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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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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11. 8. 주일 4부 설교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꿈과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꿈이 사람에게 주어질 때 늘 그 꿈은 결과를 보여주시지 과정을 보여주시지는 않습니다. 꿈이 골인 지점에 이르는 거리가 출발해서 100m, 1,500m, 3,000m 혹은 마라톤의 과정이라면 그 과정을 뛰어야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은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그 결승점에 도착하는 과정은 엄청난 시련과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에서 이 세상의 위대한 일은 모두 위대한 꿈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꿈은 내 마음에 열정을 일으키는 미래의 그림”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진 그 과정은 험한 길이 있습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막 교회를 개척했을 때 종로네거리에 부흥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빈터가 많이 있어서 천막을 치고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낮 공부 시간에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드리는 데 어떤 젊은 목사님이 한분 와서 내 앞에 꿇어 앉아 안수를 해달라고 해요. “무슨 안수를 해드릴까요?” 하니까 “나는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신학교 때도 고생 안하고 공부하고 부모님 덕분으로 교회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는데 아무 고생을 안 하고 자랐기 때문에 할 말이 없습니다. 매주일 마다 설교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고생입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 말씀 들어보니까 목사님이 폐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 경험이 얼마나 듣기가 좋고 믿음이 생기는지 몰라요. 그래서 나도 죽지만 않는다면 폐병 걸리면 좋겠다. 그래서 내게 안수기도를 해주시되 조건부로 해주십시오. 죽지는 말고 폐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고통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래야 나도 기도를 배우고 고통이 뭔지 알겠습니다.” 그런 말을 해요. 그래서 내가 그분 보고 “그런 기도를 내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큰 꿈을 가지면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은 험하고 괴로운 길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고통도 없어요. 당신이 꿈을 가지면 꿈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어야 됩니다.” 어린 아기를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꿈입니까? 아기를 품안에 안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꿈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는 것은 얼마나 괴롭습니까? 아기 낳을 때 두 번 다시 낳겠다고 하신 어머니 계세요? 없잖아요. 그와 같이 여러분 꿈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만 고통스럽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은 참으로 아름답고 영광스럽지만 그 꿈이 성취되는 과정에는 말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요셉이 받은 하나님의 꿈
우리는 요셉이 받은 하나님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당한 시련과 고난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형들과 같이 추수를 하는데 형들 짚단이 다 일어나서 자기 단을 향하여 절을 하거든요. 그래서 아침밥을 먹을 때 “형들 형들 내 말 들어. 어제 저녁 내가 꿈을 꾸었는데 추수하러 가서 추수단을 다 묶었는데 형들의 단이 서서 내 단에게 절을 하더라구” 형들이 화를 내고서 “오늘 참 재수 없다. 우리가 네 종이냐? 너에게 절하게..” 그리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 또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를 향해서 절을 하거든 그래서 또 아침 시간 밥 먹을 때 “형들 형들, 내 꿈을 들으라. 어제 밤 꿈에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날보고 절하더라.” 형들이 숟가락 던져 버리고 나가면서 “저놈의 자식 때문에 오늘 재수가 없다.” 아버지도 야곱도 “이놈아, 해와 달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니냐? 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네 형들과 함께 너에게 가서 무릎을 꿇어 절한다 말이냐? 고약한 놈!” 그렇게 말은 해도 속으로는 ‘보통 꿈이 아니다.’ 야곱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좀 세월이 지나갔는데 형들은 목축하러 멀리 떠나서 몇 달이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아버지가 형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요셉에게 음식을 가지고 형들을 찾아서 안부를 묻고 돌아오라. 그래서 요셉이 형들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보니까 요셉이 오거든 “저 꿈꾸는 자식 온다. 저놈 자식 우리 잡아 죽여 버리자. 죽어버리면 저 꿈이 이루어지지 않지 않느냐.” 그래서 요셉이 오자마자 달려들어 음식을 빼앗고 옷을 발가벗겨서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습니다. 깊은 마른 우물에 빠졌으니 이제는 살아날 도리가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 날 살려달라고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않고 형들은 그 옆에서 가져온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장난을 합니다. 그런데 마침 아라비안대상이 애굽으로 물건을 팔러 가는데 그 형제 중에 한 사람이 “저 놈 저렇게 죽일 필요가 있느냐. 우리 팔아먹자.” 그래서 마른 우물에서 끄집어 내어서 은 20냥을 받고 팔아먹었습니다.