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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살전5: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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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4·11·21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감정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그 감정에 따라 삶의 대부분이 좌우됩니다. 우리의 감정은 대개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잘되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분위기가 좋은 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런 환경들과 거기서 느끼는 감정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면 화가 나고, 슬픈 일과 어려운 일을 당하면 불행해집니다. 사람은 이렇게 주위의 환경과 거기서 느끼는 감정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외부의 환경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에 따라 우리의 삶이 좌우됩니다. 그러나 감정에 따라 좌우되는 사람일수록 미숙한 사람입니다. 보다 성숙된 사람은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 … 감정은 외부의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외부의 환경에 관계없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정에 따라 좌우되지 말고 감정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감정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좌우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정을 다스린다면 우리의 삶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어떤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복음을 전함으로 세워졌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약 3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핍박했기 때문에 베뢰아로 피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 일행을 핍박했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와서 핍박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렇게 핍박이 심한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이 교회는 설립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그러한 핍박을 이겨내고 믿음에 굳게 서갔으며, 아름답고 성숙된 신앙을 나타냈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살전1:2-3) 이러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은 그 소문이 널리 퍼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1:7-8) 사도 바울은 그들이 핍박을 이기고 이렇게 믿음을 지키며 자라간 것에 대해서 매우 감사했으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살후1:3-4) 오늘 우리도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믿음에 굳게 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
그러나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외부적인 핍박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핍박이 끊임없이 계속되면 견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잘못된 종말관 때문에 낙심하며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면서,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염려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4:13) 이러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핍박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했으며, 종말에 관한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금년 한 해는 참 어려운 해였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했으며,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는데 올해도 여전히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금년에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우리가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가 형통할 때보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에게 더욱 풍성하게 임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뜨겁고 풍성한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이번 감사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때가 있고, 감사할 수 없는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환경과 일들이 형통할 때는 감사할 수 있고 어려울 때는 감사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느껴지는 대로 감사하거나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의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감사의 원천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해야 할 이유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한결같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돌보시고 인도하시 때문입니다. 변함없는 진리가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게 할 때 우리는 상황이나 분위기에 관계없이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안에서 진리에 따라서 감사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란 무엇인가?
감사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고맙게 받아야 할 선물로 산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7)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우리는 본래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렇게 빈손으로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호흡과 공기와 물과 땅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힘과 기회를 주셨고, 수고에 대한 열매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와 은혜로운 교회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서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무조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면 감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면 언제,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며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을 너무 무심하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감사하지도 못하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쉽게 낙심하고 염려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려고 애써보십시오. 마음이 뜨거워지고 평안해지며 담대해질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바로 이것,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함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들, 힘든 일을 만날 때는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런 때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힘들 때보다 하나님을 만나기가 더 좋은 때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엄한 부모님 밑에서 많은 형제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께 응석을 별로 부려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심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은 먼 동네로 심방을 가셨고, 집에는 형들과 누나들만 있었습니다. 형들과 누나들은 내가 아프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밤에 되어서 돌아오신 부모님들은 저를 보시더니 두 분이서 저에게 매달려 온 몸을 주물러 주시면서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완전히 다 나았습니다. 몸이 많이 아팠지만 평소에는 생각해볼 수도 없었던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힘든 일을 만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든 일을 당할 때가 바로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특별히 만나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 당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특별히 찾아오셔서 특별하신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든 일을 만날 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셔서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풍성하신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 힘든 일을 이기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 힘든 일 때문에 큰 축복이 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강력한 은혜를 체험할 때 우리가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힘든 일을 당할 때 역시 우리가 감사해야 할 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을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큰 사고를 당하여 불구의 몸이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고 때문에 나는 망했다고 생각하며 원망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이 사고는 새로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어떤 일을 이루시려고 하시는 것일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지선이라는 믿음 좋고 아름다운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1978년에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7월 30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승용차로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5퍼센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한 음주 운전자가 낸 6중 추돌사고였습니다. 7개월간의 입원, 11차례의 수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치료 3년을 보내고 더 이상 예전의 곱던 얼굴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는 것은, 살아남는 것은 죽는 것보다 훨씬… 천배 만배는 힘들었습니다. 그 귀한 삶을 동정하지 마십시오. 넘겨짚지도 마시고 오해하지도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세상에 정말 중요하고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절망이 얼마나 사람을 죽이는 것인지, 희망은 얼마나 큰 힘이 있는 것인지,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정말 세상에 부질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녀는 그 고통과 절망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힘들 때에도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네게 희망이 있다'는 하나님 말씀이 들려와 참을 수 있었어요. 분명히 저를 살려주신 섭리가 있으실테니까요." 지금 이지선양은 자신이 겪었던 사고와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은혜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서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고로 자신의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이 있으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명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안심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습니까? 두려워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반드시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시고 아름다운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33:29) 하나님 백성은 누구나 행복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에게는 잘못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가 미련하고 작은 머리로 너무나 쉽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축복도 불행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안전하고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실 때조차도 두려워하며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완전하시며, 나는 연약하고 심히 어리석은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백 번 만 번 옳고 지당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중에도 우리를 가장 선하고 복되게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금년은 정말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 때문에 너무나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주리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뜨겁게 감격하며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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