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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와 사랑

골로새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169 추천 수 0 2010.03.01 21: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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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골1:20~2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 10. 25. 주일 4부 설교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날씨를 주시고 춥지 않게 하시고 바람이 불지 않게 해주신 것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기도대회에 오셔서 즐거워 하신 줄 확신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당신과 같이 계십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노르웨이의 한 통계학자 조사에 의하면 지난 5천 560년 동안 지구상에 1만 4천 530번의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계산하면 1년에 평균 2.6번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을 위해 소비되는 돈은 연간 5천 5백 억 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6백조 원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오늘날 이 땅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하루에 3만 5천 명이나 됩니다. 인류의 문화사는 전쟁사와 같은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항상 전쟁과 살육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과 살육의 배후에는 미움과 원한이 있고 미움과 원한의 배후에는 반드시 마귀가 있습니다. 어떤 위대한 주의와 철학도 그 내용에 미움이 들어 있으면 그것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와 사랑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과 원수되게 만들었습니다. 하와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반역해서 남편 아담과 함께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반역자가 된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하나님과 사람은 원수가 되어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자기의 뜻을 이루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귀는 거짓의 애비입니다. 속입니다. 사람과 사람 서로 속여서 서로 원한을 갖게 만드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6백만 유대인과 수많은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히틀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다. 굉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평생 귓가에서 조용하게 소근 거리는 소리를 따라 행동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마귀가 그의 귓전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그처럼 잔인한 일을 했던 것입니다. 나치 전쟁 기록에는 히틀러의 전용 비행기를 조종하던 조종사의 고백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틀러가 가끔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광분을 일으키면 완전히 정신을 잃고 고함을 치고 발버둥을 치고 카페트를 손으로 긁고 있는 것을 다 때려 부수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마귀에 의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히틀러가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였던 것은 이처럼 그의 배후에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조종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움과 파괴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조그마한 미움과 저주도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미움과 원수가 되게 하는 것은 결코 사람의 행위도 아니요, 하나님의 행위가 아니요, 사탄의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 미움과 원수 됨을 철폐하시고 화해와 사랑을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이 2천년 전에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죄악을 대신 담당하여 하나님 앞에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를 사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가져왔습니다. 한손으로 하나님 손잡고 한손으로는 사람의 손잡고 십자가에서 화목을 시킨 것입니다. 이제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을 통하여 손을 내밀어 여러분 악수해 주시는 것입니다. 화목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로 22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가 옛날에는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기도한 들 하나님이 원수의 기도를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화목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하고 의롭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도록 해주셨으니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그 자리에 와 계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거리는 이제 사랑과 화목으로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다 용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애굽으로 팔아서 종살이를 하게 하고 온갖 고초를 당하게 한 그 형들을 나중에 애굽에서 만났을 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오히려 형들을 위로하고 용서의 말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집요하게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을 용서했고, 아버지의 보좌를 찬탈하고자 반란을 일으켰던 압살롬 아들을 용서했으며, 반란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하던 시므이도 돌아와서 다시 정권을 회복했을 때 용서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당하시면서도 주님을 멸시하고 저주하며 비웃는 무리들을 향해서 십자가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야 이놈들아, 두고 보자. 내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올때는 너희 머리털을 다 뽑아 놓을 테니까..”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를 향해서 머리를 흔들고 침을 뱉고 욕을 하는 무리를 향해서 주님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며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저들은 누구를 십자가에 못박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이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그분이 바로 장차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어서 심판할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오히려 용서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은 그 외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마귀가 이 땅에 심어놓은 미움과 원수 됨을 가는 곳마다 철폐하시고 화해와 사랑을 가져오시는 역사를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2. 미움과 복수심은 파괴의 바이러스
여러분, 미움과 복수심을 무서운 파괴의 바이러스입니다.
요사이 특별한 독감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 바이러스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움과 복수의 바이러스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심신을 파괴합니다.
잠언서 14장 30절에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시기를 하고 있으면 자기 뼈가 썩는다는 것입니다. 뼈가 썩는데 살은 안 녹을 수가 있습니까?
