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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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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복 교수
이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자녀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느 부모나 자녀들을 나름대로 사랑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참으로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넘쳐 나고 있습니다. 노래 가사에도 또한 많은 책 속에서도 사랑이 문제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홍수가 나면 온통 물 천지이지만 깨끗한 물 한 잔이 없어서 목말라 죽어 가고 있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단어는 흔하지만 지금 우리의 자녀들은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 하고 사랑을 애타게 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치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 소리뿐일세, 기갈 중에 있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질러 사랑 받기 원하네'(찬송가 373장)라는 가사처럼 어린이들도, 십대들도 참사랑이 없는 까닭에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에서는 그렇다 치고, 소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그런 사랑이 실현되어야 하는 크리스찬의 가정에서도 그 참사랑이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그러한 잘못된 사랑 또는 사랑의 결핍이 우리 자녀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며 그들의 삶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장에서는 그러면 어떻게 자녀를 사랑하여야 할까? 특히 크리스찬 가정에서 마땅히 실현되어야 할 참 사랑의 여러 모습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참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인류의 영원한 두려움이 있다면 내가 거부될까 봐, 사랑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
고 인류의 영원한 갈망과 목마름이 있다면 사랑 받고 싶은 소원, 흔들림과 변함이 없는 사랑, 나는 변한다 해도 상대방만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어찌 보면 모순된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요. 왜 인류 모두에게 그러한 갈증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러한 사랑의 주체가 실제로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원한 사랑으로 아낌없이 쏟아 붓는 사랑의 본체이신 그분이 실제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그 분과의 만남 속에서만 우리 모두는 그 사랑에의 ,목마름에서 영원히 해갈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우리 자녀들이 부모인 우리로부터 그 사랑의 개념을 배우며 자라난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소개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과연 어떠한 사랑을 자녀에게 주어야 할까요?
1.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 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녀에게 꼭 필요한 사랑이며 그들에게 능력과 용키를 주는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이란 '자녀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고 사랑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사랑 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그들의 인격과 존재가 그대로 소중하게 받아들여지고 사랑 받는 것, 즉 부족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존중받는 그러한 인격적 사랑을 말합니다.
즉 그들이 우리 마음에 들 때, 우리를 기쁘게 할 때, 혹은 사랑 받을 만한 행동을 할 때에만 사랑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착하다, 저래서 예쁘다, 그렇게 하면 엄마, 아빠가 예뻐하고 이렇게 하면 미워할 꺼야, 이렇게 하면 엄마, 아빠의 딸, 아들이고 그렇게 하면 엄마, 아빠의 딸,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조건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실수와 잘못을 했을 때에도. 비록 그 잘못과 실수는 엄격히 다루고 훈계하며 고쳐 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인격과 존재는 귀중하게 받아들여지고 사랑 받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 애타고 찾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녀를 살리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어도 실제의 삶 속에서는 잘 실현되지 않는 것이 이러한 사랑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인 것같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자녀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실수할 때, 배우고 성장하도록 기다려 주면서 여전히 받아들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어린이에게
어른의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 것, 과잉 기대로써 어른의 수준을 자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요. 조건 없는 사랑은 다른 사람과 비교되지 않고 내가 나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자녀는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눈치보며 힘겹게 노력하는 율법의 삶을 배우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조건 없는 사랑은 자녀가 당연히 "나는 배척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좌절하고 있을 때, "그래도 엄마, 아빠는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단다"라고 말해 주며 포옹해 주는 태도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느낄 수 있도록 청지기 또는 통로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자녀에게 능력을 갖게 해주는 참사랑인 것입니다.
2.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자녀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그 역동적 속성으로 볼 때 반드시 겉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며 행동으로 표현되게 되어 있습니다.
