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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686 추천 수 0 2010.03.12 23: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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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7:14~2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10. 1. 24. 주일설교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14~25)

여러분의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우리 형제 자매들이 도움을 받게 되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고 행복도 나눌수록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찌하든지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고, 불행하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다가 주님 나라에 가게 되기를 바라 맞이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사랑과 행복을 갖다 주시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예수님이 여기 계십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의 탄식 제목을 가지고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항상 마음속에 하나님 앞에 서면은 마음에 죄책을 느낍니다. 전혀 마음에 죄책을 느끼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 드릴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드릴 때 죄부터 먼저 회개하고 난 다음에 내가 아뢸 말씀을 하나님께 아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전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우리 소원은 죄를 짓지 않고 온전히 의롭게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위대한 사도 바울 조차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했습니다. 바울 조차 탄식 했으니 우리 같은 조무래기야 뭐 탄식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본론>
1. 성도의 내적 전쟁
그런데 우리 신앙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을 때 큰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마음에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 귀천할 것 없이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우리는 받고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순복음가족신문에 “새신자”코너가 있어서 새로 등록한 성도님들의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동작대교구 김영순 성도님은 타 종교 가정이었는데, 노방 전도를 통해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전도를 외면했지만 몸이 약한 성도님께 유병희 권사님이 꾸준히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과 평안을 얻고 무엇보다도 덤으로 건강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오면 구원도 평안도 건강도 얻을 수 있으니 교회 나오라”고 청했습니다. 김 성도님은 교회에 출석한 후 건강이 급속도로 호전되었고, 마음에도 평안이 찾아와 밝은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 성도님은 이러한 자신의 변화에 기뻐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제 저는 성경책과 각종 신앙서적에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고 싶습니다.” 김 성도님은 육체의 건강과 함께 영적 건강에도 힘쓸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내가 예수님 믿어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밤에 잠도 잘 오고 참 좋더라.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니 마음이 평안하고 이제 내가 할 일은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구원 받는 확신을 갖게 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있으면 좋은데 내 속 사람은 확신이 있고 기쁜데 내 육체의 사람이 마귀의 유혹을 계속 받는 것입니다. 세상 마귀의 유혹과 육신의 정욕의 공격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5절로 24절 말씀대로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참말 아닙니까?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안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참말은 안하고 원치 않는 거짓말은 잘하고 내가 원하는 사랑은 안하고, 원치 않는 미움은 잘 미워하고 자꾸 우리 삶 속에 이러한 타격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6~18)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없으니 내 마음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싶어도 육신에 있는 악이 선과 싸워서 우리를 악하게 만들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6~17)
내가 원치 않는데 그것을 행하니까 그것은 내가 자원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속에 있는 죄에 끌려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1~24)
