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 출처 : |
|---|
가정생활의 성경적 원리
원종근/한국외대 교수
최근 일어난 한 대학교수의 부친 살해사건은 우리사회 전반을 경악하게 하였다. 또한 작년에 일어난 박한상 군의 부친 살해 사건 또한 우리 나라 가정사회 윤리의 구조적인 단절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더욱이 충격적인 일은 이런 엄청난 패륜 행위가 크리스챤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패륜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많은 크리스챤 가정들이 부모와 자녀의 대화 단절,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고질적인 갈등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러한 가정문제에 대해 적절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딱한 형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가정윤리의 추락에 대해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에서 성경적인 가정생활에 대해 구체적인 교육을 보다 충실히 행했었더라면 이러한 끔찍한 사건은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실상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경 중심 -믿음중심의 생활을 가르치긴 하지만, 지나치게 구원론적 내지 은사론적으로 기우는 한편. 가정생활 직장생활 기업윤리 등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측면의 교육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교회이다. 가정교회가 건전하면 지상의 유형(有形)교회도 건전하게 유지된다. 지상의 유형교회는 가정교회의 유기적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가정교회는 건전한 지상교회의 선결요건이다.
이 글에서는 성경에 입각하여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교회인 가정의 본질과 운영원리를 살펴보고, 아울러 가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여러가지 갈등 요인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가정의 본질
부부 결합의 성경적 원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거룩한 교회의 기본단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심으로 친히 인류 최초의 가정을 이루어주셨다. 그러므로 가정을 이루어주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가정교회의 주인은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므로(창 1:18)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으셨다. 여기에서 "돕는"이라는 단어는 하와가 아담보다 인격적으로 열등하거나 능력이 모자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돕는'다는 것은 하와가 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아담의 모자람을 채워준다는 뜻이다. 아담과 하와는 인격적으로 동등하다.
어떤 면에서 볼 때 하와는 아담보다 훨씬 좋은 재료로 보다 우월하게 창조되었다. 아담은 흙을 재료로 창조되었지만(창 2:7), 하와는 아담의갈비대, 즉 뼈를 재료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 2:21).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찬탄한 것은(창 2:23), 하와가 아담의 뼈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뼈로, 살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살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부부는 한쪽만으로는 온전하지 않다. 영어에서는 부부 사이를 '더 나은 반쏙'(the better half)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부부 사이가 한쪽만으로는 온전치 못할뿐 아니라 오히려 절반에도 못미치는 미완성품이요, 더 나은 반쪽과 결합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인격체로서 완성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는 한쪽만으로는 오히려 모자라는 반쪽일 뿐이다. 부부는 더 나은 반쪽과 결합할 때에만 온전한 인격적 완성체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영적 인격적 결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교회생활에 있어 부정적이고 심지어는 파괴적인 양상으로까지 표출될 수 있다.
건전한 가정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부사이의 영적 인격적 결합에 있어 아무런 틈이 없어야한다. 교회의 가정사역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가정교회의 핵심요소인 부부 사이의 온전하고도 완전한 결합을 가르치고 또 확인하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이러한 온전하고도 완전한 영적 인격적 육체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부 사이의 갈등이 심해진다. 이러한 갈등이 성경적 원리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이는 이혼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부부 사이의 온전하고도 완전한 영적 인격적 육체적 결합의 성경적 원리를 배우고 깨우치지 않는 한, 건전한 가정교회는 성립할 수 없다. 가정의 모든 갈등요인은 실상 이러한 성경적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부부 결합의 성경적 원리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가정생활의 성경적 원리
부부관계의 성경적 원리
앞에서 살펴본대로 부부는 가정교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이며 기본단위이다. 부부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가정교회는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leave) 그 아내와 연합하여(cleave) 둘이 한 몸을 이룰 때에(weave) 비로소 형성된다(창2:24).
