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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택의 원리

창세기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516 추천 수 0 2010.03.21 23: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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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3:1-13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좋은 선택의 원리/창세기13:1-13/열린교회/ 김필곤 목사/2002.10.20

 

미국의 22대,24대 대통령 클리브랜드(Glover Cleveland;1837-1908)는 젊은 시절 친구와 함게 도박. 술을 즐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날 친구와 함께 클럽을 향하던 중 길목에 있던 교회에 걸려 있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성구를 보고 교회로 발길을 돌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어 마침내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감옥에서 이 클리브랜드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눈물로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30년전의 쾌락을 위해 클럽으로 향했던 친구였다고 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선택의 결과가 결국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입을 것인가? 누구와 결혼해야 할 것인가? 어느 대학에 들어가야 할 것인가? 어떤 직장에 들어갈까? 어떤 직업을 가질까? 어떤 사람과 결혼할까? 어디에서 살까? 어느 교회에 다닐까? " 이 선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선택 중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누구 아버지 밑에 태어나는 것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어떤 성을 가지는 것 우리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대로 선택하도록 자유 의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택 중에는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인생이 아주 달라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옷을 어떤 것 입느냐는 선택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선택은 그 한 번의 선택으로 10년이 아니라 평생이 달라지고 영원히 달라지는 선택도 있습니다. 선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의해 선택합니다. 개에게 소 뼈다귀와 보화를 놓아 두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소 뼈다귀입니다. 보화의 가치를 모릅니다. 인간도 이처럼 감정적으로만 선택하면 동물처럼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더 좋은 선택은 이성적인 선택입니다. 나물과 고기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사람은 둘 다를 선택할 수도 있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필요한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 유익한 것을 미래를 예측하여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성적 선택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입니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선택 최선의 선택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적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매사 신앙적 선택을 할 때 미래가 보장되고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어떤 원리로 선택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세 가지 원리로 교훈을 받고 자 합니다.

1. 사명을 이루는 선택이어야 합니다.-사명의 원리

우리가 중대한 문제를 선택할 때는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가 이루지 못하는가를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직업을 선택합니다. 이 직업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이루는가 이루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결혼 대상자를 선택할 때도 이 분과 결혼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가 이루지 못하는가를 분별해 봅니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이 학교 이 학과를 선택함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명을 이루는가 이루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사업을 하려고 할 때도 이 사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가 이루지 못하는가를 분별해 봅니다. 이사하여 교회를 선택할 때도 이 교회를 통하여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것인가 아닌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를 때 사명을 주고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 아브라함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 위해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를 부를 때 모세에게 노예 생활하는 자신의 민족을 해방시킬 사명을 주었습니다. 예레미야, 이사야를 부를 때 민족을 회개시키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바울을 부를 때 이방인들과 이방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막연히 부르시지는 않습니다. 사명을 주어 부르십니다. 그것에 대하여 성경은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롯은 이 일에 실패를 했습니다. 지금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문제는 소유의 많음으로 생겼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롯의 식구와 아브라함의 식구가 함께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과 롯의 마음은 불편함이 없었더래도 문제는 그들이 거느린 목자들입니다. 목자야 주인의 마음과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로 다툽니다(7). 이 때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우리 피를 나눈 골육이 아니냐 이 문제로 서로 다투지 말자고 말하며 나를 떠나라 합니다. 이 때 롯이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이사하는 것입니다. 거주지를 옮기는 것입니다. 직장을 옮기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차리는 것입니다. 그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10절을 읽어 보십시오.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물의 넉넉함입니다. 여호와 동산같고 애굽 땅 같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기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가지 선택의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합니다. 유익성, 편리성, 유희성입니다. 그것을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유익이 있느냐? 유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생활에 편함이 있느냐? 더 좋은 안락함과 편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화장실 하나에서 두 개, 세 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을 수 있느냐?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롯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명자의 삶을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무엇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겠습니까? 사명자는 나에게 맡겨주신 분의 뜻을 물어 보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께 한 번쯤을 물어 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 어디로 가야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까? 그러나 롯은 한 마디로 물어 보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룹니까? 부패하고 타락한 곳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이루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그들과 어울리며 살다가 아브라함의 도고 기도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당할 때 겨우 목숨만 건졌고 나중에는 술취하여 딸들과 추태를 부리다가 결국 모암과 암몬 조상이 되었습니다(창19:30-38). 사명을 망각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동화되고 흡수되게 되어 있습니다. 물에 휩쓸려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자는 휩쓸려 갈지라도 동화되지는 않습니다. 죽음 고기는 휩쓸려가지만 산 고기는 제 갈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부패해도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사명을 이루는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변화는 되어도 변질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2.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선택이어야 합니다.-도덕적 원리

