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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관심사

고린도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780 추천 수 0 2010.03.12 23: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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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 2:1~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10. 1. 3. 성찬주일설교 
할렐루야~ 여러분 사람들에게는 마음속에 제 육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50년 동안 목회하면서 매년마다 새해 기도를 드리면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육감을 받는데 금년(2010)도만큼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육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기도하면 가슴이 벅차고 무언가 좋은 일이 우리 민족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하나님이 복 주실 때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잘 섬기는 우리들이 되십시다. 두고 보십시오. 좋은 일이 자꾸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서론>
오늘 저는 “최대의 관심사”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2007년 한 취업 사이트에서 일주일 동안 대학생과 직장인 56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20대 이상 성인남녀가 인생의 최우선 순위로 꼽은 것을 보면, 남성들의 경우는 부모가 최우선 순위였고 그 다음으로 연인과 배우자, 일과 직장 등의 순위였습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연인과 배우자를 최우선으로 꼽았고 그 다음으로 일과 직장, 부모 등의 순서로 꼽았습니다. 그러니 딸 낳은 사람은 손해 많아요. 엠파스 인터넷 신문에서는 3,361명을 대상으로 한 해 소망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인가를 설문조사 했습니다. 그 결과, 1위가 “돈 벼락을 맞고 싶다.”로 72%였습니다. 2위는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 좋겠다.”로 9%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간단히 우리가 말할 수가 없는 것은 우리 삶 중 최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오시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의 관심사가 무엇이 제일 큽니까? 우리는 항상 그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간단히 말하면 십자가를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도 모시고 하나님의 의도 모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의 최대관심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봐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땅을 봐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가슴 속을 봐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그러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늘 바라보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막연하게 바라볼 것입니까? 땅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바라볼 때 막연하게 바라봅니까? 마음 속에 예수님 막연하게 바라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대죄의 대속물이 되신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언제나 느낍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내 죄를 대신해서 매달린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고난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하고 예수님과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요, 감격하고 감사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 모든 세속과 더러움을 청산해 주시고 우리 병의 대속물이 되시고 우리 저주의 대속물이 되시고 우리의 죽음과 멸망의 대속물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완전히 희생제물이 되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에 여러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십자가에서 허물과 죄악과 평화와 나음을 가져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변화가 안다가올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 마음이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으로, 좌절감에서 희망으로,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져야 하나님과 교통이 되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대속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서 우리가 마음에 새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러므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이후에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구약성서의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을 다 청산해 버리시고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와 귀신들을 무력화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겨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율법은 여러분의 행동을 요구합니다. 율법하에 사는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점일획도 놓침이 없이 다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여러분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사랑의 행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의 증거로써 사랑을 나타내야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틀립니까? 신약시대에 구원받는 것은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의롭다함을 입고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실천하므로 의롭다함을 입습니다. 의롭다함을 입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구약에는 율법 일점일획이라도 어기면 하나님 앞에 못서요.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사랑을 실천하므로 하나님의 영접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이 신약에는 의롭게 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대속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빅톨 위고가 쓴 유명한 소설 「나인티 쓰리」라는 책에는 아주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란서 혁명 직후에 숲을 지나가던 병사들이 우연히 배고픔에 지친 어린 아이 셋을 데리고 있는 어머니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 중에 한 상사가 빵 한 덩이를 끄집어 내어서 그 어머니에게 주자, 어머니는 지체할 시간도 없이 그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상사와 같이 그 광경을 보던 한 젊은 병사가 빵을 주던 상사에게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가 전혀 안고픈가 봅니다. 