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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50: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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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11. 15. 추수감사주일 4부 설교 |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오늘은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하루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내일부터는 잊어버리면 않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가 우리의 생활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는 창세기부터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지어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있어야 되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그날로 결정이 된 것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11월 겨울철 바람이 부는 대서양을 메이플라워라는 범선을 타고 구사일생으로 미국의 플리머스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미국 개간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한겨울을 지나는 동안에 태반이나 굶주려 죽고 아메리칸 인디언의 공격을 받아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 친한 아메리칸 인디언의 소개를 받고 가르침을 얻어서 곡식을 심어 열심히 일해서 가을에 굉장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기쁨에 넘쳐서 그들은 잔치를 베풀고 또 여러 가지 들짐승을 잡고 인디언들을 청하고 잔치를 베풀어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오늘날 미국의 선교사들이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이와같은 감사 절기를 특별히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감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본론>
1. 감사해야 기쁨과 행복이 있다
감사해야 기쁨과 행복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쁨이나 행복을 말하지만 실제 가슴 찌릿하게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이란 마음에 있는 상념이지 실제로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 안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이 형태가 이루어져 있으나 감사하지 아니하면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음에 있는 것으로 우리는 감사를 하면은 마음이 긍정적이 되고 기쁨과 희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없는 것을 바라봅니다. 내 마음에 없는 것, 내 가정에 없는 것, 내 환경에 없는 것, 그리고 내가 갖지 않은 것 이런 것을 생각하고 없으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있던 행복과 기쁨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긍정적이 되고 기쁨과 희망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있는 것으로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찾지 말고 있는 것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행복과 사랑나누기 운동을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마음속에 절실히 느끼는 것은 전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구자들을 바라볼 때 그들은 다리도 못쓰고 팔도 못 쓰는 사람들도 있고 또 사지를 다 못 쓰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 없이 웃고 즐거워한다 말입니다. 나는 그들을 비교할 때 있을 것 다 있고 가질 것 다 가졌는데 내가 불행하면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되고 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들을 바라볼 때 저렇게 아무것도 없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이렇게 건강과 사지백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감사하고 기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 죄책감을 항상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시작하면 점점 있는 것이 눈에 보이고 불평과 원망하면 있는 것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로 8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있으면 자꾸 더 주어서 더 많아지게 되고 없다고 하면은 있는 것조차 빼앗기고 자꾸 없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꾸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되고 있다는 말을 해야 되고 있다는 행동을 해서 자꾸 더 모여들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없다고 원망, 불평, 탄식하면 있는 것도 빼앗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다른 삶의 법칙인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행복하면 주위를 밝게 하여 평안하게 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지 않으니까요. 부모, 형제, 자녀, 친구, 다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를 밝고 맑고 환하게 해서 내 한사람 때문에 슬픔이 사라지고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명랑하고 화평하고 즐겁게 된다면 얼마나 플러스가 되고 좋습니까? 그래서 환경을 밝게 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기쁨과 행복해야 행복과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마음에 평강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오면 문밖에 나오자마자 불평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드리고 나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죠. 그래야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얻지요. 즐거움을 하나님이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있는 것을 감사하고 없는 것을 드러내서 불평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2. 불평을 하면 불행이 온다
없는 것을 헤아리고 불평하면 마음이 부정적이 되고 원망과 불평과 불행이 찾아옵니다.
