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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희망

사도행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127 추천 수 0 2010.03.01 21: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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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25~29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10.4 주일4부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여러분, 즐거운 추석 세셨습니까?
할렐루야..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좋은일이 일어납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삶과 희망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날 저의 사무실에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굉장히 초라한 옷을입고 초췌한 모습으로 사무에 신앙상담을 왔습니다.
그 할머니 말에 귀를 귀울인즉 6.25 때 10대 나이의 젊은 아가씨로서 시골에서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고 나서 얼마있지 아니하여 6.25 전쟁이 터져서 남편은 일선에 나갔는데 그만 죽고 말았어요. 남편이 없는 10대의 여성이 유복자를 가지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린 애기를 잘 길러서 나았습니다. 어린아기를 낳고 난 다음에 친정에서는 빨리 어린 아기를 고아원에 갔다 맡기고 인생을 재출발 하라고 재촉을 하고 아는 사람은 다 어린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까 맡기고 재출발하라고 하는데 애기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은 자기의 마음속에 무언지 큰 소망이 떠오르더라는 것입니다. 장차 내가 고생스럽더라도 애기를 잘 키워놓으면 이 아이가 청년이 되고 가정을 이루게 될 때 나는 호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결혼을 하지 말고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어야 되겠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서 아기를 키우는데 좌우간 세상에서 해본 일은 다 했어요. 쓰레기 뒤지기도 다하고 행상인 노릇도 하고 시골에 가서 논의 일도 돕고 뭐 안해 본 일이 없습니다 . 그러면서 손도 거칠고 몸도 거칠고 그런 사이에 몸은 늙어지고 어린아이는 자라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왔을 때는 이미 할머니가 다됐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서 그 아들을 장가를 보내는데 장가를 보내고 얼마있지 않아서 며느리가 어머니를 안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절대 어머니 안보겠다. 어머니 위해서 밥도 안차려주고 빨래도 어머니 빨래는 따로 내놓고 어머니가 직접하라고 그러고 그런데 아들이 섭섭하게도 잘 어머니 편을 들어주면 좋은데 아들도 며느리와 한패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내가 한평생을 그 자식을 하나 키워놓으면 희망이 있을꺼라 해서 그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희망이 나를 지금까지 살려 주었습니다. 희망이 없었으면 나는 벌써 포기했지요 그러나 이제 와서 그 희망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들도 며느리도 다 필요없이 되고 만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버림 받은 여자입니다. 목사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래서 자매님 이게 세상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전도서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희망을 이루어져도 얼마 않있으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희망을 이 세상에 두면 이 세상과 물질은 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예수님은 영원한 희망의 근원이 되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터이니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날 눈물을 흘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데 집에 갈 수가 없어서 교회에서 늘 자고 일주일에 몇끼 먹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늘 있더니만 나중에 안보입디다. 그래서 알아보니까 길거리에서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고 가는데 세상을 떴다는 겁니다.



사람이 희망을 잃어버릴 때 그 모습의 초췌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젊은 10대의 여성으로서 아기를 가졌을 때 희망이 그 어린아기를 키운것입니다. 키워놓으면 무슨 호강할 일이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 있을것이다 그래서 그 어려운 고통을 참고 애를 키울 수 있었는데 희망을 잃어 버리고 난 그는 완전히 살았으나 죽은 사람같이 보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60억이 넘는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인종이 다르고 모양새가 다르고 문화와 습관이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 밖에는 없습니다. 가슴에 절망의 무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 절망을 극복하고 가슴속에 찬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만들었을 때 절망적인 사람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희망으로 충만하게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타락해서 버림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태양을 떠난 식물들이 다 누렇게 떠서 죽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서 떠난 마음에 희망이 있을 수가 없는 것 입니다.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와 같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절망이 있으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들었어요 우리가 불순종하고 불신앙의 죄를 통회할 때 하나님이 앞에 나아가 우리는 절망적인 삶을 극복하고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면 제일 중요한 것이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잃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을 때는 살아갈 희망과 용기가 있는데 희망이 없으면 기운이 다 빠져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상실되고 인생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치고 인생을 포기 안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술을 퍼먹든지 그냥 방종하든지 될 대로 되라고 인생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물인간이 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하늘만 뻔히 쳐다보고 있고 자지도 아니하고 먹지도 아니하고 식물인간처럼 되버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우울증의 노예가 되어서 마음의 즐거움이 없고 누가 와서 무슨말을 해도 대꾸를 하지 않고 완전히 고독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잠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리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은 좋은 약과 같아서 심신을 치료하지만 마음의 근심을 뼈를 마르게 하니깐 그 몸에 살이 안 마를 수 있겠습니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죽음을 삶보다 더 좋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 플리쳐 상을 받았던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가였습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무기여 잘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은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한 책들입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의사로서 평생 선교사가 될 꿈을 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신앙심이 아주 깊었습니다. 그러나 해밍웨이는 성장하며 믿음의 길을 져버리고 아버지 어머니의 길을 떠나서 그는 불신앙의 길로 들어가서 방탕하면서 살다가 결국에는 자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는 삶의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항상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엽총으로 머리를 쏘아서 자살을 했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무렵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전지약이 다 떨어지고도 코드를 꽂으려 해도 꽂을 전원이 없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은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외로움과 공허함속에 살고 있다 나는 필라맨트가 끊어진 텅빈 전구처럼 공허하다 왜 하나님을 버렸으니까 세상의 지위도 있고 명예도 있고 상도 받고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았어도 그것은 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 마음속은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기전구처럼 너무나 텅비고 외롭다는 것 입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 공명과 쾌락을 다 가지고 있어도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면 그 마음은 공허하기 짝이 없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면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상실하고 인생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의 희망을 가지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어떠한 어려운 환경이 되어도 삶의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과 핍박이 와도 그걸 걸머 지고 나아갑니다. 왜 희망이 있으니까 얼마 안가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고난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난스러워도 희망이 있으면 이겨냅니다.