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과정에 절망의 마음이 다가왔지만 그 마음에 꿈이 있어서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애굽에 가서 보디발의 집 하인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임금님의 요사이 말하면 안전위원장입니다. 임금님을 보좌하는 사람인데 그 집안에 종으로 팔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셉과 같이 있어서 요셉이 하는 것마다 잘돼요. 요셉이 돌보는 짐승떼가 잘되고, 돌보는 곡식은 곡식이 잘 열매를 맺고 하는 일마다 잘되니까 점점 그 주인이 요셉을 높여 주어서 요셉이 가정총무가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종들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는데 그 집에 여주인이 요셉을 보고 자꾸 눈을 깜짝거립니다. 그래서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주인이 나를 총무로 만들어서 온 집안 살림을 다 맡기고 하인들을 다 돌보게 했지만 당신은 내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주인의 전용물입니다. 그러므로 나보고 유혹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 여자가 만나자고 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침 어느 날 종들이 다 들로 일하러 나가고 집안에 아무도 없는데 대청마루에 할 일이 있어서 다른 청으로 들어가서 요셉이 일을 볼 때 방에서 뛰어 나와서 요셉을 꽉 붙잡았습니다. “우리 방으로 들어가자.” 우리 같이 동침하자.” 요셉이 떨치고 나오려고 하는데 옷을 얼마나 힘차게 잡았기 때문에 웃옷이 벗겨졌습니다. 요셉이 웃옷이 벗긴 채 밖으로 도망을 쳐 나왔으니까 그 부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고함 고함을 칩니다. “사람 살려라. 여기 히브리종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남편이 그를 높여서 가정총무로 만들어 놓았더니 그가 나를 늘 유혹하다가 지금 사람이 없으니까 뛰어 들어와서 나를 겁간하려고 하매 내가 고함을 치니 옷을 벗어놓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증거로 옷을 내놓습니다. 아무 사람이 본적이 없으니까 요셉이 정말로 땅팔 노릇입니다. 안했다고 그렇게 변명할 도리가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주인이 정부에서 신속히 집으로 뛰어 왔습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겁간하려는 사람을 가만 그냥 두었겠습니까? 요셉이 엄청나게 얻어 맞았을 것입니다. 뼈가 부러질 정도로 얻어맞고 감옥 속에 갇혔습니다. 그 감옥은 정치인들이 갇히는 감옥입니다. 그러니 요셉이 얼마나 억울합니까? 절대로 그런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 그는 변명을 할 수 없이 들어가서 언제 감옥에서 나올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이 절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은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가슴을 치고 울었지만은 좌절하지 않은 것은 마음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이 돌보면 죄수들이 조용하고 잘 순복을 하기 때문에 간수장이 너무 기특해서 요셉에게 모든 열쇠를 다 맡기고 감옥 일을 다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왕궁에서 떡장관하고 술장관이 모의를 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 왔습니다. 그 두 사람을 요셉이 잘 돌보았는데 하루는 두 사람이 꿈을 꾸고 대단히 마음에 심기가 편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물었습니다. “왜 심기가 불편합니까?” 그러니까 한 장관이 “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포도나무가 하나 나오더니 가지가 벌어지고 거기에 일곱 열매가 맺었는데 내가 그를 따서 바로에게 바치는 꿈을 꾸었다.”고 하니까 “아~ 좋은 꿈입니다. 사흘 후면 바로의 생일날인데 당신은 복직되어서 그 바로에게 술을 바치는 술장관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 다음 사람이 “나도 꿈을 꾸었는데 바로가 먹을 여러 가지 음식을 광주리 세 개를 담아서 여리에 이었는데 새들이 와서 그 음식을 찍어 먹더라.”고 하니까 “불행한 꿈입니다. 사흘 후에 당신은 목이 매달려서 새들이 당신 머리를 쪼아 먹을 것입니다.” 그러는데 사흘이 되자 그대로 되었었습니다. 떡장관은 끌려 나가서 목이 매어졌지만 술장관은 복직이 되어서 좋아서 얼씨구나 절씨구나 춤을 춥니다. 요셉이 붙잡고 간청을 합니다. “복직이 되었으니까 바로를 만나거든 내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연을 말해서 해방을 시켜 주십시오.” “물론 내가 말해주지.” “정말 부탁합니다.” “정말로 돌봐줄게.” 그리고 감방에서 나가자마자 새까맣게 잊어 먹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이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고 은혜 받은 것은 깨끗이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만 2년을 요셉은 소식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요셉은 3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요. 꿈에 나일강변에 가니까 아주 살찐 소 일곱 마리가 풀을 뜯어 먹는데 보기가 좋거든요. 그런데 곧 뒤에 일곱 마리 아주 빼빼 마르고 흉한 소가 나오더니만 살찐 일곱 소를 다 잡아먹고도 역시 빼빼합니다. 잠에서 깨었다가 또 꿈을 꾸니까 곡식이 한그루 났는데 거기에 일곱 이삭이 아주 풍성하고 기름진 열매를 맺었는데 다음에 쭉정한 곡식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만 살찐 이삭을 다 잡아먹고도 쭉정합니다. 그래서 꿈이 하도 희안하고 현명하게 현동하게 보았기 때문에 깨어나서 모든 애굽의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서 꿈을 해석하라고 하니까 꿈을 해석 못합니다. 그러자 술장관이 무릎을 탁 치면서 “바로왕이시여, 내가 감옥에 있을 때 히브리소년 요셉이라는 사람이 이러 이러한 꿈을 해석했는데 그 꿈대로 됩디다. 요셉을 한번 불러올까요?” 왕이 “빨리 불러오너라.” 갑자기 왕궁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요셉을 옥에서 나오라고 하더니만 이발을 시키고 면도를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혀서 수레에 태워 왕궁으로 데려갔습니다. 임금님 앞에 엎드리니까 임금이 “네가 꿈을 해석 잘한다면서요?” “해석은 하나님께 있사오니 말씀하십시오.” 그래서 바로가 자기 꿈을 말하자 요셉이 “일곱 암소와 일곱 살찐 이삭은 동일한 꿈을 하나님이 두 번 보여주신 것은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일곱 여윈 암소와 일곱 여윈 이삭도 7년 흉년을 말합니다. 이 애굽에 지금으로부터 7년 동안 풍년이 와서 말할 수 없이 식량이 많이 생산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7년의 흉년이 다가오면 풍년은 온데간데 없고 굶주림이 온 애굽을 습격해서 애굽이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여 7년 동안 풍년이 올 때 관리를 시켜서 곡식의 5분의 2를 거두어서 곡간에 전부 거두어 놓으십시오. 