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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5: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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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10. 18. 주일 4부 설교 |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할렐루야~ 여러분의 사랑의 헌금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고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우리의 손을 통해서 이웃에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십시다.
<서론>
오늘 저는 “물거품과 고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산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읍내까지 내려가려면 많은 개울을 건너야 됩니다. 아침 학교갈 때 개울가에 보면 개울 양편에 거품이 많이 일어나 있습니다. 밤새도록 물이 흐르면서 거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때는 꽃이 피는 것같이 거품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올 때 보면 거품 온데간데 없습니다. 다 사라지고 만것입니다. 그 후에 제가 늘 느낀 것은 인생은 반드시 거품과 같은 것이다. 인생에 살면서 부귀 영화 공명 지위 명예 권세가 있는 것 같지만 얼마 안있으면 다 꺼져 버리고 없습니다.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던 홍영녀 할머니는 70세에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치고 80세에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책은 주로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염려의 마음을 담았는데,“인생이란 물거품”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적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제가 여러분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인생이란 물거품, 청춘을 자랑 하지 마라. 젊은 청춘 되돌아보니 꿈만 같고 허무하다.
어느새 남은 머리 백발이 되어 시계바늘 가는 대로 힘은 줄어들고 허탈감에 죽을 날만 기다린다.
젊은 청춘들아 노인 보고 웃지 마라. 가는 세월을 그 누가 막겠느냐 인생은 돌고 도는 물레바퀴와 같다.
잠깐새에 청춘은 간 곳이 없다. 누구나 검은 머리 백발이 되고 누구나 붉은 뺨에 검버섯 핀다.
잘나도 백발 오고 못 나도 백발 온다. 노인들을 위로하고 불쌍히 여겨라 노인들을 사랑하고 업신여기지 마라.”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도 하고,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도 합니다. 결국 이땅에 사는 인간은 뒤돌아보면 살아온 것이 다 물거품과 같습니다. 저도 젊을 때는 앞만 바라본다고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지만 요사이는 뒤를 돌아볼 시간이 많아요. 어릴때부터 살아온 옛날 길을 뒤돌아 보면 확실히 있었는데 현실은 없어요. 물거품이에요. 하나의 긴 봄날의 꿈을 꾼 것과 같습니다.
<본론>
1. 탕자와 물거품
바로 오늘 읽은 탕자의 이야기는 이 탕자가 물거품에 현혹되었다는 것입니다.
농촌에서 아버지를 도와서 농장일을 하면서 가만히 도시 생활을 보니까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좋은 빌딩에서 살고 휘황찬란한 등불 밑에서 아름다운 여성들, 탕남, 탕녀들, 화려한 페스티벌, 생활, 지위, 명예, 권세를 얻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 같고 굉장히 그 생활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간청하여 그 재산을 나눠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어리니 좀 더 자라서 샘이 찰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도 못 견디게 아버지를 강요하니까 할 수 없어 아버지가 재산을 나누어 주니 며칠 이내에 그 재산을 다 청산해서 도시에 가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마시고, 잘 마시고 친구들과 놀아나니 영웅이 되고 많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자기를 크게 생각하고 따라오고 정말 사는 것 같습니다. 밤늦게 놀고 아침 늦게 일어나서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사니 ‘아 이것이 사는 것이다. 농촌에서 사는 것은 인간생활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탕남, 탕녀의 생활이 오래갑니까? 절대로 오래가지 않습니다. 물거품이 꺼질 때가 오고 절대 절망의 고독이 올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탕정하면서 생활을 할 때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IMF가 다가온 것입니다. 온 사람들이 다 기근에 처하게 되고 상점은 문을 닫고 빚쟁이들은 와글거리고 사람들은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그는 가져온 아버지의 재산 다 탕진하고 올 때 갈 때 없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영웅시 하던 친구들과 그 아리따운 여성들 온데 간데 없습니다. 어디가도 박대를 당하고 아무리 찾아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는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찾은 직업이 돼지 치는 직업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돼지를 치는 직업이 제일 천한 직업입니다. 천하고 귀한 것을 가릴 수 없습니다. 돼지치는 직업을 얻어서 돼지를 치는데 너무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나눠 먹으려고 해도 주는 자가 없어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과 바다라는 책을 지어 유명한 명성을 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쓴「노인과 바다」의 책에는 한 노인이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망망대해 바다에 오랜 고생을 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노인의 어부 소원이 인생에서 제일 큰 고기를 하나 잡아보겠다. 그래서 먼 바다로 나가서 며칠 밤낮을 새가면서 고기를 따라 다니다가 정말 큼직한 고기를 잡았어요. 너무 커서 배에 실을 수가 없어서 배 옆에다 묶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데 하도 멀리 나갔기에 돌아오는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고기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니까 피 냄새를 맡은 고래들이 따라오면서 상어들이 따라오면서 그 고기를 뜯어 먹어요. 그래서 상어하고 싸우고 돌아오며 발버둥치고 그런데 상어는 이 생선에게 달라 들어 물고 찢고 온갖 호투를 하면서 항구에 들어와서 기진맥진하여 배를 대고 고기를 들어보니 뼈다귀만 앙상히 남고 살은 다 상어가 뜯어 먹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인과 바다라는 책으로 노벨상을 탄 문학작품인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인생에 굉장한 것을 기대하고 나갔으나 나중에 보면 앙상한 뼈다귀 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 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나아가지만, 대부분 그 결과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물거품 같아서 허무와 고독과 절망에 몸부림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2장 21절에 사무엘 선지자는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래 전에 코카콜라 회장이 뉴욕에 있으면서 사업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에 번뇌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가 자기 회사에 많은 세금을 부과해서 그의 사업을 망하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마음이 괴로워 그는 인생철학자 나폴레옹 힐(Napoleon Hill) 박사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힐에게 말했습니다. 회장은 그에게 “국가가 세금으로 나의 회사를 다 빼앗아 가려고 하는데 내 마음이 괴로워 못 견디겠다. 어찌해야 되겠는가?” 그러니까 나폴레옹 힐이 그말 듣고 가만 있더니 “회장님 올해 연세가 얼마십니까?” 회장님이 “90살이야.” 그러니까 나폴레옹 힐이 허허~ 웃으면서 “회장님, 코카콜라 회사의 모든 주식과 서류를 지금 가지고 나오십시오.” “왜요?” “제가 벽난로에 넣어서 불로 찢어 태워 버리십시오. 그 서류 다가지고 재산을 소유하고도 90세니 몇 년 더 살겠습니까? 허허~ 웃으며 평안하게 살지 뭐 그 서류 가지고 뺏긴다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삽니까?” 그렇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 하나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부귀와 영화와 공명은 다 사라져 버리고 물거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며 잠도 편히 자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때가 많습니다. 이 탕자가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는 물거품과 같은 부귀 영화 공명 세상 쾌락을 쫓아서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니 물거품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있는 것 같으나 꺼집니다. 여러분 물거품을 한번 붙잡아 보십시오. 굉장히 많은 물거품도 손으로 잡으면 하나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탕자의 재산은 물거품같이 그 쾌락의 생활도 물거품같이 있다가 다 사라졌습니다. 빈손 들게 된 것입니다. 갈 때 올 때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두다 허상이요 실상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그는 회개하고 실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8절로 21절에 보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품꾼이라는 것은 매일 매일 고용당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일주일 고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용직인 것입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 우리의 삶의 물거품과 고독
부귀, 영화, 공명이 영원히 있을 것 같아도 다 사라지고 이 젊은이와 같이 고독의 수렁 속에 허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부귀와 영화는 모두 다 사라질 물거품인 것입니다.