마음이 부정적인 곳에 긍정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이 부정적이 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원망스럽고 불평스럽고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원망은 내가 했는데 멸망시키는 사람들이 와서 그를 멸망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이 보통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망을 하기 때문에 원망한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재앙이 다가와요. 요사이 이렇게 독한 바이러스 감기가 돌아다녀도 아직 우리 성도들은 크게 독한 감기에 걸려서 죽었다는 사람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보다 더 예수님을 더 생각하고 있으니까 바이러스가 들어올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즐거워 산다면 바이러스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음지의 세력이요 부정적인 세력이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훼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것을 헤아리고 불평을 말하면 주위를 어둡게 하여 가족과 이웃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만 불행하면 좋은데 가족과 이웃을 다 불행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시편 37편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고 불평하지 말아야 악이 만들어지지 않지 그렇지 않으면 악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이무라 가즈오씨는 일본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오사까의 한 병원 내과 의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섬유육종 암으로 오른 편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한 다리를 잘라낸 후에 초인적인 인내로 의사의 사명을 다하다가 암이 폐로 전이하여 31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기록한 편지와 글이 “종이학”이란 책으로 출판되어 대 베스트셀러가 된 것입니다. 종이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글을 영화로 만들어져 일본 열도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가보다!” 이와 같은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이 글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것에 사람들은 왜 감사할 줄 모를까?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고 손을 뻗어 무엇을 잡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
소리가 들린다는 것,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이것보다 더 멋지고 감사한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이 아름답고 귀한 것에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거야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 세 끼 밥 먹고, 밤이 오면 잠자고, 다음 날 아침을 맞는다는 것
웃고, 울고, 노래하고, 소리치고, 뛰어 다닌다는 것
산을 오르고, 바닷가를 거닌다는 것
온갖 자연의 멋지고 아름다운 것에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는 것 너무나 희안한 일이 아닌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소중한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 걸 아는 사람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려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고 손을 털어 버리고 난 다음에야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 한분이 제게 와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상처를 하셨는데 권사님이 세상을 뜨셨습니다. 살아 계셨을 동안에는 장로님이 권사님하고 그렇게 아긋자긋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권사님이 내 심방할 때 따라 다녔기 때문에 내가 잘 알지요. 권사님이 장로님 이야기를 별로 안하셔요. 절대로 집안일을 말씀 안하십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세상을 뜨시고 난 다음 장로님이 제게 말씀하기를 “목사님, 마누라 있을 때는 밉상스럽고 보기 싫고 불평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런데 마누라가 죽고 난 다음에 너무나 있던 사람이 없으니 허전해지므로 지금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고 짜증을 하고 고통을 주더라도 그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때가 늦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때가 늦고 난 다음에 깨닫는 것입니다. 있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없어져야 그 안타까움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장로님의 말을 듣고 난 다음에 “나는 저런 후회를 안해야 되겠지.” 언어심사 행동을 달라진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주위를 곰곰이 살펴보면 감사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많은 것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있는 것이 어떻게 당연합니까? 자식이 있는 것이 기적이고 희안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삶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정적이 되며 원망과 불평을 하면 우리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불행하게 합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탄하고 탄복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 얼마 안있으면 우리에게서 떠나갈 것입니다. 하나도 영원히 우리에게 남아있을 것은 없습니다. 오늘 잃어버릴지 내일 잃어버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마음에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3.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품고 삽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현재의 삶을 살펴서 있는 것을 감사하고 미래에 다가올 복을 기대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에 그렇게 마음에 결정을 하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박대를 받고 구박을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생각하지 말고 부모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영국으로 부흥회 할 때 영국으로 어린 아이때 입양되어 가서 자란 한국 소녀가 파리로 찾아와서 나에게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면서 자기 부모를 좀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묻기를 “어릴 때 당신을 필요 없다고 외국인에게 입양시킨 부모를 지금 찾아서 뭘 하겠느냐?” “목사님은 내 처지가 안되니 모릅니다. 나를 싫다고 버렸을지라도 내가 오늘 성년이 되어서 사는데 부모를 모르니까 뿌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정체성이 없습니다. 분명히 몸은 한국 여자인데 국적은 블란서고 현재 살기는 영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블란서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닙니다. 마음에 혼돈이 굉장히 많습니다. 좌우간 미워도 좋아도 우리 부모가 누군지 한번 만나보고 내 뿌리를 확인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뿌리를 찾아 주십시오.” 나는 거기서 깜짝 놀랐습니다. ‘야! 미워도 부모는 부모로구나.’ 미워도 부모는 부모로써 감사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많지 않습니까? 어릴 때로부터 시작해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그 옛날 어릴 때 부를 때 그냥 노래로 불렀는데 나이가 먹어서 오늘날 그 노래를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에 굉장히 감동이 옵니다. 정말이에요. 어릴 때 자랄 때 보면은 어머님이 동생이 밤에 자다가 오줌을 싸면 그때는 물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동생을 어머니 자는 포도포살자리로 옮기고 어린 아기가 오줌을 눠서 축축한 자리에 삿바를 깔고 그 위에 어머니가 누워서 주무십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서 눕히는 것입니다.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를 하십니다. 정말로 날이 갈수록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이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었으면 오늘 우리가 숨 쉬고 살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은혜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글쓰기를 배웠고 읽기를 배웠고 오늘날까지 지식을 얻어 왔는데 이것을 도와준 이는 선생님이십니다. 초등학교에 가서 ㄱ,ㄴ,가,갸,거,겨.. 배운 것도 선생님의 도우심으로 배웠습니다. 이제 생각하지 선생님의 도움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우리는 6.25사변에 교실에서 공부 못하고 산과 들에 거적대기를 들고 다니고 칠판을 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했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 가운데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를 가르쳐 주셨으니 오늘날 이만한 지식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와 이웃의 도와준 은혜를 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도움받은 것을 무심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형제와 이웃이 무엇 때문에 나를 도와줍니까? 나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와 이웃이 나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관심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사랑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얼마나 무례하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감사를 하면 더 내 마음속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결심을 해야 돼요.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일에 감사해라.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안 좋은 것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다. 그러므로 항상 좋다. 감사하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평안하고 좋겠습니까?
