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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2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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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0. 1. 10. 주일설교 |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성령이 오셨습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보혜사 성령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마치 공기 없이 우리가 살 수 없지만 눈에 안 보이니까 무관심하고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숨을 안쉬고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러나 공기는 눈에 안보입니다. 공기 없이 살 수 없는 것 같이 성령이 없이는 영적으로 태어나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성령과 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작정하고 숨 호흡을 하면 폐 깊숙이 공기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한번 숨 호흡을 해봅시다. 휴~ 공기가 눈에 안보이지만 우리 속에 들어왔다가 나갔습니다. 성령님도 한가지입니다. 성령님도 공기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숨 호흡을 해서 모셔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으로 모셔 드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들어오시옵소서. 그렇게 하면 성령님이 여러분 속에 들어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무디(Dwight Lyman Moody) 목사님은 초등학교만 나와서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열심히 봉사하다가 주의 부르심을 받아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을 양손에 쥐고 흔드는 주의 종입니다. 하루는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나오자 여성도가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하는데 나는 한시간 내내 졸고 앉았다가 갑니다. 목사님 말씀은 잘하시는데 은혜가 없어요. 지금부터 목사님 은혜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까? “왜 나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말인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은혜가 없는 것은 자기가 못받아서 그렇지 내가 은혜가 없느냐.”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목사님 성령으로 충만하세요.”하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잘 못알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면서도 “하나님이여,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나이 34살 때 어느 11월에 뉴욕 거리를 걸어가면서 “하나님이여 제게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졌습니다. 길거리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니까 키가 큰 디엘 무디 목사님인데 그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되어서 빨리 친구집을 찾아서 친구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방을 하나 빌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성령의 불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나중에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여! 손을 떼 주시옵소서. 그대로 있으면 나 죽겠습니다. 그만 부어 주시옵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그때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다음에 말씀으로 미국과 영국을 뒤흔드는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어 수천만명을 주께로 이끌어 들이는 위대한 종이 된 것입니다.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말씀을 전할 때 성도들을 졸게 만드는 목사였는데, 성령을 받자마자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영적으로 태어나지도, 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능력 있는 사역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전도도, 설교도, 부흥회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인격을 갖고 계신 성령님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인격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뚜렷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격을 가지려면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즉 지, 정, 의를 가지고 있어야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조용기가 여기 서 있을 때는 인격자지만 제가 죽어서 쓰러져 버리면 그 다음에는 시체지 인격자가 아닌 것입니다. 지성도 감성도 의지도 떠나가 버리니까 인격자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의 구성요소를 다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무생물로 취급을 하면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지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27절에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
성령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여러분,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우리 생각과 양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내 마음속에 성령이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성령은 인격중에 지성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 하나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성령은 다 통달하고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전지하신 지성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
마음에 사랑이 부음바 되는 것도 성령이 마음에 넘치면 모든 미움을 극복하고 사랑이 넘쳐 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성령의 사랑이 마음 속에 부어지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같은 열매도 성령이 와서 맺어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가슴을 치면서 우리 위해서 기도하신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것을 알지 못하고 다른데서 방황을 합니다. 성령이 이것 위해서 기도하라는데 이것이 뭔지 모르고 저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탄식을 하면서 ‘에라 가만히 있어라. 내가 기도하마.’ 우리 입술과 혀를 빼앗아서 방언으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그냥 기도할 때 기도가 안나오고 답답하다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기도가 잘 나올 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실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은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모를 때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우리 권사님 한분 지역장으로써 구역회를 인도하러 가다가 종로 네거리에서 가슴에 기도가 솟아오르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왔다갔다 하고 기도할 자리도 없는데 가로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만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얼마나 큰소리로 방언으로 기도했던지 나중에 정신차려 보니까 사람이 인산인해로 둘러싸여서 구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친여자라고.. 그런데 가슴은 시원해요. 그래서 구역예배를 잘 인도하고 집에 들어가니까 도둑놈이 들어와서 온 마당에 옷을 다 갖다 널어놓고 서랍을 다 뽑아서 흩어 놓았어요. 그런데 현찰을 서랍 속에 좀 넣어 놓았는데 만일 그 현찰이 도둑 맞았으면 그날 그 남편에게 맞아 죽을 지경입니다. 그 남편이 경찰관입니다. 그래서 ‘아이구 하나님 나는 이제 죽었습니다.’ 얼어붙은 마음으로 뛰어 들어가서 서랍을 들춰보니까 다른 서랍은 전부 다 들춰놓고 난 다음 돈있는 서랍은 옷을 덮어 놓은채 손을 안댔어요. 하나님이 도둑놈 눈을 막아 버렸습니다. “야! 이것은 보지마라! 이것은 너 볼 것 아니다.” 그래서 살아났습니다. 만일 기도 안했더라면 도둑놈이 그 돈 가져 갔었으면 살아남겠습니까? 남편에게 얼마나 구박을 당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성령은 근심, 걱정을 하는 감정을 가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령은 결의한 의지를 가지십니다. 성령이 결정하면 우리가 성령의 마음을 변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로 7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선생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니까 성령이 못하게 하고 비두니아는 못 가게 한 것입니다.