예수 믿고 난 다음 기쁨과 평안과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리 육체 속에 있는 죄가 우리를 악으로 이끌어 갑니다. 늘 넘어집니다.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께서 힘을 주셔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힘으로 결단으로 되지가 않습니다. 구원을 받기 전에는 오히려 죄에 대해서 무관심 했는데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마음 속에 다가오는 죄책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박수미 자매님이라는 부인이 딸 아들 오누이를 키우면서 살았습니다. 남편은 6.25사변 때 전투에 나가서 전사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장사를 하면서 딸과 아들을 길렀는데 예수를 처음 믿고 난 다음에 얼마나 좋아하던지 제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박수를 치고 손을 들고 할렐루야를 하고 정말 구원을 받아 이제 외롭지 않다. 매일같이 밤이면 애들 잠재워 놓고 울었는데 이제는 예수님 마음 속에 들어와서 울지 않게 되고 행복하게 되었다고 그랬는데 얼마간 있다가 제게 아주 마음이 굉장히 괴로운 모습을 가지고 찾아 왔어요. 그래서 “박수미 자매님 어떻게 해서 이렇게 왔습니까?”하니까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믿으렵니다.” “아니 여태까지 교회를 잘나오고 새벽기도에서 철야기도, 주일예배 꼭 나오던 분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요~ 예수 믿기 전에는 마음이 편했어요. 노방장사를 하게 되면 거짓말을 많이 해야 됩니다. 싱싱하지도 않는데 싱싱한 물건이라고 그러고 비싸게 받으면서 싸게 판다고 이러고 남으면서도 나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이러고 할 수 없이 거짓말을 매일같이 하면서 장사를 해야 되는데 옛날에는 거짓말을 해도 아무 마음에 고통이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신앙이 깊어질수록 이제는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요. 거짓말도 이제는 잘 못해요. 더듬거리고..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셔서 도저히 거짓말을 하고 살 수가 없고 정직하게만 살아야 되겠는데 애 둘을 키우자니까 장사 안할 수 없고 장사하자니까 거짓말 안할 수 없으니 교회 가봤자 나 같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기 알맞습니다. 애들 공부 다 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고 난 다음 나이 늙어 이제 장사할 수 없을 때 그때 내가 다시 올테니까 이제 마지막 하직인사 하러 왔다.”고.. 내가 콱 붙잡았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절대로 안돼지요. 왜냐하면 우리 에수 믿는다고 해서 당장 천사가 되는 것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 속사람이 변화를 받고 구원을 얻지 겉사람은 변화를 받고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겉사람은 우리가 늘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속은 겉사람을 통해서 우리 속사람을 흔들어 놓아도 우리가 흔들리면 안됩니다. 우리가 한꺼번에 천사가 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도 적은 어린 갓난 아기로부터 자라는 것처럼 신앙도 적은 신앙에서 점점 자라서 거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지 한꺼번에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구원받아 놓았으니까 이제 구원받은 사람처럼 살도록 하나님 성령이 와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한 숟가락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거짓말 조금씩 하면서 장사하세요.” 그러니까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예? 거짓말 좀 하면서 장사해도 괜찮아요?” “원래는 안 괜찮은데 내가 특별히 허락해 주니까 조금씩 거짓말하고 장사하고 저녁에는 꼭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 이 거짓말 안하고 장사하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더니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더니만 나갔어요. 거짓말을 조금씩 하면서 장사를 했어요. 그러나 자꾸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니까 정말로 거짓말하고 장사할 수가 없거든. 점점 정직해졌는데 나중에 소문이 꽉 났어요. 박수미씨 파는 물건은 다 진짜다. 다른 사람은 다 거짓말해도 저 아주머니는 거짓말 안한다. 참말이다. 그래 해가지고서 참말을 하니까 거짓말 할 때보다 장사가 더 잘됐습니다. 나중에는 제게 찾아와서 “목사님, 거짓말 안해도 장사를 잘하고 살게 되니 희한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구역장이 되고 나중에는 권사까지 되었습니다. 김수미 권사 아직 내 마음속에 다 뚜렷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아들, 딸들 공부 잘 시켜서 미국으로 유학까지 보내고 지금 미국에 들어가서 아들, 딸들하고 같이 살고 있습니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사탄이 어떻게 우리를 유혹하는가?”라는 글에서 구원 받은 확신을 가진 우리에게 마귀가 어떤 방법으로 유혹하고 공격하는 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마귀는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습니다. 욕심과 게으름, 권력욕과 성욕 등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구원 받은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하고 마귀의 종으로 만듭니다. 세상을 자꾸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둘째, 마귀는 우울함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마음에 불행하게 만들고 슬프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자살까지 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셋째, 마귀는 구원의 신앙 자체에 대해서 의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네가 죄를 용서받기는 무슨 죄 용서를 받았어?