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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525 추천 수 0 2010.04.03 07: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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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3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복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보통 ‘복’ 하면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는 소유의 복을 연상한다. 그러나 참된 축복과 행복은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에 있다. 행복의 파랑새는 소유의 포로가 된 사람에게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소유의 철학으로 무엇을 가지는 데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한다. 반면에 이상하게도 나누고 드리면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물론 받는 것은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것은 약간의 기쁨이고, 낮은 차원의 기쁨이다. 그러나 드리고 바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한 희열이 있다. 영혼을 살리려면 소유 지향적인 삶이 존재 지향적인 삶으로 변화시키라. 더 많은 소유에 집착하면 ‘영혼의 소외’가 커지지만 드리고 나누고 베풀면 ‘영혼의 만족’이 커진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 때문에 사회가 얼마나 큰 비극을 경험하는가? 이제 더 많이 소유하려는 ‘소유지향의 삶’에서 복된 존재가 되려는 ‘존재지향의 삶’으로 자신을 바꿔 가라. 그래야 인류의 미래에도 희망이 있고, 영혼에도 축복과 행복이 넘친다. 항상 이런 성찰을 하라. “내가 예수님을 믿고 삶이 정말 변했는가? 내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성품이 있는가?” 그런 성찰을 하고 작은 은혜를 크게 보면서 주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다.

 어떤 가정에 소아마비 아들이 있었다. 그는 커가며 자기의 불구를 비관하다 어느 날 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 순간을 목격한 어머니가 소리쳤다. “아들아! 제발 살아만 다오.” 제발 살아만 달라고 애원하는 그 어머니에게 가장 큰 축복은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오직 아들이 살아만 있어 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작고 기본적인 진짜 축복은 너무 생각하지 않는다. 축복은 ‘눈에 드러나는 삶’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진정한 축복 여부는 물질과 명예의 유무에 따라 판별되지 않고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진짜 판가름 난다. 축복을 오해하지 말라. 그런 오해가 없도록 주님은 산상팔복에서 역설적으로 ‘복 있는 자’를 가르쳐주셨다.

< 심령의 가난함이 아닌 것 >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자’라고 했는가? 가장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어떤 것인가? ‘심령의 가난’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먼저 ‘심령의 가난’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심령의 가난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첫째, 심령의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질이 없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하고 물질이 있는 사람이 심령이 부한 것은 아니다. 물질이 없지만 심령이 가난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물질이 있지만 심령이 가난한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물질이 없어도 심령의 가난함을 잃지 않고 물질이 있어도 심령의 가난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둘째, 심령의 가난은 지식적인 가난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성경지식이 많아야 꼭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영적인 성장은 “얼마나 말씀을 많이 아느냐?”보다 “얼마나 말씀대로 사느냐?”와 관련이 있다. 그렇지만 배움을 무시하지 말라. “배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라고 배움을 무시하는 것은 철부지 생각이다. 사람은 성장하고 사회의 쓴맛을 체험하면서 점차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배움이 좋은 사람을 만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우기를 힘쓰고, 특히 성경을 더 많이 알기를 힘쓰라.

 셋째, 심령의 가난은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가련하게 여기는 것을 심령이 가난한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재 모습 그대로 바르게 생각하라.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자신을 가련하고 불쌍하게 보라는 말이 아니다.

 넷째, 심령의 가난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덕목이다. 그러나 심령의 가난은 ‘겸손 이상의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다는 것은 자기가 바둑 9단인데 자기를 낮춰 바둑 6단처럼 행세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는 지극히 자신을 낮춰서 바둑 9단이 바둑 9급으로 행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겸손을 가장한 자랑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한 주일학교 선생이 말했다. “얘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자.” 그런 말이 겸손을 가장한 자랑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이 잘못된 태도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그보다 낫다는 생각조차도 버리라. 겸손을 자랑하면 모든 선과 미덕도 악덕이 된다.

 시인 헬렌 헌트 잭슨(Helen Hunt Jackson)은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깨닫고 보니까 제 생각에 옳았다거나 제가 겸손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도 죄였습니다.” 이 고백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의 고백이다. 그처럼 스스로의 파산상태를 인정하고 가난한 심령이 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가난한 심령’은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 꼭 입어야 할 옷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물은 그런 가난한 심령의 계곡을 통해 흘러온다.

< 심령이 가난한 것의 의미 >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어떤 말인가?

1. 자신의 파산을 선포하는 것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겸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으면 자신은 전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를 보라!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선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또한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자신을 ‘남’과 비교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보다는 낫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과 기준’에 비추어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자신에게 장점이 있으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때문이라고 인식한다. 그처럼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은 아무 쓸모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것이다.

2.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것

 심령이 가난하면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깊이 깨닫고, 또한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 살지 못하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진다.