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갖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1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성령이 은사를 주실 때도 우리가 원하는대로 주시는 것 아닙니다. 성령이 보아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지, 정, 의를 가진 성령으로써 우리에게는 보혜사로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보혜사 영어로는 콘포터.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란 무엇이냐, 보혜사란 곤고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부름을 받아 와서 곁에서 도와주는 자입니다. 어렵고 곤고한 사람을 도와주는 변호사로써 곁에 와서 도움을 베푸는 분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을 위해 변호하고 권고하며 위로하므로 그 사람을 굳세게 하는 것입니다.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 위로 받으라.” 힘을 주는 것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또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다주는 협력자가 보혜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 우리에게 힘을 보태어서 함께 싸워 주셔서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이 보혜사입니다. 보혜사의 역할은 돕는 자며, 교사며, 위로자며, 대언자며, 상담자인 것입니다. 인격을 가진 성령께서 놀러 와서 계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보혜사로 와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보혜사 성령인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에는 다른 보혜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보혜사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보혜사로써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가르치고 위로하고 대언하시고 상담해 주시고 대속해 주셨지만 예수님이 가시고 난 다음에 온 분은 똑같은 보혜사인데 다른 보혜사입니다. 다르다는 헬라어는 알로스. 똑같은데 다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똑같은데 예수님 몸을 가지고 오시고 보혜사는 영으로 오셨습니다. 그것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을 모시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뜻을 따라 역사하지 예수님을 떠나서는 죽어도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 삼위로써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2. 성령님의 역사
모든 일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체가 되어 일하시나 그 특성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가 일하시나 그러나 그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을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좇아 그 만물을 만드시고 구속하시고 성령님은 만물을 유지하시고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똑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지만 맡은 직분은 다르면서 또 함께 계시고 함께 계시면서 다릅니다. 아버지 안에 예수님과 성령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아버지와 성령님이 계시고 성령님 안에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는 아버지 하나님시대로써 예수님과 성령님은 아버지 안에 있었습니다. 신약초기 예수님 시대에는 아버지와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 계셨습니다. 지금은 성령시대니까 아버지와 예수님이 성령 안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절대로 서로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시는 사역을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이 말에 주의하십시오. 한달 동안 함께 같이 있으리니 1년 동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토록 시도 끝도 없이 너와 같이 하겠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성령이 계시고 여러분 속에 지금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성령을 통해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령이 우리 마음문을 열어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에게 성경 펼쳐 놓아 보세요. 전혀 모릅니다.
제가 불광동에 있을 때 대학교 교수님 한분이 부인은 열심히 예수를 잘 믿는데 본인은 안 믿어요. 안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 글자가 하나도 안보여요. 그래서 부인이 나를 집으로 직접 오라고 해서 따라 가니까 한번 실제로 보라고... 자기 남편을 신문 읽으라니까 줄줄 잘 읽어요. 성경을 펼쳐 주니까 한마디도 못 읽어요. 그것 왜그러냐니까 안보인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어른 거려서 눈에 안보여요. 그 다음 회개하고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신문은 잘 못읽어도 성경은 그렇게 잘 읽더라구요.
요한복음 14장 25절로 26절에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계셔야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만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 진리도 다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가르켜주는 영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나게 해주세요. 여러분 나이 먹으면 제일 걱정 되는 것이 치매 걸릴까 싶어 제일 걱정이 됩니다. 나이 먹으면 자꾸 잊어 버려요. 제일 잘 잊어 버리는 것이 이름입니다. 금새 했는데 금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야~ 나 이러다가 치매에 걸리지 않겠느냐.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계시면 치매에 안걸립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붙들어서 기억나게 해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뇌세포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기억나게 하시는 능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기적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면 여러분 세상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세상 마귀를 꾸짖습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로 8절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이 오시면 꾸짖으러 오시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예수 안믿는 것이 죄입니다. 이 세상에 다른 모든 죄도 다 많지만 예수를 믿으면 그 피로써 다 씻음을 받고 청산을 받습니다. 우리가 지옥 가는 것은 우리 죄로 말미암아 가는 것이 아니라 안믿어서 지옥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다 갚아 놓았는데 안 믿기 때문에 불신앙으로 지옥갑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라면 저가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면 너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할터이요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왜냐하면 우리는 부처님의 무덤도 가볼 수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의 무덤에도 가볼 수 있습니다. 마호메트 무덤에도 가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에는 가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안계십니다. 부활해서 승천해 버렸습니다. 무덤이란 뭐냐, 죄의 감옥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갑니다. 그 죄를 못갚은 이상은 감옥살이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종신징역, 영원징역형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인류의 모든 죄를 다 갚았으므로 감옥에 있을 필요가 없이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 증거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사 아버지께로 가버렸으니 너희가 날 찾아와도 무덤에 와도 나를 못볼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의에 대하여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요 심판에 대하여라면 이 세상 마귀가 심판을 받은 것이라. 아담과 하와를 꾀던 원수마귀는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마귀의 모든 주권을 해제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께서는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은 우리의 모든 생활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장님에게는 안내하는 사람이나 안내개가 꼭 있어야 되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도 내일 일어날 일을 모르는 장님입니다. 