그러므로 부부관계는 그 부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체를 이룰 때 바로 확립된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로 한 가정이 시부모의 영향권에서 일일이 지도 감독을 받을 때, 그 가정은 온전한 가정이라고 볼 수 없다. 가정의 핵심요소는 부부이지, 시부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는 전통적인 유교 관습에 따라 부부 사이보다 시부모 관계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성경적인 원리는 아니다.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 가정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바로 부부의 결합이며, 따라서 그 부부의 결합은 어느 누구도 침범하여 틈새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는 교회 안의 시부모들에게 이런 부부 결합의 성경적원리를 강조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시부모와 며느리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경적 원리를 가지고 이같은 갈등을 해결하도록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한 교회는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고질적인 갈등관계를 방치해놓고 있다. 이러한 갈등관계를 해소하는 첫 번째 출발점은 교회가 부부 사이의 결합에는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하여 틈새를 만들 수 없다는 성경적 원리를 깨달아 이를 교인들에게 바로 가르치고 양육하며 훈련하는 것이다.
실상 한국 사회에서 부부 사이의 갈등요인은 대부분 시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 관계 속에서 남편들은 어느 편도 들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어쩔줄 모르고 있으며, 그 와중에서 서로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시부모와 며느리 관계는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치닫게 된다. 교회는 이같은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양육하여 믿음의 원리로 이같은 갈등요인을 해결하도록 교인들을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시부모와 며느리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경은 룻기이다. 한국 교회는 대개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얼마나 충성스럽게 했나 하는 것을 강조해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성경은 룻뿐 아니라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어떻게 하면 그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배려를 다해주려 노력하였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룻기의 삶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인애(仁愛)의 삶이다.
부부 사이의 신앙적 인격적 결합원리
그렇다면 부부는 어떠한 신앙적 인격적 결합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 성경은 남편이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엡 5:25). 아울러 아내들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엡 5:24).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쳐 교회를 사랑한 것 같이 남편은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하여야 한다. 이 사랑은 자신을 버리는 아가페의 사랑이다. 또한 아내는 교회가 몸된 그리스도를 섬기듯 헌신과 경외함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충성하며 복종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복종'이라는 말은 인격적으로 열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가정의 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줌을 의미한다. "모든 남편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니님이시기" 때문이다(고전 11:3). 사랑의 복종으로 남편의 권위는 세워지고 아내의 인격은 존중받는다.
구약 성경의 '사랑' 이란 말은 '헤세드' 인데 그 뜻은 엄밀하게 말하면 '인애'(仁愛 -loving kind-ness)이다. 그러므로 부부의 사랑. 더 넓게 성도의 사랑은 사랑으로 서로 인자히 대하며 친절하게 대하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무시하는 언행이나 업신여기는 태도는 벌써 사랑이 아니다. 실상 부부 사이의 많은 갈등 요인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인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을 무시하고 무조건 자기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또한 아무렇게나 함부로 내뱉는 말들, 예절 없는 일상생활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며 또한 증오하게 만든다.
부부사이의 '인애'의 삶이 회복되면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예절을 지키며 존경하고 사랑하면, 설사 생활 가운데 사소한 다툼이 생긴다 하더라도 쉽게 해소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거칠고 상스러운 말들이 부부관계를 해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부 사이에도 어느 정도는 경어(敬語)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경어를 사용할 경우 처음에는 다소 어색할지 모르나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특히 부부 사이에 불가피한 다툼이 있을 경우 경어 사용은 불필요한 감정의 격화를 막아주고 서로를 자제하게 하는 좋은 역할을 한다.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을 때 성도의 신앙생활은 크게 위협받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원만한 가정생활을 해야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베드로전서는 남편들에게 아내를 귀히 여길 것을 권면하면서,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벧전3:7).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가 막히게 된다.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바른 가정생활과 건전한 가정교회의 확립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런 성경적인 이유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관계
성경은 부모와 자녀관계의 중요한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리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1 ∼4)."
한국 교회는 이 성경을 주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 의무를 강조하는 쪽으로 해석하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 성경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다. 이 성경은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또한 자식이 부모에 대하여 쌍방간에 어떤 신앙적인 태도를 가짐으로써 건전한 가정교회를 이루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말씀이다.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여야 한다. 이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으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의 권위의식으로 자녀들을 대하려고 애쓴다. 그 결과 본의 아니게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수가 많다.