말, 글 혹은 어떠한 행동과 표현으로든지 나타나고 전달되어야 사랑은 사랑인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 창조 속에 그리고 성경 말씀 속에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 속에 여지없이 나타난 것처럼, 전달되고 표현되지 않으면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부모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얼마만큼 전달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그 사랑의 내용을 충분히 전달받고 있는지요 "나의 엄마, 아빠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계시다"라는 확실한 인식이 그들에게, 있는지요. 아니면 부모는 비록 그들을 사랑하고 있지만 자녀들을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르게 전달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십대를 만나 보면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어찌 되어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 눈에는 부모가 돈, 출세, 아니면 학교 성적에만 관심이 있고 자신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상처받고 오히려 반항하며 탈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1) 신체적 접촉으로 전달되는 사랑
그러면 신체적인 따뜻한 접촉으로 전달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실까요? 흔히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귀찮을 정도로 부모가 안아 주고 뽀뽀하면서 신
체적인 접촉을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점점 성장해 가면 부모와 자녀는 점점 멀어지면서 친밀함이 소원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고학년이 될수록 사랑과 용납을 보이기보다는 야단치고 성적을 확인하며 높은 기대치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부모들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마치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요. 그러는 동안 어느새 자녀들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전달받지 못하고 부모와는 서먹서먹한 관계가 생기고 말게 되지요. 자녀들은 어릴 때뿐만 아니라 십대와 청소년 시기에도 여전히 부모의 따뜻한 포옹과 격려, 사랑의 확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장해 가는 자녀들은 자신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어려운 시간마다 그리고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는 순간마다, 부모의 격려와 사랑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어깨를 감싸주는 격려, 푸근한 포옹, 사랑을 확인해 주는 손잡음 하나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흔히 부모들은 물질적으로 자녀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과 사랑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엄마, 아빠는 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너는 우리에게 소중하기 짝이 없는 존재란다. 너의 곁에는 너를 사랑하며 신뢰하며 기다리는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 다오"라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그러한 내용은 따뜻한 신체의 접촉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되곤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마음이 허해서 다른 데서 사랑을 구걸하고 있지는 않은 지요. 아니면 충분하게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여러분의 자녀를 한 번 넓은 가슴으로 안아줘 보십시오. 그리고 공부하고 있는 자녀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며 그들의 뺨에 키스해 주십시오. 잠자리에 들 때에도 이불을 덮어 주면서 따뜻한 키스를 주십시오. 특히 이미 컸다고 생각하는 십대의 자녀에게도 그렇게 해보십시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그러한 따뜻한 사랑, 접촉으로 인한 친밀감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사랑과 격려를 통해 자녀들은 새 힘을 얻으며 더욱 잘하게 되고 건강한 자신감, 자존감, 가 치감을 가지고 마음껏 성장해 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2) 말과 글로 표현되는 사랑
부모 여러분,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얼마나 자주 말하고 표현하십니까?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건성으로 하는 말 말고 진정 그 의미가 담긴 말로 또는 글로 "엄마, 아빠는 너를 너무나 사랑한단다"라고 표현하신 적이 언제입니까? "뭐, 꼭 말하지 않아도 나의 자녀는 알고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자녀에게 물어보십시요. 얼마나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으로 격려 받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돈 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과 정성과 때로는 관심이 필요한 일이지요. 특히 자녀가 좌절하고 있을 때, "너를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곁에 있단다. 용기를 가지렴"이라는 표현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말로, 글로 구체적인 표현을 하여야 합니다.
혹은 '사랑한다' 는 말이 너무 흔해서 그 깊은 뜻이 전달되지 않을 경우에는 표현을 바꾸어 보세요. "너는 엄마, 아빠에게 참으로 소중한 존재야" 아니면 "엄마, 아빠는 네가 있어서 행복하고 자랑스럽단다", "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란다"라고 표현해 주십시오. 자녀들은 듣고 싶어합니다, 제 딸이 세례 받던 날, 제가 축하 카드를 썼어 어떻게 쓸까 생각하다가 "엄마의 소중하고 귀중한 딸 빈아. 엄마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보다 백 배 이상이나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고 계시단다"라고 썼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과분한 딸을 주신 하나님께 엄마, 아빠는 감사하단다"라고 썼어요.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인생을 크고 넓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썼어요 세례식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더니 저의 딸이 "엄마, 나 과분한 딸 아니야, 엄마가 나한테 과분한 엄마예요"라고 오히려 위로하며 포옹을 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조그마한 사랑으로 주었는데 그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사랑하고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은 사랑할 능력을 우리에게서 배우지요. 표현도 우리로부터 배우는 것이지요 아직 자녀들이 우리 곁에 있을 때, 그리고 그들이 사랑의 표현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사랑의 새롭고 풍성한 표현을 아낌없이 주세요 아이들은 우리의 거울이에요. 혹시 라도 자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나요? 그건 어김없이 우리가 사랑을 덜 주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먼저 충분히 사랑을 전달하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그것을 되풀이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 가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아닌 가요. 충분히 전달하세요. 그들은 우리 품을 곧 떠납니다. 우리 품을 떠나기 전에 마음껏 풍성하게 뽀뽀해 주고, 위로해 주고, 특히 실수했을 때 사랑을 표현해 주세요. 그렇게 해줄 때 아이들은 "내가 굉장히 사랑 받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며 그 힘으로 모든 일을 넉넉히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3. 자녀를 망치는 잘못된 사랑들
그런데 흔히 맹렬한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자녀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를 같이 한번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1) 권위가 없는 사랑
요즈음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하되 부모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채로 사랑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부모들은 마치 자녀의 시종과도 같이 언제든지 자녀가 요구할 때면 항상 자녀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심지어는 자녀가 부당한 일을 요구하면서 떼를 쓰는 경우에도 "안돼!"라는 말을 하기를 두려워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러한 권위 없는 태도가 자녀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지 부모들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의 권위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로 반드시 행사되어야 하며 남용됨이 없이 아름답게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안돼!"라는 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신중하게 미리 생각해 보고 "안돼!"라는 말을 하십시오. 그리고 "안돼!"라는 말은 끝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어떤 어머니가 이렇게 고백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녀가 집을 떠나게 되던 날 "엄마, 나에게 왜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해 주지 않으셨어요. 저는 이미 늦었지만 동생에 게만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안될 때는 안된다고." 자녀들에게 그러한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자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도, 십대의 자녀들도 부모의 권위를 바라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권위를 말입니다. 진정한 권위에 입각한 가르침과 사랑을 그들은 찾고 있는 것입니다.