20세기 후반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뇌에 대해서도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여 많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발견 중 하나가 인간의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뇌에 대한 발명중에 놀라운 것은 말이 모든 다른 신경을 다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중추신경이 가장 중요하다. 성경은 네 입의 말로 죽고 산다고 말했고 네 입술의 말이 너를 지배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오늘날 과학적으로 이것이 검증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라는 말을 하면 우리의 뇌는 감사에 해당되는 많은 자료들을 끌어내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라는 말은 우리 신체 면역체계를 강화하여 감사를 일명 “감사약”이라고도 합니다. 아, 그러니까 우리 교회에 사람들이 감기가 안 걸리지요. 감기약을 먹고 있으니까. 매일 같이 감사약을 먹고 있으니까. 우리가 1분간 웃으면 우리 신체는 24시간의 면역체가 생기고, 1분간 화를 내면 6시간의 면역체가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1분만 웃으면 24시간 면역체가 몸에 들어와서 면역이 되어서 균이 못들어 오는 거에요. 그러나 1시간 화를 내면 6시간 동안 면역체가 떨어져서 병이 걸리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깔깔대고 웃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한국에 자매님들은 잘 웃어요. 잘 웃기 때문에 우리 한국 자매님들이 건강하지요. 남자들은 괜히 후리 세운다고 성을 버럭버럭 내다가 병투성이가 되고... 나는 오늘 아침에도 와서 자리에 앉아서 내려다 보면서 야~ 이렇게 언발란스가 있느냐. 천국 인구에 하나님 이렇게 언발란스입니까? 천당에 올라가면 인구의 ⅔는 여자들이고 ⅓만 남자들.. 결국 여자들이 명랑하고 마음이 밝고 맑고 환하고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괜히 권위와 위엄을 세우고 마음이 우울하고 강하지 못하고 오래 살지도 못하고 빨리 죽어버리고 맙니다. 어쩌다가 여자가 다 될 수 있는지 몰라. 나도 여자 한번 되어봤으면 좋겠어요. 보통 훌륭한 특권이 아니에요. 감사의 말을 하면 실제로 심장박동이 규칙적이고 주기적으로 뛰어 심혈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립대 로버트 에몬스 교수는 “매일 또는 매주 5개씩 고마웠던 것을 글로 쓰게 했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해 보니, 전자가 후자에 비해 더욱 건강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매일 또는 매주 5개씩만 쓰면 그 사람은 그 것을 안 쓰는 사람보다 더욱 건강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고, 우리 몸은 더욱 튼튼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감사할 때 그 말을 듣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주어 주위를 밝게 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행복을 위해서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내 주위를 밝고 맑고 환하게 만들기 위해서 결심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써 큰 은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만물을 바라보고 감사를 해야지요. 빛을 만드시고, 궁창을 만드시고, 바다를 만드시고, 땅과 식물을 만드시고, 해와 달, 별, 새 물고기, 동물, 사람. 큰 일을 하신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늘 감사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36편 4절로 9절에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지어 놓고 난 다음 그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할 때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를 위해서 구속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께 대해서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전수된 죄와 우리 자범죄가 한없이 많아 죄덩어리인데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즐겁게 바쳐 주신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일이 있습니까? 소설 속에나 있을 일이지 실제로 있을 수가 없는 것 같은데 실제로 일어났거든요.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사를 넘치게 하는 도리밖에 없어요.
