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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손 마른 사람

마태복음 우제돈 목사............... 조회 수 5171 추천 수 0 2010.03.11 22: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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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2:9-13 
설교자 : 우제돈 목사 
참고 : 상원교회 

 전에 한 손을 다쳐서 물을 만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왼손으로만 세수를 했는데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두 손을 가지고 세수할 때에는 손의 고마움을 몰랐는데, 손 하나를 쓸 수 없어 한 손만 가지고 세수하니까 얼마나 불편한지 두 손을 사용하는 감사가 느껴졌습니다.
 
우리 인간이 짐승이나 식물, 혹은 새나 곤충과 다른 점은 직립 보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흙을 빚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기어다니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 고등한 생명체로 만들어 주신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모든 활동을 손과 발로 할 수 있다는 이 엄청난 축복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불만스러워 한 일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주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오른손이 말랐다고 했으며, 외경에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 석공이었다고 합니다. 이 석공의 식솔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쪽 손이 말라서 일을 못하고 실직자가 되니 가족들에게 얼마나 폐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의 소원은 이 말라 가는 손을 고쳤으면 하는 것입니다.
  여려 가지 치료를 받았지만 그래도 고치지 못하고 점점 말라 가는 이 오른손을 가지고 성전에 왔습니다.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주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 한쪽 손 마른 사람에게 '마른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내밀겠습니까만은 믿음을 긍정적으로 가진 그 손 마른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내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드디어 손을 내밀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물론 눈에 보이는 불구자도 그것 때문에 출세에 지장이 있고, 일평생 육체의 불구 때문에 한이 서려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불구자, 영적인 기형아를 생각해 봅시다. 나는 사지육신이 멀쩡하지만 속은 기형아다, 정신적으로 불구자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한번 해 봅시다. 자신을 점검해 보자는 것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육체의 외향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과 영적인 상태가 완전 가동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수십 년을 믿었어도 신앙 생활 제대로 못하는 이는 벌써 그 몸과 정신과 영혼이 굳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신앙이 변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를 않습니다.
  아이 때에 많이 먹고 성장해야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한쪽 팔이 크는데 한쪽 팔은 크지 않고, 한 다리는 크는데 한 다리는 크지 않으면 기형아입니다.
먹는 대로 커야 됩니다. 우리도 예수 믿는 대로 영적인 성장을 해야 합니다. 가만있으면 기형아가 되는 것입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의인 축에 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 팔이 자라나지 않지만  다른 팔은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자라나지 않았다는 결과입니다. 수축했다는 결과입니다.
  우리는 함께 주의 사랑을 받고 복된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하지 아니하는 것은 영적으로 기형아요, 한 손이 말라 가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기도 생활이 말라 있지 않습니까? 감사의 찬송이 말라 있지 않습니까? 십일조와 헌금 생활이 마르지 않았습니까? 전도의 생활이 마르지 않았습니까?
  우리 자신을 돌이켜 반성해 봅시다. 진단이 내려졌다면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만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도려내야 합니다.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새 살이 돋고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그 손을 내밀라' 하시고, 긍정적인 믿음으로 내미는 그 손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손을 내밀면.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고 고백하면, 주님이 고쳐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봉사할 수 있는 손으로 봉사하지 못할 때, 오그라들고 접혀들고 말라 가는 이 사람의 손을 고쳐서 봉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잠언 6장 10절 이하에 보면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궁핍이 강도같이 오고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했고, 잠언 10장 4절에서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될 것이요" 했습니다. 또 12장 24절에는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리라"고 기록되어 있고, 19장 24절은 "게으른 사람은 손을 놓고도 그 손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손가락이 짧고, 매듭이 굵고, 발바닥처럼 손에 굳은살이 박혀 있는 손이 부지런한 손이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은 상처가 아물 겨를이 없고, 굳은살이 사라질 날이 없는 부지런한 손인가, 아니면 게을러터진 손인가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한 우리의 손가락과 손톱은 자꾸 길어지고 굳어집니다. 자꾸 움직여야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지 그렇지 않으면 말라 갑니다. 이것은 봉사를 말합니다. 봉사하지 못할 때 말라 가는 우리의 영적인 손을 주님께 내밀어 축복을 받고 봉사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둘째, 한쪽 손 마른 사람의 손을 무엇을 위해 펴 주셨겠습니까.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군사와 전쟁을 하는데 모세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기도를 말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이스라엘 군사가 이겼습니다. 그러나 한참 들고 있으니까 팔이 아파집니다. 그래서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 군사가 이겼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손은 내려와 있습니까, 아니면 올라가 있습니까? 에레미야 애가 2장 18 19절에 보면 '밤 초경에 일어나 긴 머리에 혼미해 가는데 어린 자녀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눈물을 강처럼 쏟으며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식들을 여차하면 잘 쥐어박습니다. 그러나 쥐어박는 것보다는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 자식의 영혼을 위해서, 내 가족의 영혼을 위해서, 내 구역 식구들의 영혼을 위해서, 나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디모데에서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했고, 시편 기자도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손을 들고 기도하는 자세가 되지 못하면 우리의 기도는 말라 가고 우리의 육체와 아울러 그 심령, 그 양심, 그 정신, 그 영혼까지 말라 마비가 됩니다.
 
