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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창32:2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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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4·12·18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지켜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결과를 주시든지 감사함으로 받으면 됩니다.
홀로 남은 야곱
이렇게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도움은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와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공격에 대비해서 가족과 소유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에서에게 엄청난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야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에서에게 선물을 보낸 후 뜬 눈으로 밤을 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밤중에 일어나 가족들과 그의 모든 소유를 인도하여 얍복강을 건너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강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아직도 에서를 만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아마도 홀로 남아서 마음도 정리하고 하나님께 더 기도할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야곱은 이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밝혀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씨름했다는 것과 그 씨름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이겼다는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본문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
야곱은 갑자기 나타나 다짜고짜로 자기에게 덤벼든 이 사람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아마도 에서나 라반이 보낸 사람일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야곱은 그 사람이 자기를 제압해서 에서나 라반에게 끌고 가려고 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죽기를 각오하고 이 사람과 싸웠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리 해도 자기가 야곱을 이길 수 없는 것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켰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그 사람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이 싸움이 얼마나 격렬한 싸움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야곱과 씨름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나중에 야곱은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었더라”(30절) 그날 밤에 야곱과 씨름한 사람이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대단히 은혜로운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것도 우리가 알고 상대할 수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와 씨름을 하실 정도로 우리의 모든 문제에 실제적으로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초월자이시면서 동시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와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시고 지극히 위대하시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을 뵐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된다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절감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놀라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시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모습으로 찾아오십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정오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18:1-2상) 그리고 이번에는 야곱에게 찾아오셨는데, 단순히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야곱과 서로 몸을 붙잡고 씨름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 수준으로 낮추셔서 우리를 상대해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우며 은혜로운 일입니까?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똑같이 사셨으며,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셨으며,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쉬지 않고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몇 차례만 그렇게 오신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을 우리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시며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성경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를 구원하고 치료하며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설교는 사람이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은혜입니다. 만일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시내산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려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8-19)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와 똑같은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듣고 있는 설교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줄로 확실히 믿고 겸손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런 자세로 설교를 듣는 성도는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울며 간구한 야곱
야곱은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을 했습니다. 이 씨름은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 씨름에서 누가 이겼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기지 못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25상)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다고 판정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28) 그래서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곱이 이겼다는 어떤 확실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야곱은 이 씨름의 막바지에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했습니다. 승자가 어떻게 패자에게 축복을 간청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씨름이 사실상 기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12:3-4) 그날 밤 야곱은 울면서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물의 간구를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야곱이 씨름을 하다가 눈물로 간구한 것은 지금 자기와 씨름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능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 지금까지 자기를 인도하시며 분에 넘치는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바로 자기와 함께 씨름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야곱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눈물은 단순한 감격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동안 그의 마음속에 맺혔던 한이 터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 깊은 내면의 응어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의 내면에 있는 연약함을 철저히 숨기고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자기의 약점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투사로서 악착같이 인생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그 모든 것을 내어놓고 허물어지면서 통곡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자존심의 벽을 허물고 약점을 드러내놓고 통곡을 한 것입니다. 그의 자아가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내어놓을 수 없다 해도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무엇이나 얼마든지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감추고 시침을 뗍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적나라하게 내어놓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얼마든지 약점을 감추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내놓고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나의 고독과 아픔을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 모든 것을 내놓고 울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풍성하게 힘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와 싸우시는 하나님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에 야곱을 찾아와 그를 붙잡고 이렇게 씨름을 하셨을까요? 도대체 우리가 하나님과 상대가 될 수 있기나 할까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시며 사람은 그분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천사 하나가 수많은 군대를 전멸시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19:35)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싸움 상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찾아와서 그와 씨름을 하셨을까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붙잡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나와 도망쳐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하란으로 도망치는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자, 도망자, 사기꾼이었던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붙잡아주셨습니다. 그날 밤 야곱은 외로운 빈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감격했습니다. 그는 이제부터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란에 도착하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서원했던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란에서의 20년을 자기 맘대로 살았습니다. 야곱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수없이 속여 왔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정말 믿음으로 살겠노라고 다짐한 것이 몇 번입니까? 그런데 지금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을 속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친 사람들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얼마나 기도합니까? 이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정말 믿음으로 살겠다고 얼마나 다짐합니까? 그러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속이는 일인 것입니다.