일을 행하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렇게 말하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 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비밀한 길로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감사해야죠. 앉아도 감사하고 서도 감사하고 찬양하고 이것이 우리 생활에 습관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로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로 지나가는데 나병환자 10명이 고함을 쳤습니다. 멀리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 그래서 열 사람이 그 말을 듣고 가다가 보니 병이 깨끗이 나았거든요. 다 놀라서 고함을 치고 즐거워하며 그냥 제사장에게로 갔는데 그 중에 사마리아인 한명이 고함을 치며 오던길로 뛰어와서 예수님께서 와서 “주님, 주님 말씀듣고 가다가 보니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10명이 나았는데 사마리아인 너만 와서 내게 감사를 하느냐?” 그렇게 말했었어요. 오늘날 10명이 은혜를 받으면 9명은 잊어 버리고 그중에 1명만 와서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잊어버려도 좋지요. 대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원수를 돌리지, 은혜를 전혀 안받은 사람은 원수 갚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은혜 받고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원수로 갚습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무슨 원수를 갚습니까? 그러므로 은혜 베푼다는 것도 참 힘듭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원수를 갚지요. 아무것도 받지 않은 사람은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참 비열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지 오히려 은혜를 더 계속 안준다고 원수로 갚는 것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께도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우리 주님께 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그리고 늘 모르고 살았는데 우연히 어떤 날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한번 따라 읽어 보십시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러분 갑자기 여러분 옆에 누가 있는 것 모릅니까? 하나님이 보혜사를 보내주사 영원토록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예수 믿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날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같이 계신다.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어릴 때 젊을 때 늙을 때 없이 같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나와 영원토록 같이 계셨어요. 그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보헤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나를 돕는 분이라고 했는데 나를 돕는 하나님이 영원토록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함께 계세요. 돕는 자가 옆에 계시니 어려운 일 있으면 도움을 청해야 되지 않습니까? 성령님이여 나를 도와주소서. 저는 이 강단에 올라올 때 항상 말합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서 설교하게 해주십시오. 50년 동안 나를 도와주셨는데 오늘도 도와주십시오. 성령님이 도와주시니 아니하시면 나는 무능력해서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도와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고 말씀을 증거하면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집안일을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을 돕는자가 옆에 와 계십니다. 도움을 청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6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야~ 이것 대단한 일입니다. 조용기 목사 기도만 받겠다고 온갖 빽을 다 써서 내게 편지가 올라오는데 조용기 목사는 먼지와 티끌도 견주어서 될 수 없는 위대한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위해서 곁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이 도우시면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러므로 항상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옆에 내가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따라 다니신다. 그러니 성령님을 모시고 나쁜 곳에 가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성령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부끄럽게 생각하겠습니까? 성령님을 모시고 좋은 일을 하면 성령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같이 계십니다. 성령이 우리의 증인이 되시고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모든 것을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감사 제사 어렵지 않잖아요.
냉수 한 그릇 떠놓고 감사하라는 것 아닙니다. 빈손 들고라도 아침 자고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감사하면 감사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감사해도 감사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로 5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께 어떻게 대궐에 들어가며 하나님 문 앞에 어떻게 설 수 있느냐. 감사하면 하나님 계신 집 대궐 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면 그의 궁전에 들어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대궐 문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서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을 많이 하는 개인의 신앙과 감사와 찬송을 많이 하는 교회는 주님이 언제나 임재하여 계신 것입니다.
<결론>
감사의 씨앗을 심어야 감사가 열매를 맺지요. 스펄전 목사는 말하기를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주님께서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었습니다. 감사하면 자꾸 레벨이 높아져요. 작은 것을 보고 감사하면 더 큰 것 주시고 더 큰 것 주시면 더 큰 것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보라 노빌이 쓴「감사의 힘」에서 그는 우리가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가슴이 움직여 기쁨을 느끼게 되는 시간은 0.3초라고 말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면 마음이 0.3초 동안에 잠깐 기뻐진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0.3초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데보라 노빌은 이 책에서“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이 우리 인생 전체를 바꿀만한 강력한 힘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이 말은 각 개인이 지닌 잠재력을 끌어 올리는 비밀 열쇠라고 주장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도 우리는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할 때, 역경에서 더욱 빨리 회복되고 고난에 대한 면역력이 길러져 장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을 위한 키워드이며, 우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에너지로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감사의 위대한 힘을 느껴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나라말에서 부모들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때,“엄마, 아빠”라는 말을 제일 먼저 가르치고 그 다음에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사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감사의 씨앗을 심을 때 더욱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살아가면서 맺을 수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감사를 생활화 할 때 더욱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원해서라도 감사하고 찬송하고 억지로라도 감사하고 찬양을 하십시다. 감사하기 싫을 때 감사하는 것이 제사인 것입니다. 제사는 희생이니까. 모든 것이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 감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감사하지 않을 때 감사하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제사는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어둡고 서러운 날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헤치고 즐겁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일회적 사건입니다. 다시 되살아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에 항상 해야 될 것은 좋을 때는 좋아서 좋고 어려울 때는 좋아질 것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같이 계시기 때문에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증거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해서는 다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고개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합니다.
