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5:1-16 |
---|---|
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본문/ 요5:1-16
본문은 베데스다 못가로 오신 예수께서 38년된 병자를 불쌍히 여기사, 그의 고통을 들어주시고,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무게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중심을 예수님이 38년 동안 병으로 고통 받고있는 그 병자에게 던진 물음 즉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에 두려고 합니다. ( 먼저 사건 전체를 스토리 텔링으로 잘 서술 할 필요가 있습니다 )
1. 베데스다 못가에 서성이는 현대인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예수님 시대에 베데스다 못가로 나왔던 소경, 절둑발이, 혈기마른자, 앉은뱅이, 문둥병자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병자들입니다. 현대인들도 고혈압, 위장병, 당뇨, 신경통, 백혈병, 만성피로, 정신질환, 교통사고, 각가지 암, 에이즈 등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 질병들 삶의 공허감, 권태, 스트레스, 열등감, 불안감, 패패감, 피해의식 등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현대인들도 베데스다 못을 찾아갑니다. 현대인들에게 베데스다 못은 무엇일까요? 의학, 건강진단, 마약, 술, 마인드 콘트롤, 낚시, 등산, 조깅, 꽃꽂이, 여행, 스키, 요가, 오락실, 먹거리, 등 이라고 하겠습니다. 혹 이와같은 현대의 각가지 형태의 베데스다 못에 뛰어들어 치유 받은 사람들이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실패하고 있거나, 현대의 베데스다 못의 허상을 깨닫고 좌절하고 있거나, 또다른 베데스다 못을 찾아 방황하고 있습니다.
2.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는 물음의 의미
예수님은 38년 동안 병들어 고통 받고 있는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고. 이 물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마나 무의미한 물음인가! 자그만치 38년이나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그래서 이 병을 한번 고쳐보겠다고 베데스다 못에 까지 가까스로 와 누워있는 사람더러 < 네가 낫기을 원하느냐? >라고 묻다니!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렇치 않습니까? 얼핏 생각하면 이 물음만큼 어리석은 물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물음은 그렇게 무의미한 물음도, 어리석은 물음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물음을 통하여 38년된 그 병자의 내적 상태를 알아보려고 하신 것입니다. 38년이나 이 병과 함께 살다보면 어느덧 병과 친해지고 익숙해져서 이것이 내 운명이러니하고 살게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병자가 더 이상 낫기를 포기하지 않았는가를 물으신 것이며, 그 병자의 속 사람을 흔들어 깨우시는 물음인 것입니다. 또한 이 물음은 너는 너의 병에 대하여 어떻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너의 병이 너의 삶에 어떻한 영향을 주었느냐?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그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물음을 받은 38년된 병자의 응답을 보십시오. 그 병자는 자신의 형편을 소상하게 아룁니다. <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 예수님은 그 병자의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들어주시는 형님 같으신 분이십니다.
3. 일어나 걸으라 !
예수님은 그 병자의 속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그 사람에게 천둥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일어나라! 걸으라! 38년이나 누워있던 병자는 일어나 걷는다는 사실을 잊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믿고, 순종하여 일어서려고 하였을 때 그 병자는 마침내 일어나 걸었습니다! 할렐루야!
4. 이 사건을 통하여 48년 된 병자인 내가 받은 은혜
첫째, 38년된 그 병자는 베데스다 못의 물로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48년된 나의 병도 문학, 예술, 여행, 등산, 건강 진단으로 고침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수 많은 이론이나 신학 연구가 아니라 < 살아 계신 주 예수님 > 앞에 내 모습 이대로 나가려고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갑니다.
둘째, 38년 된 그 병자는 자신의 형편을 소상하게 우리 주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조금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38년이란 긴 세월을 병으로 누워있는 병자의 목소리와 설명이 어디 변변하였겠습니까? 따라서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도 알 수 없는 중얼거림 같은 그 이야기를 예수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정성껏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여기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봅니다. 그리고 분명히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48년 동안 죄짐으로 고통 받고 찌들고 지친 나의 하소연, 뒤죽박죽된 생각 속에서 나오는 기도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종잡을 수 없는 나의 고백도 38년된 그 병자의 힘없고 희미한 고백을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셨던 것 처럼 그렇게 주의 깊게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셋째,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을 그 병자는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의지하여 죽을 힘을 다하여 순종하여 일어나려고 하였을 때 그 결과 그 병자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말씀을 듣고 의심하지는 않는데 그 병자와 달리 죽기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큰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맨날 얕은 물가에서 찰방거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부터는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고,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 처럼 큰 믿음으로 죽기로 순종하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48년된 병자 이정수야 일어나 걸으라! 진심으로 아-멘.