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또 죄를 이렇게 짓니? 이것 다 형식이야, 거짓이야, 구원 못 받았어.’ 그렇게 마음 속에 의심을 주어서 신앙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타락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를 유혹하거나 공격하여 성도의 마음에 내적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구원받은 성도답게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내 마음에 육체 속에 있는 악이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악과 싸우면서 피투성이가 되고 회개하게 되고 울부짖게 되고 고난을 당케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하고 평안하고 기쁘다는데 이렇게 괴로울 줄 몰랐다. 사실 행복하고 기뻐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하니 기쁘고 평안하고 좋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은 세상에 삶으로 마귀의 공격을 받고 정욕과 탐욕으로 끌려 다니니까 그와 싸워서 이기려니 상당한 투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알아야 될 것은 우리의 힘으로 구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구원은 은혜의 선물
조금 전에 내가 점심을 먹고 여기 설교하러 올라오려고 하는데 우리 손녀딸 성현이가 내게 와서 “할아버지!” “왜?” “카톨릭과 신교가 뭐가 다릅니까?” 방대한 질문을 내게 했습니다. 그것을 다 설명하자면 며칠이 걸릴 것인데 간단히 말을 해줘야 돼서 내가 상당히 고민을 하다가 “카톨릭과 신교가 다른 것은 신교는 성경 말씀대로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인데 카톨릭은 예수도 믿고 좋은 일도 해야 구원을 받는다. 인간 행위를 보탠다. 그래서 카톨릭은 신교와 다른 것이다.” 다른 데가 많이 있지만 그러면 “카톨릭 믿으면 지옥 갑니까?” “지옥은 꼭 간다고 말할 수 없지만 카톨릭을 믿으면 선한 행위를 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하므로 신앙이 약해진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러므로 신교도 교회 왔다갔다 하면서 열심히 주님을 믿지 아니하면 가짜가 되는 것처럼 카톨릭도 가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다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으므로 비평하면 안 된다. 위해서 기도해 주고 함께 협조해서 살아야 된다.”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내가 속으로 알기는 뭘 알았겠나? 내 설명도 옳지 못하는데.. 그러나 저가 한가지 말씀하고 싶은 것은 구원은 하나님이 절대로 공짜로 준 은혜지 우리 행위가 거기에 보태지는 것 아닙니다. 행위가 보태진다면 구원받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 우리가 성자가 안되는 이상, 천사가 안 되는 이상 구원받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 밤낮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만하고 돌아다닐 따름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5절로 7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거저 받았다. 공짜로 받았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거기에 무엇을 보탠 것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슨 가치나 자격에 의해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장로교 장로님 한 분이 새벽기도를 나왔는데 꿇어 앉아서 한 두 시간씩 기도를 하는데 늘 하는 말이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래서 “거기 무슨 기도가 그런 기도가 있어요?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무엇이 감사한게 있어야지 자꾸 그저 그저 감사하다니까 뭐가 그저그저 감사합니까?” “목사님, 그런 말하지 마세요. 나는요 북한에서 6.25를 맞아서 그 무서운 공산 치하에서 벗어나서 구사일생에서 남한에 걸어왔는데 우리 집사람하고 자식들하고 무사히 내려왔어요. 그래서 또 일사후퇴 때 저 부산까지 내려가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병들지 않고 살아서 다시 서울로 왔어요. 또 서울에 왔어도 명동에서 제가 장사를 하고 있는데 장사를 해서 애들 교육시키고 먹고 살아요. 그리고 또 이렇게 예수 믿고 아침에 천막교회 와서 기도할 수 있으니 그저그저 좋지 않습니까? 나는 그저그저 주님의 도움으로 살았지 내 힘으로 산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별난 영감도 다 있다. 그저그저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사이 가만 생각해 보니까 그저그저 고마운 것밖에 없어요. 아무것도 내가 한일은 없으니까. 그저그저 공짜로 받았으니 고맙습니다. 구원만은 절대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10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러분 선물 돈주고 받습니까? 내가 손물 갖다주는데 돈 내 놓으면 여러분 그 돈 받겠습니까? 선물은 공짜로 받는 거에요.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거에요. 여러분이 뭐 잘해서 그 공로로 주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행위에서 그 결과로 구원을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짜로 준 것이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행위로써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9)