야곱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수도 없이 속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이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결단을 촉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붙잡고 씨름하셨습니다. 야곱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정말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고비를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연단해오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그의 가장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자아를 깨뜨려야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붙잡고 씨름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우리를 인도해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특히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 묵상하기를 힘쓰십시오. 설교를 통해서 당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앞에서 숨겨왔던 죄가 있습니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픔과 고독과 슬픔이 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다 내어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해결해주십니다. 내 마음 깊숙이 맺혀 있던 것도 내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문제와 아픔과 슬픔과 고독을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 다 쏟아놓고 위로와 참 평안과 새 힘을 얻으십시오. 무엇보다 아직도 깨뜨리지 못한 자아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속이며 도망치지 않기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깨어지고 새로워지는 성도가 되어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하나님을 인정하는 않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야곱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교만이며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기의 주장과 방법을 고집합니다. 여전히 자아가 깨지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지 못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맘껏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자아와 고집을 꺾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밤새도록 그와 씨름하신 것 역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야곱과 씨름하신 하나님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약속하신 대로 야곱과 함께 하시며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많은 아들을 얻었으며, 많은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20년 동안 야곱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려고 하지 않고 늘 속이고 남의 것을 가로채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은 하란에서도 외삼촌의 양들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야곱은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술수를 쓰고 남을 속이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그의 인생은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늘 갈등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그 이후 20년 동안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의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야곱은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란에서 20년을 지내면서 벧엘에서 다짐하고 약속했던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야곱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손을 빠져나가 자기 맘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자아와 고집을 꺾으시기 위해서 야곱을 막다른 길목에 몰아넣으시고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하셨습니다. 그 날 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자아와 불신앙과 고집을 꺾으시고 그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씨름을 걸어오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지 않으며 순종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대로 살며,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내 마음대로 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정말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그 결심과 다짐을 지켜왔습니까?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의 손을 빠져나가서 내 마음대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에게 씨름을 걸어오십니다. 우리의 앞길이 막힐 때, 우리의 삶이 곤고해질 때, 우리에게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생길 때는 대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씨름을 걸어오실 때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십니까?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교만을 버리지 않으며 자아를 꺾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고집과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잘난 맛에 삽니다. 자기가 정말 똑똑한 줄 압니다.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자기 맘대로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내 방식과 주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말 고집이 셉니다. 목사는 무엇 때문에 있는지, 성경은 무엇 때문에 가지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아무도 이러한 우리의 자존심과 자아와 교만을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끝까지 고집하면 올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뜨리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씨름을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일이 내 생각대로 되 않을 때, 내가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할 때, 그렇게 믿었던 일이 어그러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자아가 깨지고 고집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을 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물음은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던지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죄악되고 거짓되고 교활하고 교만한 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을 때 그는 “야곱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뒤꿈치를 잡았다’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은 야곱이 태어날 때 쌍둥이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라는 이름은 약탈자, 사기꾼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 이름처럼 속이고 훔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느라고 늘 긴장과 갈등과 다툼 가운데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 평안하고 감사하며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남을 속이고 훔치며 싸우면서 사느라고 한시도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떤 면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부, 돈, 사회적인 지위, 직분, 심지어는 옷과 화장으로 자신을 가리고 삽니다. 우리의 내면을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모든 죄와 거짓과 부끄러운 것들이 들어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깨지지 않은 자아와 교만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당신은 하나님께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정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대답하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믿음 좋은 것처럼 살아왔지만 사실은 버리지 못한 죄와 깨지지 못한 자아와 교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시며, 당신의 잘못된 것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놓고 변화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신 이유는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하며, 하나님 앞에 그의 자존심과 자아와 교만을 내놓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28절)
오늘 당신의 이름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그 이름으로는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내 방식과 주장을 고집하던 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신앙 생활했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과 자아를 꺾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실만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지난 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일주일에 단 한번 예배에 참석하며, 그것도 자주 빼먹는 그런 신앙생활은 그만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그런 수준을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모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새해에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당신의 삶과 사역이 무기력합니까? 기도 없이는 우리에게 능력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8-29)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며 묵상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며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새해에는 당신의 신앙과 생활이 새로워지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맘껏 사용하시며 축복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새해엔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더 실천하도록 지금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만 하겠습니까? 정말 새롭게 다짐하면서 기꺼이 한 가지 이상을 더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새로운 결단과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일을 하십시오.
승리의 비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을 이겼을까요?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버팀으로써 이겼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고집과 기질과 자아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굴복했습니다. 자기의 연약한 부분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통곡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야곱이 이겼다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굴복함으로써 승리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를 꺾어 하나님께 항복할 때 우리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연약함과 죄를 내어놓고 통곡할 때 우리는 승리를 얻게 됩니다. 어떻게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 힘으로 살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살든지 죽든지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성도야말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이런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이겼다고 인정하셨으며, 그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아와 교만과 기질을 꺾어 버림으로써 승리했고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의 자아와 교만과 고집을 내놓고 항복하면 승리자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당신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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