전도서 1장 2절로 11절 우리 소리 내어서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1866년에 알프레드 노벨에 의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너마이트가 발명되었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유럽 최대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이너마이트로 광산을 개발하고 도로를 만들고 새로운 빌딩을 짓는데만 쓴 것이 아니라 총탄을 만들고 폭탄을 만들어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을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가 일어나서 평상시처럼 신문을 읽으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신문에 대서특필로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 그렇게 써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원래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신문사들이 오해를 해서 형이 죽은 줄 알고 신문에 그 제목을 잘못 쓴 것입니다. 기사의 첫 머리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사망의 기사 앞에서 깊은 침묵에 빠져 심각해졌습니다. “정말 내가 죽을 날이 곧 다가오면 세상 사람들이 이런 정도밖에 나를 평가하지 않겠구나.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재물과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그 후, 그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서 그 돈을 다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상이 “노벨상”입니다. 온 세계가 존경하는 노벨상, 이 노벨상을 만든 노벨은 바로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시초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재산이 결국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고독 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사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쓰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살면 모두 다 그 마음속에 내적 슬픔과 고독이 있습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적 슬픔이 다 있어요. 대통령이 왜 자살합니까? 세상 사람으로 볼 때는 그 화려하고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굉장한 위엄이 있는 자리였던 것 같은데 얼마나 고독하고 슬프고 괴로웠기에 자살합니까? 모든 사람은 내적 슬픔과 고독이 있습니다. 나만 고독하고 나만 슬픈 줄 생각합니다. 저 돈 많고 지위 있고 명예 있고 고급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평안하고 좋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찾아가 보십시오. 그 마음속에 다른 사람과 나눌 수가 없는 마음에 고독과 슬픔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9절에 “네 하나님 야훼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하나님 없이는 마음속에 악과 고통이 떠나지 않습니다.
전도서 2장 23절에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
잠언서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친구가 많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 쾌락이 많아야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다정한 친구가 많으면 오래 산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호주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해온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많은 노인들은 친구가 없거나 적은 노인에 비해 사망률이 22%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하버드 의대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많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대뇌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친구와 만나 얘기를 나누는 빈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샌터 바버라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교수인 벨라 드파울로(Bella De Paulo)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배우자나 가족보다 친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친구 관계가 끈끈한 사람은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친구가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금방 풀 수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런던 타임즈는 설문조사를 통해 친구에 대해 이렇게 정의 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버릴 때에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 둘째, 나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셋째, 나의 기쁨은 더 해 주고, 나의 슬픔은 덜어주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런 절대적인 친구는 바로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7장 34절에 “인자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했습니다. 세리와 죄인은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친구로서 예수님이 자기를 제시한 것입니다.
온 세상 다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예수님 만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사람 수가 많다고 해서 다 친구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친구인데 가장 가까운 그 친구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 일 때도, 불경건할 때도, 병들어 괴롭거나 삶의 고난과 심지어 죽음의 길에도 절대적인 친구는 바로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를 먹으면 죽는 날을 늘 생각합니다.
김준곤 목사님이 천국가기 전에 우리들에게 부탁하기를 고통 안당하면서 천국에 가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도와달라고 그랬었습니다. 저도 요사이 기도할 때 늘 그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세상 떠날 때 고통 당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괴로움 당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 괴로움은 누구하고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자기 혼자 정말 일생에 최대의 고독한 괴로움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괴로움 없이 세상을 뜨게 해주시옵소서. 여러분 미리 그런 기도를 다 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 지금은 젊지만 눈깜박할 사이에 백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고독한 길을 걸어갈 때 손을 내밀고 환영을 해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 절대적인 고독의 길에 들어서서 고통하고 몸부림칠 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고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 없고 오직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만 번떡 거리는 눈을 가지고 나를 삼키려고 덤벼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꿈이 아닙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우리가 다 당할 일인 것입니다. 언제 죽음이 나를 데려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죽음이 다가와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그곳에 반기며 안아줄 손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인 것입니다. 나 먼저 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그 모든 죽음의 고통을 정복하고 부활하신 예수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에 올 자가 없느니라. 볼지어다. 내가 항상 너와 같이 하느니라. 이 예수님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죄인일 때도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다고 말하시는 예수님 죄인일 때도 같이하고 불경건할 때도 같이 하시고 병들어 괴로워 할 때도 예수님은 우리 곁에 계셔 위로해 주시고 삶의 고난 속에서도 우리의 손목을 잡고 같이 걸어가시고 절대고독인 죽음의 길에도 주님은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이런 친구가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성가에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보다 더 귀한 친구 없네. 찬송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번 같이 불러볼까요?
