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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4: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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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참고 : | 상원교회 |
사망 권세 깨뜨리고 다시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축복과 하나님의 은총과 보혜사 성령의 강림하심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부활 신앙으로 삽시다.
부활 신앙이란
첫째, 생명 신앙입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유골을 담은 사리탑을 자랑합니다. 회교에서는 마호멧의 무덤을 자랑합니다. 애굽에서는 피라밋을 자랑합니다. 기원 전 삼천 년경에 지은 이 피라밋 중 어떤 것은 63빌딩만큼 높으며, 넓이는 5만3천 평방미터의 사막을 채울 정도로 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살아나셨습니다. 어떤 고고학자의 연구에서 이천 년 묵은 꽃씨를 무덤에서 발견하여 심었더니 움이 돋고 잎이 피었다고 합니다. 1884년 애굽에서 3,000년 묵은 완두콩을 발견했습니다.
그 해 6월 4일에 완두콩을 심었더니, 며칠 후 땅을 뚫고 싹이 올라왔습니다. 생명의 위대함입니다.
나비의 일생은 징그럽고 추한 애벌레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애벌레는 돌돌 말려 죽어 없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이 완전히 소멸된 것 같지만 살아 있습니다. 거기서 생명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시커멓게 죽은 껍질에서 어느 날 노랑나비가 나옵니다. 멋진 나래를 펴고 창공을 훨훨 날아다닙니다. 이것은 실로 기적입니다. 나비의 일생에는 이렇게 전혀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구더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래식 화장실의 구더기는 벽을 타고 자꾸 위로 올라갑니다. 위로 올라가서는 딱딱한 번데기로 몇 날을 지냅니다. 그러다 어느 날 파리가 되어 부엌으로 들어와서 음식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구더기가 날아다니는 것으로 변한다니 얼마나 큰 기적이고 변화입니까?
죽은 사람이 다신 산다는 기적을, 잠자던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보여 주셨습니다.
1982년 1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임신 5개월인 알리사라는 산모의 뇌 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의학 용어로 뇌사입니다. 그러나 배속의 아이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뇌사한 산모의 태아는 2주일만에 죽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기라도 살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의사는 최첨단 의학 기술을 총동원하여 뇌사한 산모의 체온, 홀몬, 호흡 기능을 정상으로 유지시켜 놓은 뒤 2개월 후 재앙절개 수술 끝에 예쁜 옥동자를 꺼냈고, 그 아이는 지금까지 잘 크고 있다고 합니다.의학적으로 죽은 지 2달 된 산모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부활 신앙이란 이 같은 생명 신앙입니다.
둘째, 부활 신앙은 속죄의 신앙입니다.
한 젊은 죄수가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서너 명의 집행관들이 칼을 걸어 놓고 집행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무척 추웠습니다. 그래서 간수들은 얼른 죄수를 처형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처형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는 시간을 신호로 알고 처형해야 하는데, 처형 시간이 지났는데도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해서 알아보았더니, 종이 치는 늙은 신부는 종을 쳤다고 했습니다. 종소리는 나지 않았는데 분명히 신부는 종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 탑에 올라가 보았더니 종 탑에 왠 처녀가 종을 붙잡고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습니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청년과 이 처녀는 오빠와 누이 사이입니다. 평소에 죄를 많이 짓고 드디어 사형 인도까지 받은 오빠를 면회 온 누이동생이 "오빠, 예수 믿고 회개하고 새 사람 되세요"하고 권면했지만 오빠는 듣지 않았습니다.
서양의 종은 큽니다. 종을 붙잡고 움직입니다. 늙은 신부들은 고막이 터집니다. 그런데 이 종은 밑에서 당겨서 치는 종이었던 모양입니다. 종신을 방망이로 때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누이동생은 종 탑으로 올라가서 종을 붙잡고 '하나님, 최후의 단두대 이슬로 사라질 그 순간까지라도 오빠와 회개하지 않으면, 이 종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종소리가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밤새 추위에 종을 붙잡고 그냥 얼어죽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늙고 귀먹은 신부는 예정대로 종을 쳤고 종이 움직이면서 방망이가 이미 죽은 이 아가씨를 때렸던 것입니다.
회의가 다시 열렸습니다. 오빠를 대신하여 누이동생이 죽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오빠는 개과천식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고 부활절 날 석방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이 같은 속죄의 신앙입니다. 형제간, 친구간, 교인간의 우정과 사랑에 혹 금이 가고 있습니까?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고 있습니까? 이 속죄의 신앙으로부터 부활의 은총을 깨닫기 바랍니다.