빵을 받자마자 아들 셋에게만 나누어주는 것 보니까요.” 그러자 상사는 어깨를 탁 치면서 “야 이 사람아 그게 아니야, 어머니가 왜 배가 안 고프겠어? 그러나 어머니의 배고픔보다 그 속에 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강했기 때문에 배고픔을 억제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사랑을 따라서 빵을 나누어 준 것이다.” 그 말 참말이에요. 어머니라고 빵 안 먹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어머니는 사랑 때문에 자기는 굶어도 자식들은 먹여야 되겠다고 빵을 나누어 준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우리의 죄와 더러움, 병, 저주, 죽음과 멸망의 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온 몸이 물과 피를 쏟기까지 고통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어느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당하고 죽고 싶겠습니까? 예수님도 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시기를 “하나님이여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예수님도 그 고통을 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걸머진 것은 그 고통이 괴로운 것보다도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는 사랑이 더 컸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고통 당하면 수많은 영혼을 살릴 수가 있다. 그들의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을 청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죽고 저들을 살리자.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 우리가 마음에 저리도록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지치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슬프고 기쁘고 똑같았습니다. 정말 예수님 십자가 걸머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싫어했습니다. 그래도 걸머졌습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기 때문에 그 사랑에 끌려서 십자가에 걸머지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2. 하나님 창조의 근본으로 돌아감
그러면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영혼이 죽음에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이 우리에게 비극인 것처럼 영혼의 죽음은 더 큰 비극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4절로 6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예수를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허물과 죄가 사해지고 살아났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실제로 지금 여러분이 어디 앉아 있느냐. 하나님 보좌 옆에 앉아 있습니다. 영적으로 그런 상태입니다. 육체가 죽으면 여러분 영혼은 순식간에 아버지 보좌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총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용서를 받고 정결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하루는 심신이 몹시 지치고 고통스러워서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데 갑자기 마귀가 나타났습니다. 마귀가 나타나서 큰 두루마리를 펴서 보면서 허허허 웃으면서 “읽어봐! 읽어봐!”합니다. 거기 보니까 마틴 루터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가 소소난간으로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기록을 보자 마틴 루터의 마음이 짓눌리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야~ 이 마귀가 내 죄를 다 아는구나.’ 그러면 마귀가 웃으면서 “네가 무슨 종교개혁을 하느냐? 너는 지옥가기에 딱 적당한 사람이다.” 마음이 떨리고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루터의 마음에 번개같이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마귀를 향해 외쳤습니다. “마귀야! 네가 잊은 것이 하나 있다. 내 일생을 다 적을 때 마지막 한 사건을 적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보혈로 모든 죄가 다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너는 적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는 이미 모든 죄에서 깨끗해 졌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참소하던 마귀가 순식간에 얼굴이 샛노래지더니만 도망을 치고 두루마리도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긴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고, 아무리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리시고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로 인해 영혼이 죽은데서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에서 해방이 되고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저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무성한 땅에 다시 축복이 회복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6.25사변 났을 때 얼마나 황폐하게 되었는지 그때를 지나지 않은 사람은 상상을 못합니다. 저는 부산 부두에 서서 그때는 중학생이었으니까 우리나라의 형편을 살펴보고 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나라의 희망은 다시 없다. 모두 다 거지고 모두 다 헐벗고 굶주리고 모두 다 배우지 못하고 모든 교육시설은 파괴되고 우리에게 희망이 어디 있느냐? 그 다음에 제가 신학 공부하기 위해서 서울에 왔을 때 서울에 종로 네거리에 나가면 다 무너진 건물 밖에 없습니다. 서울 어느 곳에나 사람 사는 도시 같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손을 대어서 도시를 건설하고 삶을 재건할지 알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정말 가슴이 아파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나라에 살 희망이 없으니 나도 잘 사는 나라에 가서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몸서리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한 5,60년 세월 짧은 세월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이렇게 부강한 나라가 될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세계에서 배, 조선 제일 조선왕국이요, 철강도 제일이요, 자동차는 다섯째인가 여섯째나 가고, IT제품은 세계를 석권했고, 이제 원자로조차 블란서를 누르고 이기고 아랍에미리트에 들어가고 앞으로 좋은 일이 또 잔뜩 생길거에요. 그 무엇보다도 제일 늦게 받아들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고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세계로 보냈고 미국 다음으로 온 세계 선교사를 많이 보내요. 그러니 하나님이 이 한국에 얼마나 큰 축복을 주셨습니까? 성경 그대로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영혼이 그렇게 잘되니까 하나님이 웃으시고 범사에 잘되라 그리고 강건하라.