잠언서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차라리 수욕을 당하고 참는 것이 낫지 분노를 하면 자기에게 엄청난 타격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어느 국민학교 여교장선생님이 관절염으로 심히 고생을 하는데 아무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목사님을 청해서 기도를 받는데 목사님이 “언제부터 이 관절염이 이렇게 생겼습니까?” “우리 남편하고 이혼을 하고 난 다음부터 관절염이 생겼습니다.” “이혼한지 얼마나 됩니까?” “10년이 됩니다.” “그런데도 매일같이 오늘 남편을 생각하고 욕을 합니까?” “그럽니다.” “10년 전에 이혼 했는데 왜 지금까지 그 남편과 같이 살면서 욕을 합니까? 법적으로 이혼했으면 마음속으로 떠나 보내세요. 그리고 욕하지 말고 축복하십시오. 당신이 욕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이 전부 당신 관절염이 되어가지고서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당신 남편을 맡기고 마음속에서 떠나 보내십시오.” 그래서 통회하고 자복하고 기도하고 자기 남편보고 바이바이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10년 전에 바이바이 했는데 마음으로는 10년 후에야 바이바이 했습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관절염이 낫기 시작하여 깨끗하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복수심과 미움은 자기의 심신을 먼저 파괴합니다. “너 왜 원수를 용서하라고 그러냐?” 나 때문에 용서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있으면 내가 죽는 것이니까. 내가 고통스럽고 내가 괴로우니까 용서해서 내 마음에서 쫓아내야 해요. 그것을 미워하면 내 마음속에 원수를 모셔 드려 가지고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움과 복수심을 쫓아내 버려야 됩니다. 미움과 복수심은 이웃과의 관계를 형편없이 훼손시키는 것입니다.
잠언서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미움은 온갖 결점을 다 드러내고 온갖 흉을 보고 무서운 다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잘못한 것을 다 덮어주고 감추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어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37장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분을 그치고 노를 그쳐라. 분과 노를 가지고 있으면 악만 나오는 것이지 좋은 것은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에 미움과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 전체의 바퀴를 불태웁니다. 사는 생활 전부를 지옥불로 태우는 것입니다. 자나 깨나 먹으나 마시나 일하나 지옥불의 불타는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로 16절에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악이 있고 귀신이 있습니다. 귀신이 마음에 시기와 분노와 다툼을 일으키고 그것에 불을 자꾸 놓아서 고통을 가져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굉장히 존경하고 감동을 받는 정치인 한사람이 있습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인 것입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약 26년 동안 외딴섬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중한 정치범으로 간주되어 면회는 6개월에 한 번 밖에 안 되었고, 편지도 한 통밖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흑인이기 때문에 분리주의자인 백인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무척 고통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듬해에 그 큰 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죽었지만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집에서 쫓겨났고, 둘째 딸은 우울증으로 시달렸습니다. 감옥에 갇힌 지 14년째가 되던 때에 그의 맏딸이 아기를 낳았다고 면회를 왔습니다. 그리고 미리 보낸 편지에 부탁한 대로 아기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딸에게 쪽지를 내주었습니다. 딸은 그 쪽지를 조심스럽게 펴 보고 그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여 통곡을 했습니다. 그 쪽지에는 그 딸의 이름을 ‘아즈위’(Azwie)라고 하라. 즉 ‘희망’이라고 하라 그 절망상태에 있는 아버지가 손녀의 이름을 희망이라고 써주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감옥에서 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그쯤 되었으면 이제는 칼을 뽑아서 자기를 한평생 감옥살이 시킨 원수들을 벌할 때가 온 것인 것입니다. 또 다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첫번째 한 일이 당시의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여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를 설치하고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고 용서와 화해를 하는 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 마음에 감동이 됩니다. 오랜 시간 모진 감옥 생활을 했지만 남아프리카에 만연한 미움과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 용서와 화해와 평화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미움과 복수심은 자기의 심신을 파괴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훼손시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 땅의 미움과 원수를 철폐하시고 화해와 사랑을 가져오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무엇보다 먼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가 세계평화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지만은 내 마음속에 미움과 원한을 품고 있으면서 아무리 기도해봤자 세계평화도 조국의 평화도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있으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이만큼 심각하게 하나님은 미움과 분노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용서하며 사는 길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용서하며 사는 길을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찌해야 용서할 수 있습니까? 우리 사람들은 나하고 저 사람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똑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상대와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대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와 똑같이 생각하라고 할 권한이 없습니다. 나와 다르다고 욕할 이유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개성이 있기 때문에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화로써 서로 조화를 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서로 친절하고 대화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로 14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용서와 사랑, 이것이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평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간디가 어느 날 폭력배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일로 간디는 법정의 증언대에 서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자리에서 간디는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앉아 있는 피고인들은 나에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나를 때렸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원한을 그들에게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저들을 알지도 못하고 또한 내 개인적으로 아무런 원한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나도 저들을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 풀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들의 석방하기를 요구합니다.” 자기를 폭행한 사람들을 폭행죄로 감옥에 집어넣지 아니하고 용서해주고 풀어준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닌 것입니까? 사람들의 감정은 그렇게 편안하지 못합니다. 우리와 상대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대한 이해하고 함께 대화하도록 노력합니다. 