하나님 미리 구원을 예비해 놓고 우리를 불러서 예수님 보혈로 구원을 받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보면은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섞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황청이 권위와 행함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에 대해 로마 교황청은 ‘오직’이라는 말을 버려야 된다. 오직이라는 말을 안 버리면 사형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오직 믿음이 아니라 행함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믿고 행해야 구원 받는다. 그렇게 설교를 해라. 또 오직 말씀이라고 하지 말고 말씀도 있지만 교황의 말씀도 함께 지켜야 된다. 오직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공로도 있어야 인간이 구원 받는다. 오직이라는 말을 떼라” ‘오직’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사람은 잡아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교황청으로부터 재판정에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루터 역시‘오직’이라는 단어를 버리지 않으면 형장의 이슬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에게 타협할 것을 권면하며 만류했습니다. 루터는 “재판정의 지붕을 덮은 수많은 기왓장이 악마로 변해 나를 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경할 수 없고 취소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일 뿐 우리의 행위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아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여러분 행위를 보태야 구원을 받는다면 여기 구원받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강단에 서있는 조용기부터 먼저 낙제생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주님이 십자가에 이루어 놓으신 그 귀하고 귀한 구원을 값 주고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다 이룬 것입니다. 남은 것 하나도 없어요. 다 해버린 건데 뭐 우리가 보태고 뺄 것 없어요. 나의 일생의 죄와 벌을 대신하여 완전하고도 영원히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주님이 완전하고도 영원히 청산해 버렸는데 뭐 할 것이 있어요? 잔칫날에 딸래미가 늦게 와서 어머니가 고생하면서 음식 다 만들어 놓았는데 “엄마 내가 도와 줄께! 뭐 도와줄까?” 엄마가 소매 걷으며 엄마가 “야, 내가 다 만들어 놓았다. 네가 도울 것 아무것도 없다. 그냥 방에 들어와 있어라!” “아니 내가 좀 도와줘야지!” “그런 소리하지 마라. 내가 고생해서 다 했으니 날보고 칭찬할 것이지. 네가 훼방하지 마라.”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2절로 14절 보면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따라 말씀하세요. 내가 예수 믿고 영원히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빚을 영원히 전부 다 갚아 버렸으니 갚을 빚이 없어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여러분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 은혜로 공짜로 영원히 용서를 받아 버렸었으니 이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재물이 된 것은 한시적인 재물이 아닙니다. 영원 전에서부터 영원 끝까지 모든 죄를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 구원은 자기가 잘났다고 자랑하지 못합니다. 나는 나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전적 은혜의 선물로 받은 구원을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음이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거기는 다 갚아야 그 감옥에서 나와요. 사흘 만에 우리의 죄를 다 갚아버리고 부활하셨으므로 주님은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죄에서 영원히 해방되고 의로운 선물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행위대로가 아니고 은혜대로.. 그러므로 행위대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받은 구원이 성령의 능력으로 나의 삶에 이뤄지기 위하여 우리가 싸우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미 받아 놓았는데 이것을 자꾸 빼앗으려고 육체를 통해서 공격해 들어오는 마귀와 정욕과 싸우는 것은 이미 얻어 놓은 구원을 우리는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았으니 싸우는 것입니다. 싸움에 많이 이겨서 점점 구원받은 그 사실이 내 생활 속에 나타나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상급을 받을 것이요, 자꾸 넘어지면 칭찬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걱정을 듣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실제로 우리 속사람은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되었어요. 그걸 모르고 있으니까 마귀가 육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꾸 공격을 하지요.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을 알면은 당당히 일어나서 대적하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로 14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보십시오. 이제 우리가 영으로써 성령을 의지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대항해서 싸워야 됩니다. 끝까지 싸워야 돼요. 완전히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99.9%까지 이긴 사람 있을는지 몰라도 100% 이긴 사람은 아직 나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싸워야 돼요. 싸우는 사람은 천국가는 것이나 안싸우고 그냥 육신이 원하는대로 끌려가면 그 사람은 구원도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다 이겨놓은 전쟁을 내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미 다 이겨놓은 전쟁을 내가 싸워야 돼요.