성령이 우리 눈을 밝혀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2절로 14절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성령의 진리도 가르쳐 주시고 세상의 진리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하면 세상 공부도 잘하게 돼요. 하나님 머리도 좋게 만들어요. 그래서 세상에도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장래 일을 가르켜 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미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저는 미국에 많은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주의 종을 다 데리고 올려니까 그때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신학교를 세워서 학생들을 양성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생각이 기도할 때마다 떠올라요. 그래서 미국에 있던 박여호수아 목사님와 그 사모님, 권사님과 함께 LA 안에서 조금 떨어진 섬에 가서 하루 종일 금식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이여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내 생각입니까? 나는 돈이 없으니까 여기에서 학교를 시작할 수도 없는데 마음 속에 자꾸 신학교를 시작해서 신학생을 양성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이게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하루종일 기도했는데 생각은 안바뀌어지고 배만 고팠습니다. 도저히 배가 고파서 오후가 되니까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섬 밖으로 나와서 그날 저녁에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내가 그 간증을 했습니다. 돈은 한푼도 없는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학교를 세우라고 하니까 기가막힐 노력이에요. 땅팔 노릇이다. 그 설교를 하고 나오니까 한 젊은 사업가가 오더니만 자기가 안쓰고 비워 놓은 집이 한 채 있는데 학교 세울 때까지 내 집을 쓰세요. 그러더랍니다. 그것 진짜냐고 하니까 진짜라구.. 조그마한 한칸집 아니니까... 큰집이라고 그래요. 가보니까 큰집이에요. 방이 여러개 있는 큰 집이에요. 그래서 왠 떡이냐. 그냥 받아서 거기에서 신학교를 시작한 것이 배데스다대학교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해서 성령의 생각을 우리 마음 속에 넣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생각지 않게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일어나고 생각이 자꾸 그리를 통해 나오며 양심에 거리낌없이 생각이 나오면 성령이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 마음에 소원과 생각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대게 마음에 뜨거운 소원과 생각을 통해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뜨거운 소원과 생각이 내 양심을 통해 걸러나올 때 부끄러움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한다고 우리가 작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뭐 특별히 환상을 보고 계시를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지요. 또, 귀에 음성이 들려오면 더 좋겠고... 그러나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고급적인 것은 오지 않고 그저 생각이 자꾸 계속해서 머리에 남고 마음에 소원이 줄기차게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줄 알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와 같이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성결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부패한 자식들인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부패한 심신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거룩함과 의로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거룩하신 분으로써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들어와서 우리 속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우리도 거룩하고 깨끗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우리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능력이 없이 우리는 부패한 인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성령님에 의지하고 성령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래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서는 또한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도 굉장히 능숙하게 기도하지 못합니다. 전도도 잘 못해요. 말씀 증거는 더 힘듭니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늘 묻습니다.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 그래서 내가 한평생 걸립니다. 뭐 엎드려서 연필 들고 종이 위에 적으면 설교가 나오는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평생을 살아온 과거를 말씀 속에 현재 비춰보고서 주의 성령께 인도해 달라고 간청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증거한다는 것은 혼신을 다하여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요, 뼈에 기름을 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대로 만담하는 식으로 해가지고 하나님의 영혼을 어떻게 인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한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은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 우리 스스로가 못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도와주는 분이 옆에 와 계신데도 불구하고 그 도와주는 분을 무시해 버리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 혼자 발버둥 치다가 실패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팔자입니다. 그러나 도와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나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내게 힘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부탁할 때 성령이 우리에게 도우심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의 임재
여러분 성령이 함께 하시면 얼마나 우리 마음속에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인생은 혼자 살기에는 정말 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난 다음 그 아름다운 에덴동산에 혼자 있으니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에덴 동산이 조그마한 여의도 같은 동산이 아니었습니다. 큰 동산이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동산인데 뭐 자동차가 있어야 타고 돌아다니지 자전거도 없는데... 걸어서 돌아다닐 수 없어서 아담이 볼 수 있는 것은 조그마한 것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있으니까 외로워 견딜 수가 없어요. 궁궐이라도 임금혼자 살라고 하면 감옥입니다. 초가삼간이라도 함께 있으면 궁궐보다 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인생을 살 수 없을 때 마음 속에 위로하는 성령이 함께 계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와 함께 계신 분이 계신다. 너는 온전히 혼자 있지 아니하다. 성령이 함께 계신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라. 성령이 와서 도와주신다. 많은 사람이 괴로우면 자살하지 않습니까? 사는 것이 별 볼일 없다. 살아도 효과가 없다. 더 살아서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만 죽어 버리자. 마귀는 와서 죽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아니 재밌어. 재밌어.. 나는 어떻게 하고, 내가 너와 함께 있는데.. 나에게 구하라 내가 생명의 역사를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령님은 끊임없이 우리와 교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있어도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늘 함께 와 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 먹고 나면은 속이 늘 쓰리잖아요. 잘먹고 나면 속이 시원하잖아요. 