저가 네 모든 죄를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는도다.
정말로 하나님이 놀라운 은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저주를 다 청산하시고 그 청산한 은혜가 지금 한국에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것 깨달아야 돼요. 나는 못한다. 안된다. 나는 저주 받았다. 나는 실패자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망해요. 마음에 소재를 해야 돼요. 저주를 다 청산해 버려야 돼요. 성경에 주님께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 무슨 말입니까? 입에 들어가는 것은 밥, 음식입니다. 음식은 들어갔다가 변으로 나와 버리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속에서 나오는 것은 원망, 불평, 탄식, 미움, 좌절, 도적질, 음란, 간음 온갖 더러운 것이 속에서 나옵니다. 이 속이 청산 안되고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데 이 여러분의 속을 무엇으로 청산합니까? 십자가로 청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여러분의 속사람을 깨끗이 청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에 죄도 청산해 버리고 불의도 청산해 버리고 저주도 청산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부자 미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생각하기를 부자가 되면 지옥 간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지요.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그러나 돈을 벌어서 하나님 사랑하는데 쓰면 천국에 가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하늘나라를 위해서 일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우리로 부요케 하려 함이라. 우리 부자 만들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와서 그렇게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에서 가장 잔혹한 유아살해범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이 교회에 가 본 적이 없고, 폭력적인 게임이나 TV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12년 간 조사한 은행 강도들의 공통점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이 도박과 마약에 빠져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결국 죄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귀의 종 노릇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15년부터 2005년까지 90년 간 물리, 화학, 의학 등 자연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모두 400명인데 그들 종교 분석 해보면 기독교가 65%, 유대교가 22%, 천주교가 11%, 불교는 0.9%, 메호메트교는 0.1%였습니다. 400여명의 노벨상을 탄 사람 수의 65%는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주교도 11%니까 합치면 76%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너희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으리라. 그 말이 참말인 것입니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이며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로버트 콜스 박사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정치인, 사업가, 학자 등 3천 명을 조사하여 이들의 공통적인 성공 요인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의 성공에 공통요인으로 첫째, 성경을 많이 읽었고, 둘째, 예배에 잘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예배에 많이 참석한 사람이 미국에서 다 성공했다. 여러분 지금 예배 참석하고 있는 것이 성공의 틀을 닦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를 집에 사다가 책상 위에 얹어 놓고 구경하고 안 읽거든요. 읽어야 돼요. 성경 구경만 하고 안 읽으면 소용이 없지요. 오늘의 만나는 하루의 양식을 주도록 적당히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읽습니다. 그 각오를 하고 결심을 해야 됩니다. 왜냐, 저도 각오를 하고 결심을 해야 읽습니다. 나중에는 시간이 없어서 자꾸 미루다가 잠들기 전에 꾸벅꾸벅 졸면서라도 읽고 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저주 가운데 있으면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가져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우리는 축복과 형통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병들어 죽어 흙이 되어서 치료 받고 살고 영생하는 복을 받고 싶은 사람은 주님께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한 심리학자가 정신병원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그 원인을 연구해 보았는데 그 결과 정신병자의 75%가 죄책감으로 고민하다가 자학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정신적인 자책 때문에...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욕타임즈”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교회 안 다니고 술집 다니는 사람보다 장수한다는 연구결과를 실었습니다.
영국의 “더 타임스”일간지에서도 교회 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보다 7년 이상 장수한다고 보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생명에 7년을 더 보태십시오. 물론 7년보다 더 오래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은..