권위주의는 좋지 않지만 진정한 권위는 자녀에게 안정감을 주며 참사랑을 더욱 느끼게 해줍니다. 권위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 수 없습니다. 마치 거룩함과 공의가 없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자녀를 향한 진정한 사랑은 부모로서의 권위와 함께 균형과 조화를 반드시 이루고 있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의 진정한 권위를 찾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과잉보호 사랑
자녀에게 해를 주는 또 하나의 사랑은 '과잉보호 사랑'입니다. '과잉보호 사랑'이란 마치 헬리콥터식 부모의 형태를 말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자녀를
극진히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자녀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항상 감시하며 떼어놓지 못
하는 것' 이지요. 예를 들면 다칠까 봐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지나친 염려로 안심하질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자녀들이 스스로 건강하게 배우며 성장하는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자녀들은 때때로 실수를 통해, 때로는 자기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통해 배웁니다. 그러한 실수를 통해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법과 사회성 등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쉴 새 없이 자녀를 감시하듯이 지켜 주는 과잉보호의 사랑을 주는 것은 자녀들에게 안정감 대신 불안감과 좌절 그리고 신뢰감 대신 자신과 환경을 불신하는 법을 배우게 되지요. 더 나아가서는 결혼 적령기가 되어 부모 곁을 떠나 건강하게 독립해야 할 때에도 부모와 자녀간의 불건강한 의존 관계가 생겨나게 되어 그와 관련된 복합적인 징후들로 자녀들의 미래가 불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3) 조종, 지배하려는 사랑
조종, 지배하려는 사랑'은 자녀가 자신들의 뜻대로 살아 주기를 원하며 그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강요하는 것' 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신의 꿈과 뜻이 자녀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면서 그것을 위해 어린 자녀들에게 조종 또는 조건부 사랑의 방법을 통해 지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랑과 용납을 미끼로 은근한 협박을 주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이러한 것들이 의식적으로 알고 하는 경우보다는 부모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태도가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지요. 우리 모두 그런 취약점이 있을 수 있지요. 때로는 침묵과 화난 태도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과 호소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녀의 약점과 죄의식을 사용하기도 해서 결국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태도인데요. 진정 자녀의 유익과 훈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 자녀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은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유, 지배하려는 사랑은 자녀가 나의 소유가 아닌데, 나의 소유로 여기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녀는 내 뜻대로 살고 행동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아이의 의견이 달라도, 의견이 다른 걸 얘기해도 그걸 불순종이라고 여겨 버리면서 "넌 엄마(아빠)말을 왜 안 듣니"라고 몰아붙이는 경우이지요.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라난 자녀들 역시 스스로 결정하거나 꿈을 실행하고자 할 때 부모들에게 대한 불효감 또는 죄의식이 생기게 되지요 .
4) 잘못된 자기 희생적 사랑
잘못된 '자기 희생적 사랑' 이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자기 희생적 사랑이란 다분히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이며 바람직한 사랑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고 건강하지 못할 때, 또 하나의 자녀를 얽어매는 덫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잘못된 자기 희생적 부모는 부모가 끊임없이 자녀의 시종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권위가 없는 사랑과 비슷하지만 특히 이 경우에는 부모로서의 자신의 삶이 전혀 없는 것이지요 부모로서 개인성도 없고, 개인의 성장도 없지요. 물론 이러한 부모는 부부의 삶보다는 자녀의 삶이 우선이며 자녀의 행복만이 자신들의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 자녀를 진정 사랑하신다면 개인의 성장을 추구하세요.. 성경 공부도 하시고. 사회 봉사도 하시고, 개인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세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자녀를 누구에게 맡기시고 부부만의 시간도 가져 보세요. 차도 같이 마시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자녀의 행복이 나의 삶의 전 목표이고 꿈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녀들도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부담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성경적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해 보시고 자녀를 양육해 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키우신 부모., 특히 어머니의 경우 나중에 이런 말을 하게 되지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런 말이지요. 그러면서 순종과 효도를 강요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잘못된 희생적 사랑의 부모 밑에서 자랐을 경우에도 '독립'은 곧 '불효'로 여겨지며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그 희생적 대가를 치르기 위한 불건강한 의존 관계가 있게 되지요.