일단 자녀를 노엽게 만들면, 그 다음에는 대화가 단절되고 마음문이 닫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일단자녀를 노엽게 만들면, 아무리 노력해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할 수 없다. 자녀들이 마음문을 굳게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자녀교육의 첫번째 원리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먼저 자녀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자녀의 마음을 얻고,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않는 한, 신앙적인 교육은 시작조차 될 수 없다. 부모와 자녀관계가 순조롭지 않으면 이는 매우 심각한 가정의 갈등요인이 된다. 심지어는 부모와 자녀가 적대시하는 관계가 생겨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적대적인 관계는 부모-자녀뿐 아니라 가정 전체, 특히 부부 사이의 심각한 의견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갈등관계를 증폭시킨다.
부모들이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무렇게나 내뱉는 신중하지 못한 언어생활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흔히 "내 자식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참견하나'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상스러운 말, 저주의 말 등을 아무런 의식 없이 사용하곤 한다. 특히 부모-자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말들, 예를 들어 "꼴보기 싫으니 나가 버려!" "너는 이제 내 자식이 아니야" "부모-자식의 인연을 끊자" "호적에서 이름을 파내겠다" 등등의 무서운 언어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마구 쓰여지고 있다. 기독교 가정에서는 꼭 피해야 할 언어습관이다. 기독교 가정의 언어는 보다 순화되어야 한다. 못된 자녀들은 때론 부모를 포기하곤 한다. 그러나 부모는 절대로 자냐를 포기할 수 없고 또 포기해서도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도 부모와 자녀관계를 단절시키는 언어관습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자녀는 언젠가 부모에게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탕자 비유가 그 좋은 예이다. 탕자는 부모를 포기하고 자기욕심을 따라갔지만, 그 아버지는 결코 탕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못된 탕자라 하더라도 어찌 그 부모가 자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을 모르겠는가? 부모가 인내하며 희망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자식도 언젠가는 돌아온다.
엄밀하게 보아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고 또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요 선물이며 또한 상급이다(시편 127:3). 부모는 청지기(steward)로서 하니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잘 양육할 책임이 있을 뿐,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소유할 수도 처분할 수도 없다. 청지기의식(stewardship)이 없으면 부모는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자녀들은 아무리 어려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또한 개체로서 성장하고 성숙하여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는 또한 자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녀들 때문에 부모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얻는다. 그 기쁨을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자녀는 부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다. 이렇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자녀에게 부모가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실상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것보다는, 자녀로부터 얻는 기쁨이 훨씬 큰 것이다. 자녀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부모, 그 부모를 어찌 자녀가 공경하고 순종하지 않겠는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교회의 교육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얻은 뒤에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한다. 주의 교양과 훈계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적인 신앙에 입각한 사랑(헤세드 -인애)과 주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인 부모는 그 자신이 먼저 성경 말씀에 입각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받고, 그것을 부지런히 자기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부모이다. 말씀의 훈련이 없으면 기독교 가정의 자녀답게 자라날 수 없다. 따라서 말씀의 훈련은 먼저 가정교회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성경말씀의 훈련은 교회에서만 시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말씀 훈련의 가장 중요하고도 효율적인 현장은 바로 가정교회이다. 가정은 생활의 실천으로 말씀을 직접 가르치고 훈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성경 말씀의 훈련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건전한 가정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는 말씀의 훈련이 없는 가정, 가정교회를 이루지 못한 비성경적인 가정들이 모여 유형(有形)교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교회가 회복되지 않는 한 건전한 지상교회는 성립할 수 없다.
자녀를 이상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기 자녀들의 장래를 꿈꾸며 비전(vision)을 가지고기다리며 준비하고 인내할 필요가 있다. 그저 낳았으니까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주셨을 때 어떤 뜻이 있는지를 분별하고, 그 자녀들이 장래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부모로서 필요한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다. 부모의 비전이 없는 자식은 결코 위대하게 성장할 수 없다.
부모와 자녀관계에 있어서 또 한가지 중요한 성경 원리는 부모가 자녀에게 축복권을 가지고 이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권을 갖는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축복권을 행사한 예를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모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권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기도하면서 자녀의 앞날을 위해 축복할 때, 그것은 단순한 기원과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언약의 축복이 된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부모가 자식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엄숙한 일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는 부모의 축복권에 대해 거의 깨닫지도 못하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가정교회가 온전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가정교회의 목회자인 부모가 성경적으로 부모의 축복권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원종근/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 교수(경영학 박사)이며,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M.Div.)했다.