아마 모래알 같이 곡식이 많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7년 흉년에 그 곡식을 내어서 국민들에게 팔면 나라가 살고 왕도 권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왕이 무릎을 탁 치면서 “세상에 이렇게 지혜있고 총명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다른 관리 구할 필요가 없다. 네가 이 나라를 다스려야 되겠다. 내가 오늘 이 시간에 너를 국무총리로 임명하노라.” 당장 자기 반지를 손에 끼워 주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주고 “너는 나보다 보좌 하나가 낮은 자리지 이 애굽 사람들은 모두 네 명령에 순종해야 된다.” 그리고 난 다음 버금수레를 만들어서 태워 주었습니다. 요셉이 나가자 모든 애굽 사람들이 “엎드려라.” 요셉에게 엎드렸습니다. 사람팔자 시간문제입니다. 얼마전까지도 감옥살이하던 죄수였는데 국무총리가 되어서 나왔으니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요셉이 예언한데로 7년 풍년이 온 후에 7년 흉년이 다가왔으나 애굽이 요셉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어렵고 괴로운 시련 가운데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음 속에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쥐를 캄캄한 항아리 안에 넣어두면 3분을 못 견디고 죽는다고 합니다. 항아리 안에 쥐를 넣고 뚜껑을 닫아 놓으면 튼튼한 쥐가 3분만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그 항아리 안에 쥐를 넣어 놓고 구멍을 뚫어서 한가닥 햇빛이 비취게 해보니까 무려 36시간 지나도 안죽더라는 것입니다. 3분만에 죽는 쥐가 햇빛이 비춰 들어오니까 햇빛을 쳐다보니까 36시간 지나도 안죽더라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쥐들이 캄캄한 항아리 안에서 3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것은 체력 때문이 아니라 절망 때문이라고 합니다. 캄캄한 절망에 처했기 때문에 3분만에 죽은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앞길이 아무리 칠흑같이 어둡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입니다.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꿈이 있어야 돼요. 꿈과 희망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운 고난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요셉이 종살이 10년에 감옥살이 3년을 해서 잔뼈가 굵어질 때까지 고통을 당했어도 죽지 않고 산 것은 마음 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은 기어코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굳게 믿고 마음 속에 꿈을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 환경이 캄캄한 항아리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햇빛이 비취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늘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았지 환경을 바라보았으면 그는 좌절하고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꿈이 이겼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고 나중에 형제들이 가나안에서 애굽에 와서 국무총리가 된 동생 앞에 전부 무릎을 꿇어 절하는 사실이 이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받은 하나님의 꿈
우리 예수님의 고난도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셔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만들어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에서 영원무궁토록 사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꿈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의 세계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거느리고 사시는 꿈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당한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와서 고통 당한 것은 여러분 우리가 다 익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을 이기고 나중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에 보면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이 세상의 원수들을 다 이기고 인류들을 믿음으로 구원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고난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로 11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크나큰 영광을 이루기 위해서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태어났는데 굉장히 가난한 목수의 집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의식주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입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33년간 인생 고를 다 겪었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고 다니셨지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고 천대를 입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나중에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생살에 조그만한 가시가 찔려도 아픈데 생살에 못을 박아 달아 매달았으니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리고 그는 죽어서 이름없는 자의 무덤에 들어갔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아름답지만 이루는 과정은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엄청난 어둠과 괴로움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님 조차도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십자가에 매달려서 고난의 극치가 달했을 때는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절대적인 암흑과 절망 가운데도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꿈을 바라보고 참고 이겼던 것입니다.