5) 일관성이 없는 사랑
자녀에게 해가 되는 사랑 중에 다른 하나는 '일관성이 없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점은 특히 제가 개인적으로 적용했던 것이었어요. 저는 유난히 감정
이 예민하답니다. 감정에 기복이 심하지요. 어떨 때는 내 감정에 따라 자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극심하게 자녀를 사랑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어떨 때는 유난히 우울해서 나 자신도 어떻게 조절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곤 했지요. 그렇게 우울할 때는 도저히 자녀를 일관성 있게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저에게 없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어린 자녀는 부모의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사랑으로 공급받으며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닌 지요? 그들은 부모의 기분에 따라 희생되는 것은 아닌 지요? 이러한 일관성 없는 사랑은 자녀에게, 특히 그들의 정서에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부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 사랑만을 가지고는 이러한 일관성 있는 사랑을 주기가 힘들지요. 저는 제 자신에게 사랑의 능력이 없는 것을 너무너무 느껴요. 저는 매일매일 고백해요. 제 자신에게는 일관성 있게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줄 능력이 없어요. 그러나 부모로서 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공급받고 있기에 그러한 사랑이 가능한 것이 아닌 지요. 마치 나의 컵 속에 있는 내 사랑으로 퍼 주려니까 그 사랑이 곧 고갈되고 없어져서 힘이 들지요. 그러나 내 컵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서 내 잔이 넘쳐 나면 그 사랑으로 자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사랑만이 자녀에게 진정한 유익이 되는 사랑, 참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먼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흠뻑흠뻑 젖어 보십시다. 치유되어 보세요. 그러고 나면 우리가 자녀를 사랑할 수 있고, 여유가 생기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죠. 우리는 무릎꿇는 부모가 되어야 해요.
부모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자녀 교육을 공부한다 해도 이론적으로 안되는 경우가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매일매일 무릎 꿇읍시다. 나의 자녀를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할 능력을 달라고. 일관성 있게, 그들에게 유익이 되게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때로는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연습해야 돼요. 내 감정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따라서 감정에 따른 사랑만으로 자녀를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아가페 사랑을 자녀 사랑에도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나의 감정이 허락하지 않아도 일관성 있게 자녀를 사랑하고 받아 주는 의지적 사랑이 요구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사랑, 의지적 사랑, 일관성 있는 사랑을 자녀에게 공급해야만 우리 자녀들은 안정감을 가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6)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부모의 기대
다음에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부모의 기준, 어떻게 보면 완전주의 적인 부모를 말하는 거죠. 여러분 중에 혹시 이러한 요소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80점을 받으면 "왜 85점 안 받았니?" 85점 받으면 "왜 90점 안 받았니? 반에서 5등하면 '너 위에 4명이나 더 있잖니"라고 야단치는 경우요. 그러니까 자녀는 끊임없이 노력해도 부모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가 없고. 그 기준은 끊임없이 높아지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즉 자녀가 성취 못한 부족한 부분이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부모지요. 그러한 기준을 가진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들 중에 많은 수가 스스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요. 나이가 들면 그것이 여러 가지 병적 징후들로도 나타날 수 있죠. 그들에게는 쉼이 없고 항상 무언가 이루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일중독이나 완전주의의 덫에 걸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자녀들이 성적을 받아 왔을 때 항상 어느 과목이든 조금 나아진 과목부터 칭찬을 하세요.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잘한 부분을 격려해 주고 항상
이룰 수 있는 과제를 내어 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35등 하는 자녀에게 "다음에 34등 해볼래" 한번 이렇게 해보세요. 그럼 자녀가 노력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35등 하는 애보고 "다음에는 10등 안에 들어야 한다"라고 요구하면 그 자녀는 아예 미리 포기해 버리죠. 모든 과목을 못하거든 너, 어떤 과목이
제일 어렵니 물어서, 이번에는 다른 과목은 하나도 하지 말고, 이번엔 딱 그 과목 하나만 공부해서 지난번에 60점 받았으면 이번엔 61점만 받도록 노력
해보자. 엄마 아빠가 도와줄게 같이해 보자.
그래서 도저히 불가능한 요구를 끊임없이 하는 부모 그리고 끊임없이 잘못을 지적하는 부모의 요소가 나 자신에게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7) 불의를 보지 못하는 사랑
아무리 사랑이 충분하게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자녀의 불 의한 것을 다루지 아니하고 간과해 버린다면 자녀를 망치고 맙니다. 이 불의를 보지 못하는 잘못된 사랑은 다음 달에 말씀드릴 '어떻게 훈계할 것인가'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사랑의 요소 중에서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고전13:6) 참사랑의 속성이 결핍되어 버리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랑은 자녀의 일생을 해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면을 많은 부모님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요즈음 우리 나라의 제일 큰 문제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권위가 없는 사랑과 같이 이해되는 것이지만 특히 자녀에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과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설사 사랑이 전달되고 있다고 치더라도 훈계가 없기 때문에 즉 마땅히 가야만 할 길을 부모가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잘못된 것을 고쳐 주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진정한 행복의 삶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마땅히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서는 그 절대기준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뚜렷한 기준,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 한지요. 