♬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보다 더 귀한 친구 없네
외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화 주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
외로울 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 많은 나의 참 친구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에게는 예수님이 제일 좋은 친구입니다. 이 세상 어떤 친구도 예수와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으면 천국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내가 어려울 때 기도하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시대가 달라지면 물거품처럼 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몇 십조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정치적인 압박으로 그 돈을 다 잃어버리고 있을 곳도 없는 빈 손을 들게 되어 고통을 당하다가 저에게 찾아와서 기도 받으러 왔습니다. 이 세상에 몇 십조원의 돈도 하루 아침에 다 날라가 버립니다. 다 뺏겨 버렸습니다. 돈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지위도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명예도 한가지에요. 부귀, 영화는 그런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고 사라지지 않고 지금과 내세에 같이 하시는 친구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4절로 16절에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3. 탕자가 체험한 진정한 행복
탕자는 이 환난을 통해서 무엇이 참되고 진정한 행복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물거품이 그를 행복하고 진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2절로 24절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여러분 이 탕자가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는 그래도 제일 좋은 옷 입고 나갔는데 이 시련과 환난을 통하여 벌거벗고 돌아왔습니다.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다 잃어버리고 벌거벗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쫓아낼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은 다 쫓아내고 다 박대했는데 돼지조차 쥐엄열매를 같이 안나눠 먹으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가 돌아오자마자 그를 껴안고 입맞춰 주고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헐무래한 옷도 아닙니다. 입다가 버린 옷도 아닙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우리가 세상에 허랑하고 방탕하여 다 잃어버리고 죄만 짊어지고 아버지께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우리를 버릴 것 같은데 하늘 아버지는 나와서 우리를 품어 주시고 천사들에게 말하기를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이 왠일입니까? 여러분 지금 의의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써 짠 의의 옷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롭다는 것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요,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이요, 마귀가 참소할 수 없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의로운 옷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준 것입니다. 죄 덩어리인 우리가 썩은 냄새를 내면서 주님께 찾아왔을 때 반드시 버릴 줄 알았는데 우리를 안아주시고 입맞춰 주시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말하기를 “반지를 갖다 끼워라.” 유대인들은 자식을 낳으면 반지를 만들어서 아버지, 어머니, 형제간의 이름을 적어서 끼워주는 것입니다.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은 집을 떠날 때 반지를 빼서 내던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 가족이 아니다. 그래서 돌아올 때 나를 품꾼의 하나도 봐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빨리 반지를 가지고 와서 끼워줘라. 그는 내 아들이고, 네 형제들이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성령의 반지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령의 인을 쳐주신 아버지, 성령의 반지를 끼워준 것입니다. 여러분 보고 하나님께서 “내 아들이다. 내 아들의 증거로써 성령의 반지를 끼워주라. 성령의 인을 쳐주라.” 여러분과 나는 다 성령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은 성령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우리 속에 계셔서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반지를 우리 영혼의 손에 낀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말하기를 “신발을 갖다 신겨라!” 옛날에 종과 아들은 밭을 봐서는 분별을 못합니다. 밭에서 일할 때 종도 일하고 아들도 일합니다. 그러나 밑을 보면 종은 신발을 벗었고 맨발이고 아들은 신발을 신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집에 돌아올 때 신발 벗고 온 것은 종으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종으로 주지 말고 신발을 신겨라!”우리가 세상에 수고와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며 가시와 엉겅퀴에 찔려 저주를 받고 왔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겨라. 하나님의 축복의 신발을 신겨라!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신발을 신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5절에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를 다 제하고 평안을 주셨는데 그 평안의 신발을 신겨라.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신발을 신겨라. 우리는 죄에서 의의 신발을 신고 불의에서 성결의 신발을 신고 질병에서 치료의 신발을 신고 저주에서 축복의 신발을 신고 사망에서 생명의 신발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환영 잔치를 베풀라고 말한 것입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아 즐기자. 여러분이 주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천사들과 함께 천국에서 기쁨의 환영잔치를 해주는 것입니다. 완전히 빈손들고 처참하게 버림받은 상태에서 돌아온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큰 영적인 잔치를 베풀고 천국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우리에게 굉장한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히려 꾸중을 해서 우리가 혼이 나서 기가 죽어야 될 것인데 하나님께 돌아오면 큰 기쁨의 잔치를 우리 속에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아 먹는 그런 기쁨의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우리 하나님은 네 영혼이 잘되라. 범사에 잘되라. 강건하게 되라. 내가 바라는 바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가 올 때 이렇게 기뻐해서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집에서 밖의 불을 켜놓고 풍악소리를 울리고 잔치를 베풀기에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이 있느냐?”하니까 “당신의 동생이 성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고 아버지가 동네 사람을 청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베풀라고 했다.” 그는 노해서 “나는 집에 안들어 간다. 나는 이 집에 안들어 가겠다.” 그 아버지가 나와서 “얘~ 그러지 말아라.” “아버지, 나는 여태까지 타락도 안하고 집도 떠나지 아니하고 아버지 명을 쫓아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어서 내 친구하고 먹고 놀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동생이 창기와 아버지 재산을 다 먹고 오는데 기뻐해서 송아지를 잡았습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과 형의 마음이 다른점인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의 등을 두드리면서 “너는 항상 나와 같이 있었으니 내 재산이 다 네 재산이다. 네가 송아지 새끼 달랬으면 내가 송아지 새끼도 주고 염소 새끼 달라면 염소 새끼도 주었을 것이다. 네가 안 구했지 않느냐? 그러나 네 동생은 그것도 내 아들이 아니냐? 집을 떠나서 죄를 짓고 영적으로 죽었으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고 잃어버렸으나 다시 찾았으니 내가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 아버지는 죄인으로써 돌아오는 동생을 은혜로써 보신 것입니다. 형은 율법으로 본 것입니다. 율법은 언제나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인정사정 없습니다. 