3.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꿈
그런데 오늘날에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이 꿈을 우리가 받아 들이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마음속에 소원과 꿈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원과 꿈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소원과 꿈이 내 꿈이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 연구기관에서 유럽의 백만장자 4천 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하고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어떻게 해서 백만장자가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첫째로, 뚜렷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목표를 바라보고 전진할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로, 마음에 꿈을 가졌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는 꿈을 가지고 있어서 꿈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현실에 짓눌리거나 절망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끝까지 참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뚜렷한 목표와 꿈이 있을 때 그 어떠한 고난도 인내하고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고 그에 따라 우리의 꿈이 분명하여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어떠한 고난도 이기고 성공과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꿈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은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으며 거룩하고 신령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며 모든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이 고침을 받고 저주와 가난이 물러가고 형통과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고 부활 영생 천국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자마다 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이루어 놓은 이 열매를 내 것으로 받아들여서 나의 꿈으로 삼으면 그 꿈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꿈을 가졌다가 조그만 어려움을 당하면 포기해 버립니다. 모든 꿈은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이 적으면 고난도 적고 꿈이 크면 고난도 큽니다.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은 은혜를 우리가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받을만한 자격을 만들고 난 다음 주는 것입니다. 전에 보다 더 회개하고 의로워지게 하고 더 거룩해져야 하고 더 치료받고 축복받은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고 난 다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릇이 준비되어야 음식을 담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릇이 추하고 더러운데 좋은 음식을 담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씻음을 받기 위해서 고난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나는 왜 교회 왔다 갔다 하는데 왜 복을 못 받는가? 저 사람은 복 받고 저 사람도 복 받는데... 그것은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꿈을 가지고 인내했습니다. 시련과 환난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꿈을 바라보고 절대 뒤로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포기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을 포기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단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꿈은 끝까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아무리 내 꿈과 정반대 되는 현상이 일어나도 나는 하늘을 쳐다보고 꿈을 헤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의 싸움입니다. 내가 아무 시련도 없고 아무 고통도 없이 꿈이 슬슬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겠습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도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고난을 겪었던 것인데 우리 사람들 이야말로 고난 안 겪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적은 꿈을 가지면 적은 고난을 당하고 큰 꿈을 가지면 큰 고난을 통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개인도 망해요. 왜,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습니다. 꿈이란 내일을 꿈꾸는 것인데 오늘 내 마음속에 아무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기 때문에 살았다 하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꿈 없이 산다는 것은 참 무서운 절망적인 삶인 것입니다.
왜 북한 땅이 저렇게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북한에 자유가 없고 꿈을 꿀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정부가 시키는데로 순종해서 살아야 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꿈을 꿀 수 없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삶이 잃어버린 것과 꼭 같습니다. 꿈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죽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유요, 꿈인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것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꿈을 가져라. 내가 채우기는 채우되 그 사이에 고난은 반드시 다가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이 고난을 당하더라도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과정이 아무리 괴로워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굳세게 믿고 기도하고 찬미하며 인내하십시오. 한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 참고 계속 참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모르는 사이에 꿈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는 목회자들에게 늘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큰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제가 늘 먼저 말하는 것은 “큰 꿈을 가지십시오. 