진정 자녀를 사랑하신다면 불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불의를 보고 정죄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마음 아파하며 기도하면서 그들이 마땅히 가야 할 바른 길, 하나님의 진리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참 자녀 사랑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라난다"는 말이 있지요. 참사랑을 흠뻑 받은 자녀들은 자신감이 있으며,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또한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을 겪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과 용납의 분위기에서 아름답게 성장한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 인격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사랑과 용납치 분위기에서 건강하게 자라난 자녀는 그들이 부모에게서 배운 그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한 자리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자녀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느 부모나 자녀들을 나름대로 사랑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참으로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넘쳐 나고 있습니다. 노래 가사에도 또한 많은 책 속에서도 사랑이 문제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홍수가 나면 온통 물 천지이지만 깨끗한 물 한 잔이 없어서 목말라 죽어 가고 있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단어는 흔하지만 지금 우리의 자녀들은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 하고 사랑을 애타게 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치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 소리뿐일세, 기갈 중에 있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질러 사랑 받기 원하네'(찬송가 373장)라는 가사처럼 어린이들도, 십대들도 참사랑이 없는 까닭에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에서는 그렇다 치고, 소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그런 사랑이 실현되어야 하는 크리스찬의 가정에서도 그 참사랑이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그러한 잘못된 사랑 또는 사랑의 결핍이 우리 자녀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며 그들의 삶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장에서는 그러면 어떻게 자녀를 사랑하여야 할까? 특히 크리스찬 가정에서 마땅히 실현되어야 할 참 사랑의 여러 모습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참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인류의 영원한 두려움이 있다면 내가 거부될까 봐, 사랑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
고 인류의 영원한 갈망과 목마름이 있다면 사랑 받고 싶은 소원, 흔들림과 변함이 없는 사랑, 나는 변한다 해도 상대방만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어찌 보면 모순된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요. 왜 인류 모두에게 그러한 갈증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러한 사랑의 주체가 실제로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원한 사랑으로 아낌없이 쏟아 붓는 사랑의 본체이신 그분이 실제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그 분과의 만남 속에서만 우리 모두는 그 사랑에의 ,목마름에서 영원히 해갈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우리 자녀들이 부모인 우리로부터 그 사랑의 개념을 배우며 자라난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소개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과연 어떠한 사랑을 자녀에게 주어야 할까요?
1.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 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녀에게 꼭 필요한 사랑이며 그들에게 능력과 용키를 주는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이란 '자녀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고 사랑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사랑 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그들의 인격과 존재가 그대로 소중하게 받아들여지고 사랑 받는 것, 즉 부족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존중받는 그러한 인격적 사랑을 말합니다.
즉 그들이 우리 마음에 들 때, 우리를 기쁘게 할 때, 혹은 사랑 받을 만한 행동을 할 때에만 사랑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착하다, 저래서 예쁘다, 그렇게 하면 엄마, 아빠가 예뻐하고 이렇게 하면 미워할 꺼야, 이렇게 하면 엄마, 아빠의 딸, 아들이고 그렇게 하면 엄마, 아빠의 딸,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조건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실수와 잘못을 했을 때에도. 비록 그 잘못과 실수는 엄격히 다루고 훈계하며 고쳐 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인격과 존재는 귀중하게 받아들여지고 사랑 받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 애타고 찾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녀를 살리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어도 실제의 삶 속에서는 잘 실현되지 않는 것이 이러한 사랑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인 것같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자녀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실수할 때, 배우고 성장하도록 기다려 주면서 여전히 받아들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어린이에게
어른의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 것, 과잉 기대로써 어른의 수준을 자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요. 조건 없는 사랑은 다른 사람과 비교되지 않고 내가 나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자녀는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눈치보며 힘겹게 노력하는 율법의 삶을 배우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조건 없는 사랑은 자녀가 당연히 "나는 배척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좌절하고 있을 때, "그래도 엄마, 아빠는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단다"라고 말해 주며 포옹해 주는 태도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느낄 수 있도록 청지기 또는 통로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자녀에게 능력을 갖게 해주는 참사랑인 것입니다.
2.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자녀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그 역동적 속성으로 볼 때 반드시 겉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며 행동으로 표현되게 되어 있습니다.
