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
남서울교회 홍정길목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축복하실 때 두 가지 통로를 마련하셨습니다. 첫째는 가정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이브를 만드시고 가정을 세우시고 축복하셔서 사람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성령님께서 오셔서 오순절 다락방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도록 축복의 파이프 라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이 반드시 붙잡아야 되고 간직해야 될 축복의 파이프 라인입니다. 또한 목회자의 삶에서 이 영광이 먼저 누려질 때에 목회자의 인생은 견고해지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인생으로 드려집니다.
그 원리는 결국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는 말씀을 통해 모든 시대에 어떻게 사랑해야 될 것인가를 말씀합니다. 여기서 연합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는 이 말은 보통의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그 약점이 채워질 때까지 그 실수가 해결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 사랑, 이것이 바로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 안에서 부부가 사랑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마태복음 19장에서 이혼에 관한 질문을 받으시고 주께서는 창세기 2장 24절 말씀을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 마디 더 붙이셨는데 “하나님께서 짝지우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불가분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은 그냥 단순히 이혼이 안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 말씀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것도 들어서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우리 목회자에게는 우리가 섬겨야 할 교회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목회자는 가정이든지 세속적인 일들을 버려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네 일터보다 네 가정을 더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장은 아무리 성직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만두면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지만, 내 아내의 남편 노릇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개인적으로 존 스토트 목사님과 함께 있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의무가 첫번째 의무입니까?
― 첫번째 의무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의무이고, 두번째 의무는 자식의 부모로서의 의무이고, 세번째 의무는 내게 맡겨주신 직장에 충성할 의무입니다. ―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 순서를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 이것은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 에베소서 5장 18절에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성령충만의 질서입니다. ―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까 피차 서로 복종하는 성령충만의 삶이 제일 처음으로 착근(着根)하는 부분이 부부였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33절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 다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 다음 6장 5~9절에서는 직장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순서로 성령충만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목회자의 가정들이 흔들린다는 소식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무너집니다. 참으로 불행스러운 일입니다. 주께서는 또 두 사람이 사랑하되 목표있는 사랑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서 5장 22~23절의 말씀입니다. 아내를 향한 목표는 네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교회가 2000년 동안 그 숱한 박해 속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순종했던 그 순종을 목표로 너희 순종이 아름답게 자라나가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남편에게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십자가의 희생의 목표로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높은 목표! 그런고로 어느 아내, 남편이 나는 다 사랑하였는데 상대편이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높은 부름으로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한 가지, 그 높은 목표를 이루는 원리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목회자인 남편들에게 말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목표로 하되 우리에게는 또다른 목표가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으로 사람의 영혼을 깨끗이 닦아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세운 것처럼, 목회자 아내를 그 말씀으로 든든히 세워 그 영혼이 복되고 아름답게 자라 나가도록 하는 이 놀라운 목표 위에 서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설교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심방도 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카운셀링을 잘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로서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곁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반려자인 아내를 더 사랑해서 아름답고, 복되고, 영광스럽고, 귀하게 자라나가도록 하는 부름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아니 이것이 목회자에게 있어서 첫번째 목표입니다. 평생을 살아가야 될 아내가 변화받지 않는다면, 살아가면서 늘 부딪히는 영향력에 감동 감화받지 않았다면 그 목회가 진실하지 못하다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모든 목회자는 아내에게 목회자라는 권위 말고 함께 살면서 하나님께서 남편을 세우시고 남편을 통해 생애 가운데 역사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와 영광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삶을 먼저 살아야 됩니다. 아내에게 존경받지 않는 존경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아내가 점점 티도 없어지고 주름잡힌 것은 펴지고 흠들이 없어지며 날마다 거룩하게 자라나가는 이런 축복, 주께서 어느날 새 예루살렘 교회를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드리는 것처럼, 사랑하는 아내를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드리는 남편, 이것은 평신도에게 먼저 요구할 것이 아니라 평신도를 가르쳐야 할 목회자가 먼저 삶으로 본을 보여야 할 귀한 은혜입니다.
이런 역사가 가정의 달에 있어야 되겠습니다. 목회자의 가정은 아름답지 않은 가정이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가정이 성경이 주는 축복을 온전히 누릴 때 그 목회 전반이 활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이런 사랑 속에 한 여인의 가장 아름다운 생애로 펼쳐지는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월터 트로비쉬 목사의 부인이 어렸을 때 경험했던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어느 한 교회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아내는 뇌종양이기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많은 중직자들이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그 목사에게 아내를 정신 요양소에 보내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아내와 결혼할 때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어떠한 때든지 사랑하기로 맹세하였는데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사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병상을 알지만 지금 내 아내에게 나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임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이러자 온 교회가 목사님께 권면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이 정신이 맑을 때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내 남편은 신혼때 나를 사랑한 것과 같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그 아내를 향한 사랑이 깊어졌으면 신혼 때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였겠습니까?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 사모님이 축복받은 것이 아니라 그 목사님이 진실로 결혼 안에 숨겨놓은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사랑할 때 인생은 빛나고 가치있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달에 목회자의 가정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축복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목회와 신학, 1995. 5월호 홍정길 / 남서울교회 담임목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축복하실 때 두 가지 통로를 마련하셨습니다. 첫째는 가정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이브를 만드시고 가정을 세우시고 축복하셔서 사람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성령님께서 오셔서 오순절 다락방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도록 축복의 파이프 라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이 반드시 붙잡아야 되고 간직해야 될 축복의 파이프 라인입니다. 또한 목회자의 삶에서 이 영광이 먼저 누려질 때에 목회자의 인생은 견고해지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인생으로 드려집니다.