목표를 크게 가지고 꿈을 크게 가지시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꿈을 가지면 가질수록 굉장한 많은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목회상에 괴로움과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을 견뎌내고 나면 나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가 자라고 하나님 나라가 왕성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 교회가 자랐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생을 참는다고 교회가 자라는 것조차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50년 목회하면서 느낀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70만이 넘게 자란 줄 난 몰랐습니다. 꿈은 가졌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가운데 너무나 많은 어려운 고난이 있었으므로 고난과 싸운다고 교회가 자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교회가 자라니까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느냐.” 행복과 기쁨도 몰랐습니다. 고통만 쌓이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견디려고 몸부림치다가 나중에 보니까 교회가 자랐어요. 교회가 자란 것 보니까 은퇴하게 되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면 행복도 하지만 괴로움도 많습니다. 그러나 꿈이 이루어지고 나면 나중에는 참 마음에 잘했다는 생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꿈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으며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하늘에 올라갔을 때 주님이 박수치고 안아주시면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안하고 꿈도 꾸지 않고 평안히 있다가 천국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데 평안히 있는 사람은 꿈도 없고 아무 일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도 없고 칭찬도 없을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도 꿈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반드시 괴로움과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내가 믿었는데 왜 이렇게 괴롭느냐. 내가 믿었는데 왜 이런 고통을 다가오느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고통이 다가오고 믿었기 때문에 시련이 다가옵니다. 요셉은 꿈을 갖지 않았었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그는 꿈을 굳세게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주님조차도 십자가를 통해서 꿈을 이루셨는데 우리에게도 크고 적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낙심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두다 천국 꿈을 마음속에 확실히 가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꿈과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꿈이 사람에게 주어질 때 늘 그 꿈은 결과를 보여주시지 과정을 보여주시지는 않습니다. 꿈이 골인 지점에 이르는 거리가 출발해서 100m, 1,500m, 3,000m 혹은 마라톤의 과정이라면 그 과정을 뛰어야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은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그 결승점에 도착하는 과정은 엄청난 시련과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에서 이 세상의 위대한 일은 모두 위대한 꿈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꿈은 내 마음에 열정을 일으키는 미래의 그림”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진 그 과정은 험한 길이 있습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막 교회를 개척했을 때 종로네거리에 부흥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빈터가 많이 있어서 천막을 치고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낮 공부 시간에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드리는 데 어떤 젊은 목사님이 한분 와서 내 앞에 꿇어 앉아 안수를 해달라고 해요. “무슨 안수를 해드릴까요?” 하니까 “나는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신학교 때도 고생 안하고 공부하고 부모님 덕분으로 교회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는데 아무 고생을 안 하고 자랐기 때문에 할 말이 없습니다. 매주일 마다 설교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고생입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 말씀 들어보니까 목사님이 폐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 경험이 얼마나 듣기가 좋고 믿음이 생기는지 몰라요. 그래서 나도 죽지만 않는다면 폐병 걸리면 좋겠다. 그래서 내게 안수기도를 해주시되 조건부로 해주십시오. 죽지는 말고 폐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고통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래야 나도 기도를 배우고 고통이 뭔지 알겠습니다.” 그런 말을 해요. 그래서 내가 그분 보고 “그런 기도를 내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큰 꿈을 가지면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은 험하고 괴로운 길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고통도 없어요. 당신이 꿈을 가지면 꿈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어야 됩니다.” 어린 아기를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꿈입니까? 아기를 품안에 안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꿈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는 것은 얼마나 괴롭습니까? 아기 낳을 때 두 번 다시 낳겠다고 하신 어머니 계세요? 없잖아요. 그와 같이 여러분 꿈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만 고통스럽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은 참으로 아름답고 영광스럽지만 그 꿈이 성취되는 과정에는 말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요셉이 받은 하나님의 꿈