골로새서 2장 15절에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어린 아기는 태어날 때 이미 일어나 앉고, 기고, 서고, 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장애아가 아닌 이상 정상적인 어린 아이는 태어날 때 이미 일어나고 앉고 기고 서고 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새삼스럽게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 아기가 일어나 앉고 기고 서고 달리게 되는 것이 실제로 몸에 이루어질 때까지는 수없이 넘어지고 할퀴고 상처를 입고 난 다음에 일어나서 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 아기를 낳아서 길러 보셨지요? 응애~ 하고 일어나서 뛰는 아기 봤습니까? 어머니 배에서 떨어지자 마자 뛰는 아기 봤습니까? 똥싸고 오줌싸고 기고 할퀴고 넘어지고 무릎이 깨어지고 그러면서도 자꾸 일어나 뛰려고 노력하는 어린 아기는 얼마 있지 않아 성장해서 일어나 뛰고 나중에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가 온전하게 되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다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생활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합니다. 많이 넘어지고 많이 자빠지고 자꾸 죄를 짓고 자꾸 회개하고 할퀴고 탄식을 하고 그러면서도 발버둥을 치면은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지고, 내명년은 또 명년보다 나아지고.. 자꾸 우리는 나아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주님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미 구원을 받아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육신을 따르는 자의 생각으로 악하고 죄된 생각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로 22절에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라”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적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육신의 생각대로 살지 말고 성령으로서 육신의 생각을 죽이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싸움인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우리 속에서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저항하지 않지만 산 사람은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도와주셔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인 것입니다. 이것도 한 번에 맺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또 간구하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또 일어나고 그러면서 점점 맺어져 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눈 깜박할 사이에 믿음으로 받지만 구원이 우리 생활 속에 이루어지는데는 이러한 싸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슴을 치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아휴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교회 가겠노? 교회 나가서 찬송 잘 부르고 기도 잘하고 난 다음에 집에 와서는 또 화내고 신경질적이고 이게 무슨 신자냐?” 신자입니다. 속에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런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 안받은 사람은 그런 싸움이 없습니다. 죄를 지어도 편안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속사람이 변화 되었기 때문에 겉사람에 공격을 해오면 거기에 상처를 입게 되고 싸움을 하는데 고난할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은혜로 구원받은 이후에 육신과 성령의 치열한 싸움이 우리 속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텍사스에 사는 예인츠라는 농부는 정부와 은행으로부터 큰돈을 빌려서 거대한 농장을 건설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1929년 미국 경제의 중추인 뉴욕의 윌가로부터 시작된 경제 대 공황으로 은행의 이자가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예인츠는 높은 이자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파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석유 탐사대가 예인츠의 농장을 지나다가 그 밑에 어마어마한 석유가 매장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 개발하여 퍼 올린 석유가 8만 드럼이 넘었었습니다. 예인츠는 자신이 거대한 부자라는 것을 그 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있는 농장의 밑에 8만 드럼도 넘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어요. 그 석유만 팔아도 평생 먹고 남음이 있고 거대한 부자인데 그것을 모르니까 농사에 빚이 져서 파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몰랐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속에 보혜사 성령이라는 거대한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 영혼과 더불어서 우리를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는 그 위대한 힘이 들어와 있는데 성령이 들어와 계신 것을 모르고 우리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넘어지고 안되니까 “나는 천국갈 수 없겠다. 난 낙심하고 말겠다.”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어마어마한 능력을 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안믿는 사람하고 무엇이 다릅니까? 안 믿는 사람은 속에 성령이 없습니다. 마귀와 세상만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들어와 있어요.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삶으로 죄가 들어오면 죄와 싸우게 되고 마귀와 싸우게 되고 세상과 싸우게 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낙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실상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아무리 우리 마음과 삶에서 육신과 성령이 격렬한 싸움을 한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다 이겨 놓은 전쟁에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구원은 받은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 어떤 싸움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들의 싸우는 무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됩니까? 싸울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까?