죄를 정죄하고 심판한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전 대통령의 인사사정관이 말하기를 우리나라 현재 인사법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이라도 잡혀서 감옥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털어서 먼지 안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율법적으로 사람을 정죄하면 심판 안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와 사랑으로 대해 주기 때문에 과거의 죄를 다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즐거워 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은 여러분 보실 때 여러분의 과거의 죄악을 들춰내어서 꾸짖고 심판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온 것만 해도 너무나도 귀하게 여겨서 보혈로 다 씻어 주시고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서 즐거워하고 기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과 사랑의 다른 점을 여기에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의 형님은 율법적인 눈으로 보았으나 아버지는 사랑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율법으로 판정해도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으로 여러분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설 수 있는 것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우리를 영접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께서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시고 맨발로 인생을 살았는데 하나님의 축복의 예비한 신발을 신겨 주시고 버림받은 놈인데 아들의 반지를 끼워 주시고 우리에게 기쁨의 큰 잔치를 베풀어 주시고 즐거워하는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공명, 쾌락은 거품입니다. 요란스럽고 굉장히 있는 것 같으나 세월이 지나면 다 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한국에서 유명한 정치인이요, 돈 많던 부자인데 나이 많아서 은퇴하고 난 다음에 제가 골프 치러 나가면 언제나 혼자서 골프를 쳐요. 나이가 늙고 이제 정치적 권력도 놓고 돈도 다 아들에게 상속하고 없으니까 아무도 같이하는 친구가 없어요. 혼자 골프를 쳐요. 내가 만나서 인사를 하면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어요. 혼자를 골프를 툭 툭 치면서 목욕도 혼자서 하고 식당에도 혼자 한구석에 앉아서 밥 먹고 하더니 나중에 이 세상을 떴어요. 내가 세상을 뜨기 전에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는데 “조목사, 나 장가 좀 보내줘.” 그래서 내가 “농담하시는 거지요?” “이 사람아 혼자 되어서 살아보게 얼마나 외로운지.. 자식에게 상속다 주고 나니까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지위 없어지고 돈 없어지니까 날 따라오는 사람도 없고 집안 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패물이야. 옷도 입기가 얼마나 힘이 들고 양말 신기도 얼마나 힘이 들고 잠자리에 들어가 눕기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이때 늙은 마누라라도 하나 있어서 도와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생각이 난다. 가만히 돌아보니까 옛날에 내가 살던 내 마누리가 미울 때가 많아서 싫은 말도 많이 하고 꼬락서니가 사나웠는데 지금 보니 그런 마누라도 얼마나 좋은 마누라였는지 몰라. 그 싫은 말도 지금 하나도 싫지 않아. 그런 싫은 말을 하고 꼴보기 싫은 마누라도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노.” 그 말을 듣고 참 인생의 씁쓸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생 부귀 영화 지나고 나면 그뿐이요, 기억 속에 남아있지 실제는 없는 것입니다. 이승만 박사 여러분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기억에 남아 있습니까? 그저 이야깃거리 속에 남아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안개요, 거품인 것입니다. 이 안개와 거품에 잡혀서 그를 쳐다보고 그만 따라가는 사람이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안개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품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안개도 있고 거품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꺼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는 길로 보는 것이지 그에 인생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개같이 사라지지 아니하고 거품같이 꺼지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품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주는 의로운 옷을 입고 아버지가 주는 사랑하는 신발을 신고 반지를 받아 끼고 아버지 품에서 즐거워하다가 영원한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는 이것밖에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아 영생을 얻는 이것이 가장 여러분 귀하고 중한 것이고 이것 이외에는 다 없어질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서 잃어버리고 버림받고 죽은 자와 같은 삶과 고독에서 누가 우리를 건져 주겠습니까? 아버지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라진 돈이 우리를 건져줍니까? 사라진 명예가 우리를 건져줍니까? 떠나간 친구가 우리를 돌봐주는 것입니까? 아니요, 헛된 것입니다. 다 꿈같은 일인 것입니다. 영원한 벗이 되어주는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자는 것입니다. 헛된데 정신을 팔지마라는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과 같이 물거품을 보고 거기에 현혹되어서 모든 것을 다 거기에다 투자했다가 나중에 버림받고 고독한 인간이 되었다가 좌절과 절망 속에서 영원한 것을 발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새사람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글이 기록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실에 정말로 영원한 것 잃어버리지 않을 것, 버리지 않을 것 그것이 예수 믿고 아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아버지 섬기는 것보다 더 귀한 보화가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자체가 안개요 물거품이니까 여기에 현혹되어서 내 정신을 팔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길인 것입니다. 잠시 후면 다 떠나가고 다 손에 놓치고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잃어버리고 안 떠나고 영원한 것 이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같이 있는 것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이 진실을 여러분 보고서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허상을 바라보고 살지 말고 실상을 바라보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사세요.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만 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속아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헛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품도 붙잡아 보세요. 안개도 붙잡아 보세요. 그러나 그 속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 속에서도 실상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만이 잡아 놓으면 영원히 남아 있지 안개와 구름은 사라지고 거품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부자의 둘째 아들은 현실 속에서 물거품을 바라보고 유혹이 되어서 물거품이 삶의 전부인줄 알고 뛰어 들어갔다가 불황이 다가오면 물거품은 다 꺼지고 비참하게 된 체험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품에 있는 것이 영원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그것을 놓아 버리고 물거품을 따라갔다가 그는 좌절과 절망에 빠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은 물거품입니다. 안개입니다. 구름입니다. 이곳에 우리가 현혹되어서 따라 가다가 안개가 사라지고 물거품이 꺼져 버리면 우리는 허망하게 되고 버림받고 한없이 고독하게 됩니다. 아버지 이 속에 살면서도 진실한 것을 알고 영원한 것을 알고 변치 않는 것을 알고 그것을 붙잡고 그 안에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만이 영원한 것이요, 소망찬 것이요, 기쁜 것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여러분의 사랑의 헌금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고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우리의 손을 통해서 이웃에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십시다.