마귀가 들어와 있으면 속이 삐뚫어지지만 성령이 들어와 있으면 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도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지금도 여러분 속에 성령이 계십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지금 내 속에 성령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전이 되어 계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이 기도하면 속에 계신 성령이 여러분 위에 임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곁에 계시고 안에 계시고 위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 곁에 있고 믿는 사람은 속에 중생의 영으로 와 있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성령이 임하시는 체험을 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되고 그 결과로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방언을 안하고 천당갈 수 있느냐. 묻는 사람이 있는데 물론 천당가지요. 천국은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거듭나게 하시고 생수의 근원이 되어서 천국 갑니다. 그러나 권세와 능력을 받으려면 성령세례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증거로써 우리가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저는 정말 성령충만을 받는 체험을 하지 못해서 애를 많이 썼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친구들은 다 성령받고 방언을 말하는데 나는 방언을 흉내내 봐도 따라하지도 못하겠어요. 그래서 친구들은 영어를 못하니까 친구 들어오면 내가 방언하는 체 한다고 영어를 빨리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야~ 너 방언 말하는구나.” 그러나 친구들을 속인만큼 마음에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진짜 기도가 안나와요. 거짓말했기 때문에.. 그래서 회개하기 바쁩니다. 그래서 안되겠어요. 기어코 성령을 받고야 말겠다고 친구들하고 삼각산에 올라가서 제일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니까 못 내려오겠어요. 캄캄해서... 그런데 옛날에 삼각산에 호랑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겁이 나서 또 눈을 감고 기도를 못하겠어요. 돌맹이를 잔뜩 갖다 모아놓고 돌을 손에 들고서 양사방을 살피면서 성령 태워주시옵소서. 하니까 마음에 집중을 할 수가 있어야지. 목적은 성령받는데 집중적으로 기도해야 되는데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중에 밤중이 넘어서는 안되겠다. 죽더라도 성령 받고 죽어야 되겠다. 돌도 다 놓고 나무를 끌어안고 전력을 기울여서 성령충만을 달라고 기도하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더라구요. 그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부터는 늘 성령이 내 위에 임하여 계신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기쁨이 늘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어린 소년과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들이 예수님을 믿고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어떻게 제가 한 번도 못 본 성령님을 믿으라고 합니까?” 그러자 전기공이던 아버지는“내가 그 방법을 가르쳐 주마”하고 아들을 데리고 발전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전기가 나오는 동력기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우리에게 빛을 주고 우리의 집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나오는 곳이 바로 이 기계란다. 우리는 전기를 직접 볼 수 없지만 그 힘이 기계 속에서 나온단다.” 그러자 발전소와 동력기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들이 “아~ 전기가 있다는 것을 이제 믿을 수 있어요.”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믿을 수 있지. 네가 전기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전기를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전기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았기 때문에 전기가 있는 것을 알지 않느냐.”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자신들의 삶 속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성령이 와 계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성도 속에 거하시면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과 즐거움이 초자연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오면 우리 마음에 비정상적으로 불안, 고통, 좌절, 분노 등이 생기지만,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 마음에 기쁨, 평안, 믿음, 소망, 사랑 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귀와 성령의 다른 점은 마귀가 오면 마음에 비정상적으로 불안, 공포, 좌절, 분노 등 부정적인 생각이 생깁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심한 스트레스로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뛰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다가옵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로 16절에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그리고 귀신, 마귀가 우리에게 와서 이와 같은 것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기쁨과 평안과 믿음, 소망,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마귀는 지옥의 고통을 가져오고 성령님은 천국의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을 자격이 있고 마땅히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서 생각하시기 때문에 내 생각을 하는지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내 생각 속에 성령이 성전삼고 와 계시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도할 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어떤 생각을 일으키는가를 조심스럽게 생각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알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저의 경험으로는 성령의 기적은 조금이라도 내 마음 속에 부어지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조금들어와도 기도가 달라지고 설교가 달라지고 분위기가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성령께서 와 계시는지 안계시는지 주여, 주의 사역을 해보는 사람은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함을 치고 모로뛰고 치로 뛰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시끄럽고 귀찮습니다. 그래 요란스러워도 성도들은 잠을 잡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부음이 오시면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끌어 당깁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는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설교가 잘 나오고 진리가 마음에 떠오르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설교뿐 아닙니다. 집안일을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유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같이 있는 개인은 없는 사람보다 유능하며 성령이 같이 있는 나라는 성령없는 나라보다 위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21세기는 어느 나라가 예수를 가장 많이 믿고 성령이 충만한가 그것이 그 나라가 선진국에 들어 가느냐 안들어가느냐를 결정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빨리 전도하고 우리 민족이 과반수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는다면 우리나라는 눈부시게 성장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온 천하에 복음을 증거하는 위대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님을 매일같이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성령께 의지해서 사십시오. 여러분보다 초인적인 능력을 구사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초인적으로 살도록 하나님이 같이 계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오늘도 하늘나라 역사를 나타내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주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주님께서 오늘 교회로 모아주시옵시고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무리 무능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이더라도 성령께서 임하시면 모세의 마른 지팡이가 권능의 지팡이로 변하듯이 변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다 변화받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인간적으로는 교육도 많이 받지 못하고 지헤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도 부족한 사람들이 많지만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도록 성령충만한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마귀의 일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다른 보혜사 성령이여, 처음 보혜사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천국을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임하시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보혜사 성령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마치 공기 없이 우리가 살 수 없지만 눈에 안 보이니까 무관심하고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숨을 안쉬고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러나 공기는 눈에 안보입니다. 