대부분의 선택에는 도덕적인 것이 포함됩니다. 물론 가치 중립적인 선택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선택에 있어서 도덕적인 문제가 걸린다면 죄를 지으면서 까지 그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선택하면 않됩니다. 잠깐의 유익과 잠깐의 편안함, 순간의 기쁨이 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롯의 선택 중 잘못된 부분 하나가 바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선택한 도시는 당시 최고의 환락도시 소돔 성이었습니다(10절). 그는 믿음으로 살기보다는 세상 향락을 즐기며 살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롯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좋아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생활 속에 갇혀 살기보다는 세상 재미를 즐기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진짜 신앙인지를 아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있다면, 그가 무엇을 즐기는지를 보면 압니다." 롯은 신앙인으로 선택하는데 도덕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동양권 사회에서 아니 동양권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에게 그만큼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이라면 적어도 먼저 아브라함에게 선택하도록 사양했어야 합니다. 먼저 마음에 맞는 곳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나중에 선택하겠습니다. 이정도는 기본적인 매너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자기가 보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이기심만이 그를 제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선택의 기준을 보면 도덕적 판단 기준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 이기심의 선택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것 다 잃어 버렸습니다. 심지어는 아내까지 잃어 버렸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탈 때 모든 재산 다 잃고 빈 몸으로만 나와야 했습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바로 멀리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자기 감정,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에게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범죄의 길에 들어가지 않을까? 이 학교를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장래 죄를 짓는 일에 앞장서지는 않을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가진 자로서 먼저 양보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봅니다. 이기심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세입니다. 얼마든지 자신이 먼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를 먼저 배려합니다. 이것이 도덕의 황금률아닙니까? 예수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지 않습니까? 우리 신앙인의 도덕적 순서는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고 다름에 남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자신, 남, 하나님 순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도덕적 판단은 하나님, 남, 자신 순서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도덕의 완성인 희생적인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기심을 넘어 서는 것이 바로 사랑의 윤리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5절에서는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정의합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다섯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요, 둘째는 책임을 지는 것이요, 셋째는 존중하는 것이요, 넷째는 이해하는 것이요, 마지막 다섯째는 주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에 있어서 이 사랑의 윤리를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으로 선택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고 미래는 밝아질 것입니다.
멕시코에서 인디언 선교로 젊음을 다 바친 Chol이라는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이 선교하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나지막하게 그 부인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갔다고 합니다. "여보, 우린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었으니 잘 살은 것 같소."
아프리카 대륙을 선교한 D. Livingston에 대해서도 원주민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했음을!"

3.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택이어야 합니다.-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원리

사람들이 선택할 때는 선택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사람의 취향, 가치관, 세계관, 이성적 판단, 감정 등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볼터스토르프는 선택을 지도하는 것은 자료 신념과 규제 신념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어떤 자료를 타당하다고 믿느냐에 따라, 이미 경험되어지고 인식된 신념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우리의 선택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경험 중에서 사람은 자신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자료를 자신의 신념체계로 만들고 그것에 의하여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 선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바꿀 수 없는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선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택입니다.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지금 당장은 유익이 없고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택이 될 때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고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며 선택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십자가를 지어야 하느냐?라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바라는 선택입니다. 롯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선택을 합니다. 자기 좁은 시야로 선택을 합니다. 먼 곳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섭리와 하나님의 장기적인 계획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과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훈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롯은 나무는 보았는데, 숲은 못 보았고 롯은 세상은 보았는데, 하나님은 보지 못했으며 롯은 오늘의 도시는 보았는데 미래의 도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롯은 성공과 환락의 도시를 바라보았습니다. 목축업을 하던 그에게는 신기하고 흥미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쾌락 넘어의 죽음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멸망하는 도시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씀에 근거하여 미래를 달려가는 눈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척박하고 힘들지만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이고 순종의 땅, 축복의 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멀리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멀미를 하지 않으려면 가급적 먼 곳을 보면 된다고 합니다.
눈보라치는 겨울 너머로 따뜻한 봄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잠 못 이루는 밤 너머로 다시 밝아올 새벽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겨울 앙상한 죽은 가지 너머로 봄으로 피어나는 초록색 잎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둡고 광풍이 불어온다 하여도 음산한 비구름 너머로 눈부신 햇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볼 때 우리의 눈은 그렇게 넓어질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릅니다. 4절에 보면 예배를 드립니다. 뭔가 롯과는 다른 분위기 아닙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아들처럼 여겼던 롯이 떠나버렸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장막을 옮기고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듣고 그리고 그것을 시행하는 아브라함의 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 평원을 선택했고, 롯은 자신의 뜻으로 환락의 도시 소돔 성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알았는가 몰랐는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를 떠났지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아버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국경선인 하란에서 어그적 거립니다. 이 때 하나님은 데라를 데려갔습니다. 친척도 떠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처럼 조카 롯을 떠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조카 롯을 떠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뒤에 보면 결국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브라함은 성취한 것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국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주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미래를 보장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선택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말씀으로 기록한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선포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려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으로부터 나온 원리에 의해 선택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지 않게 됩니다. 또한 선포된 말씀말고도 보여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드러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선택했을까를 생각하며 선택하면 됩니다. 또한 말씀은 해석된 말씀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설교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말씀은 적용된 말씀이 있습니다. 선포된 말씀이나 보여준 말씀이나 해석된 말씀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변화되어야 하지 말씀을 자꾸 변질 시키려고 하면 안됩니다.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케네디를 축하하며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각하,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습니다. 당신 손에 있는 권력으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됩니다. 당신은 노련한 전문가인 수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들이 제각기 전문적인 지식을 당신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좋은 선택의 원리/창세기13:1-13/열린교회/ 김필곤 목사/200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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