셋째, 무엇을 위해 그 마른 손을 회복해 주셨습니까? 교제하는 손으로 되기 위하여 회복해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은 교회에 왔다가 예배드리고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자라나지 않습니다. 거룩한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누가 누구인지를 통성명하고 대화하고 서로 웃고 서로 나누고 서로 오고가고 구역 예배도 드리는 가운데 믿음이 서로 격려하며 보완하여 자라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사랑의 공동체, 봉사의 공동체, 교제의 공동체입니다.
  바울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 되어 교제하라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9절에 보면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교회 지도자들과 같이 의논할 때에 또 내게 주신 은혜를 말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노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 거룩한 교제의 악수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손을 잡고 '안녕하십니까', '아멘' 하는 이것이 거룩한 성도의 교제입니다. 악수할 때 손 대신 발을 내밀고 악수하는 사람을 봤습니까? 손은 교제의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하고 덜컥덜컥 손 내밀고 악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교제의 악수가 필요합니다.
 
미국에서는 예배를 마치면 바로 친 교실로 들어가 거룩한 교제의 악수를 합니다. 나갈 때 금방 나가지 않고, 잠깐 얘기도 나눕니다. 손은 교제의 악수입니다. 운동할 때 Free Time 하면 서로 의논하고 구호를 외치고 "야" 하고 손은 올립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V를 만듭니다.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손은 서로의 단결을 말하고, 교제를 말하고, 연결을 말합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한 막대기에 유다와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에 아브라함과 요셉과 그 이스라엘 족속이라 해서 그 두 막대기를 합쳐서 하나를 만드니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분단된 이스라엘을 하나로 만들리라는, 선지자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예언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교제의 악수를 하다 보면 사제지간이든 형제지간이든 노사간이든 남북 간이든 못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교제의 악수를 하려면 평등해야 합니다. 높은 데서 낮은 데에 있는 사람하고 악수할 수는 없습니다. 낮은 데서 높은 데 있는 사람과 악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려와야 합니다. 평평한 데서 평등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악수를 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문화와 나의 재능과  나의 재력을 모두 포기하거나 양보하고 사양하고 절제하고 서로 평등하게 맞추는 가운데 악수와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태인,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은 트집을 잡았습니다. 손 마른 사람을 예수의 권능으로 고쳐 주셨는데 안식일에 일했다는 이류로 예수님을 고소하려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소사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남의 허물을 정죄하고 고소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앙생활 하면서 상대편의 약점을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서 거두십시오. 그만 두십시오. 그러면 자꾸 굳어지는 것입니다. 자꾸 말라 갑니다. 유익이 없습니다. 반드시 긍정적으로 신앙 생활을 합시다.
 