공기 없이 살 수 없는 것 같이 성령이 없이는 영적으로 태어나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성령과 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작정하고 숨 호흡을 하면 폐 깊숙이 공기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한번 숨 호흡을 해봅시다. 휴~ 공기가 눈에 안보이지만 우리 속에 들어왔다가 나갔습니다. 성령님도 한가지입니다. 성령님도 공기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숨 호흡을 해서 모셔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으로 모셔 드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들어오시옵소서. 그렇게 하면 성령님이 여러분 속에 들어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무디(Dwight Lyman Moody) 목사님은 초등학교만 나와서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열심히 봉사하다가 주의 부르심을 받아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을 양손에 쥐고 흔드는 주의 종입니다. 하루는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나오자 여성도가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하는데 나는 한시간 내내 졸고 앉았다가 갑니다. 목사님 말씀은 잘하시는데 은혜가 없어요. 지금부터 목사님 은혜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까? “왜 나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말인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은혜가 없는 것은 자기가 못받아서 그렇지 내가 은혜가 없느냐.”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목사님 성령으로 충만하세요.”하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잘 못알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면서도 “하나님이여,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나이 34살 때 어느 11월에 뉴욕 거리를 걸어가면서 “하나님이여 제게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졌습니다. 길거리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니까 키가 큰 디엘 무디 목사님인데 그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되어서 빨리 친구집을 찾아서 친구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방을 하나 빌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성령의 불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나중에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여! 손을 떼 주시옵소서. 그대로 있으면 나 죽겠습니다. 그만 부어 주시옵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그때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다음에 말씀으로 미국과 영국을 뒤흔드는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어 수천만명을 주께로 이끌어 들이는 위대한 종이 된 것입니다.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말씀을 전할 때 성도들을 졸게 만드는 목사였는데, 성령을 받자마자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영적으로 태어나지도, 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능력 있는 사역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전도도, 설교도, 부흥회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인격을 갖고 계신 성령님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인격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뚜렷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격을 가지려면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즉 지, 정, 의를 가지고 있어야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조용기가 여기 서 있을 때는 인격자지만 제가 죽어서 쓰러져 버리면 그 다음에는 시체지 인격자가 아닌 것입니다. 지성도 감성도 의지도 떠나가 버리니까 인격자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의 구성요소를 다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무생물로 취급을 하면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지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27절에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
성령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여러분,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우리 생각과 양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내 마음속에 성령이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성령은 인격중에 지성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 하나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성령은 다 통달하고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전지하신 지성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
마음에 사랑이 부음바 되는 것도 성령이 마음에 넘치면 모든 미움을 극복하고 사랑이 넘쳐 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성령의 사랑이 마음 속에 부어지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같은 열매도 성령이 와서 맺어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가슴을 치면서 우리 위해서 기도하신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것을 알지 못하고 다른데서 방황을 합니다. 성령이 이것 위해서 기도하라는데 이것이 뭔지 모르고 저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탄식을 하면서 ‘에라 가만히 있어라. 내가 기도하마.’ 우리 입술과 혀를 빼앗아서 방언으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그냥 기도할 때 기도가 안나오고 답답하다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기도가 잘 나올 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실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은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모를 때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우리 권사님 한분 지역장으로써 구역회를 인도하러 가다가 종로 네거리에서 가슴에 기도가 솟아오르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왔다갔다 하고 기도할 자리도 없는데 가로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만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얼마나 큰소리로 방언으로 기도했던지 나중에 정신차려 보니까 사람이 인산인해로 둘러싸여서 구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친여자라고.. 그런데 가슴은 시원해요. 그래서 구역예배를 잘 인도하고 집에 들어가니까 도둑놈이 들어와서 온 마당에 옷을 다 갖다 널어놓고 서랍을 다 뽑아서 흩어 놓았어요. 그런데 현찰을 서랍 속에 좀 넣어 놓았는데 만일 그 현찰이 도둑 맞았으면 그날 그 남편에게 맞아 죽을 지경입니다. 그 남편이 경찰관입니다. 그래서 ‘아이구 하나님 나는 이제 죽었습니다.’ 얼어붙은 마음으로 뛰어 들어가서 서랍을 들춰보니까 다른 서랍은 전부 다 들춰놓고 난 다음 돈있는 서랍은 옷을 덮어 놓은채 손을 안댔어요. 하나님이 도둑놈 눈을 막아 버렸습니다. “야! 이것은 보지마라! 이것은 너 볼 것 아니다.” 그래서 살아났습니다. 만일 기도 안했더라면 도둑놈이 그 돈 가져 갔었으면 살아남겠습니까? 남편에게 얼마나 구박을 당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성령은 근심, 걱정을 하는 감정을 가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령은 결의한 의지를 가지십니다. 성령이 결정하면 우리가 성령의 마음을 변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로 7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선생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니까 성령이 못하게 하고 비두니아는 못 가게 한 것입니다.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갖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1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성령이 은사를 주실 때도 우리가 원하는대로 주시는 것 아닙니다. 