목회와 신학, 1995년 5월호
원종근/한국외대 교수
최근 일어난 한 대학교수의 부친 살해사건은 우리사회 전반을 경악하게 하였다. 또한 작년에 일어난 박한상 군의 부친 살해 사건 또한 우리 나라 가정사회 윤리의 구조적인 단절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더욱이 충격적인 일은 이런 엄청난 패륜 행위가 크리스챤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패륜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많은 크리스챤 가정들이 부모와 자녀의 대화 단절,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고질적인 갈등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러한 가정문제에 대해 적절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딱한 형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가정윤리의 추락에 대해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에서 성경적인 가정생활에 대해 구체적인 교육을 보다 충실히 행했었더라면 이러한 끔찍한 사건은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실상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경 중심 -믿음중심의 생활을 가르치긴 하지만, 지나치게 구원론적 내지 은사론적으로 기우는 한편. 가정생활 직장생활 기업윤리 등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측면의 교육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교회이다. 가정교회가 건전하면 지상의 유형(有形)교회도 건전하게 유지된다. 지상의 유형교회는 가정교회의 유기적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가정교회는 건전한 지상교회의 선결요건이다.
이 글에서는 성경에 입각하여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교회인 가정의 본질과 운영원리를 살펴보고, 아울러 가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여러가지 갈등 요인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가정의 본질
부부 결합의 성경적 원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거룩한 교회의 기본단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심으로 친히 인류 최초의 가정을 이루어주셨다. 그러므로 가정을 이루어주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가정교회의 주인은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므로(창 1:18)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으셨다. 여기에서 "돕는"이라는 단어는 하와가 아담보다 인격적으로 열등하거나 능력이 모자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돕는'다는 것은 하와가 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아담의 모자람을 채워준다는 뜻이다. 아담과 하와는 인격적으로 동등하다.
어떤 면에서 볼 때 하와는 아담보다 훨씬 좋은 재료로 보다 우월하게 창조되었다. 아담은 흙을 재료로 창조되었지만(창 2:7), 하와는 아담의갈비대, 즉 뼈를 재료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 2:21).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찬탄한 것은(창 2:23), 하와가 아담의 뼈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뼈로, 살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살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부부는 한쪽만으로는 온전하지 않다. 영어에서는 부부 사이를 '더 나은 반쏙'(the better half)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부부 사이가 한쪽만으로는 온전치 못할뿐 아니라 오히려 절반에도 못미치는 미완성품이요, 더 나은 반쪽과 결합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인격체로서 완성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는 한쪽만으로는 오히려 모자라는 반쪽일 뿐이다. 부부는 더 나은 반쪽과 결합할 때에만 온전한 인격적 완성체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영적 인격적 결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교회생활에 있어 부정적이고 심지어는 파괴적인 양상으로까지 표출될 수 있다.
건전한 가정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부사이의 영적 인격적 결합에 있어 아무런 틈이 없어야한다. 교회의 가정사역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가정교회의 핵심요소인 부부 사이의 온전하고도 완전한 결합을 가르치고 또 확인하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이러한 온전하고도 완전한 영적 인격적 육체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부 사이의 갈등이 심해진다. 이러한 갈등이 성경적 원리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이는 이혼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부부 사이의 온전하고도 완전한 영적 인격적 육체적 결합의 성경적 원리를 배우고 깨우치지 않는 한, 건전한 가정교회는 성립할 수 없다. 가정의 모든 갈등요인은 실상 이러한 성경적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부부 결합의 성경적 원리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가정생활의 성경적 원리
부부관계의 성경적 원리
앞에서 살펴본대로 부부는 가정교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이며 기본단위이다. 부부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가정교회는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leave) 그 아내와 연합하여(cleave) 둘이 한 몸을 이룰 때에(weave) 비로소 형성된다(창2:24).