에베소서 6장 14절로 18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제 우리가 매일매일 생활하는데 사도바울 선생은 로마 군인들이 무장을 그대로 하나님 말씀을 설명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로마시대에 군인들이 무장하고 있던 그 무장을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 이 허리가 우리 몸의 중심인 것입니다. 허리를 다치면 꼼짝 못해요. 허리를 다치면 노동도 못해요. 사무도 보지 못해요. 허리가 튼튼해야 몸이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뱃가죽이 허리에 붙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제가 부흥회를 많이 인도했기 때문에 아는데요. 뭐 이 정도의 군중이 들어오면 고함칠 필요 없어요. 잔잔히 말해도 되는데 군중이 10만명, 20만명, 50만명, 100만명이 모여 있으면 내 있는대로 고함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가 등에 붙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허리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는지 이렇게 오그러져요. 밥을 많이 먹어야 뱃심으로 설교를 하지 밥을 많이 안 먹으면 나중에 허리가 딱 배가죽에 붙어 가지고서 쓰러져요. 그것을 제가 종종 느꼈습니다. 그 로마 군인들은 허리 띠를 단단히 조였습니다. 몸 중심이 튼튼히 서라고..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잡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힘은 성경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야지 말씀 밖에 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인 것입니다.
미국 사우스 다코다 주(State of South Dakota)에 있는 러시모어 산 (Mount Rushmore)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네 명의 대통령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독립전쟁을 이끈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광대한 미 대륙의 기초를 일군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노예 해방으로 자유와 인권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한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오늘날 미국을 세계의 중심 국가로 융성하게 한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인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이념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자리에서 “성경이 아니면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습니다. 성경을 허리띠로 삼았어요.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로서 “미합중국은 성경을 반석으로 삼아 서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성경에 입각한 나라를 세웠습니다. 링컨은 언제나 성경을 곁에 두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루즈벨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부모 밑에서 성장하여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연소자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늘“어떠한 일을 하든지 자기의 생을 참되게 살기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권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의 대통령 중에도 뛰어난 네 사람의 대통령이 모두 다 성경으로 말미암아 살고 성경으로 말미암아 나라를 다스리고 성경에 의해서 그들은 대통령이 되었다고 자백했습니다. 성경을 우리의 힘으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총명이나 모략이나 재능을 힘으로 삼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학교 공부를 많이 못했어도 집안이 훌륭하지 못해도 성경을 허리에 감으면 장사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장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우리는 늘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띠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귀의 훼방을 능히 물리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우리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나눠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입니다. 적이 쏘는 화살이나 찌르는 창 못들어 오게 가슴을 보호하는 흉배인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면 우리가 의의 흉배니까 정의롭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마음에 결심을 안하고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살아서는 안돼요. 마음에 흉배를 붙여야 돼요. 각오를 해야 돼요. 나는 정의롭게 살겠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정의롭게 살겠다. 그렇게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나는 새사람을 입고 정의롭게 살겠다.
미가서 6장 8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정의, 정의로운 것을 행했다. 그러면 우리 가슴에 적이 쏘는 화살과 찌르는 창이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의의 흉배를 붙여야 돼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캐나다에서 가장 부자가 된 깁슨(Gibson)에게 어느날 기자가 그 비결을 묻자 그는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술 마시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고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않고 일하면 부자가 됩니다” 그 말에 기자는 “허허~ 그 말이야 누구가 못하겠어요? 다 알잖아요.” 그러자 깁슨이 말하기를 “그러니까 그렇지요. 누구나 다 알고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기로 마음에 결단을 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고 결단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부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알아요. 그러나 마음에 결단을 안 내리는 것입니다.