성 베네딕트는 서기 480년경에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탄생하였습니다. 17세 때 법학을 공부하려고 로마에 상경했으나, 부패와 타락으로 뒤범벅이 된 로마에 환멸을 느끼고 경건한 삶을 위해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산 속에 숨어 기도하였고 그의 거처를 아는 사람은 그 산에 은둔해 사는 늙은 수사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수사가 자기가 먹는 빵을 노끈에 달아 그가 기도하는 굴 앞에까지 내리고 종을 쳐서 신호해 주면 굴속에 있던 베네딕트는 그것을 받아먹고 혼자 기도와 명상에 잠겼습니다.
베네딕트는 3년 동안 침묵과 고독과 금욕 생활을 계속하는 종 여러 가지 시험과 유혹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은 동굴 밖에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서는 자기와 결혼하여 로마에 가서 재미있게 살아 보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베네딕트는 그 소녀의 유혹으로 굴 밖으로 나갔지만, 나가 보니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사탄의 시험인 줄 깨달은 그는 너무도 원통하여 그 자리에서 입었던 옷을 모두 벗고 곁에 있는 찔레 밭에 뛰어들어가 온몸을 굴리며 회개하였습니다.
전신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고 가운데 아직 정욕이 있음을 통회하였더니, 다시는 그런 정욕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흑은 전도자 가운데 스티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뉴욕 할렘가의 깡패 두목 출신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같이 깡패 짓을 하던 친구들에게서 많은 비웃음을 샀습니다. 그러나 스키너는 그 친구들 중 한 백인 친구를 두고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스키너는 그 백인 친구와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가 의도적으로 반칙을 하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반칙으로 넘어졌던 스키너는 조용히 기도한 후 일어나더니 "형제여,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대를 용서하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백인 친구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속개의 은총입니다. 용서의 사랑입니다. 남을 바꾸어 줍니다. 이 사랑, 이 은총, 이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부활 신앙이 재림 신앙입니다.
병원이 있었던 사람이 재 입원할 수 있고, 형무소에 있던 전과자가 다시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활 신앙은 영생 복락을 철저하게 보장받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우리 죄를 대속 하여 들어가시게 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다시 사셨기 때문에 잠자던 자의 첫 열매가 되셨고, 앞서 간 성도들도 주안에서 부활할 소망이 있습니다.
재림의 약속이 실현될 것이고 재림 후 심판을 통해서 영생과 영벌로 갈라지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 울지 못하게 해도 새벽은 오고야 맙니다. 꽃샘 추위로, 넣어 두었던 외투를 다시 꺼내 입어도 봄은 오고야 맙니다. 아무리 돌무덤에 인봉을 하고 군병들도 무덤을 굳게 지켰지만 주님은 부활하시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으르릉거리며 삼킬 자를 찾아 성도를 위협하지만 부활 신앙의 주님을 소망으로 우리 영혼을 도둑질하지는 못합니다.
예수 부활은, 진리가 허위보다 강하고, 정의가 불의보다 강하고,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고, 생명이 죽음보다 강하고, 진짜가 가짜보다 강하고, 참이 거짓보다 강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생명의 도전이요, 불의에 대한 정의의 도전이요, 절망에 대한 희망의 도전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만이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면 모세의 지팡이로는 홍해가 갈라질 수 없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만이 목에 힘을 주는 세상이라면 나사로가 천당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힘센 사람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면 다윗의 손에 들려진 물 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때려눕히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마른 막대기도 능력이 되고, 길바닥의 돌맹이도 지혜가 되며, 무명의 손에 쥐어진 조촐한 도시락도 풍요한 성찬이 됩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고, 방탕하던 어거스틴이 변하여 성자가 되었고, 포악한 노예 상인 존 뉴톤이 신령한 목사가 되었고, 평양 깡패 이기풍이 재주도 최초의 전도목사로 변했고, 황해도 김익두가 유명한 부흥사가 된 것도 바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님이 쓴 부활에 관한 시가 있습니다.
우중충한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지저분한 굼뱅이가 매미가 되듯
말랐던 뿌리에서 백합꽃이 피듯
어두운 모태에서 아기가 태어나듯
나도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사나운 소리에 너무 겁내지 말게 하시고
꾸짖는 책망에 너무 낙심치 말게 하시고
바람이 분다고 아무 데나 끌려가게 하지 마시고
햇볕이 뜨겁다고 그늘만 찾지 말게 하옵소서
갈 길이 멀다고 주저앉지 말게 하시고
지나온 길 돌아보고 후회하지 않게 하소서
군병들이 다가와도 기도하시던 주님
제자의 배반에도 위로하시던 주님
침 뱉던 자들에게도 용서하시던 주님
십자가 위에서도 어머니 생각하시던 주님
오 주님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내 가슴이 푸른 하늘이 되게 하시고
내 생각이 넓은 바다가 되게 하시며
내 영혼이 봄 동산 되게 하옵소서
이런 신앙 고백이 오늘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나길 바랍니다.
부활 신앙으로 삽시다. 용기 있게 감사하고 용서하고 더불어 사는 인생, 감격적인 남은 인생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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