롬 5:3~4에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있으면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이 있으면 창조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뭇 없는 것을 있게 만들어 놓고 희안한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삶의 꿈과 행복이 넘쳐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삶의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행2:25~28 “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도 기쁨이 충만하고 죽어도 기쁨이 충만하고 어딜가도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 났을 때 영국 런던이 첫 폭격을 받았습니다. 다음 런던의 모든 언론계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한 기자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정부를 비판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전시이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때 인것입니다. 우리 언론은 이제부터 희망을 말하고 희망의 기사만 씁시다. 언론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승리 할 수 있다는 낙관적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 주십시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신문 기자들은 그 저널리스트의 말에 합의 하여 모든 기사와 논조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희망이 넘치는 기사와 논조를 썼습니다. 신문들은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실었고 군대에 출전하는 젊은이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러 예배당에 모인 성도들의 모습이 신문에 대문짝만치 헤드라인으로 차지했습니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할 것 이라는 지도자들의 희망이 찬 메시지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영국 국토 전체는 순식간에 희망이 넘쳐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전쟁의 승리를 국민전체가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을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삶의 희망이 있으면 살아갈 힘과 용기가 생겨나고 그 어떤 고난이라도 적극적으로 이겨낼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널리즘의 힘이 얼마나 강합니까? 현실은 영국이 그 때 암담했습니다. 그 암담한 현실을 신문이 자꾸 파헤치고 부정적으로 말을 했으면 영국은 전쟁에서 졌을 것입니다. 일제히 신문들이 일어나서 정부를 칭찬하고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전쟁은 우리가 이긴다고 우리는 승리한다고 희망을 주었으므로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희망을 얻었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앞다투어서 전쟁에 나가길 원하고 그래서 전쟁이 이겼지 않습니까? 우리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우리나라에도 매스컴이 잘 못해서 국민전체를 절망에 빠트리는 것을 보았지요. 소고기 파동 때 텔레비전들이, 신문들이 부정적인 말들을 적어서 사실 아닌 거짓말을 확대해서 온 국민 전체가 분노하고 치를 떨었습니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같이 되었습니다. 이 매스컴들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도 하고 절망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매스미디어의 시대이기 때문에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정보를 얻습니다. 절망적인 정보는 모든 우리 국민들을 낙심시키고 좌절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주면 어떤 어려움에서도 일어나서 창조적인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인 빅터 플랭클 박사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이 나치 수용소에 잡혀서 살아나온 사람 중에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600만 유대인이 참사를 당한 나치 수용소의 체험담을 책으로 기록했습니다. 그 책에는 그는 인간의 위기상황 속에서 희망을 가질 때는 놀라운 힘이 나타나는 것을 체험했다고 말했습니다. 빅터 플랭클 박사는 희망을 포기한 사람은 나치수용소에서 다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던 사람은 모진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고 불이이익을 당해도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고통과 상관없이 우리는 삶의 기쁨과 행복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현재가 아무리 눈물어린 고통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행복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초자연적인 꿈을 마음속에 가져올 수있게 하고 인내를 가져올 수 있게 하고 능력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처지에도 희망을 갖고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확신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으면 희망이 생깁니다. 미움을 받고 있으면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지금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여기 여러분 믿는 자마다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시인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천국백성이요, 영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 인 것입니다. 롬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사랑할것이냐 안할것이냐 질문할거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되었을 때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어주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번 따라 말해 봅시다. ‘ 나는 지금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파스칼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공백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 채워질 수가 없고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 질 수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쾌락을 누리고도 마음의 텅빈 공간은 채워지지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셔야 채워지도록 그렇게 만들어져있습니다. 육체만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인 것 입니다. 하나님의 그 속에 들어와 앉아야 마음의 안정이 오고 마음이 만족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 뜻을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안에서 안식을 찾을때까지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만들어졌으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 떠나고 하나님이 우리를 잃어버리면 우리의 마음속에 평안이 있을 택이 없는 것입니다. 안식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지위나 명예나 돈이나 쾌락을 가지고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것입니다. 잠시동안 행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이는 것입니다. 결코 이것을 추구해도 만족함을 줄 수 없는 우리 마음속의 텅빈 웅덩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다 자기를 위해서 행복과 성공이라는 웅덩이를 팠습니다. 