그 원리는 결국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는 말씀을 통해 모든 시대에 어떻게 사랑해야 될 것인가를 말씀합니다. 여기서 연합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는 이 말은 보통의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그 약점이 채워질 때까지 그 실수가 해결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 사랑, 이것이 바로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 안에서 부부가 사랑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마태복음 19장에서 이혼에 관한 질문을 받으시고 주께서는 창세기 2장 24절 말씀을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 마디 더 붙이셨는데 “하나님께서 짝지우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불가분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은 그냥 단순히 이혼이 안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 말씀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것도 들어서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우리 목회자에게는 우리가 섬겨야 할 교회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목회자는 가정이든지 세속적인 일들을 버려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네 일터보다 네 가정을 더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장은 아무리 성직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만두면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지만, 내 아내의 남편 노릇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개인적으로 존 스토트 목사님과 함께 있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의무가 첫번째 의무입니까?
― 첫번째 의무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의무이고, 두번째 의무는 자식의 부모로서의 의무이고, 세번째 의무는 내게 맡겨주신 직장에 충성할 의무입니다. ―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 순서를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 이것은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 에베소서 5장 18절에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성령충만의 질서입니다. ―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까 피차 서로 복종하는 성령충만의 삶이 제일 처음으로 착근(着根)하는 부분이 부부였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33절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 다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 다음 6장 5~9절에서는 직장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순서로 성령충만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목회자의 가정들이 흔들린다는 소식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무너집니다. 참으로 불행스러운 일입니다. 주께서는 또 두 사람이 사랑하되 목표있는 사랑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서 5장 22~23절의 말씀입니다. 아내를 향한 목표는 네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교회가 2000년 동안 그 숱한 박해 속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순종했던 그 순종을 목표로 너희 순종이 아름답게 자라나가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남편에게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십자가의 희생의 목표로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높은 목표! 그런고로 어느 아내, 남편이 나는 다 사랑하였는데 상대편이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높은 부름으로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한 가지, 그 높은 목표를 이루는 원리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목회자인 남편들에게 말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목표로 하되 우리에게는 또다른 목표가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으로 사람의 영혼을 깨끗이 닦아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세운 것처럼, 목회자 아내를 그 말씀으로 든든히 세워 그 영혼이 복되고 아름답게 자라 나가도록 하는 이 놀라운 목표 위에 서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설교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심방도 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카운셀링을 잘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로서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곁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반려자인 아내를 더 사랑해서 아름답고, 복되고, 영광스럽고, 귀하게 자라나가도록 하는 부름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아니 이것이 목회자에게 있어서 첫번째 목표입니다. 평생을 살아가야 될 아내가 변화받지 않는다면, 살아가면서 늘 부딪히는 영향력에 감동 감화받지 않았다면 그 목회가 진실하지 못하다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모든 목회자는 아내에게 목회자라는 권위 말고 함께 살면서 하나님께서 남편을 세우시고 남편을 통해 생애 가운데 역사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와 영광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삶을 먼저 살아야 됩니다. 아내에게 존경받지 않는 존경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아내가 점점 티도 없어지고 주름잡힌 것은 펴지고 흠들이 없어지며 날마다 거룩하게 자라나가는 이런 축복, 주께서 어느날 새 예루살렘 교회를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드리는 것처럼, 사랑하는 아내를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드리는 남편, 이것은 평신도에게 먼저 요구할 것이 아니라 평신도를 가르쳐야 할 목회자가 먼저 삶으로 본을 보여야 할 귀한 은혜입니다.
이런 역사가 가정의 달에 있어야 되겠습니다. 목회자의 가정은 아름답지 않은 가정이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가정이 성경이 주는 축복을 온전히 누릴 때 그 목회 전반이 활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이런 사랑 속에 한 여인의 가장 아름다운 생애로 펼쳐지는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월터 트로비쉬 목사의 부인이 어렸을 때 경험했던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어느 한 교회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아내는 뇌종양이기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많은 중직자들이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그 목사에게 아내를 정신 요양소에 보내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아내와 결혼할 때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어떠한 때든지 사랑하기로 맹세하였는데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사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병상을 알지만 지금 내 아내에게 나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임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이러자 온 교회가 목사님께 권면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이 정신이 맑을 때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내 남편은 신혼때 나를 사랑한 것과 같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그 아내를 향한 사랑이 깊어졌으면 신혼 때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였겠습니까?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 사모님이 축복받은 것이 아니라 그 목사님이 진실로 결혼 안에 숨겨놓은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사랑할 때 인생은 빛나고 가치있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달에 목회자의 가정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축복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목회와 신학, 1995. 5월호 홍정길 / 남서울교회 담임목사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