그러므로 부부관계는 그 부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체를 이룰 때 바로 확립된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로 한 가정이 시부모의 영향권에서 일일이 지도 감독을 받을 때, 그 가정은 온전한 가정이라고 볼 수 없다. 가정의 핵심요소는 부부이지, 시부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는 전통적인 유교 관습에 따라 부부 사이보다 시부모 관계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성경적인 원리는 아니다.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 가정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바로 부부의 결합이며, 따라서 그 부부의 결합은 어느 누구도 침범하여 틈새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는 교회 안의 시부모들에게 이런 부부 결합의 성경적원리를 강조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시부모와 며느리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경적 원리를 가지고 이같은 갈등을 해결하도록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한 교회는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고질적인 갈등관계를 방치해놓고 있다. 이러한 갈등관계를 해소하는 첫 번째 출발점은 교회가 부부 사이의 결합에는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하여 틈새를 만들 수 없다는 성경적 원리를 깨달아 이를 교인들에게 바로 가르치고 양육하며 훈련하는 것이다.
실상 한국 사회에서 부부 사이의 갈등요인은 대부분 시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 관계 속에서 남편들은 어느 편도 들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어쩔줄 모르고 있으며, 그 와중에서 서로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시부모와 며느리 관계는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치닫게 된다. 교회는 이같은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양육하여 믿음의 원리로 이같은 갈등요인을 해결하도록 교인들을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시부모와 며느리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경은 룻기이다. 한국 교회는 대개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얼마나 충성스럽게 했나 하는 것을 강조해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성경은 룻뿐 아니라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어떻게 하면 그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배려를 다해주려 노력하였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룻기의 삶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인애(仁愛)의 삶이다.
부부 사이의 신앙적 인격적 결합원리
그렇다면 부부는 어떠한 신앙적 인격적 결합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 성경은 남편이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엡 5:25). 아울러 아내들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엡 5:24).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쳐 교회를 사랑한 것 같이 남편은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하여야 한다. 이 사랑은 자신을 버리는 아가페의 사랑이다. 또한 아내는 교회가 몸된 그리스도를 섬기듯 헌신과 경외함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충성하며 복종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복종'이라는 말은 인격적으로 열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가정의 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줌을 의미한다. "모든 남편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니님이시기" 때문이다(고전 11:3). 사랑의 복종으로 남편의 권위는 세워지고 아내의 인격은 존중받는다.
구약 성경의 '사랑' 이란 말은 '헤세드' 인데 그 뜻은 엄밀하게 말하면 '인애'(仁愛 -loving kind-ness)이다. 그러므로 부부의 사랑. 더 넓게 성도의 사랑은 사랑으로 서로 인자히 대하며 친절하게 대하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무시하는 언행이나 업신여기는 태도는 벌써 사랑이 아니다. 실상 부부 사이의 많은 갈등 요인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인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을 무시하고 무조건 자기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또한 아무렇게나 함부로 내뱉는 말들, 예절 없는 일상생활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며 또한 증오하게 만든다.
부부사이의 '인애'의 삶이 회복되면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예절을 지키며 존경하고 사랑하면, 설사 생활 가운데 사소한 다툼이 생긴다 하더라도 쉽게 해소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거칠고 상스러운 말들이 부부관계를 해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부 사이에도 어느 정도는 경어(敬語)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경어를 사용할 경우 처음에는 다소 어색할지 모르나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특히 부부 사이에 불가피한 다툼이 있을 경우 경어 사용은 불필요한 감정의 격화를 막아주고 서로를 자제하게 하는 좋은 역할을 한다.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을 때 성도의 신앙생활은 크게 위협받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원만한 가정생활을 해야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베드로전서는 남편들에게 아내를 귀히 여길 것을 권면하면서,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벧전3:7).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가 막히게 된다.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바른 가정생활과 건전한 가정교회의 확립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런 성경적인 이유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관계
성경은 부모와 자녀관계의 중요한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리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1 ∼4)."
한국 교회는 이 성경을 주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 의무를 강조하는 쪽으로 해석하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 성경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다. 이 성경은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또한 자식이 부모에 대하여 쌍방간에 어떤 신앙적인 태도를 가짐으로써 건전한 가정교회를 이루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말씀이다.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여야 한다. 이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으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의 권위의식으로 자녀들을 대하려고 애쓴다. 그 결과 본의 아니게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수가 많다.