<서론>
오늘 저는 “물거품과 고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산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읍내까지 내려가려면 많은 개울을 건너야 됩니다. 아침 학교갈 때 개울가에 보면 개울 양편에 거품이 많이 일어나 있습니다. 밤새도록 물이 흐르면서 거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때는 꽃이 피는 것같이 거품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올 때 보면 거품 온데간데 없습니다. 다 사라지고 만것입니다. 그 후에 제가 늘 느낀 것은 인생은 반드시 거품과 같은 것이다. 인생에 살면서 부귀 영화 공명 지위 명예 권세가 있는 것 같지만 얼마 안있으면 다 꺼져 버리고 없습니다.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던 홍영녀 할머니는 70세에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치고 80세에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책은 주로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염려의 마음을 담았는데,“인생이란 물거품”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적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제가 여러분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인생이란 물거품, 청춘을 자랑 하지 마라. 젊은 청춘 되돌아보니 꿈만 같고 허무하다.
어느새 남은 머리 백발이 되어 시계바늘 가는 대로 힘은 줄어들고 허탈감에 죽을 날만 기다린다.
젊은 청춘들아 노인 보고 웃지 마라. 가는 세월을 그 누가 막겠느냐 인생은 돌고 도는 물레바퀴와 같다.
잠깐새에 청춘은 간 곳이 없다. 누구나 검은 머리 백발이 되고 누구나 붉은 뺨에 검버섯 핀다.
잘나도 백발 오고 못 나도 백발 온다. 노인들을 위로하고 불쌍히 여겨라 노인들을 사랑하고 업신여기지 마라.”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도 하고,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도 합니다. 결국 이땅에 사는 인간은 뒤돌아보면 살아온 것이 다 물거품과 같습니다. 저도 젊을 때는 앞만 바라본다고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지만 요사이는 뒤를 돌아볼 시간이 많아요. 어릴때부터 살아온 옛날 길을 뒤돌아 보면 확실히 있었는데 현실은 없어요. 물거품이에요. 하나의 긴 봄날의 꿈을 꾼 것과 같습니다.
<본론>
1. 탕자와 물거품
바로 오늘 읽은 탕자의 이야기는 이 탕자가 물거품에 현혹되었다는 것입니다.
농촌에서 아버지를 도와서 농장일을 하면서 가만히 도시 생활을 보니까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좋은 빌딩에서 살고 휘황찬란한 등불 밑에서 아름다운 여성들, 탕남, 탕녀들, 화려한 페스티벌, 생활, 지위, 명예, 권세를 얻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 같고 굉장히 그 생활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간청하여 그 재산을 나눠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어리니 좀 더 자라서 샘이 찰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도 못 견디게 아버지를 강요하니까 할 수 없어 아버지가 재산을 나누어 주니 며칠 이내에 그 재산을 다 청산해서 도시에 가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마시고, 잘 마시고 친구들과 놀아나니 영웅이 되고 많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자기를 크게 생각하고 따라오고 정말 사는 것 같습니다. 밤늦게 놀고 아침 늦게 일어나서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사니 ‘아 이것이 사는 것이다. 농촌에서 사는 것은 인간생활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탕남, 탕녀의 생활이 오래갑니까? 절대로 오래가지 않습니다. 물거품이 꺼질 때가 오고 절대 절망의 고독이 올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탕정하면서 생활을 할 때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IMF가 다가온 것입니다. 온 사람들이 다 기근에 처하게 되고 상점은 문을 닫고 빚쟁이들은 와글거리고 사람들은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그는 가져온 아버지의 재산 다 탕진하고 올 때 갈 때 없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영웅시 하던 친구들과 그 아리따운 여성들 온데 간데 없습니다. 어디가도 박대를 당하고 아무리 찾아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는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찾은 직업이 돼지 치는 직업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돼지를 치는 직업이 제일 천한 직업입니다. 천하고 귀한 것을 가릴 수 없습니다. 돼지치는 직업을 얻어서 돼지를 치는데 너무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나눠 먹으려고 해도 주는 자가 없어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과 바다라는 책을 지어 유명한 명성을 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쓴「노인과 바다」의 책에는 한 노인이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망망대해 바다에 오랜 고생을 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노인의 어부 소원이 인생에서 제일 큰 고기를 하나 잡아보겠다. 그래서 먼 바다로 나가서 며칠 밤낮을 새가면서 고기를 따라 다니다가 정말 큼직한 고기를 잡았어요. 너무 커서 배에 실을 수가 없어서 배 옆에다 묶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데 하도 멀리 나갔기에 돌아오는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고기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니까 피 냄새를 맡은 고래들이 따라오면서 상어들이 따라오면서 그 고기를 뜯어 먹어요. 그래서 상어하고 싸우고 돌아오며 발버둥치고 그런데 상어는 이 생선에게 달라 들어 물고 찢고 온갖 호투를 하면서 항구에 들어와서 기진맥진하여 배를 대고 고기를 들어보니 뼈다귀만 앙상히 남고 살은 다 상어가 뜯어 먹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인과 바다라는 책으로 노벨상을 탄 문학작품인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인생에 굉장한 것을 기대하고 나갔으나 나중에 보면 앙상한 뼈다귀 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 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나아가지만, 대부분 그 결과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물거품 같아서 허무와 고독과 절망에 몸부림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2장 21절에 사무엘 선지자는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래 전에 코카콜라 회장이 뉴욕에 있으면서 사업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에 번뇌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가 자기 회사에 많은 세금을 부과해서 그의 사업을 망하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마음이 괴로워 그는 인생철학자 나폴레옹 힐(Napoleon Hill) 박사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힐에게 말했습니다. 회장은 그에게 “국가가 세금으로 나의 회사를 다 빼앗아 가려고 하는데 내 마음이 괴로워 못 견디겠다. 어찌해야 되겠는가?” 그러니까 나폴레옹 힐이 그말 듣고 가만 있더니 “회장님 올해 연세가 얼마십니까?” 회장님이 “90살이야.” 그러니까 나폴레옹 힐이 허허~ 웃으면서 “회장님, 코카콜라 회사의 모든 주식과 서류를 지금 가지고 나오십시오.” “왜요?” “제가 벽난로에 넣어서 불로 찢어 태워 버리십시오. 그 서류 다가지고 재산을 소유하고도 90세니 몇 년 더 살겠습니까? 허허~ 웃으며 평안하게 살지 뭐 그 서류 가지고 뺏긴다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삽니까?” 그렇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 하나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부귀와 영화와 공명은 다 사라져 버리고 물거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며 잠도 편히 자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때가 많습니다. 이 탕자가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는 물거품과 같은 부귀 영화 공명 세상 쾌락을 쫓아서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니 물거품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있는 것 같으나 꺼집니다. 여러분 물거품을 한번 붙잡아 보십시오. 굉장히 많은 물거품도 손으로 잡으면 하나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탕자의 재산은 물거품같이 그 쾌락의 생활도 물거품같이 있다가 다 사라졌습니다. 빈손 들게 된 것입니다. 갈 때 올 때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두다 허상이요 실상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그는 회개하고 실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8절로 21절에 보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품꾼이라는 것은 매일 매일 고용당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일주일 고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용직인 것입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 우리의 삶의 물거품과 고독
부귀, 영화, 공명이 영원히 있을 것 같아도 다 사라지고 이 젊은이와 같이 고독의 수렁 속에 허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부귀와 영화는 모두 다 사라질 물거품인 것입니다.
