 있다고 해서 주님이 그대로 버릴 수 있겠는가? 주님께 나오면 다 주님께 꿰매서 고쳐서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니 주님의 은혜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란다.” 우리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결코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용서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상한 갈대도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상한 갈대 그대로 내버려 놓아도 저절로 꺾일 것도 주님이 붙잡아서 일으켜 주시고 쳐매 주셔서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꺼져가는 심지 훅 불어 버리고 꺼질 것인데 그것을 주님께서 복을 돋워 주시고 기름을 부으셔서 도로 불이 붙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시편 103편 8절로 9절에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십니다. 많이 불쌍히 여깁니다. 부모님은 자식에 대해서 긍휼이 많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부모는 긍휼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이기 때문에 우리에 대해서 긍휼이 많고 우리에게 은혜로우시고 쉽게 노하여 채찍을 들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풍부하신 것입니다. 늘 꾸짖지만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노하실 때도 계시지만 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감격적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으로 보냈지만 존중해서 와서 온갖 곤욕과 고통을 당하시고 못에 박혀 몸찢고 피흘려 죽으신 것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은 죄진 사람이 들어가면 감옥입니다. 한번 죽고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것은 죄를 못 갚으면 영원히 죽음의 감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갚으면 감옥에 갇혀 있지 않고 나옵니다. 다른 모든 성자들은 다 죽고 난 다음에 아직까지도 무덤이 있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감옥에 들어가서 3일만에 죄값을 다 지불하고 살아났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용서받았단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 죄를 걸머지고 죽음이라는 감옥에 들어갔는데 영원히 못나왔으면 우리는 영원히 죄인이지요. 사흘만에 다 갚아버렸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다 청산했습니다.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처럼 주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대로 우리 범죄 때문에 주님이 죽음에 내어짐이 되고 그가 살아나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용서함 받고 영원히 살아난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더이상 괴롭히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 값을 다 갚았다고 큰소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감옥에 들어가서 죄를 다 갚고 나왔으니 나는 죄인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이다. 죄를 한번도 짓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다. 마귀 너는 나를 참수하지 못한다. 네가 참수할 죄가 없다. 우리는 담대하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야~ 이 말씀 참 놀랍습니다. 구원이 그냥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추석이 오니까 우리가 선물을 주고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값을 지불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값을 다 지불하고 우리에게는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선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행위에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도 하나도 없어요. 모두 다 자랑할 자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자랑해야지 우리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 이외에 다른 것이 구원의 조건에 붙으면 안됩니다.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까 주일 예배 나오고 십일조 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고 행동을 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믿음이 그 큰 죄악을 다 사해 버리고 그 무서운 사망을 다 이겨버리고 우리에게 의와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믿으면 하겠네 구주 예수만 믿어 하신 일 힘입고 우리 주께 나오면 영원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실제로 체험해 주기 위해서 일하고 계신 분이 성령 보혜사이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니까 지금도 성령이 바람과 같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면서 여러분 아멘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감동이 오니까 아멘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감동을 누가 주십니까?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 예수님의 은혜가 이렇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것이냐? 우리로 하여금 아멘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과 땅보다 더 크고 예수님의 은혜는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성령이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가지고서 우리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입은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새사람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나를 변화시켜서 새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벗어 버리고 새로 입으라. 우리 힘으로 벗지도 못하고 우리 힘으로 입지도 못합니다. 성령이 도와주셔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하고 옛사람을 탄식하고 미워하고 벗어 버릴 수 있고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감동하므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의 일평생 도와주시는 도우미가 되시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이 일평생 나와 같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께 자꾸 도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 또 옛사람이 살아 일어나니 옛사람을 벗어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나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항상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성령님이 같이 계시고 성령님이 여러분과 나를 새로운 삶으로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디한(M.R.DeHaan) 박사는 율법과 은혜에 대하여 7가지로 아주 간략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첫째,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한다.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죄인으로 정죄하는데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나,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말한다.
셋째, 율법은 죄의 빚을 갚으라고 하지만, 은혜는 이미 죗값을 지불했다고 말한다.
넷째,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은혜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도와준다.
다섯째, 율법은 돌에 새겼으나 은혜는 마음에 기록한다.
여섯째, 율법은 두려움을 가져오나 은혜는 화평과 확신을 가져다 준다.
일곱째, 율법은 복종을 강요하지만, 은혜는 순종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강제로 율법은 하라 하지마라. 명령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가 와서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원해서 순종하고 자원해서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이 죄를 드러나게 하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데 반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그 죄를 덮어 버리고 심판을 무력화 시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마음에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모두 상한 갈대요 생수에 갈급한 인간입니다. 상한 갈대 아닌 사람 누가 있습니까? 우리 다 상한 갈대 아닙니까? 크고 적은 상처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생수가 갈급합니다. 마음이 마른 사막과 같습니다. 어떤 종교도, 철학도, 율법도 우리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살리시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 마음이 텅빈 공허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고 슬픔을 느낄 때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고 희망이 없는가.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꽉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 일에 바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음에 공허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꽉들어 차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만나고 싶은 예수」라는 그의 책에서 현대 경영의 아버지이며 20세기의 가장 명석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인 피터 드러커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몇 년 전에 릭 워렌 목사가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의 집을 방문하여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같이 훌륭하고 지혜가 많고 돈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셨습니까?” 라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은혜를 깨닫던 그 날, 세상에 이보다 수지 맞는 일은 없다는 걸 알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나니까 세상의 어떤 일도 이것보다 더 수지 맞는 일이 없다.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보니 그 수지가 얼마나 맞습니까? 세상 다른 일보다도 그런 수지가 맞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도 철학도 명석한 사상과 신학도, 과학도 우리를 살리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살리고 성령의 역사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수지가 맞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오시고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를 감싸 주시고 성령이 우리를 붙들어서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선물로 받게 되었으니 수지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아주 수지 맞았지요. 정말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과 우리 주 예수님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항상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획을 따라 모든 것을 다 실천하시고 성령님은 예수님이 실천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시는 역사는 다르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상한 갈대가 되더라도 아무리 꺼져가는 심지 같은 인생이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축복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부러진 갈대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무시하지 않는데요.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데요. 성령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데요. 우리가 사람의 평론에 좌우될 것 없습니다. 사람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연기와 같은 것입니다. 풀은 시들고 연기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이 여러분을 두 손을 내밀어 끌어 안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에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입니다. 돈도 사라집니다. 지위도 사라집니다. 명예도 사라집니다. 권세도 사라집니다. 청춘도 사라집니다. 저는 착각을 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꼭 17살 같은 마음이 생겨요. 내가 17살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박수칠 것이 못되는 것이 실제 알고 보니까 73살이에요. 이런 착각을 하고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손에 무엇을 쥐고 있으면 영원히 내 것인지 알지만 착각입니다. 다 물거품을 손에 쥐는 것입니다. 쥐었다고 하면 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밖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항상 이 영원을 가슴에 품고 그 영원의 가슴에 안겨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고 심판의 그날까지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용기와 담력을 얻고 하나님 앞에 나오고 예수님께 의지하오니 하나님 붙들어 주셔서 다시 살아나고 다시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우리 둔한 마음을 밝혀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항상 주님을 즐겁게 하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우리에게 충만히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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