말, 글 혹은 어떠한 행동과 표현으로든지 나타나고 전달되어야 사랑은 사랑인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 창조 속에 그리고 성경 말씀 속에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 속에 여지없이 나타난 것처럼, 전달되고 표현되지 않으면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부모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얼마만큼 전달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그 사랑의 내용을 충분히 전달받고 있는지요 "나의 엄마, 아빠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계시다"라는 확실한 인식이 그들에게, 있는지요. 아니면 부모는 비록 그들을 사랑하고 있지만 자녀들을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르게 전달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십대를 만나 보면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어찌 되어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 눈에는 부모가 돈, 출세, 아니면 학교 성적에만 관심이 있고 자신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상처받고 오히려 반항하며 탈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1) 신체적 접촉으로 전달되는 사랑
그러면 신체적인 따뜻한 접촉으로 전달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실까요? 흔히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귀찮을 정도로 부모가 안아 주고 뽀뽀하면서 신
체적인 접촉을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점점 성장해 가면 부모와 자녀는 점점 멀어지면서 친밀함이 소원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고학년이 될수록 사랑과 용납을 보이기보다는 야단치고 성적을 확인하며 높은 기대치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부모들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마치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요. 그러는 동안 어느새 자녀들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전달받지 못하고 부모와는 서먹서먹한 관계가 생기고 말게 되지요. 자녀들은 어릴 때뿐만 아니라 십대와 청소년 시기에도 여전히 부모의 따뜻한 포옹과 격려, 사랑의 확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장해 가는 자녀들은 자신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어려운 시간마다 그리고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는 순간마다, 부모의 격려와 사랑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어깨를 감싸주는 격려, 푸근한 포옹, 사랑을 확인해 주는 손잡음 하나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흔히 부모들은 물질적으로 자녀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과 사랑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엄마, 아빠는 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너는 우리에게 소중하기 짝이 없는 존재란다. 너의 곁에는 너를 사랑하며 신뢰하며 기다리는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 다오"라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그러한 내용은 따뜻한 신체의 접촉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되곤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마음이 허해서 다른 데서 사랑을 구걸하고 있지는 않은 지요. 아니면 충분하게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여러분의 자녀를 한 번 넓은 가슴으로 안아줘 보십시오. 그리고 공부하고 있는 자녀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며 그들의 뺨에 키스해 주십시오. 잠자리에 들 때에도 이불을 덮어 주면서 따뜻한 키스를 주십시오. 특히 이미 컸다고 생각하는 십대의 자녀에게도 그렇게 해보십시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그러한 따뜻한 사랑, 접촉으로 인한 친밀감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사랑과 격려를 통해 자녀들은 새 힘을 얻으며 더욱 잘하게 되고 건강한 자신감, 자존감, 가 치감을 가지고 마음껏 성장해 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2) 말과 글로 표현되는 사랑
부모 여러분,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얼마나 자주 말하고 표현하십니까?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건성으로 하는 말 말고 진정 그 의미가 담긴 말로 또는 글로 "엄마, 아빠는 너를 너무나 사랑한단다"라고 표현하신 적이 언제입니까? "뭐, 꼭 말하지 않아도 나의 자녀는 알고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자녀에게 물어보십시요. 얼마나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으로 격려 받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돈 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과 정성과 때로는 관심이 필요한 일이지요. 특히 자녀가 좌절하고 있을 때, "너를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곁에 있단다. 용기를 가지렴"이라는 표현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말로, 글로 구체적인 표현을 하여야 합니다.
혹은 '사랑한다' 는 말이 너무 흔해서 그 깊은 뜻이 전달되지 않을 경우에는 표현을 바꾸어 보세요. "너는 엄마, 아빠에게 참으로 소중한 존재야" 아니면 "엄마, 아빠는 네가 있어서 행복하고 자랑스럽단다", "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란다"라고 표현해 주십시오. 자녀들은 듣고 싶어합니다, 제 딸이 세례 받던 날, 제가 축하 카드를 썼어 어떻게 쓸까 생각하다가 "엄마의 소중하고 귀중한 딸 빈아. 엄마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보다 백 배 이상이나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고 계시단다"라고 썼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과분한 딸을 주신 하나님께 엄마, 아빠는 감사하단다"라고 썼어요.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인생을 크고 넓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썼어요 세례식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더니 저의 딸이 "엄마, 나 과분한 딸 아니야, 엄마가 나한테 과분한 엄마예요"라고 오히려 위로하며 포옹을 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조그마한 사랑으로 주었는데 그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사랑하고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은 사랑할 능력을 우리에게서 배우지요. 표현도 우리로부터 배우는 것이지요 아직 자녀들이 우리 곁에 있을 때, 그리고 그들이 사랑의 표현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사랑의 새롭고 풍성한 표현을 아낌없이 주세요 아이들은 우리의 거울이에요. 혹시 라도 자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나요? 그건 어김없이 우리가 사랑을 덜 주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먼저 충분히 사랑을 전달하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그것을 되풀이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 가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아닌 가요. 충분히 전달하세요. 그들은 우리 품을 곧 떠납니다. 우리 품을 떠나기 전에 마음껏 풍성하게 뽀뽀해 주고, 위로해 주고, 특히 실수했을 때 사랑을 표현해 주세요. 그렇게 해줄 때 아이들은 "내가 굉장히 사랑 받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며 그 힘으로 모든 일을 넉넉히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3. 자녀를 망치는 잘못된 사랑들
그런데 흔히 맹렬한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자녀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를 같이 한번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1) 권위가 없는 사랑
요즈음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하되 부모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채로 사랑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부모들은 마치 자녀의 시종과도 같이 언제든지 자녀가 요구할 때면 항상 자녀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심지어는 자녀가 부당한 일을 요구하면서 떼를 쓰는 경우에도 "안돼!"라는 말을 하기를 두려워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러한 권위 없는 태도가 자녀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지 부모들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의 권위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로 반드시 행사되어야 하며 남용됨이 없이 아름답게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안돼!"라는 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신중하게 미리 생각해 보고 "안돼!"라는 말을 하십시오. 그리고 "안돼!"라는 말은 끝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어떤 어머니가 이렇게 고백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녀가 집을 떠나게 되던 날 "엄마, 나에게 왜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해 주지 않으셨어요. 저는 이미 늦었지만 동생에 게만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안될 때는 안된다고." 자녀들에게 그러한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자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도, 십대의 자녀들도 부모의 권위를 바라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권위를 말입니다. 진정한 권위에 입각한 가르침과 사랑을 그들은 찾고 있는 것입니다.