안식일에 일했다고 고소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만민의 구주요, 교회의 머리요,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어떤 장사꾼이 밤늦게 산을 넘어가다가 바위 옆에서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거친 짐승의 숨소리를 듣고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것이 웬일입니까? 백수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가 그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혼비백산 놀란 장사꾼은 도망쳤지만, 잡혀먹힐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날렵하게 호랑이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아무리 힘센 호랑이도 꼬리가 잡히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짐승은 꼬리에 힘이 있습니다. 장사꾼은 호랑이 꼬리를 잡고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스님이 지나갔습니다. 장사꾼은 "스님, 스님, 이 호랑이 좀 잡아 주세요" 하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은 호랑이 앞에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며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외운 뒤 장사꾼에게 "우리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합니다" 하고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장사꾼은 "스님 저 좀 보세요. 그러면 제가 죽일 테니까 대신 여기 와서 꼬리 좀 붙잡아 주세요"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스님은 호랑이 꼬리를 붙잡았습니다. 스님이 와서 호랑이 꼬리를 붙잡자 장사꾼은 봇짐을 둘러메고 손을 털더니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스님이 야단났습니다. 왜 안 죽이고 그냥 가느냐고 스님이 야단을 하니까 이 장사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생명을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입니까? 저도 불가에 귀의할 마음이 있었는데, 스님으로부터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듣고 보니까 산 생명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알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절대로 살생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자칫하면 종교의 어떤 계율이나 율법에 오도된 생활이 우리 자신을 옭아매고 정죄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안식일의 주인이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주일날 교회에 갑니다. 육체는 피곤하지만 영적인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귀한 직분을 감당하는 뜻은 자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내고 물질을 내고 달란트를 내어 봉사합니다. 여느 날이면 회사에서 존경받는 위치의 사람이 주일이면 불쌍한 사람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땀을 흘려 봉사합니다.
  할머니가 집에서 손주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콩밭 매는 것이 더 쉽다고 했겠습니까? 생각해봅시다.

5∼10kg씩 나가는 손주를 한나절 아니 한 시간만 업고 있어도 허리가 대패처럼 뻐근할 것입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핏줄을 사랑하고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무거운 것을 무겁다 하지 않고 가볍게 여깁니다. 이러한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무가 마르면 죽고 땅이 마르면 먼지가 나며 논바닥이 마르면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이 마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신앙을 마르게 하지 맙시다. 십자가의 감격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땅이 마르면 먼지만 풀썩풀썩 납니다. 심령이 마른 사람은 주여 하고는 하품이 나옵니다. 논바닥이 마르면 금이 가고 갈라집니다. 영이 마르면 조각조각 갈라져 금이 갑니다. 땅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심은 모든 식물까지 죽습니다.
  마르지 맙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십시오. 어떤 부분이 마르고 있는가 살펴보십시오. 주님께 손을 내밀어 기도와 찬송과 전도와 감사와 십일조와 헌신과 가르치는 것과 모든 귀한 직분을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꾸 움직입시다.
  노인 분들 주무시고 나서 특히 움직여야 합니다. 앉은자리에서 움직이고, 목에서부터 다리까지 자꾸 움직여야 활성화가 됩니다. 가만 두면 굳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 대전 후 폐허가 된 독일 어느 교회당에 그리스도의 석고상이 폭격으로 팔이 떨어졌습니다. 저걸 고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한 3년 동안 예배를 그냥 드렸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성도들 가슴속에 자연스럽게 "굳어 떨어진 그리스도의 팔을 붙여 드릴 필요 없이 우리가 그 손이 되어 드려야겠다. 주님은 이제 쉬게 하고 우리가 주님의 손 노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손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을 합시다. 그러면 주께 영광이요, 우리에게 기쁨이요, 영적 성장이요, 정신적으로 건강해집니다.
  하나님 몸된 제단에 출석하는 여러 성도를, 여러 분야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충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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