가시와 엉겅퀴 속에 살면서 몸부림을 치고 피흘림을 갖고 물고 찢고 싸우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환경이 기름지고 살찌고 주의 임재로 넘치게 되고 행복이 넘치게 되어야 우리 모두가 다 변화 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따라 오늘부터 억지로라도 감사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오늘은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하루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내일부터는 잊어버리면 않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가 우리의 생활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는 창세기부터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지어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있어야 되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그날로 결정이 된 것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11월 겨울철 바람이 부는 대서양을 메이플라워라는 범선을 타고 구사일생으로 미국의 플리머스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미국 개간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한겨울을 지나는 동안에 태반이나 굶주려 죽고 아메리칸 인디언의 공격을 받아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 친한 아메리칸 인디언의 소개를 받고 가르침을 얻어서 곡식을 심어 열심히 일해서 가을에 굉장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기쁨에 넘쳐서 그들은 잔치를 베풀고 또 여러 가지 들짐승을 잡고 인디언들을 청하고 잔치를 베풀어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오늘날 미국의 선교사들이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이와같은 감사 절기를 특별히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감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본론>
1. 감사해야 기쁨과 행복이 있다
감사해야 기쁨과 행복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쁨이나 행복을 말하지만 실제 가슴 찌릿하게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이란 마음에 있는 상념이지 실제로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 안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이 형태가 이루어져 있으나 감사하지 아니하면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음에 있는 것으로 우리는 감사를 하면은 마음이 긍정적이 되고 기쁨과 희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없는 것을 바라봅니다. 내 마음에 없는 것, 내 가정에 없는 것, 내 환경에 없는 것, 그리고 내가 갖지 않은 것 이런 것을 생각하고 없으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있던 행복과 기쁨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긍정적이 되고 기쁨과 희망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있는 것으로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찾지 말고 있는 것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행복과 사랑나누기 운동을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마음속에 절실히 느끼는 것은 전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구자들을 바라볼 때 그들은 다리도 못쓰고 팔도 못 쓰는 사람들도 있고 또 사지를 다 못 쓰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 없이 웃고 즐거워한다 말입니다. 나는 그들을 비교할 때 있을 것 다 있고 가질 것 다 가졌는데 내가 불행하면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되고 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들을 바라볼 때 저렇게 아무것도 없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이렇게 건강과 사지백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감사하고 기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 죄책감을 항상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시작하면 점점 있는 것이 눈에 보이고 불평과 원망하면 있는 것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로 8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있으면 자꾸 더 주어서 더 많아지게 되고 없다고 하면은 있는 것조차 빼앗기고 자꾸 없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꾸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되고 있다는 말을 해야 되고 있다는 행동을 해서 자꾸 더 모여들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없다고 원망, 불평, 탄식하면 있는 것도 빼앗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다른 삶의 법칙인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행복하면 주위를 밝게 하여 평안하게 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지 않으니까요. 부모, 형제, 자녀, 친구, 다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를 밝고 맑고 환하게 해서 내 한사람 때문에 슬픔이 사라지고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명랑하고 화평하고 즐겁게 된다면 얼마나 플러스가 되고 좋습니까? 그래서 환경을 밝게 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기쁨과 행복해야 행복과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마음에 평강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오면 문밖에 나오자마자 불평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드리고 나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죠. 그래야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얻지요. 즐거움을 하나님이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있는 것을 감사하고 없는 것을 드러내서 불평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2. 불평을 하면 불행이 온다
없는 것을 헤아리고 불평하면 마음이 부정적이 되고 원망과 불평과 불행이 찾아옵니다.