우리는 요셉이 받은 하나님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당한 시련과 고난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형들과 같이 추수를 하는데 형들 짚단이 다 일어나서 자기 단을 향하여 절을 하거든요. 그래서 아침밥을 먹을 때 “형들 형들 내 말 들어. 어제 저녁 내가 꿈을 꾸었는데 추수하러 가서 추수단을 다 묶었는데 형들의 단이 서서 내 단에게 절을 하더라구” 형들이 화를 내고서 “오늘 참 재수 없다. 우리가 네 종이냐? 너에게 절하게..” 그리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 또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를 향해서 절을 하거든 그래서 또 아침 시간 밥 먹을 때 “형들 형들, 내 꿈을 들으라. 어제 밤 꿈에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날보고 절하더라.” 형들이 숟가락 던져 버리고 나가면서 “저놈의 자식 때문에 오늘 재수가 없다.” 아버지도 야곱도 “이놈아, 해와 달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니냐? 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네 형들과 함께 너에게 가서 무릎을 꿇어 절한다 말이냐? 고약한 놈!” 그렇게 말은 해도 속으로는 ‘보통 꿈이 아니다.’ 야곱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좀 세월이 지나갔는데 형들은 목축하러 멀리 떠나서 몇 달이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아버지가 형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요셉에게 음식을 가지고 형들을 찾아서 안부를 묻고 돌아오라. 그래서 요셉이 형들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보니까 요셉이 오거든 “저 꿈꾸는 자식 온다. 저놈 자식 우리 잡아 죽여 버리자. 죽어버리면 저 꿈이 이루어지지 않지 않느냐.” 그래서 요셉이 오자마자 달려들어 음식을 빼앗고 옷을 발가벗겨서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습니다. 깊은 마른 우물에 빠졌으니 이제는 살아날 도리가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 날 살려달라고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않고 형들은 그 옆에서 가져온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장난을 합니다. 그런데 마침 아라비안대상이 애굽으로 물건을 팔러 가는데 그 형제 중에 한 사람이 “저 놈 저렇게 죽일 필요가 있느냐. 우리 팔아먹자.” 그래서 마른 우물에서 끄집어 내어서 은 20냥을 받고 팔아먹었습니다.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과정에 절망의 마음이 다가왔지만 그 마음에 꿈이 있어서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애굽에 가서 보디발의 집 하인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임금님의 요사이 말하면 안전위원장입니다. 임금님을 보좌하는 사람인데 그 집안에 종으로 팔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셉과 같이 있어서 요셉이 하는 것마다 잘돼요. 요셉이 돌보는 짐승떼가 잘되고, 돌보는 곡식은 곡식이 잘 열매를 맺고 하는 일마다 잘되니까 점점 그 주인이 요셉을 높여 주어서 요셉이 가정총무가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종들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는데 그 집에 여주인이 요셉을 보고 자꾸 눈을 깜짝거립니다. 그래서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주인이 나를 총무로 만들어서 온 집안 살림을 다 맡기고 하인들을 다 돌보게 했지만 당신은 내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주인의 전용물입니다. 그러므로 나보고 유혹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 여자가 만나자고 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침 어느 날 종들이 다 들로 일하러 나가고 집안에 아무도 없는데 대청마루에 할 일이 있어서 다른 청으로 들어가서 요셉이 일을 볼 때 방에서 뛰어 나와서 요셉을 꽉 붙잡았습니다. “우리 방으로 들어가자.” 우리 같이 동침하자.” 요셉이 떨치고 나오려고 하는데 옷을 얼마나 힘차게 잡았기 때문에 웃옷이 벗겨졌습니다. 요셉이 웃옷이 벗긴 채 밖으로 도망을 쳐 나왔으니까 그 부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고함 고함을 칩니다. “사람 살려라. 여기 히브리종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남편이 그를 높여서 가정총무로 만들어 놓았더니 그가 나를 늘 유혹하다가 지금 사람이 없으니까 뛰어 들어와서 나를 겁간하려고 하매 내가 고함을 치니 옷을 벗어놓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증거로 옷을 내놓습니다. 아무 사람이 본적이 없으니까 요셉이 정말로 땅팔 노릇입니다. 안했다고 그렇게 변명할 도리가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주인이 정부에서 신속히 집으로 뛰어 왔습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겁간하려는 사람을 가만 그냥 두었겠습니까? 요셉이 엄청나게 얻어 맞았을 것입니다. 뼈가 부러질 정도로 얻어맞고 감옥 속에 갇혔습니다. 그 감옥은 정치인들이 갇히는 감옥입니다. 그러니 요셉이 얼마나 억울합니까? 절대로 그런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 그는 변명을 할 수 없이 들어가서 언제 감옥에서 나올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이 절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은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가슴을 치고 울었지만은 좌절하지 않은 것은 마음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이 돌보면 죄수들이 조용하고 잘 순복을 하기 때문에 간수장이 너무 기특해서 요셉에게 모든 열쇠를 다 맡기고 감옥 일을 다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왕궁에서 떡장관하고 술장관이 모의를 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 왔습니다. 그 두 사람을 요셉이 잘 돌보았는데 하루는 두 사람이 꿈을 꾸고 대단히 마음에 심기가 편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물었습니다. “왜 심기가 불편합니까?” 그러니까 한 장관이 “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포도나무가 하나 나오더니 가지가 벌어지고 거기에 일곱 열매가 맺었는데 내가 그를 따서 바로에게 바치는 꿈을 꾸었다.”고 하니까 “아~ 좋은 꿈입니다. 사흘 후면 바로의 생일날인데 당신은 복직되어서 그 바로에게 술을 바치는 술장관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 다음 사람이 “나도 꿈을 꾸었는데 바로가 먹을 여러 가지 음식을 광주리 세 개를 담아서 여리에 이었는데 새들이 와서 그 음식을 찍어 먹더라.”고 하니까 “불행한 꿈입니다. 사흘 후에 당신은 목이 매달려서 새들이 당신 머리를 쪼아 먹을 것입니다.” 그러는데 사흘이 되자 그대로 되었었습니다. 떡장관은 끌려 나가서 목이 매어졌지만 술장관은 복직이 되어서 좋아서 얼씨구나 절씨구나 춤을 춥니다. 요셉이 붙잡고 간청을 합니다. “복직이 되었으니까 바로를 만나거든 내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연을 말해서 해방을 시켜 주십시오.” “물론 내가 말해주지.” “정말 부탁합니다.” “정말로 돌봐줄게.” 그리고 감방에서 나가자마자 새까맣게 잊어 먹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이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고 은혜 받은 것은 깨끗이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만 2년을 요셉은 소식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요셉은 3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요. 꿈에 나일강변에 가니까 아주 살찐 소 일곱 마리가 풀을 뜯어 먹는데 보기가 좋거든요. 그런데 곧 뒤에 일곱 마리 아주 빼빼 마르고 흉한 소가 나오더니만 살찐 일곱 소를 다 잡아먹고도 역시 빼빼합니다. 잠에서 깨었다가 또 꿈을 꾸니까 곡식이 한그루 났는데 거기에 일곱 이삭이 아주 풍성하고 기름진 열매를 맺었는데 다음에 쭉정한 곡식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만 살찐 이삭을 다 잡아먹고도 쭉정합니다. 그래서 꿈이 하도 희안하고 현명하게 현동하게 보았기 때문에 깨어나서 모든 애굽의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서 꿈을 해석하라고 하니까 꿈을 해석 못합니다. 그러자 술장관이 무릎을 탁 치면서 “바로왕이시여, 내가 감옥에 있을 때 히브리소년 요셉이라는 사람이 이러 이러한 꿈을 해석했는데 그 꿈대로 됩디다. 요셉을 한번 불러올까요?” 왕이 “빨리 불러오너라.” 