전도서 1장 2절로 11절 우리 소리 내어서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1866년에 알프레드 노벨에 의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너마이트가 발명되었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유럽 최대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이너마이트로 광산을 개발하고 도로를 만들고 새로운 빌딩을 짓는데만 쓴 것이 아니라 총탄을 만들고 폭탄을 만들어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을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가 일어나서 평상시처럼 신문을 읽으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신문에 대서특필로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 그렇게 써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원래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신문사들이 오해를 해서 형이 죽은 줄 알고 신문에 그 제목을 잘못 쓴 것입니다. 기사의 첫 머리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사망의 기사 앞에서 깊은 침묵에 빠져 심각해졌습니다. “정말 내가 죽을 날이 곧 다가오면 세상 사람들이 이런 정도밖에 나를 평가하지 않겠구나.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재물과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그 후, 그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서 그 돈을 다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상이 “노벨상”입니다. 온 세계가 존경하는 노벨상, 이 노벨상을 만든 노벨은 바로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시초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재산이 결국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고독 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사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쓰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살면 모두 다 그 마음속에 내적 슬픔과 고독이 있습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적 슬픔이 다 있어요. 대통령이 왜 자살합니까? 세상 사람으로 볼 때는 그 화려하고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굉장한 위엄이 있는 자리였던 것 같은데 얼마나 고독하고 슬프고 괴로웠기에 자살합니까? 모든 사람은 내적 슬픔과 고독이 있습니다. 나만 고독하고 나만 슬픈 줄 생각합니다. 저 돈 많고 지위 있고 명예 있고 고급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평안하고 좋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찾아가 보십시오. 그 마음속에 다른 사람과 나눌 수가 없는 마음에 고독과 슬픔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9절에 “네 하나님 야훼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하나님 없이는 마음속에 악과 고통이 떠나지 않습니다.
전도서 2장 23절에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
잠언서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친구가 많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 쾌락이 많아야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다정한 친구가 많으면 오래 산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호주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해온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많은 노인들은 친구가 없거나 적은 노인에 비해 사망률이 22%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하버드 의대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친구가 많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대뇌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친구와 만나 얘기를 나누는 빈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샌터 바버라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교수인 벨라 드파울로(Bella De Paulo)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배우자나 가족보다 친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친구 관계가 끈끈한 사람은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친구가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금방 풀 수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런던 타임즈는 설문조사를 통해 친구에 대해 이렇게 정의 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버릴 때에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 둘째, 나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셋째, 나의 기쁨은 더 해 주고, 나의 슬픔은 덜어주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런 절대적인 친구는 바로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7장 34절에 “인자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했습니다. 세리와 죄인은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친구로서 예수님이 자기를 제시한 것입니다.
온 세상 다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예수님 만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사람 수가 많다고 해서 다 친구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친구인데 가장 가까운 그 친구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 일 때도, 불경건할 때도, 병들어 괴롭거나 삶의 고난과 심지어 죽음의 길에도 절대적인 친구는 바로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를 먹으면 죽는 날을 늘 생각합니다.
김준곤 목사님이 천국가기 전에 우리들에게 부탁하기를 고통 안당하면서 천국에 가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도와달라고 그랬었습니다. 저도 요사이 기도할 때 늘 그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세상 떠날 때 고통 당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괴로움 당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 괴로움은 누구하고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자기 혼자 정말 일생에 최대의 고독한 괴로움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괴로움 없이 세상을 뜨게 해주시옵소서. 여러분 미리 그런 기도를 다 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 지금은 젊지만 눈깜박할 사이에 백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고독한 길을 걸어갈 때 손을 내밀고 환영을 해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 절대적인 고독의 길에 들어서서 고통하고 몸부림칠 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고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 없고 오직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만 번떡 거리는 눈을 가지고 나를 삼키려고 덤벼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꿈이 아닙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우리가 다 당할 일인 것입니다. 언제 죽음이 나를 데려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죽음이 다가와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그곳에 반기며 안아줄 손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인 것입니다. 나 먼저 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그 모든 죽음의 고통을 정복하고 부활하신 예수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에 올 자가 없느니라. 볼지어다. 내가 항상 너와 같이 하느니라. 이 예수님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죄인일 때도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다고 말하시는 예수님 죄인일 때도 같이하고 불경건할 때도 같이 하시고 병들어 괴로워 할 때도 예수님은 우리 곁에 계셔 위로해 주시고 삶의 고난 속에서도 우리의 손목을 잡고 같이 걸어가시고 절대고독인 죽음의 길에도 주님은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이런 친구가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성가에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보다 더 귀한 친구 없네. 찬송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번 같이 불러볼까요?