마음이 부정적인 곳에 긍정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이 부정적이 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원망스럽고 불평스럽고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원망은 내가 했는데 멸망시키는 사람들이 와서 그를 멸망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이 보통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망을 하기 때문에 원망한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재앙이 다가와요. 요사이 이렇게 독한 바이러스 감기가 돌아다녀도 아직 우리 성도들은 크게 독한 감기에 걸려서 죽었다는 사람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보다 더 예수님을 더 생각하고 있으니까 바이러스가 들어올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즐거워 산다면 바이러스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음지의 세력이요 부정적인 세력이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훼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것을 헤아리고 불평을 말하면 주위를 어둡게 하여 가족과 이웃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만 불행하면 좋은데 가족과 이웃을 다 불행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시편 37편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고 불평하지 말아야 악이 만들어지지 않지 그렇지 않으면 악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이무라 가즈오씨는 일본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오사까의 한 병원 내과 의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섬유육종 암으로 오른 편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한 다리를 잘라낸 후에 초인적인 인내로 의사의 사명을 다하다가 암이 폐로 전이하여 31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기록한 편지와 글이 “종이학”이란 책으로 출판되어 대 베스트셀러가 된 것입니다. 종이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글을 영화로 만들어져 일본 열도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가보다!” 이와 같은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이 글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것에 사람들은 왜 감사할 줄 모를까?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고 손을 뻗어 무엇을 잡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
소리가 들린다는 것,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이것보다 더 멋지고 감사한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이 아름답고 귀한 것에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거야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 세 끼 밥 먹고, 밤이 오면 잠자고, 다음 날 아침을 맞는다는 것
웃고, 울고, 노래하고, 소리치고, 뛰어 다닌다는 것
산을 오르고, 바닷가를 거닌다는 것
온갖 자연의 멋지고 아름다운 것에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는 것 너무나 희안한 일이 아닌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소중한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 걸 아는 사람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려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고 손을 털어 버리고 난 다음에야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 한분이 제게 와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상처를 하셨는데 권사님이 세상을 뜨셨습니다. 살아 계셨을 동안에는 장로님이 권사님하고 그렇게 아긋자긋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권사님이 내 심방할 때 따라 다녔기 때문에 내가 잘 알지요. 권사님이 장로님 이야기를 별로 안하셔요. 절대로 집안일을 말씀 안하십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세상을 뜨시고 난 다음 장로님이 제게 말씀하기를 “목사님, 마누라 있을 때는 밉상스럽고 보기 싫고 불평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런데 마누라가 죽고 난 다음에 너무나 있던 사람이 없으니 허전해지므로 지금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고 짜증을 하고 고통을 주더라도 그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때가 늦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때가 늦고 난 다음에 깨닫는 것입니다. 있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없어져야 그 안타까움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장로님의 말을 듣고 난 다음에 “나는 저런 후회를 안해야 되겠지.” 언어심사 행동을 달라진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주위를 곰곰이 살펴보면 감사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많은 것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있는 것이 어떻게 당연합니까? 자식이 있는 것이 기적이고 희안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삶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정적이 되며 원망과 불평을 하면 우리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불행하게 합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탄하고 탄복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 얼마 안있으면 우리에게서 떠나갈 것입니다. 하나도 영원히 우리에게 남아있을 것은 없습니다. 오늘 잃어버릴지 내일 잃어버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마음에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3.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품고 삽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현재의 삶을 살펴서 있는 것을 감사하고 미래에 다가올 복을 기대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에 그렇게 마음에 결정을 하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박대를 받고 구박을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생각하지 말고 부모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영국으로 부흥회 할 때 영국으로 어린 아이때 입양되어 가서 자란 한국 소녀가 파리로 찾아와서 나에게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면서 자기 부모를 좀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묻기를 “어릴 때 당신을 필요 없다고 외국인에게 입양시킨 부모를 지금 찾아서 뭘 하겠느냐?” “목사님은 내 처지가 안되니 모릅니다. 나를 싫다고 버렸을지라도 내가 오늘 성년이 되어서 사는데 부모를 모르니까 뿌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정체성이 없습니다. 분명히 몸은 한국 여자인데 국적은 블란서고 현재 살기는 영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블란서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닙니다. 마음에 혼돈이 굉장히 많습니다. 좌우간 미워도 좋아도 우리 부모가 누군지 한번 만나보고 내 뿌리를 확인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뿌리를 찾아 주십시오.” 나는 거기서 깜짝 놀랐습니다. ‘야! 미워도 부모는 부모로구나.’ 미워도 부모는 부모로써 감사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많지 않습니까? 어릴 때로부터 시작해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그 옛날 어릴 때 부를 때 그냥 노래로 불렀는데 나이가 먹어서 오늘날 그 노래를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에 굉장히 감동이 옵니다. 정말이에요. 어릴 때 자랄 때 보면은 어머님이 동생이 밤에 자다가 오줌을 싸면 그때는 물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동생을 어머니 자는 포도포살자리로 옮기고 어린 아기가 오줌을 눠서 축축한 자리에 삿바를 깔고 그 위에 어머니가 누워서 주무십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서 눕히는 것입니다.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를 하십니다. 정말로 날이 갈수록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이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었으면 오늘 우리가 숨 쉬고 살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은혜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글쓰기를 배웠고 읽기를 배웠고 오늘날까지 지식을 얻어 왔는데 이것을 도와준 이는 선생님이십니다. 초등학교에 가서 ㄱ,ㄴ,가,갸,거,겨.. 배운 것도 선생님의 도우심으로 배웠습니다. 이제 생각하지 선생님의 도움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우리는 6.25사변에 교실에서 공부 못하고 산과 들에 거적대기를 들고 다니고 칠판을 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했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 가운데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를 가르쳐 주셨으니 오늘날 이만한 지식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와 이웃의 도와준 은혜를 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도움받은 것을 무심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형제와 이웃이 무엇 때문에 나를 도와줍니까? 나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와 이웃이 나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관심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사랑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얼마나 무례하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감사를 하면 더 내 마음속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결심을 해야 돼요.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일에 감사해라.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안 좋은 것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다. 그러므로 항상 좋다. 감사하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평안하고 좋겠습니까?