갑자기 왕궁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요셉을 옥에서 나오라고 하더니만 이발을 시키고 면도를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혀서 수레에 태워 왕궁으로 데려갔습니다. 임금님 앞에 엎드리니까 임금이 “네가 꿈을 해석 잘한다면서요?” “해석은 하나님께 있사오니 말씀하십시오.” 그래서 바로가 자기 꿈을 말하자 요셉이 “일곱 암소와 일곱 살찐 이삭은 동일한 꿈을 하나님이 두 번 보여주신 것은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일곱 여윈 암소와 일곱 여윈 이삭도 7년 흉년을 말합니다. 이 애굽에 지금으로부터 7년 동안 풍년이 와서 말할 수 없이 식량이 많이 생산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7년의 흉년이 다가오면 풍년은 온데간데 없고 굶주림이 온 애굽을 습격해서 애굽이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여 7년 동안 풍년이 올 때 관리를 시켜서 곡식의 5분의 2를 거두어서 곡간에 전부 거두어 놓으십시오. 아마 모래알 같이 곡식이 많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7년 흉년에 그 곡식을 내어서 국민들에게 팔면 나라가 살고 왕도 권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왕이 무릎을 탁 치면서 “세상에 이렇게 지혜있고 총명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다른 관리 구할 필요가 없다. 네가 이 나라를 다스려야 되겠다. 내가 오늘 이 시간에 너를 국무총리로 임명하노라.” 당장 자기 반지를 손에 끼워 주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주고 “너는 나보다 보좌 하나가 낮은 자리지 이 애굽 사람들은 모두 네 명령에 순종해야 된다.” 그리고 난 다음 버금수레를 만들어서 태워 주었습니다. 요셉이 나가자 모든 애굽 사람들이 “엎드려라.” 요셉에게 엎드렸습니다. 사람팔자 시간문제입니다. 얼마전까지도 감옥살이하던 죄수였는데 국무총리가 되어서 나왔으니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요셉이 예언한데로 7년 풍년이 온 후에 7년 흉년이 다가왔으나 애굽이 요셉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어렵고 괴로운 시련 가운데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음 속에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쥐를 캄캄한 항아리 안에 넣어두면 3분을 못 견디고 죽는다고 합니다. 항아리 안에 쥐를 넣고 뚜껑을 닫아 놓으면 튼튼한 쥐가 3분만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그 항아리 안에 쥐를 넣어 놓고 구멍을 뚫어서 한가닥 햇빛이 비취게 해보니까 무려 36시간 지나도 안죽더라는 것입니다. 3분만에 죽는 쥐가 햇빛이 비춰 들어오니까 햇빛을 쳐다보니까 36시간 지나도 안죽더라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쥐들이 캄캄한 항아리 안에서 3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것은 체력 때문이 아니라 절망 때문이라고 합니다. 캄캄한 절망에 처했기 때문에 3분만에 죽은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앞길이 아무리 칠흑같이 어둡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입니다.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꿈이 있어야 돼요. 꿈과 희망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운 고난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요셉이 종살이 10년에 감옥살이 3년을 해서 잔뼈가 굵어질 때까지 고통을 당했어도 죽지 않고 산 것은 마음 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은 기어코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굳게 믿고 마음 속에 꿈을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 환경이 캄캄한 항아리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햇빛이 비취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늘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았지 환경을 바라보았으면 그는 좌절하고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꿈이 이겼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고 나중에 형제들이 가나안에서 애굽에 와서 국무총리가 된 동생 앞에 전부 무릎을 꿇어 절하는 사실이 이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받은 하나님의 꿈
우리 예수님의 고난도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셔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만들어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에서 영원무궁토록 사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꿈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의 세계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거느리고 사시는 꿈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당한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와서 고통 당한 것은 여러분 우리가 다 익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을 이기고 나중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에 보면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이 세상의 원수들을 다 이기고 인류들을 믿음으로 구원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고난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로 11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크나큰 영광을 이루기 위해서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태어났는데 굉장히 가난한 목수의 집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의식주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입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33년간 인생 고를 다 겪었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고 다니셨지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고 천대를 입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나중에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생살에 조그만한 가시가 찔려도 아픈데 생살에 못을 박아 달아 매달았으니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리고 그는 죽어서 이름없는 자의 무덤에 들어갔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아름답지만 이루는 과정은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엄청난 어둠과 괴로움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님 조차도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십자가에 매달려서 고난의 극치가 달했을 때는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절대적인 암흑과 절망 가운데도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꿈을 바라보고 참고 이겼던 것입니다.