 결국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의 죄와 허물과 연약성을 깨닫고 “내가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존재인가?”를 인식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남이 별 볼일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자기 영혼의 위기는 보지 못하고 남 걱정만 하고, “아무개는 어떻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전에 자기를 먼저 살피고 십자가를 꼭 붙드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3.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살다 보면 가끔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가 있다. 그때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면 사실 그것이 복이다. 결국 심령이 가난한 것은 자신을 더 적게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하라. 행복은 ‘큰 존재가 되는 것’에 달려 있지 않고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심령이 부하면 자신을 크게 보고 자신을 의지하다가 결국 절망에 빠지지만 심령이 가난하면 하나님을 크게 보고 하나님만 철저히 의지하기에 결국 길이 열린다. 이제 자신도 의지하지 말고 남도 의지하지 말라.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한다. 그러나 하나님만 의지하면 잠시 실패가 있어도 그 실패가 성공의 발판이 됨을 믿는다. 그래서 삶의 스트레스가 줄고 그렇게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만큼 행복도 늘어난다.

<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

 행복을 원하면 심령이 가난하게 만들라.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심령이 가난할 때 구체적으로 떤 축복이 있는가?

1. 평안이 주어진다

 심령이 가난하면 더 이상 자신을 가장하려고 하지 않기에 평안과 안식을 얻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행복하려면 완벽하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완벽한 존재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완벽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심령이 가난하면 모든 것이 잘 되어야 행복을 느끼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 결국 심령이 가난한 것은 천국 평안을 소유하는 열쇠이다.

 어떤 목회자의 간증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민족주의자였다. 특히 일본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고 미워했다. 옛날에 운동회를 하면 만국기를 걸어놓는다. 만국기에는 일장기도 있다. 그러면 “저 일장기 뜯지 않으면 운동회를 못한다.”고 하면서 교장 선생님과 싸웠다. 또한 매년 1월 1일이면 경주 토함산에 올라가서 일본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짐했다. “내가 반드시 저 일본을 삼키리라.”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주님을 만났다. 그때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전했지만 그 마음 위에 일본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때 일본을 극도로 미워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천국 평안을 얻었다. 민족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성도의 마음은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선교하는 마음’이고 그런 ‘선교하는 마음’이 있을 때 어떤 환경도 이겨낼 수 있는 평안을 얻는다.

2. 인간관계가 깊어진다

 사람은 대개 거만한 사람들을 싫어한다. 거만한 사람과 식사약속을 하고 그 식사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은 대개 겸손한 심령을 좋아한다. 겸손한 태도와 언어로 옆 사람에게 희망과 격려를 해주라. 그러면 공동체가 얼마나 큰 힘을 얻는가? 그처럼 겸손하기만 해도 환영받는데 심령이 가난한 것은 겸손 이상의 것이기에 얼마나 환영을 받겠는가?

 사람들은 가끔 고민한다. “왜 내게 축복이 적을까? 왜 인간관계가 이렇게 힘들까?” 만약 그런 고민이 있다면 “더욱 겸손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라. 심령이 가난하면 대화가 통한다. 그러나 심령이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대화도 막히고 사소한 일에도 시험에 든다. 옛날 사오정 시리즈에서 왜 사오정과 대화가 안 되는가?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오정은 자기만 생각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묘사한다.

 어느 날, 사오정 집에 강도가 침입해서 위협했다. “돈 어디 있어? 내놔!” 그때 사오정이 말했다. “네? 저는 사오정이예요.” 얼마나 엉뚱한 대답인가? 그러자 강도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사오정에게는 “나는 사오정이다!”라는 자기 생각밖에 없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이제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남을 조금 더 생각하고 이해해주라. 그래야 인생이 넉넉해지고 행복이 찾아오고 인간관계도 깊어진다.

3. 풍성한 축복을 받는다

 성경에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의 축복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주님이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말씀할 때 기드온이 대답했다(삿 6:14-15). “주님! 제가 무슨 힘이 있어 이스라엘을 구원합니까? 저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저도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게 힘과 능력을 주겠다!” 그리고 기드온을 얼마나 멋지게 사용했는가?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렘 1:5).” 그때 예레미야가 말했다. “주님!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제가 어떻게 그 사명을 이행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말씀했다. “내가 네게 말할 것을 주고 너와 함께 하겠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사용하셨다.

 축복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주어진다. 결국 행복의 원천은 자신 밖에 있지 않고 자신 안에 있다. 즉 ‘우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축복의 가능성이 있다. 가난한 심령이 되기만 하면 된다. 축복은 ‘능력이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리고 나누고 베풀려는 선교하는 마음은 축복의 최대 원천이다.

 주변을 보면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드리고 나누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을 받을 때보다 드릴 때 더 행복을 느끼고 더 축복받는다. 결국 가장 수지맞는 투자는 ‘사랑의 헌신’이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특히 거룩한 일을 위해 자기 것을 드리는 것은 최고로 복 받는 태도이다. 하나님을 감동시켜보라. 하나님이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는가?