♬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보다 더 귀한 친구 없네
외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화 주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
외로울 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 많은 나의 참 친구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에게는 예수님이 제일 좋은 친구입니다. 이 세상 어떤 친구도 예수와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으면 천국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내가 어려울 때 기도하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시대가 달라지면 물거품처럼 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몇 십조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정치적인 압박으로 그 돈을 다 잃어버리고 있을 곳도 없는 빈 손을 들게 되어 고통을 당하다가 저에게 찾아와서 기도 받으러 왔습니다. 이 세상에 몇 십조원의 돈도 하루 아침에 다 날라가 버립니다. 다 뺏겨 버렸습니다. 돈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지위도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명예도 한가지에요. 부귀, 영화는 그런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고 사라지지 않고 지금과 내세에 같이 하시는 친구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4절로 16절에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3. 탕자가 체험한 진정한 행복
탕자는 이 환난을 통해서 무엇이 참되고 진정한 행복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물거품이 그를 행복하고 진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2절로 24절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여러분 이 탕자가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는 그래도 제일 좋은 옷 입고 나갔는데 이 시련과 환난을 통하여 벌거벗고 돌아왔습니다.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다 잃어버리고 벌거벗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쫓아낼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은 다 쫓아내고 다 박대했는데 돼지조차 쥐엄열매를 같이 안나눠 먹으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가 돌아오자마자 그를 껴안고 입맞춰 주고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헐무래한 옷도 아닙니다. 입다가 버린 옷도 아닙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우리가 세상에 허랑하고 방탕하여 다 잃어버리고 죄만 짊어지고 아버지께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우리를 버릴 것 같은데 하늘 아버지는 나와서 우리를 품어 주시고 천사들에게 말하기를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이 왠일입니까? 여러분 지금 의의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써 짠 의의 옷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롭다는 것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요,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이요, 마귀가 참소할 수 없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의로운 옷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준 것입니다. 죄 덩어리인 우리가 썩은 냄새를 내면서 주님께 찾아왔을 때 반드시 버릴 줄 알았는데 우리를 안아주시고 입맞춰 주시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말하기를 “반지를 갖다 끼워라.” 유대인들은 자식을 낳으면 반지를 만들어서 아버지, 어머니, 형제간의 이름을 적어서 끼워주는 것입니다.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은 집을 떠날 때 반지를 빼서 내던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 가족이 아니다. 그래서 돌아올 때 나를 품꾼의 하나도 봐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빨리 반지를 가지고 와서 끼워줘라. 그는 내 아들이고, 네 형제들이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성령의 반지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령의 인을 쳐주신 아버지, 성령의 반지를 끼워준 것입니다. 여러분 보고 하나님께서 “내 아들이다. 내 아들의 증거로써 성령의 반지를 끼워주라. 성령의 인을 쳐주라.” 여러분과 나는 다 성령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은 성령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우리 속에 계셔서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반지를 우리 영혼의 손에 낀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말하기를 “신발을 갖다 신겨라!” 옛날에 종과 아들은 밭을 봐서는 분별을 못합니다. 밭에서 일할 때 종도 일하고 아들도 일합니다. 그러나 밑을 보면 종은 신발을 벗었고 맨발이고 아들은 신발을 신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집에 돌아올 때 신발 벗고 온 것은 종으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종으로 주지 말고 신발을 신겨라!”우리가 세상에 수고와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며 가시와 엉겅퀴에 찔려 저주를 받고 왔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겨라. 하나님의 축복의 신발을 신겨라!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신발을 신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5절에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를 다 제하고 평안을 주셨는데 그 평안의 신발을 신겨라.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신발을 신겨라. 우리는 죄에서 의의 신발을 신고 불의에서 성결의 신발을 신고 질병에서 치료의 신발을 신고 저주에서 축복의 신발을 신고 사망에서 생명의 신발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환영 잔치를 베풀라고 말한 것입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아 즐기자. 여러분이 주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천사들과 함께 천국에서 기쁨의 환영잔치를 해주는 것입니다. 완전히 빈손들고 처참하게 버림받은 상태에서 돌아온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큰 영적인 잔치를 베풀고 천국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우리에게 굉장한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히려 꾸중을 해서 우리가 혼이 나서 기가 죽어야 될 것인데 하나님께 돌아오면 큰 기쁨의 잔치를 우리 속에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아 먹는 그런 기쁨의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우리 하나님은 네 영혼이 잘되라. 범사에 잘되라. 강건하게 되라. 내가 바라는 바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가 올 때 이렇게 기뻐해서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집에서 밖의 불을 켜놓고 풍악소리를 울리고 잔치를 베풀기에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이 있느냐?”하니까 “당신의 동생이 성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고 아버지가 동네 사람을 청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베풀라고 했다.” 그는 노해서 “나는 집에 안들어 간다. 나는 이 집에 안들어 가겠다.” 그 아버지가 나와서 “얘~ 그러지 말아라.” “아버지, 나는 여태까지 타락도 안하고 집도 떠나지 아니하고 아버지 명을 쫓아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어서 내 친구하고 먹고 놀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동생이 창기와 아버지 재산을 다 먹고 오는데 기뻐해서 송아지를 잡았습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과 형의 마음이 다른점인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의 등을 두드리면서 “너는 항상 나와 같이 있었으니 내 재산이 다 네 재산이다. 네가 송아지 새끼 달랬으면 내가 송아지 새끼도 주고 염소 새끼 달라면 염소 새끼도 주었을 것이다. 네가 안 구했지 않느냐? 그러나 네 동생은 그것도 내 아들이 아니냐? 집을 떠나서 죄를 짓고 영적으로 죽었으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고 잃어버렸으나 다시 찾았으니 내가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 아버지는 죄인으로써 돌아오는 동생을 은혜로써 보신 것입니다. 