일단 자녀를 노엽게 만들면, 그 다음에는 대화가 단절되고 마음문이 닫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일단자녀를 노엽게 만들면, 아무리 노력해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할 수 없다. 자녀들이 마음문을 굳게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자녀교육의 첫번째 원리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먼저 자녀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자녀의 마음을 얻고,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않는 한, 신앙적인 교육은 시작조차 될 수 없다. 부모와 자녀관계가 순조롭지 않으면 이는 매우 심각한 가정의 갈등요인이 된다. 심지어는 부모와 자녀가 적대시하는 관계가 생겨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적대적인 관계는 부모-자녀뿐 아니라 가정 전체, 특히 부부 사이의 심각한 의견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갈등관계를 증폭시킨다.
부모들이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무렇게나 내뱉는 신중하지 못한 언어생활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흔히 "내 자식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참견하나'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상스러운 말, 저주의 말 등을 아무런 의식 없이 사용하곤 한다. 특히 부모-자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말들, 예를 들어 "꼴보기 싫으니 나가 버려!" "너는 이제 내 자식이 아니야" "부모-자식의 인연을 끊자" "호적에서 이름을 파내겠다" 등등의 무서운 언어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마구 쓰여지고 있다. 기독교 가정에서는 꼭 피해야 할 언어습관이다. 기독교 가정의 언어는 보다 순화되어야 한다. 못된 자녀들은 때론 부모를 포기하곤 한다. 그러나 부모는 절대로 자냐를 포기할 수 없고 또 포기해서도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도 부모와 자녀관계를 단절시키는 언어관습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자녀는 언젠가 부모에게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탕자 비유가 그 좋은 예이다. 탕자는 부모를 포기하고 자기욕심을 따라갔지만, 그 아버지는 결코 탕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못된 탕자라 하더라도 어찌 그 부모가 자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을 모르겠는가? 부모가 인내하며 희망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자식도 언젠가는 돌아온다.
엄밀하게 보아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고 또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요 선물이며 또한 상급이다(시편 127:3). 부모는 청지기(steward)로서 하니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잘 양육할 책임이 있을 뿐,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소유할 수도 처분할 수도 없다. 청지기의식(stewardship)이 없으면 부모는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자녀들은 아무리 어려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또한 개체로서 성장하고 성숙하여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는 또한 자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녀들 때문에 부모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얻는다. 그 기쁨을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자녀는 부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다. 이렇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자녀에게 부모가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실상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것보다는, 자녀로부터 얻는 기쁨이 훨씬 큰 것이다. 자녀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부모, 그 부모를 어찌 자녀가 공경하고 순종하지 않겠는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교회의 교육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얻은 뒤에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한다. 주의 교양과 훈계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적인 신앙에 입각한 사랑(헤세드 -인애)과 주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인 부모는 그 자신이 먼저 성경 말씀에 입각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받고, 그것을 부지런히 자기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부모이다. 말씀의 훈련이 없으면 기독교 가정의 자녀답게 자라날 수 없다. 따라서 말씀의 훈련은 먼저 가정교회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성경말씀의 훈련은 교회에서만 시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말씀 훈련의 가장 중요하고도 효율적인 현장은 바로 가정교회이다. 가정은 생활의 실천으로 말씀을 직접 가르치고 훈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성경 말씀의 훈련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건전한 가정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는 말씀의 훈련이 없는 가정, 가정교회를 이루지 못한 비성경적인 가정들이 모여 유형(有形)교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교회가 회복되지 않는 한 건전한 지상교회는 성립할 수 없다.
자녀를 이상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기 자녀들의 장래를 꿈꾸며 비전(vision)을 가지고기다리며 준비하고 인내할 필요가 있다. 그저 낳았으니까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주셨을 때 어떤 뜻이 있는지를 분별하고, 그 자녀들이 장래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부모로서 필요한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다. 부모의 비전이 없는 자식은 결코 위대하게 성장할 수 없다.
부모와 자녀관계에 있어서 또 한가지 중요한 성경 원리는 부모가 자녀에게 축복권을 가지고 이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권을 갖는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축복권을 행사한 예를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모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권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기도하면서 자녀의 앞날을 위해 축복할 때, 그것은 단순한 기원과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언약의 축복이 된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부모가 자식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엄숙한 일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는 부모의 축복권에 대해 거의 깨닫지도 못하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가정교회가 온전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가정교회의 목회자인 부모가 성경적으로 부모의 축복권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원종근/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 교수(경영학 박사)이며,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M.Div.)했다.
목회와 신학, 1995년 5월호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