이해와 대화를 할 때 상대의 사정을 더욱 잘 알게 되고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기를 모든 일은 정의로운 판단을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말도 안하시는 계신 것 같지만 우리의 모든 행동을 살피고 계십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잠언 20장 22절에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야훼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로마서 12장 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은 사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도를 넘치게 악을 행하도록 하나님은 버려놓지 않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풀은 채소같이 쇠잔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고 불의를 행하면서 창성해 질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엉터리입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지금도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때가 오면은 하나님이 풀 마르듯이 마르고 잎사귀 마르듯이 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우리가 직접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미우라 아야코가 쓴 「빙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여인이 눈 덮인 언덕 길을 향하여 걷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알고 보니까 여태까지 어머니로 모셨던 분이 자기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친어머니가 버린 자기를 주어서 거두어 줘서 자라게 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자 너무 마음에 충격을 받고 마음에 고통을 당하다가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하려고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운데 조심스럽게 일직선으로 산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까 자기 발걸음이 비틀 비틀 비틀 비틀 하거든요. 자기는 바르게 왔다고 했는데 걸어온 발걸음을 위에 올라가 보니까 눈자국에 비틀 비틀 비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 마음에 크게 깨닫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자신은 똑바로 온다고 왔는데 발자국은 이리저리 비뚤어져 있는 것을 보니 인생에 자기는 옳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완전히 삐뚫어진 인생을 산 것이 될 수도 있는구나. 그러므로 내가 우리 친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을 하고 자살을 하려는 것은 친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얼마나 답답해야 자기 딸을 낳아서 기르지 않고 버리겠느냐. 그것도 생각을 해야 될 것인데 그런 생각을 못한 자기가 잘못을 알고 자살을 포기하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이므로 죄인의 한사람이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나만 의인이고 저 사람만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저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할 때 나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인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죄인입니다. 누구나 알게 모르게 죄를 지었으며 또한 회개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사는 길이 친히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고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서 맡기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앞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독일 아우슈비츠의 참담한 수용소에서 생존한 유대인 디무르는 전쟁이 끝나고 1961년에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 재판 증인으로 소환되었습니다. 재판관은 디무르에게 히틀러의 참모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을 똑똑히 보십시오. 저 사람이 아이히만이 맞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수백만 유대인을 죽인 사람입니다. 엄청나게 악한 사람인 것입니다. 재판관의 말에 디무르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그만 졸도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한참 후에 깨어나서 쓰러진 이유를 물었습니다.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그럼 증오심 때문에, 마음속의 분노를 이기지 못해 쓰러진 것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왜 쓰러졌습니까?” 이 때 디무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이 너무나 순진하고 평범한 사람이 보였기 때문에 기절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무참하게 죽인 사람이 재판관 앞에 서서 증언대에 서서 보니까 너무나 순진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보통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자기 눈을 의심하고 기절을 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시에 깨닫고 그를 보고 확인한 순간 그 동안 내 마음속에 쌓아둔 미움과 분노와 증오는 그를 당장이라도 처참하게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저 역시 저 아이히만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놀란 것입니다.” 나는 저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를 그 자리에 만나니까 당장 그를 처참하게 죽이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에 불꽃같이 올라온 것을 보니까 나도 아이히만 자리에 있었으면 같은 일을 했겠다. 그 생각에 너무 놀래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쁜 사람보고 손가락질 하지만 우리도 그 처지에 떨어지면 그렇게 하고도 남은 일이 많습니다. 이러므로 쉽게 비평하지 말고 남의 입장을 남의 입장에 서서 충분히 생각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주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바울 선생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요 정의로운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용서와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용서와 사랑을 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해야 돼요. 저도 50년 동안 목회해 오면서 나에게 가시노릇 하던 성도들과 제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잠이 안 올만큼 가시노릇을 했습니다. 용서와 사랑을 말로써 한다고 하지만 안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내 마음속에 용서와 사랑이 나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용서와 사랑은 내 힘으로 안되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용서와 사랑을 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돼요. 미운 남편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까? 꼬락서니 보기 싫어서 들어오면 얼굴을 돌려 버리지요. 마음에 안드는 너무 바가지 긁는 마누라 쉽게 용서가 돼요? 안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안된다고 그대로 내버려 놓겠습니까? 용서와 사랑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안되니까 하나님 도움을 받아야죠. 하나님은 도와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했으니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구하면 우리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초인적인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로 15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굉장히 엄중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죄지은 자를 용서 안하고 앙심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혈의 역사를 일어나게 안 해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용서받은 것처럼 나도 이웃을 용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이 갚지 내가 갚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로 22절에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큰 맘 먹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지요? 