미국 전국의 의과대학에서는 종교와 질병과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환자를 진료할 때 종교와 신앙을 접목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의 희극작가인 죠지 쿨만은 “모든 의사를 찾아가도 고치지 못한 병이 있으면 그리스도께 나아오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가지고 나아오라. 그대의 병은 완전히 고침을 받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굳게 믿으면 우리는 병들고 죽어 흙이 되어 가는데서도 치료받아 살고, 영생하는 복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창조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3. 성령과 함께 사는 삶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쳐다볼 때마다 성령이 오신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프뉴마토스라는 것은 성령이라고도 말하고 바람이라고도 번역합니다. 바람은 곁에 있어도 안 느낍니다.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숨 쉬어도 있는 줄을 느끼지 않습니다. 성령이 그와 같습니다. 너와 함께 있을 것이요, 너희 속에 계실 것이라.
십자가의 은혜로 성령을 하나님이 보내주셨는데 디도서 3장 5절로 7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구약에 의로움은 율법을 행해야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신약의 의로움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예수님이 이런 법을 지켜라. 십계명 같은 것 주지 않았습니다. 구약에는 야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십계명을 꼭 지켜라. 꼭 지켜라. 일점일획도 틀리면 지옥이다. 지옥. 그러나 신약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리고 난 다음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법은 성경에 적어놓은 율법이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온 성령이 우리의 법인 것입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심이라. 여러분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 성령이 여러분의 생각과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기도만 할 것 아니라 기다리면 내 생각을 통해서 내 양심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이 들어옵니다. 성령의 생각이 우리 생각과 양심을 통해서 오면 그것을 따라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또 보혜사라고 하지요. 보혜사라는 것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영원이..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오신 성령은 영원히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새해가 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저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서도 성령 보혜사시여 조용기 목사 설교를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마음에 그렇게 부탁을 하면 여러분 내 설교가 귀에 쏙쏙 들어올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잠시 율법주의자가 되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힘쓰고 애쓰고 일해야 뭔가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하고 내가 열심히 일을 안하면 밥 먹고 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늘 생각하기를 농부들은 이른 봄부터 가을해까지 피땀 흘려 일해서 농사를 지어 겨울에 먹고 사는데 나는 주일에 설교 한번하고 심방만 하면서 어떻게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 입맛이 떨어져서 밥을 먹는 것을 그쳤습니다. 물을 마시고 굶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지럽고 다리가 떨려도 아 내 마음속에 ‘너는 밥 먹을 자격이 없다. 농부들처럼 저렇게 힘든 일을 하고 노동자처럼 힘든 일한 결과로 밥을 먹을 자격이 있지 너같이 설교 한번 하고 심방하고 밥 얻어먹으면 그것은 도둑놈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텔레비전을 열어보니까 개그맨들이 말도 되지는 않는 소리 헛소리를 하는데 사람들이 보고 막 웃고 해요. 그런데 신문을 보니까 그들 월급이 엄청나게 많더라구. 그때 내가 그때 무릎을 탁 쳤습니다. “개그맨도 밥 먹는데 나는 밥 못먹을 턱이 있느냐.” 그래서 “하나님! 남의 쓸데없는 이야기 되도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서 웃기는 저분들도 굉장한 수입을 올리고 밥을 먹는데 나는 천당가는 진리를 말하고 참말을 말하는데 밥 못 먹을 턱이 있겠습니까? 나 밥 먹겠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성령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모든 사람이 일을 하든 안 하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농부도 하나님의 은혜로, 공장 노동자도 하나님의 은혜로, 개그맨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면 다 죽고 하나님이 은혜로 사는 것인데 너도 하나님 은혜로 사는 것이지 무슨 일을 많이 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니 잘났든 못났든 감사하며 받아먹고 살아라.” “아~ 인생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구나.” 그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다시 그런 생각 안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고 인생을 살도록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지금도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면 성령이 우리 손을 잡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은혜로 들어가서 축복을 받고 살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성령을 의지하면 성령은 여러 가지 은사를 주어서 여러분 유익하게 말해 주지요. 