형은 율법으로 본 것입니다. 율법은 언제나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인정사정 없습니다. 죄를 정죄하고 심판한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전 대통령의 인사사정관이 말하기를 우리나라 현재 인사법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이라도 잡혀서 감옥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털어서 먼지 안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율법적으로 사람을 정죄하면 심판 안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와 사랑으로 대해 주기 때문에 과거의 죄를 다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즐거워 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은 여러분 보실 때 여러분의 과거의 죄악을 들춰내어서 꾸짖고 심판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온 것만 해도 너무나도 귀하게 여겨서 보혈로 다 씻어 주시고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서 즐거워하고 기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과 사랑의 다른 점을 여기에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의 형님은 율법적인 눈으로 보았으나 아버지는 사랑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율법으로 판정해도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으로 여러분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설 수 있는 것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우리를 영접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께서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시고 맨발로 인생을 살았는데 하나님의 축복의 예비한 신발을 신겨 주시고 버림받은 놈인데 아들의 반지를 끼워 주시고 우리에게 기쁨의 큰 잔치를 베풀어 주시고 즐거워하는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공명, 쾌락은 거품입니다. 요란스럽고 굉장히 있는 것 같으나 세월이 지나면 다 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한국에서 유명한 정치인이요, 돈 많던 부자인데 나이 많아서 은퇴하고 난 다음에 제가 골프 치러 나가면 언제나 혼자서 골프를 쳐요. 나이가 늙고 이제 정치적 권력도 놓고 돈도 다 아들에게 상속하고 없으니까 아무도 같이하는 친구가 없어요. 혼자 골프를 쳐요. 내가 만나서 인사를 하면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어요. 혼자를 골프를 툭 툭 치면서 목욕도 혼자서 하고 식당에도 혼자 한구석에 앉아서 밥 먹고 하더니 나중에 이 세상을 떴어요. 내가 세상을 뜨기 전에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는데 “조목사, 나 장가 좀 보내줘.” 그래서 내가 “농담하시는 거지요?” “이 사람아 혼자 되어서 살아보게 얼마나 외로운지.. 자식에게 상속다 주고 나니까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지위 없어지고 돈 없어지니까 날 따라오는 사람도 없고 집안 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패물이야. 옷도 입기가 얼마나 힘이 들고 양말 신기도 얼마나 힘이 들고 잠자리에 들어가 눕기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이때 늙은 마누라라도 하나 있어서 도와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생각이 난다. 가만히 돌아보니까 옛날에 내가 살던 내 마누리가 미울 때가 많아서 싫은 말도 많이 하고 꼬락서니가 사나웠는데 지금 보니 그런 마누라도 얼마나 좋은 마누라였는지 몰라. 그 싫은 말도 지금 하나도 싫지 않아. 그런 싫은 말을 하고 꼴보기 싫은 마누라도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노.” 그 말을 듣고 참 인생의 씁쓸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생 부귀 영화 지나고 나면 그뿐이요, 기억 속에 남아있지 실제는 없는 것입니다. 이승만 박사 여러분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기억에 남아 있습니까? 그저 이야깃거리 속에 남아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안개요, 거품인 것입니다. 이 안개와 거품에 잡혀서 그를 쳐다보고 그만 따라가는 사람이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안개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품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안개도 있고 거품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꺼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는 길로 보는 것이지 그에 인생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개같이 사라지지 아니하고 거품같이 꺼지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품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주는 의로운 옷을 입고 아버지가 주는 사랑하는 신발을 신고 반지를 받아 끼고 아버지 품에서 즐거워하다가 영원한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는 이것밖에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아 영생을 얻는 이것이 가장 여러분 귀하고 중한 것이고 이것 이외에는 다 없어질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서 잃어버리고 버림받고 죽은 자와 같은 삶과 고독에서 누가 우리를 건져 주겠습니까? 아버지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라진 돈이 우리를 건져줍니까? 사라진 명예가 우리를 건져줍니까? 떠나간 친구가 우리를 돌봐주는 것입니까? 아니요, 헛된 것입니다. 다 꿈같은 일인 것입니다. 영원한 벗이 되어주는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자는 것입니다. 헛된데 정신을 팔지마라는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과 같이 물거품을 보고 거기에 현혹되어서 모든 것을 다 거기에다 투자했다가 나중에 버림받고 고독한 인간이 되었다가 좌절과 절망 속에서 영원한 것을 발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새사람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글이 기록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실에 정말로 영원한 것 잃어버리지 않을 것, 버리지 않을 것 그것이 예수 믿고 아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아버지 섬기는 것보다 더 귀한 보화가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자체가 안개요 물거품이니까 여기에 현혹되어서 내 정신을 팔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길인 것입니다. 잠시 후면 다 떠나가고 다 손에 놓치고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잃어버리고 안 떠나고 영원한 것 이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같이 있는 것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이 진실을 여러분 보고서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허상을 바라보고 살지 말고 실상을 바라보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사세요.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만 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속아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헛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품도 붙잡아 보세요. 안개도 붙잡아 보세요. 그러나 그 속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 속에서도 실상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만이 잡아 놓으면 영원히 남아 있지 안개와 구름은 사라지고 거품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부자의 둘째 아들은 현실 속에서 물거품을 바라보고 유혹이 되어서 물거품이 삶의 전부인줄 알고 뛰어 들어갔다가 불황이 다가오면 물거품은 다 꺼지고 비참하게 된 체험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품에 있는 것이 영원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그것을 놓아 버리고 물거품을 따라갔다가 그는 좌절과 절망에 빠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은 물거품입니다. 안개입니다. 구름입니다. 이곳에 우리가 현혹되어서 따라 가다가 안개가 사라지고 물거품이 꺼져 버리면 우리는 허망하게 되고 버림받고 한없이 고독하게 됩니다. 아버지 이 속에 살면서도 진실한 것을 알고 영원한 것을 알고 변치 않는 것을 알고 그것을 붙잡고 그 안에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만이 영원한 것이요, 소망찬 것이요, 기쁜 것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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