한 소매치기가 평생을 소매치기로 감옥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다가 결국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목사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에게 찾아가 말씀을 전하고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라고 간절히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기도를 따라하고 머리를 끄덕끄덕 하면서 세상을 떴는데 목사님이 안수를 하고 난 다음에 눈을 딱 떠보니까 팔뚝 시계가 없거든.. 그러니까 소매치기가 목사님 시계를 손에 쥐고서 죽었어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마지막 기도를 받으면서도 목사님 팔에 있는 팔뚝 시계를 훔쳤던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과 죄악을 끊어버려 마음을 가지고 정의롭게 살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하지 않고 결국 죄의 노예가 될 뿐 인간이 우유부단한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강하게 정의롭게 살겠다고 결심하면 마귀가 몇 번 와서 문을 두들겨 보다가 대답을 안하니까 안오지요. 마귀가 띵동 하면 문을 탁 열어주고 딩동하면 확 열어주고 그러면 마귀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하지 참 좋다. 그렇게 친구가 되어 버리고 세상적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이고 의롭고 정의롭게 살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넘어지더라도 일어나서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어라.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 평안히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신발은 신고 가면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이 신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와 의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선물로 주신 것이고 성결과 성령충만도 선물로 이미 십자가에서 주신 것이고 치료와 건강도 주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도 이미 선물로 주신 것이고 부활과 영생천국도 이미 주신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가 신고 다닐 수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은 복을 주신 것입니다. 맨발벗고 자갈밭을 걷고 가시밭을 걸으면 피투성이가 되잖아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중복음의 신발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자갈밭도 다니고 가시밭도 마음대로 다니고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이라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예비해 놓았으므로 이 신발을 신으면 편안하게 삽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생활에서 내가 상처입고 피투성이가 되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적군이 활을 쏘고 칼을 던지고 창을 던질 때 그것을 막는 방패, 그것은 믿음인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님이 말씀하면 믿습니다. 살아도 믿고 죽어도 믿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만큼 어마어마한 방패는 없습니다.
시편 91편 4절에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니라”
주님이 우리의 방패와 손방패가 되도록 진실하게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우리 마음속에 믿으려면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으려면 안 믿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인 토인비(Arnold Toynbee) 박사는 “기적은 오늘날도 일어난다. 기적은 역사를 만들고 지각을 변동시킨다. 기적은 역사의 경로와 국가들의 운명을 바꾼다.”라고 말하며 기적을 믿는 것이 인류에게 기본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격언에는 “기적은 기적을 믿는 이에게만 나타난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실 때 병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쫓겨나는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마귀와 싸울 때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을 때 능력이 나타나요.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서 나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도, 나는 기도 못해요. 설교, 나는 설교 못해요. 전도, 나는 전도 못해요. 마음에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겁을 마귀가 넣어주는 것입니다. 못해요 진짜. 기도도 못하고 전도도 못하고 설교도 못해요. 그러나 어느 날 깨닫습니다. 아 이것 마귀가 그러는 것 아니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주님 말했는데 할 수 있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기도하면 성령이 도와주셔서 기도하게 되고 설교하라고 하면 설교도 하게 되고 말씀전하라면 말씀 전하는 것도 되고 이리 되는 것입니다. 안 믿으니까 안되지 믿으면 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게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 했으니 삼중축복이 올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내가 새것이 되었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새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것이 되었다고 내 마음에 믿으면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검인 말씀을 가지고 나가면 말씀의 능력이 굉장히 있는 것입니다. 제가 50년 동안 설교를 하고 온 세계를 다녔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기가막히게 내 입에서 말씀이 능력있게 나가요.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지 아니하면 땀만 뻘뻘나고 말씀이 잘 증거되지 않고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성령과 말씀은 언제나 같이 있습니다. 