성령이 보아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지, 정, 의를 가진 성령으로써 우리에게는 보혜사로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보혜사 영어로는 콘포터.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란 무엇이냐, 보혜사란 곤고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부름을 받아 와서 곁에서 도와주는 자입니다. 어렵고 곤고한 사람을 도와주는 변호사로써 곁에 와서 도움을 베푸는 분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을 위해 변호하고 권고하며 위로하므로 그 사람을 굳세게 하는 것입니다.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 위로 받으라.” 힘을 주는 것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또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다주는 협력자가 보혜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 우리에게 힘을 보태어서 함께 싸워 주셔서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이 보혜사입니다. 보혜사의 역할은 돕는 자며, 교사며, 위로자며, 대언자며, 상담자인 것입니다. 인격을 가진 성령께서 놀러 와서 계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보혜사로 와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보혜사 성령인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에는 다른 보혜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보혜사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보혜사로써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가르치고 위로하고 대언하시고 상담해 주시고 대속해 주셨지만 예수님이 가시고 난 다음에 온 분은 똑같은 보혜사인데 다른 보혜사입니다. 다르다는 헬라어는 알로스. 똑같은데 다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똑같은데 예수님 몸을 가지고 오시고 보혜사는 영으로 오셨습니다. 그것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을 모시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뜻을 따라 역사하지 예수님을 떠나서는 죽어도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 삼위로써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2. 성령님의 역사
모든 일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체가 되어 일하시나 그 특성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가 일하시나 그러나 그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을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좇아 그 만물을 만드시고 구속하시고 성령님은 만물을 유지하시고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똑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지만 맡은 직분은 다르면서 또 함께 계시고 함께 계시면서 다릅니다. 아버지 안에 예수님과 성령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아버지와 성령님이 계시고 성령님 안에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는 아버지 하나님시대로써 예수님과 성령님은 아버지 안에 있었습니다. 신약초기 예수님 시대에는 아버지와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 계셨습니다. 지금은 성령시대니까 아버지와 예수님이 성령 안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절대로 서로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시는 사역을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이 말에 주의하십시오. 한달 동안 함께 같이 있으리니 1년 동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토록 시도 끝도 없이 너와 같이 하겠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성령이 계시고 여러분 속에 지금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성령을 통해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령이 우리 마음문을 열어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에게 성경 펼쳐 놓아 보세요. 전혀 모릅니다.
제가 불광동에 있을 때 대학교 교수님 한분이 부인은 열심히 예수를 잘 믿는데 본인은 안 믿어요. 안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 글자가 하나도 안보여요. 그래서 부인이 나를 집으로 직접 오라고 해서 따라 가니까 한번 실제로 보라고... 자기 남편을 신문 읽으라니까 줄줄 잘 읽어요. 성경을 펼쳐 주니까 한마디도 못 읽어요. 그것 왜그러냐니까 안보인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어른 거려서 눈에 안보여요. 그 다음 회개하고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신문은 잘 못읽어도 성경은 그렇게 잘 읽더라구요.
요한복음 14장 25절로 26절에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계셔야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만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 진리도 다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가르켜주는 영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나게 해주세요. 여러분 나이 먹으면 제일 걱정 되는 것이 치매 걸릴까 싶어 제일 걱정이 됩니다. 나이 먹으면 자꾸 잊어 버려요. 제일 잘 잊어 버리는 것이 이름입니다. 금새 했는데 금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야~ 나 이러다가 치매에 걸리지 않겠느냐.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계시면 치매에 안걸립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붙들어서 기억나게 해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뇌세포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기억나게 하시는 능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기적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면 여러분 세상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세상 마귀를 꾸짖습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로 8절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이 오시면 꾸짖으러 오시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예수 안믿는 것이 죄입니다. 이 세상에 다른 모든 죄도 다 많지만 예수를 믿으면 그 피로써 다 씻음을 받고 청산을 받습니다. 우리가 지옥 가는 것은 우리 죄로 말미암아 가는 것이 아니라 안믿어서 지옥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다 갚아 놓았는데 안 믿기 때문에 불신앙으로 지옥갑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라면 저가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면 너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할터이요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왜냐하면 우리는 부처님의 무덤도 가볼 수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의 무덤에도 가볼 수 있습니다. 마호메트 무덤에도 가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에는 가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안계십니다. 부활해서 승천해 버렸습니다. 무덤이란 뭐냐, 죄의 감옥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갑니다. 그 죄를 못갚은 이상은 감옥살이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종신징역, 영원징역형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인류의 모든 죄를 다 갚았으므로 감옥에 있을 필요가 없이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 증거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사 아버지께로 가버렸으니 너희가 날 찾아와도 무덤에 와도 나를 못볼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의에 대하여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요 심판에 대하여라면 이 세상 마귀가 심판을 받은 것이라. 아담과 하와를 꾀던 원수마귀는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마귀의 모든 주권을 해제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께서는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은 우리의 모든 생활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장님에게는 안내하는 사람이나 안내개가 꼭 있어야 되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도 내일 일어날 일을 모르는 장님입니다. 