20세기 후반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뇌에 대해서도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여 많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발견 중 하나가 인간의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뇌에 대한 발명중에 놀라운 것은 말이 모든 다른 신경을 다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중추신경이 가장 중요하다. 성경은 네 입의 말로 죽고 산다고 말했고 네 입술의 말이 너를 지배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오늘날 과학적으로 이것이 검증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라는 말을 하면 우리의 뇌는 감사에 해당되는 많은 자료들을 끌어내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라는 말은 우리 신체 면역체계를 강화하여 감사를 일명 “감사약”이라고도 합니다. 아, 그러니까 우리 교회에 사람들이 감기가 안 걸리지요. 감기약을 먹고 있으니까. 매일 같이 감사약을 먹고 있으니까. 우리가 1분간 웃으면 우리 신체는 24시간의 면역체가 생기고, 1분간 화를 내면 6시간의 면역체가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1분만 웃으면 24시간 면역체가 몸에 들어와서 면역이 되어서 균이 못들어 오는 거에요. 그러나 1시간 화를 내면 6시간 동안 면역체가 떨어져서 병이 걸리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깔깔대고 웃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한국에 자매님들은 잘 웃어요. 잘 웃기 때문에 우리 한국 자매님들이 건강하지요. 남자들은 괜히 후리 세운다고 성을 버럭버럭 내다가 병투성이가 되고... 나는 오늘 아침에도 와서 자리에 앉아서 내려다 보면서 야~ 이렇게 언발란스가 있느냐. 천국 인구에 하나님 이렇게 언발란스입니까? 천당에 올라가면 인구의 ⅔는 여자들이고 ⅓만 남자들.. 결국 여자들이 명랑하고 마음이 밝고 맑고 환하고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괜히 권위와 위엄을 세우고 마음이 우울하고 강하지 못하고 오래 살지도 못하고 빨리 죽어버리고 맙니다. 어쩌다가 여자가 다 될 수 있는지 몰라. 나도 여자 한번 되어봤으면 좋겠어요. 보통 훌륭한 특권이 아니에요. 감사의 말을 하면 실제로 심장박동이 규칙적이고 주기적으로 뛰어 심혈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립대 로버트 에몬스 교수는 “매일 또는 매주 5개씩 고마웠던 것을 글로 쓰게 했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해 보니, 전자가 후자에 비해 더욱 건강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매일 또는 매주 5개씩만 쓰면 그 사람은 그 것을 안 쓰는 사람보다 더욱 건강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고, 우리 몸은 더욱 튼튼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감사할 때 그 말을 듣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주어 주위를 밝게 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행복을 위해서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내 주위를 밝고 맑고 환하게 만들기 위해서 결심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써 큰 은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만물을 바라보고 감사를 해야지요. 빛을 만드시고, 궁창을 만드시고, 바다를 만드시고, 땅과 식물을 만드시고, 해와 달, 별, 새 물고기, 동물, 사람. 큰 일을 하신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늘 감사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36편 4절로 9절에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지어 놓고 난 다음 그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할 때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를 위해서 구속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께 대해서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전수된 죄와 우리 자범죄가 한없이 많아 죄덩어리인데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즐겁게 바쳐 주신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일이 있습니까? 소설 속에나 있을 일이지 실제로 있을 수가 없는 것 같은데 실제로 일어났거든요.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사를 넘치게 하는 도리밖에 없어요.