또 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에 사랑과 행복을 채워 넣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알고 보니까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우리 가슴 속에 있는 하나님 없는 웅덩이는 다 터진 웅덩이 인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그 터진 웅덩이가 메꾸어 지고 우리의 노력하고 일한 보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오중복음, 삼중축복,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몸 찢고 피흘려 값주고 사서 주신 은총과 축복이 우리를 향해서 주렁주렁 열매 맺고 있으니 우리가 마음 속에 행복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쳐다보면 우리가 절망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내 상황이 어렵고 괴롭고 한심할지라도 십자가를 쳐다보면 그 속에서 예수님은 나같이 못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려서 나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하고 계시고 나를 믿으면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채찍을 맞으므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너의 병과 고통을 내가 짊어 지었다 내가 너의 저주를 담담했으므로 너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나를 통하여 면할 수 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하므로 너를 영생시켜서 천국 데려갈 수 있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내가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 이런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그런 약속을 주시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보증을 하고 계시는데 우리 마음 속에 절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절망을 할려해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절망할 수가 없어요. 저도 50년 동안 목회하면서 절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목사가 절망했다고 하면 부끄러운 말이지만 젊을때는 감추어도 이젠 감추지 않습니다. 감추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실을 절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목사이면서도 자살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럴 때마다 엎드려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몸찟고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절망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희망이 마음속에 솟아 낫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셨으니 내가 정말할 수가 있겠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아니냐 그리스도를 보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내 마음을 부여잡고 나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3~5 “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 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까? 여러분 이런 좋은 하나님이 계시는데 우리가 왜 절망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와서 위로해주고 계십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눈에 안보이지요. 우리 눈에 안보이는 숨을 쉬고 공기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고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은 우리 눈에 안보여도 우리 속에 와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고후1:4~5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 고난이 있으면 위로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면 성령이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에게 위로를 해주심으로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당할 때 친한 친구가 와서 여러 말로 위로해 주면 굉장한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 위로의 영으로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령은 오셔서 우리에게 위로하여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아무리 큰 환란과 풍파가 돌아와도 가슴속에 성령님의 위로가 넘치면 그 환란을 거뜬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위로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 클래시스 인데 파라 칼레오 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파라 칼레오란 경외한다, 도와준다. 위로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님을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보혜사라는 말은 파라 클레토스로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 와서 위로 해주고 격려해주고 도와주는 영으로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 어려울 때 여러분 성령님의 품안에 여러분 자신을 던지고 성령님 나를 도와 주십시오. 나는 성령님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합니다. 나는 몰라요. 나는 못해요 성령님이 나를 붙들어 주셔야 해요. 그러면 꼭 성령이 와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온 세계에 다니면서 체험했습니다. 기후가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잠자리가 바뀌고 여행이 피곤해져서 집회장에 나갔을 때 강당에 설때 다리가 떨리고 몸에 열이나고 고통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강사로 와서 몸이 아프다고 못한다고 호텔에 누워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오직 의지할분은 성령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와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성령님이여 나는 성령님을 꽉 붙잡으니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성령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고 나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언제나 집회장소에 가서 집회를 하게 되면 성령이 마음을 뜨겁게 만드시고 몸에 새로운 힘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고 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기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위대한 위로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그 위로를 여러분이 늘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란이 심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성령이 우리 속에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우리 예수믿는 사람이 희망을 가지는 것은 천국의 약속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당의 약속이 있어요. 이 땅위의 우리 삶의 끝나면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고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이 여러분에게 약속되어 있다고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땅에 사는것은 잠시 잠깐이요 영원히 살 천국이 우리에게 확실하게 약속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몸 찢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구속을 확증하시고 우리 눈 앞에 보는 대서 천국을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것입니다. 벧전 1:3~5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특별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것 입니다. 우리 소망이 꺼져가는 소망도 아니요 죽어가는 소망도 아닌 것입니다. 