본문은 베데스다 못가로 오신 예수께서 38년된 병자를 불쌍히 여기사, 그의 고통을 들어주시고,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무게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중심을 예수님이 38년 동안 병으로 고통 받고있는 그 병자에게 던진 물음 즉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에 두려고 합니다. ( 먼저 사건 전체를 스토리 텔링으로 잘 서술 할 필요가 있습니다 )
1. 베데스다 못가에 서성이는 현대인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예수님 시대에 베데스다 못가로 나왔던 소경, 절둑발이, 혈기마른자, 앉은뱅이, 문둥병자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병자들입니다. 현대인들도 고혈압, 위장병, 당뇨, 신경통, 백혈병, 만성피로, 정신질환, 교통사고, 각가지 암, 에이즈 등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 질병들 삶의 공허감, 권태, 스트레스, 열등감, 불안감, 패패감, 피해의식 등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현대인들도 베데스다 못을 찾아갑니다. 현대인들에게 베데스다 못은 무엇일까요? 의학, 건강진단, 마약, 술, 마인드 콘트롤, 낚시, 등산, 조깅, 꽃꽂이, 여행, 스키, 요가, 오락실, 먹거리, 등 이라고 하겠습니다. 혹 이와같은 현대의 각가지 형태의 베데스다 못에 뛰어들어 치유 받은 사람들이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실패하고 있거나, 현대의 베데스다 못의 허상을 깨닫고 좌절하고 있거나, 또다른 베데스다 못을 찾아 방황하고 있습니다.
2.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는 물음의 의미
예수님은 38년 동안 병들어 고통 받고 있는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고. 이 물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마나 무의미한 물음인가! 자그만치 38년이나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그래서 이 병을 한번 고쳐보겠다고 베데스다 못에 까지 가까스로 와 누워있는 사람더러 < 네가 낫기을 원하느냐? >라고 묻다니!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렇치 않습니까? 얼핏 생각하면 이 물음만큼 어리석은 물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물음은 그렇게 무의미한 물음도, 어리석은 물음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물음을 통하여 38년된 그 병자의 내적 상태를 알아보려고 하신 것입니다. 38년이나 이 병과 함께 살다보면 어느덧 병과 친해지고 익숙해져서 이것이 내 운명이러니하고 살게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병자가 더 이상 낫기를 포기하지 않았는가를 물으신 것이며, 그 병자의 속 사람을 흔들어 깨우시는 물음인 것입니다. 또한 이 물음은 너는 너의 병에 대하여 어떻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너의 병이 너의 삶에 어떻한 영향을 주었느냐?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그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물음을 받은 38년된 병자의 응답을 보십시오. 그 병자는 자신의 형편을 소상하게 아룁니다. <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 예수님은 그 병자의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들어주시는 형님 같으신 분이십니다.
3. 일어나 걸으라 !
예수님은 그 병자의 속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그 사람에게 천둥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일어나라! 걸으라! 38년이나 누워있던 병자는 일어나 걷는다는 사실을 잊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믿고, 순종하여 일어서려고 하였을 때 그 병자는 마침내 일어나 걸었습니다! 할렐루야!
4. 이 사건을 통하여 48년 된 병자인 내가 받은 은혜
첫째, 38년된 그 병자는 베데스다 못의 물로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48년된 나의 병도 문학, 예술, 여행, 등산, 건강 진단으로 고침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수 많은 이론이나 신학 연구가 아니라 < 살아 계신 주 예수님 > 앞에 내 모습 이대로 나가려고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갑니다.
둘째, 38년 된 그 병자는 자신의 형편을 소상하게 우리 주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조금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38년이란 긴 세월을 병으로 누워있는 병자의 목소리와 설명이 어디 변변하였겠습니까? 따라서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도 알 수 없는 중얼거림 같은 그 이야기를 예수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정성껏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여기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봅니다. 그리고 분명히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48년 동안 죄짐으로 고통 받고 찌들고 지친 나의 하소연, 뒤죽박죽된 생각 속에서 나오는 기도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종잡을 수 없는 나의 고백도 38년된 그 병자의 힘없고 희미한 고백을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셨던 것 처럼 그렇게 주의 깊게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셋째,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을 그 병자는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의지하여 죽을 힘을 다하여 순종하여 일어나려고 하였을 때 그 결과 그 병자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말씀을 듣고 의심하지는 않는데 그 병자와 달리 죽기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큰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맨날 얕은 물가에서 찰방거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부터는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고,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 처럼 큰 믿음으로 죽기로 순종하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48년된 병자 이정수야 일어나 걸으라! 진심으로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