권위주의는 좋지 않지만 진정한 권위는 자녀에게 안정감을 주며 참사랑을 더욱 느끼게 해줍니다. 권위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 수 없습니다. 마치 거룩함과 공의가 없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자녀를 향한 진정한 사랑은 부모로서의 권위와 함께 균형과 조화를 반드시 이루고 있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의 진정한 권위를 찾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과잉보호 사랑
자녀에게 해를 주는 또 하나의 사랑은 '과잉보호 사랑'입니다. '과잉보호 사랑'이란 마치 헬리콥터식 부모의 형태를 말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자녀를
극진히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자녀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항상 감시하며 떼어놓지 못
하는 것' 이지요. 예를 들면 다칠까 봐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지나친 염려로 안심하질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자녀들이 스스로 건강하게 배우며 성장하는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자녀들은 때때로 실수를 통해, 때로는 자기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통해 배웁니다. 그러한 실수를 통해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법과 사회성 등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쉴 새 없이 자녀를 감시하듯이 지켜 주는 과잉보호의 사랑을 주는 것은 자녀들에게 안정감 대신 불안감과 좌절 그리고 신뢰감 대신 자신과 환경을 불신하는 법을 배우게 되지요. 더 나아가서는 결혼 적령기가 되어 부모 곁을 떠나 건강하게 독립해야 할 때에도 부모와 자녀간의 불건강한 의존 관계가 생겨나게 되어 그와 관련된 복합적인 징후들로 자녀들의 미래가 불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3) 조종, 지배하려는 사랑
조종, 지배하려는 사랑'은 자녀가 자신들의 뜻대로 살아 주기를 원하며 그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강요하는 것' 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신의 꿈과 뜻이 자녀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면서 그것을 위해 어린 자녀들에게 조종 또는 조건부 사랑의 방법을 통해 지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랑과 용납을 미끼로 은근한 협박을 주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이러한 것들이 의식적으로 알고 하는 경우보다는 부모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태도가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지요. 우리 모두 그런 취약점이 있을 수 있지요. 때로는 침묵과 화난 태도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과 호소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녀의 약점과 죄의식을 사용하기도 해서 결국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태도인데요. 진정 자녀의 유익과 훈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 자녀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은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유, 지배하려는 사랑은 자녀가 나의 소유가 아닌데, 나의 소유로 여기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녀는 내 뜻대로 살고 행동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아이의 의견이 달라도, 의견이 다른 걸 얘기해도 그걸 불순종이라고 여겨 버리면서 "넌 엄마(아빠)말을 왜 안 듣니"라고 몰아붙이는 경우이지요.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라난 자녀들 역시 스스로 결정하거나 꿈을 실행하고자 할 때 부모들에게 대한 불효감 또는 죄의식이 생기게 되지요 .
4) 잘못된 자기 희생적 사랑
잘못된 '자기 희생적 사랑' 이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자기 희생적 사랑이란 다분히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이며 바람직한 사랑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고 건강하지 못할 때, 또 하나의 자녀를 얽어매는 덫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잘못된 자기 희생적 부모는 부모가 끊임없이 자녀의 시종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권위가 없는 사랑과 비슷하지만 특히 이 경우에는 부모로서의 자신의 삶이 전혀 없는 것이지요 부모로서 개인성도 없고, 개인의 성장도 없지요. 물론 이러한 부모는 부부의 삶보다는 자녀의 삶이 우선이며 자녀의 행복만이 자신들의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 자녀를 진정 사랑하신다면 개인의 성장을 추구하세요.. 성경 공부도 하시고. 사회 봉사도 하시고, 개인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세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자녀를 누구에게 맡기시고 부부만의 시간도 가져 보세요. 차도 같이 마시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자녀의 행복이 나의 삶의 전 목표이고 꿈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녀들도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부담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성경적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해 보시고 자녀를 양육해 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키우신 부모., 특히 어머니의 경우 나중에 이런 말을 하게 되지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런 말이지요. 그러면서 순종과 효도를 강요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잘못된 희생적 사랑의 부모 밑에서 자랐을 경우에도 '독립'은 곧 '불효'로 여겨지며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그 희생적 대가를 치르기 위한 불건강한 의존 관계가 있게 되지요.