산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시편 146:5 “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 안버리니깐 소망을 가질 수 있지요 좋을때는 품어주고 조금 나쁘다고 발길로 차버리면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주님은 좋은 때도 우리와 같이 계시고 어려울 때도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신 28:12~13 을 우리 다같이 함께 읽읍시다 “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않게 하시리니” 이만한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금새 안심 내세 복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쳔들은 절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은 여생을 희망속에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늘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가 더 나은 내일을 주실 것을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예수님의 은혜, 성령님의 역사가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 보다 명년는 금년보다 좋게 만들어주신다. 그러한 밝은 꿈을 마음 속에 늘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으니깐 하나님 말씀대로 꽉 믿어야 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이 있고 우리에게는 하늘의 별들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는 것처럼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늘 헤아리고 그 말씀을 꽉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희망차고 긍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부정적인 말이나 절망적인 말을하면 나도 희망을 잃어버리고 남도 희망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잘되는 것도 있고 못되는 것도 있고 축복받을 때도 있고 어려움 있을 때도 있고 이 모든 것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나중에는 선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은 절망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나간 50년의 목회를 되돌아 보면 하나님은 저에게 늘 희망의 전도자가 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하던 시절 우리나라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특히 저의 양무리들은 삶의 희망을 잃고 절망하여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희망의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고 복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저보고 기복신앙을 전한다고 손가락질하고 욕을했지만 우리 교회 찾아오는 성도들은 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게 희망을 전하고 복음을 안 전하면 그들이 삶아 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천막교회, 시절서대문 시절, 우리교회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때를 지어 찾아왔습니다. 경상도, 전라도에서 한번 살아보겠다고 서울로 올라왔다가 못살게 되고 변두리에 쫓겨난 사람들이 오도 가지도 못하고 절망적에 있을떄 희망을 준다는 복음을 전하는 천막교회에 개미때 같이 모여든 것 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구름때 같이 모여 왔습니다. 이들은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받아 변화되어 기적을 체험하고 오늘날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그 분들이 헌금하고 노력해서 우리 교회를 만든 것 입니다. 저는 늘 희망의 전도자가 되라는 사명을 마음에 품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메시지를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희망으로 시작하여 희망으로 끝나라고 명령을 내렸었습니다. 절대로 희망을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나지 마라 희망으로 시작해서 희망으로 끝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의 메시지를 가지고 저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온 천하 만국으로 나가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러자 희망을 바라던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때같이 몰려왔고 희망과 용기를 얻고 구원을 받고 변화를 받는 것을 저는 보고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정말에 처한 사람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희망입니다. 저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매세지를 힘차게 선포했고 그들은 현실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슴속에 희망을 안고 일어나니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꿈도 사라지고 믿음도 사라지고 절망과 죽음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안됩니다. 그러면 꿈도 사라지고 믿음도 사라지고 절망과 죽음 밖에는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끊임없이 감사하고 마음의 희망의 불꽃을 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의 불꽃이 타고 있는 이상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버림 받지 않습니다 패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가 희망을 가질뿐 아니라 우리가 가는 곳마다 희망을 전달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성령님이 나의 보혜사가 되셔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를 감싸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안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희망은 널리널리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계시기 떄문에 희망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희망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려도 손에 잡히는건 없고 내 앞길 칠흙같이 어두워도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사랑을 주시고 예수님은 은혜를 주시고 성령님은 도움을 주시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붙잡았는데 어떻게 절망이 우리를 정복할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잘살 수 있습니다. 병고침 받을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승리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 속에 희망이 있기 때문 인 것입니다. 희망은 우리 마음속에 꿈을 만들어 내고 꿈은 우리 마음속에 믿음을 만들어내고 믿음은 우리에게 용기와 담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할 수있다. 하면된다. 해보자! 희망이 있다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희망을 끝까지 가지고 희망을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가운데 주신 것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 희망입니다. 어떠한 가나한 집안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다시 일어납니다. 어떠한 가난한 나라도 희망을 갖고 국민들이 일하면 부자나라가 됩니다.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도 희망을 가지면 그것을 극복하고 놀라운 기적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 희망이 사라지면 꿈도 사라지고 믿음도 사라지고 절망과 죽음의 포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그 큰 사랑과 예수님이여 그 큰 은혜와 성령님이여 능력있는 도움으로 끊임없이 희망의 불꼿을 타게하여 주시옵소서 희망을 가진 사람마다 기적을 체험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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