일을 행하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렇게 말하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 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비밀한 길로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감사해야죠. 앉아도 감사하고 서도 감사하고 찬양하고 이것이 우리 생활에 습관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로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로 지나가는데 나병환자 10명이 고함을 쳤습니다. 멀리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 그래서 열 사람이 그 말을 듣고 가다가 보니 병이 깨끗이 나았거든요. 다 놀라서 고함을 치고 즐거워하며 그냥 제사장에게로 갔는데 그 중에 사마리아인 한명이 고함을 치며 오던길로 뛰어와서 예수님께서 와서 “주님, 주님 말씀듣고 가다가 보니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10명이 나았는데 사마리아인 너만 와서 내게 감사를 하느냐?” 그렇게 말했었어요. 오늘날 10명이 은혜를 받으면 9명은 잊어 버리고 그중에 1명만 와서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잊어버려도 좋지요. 대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원수를 돌리지, 은혜를 전혀 안받은 사람은 원수 갚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은혜 받고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원수로 갚습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무슨 원수를 갚습니까? 그러므로 은혜 베푼다는 것도 참 힘듭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원수를 갚지요. 아무것도 받지 않은 사람은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참 비열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지 오히려 은혜를 더 계속 안준다고 원수로 갚는 것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께도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우리 주님께 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그리고 늘 모르고 살았는데 우연히 어떤 날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한번 따라 읽어 보십시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러분 갑자기 여러분 옆에 누가 있는 것 모릅니까? 하나님이 보혜사를 보내주사 영원토록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예수 믿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날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같이 계신다.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어릴 때 젊을 때 늙을 때 없이 같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나와 영원토록 같이 계셨어요. 그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보헤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나를 돕는 분이라고 했는데 나를 돕는 하나님이 영원토록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함께 계세요. 돕는 자가 옆에 계시니 어려운 일 있으면 도움을 청해야 되지 않습니까? 성령님이여 나를 도와주소서. 저는 이 강단에 올라올 때 항상 말합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서 설교하게 해주십시오. 50년 동안 나를 도와주셨는데 오늘도 도와주십시오. 성령님이 도와주시니 아니하시면 나는 무능력해서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도와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고 말씀을 증거하면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집안일을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을 돕는자가 옆에 와 계십니다. 도움을 청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6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야~ 이것 대단한 일입니다. 조용기 목사 기도만 받겠다고 온갖 빽을 다 써서 내게 편지가 올라오는데 조용기 목사는 먼지와 티끌도 견주어서 될 수 없는 위대한 성령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위해서 곁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이 도우시면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러므로 항상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옆에 내가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따라 다니신다. 그러니 성령님을 모시고 나쁜 곳에 가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성령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부끄럽게 생각하겠습니까? 성령님을 모시고 좋은 일을 하면 성령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같이 계십니다. 성령이 우리의 증인이 되시고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모든 것을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감사 제사 어렵지 않잖아요.
냉수 한 그릇 떠놓고 감사하라는 것 아닙니다. 빈손 들고라도 아침 자고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감사하면 감사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감사해도 감사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로 5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께 어떻게 대궐에 들어가며 하나님 문 앞에 어떻게 설 수 있느냐. 감사하면 하나님 계신 집 대궐 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면 그의 궁전에 들어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대궐 문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서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을 많이 하는 개인의 신앙과 감사와 찬송을 많이 하는 교회는 주님이 언제나 임재하여 계신 것입니다.
<결론>
감사의 씨앗을 심어야 감사가 열매를 맺지요. 스펄전 목사는 말하기를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주님께서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었습니다. 감사하면 자꾸 레벨이 높아져요. 작은 것을 보고 감사하면 더 큰 것 주시고 더 큰 것 주시면 더 큰 것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보라 노빌이 쓴「감사의 힘」에서 그는 우리가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가슴이 움직여 기쁨을 느끼게 되는 시간은 0.3초라고 말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면 마음이 0.3초 동안에 잠깐 기뻐진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0.3초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데보라 노빌은 이 책에서“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이 우리 인생 전체를 바꿀만한 강력한 힘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이 말은 각 개인이 지닌 잠재력을 끌어 올리는 비밀 열쇠라고 주장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도 우리는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할 때, 역경에서 더욱 빨리 회복되고 고난에 대한 면역력이 길러져 장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을 위한 키워드이며, 우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에너지로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감사의 위대한 힘을 느껴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나라말에서 부모들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때,“엄마, 아빠”라는 말을 제일 먼저 가르치고 그 다음에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사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감사의 씨앗을 심을 때 더욱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살아가면서 맺을 수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감사를 생활화 할 때 더욱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원해서라도 감사하고 찬송하고 억지로라도 감사하고 찬양을 하십시다. 감사하기 싫을 때 감사하는 것이 제사인 것입니다. 제사는 희생이니까. 모든 것이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 감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감사하지 않을 때 감사하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제사는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어둡고 서러운 날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헤치고 즐겁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일회적 사건입니다. 다시 되살아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에 항상 해야 될 것은 좋을 때는 좋아서 좋고 어려울 때는 좋아질 것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같이 계시기 때문에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증거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해서는 다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고개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합니다.
가시와 엉겅퀴 속에 살면서 몸부림을 치고 피흘림을 갖고 물고 찢고 싸우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환경이 기름지고 살찌고 주의 임재로 넘치게 되고 행복이 넘치게 되어야 우리 모두가 다 변화 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따라 오늘부터 억지로라도 감사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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