5) 일관성이 없는 사랑
자녀에게 해가 되는 사랑 중에 다른 하나는 '일관성이 없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점은 특히 제가 개인적으로 적용했던 것이었어요. 저는 유난히 감정
이 예민하답니다. 감정에 기복이 심하지요. 어떨 때는 내 감정에 따라 자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극심하게 자녀를 사랑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어떨 때는 유난히 우울해서 나 자신도 어떻게 조절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곤 했지요. 그렇게 우울할 때는 도저히 자녀를 일관성 있게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저에게 없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어린 자녀는 부모의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사랑으로 공급받으며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닌 지요? 그들은 부모의 기분에 따라 희생되는 것은 아닌 지요? 이러한 일관성 없는 사랑은 자녀에게, 특히 그들의 정서에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부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 사랑만을 가지고는 이러한 일관성 있는 사랑을 주기가 힘들지요. 저는 제 자신에게 사랑의 능력이 없는 것을 너무너무 느껴요. 저는 매일매일 고백해요. 제 자신에게는 일관성 있게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줄 능력이 없어요. 그러나 부모로서 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공급받고 있기에 그러한 사랑이 가능한 것이 아닌 지요. 마치 나의 컵 속에 있는 내 사랑으로 퍼 주려니까 그 사랑이 곧 고갈되고 없어져서 힘이 들지요. 그러나 내 컵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서 내 잔이 넘쳐 나면 그 사랑으로 자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사랑만이 자녀에게 진정한 유익이 되는 사랑, 참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먼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흠뻑흠뻑 젖어 보십시다. 치유되어 보세요. 그러고 나면 우리가 자녀를 사랑할 수 있고, 여유가 생기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죠. 우리는 무릎꿇는 부모가 되어야 해요.
부모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자녀 교육을 공부한다 해도 이론적으로 안되는 경우가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매일매일 무릎 꿇읍시다. 나의 자녀를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할 능력을 달라고. 일관성 있게, 그들에게 유익이 되게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때로는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연습해야 돼요. 내 감정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따라서 감정에 따른 사랑만으로 자녀를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아가페 사랑을 자녀 사랑에도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나의 감정이 허락하지 않아도 일관성 있게 자녀를 사랑하고 받아 주는 의지적 사랑이 요구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사랑, 의지적 사랑, 일관성 있는 사랑을 자녀에게 공급해야만 우리 자녀들은 안정감을 가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6)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부모의 기대
다음에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부모의 기준, 어떻게 보면 완전주의 적인 부모를 말하는 거죠. 여러분 중에 혹시 이러한 요소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80점을 받으면 "왜 85점 안 받았니?" 85점 받으면 "왜 90점 안 받았니? 반에서 5등하면 '너 위에 4명이나 더 있잖니"라고 야단치는 경우요. 그러니까 자녀는 끊임없이 노력해도 부모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가 없고. 그 기준은 끊임없이 높아지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즉 자녀가 성취 못한 부족한 부분이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부모지요. 그러한 기준을 가진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들 중에 많은 수가 스스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요. 나이가 들면 그것이 여러 가지 병적 징후들로도 나타날 수 있죠. 그들에게는 쉼이 없고 항상 무언가 이루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일중독이나 완전주의의 덫에 걸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자녀들이 성적을 받아 왔을 때 항상 어느 과목이든 조금 나아진 과목부터 칭찬을 하세요.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잘한 부분을 격려해 주고 항상
이룰 수 있는 과제를 내어 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35등 하는 자녀에게 "다음에 34등 해볼래" 한번 이렇게 해보세요. 그럼 자녀가 노력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35등 하는 애보고 "다음에는 10등 안에 들어야 한다"라고 요구하면 그 자녀는 아예 미리 포기해 버리죠. 모든 과목을 못하거든 너, 어떤 과목이
제일 어렵니 물어서, 이번에는 다른 과목은 하나도 하지 말고, 이번엔 딱 그 과목 하나만 공부해서 지난번에 60점 받았으면 이번엔 61점만 받도록 노력
해보자. 엄마 아빠가 도와줄게 같이해 보자.
그래서 도저히 불가능한 요구를 끊임없이 하는 부모 그리고 끊임없이 잘못을 지적하는 부모의 요소가 나 자신에게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7) 불의를 보지 못하는 사랑
아무리 사랑이 충분하게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자녀의 불 의한 것을 다루지 아니하고 간과해 버린다면 자녀를 망치고 맙니다. 이 불의를 보지 못하는 잘못된 사랑은 다음 달에 말씀드릴 '어떻게 훈계할 것인가'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사랑의 요소 중에서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고전13:6) 참사랑의 속성이 결핍되어 버리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랑은 자녀의 일생을 해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면을 많은 부모님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요즈음 우리 나라의 제일 큰 문제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권위가 없는 사랑과 같이 이해되는 것이지만 특히 자녀에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과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설사 사랑이 전달되고 있다고 치더라도 훈계가 없기 때문에 즉 마땅히 가야만 할 길을 부모가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잘못된 것을 고쳐 주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진정한 행복의 삶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마땅히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서는 그 절대기준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뚜렷한 기준,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 한지요. 진정 자녀를 사랑하신다면 불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불의를 보고 정죄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마음 아파하며 기도하면서 그들이 마땅히 가야 할 바른 길, 하나님의 진리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참 자녀 사랑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라난다"는 말이 있지요. 참사랑을 흠뻑 받은 자녀들은 자신감이 있으며,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또한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을 겪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과 용납의 분위기에서 아름답게 성장한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 인격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사랑과 용납치 분위기에서 건강하게 자라난 자녀는 그들이 부모에게서 배운 그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한 자리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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