성령이 우리 눈을 밝혀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2절로 14절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성령의 진리도 가르쳐 주시고 세상의 진리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하면 세상 공부도 잘하게 돼요. 하나님 머리도 좋게 만들어요. 그래서 세상에도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장래 일을 가르켜 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미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저는 미국에 많은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주의 종을 다 데리고 올려니까 그때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신학교를 세워서 학생들을 양성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생각이 기도할 때마다 떠올라요. 그래서 미국에 있던 박여호수아 목사님와 그 사모님, 권사님과 함께 LA 안에서 조금 떨어진 섬에 가서 하루 종일 금식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이여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내 생각입니까? 나는 돈이 없으니까 여기에서 학교를 시작할 수도 없는데 마음 속에 자꾸 신학교를 시작해서 신학생을 양성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이게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하루종일 기도했는데 생각은 안바뀌어지고 배만 고팠습니다. 도저히 배가 고파서 오후가 되니까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섬 밖으로 나와서 그날 저녁에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내가 그 간증을 했습니다. 돈은 한푼도 없는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학교를 세우라고 하니까 기가막힐 노력이에요. 땅팔 노릇이다. 그 설교를 하고 나오니까 한 젊은 사업가가 오더니만 자기가 안쓰고 비워 놓은 집이 한 채 있는데 학교 세울 때까지 내 집을 쓰세요. 그러더랍니다. 그것 진짜냐고 하니까 진짜라구.. 조그마한 한칸집 아니니까... 큰집이라고 그래요. 가보니까 큰집이에요. 방이 여러개 있는 큰 집이에요. 그래서 왠 떡이냐. 그냥 받아서 거기에서 신학교를 시작한 것이 배데스다대학교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해서 성령의 생각을 우리 마음 속에 넣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생각지 않게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일어나고 생각이 자꾸 그리를 통해 나오며 양심에 거리낌없이 생각이 나오면 성령이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 마음에 소원과 생각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대게 마음에 뜨거운 소원과 생각을 통해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뜨거운 소원과 생각이 내 양심을 통해 걸러나올 때 부끄러움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한다고 우리가 작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뭐 특별히 환상을 보고 계시를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지요. 또, 귀에 음성이 들려오면 더 좋겠고... 그러나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고급적인 것은 오지 않고 그저 생각이 자꾸 계속해서 머리에 남고 마음에 소원이 줄기차게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줄 알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와 같이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성결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부패한 자식들인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부패한 심신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거룩함과 의로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거룩하신 분으로써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들어와서 우리 속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우리도 거룩하고 깨끗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우리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능력이 없이 우리는 부패한 인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성령님에 의지하고 성령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래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서는 또한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도 굉장히 능숙하게 기도하지 못합니다. 전도도 잘 못해요. 말씀 증거는 더 힘듭니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늘 묻습니다.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 그래서 내가 한평생 걸립니다. 뭐 엎드려서 연필 들고 종이 위에 적으면 설교가 나오는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평생을 살아온 과거를 말씀 속에 현재 비춰보고서 주의 성령께 인도해 달라고 간청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증거한다는 것은 혼신을 다하여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요, 뼈에 기름을 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대로 만담하는 식으로 해가지고 하나님의 영혼을 어떻게 인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한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은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 우리 스스로가 못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도와주는 분이 옆에 와 계신데도 불구하고 그 도와주는 분을 무시해 버리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 혼자 발버둥 치다가 실패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팔자입니다. 그러나 도와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나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내게 힘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부탁할 때 성령이 우리에게 도우심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의 임재
여러분 성령이 함께 하시면 얼마나 우리 마음속에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인생은 혼자 살기에는 정말 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난 다음 그 아름다운 에덴동산에 혼자 있으니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에덴 동산이 조그마한 여의도 같은 동산이 아니었습니다. 큰 동산이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동산인데 뭐 자동차가 있어야 타고 돌아다니지 자전거도 없는데... 걸어서 돌아다닐 수 없어서 아담이 볼 수 있는 것은 조그마한 것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있으니까 외로워 견딜 수가 없어요. 궁궐이라도 임금혼자 살라고 하면 감옥입니다. 초가삼간이라도 함께 있으면 궁궐보다 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인생을 살 수 없을 때 마음 속에 위로하는 성령이 함께 계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와 함께 계신 분이 계신다. 너는 온전히 혼자 있지 아니하다. 성령이 함께 계신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라. 성령이 와서 도와주신다. 많은 사람이 괴로우면 자살하지 않습니까? 사는 것이 별 볼일 없다. 살아도 효과가 없다. 더 살아서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만 죽어 버리자. 마귀는 와서 죽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아니 재밌어. 재밌어.. 나는 어떻게 하고, 내가 너와 함께 있는데.. 나에게 구하라 내가 생명의 역사를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령님은 끊임없이 우리와 교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있어도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늘 함께 와 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 먹고 나면은 속이 늘 쓰리잖아요. 잘먹고 나면 속이 시원하잖아요. 마귀가 들어와 있으면 속이 삐뚫어지지만 성령이 들어와 있으면 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도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지금도 여러분 속에 성령이 계십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지금 내 속에 성령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전이 되어 계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이 기도하면 속에 계신 성령이 여러분 위에 임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곁에 계시고 안에 계시고 위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 곁에 있고 믿는 사람은 속에 중생의 영으로 와 있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성령이 임하시는 체험을 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되고 그 결과로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방언을 안하고 천당갈 수 있느냐. 