지혜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기적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이런 은사들을 나누어 주어서 여러분을 돕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은사 받은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청지기같이 봉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열매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아름다운 열매도 성령이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미즈노 겐죠라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뇌성소아마비가 되어서 얼굴을 제외하고 몸 전체가 꼼짝도 못하는 장애자가 된 일본 학생이 있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마야오 목사님을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 차츰 마음 문을 연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미즈노 겐죠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 말씀을 읽고 성령이 마음에 뜨겁게 감동했습니다. 그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인생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내가 눈만 움직일 수 있는 이런 병신이 되었는데 내 할 일이 뭡니까?” 그러니까 그 맘속에 “시를 적어라. 시를!” 말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벽면에 시력 검사판처럼 일본 히라가나를 붙여 놓고 엄마가 그것을 가르키면 눈을 깜짝깜짝 하면 그것을 쓰고 또 이러면 안쓰고 그래 가지고서 시를 짓는 것입니다. 이렇게 쓴 그의 시를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선정하여 시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시집은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중에 “내 마음속에”라는 시는 저도 읽고 굉장히 감동을 느꼈습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이것 한줄 쓰는데 하루 걸립니다. 엄마가 기억을 가르키면 그것 맞으면 눈 깜짝깜짝하고 아니면 눈을 이렇게 해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희망이 있다 / 그건 그리스도가 부어 주신 것 / 고뇌할 때도 변하지 않아 / 보이지 않는 것 기다리는 희망이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 / 그건 그리스도가 부어 주신 것 /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아 / 이 세상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이
내 마음속에 나가야 할 길이 있다 / 그건 그리스도가 열어 주신 것 / 빛이 없어도 어둡지 않아 / 그 나라에는 즐거운 길이”
완전히 식물인간 같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고 난 다음 마음에 기쁨이 있으니까 시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도 전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살 때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성령은 우리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희망을 주기 때문에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같이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슬퍼하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이 되면 참 부끄러운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과 더불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란 것은 신인동체의 삶이지요. 예수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은 인간 혼자 살지만 여러분은 혼자 못삽니다.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고린도후서 1장 21절로 22절에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굳건하게 하시고 하나님 성령의 우리 속에 계십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한번 같이 읽어 보십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으니까 주님이 우리와 같이 있어야 안에 거하지 도망쳐 버리는데 어디 안에 들어갑니까?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이루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시계가 하나인 사람은 시간을 정확히 알지만, 시계가 두 개인 사람은 결코 확실한 시간을 알지 못한다.” 어느 시계가 진짜인지 모르니까...
오늘날 우리는 바쁘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목표를 설정해도 목표에서 벗어나가는 경우도 많고 때로는 초심에서 벗어나 인생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신앙인들에게 존경 받는 인물인 도저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삶의 최우선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삐뚫은 길로 가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어떻게 살까요? 하늘을 쳐다보고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땅을 쳐다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묵상하며 그 십자가 중심으로 사는 삶이 있으면 우리는 다른 삶의 도움이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주님의 생명이 여러분의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삶이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큰 영광스러운 삶이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아 알아야 돼요. 마음이 달라져야 돼요. 여기에 썩고 더러운 것을 다 쫓아내고 십자가로 씻어 버리고 우리 이 마음이 십자가를 통하여 달라지면 오중복음이 넘쳐나고 삼중축복이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지고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늘나라가 임하여 역사할 것입니다. 그런 새해를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번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새해를 주셨으나 새해에는 우리에게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중립으로 와 있습니다. 여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우리가 그립니다. 우리가 성공의 그림을 그리든지, 좌절과 절망의 그림을 그리든지, 축복으로 채워 놓던지, 저주로 채워 놓던지 우리가 마음에 결정하고 작정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원하오니 우리 마음에 변화를 받아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과 함께 새해를 받아 살게 도와주시옵시고 좋은 일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지금 우리나라에 하나님이 좋은 일을 해주시겠다는 예감을 주시고 참으로 예감이 좋은 것이니 우리 아버지여, 이 예감에 의지하고 성령바람 따라 위대한 승리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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