그 베드로 나보다 훌륭합니다. 나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런데 이만하면 충분히 용서했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곱해서라도 용서하라. 베드로는 일곱 번 용서해줘야 한다. 예수님은 7×70=490, 490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 한없이 용서하라는 거에요. 사람으로써는 안돼지요. 나는 믿음이 약할 때 이 성경구절 읽으면 굉장히 싫었습니다. 지워버리고 싶었어요. “왜 이런 말을 여기에 기록해 놓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은 우리보다 모든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유익되고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원한을 품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만은 말년에 여러 가지 질병으로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의사가 된 지 어언 30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환자에게 처방을 해 왔지만 아픈 사람에게 가장 좋은 처방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휘트만은 크게 공감하면서 “그런데 그 사랑이란 약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요?”그러니까 의사가 허허허 웃으면서 “한봉지로 처방해서 안나으면 두봉지, 세봉지, 많이 처방을 해야지요.” 한번 사랑해서 안되거든 두 번, 세 번, 네 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의사는 그를 보고 웃으며 “그때는 처방약을 두 배로 늘리면 되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용서와 사랑을 해도 어떤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서와 사랑이란 처방약을 두 배로 늘려야 하고 세배로 늘려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을 하기 위해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서 하나님 더 용서하고 더 사랑하고 더 용서하고 더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들으면서 마음속에 ‘목사가 저렇게 설교하면서 자기는 그렇게 하냐?’ 그런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나도 못해요. 나는 여러분에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날보고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고 저도 결심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똑같은 인간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다음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야 될 것은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너가 나에게 잘못한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안돼요.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돼요. 내가 죄를 용서하면 하나님은 나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죄를 수없이 지었는데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이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 중에 하나가 잊어버리는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옛날에 지은 죄를 자꾸 회개하면 “그것 무슨 말이냐?” “아버지 내가 이런 죄를 지었지 않습니까?” “나 벌써 잊어버리고 모른다.” 하나님은 좋은 일에만 다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은 용서해 주고 건망증이 계셔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는 것을 나는 자꾸 기억해서 말을 합니까? 진실로 한번 회개했으면 하나님은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22절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기억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존 브로크만은 그의 책「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에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121가지를 소개했는데 인쇄술, 전기, 비행기, 컴퓨터, 인터넷 등이 포함되는데 거기에 예외로 한가지 놀라운 발명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뭐냐면 “지우개”입니다. 지금까지 발명한 발명품 중에 지우개가 그 중에 하나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 브로크만에 의하면 지우개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인류의 기록문화가 극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그러냐 하면 지우개가 없을 때는 음악가들이 악보를 적어 나가다가 잘못했으면 그것을 다 찢어서 내버리고 새로 적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우개가 생겼기 때문에 악보를 적어나가다 잘못하면 싹싹싹 지워버리고 새로 하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다가 잘못하면 옛날에는 그 전체 그림을 찢어 버려야 되는데 지우개가 생겨난 다음 그림을 그리다 잘못되면 지우개로 싹싹싹 지워버리고 새로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과 음악가의 작품들은 모두 현재와 같이 완성도를 이룬 것은 지우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창조주이신 하나님도 실수투성이인 우리 인생을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라는 지우개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지우개가 없었다면 우리 인생은 늘 고칠 수 없는 실수와 죄 가운데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용서하며 사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슴에 끌어안고 아픈 상처를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안고 내 남편의 죄를 지워버리고 아내의 죄를 지워 버리고 자식의 죄를 지워버리고 부모님의 죄를 지워 버린다. 이웃의 죄를 지워 버린다. 내 힘으로는 안된다. 십자가 보혈의 지우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끌어안고 그 모든 원한을 다 지워버리고 풀어버리고 그 대신 사랑과 화해를 가져오면 이것이 참 크리스챤의 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모든 우리의 죄를 다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두 손을 활짝 내밀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받아 들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관대한 용서와 사랑과 화해가 아니면 우리는 하루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자리에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큰 기쁨을 가지고 활짝 가슴을 열고 여러분들께 손을 내밀면서 내 품에 안겨라. 내게 의지하라. 믿고 구하라. 내가 너와 함께 살아주마.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을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의지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결론>
제3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되면 정말로 힘이 듭니다. 원한의 바이러스를 용서로써 죽이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갖는 것이 이 세상에 사는 지혜로운 길인 것입니다.
우리 머리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는 너무나 미움과 원한이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과 원한이 사라질 때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속에 계신 미움과 원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다 지워 버렸습니다. 아버지여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모든 원한과 미움을 다 지워버리게 도와주시옵시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가져오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우리 과거를 다 기억하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이웃의 과거를 다 생각하고 그를 가지고서 비평한다면 어떻게 친해질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과 화해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도와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과 화해를 가져오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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