묻는 사람이 있는데 물론 천당가지요. 천국은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거듭나게 하시고 생수의 근원이 되어서 천국 갑니다. 그러나 권세와 능력을 받으려면 성령세례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증거로써 우리가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저는 정말 성령충만을 받는 체험을 하지 못해서 애를 많이 썼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친구들은 다 성령받고 방언을 말하는데 나는 방언을 흉내내 봐도 따라하지도 못하겠어요. 그래서 친구들은 영어를 못하니까 친구 들어오면 내가 방언하는 체 한다고 영어를 빨리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야~ 너 방언 말하는구나.” 그러나 친구들을 속인만큼 마음에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진짜 기도가 안나와요. 거짓말했기 때문에.. 그래서 회개하기 바쁩니다. 그래서 안되겠어요. 기어코 성령을 받고야 말겠다고 친구들하고 삼각산에 올라가서 제일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니까 못 내려오겠어요. 캄캄해서... 그런데 옛날에 삼각산에 호랑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겁이 나서 또 눈을 감고 기도를 못하겠어요. 돌맹이를 잔뜩 갖다 모아놓고 돌을 손에 들고서 양사방을 살피면서 성령 태워주시옵소서. 하니까 마음에 집중을 할 수가 있어야지. 목적은 성령받는데 집중적으로 기도해야 되는데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중에 밤중이 넘어서는 안되겠다. 죽더라도 성령 받고 죽어야 되겠다. 돌도 다 놓고 나무를 끌어안고 전력을 기울여서 성령충만을 달라고 기도하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더라구요. 그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부터는 늘 성령이 내 위에 임하여 계신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기쁨이 늘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어린 소년과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들이 예수님을 믿고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어떻게 제가 한 번도 못 본 성령님을 믿으라고 합니까?” 그러자 전기공이던 아버지는“내가 그 방법을 가르쳐 주마”하고 아들을 데리고 발전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전기가 나오는 동력기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우리에게 빛을 주고 우리의 집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나오는 곳이 바로 이 기계란다. 우리는 전기를 직접 볼 수 없지만 그 힘이 기계 속에서 나온단다.” 그러자 발전소와 동력기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들이 “아~ 전기가 있다는 것을 이제 믿을 수 있어요.”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믿을 수 있지. 네가 전기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전기를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전기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았기 때문에 전기가 있는 것을 알지 않느냐.”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자신들의 삶 속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성령이 와 계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성도 속에 거하시면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과 즐거움이 초자연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오면 우리 마음에 비정상적으로 불안, 고통, 좌절, 분노 등이 생기지만,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 마음에 기쁨, 평안, 믿음, 소망, 사랑 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귀와 성령의 다른 점은 마귀가 오면 마음에 비정상적으로 불안, 공포, 좌절, 분노 등 부정적인 생각이 생깁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심한 스트레스로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뛰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다가옵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로 16절에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그리고 귀신, 마귀가 우리에게 와서 이와 같은 것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기쁨과 평안과 믿음, 소망,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마귀는 지옥의 고통을 가져오고 성령님은 천국의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을 자격이 있고 마땅히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서 생각하시기 때문에 내 생각을 하는지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내 생각 속에 성령이 성전삼고 와 계시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도할 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어떤 생각을 일으키는가를 조심스럽게 생각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알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저의 경험으로는 성령의 기적은 조금이라도 내 마음 속에 부어지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조금들어와도 기도가 달라지고 설교가 달라지고 분위기가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성령께서 와 계시는지 안계시는지 주여, 주의 사역을 해보는 사람은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함을 치고 모로뛰고 치로 뛰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시끄럽고 귀찮습니다. 그래 요란스러워도 성도들은 잠을 잡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부음이 오시면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끌어 당깁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는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설교가 잘 나오고 진리가 마음에 떠오르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설교뿐 아닙니다. 집안일을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유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같이 있는 개인은 없는 사람보다 유능하며 성령이 같이 있는 나라는 성령없는 나라보다 위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21세기는 어느 나라가 예수를 가장 많이 믿고 성령이 충만한가 그것이 그 나라가 선진국에 들어 가느냐 안들어가느냐를 결정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빨리 전도하고 우리 민족이 과반수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는다면 우리나라는 눈부시게 성장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온 천하에 복음을 증거하는 위대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님을 매일같이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성령께 의지해서 사십시오. 여러분보다 초인적인 능력을 구사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초인적으로 살도록 하나님이 같이 계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오늘도 하늘나라 역사를 나타내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주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주님께서 오늘 교회로 모아주시옵시고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무리 무능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이더라도 성령께서 임하시면 모세의 마른 지팡이가 권능의 지팡이로 변하듯이 변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다 변화받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인간적으로는 교육도 많이 받지 못하고 지헤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도 부족한 사람들이 많지만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도록 성령충만한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마귀의 일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다른 보혜사 성령이여, 처음 보혜사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천국을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임하시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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