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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떨어지면 인기가 떨어집니다. - 차인표
전방에서 몇 년동안 근무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선 도통 모르는 어떤 군인이 휴가를 나와 애인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요즘 그렇게 차인표가 인기가 있다며? 대머리 까진 사람이 뭐가 인기가 있다고 하지? 하기야 장학퀴즈를 오랫동안 했으니 학생들한텐 인기가 있겠지...'
은팔찌와 은목걸이 오토바이 호황~
탤런트 차인표를 소재로 하는 유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차인표가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첫 장면인 미국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긴장된 표정을 촬영할 때였다고 한다. 스튜디어스가 껌을 나눠 주면서 비행기가 하강을 할 때 그것으로 고막에 느껴지는 압력을 덜 수 있을 거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촬영이 모두 끝나고 나서 차인표는 귀 속에 달라붙은 껌을 떼어 내느라고 한 시간이 고생을 했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도대체 어디서 뭘 하던 인간인지도 모르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텔레비젼 미니시리즈 드라마에 은팔찌와 은목걸이를 하고 거기에다 가죽잠바에 오토바이를 이끌고 다니는 연기로 출연하더니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자를 사랑의 열병을 앓게 만든 것이다. 그의 인기는 앞서 얘기한 무슨 시리즈나 유머 몇 토막으로 설명하기에도 부족하다. 은목걸이 장사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은목걸이를 만드는 공장은 갑자기 밤새 기계를 돌려야 했고 가죽잠바 공장에선 휴가 보낸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여서 기계를 돌려야 할 만큼 가죽잠바의 수요가 폭발을 했다고 한다. 오토바이 공장은 또 어떤가? 생각지도 않은 특이수요 때문에 밤새 기계를 돌려도 물건을 못 댈 정도라고 하니...
어머니의 기도
도대체 차인표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백마 탄 기사가 되어 나타나 인기와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탤런트와 다를 바 없이 탤런트 시험을 거쳐 한동안 무명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엑스트라 인생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의 동기들은 다방에서 귀엣말이나 주고 받는 손님 1.2.3이나 맡아하고 있고 또 어떤 동기는 그걸 못참아 벌써 집어치우고 남대문에서 신발장사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오늘의 차인표로 만든 것인가? 물론 그의 인내심도 있었다. 그리고 한번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벽이면 무릎에 피멍이 들 정도로 꿇어 엎드려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의 신앙은 무조건적인 것이었다. 무엇을 계산하거나 논리적으로 따져서 믿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오직 성경말씀대로만 살면 그만이라는 조금은 고지식한 신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인표가 성장하면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큰 문제 없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머니의 그런 신앙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어머니의 성격,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신앙의 표현이었고 행동하는 믿음 그 자체였었다. 툭하면 지나가는 걸인을 데리고 들어와서 밥을 먹여주는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못마땅했던 차인표가 한번은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 역시 어머니가 데리고 들어온 걸인을 보고는 숟가락을 탁하고 내려 놨다가 어머니한테 따귀를 얻어 맞아야만 했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찬송소리를 들으며 커온 차인표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무슨 구원의 확신이니 믿음이니 하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 정확할지 모른다. 하지만 차인표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정신병원에 가야만 한 적이 있었다.아르바이트로 말이다. 그곳에는 미국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NBC뉴스 앵커맨이나 변호사 닥터까지 입원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정신병원이라는 곳이 워낙 정신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보니 별의 별 일이 다 생길 수 밖에... 그곳에서 차인표는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매일같이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로는 저렇게 살면 뭐하나...하는 사람도 있었고, 금방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을 것만 같은 사람을 붙잡아 놓고 찬송을 들려주면 조용해지기도 하고...아무리 가르치고 얘기를 해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단순히 정신착란이 아니고 단수한 질병이 아니라 뭔가 악령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악령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당시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해프닝 한 가지. 한번은 환자(정신병자) 한사람이 차인표에게 다가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환자 : 이봐 젊은이 사람들은 내가 소세지를 너무 좋아한다고 미쳤다는 거야.
차인표 :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저도 소세지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환자 : 그래? 그럼 꼭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수집한 소세지 구경 좀 하게나. 수백가지는 넘을 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해운회사에 근무할 때에도 차인표는 어머니께로 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온 민족주의 신앙우선주의가 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한번은 동생과 극장에 갔는데 흑인 몇명이 차인표와 동생에게 '칭크'라는 욕을 하고 도망가더라나? 겁도 없이... 가뜩이나 쿵후로 단련된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였던 차인표는 골목까지 뒤쫒아가 죽지 않을 정도 패줬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르스 차가 말이다. 동양인이라고, 유색인이라고 비웃고 무시하는 미국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평소에 보디빌딩과 쿵후를 배워온 차인표는 그래서 미국사람들에게 부르스 차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이소룡이 부르스 리니까. 그런 곳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어머니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전화로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었다.
어머니 : 인표야, 나도 물론 너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있지만 너도 너 자신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네가 잘 나서 사는 것 같지? 그게 아냐 하나님이 보살펴 주시니까 네가 살고 있는 거야 알았지?
차인표 : 네 어머니.
탤런트 되다!
그렇게 기도의 어머니를 후원자로 둔 차인표가 서울로 돌아와 탤런트 시험에 함격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오늘날의 톱탤런트 차인표가 된 것도 역시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곁을 떠나는 날 아니 자신의 기도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만큼 자신의 인기도 점점 떨어진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이럴 때 일수록 더욱 기도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차인표 ; 저는 돈을 벌면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사용할 겁니다. 제가 갖지 않겠다는 거죠.
김종철 : 우와 대단한 믿음이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닌데...
차인표 : 아, 근데 절대 그 얘기는 적지 마세요.
김종철 : 아니 그렇게 훌륭한 얘기를 왜 적지 말라는 건가?
차인표 : 목표가 그렇다는 거지 아직 실천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꼭 그렇게 한다는 자신도 없지만...
김종철 : 그러니까 더 적어야지. 그래야 증거로 남으니까.
차인표 : 으아...
김종철 : 근데 그 머리스타일은 어디서 만든건가?
차인표 : 그건 왜?
김종철 : 나도 거기가서 차인표처럼 깎아달라고 할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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