< 드릴 때 더 받는다 >

 지난주일에 목사 안수식을 마치고 안수위원이었던 4명의 목사 가정이 분당의 한 찻집에 갔다. 그곳에 L 목사님 부부도 함께 했다. 자연스럽게 목회 얘기가 나오면서 L 목사님의 어려운 형편을 들었다. 요새 눈에 띄는 큰 교회 목사의 누림만 보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실 전체 목사의 60%가 극빈계층이고 그렇게 어렵게 사는 목사들은 음지에서 사랑을 실천해서 목사인 줄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L 목사님은 음지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고, 사모님은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일을 나가면서 매달 근근이 살고 있었다. 성도가 가족밖에 없으니 대충 짐작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런 얘기들이 오갈 때 사모님이 언뜻 말했다. “목사님! 우리도 누군가의 지원이 필요해요.” 그때 L 목사님이 옆에서 말했다. “여보! 왜 그런 얘기를 해요?”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다른 목사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때 사모님이 L 목사님을 보면서 말했다. “여보! 이제 우리도 우리 형편을 솔직하게 알려야지요?”

 그 장면을 물끄러미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대화가 다 끝났다. 분당에 온 손님이었기에 내가 찻값을 내려고 카운터에 갔는데 한발 늦었다. 대화 중에 누군가 먼저 카운터에 가서 냈었다. 그런데 낸 사람이 매달 근근이 사는 바로 L 목사님 사모님이었다. 적어도 4만원은 넘게 나왔을 텐데 그렇게 힘들게 사는 분이 먼저 낸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낼 때는 내겠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에 너무 감동했다.

 왜 그런 분이 목회를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너무 순수하고 고귀해서 너무 세상의 원리와는 다르게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성공할 수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승리한다. 이 땅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서는 더욱 그 상급이 클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외면하겠는가? 너무 감동했다.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가슴에서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때 나는 마치 큰 사랑의 빚을 진 느낌을 받고 속으로 다짐했다. “하나님! 제가 저 사랑을 받고 어떻게 그냥 있습니까? 기필코 10배, 100배로 갚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10배, 100배까지는 갚을 수 있어도 지금 현재의 능력으로는 천 배, 만 배로는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갚아주실 수 있지요? 진실한 성도에게 천배, 만 배로 축복해주시는 하나님! 저 목사님 가정을 천 배, 만 배로 축복해주소서!”

 일주일 내내 새벽에 기도하면 그때마다 L 목사님 가정이 떠오르면서 몇 배로 갚아야 할지를 기도했다. 생각 같아서는 4백만 원쯤 헌금해서 100배로 갚아주고 싶지만 나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사는 형편이라서 계속 액수를 저울질하며 기도하다가 오늘까지 한 주간이 지나버렸다. 돈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필요한 곳으로 과감히 시집보내는 믿음의 부족을 새삼 느꼈다. 그러나 이번 주간에는 마음의 감동을 실천으로 연결시킬 것이다.

 사람이 감동해도 이렇게 갚아주고 싶은데 하나님이 감동하면 얼마나 상상할 수 없는 축복으로 갚아주겠는가? 너무 인색하게 살지 말라. 드릴 때 더 받는다. 특히 어려울 때 드리면 하나님은 더 감동한다. 이제 ‘계속 취하고도 넘치지 않는 삶’을 살지 말고 ‘계속 베풀고도 넘치는 삶’을 추구하라.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결국 선교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마음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나누려고 할 때 나눌 수 있는 능력과 축복도 주시고, 나눔을 통해서 영혼에 깊은 만족감과 행복을 주실 것이다.

 어느 날, 한 장애아 보육원에 과자상자가 배달되었다. 그때부터 매달 두 번씩 끊임없이 과자상자가 배달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 기자가 기부자를 찾아 나섰다. 알고 보니까 기부자는 70세 가까운 독거노인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나라에서 매달 생활비 37만원을 받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서 한 달에 10만원 하는 사글세방에 살면서 아침은 굶고 점심은 무료급식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아이들 과자값으로 12만원을 쓰고 방값을 내면 15만원이 남는데 그 돈으로 한 달을 살면서 교회에 헌금도 했다.

 기자가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서도 나눌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그 할아버지가 말했다. “저는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지냈는데 지는 해를 보면서 무척 배고파했어요. 그때 과자가 너무 먹고 싶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쪽방에서 죽기를 기다리는데 동네 장애아 보육원 아이들이 참새처럼 떠드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 어린 시절 미치도록 먹고 싶었던 과자라도 그들에게 주고 죽자고 생각해서 일어났어요.”

 그때 할아버지는 결심했다. “죽더라도 주고 나서 죽자!” 그리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낙심과 절망이 언제 극복되는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자기를 일으켜 세울 때 극복된다. 그때 기자에게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도와줄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워요!”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쁜 것’도 넘고 ‘행복한 것’도 넘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 삶이 바로 천국 삶이다. 그 모습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는 주님 말씀이 얼마나 맞는 말씀인가?

 이제 누군가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되라. 그때 그토록 찾아 헤매는 행복을 얻는다. 거기에 바로 예수 믿고 인물 되는 길도 있다. 행복은 남을 행복하게 할 때 얻는다. 이제 선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나눌 대상을 찾아보라. 그리고 따뜻한 품을 찾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품이 되어주라. 그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자신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밝게 하고 세상도 밝게 만드는 행복한 천국 심령들이 되라.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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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8 스가랴 자기극복과 자기혁명 슥4:1-6  이한규 목사  2010-04-03 2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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