말씀이 있으면 성령이 오시고 성령이 오시면 말씀이 오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딛 3:6)었다고 했었으니 성령충만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마귀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기도가 마지막 우리가 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성령의 검을 가지고 다 몸에 무장을 하고도 결과는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았는데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해야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잠잠하게 있으면 하나님도 잠잠하게 계십니다. 꼭 잊지 마세요. 하나님은 기도해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줄 모른다는 말 하지 마세요. 엉터리 기도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는데 기도를 안 하면 안 들으시는 것입니다. 기도도 할수만 있으면 소리내어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더 잘 들으시더라구요. 내 경험에 보니까. 속으로 잠잠하게 기도하는 것도 좋은데 그러나 들리도록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훨씬 응답을 잘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도 귀에 들리도록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에 들리도록 기도를 하십시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겠다”(시 91:15)고 주님 말씀하셨으니 기도하면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지난주 순복음가족 신문에는 참으로 은혜로운 간증이 있었습니다. 작년 7월 대학 청년국의 황현철 집사님은 극도의 피로감과 함께 구역질이 나고 고열과 설사로 배의 통증이 너무 심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여겼지만 고통이 심해서 자정 즈음에 병원 응급실에 가서 간단한 조치를 하고 통증은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회사에서 정상적인 근무가 힘들 정도로 피로와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다시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간수치가 표준치를 넘었다며 의사는 A형 간염이 의심된다고 입원을 하라고 했습니다. 입원 후,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온 몸을 얼음주머니로 감싸야 할 정도로 열이 심했고, 피부 가려움증과 함께 황달을 보이면서 커피색 소변과 회백색 대변을 보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구토가 심해서 진통제 없이는 잠을 못 자고 물만 먹어도 구토를 했습니다. 그 즈음에 회진 시간도 아닌데 교수가 올라와서 “환자가 화장실 가는 것 이외는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후 부모님을 만나서 말을 했는데 잠시 후에 어머니가 아무 말도 안하고 올라오더니만 교회로 연락을 했었습니다. “우리 아들 위해서 중보기도를 좀 해달라”고.. 7월 24일 금요일, 카리스선교회와 대성전 금요철야 예배에서 황 집사를 위하여 간절한 중보기도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황 집사는 간 기능이 심하게 손상된 데다가 혈액 응고도 심했습니다. 교수는 이런 경우를 지금까지 3명을 봤는데, 2명은 죽고 1명은 간 이식을 하기 위해 병원을 옮겼지만 그 후 소식을 알 수 없다며 부모님께 환자가 오늘을 넘기기 힘드니 마음에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를 위해서 간이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황 집사를 위한 중보기도가 있던 금요철야 이후부터 상태가 갑자기 호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에서 회복되기까지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가량 시간이 필요했는데, 황 집사는 급격히 호전되어 일주일 만에 퇴원을 허락 받고 퇴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퇴원하는데 의사도 따라오면서 오히려 의사가 감사하다고 자꾸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합니다. 자기가 맡은 환자가 안죽고 살아나가니까 고맙다고.. 황 집사는 자신이 치사율이 높은 급성 간부전증에서 회복된 것은 중보 기도의 힘이라며 주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증거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현재 대학청년국 카리스선교회 회장을 맡아 건강한 모습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를 할 때에도 마귀는 호시탐탐 우리를 멸하기 위해 유혹하고 대적하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 싸울 무기는 오직 기도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로 싸워 이겨야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우리의 돕는 자로 모셨으면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힘은 놀랍습니다. 내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내 이웃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결론>
구원을 받고 성령을 모신 성도가 이 세상에서 마귀와 정욕의 유혹을 이기고 살아가는 데는 많은 투쟁이 필요합니다.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엄청난 석유가 매장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십시오. 성령께 부탁하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루 아침에 성자가 안됩니다. 예수 믿었다고 해서 당장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아 놓고 이제 성자가 되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면서 점점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한술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많이 계속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예수의 형상을 닮는 것은 우리가 마귀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면 이길수록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으면 닮을수록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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