3.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꿈
그런데 오늘날에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이 꿈을 우리가 받아 들이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마음속에 소원과 꿈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원과 꿈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소원과 꿈이 내 꿈이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 연구기관에서 유럽의 백만장자 4천 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하고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어떻게 해서 백만장자가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첫째로, 뚜렷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목표를 바라보고 전진할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로, 마음에 꿈을 가졌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는 꿈을 가지고 있어서 꿈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현실에 짓눌리거나 절망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끝까지 참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뚜렷한 목표와 꿈이 있을 때 그 어떠한 고난도 인내하고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고 그에 따라 우리의 꿈이 분명하여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어떠한 고난도 이기고 성공과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꿈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은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으며 거룩하고 신령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며 모든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이 고침을 받고 저주와 가난이 물러가고 형통과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고 부활 영생 천국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자마다 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이루어 놓은 이 열매를 내 것으로 받아들여서 나의 꿈으로 삼으면 그 꿈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꿈을 가졌다가 조그만 어려움을 당하면 포기해 버립니다. 모든 꿈은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이 적으면 고난도 적고 꿈이 크면 고난도 큽니다.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은 은혜를 우리가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받을만한 자격을 만들고 난 다음 주는 것입니다. 전에 보다 더 회개하고 의로워지게 하고 더 거룩해져야 하고 더 치료받고 축복받은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고 난 다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릇이 준비되어야 음식을 담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릇이 추하고 더러운데 좋은 음식을 담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씻음을 받기 위해서 고난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나는 왜 교회 왔다 갔다 하는데 왜 복을 못 받는가? 저 사람은 복 받고 저 사람도 복 받는데... 그것은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꿈을 가지고 인내했습니다. 시련과 환난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꿈을 바라보고 절대 뒤로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포기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을 포기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단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꿈은 끝까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아무리 내 꿈과 정반대 되는 현상이 일어나도 나는 하늘을 쳐다보고 꿈을 헤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의 싸움입니다. 내가 아무 시련도 없고 아무 고통도 없이 꿈이 슬슬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겠습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도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고난을 겪었던 것인데 우리 사람들 이야말로 고난 안 겪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적은 꿈을 가지면 적은 고난을 당하고 큰 꿈을 가지면 큰 고난을 통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개인도 망해요. 왜,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습니다. 꿈이란 내일을 꿈꾸는 것인데 오늘 내 마음속에 아무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기 때문에 살았다 하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꿈 없이 산다는 것은 참 무서운 절망적인 삶인 것입니다.
왜 북한 땅이 저렇게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북한에 자유가 없고 꿈을 꿀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정부가 시키는데로 순종해서 살아야 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꿈을 꿀 수 없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삶이 잃어버린 것과 꼭 같습니다. 꿈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죽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유요, 꿈인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것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꿈을 가져라. 내가 채우기는 채우되 그 사이에 고난은 반드시 다가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이 고난을 당하더라도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과정이 아무리 괴로워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굳세게 믿고 기도하고 찬미하며 인내하십시오. 한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 참고 계속 참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모르는 사이에 꿈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는 목회자들에게 늘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큰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제가 늘 먼저 말하는 것은 “큰 꿈을 가지십시오. 목표를 크게 가지고 꿈을 크게 가지시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꿈을 가지면 가질수록 굉장한 많은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목회상에 괴로움과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을 견뎌내고 나면 나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가 자라고 하나님 나라가 왕성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 교회가 자랐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생을 참는다고 교회가 자라는 것조차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50년 목회하면서 느낀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70만이 넘게 자란 줄 난 몰랐습니다. 꿈은 가졌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가운데 너무나 많은 어려운 고난이 있었으므로 고난과 싸운다고 교회가 자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교회가 자라니까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느냐.” 행복과 기쁨도 몰랐습니다. 고통만 쌓이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견디려고 몸부림치다가 나중에 보니까 교회가 자랐어요. 교회가 자란 것 보니까 은퇴하게 되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면 행복도 하지만 괴로움도 많습니다. 그러나 꿈이 이루어지고 나면 나중에는 참 마음에 잘했다는 생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꿈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으며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하늘에 올라갔을 때 주님이 박수치고 안아주시면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안하고 꿈도 꾸지 않고 평안히 있다가 천국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데 평안히 있는 사람은 꿈도 없고 아무 일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도 없고 칭찬도 없을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도 꿈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반드시 괴로움과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내가 믿었는데 왜 이렇게 괴롭느냐. 내가 믿었는데 왜 이런 고통을 다가오느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고통이 다가오고 믿었기 때문에 시련이 다가옵니다. 요셉은 꿈을 갖지 않았었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그는 꿈을 굳세게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주님조차도 십자가를 통해서 꿈을 이루셨는데 우리에게도 크고 적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낙심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두다 천국 꿈을 마음속에 확실히 가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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