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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고후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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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2003.3.16
목마르거든 93년 3월 호에 실린 어느 미스코리아 진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한 해에 미스코리아 진, 스마일 상, 스타상을 받아 3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미국 `마이애미 비치'에서 개최되는 `미스 유니버스대회'에 참석할 때는 마치 여왕이 된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21살에 13살 위인 사업가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결혼 전날. 분홍빛 꿈은 산산히 깨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돈이 다가 왔다고 합니다. 내일이면 남편이 될 남자에게 6년을 동거한 여자와 아이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안 것입니다. 미스코리아의 자존심 때문에 누구보다도 행복한 신부의 표정으로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마음의 상처는 `결핵성 늑막염'으로 이어졌고 그때부터 3년 동안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고 지병으로 시댁식구들로 등을 돌렸고 외로운 병상에서 남편의 외도소식을 전해들어야 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고 합니다. 병을 치료하고 1년간 병원에 입원하는 고통과 정성으로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괜찮아지려니 기대했건만 남편의 방탕한 생활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삶이 구차하게 느껴져 자살을 기도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답니다. 결국 가출을 하였고 패물을 팔아 아이 우유도 사먹이고 그럭저럭 버텨나갔는데 친정에서 아파트를 하나 얻어 주어 그곳에서 살았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학생 회장을 지냈던 자신, `미스코리아 진'의 영광을 안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자신의 모습은 이제 기미투성이가 되어 한 아이의 엄마니, 스트레스로 만성 소화 불량이 된 초라한 이혼녀가 되어 있었답니다. 룸살롱의 마담이 되어 아가씨 80명을 두고 술장사를 했답니다. 그러나 가슴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으로 돈을 물쓰듯 했다고 합니다. 돈은 많이 벌지만 시간 지남에 따라 빚만 집덩이처럼 불어났다고 합니다. 빚에 좇기며 괴로워하고 있던 던 어느날 16년 만에 고등학교 후배의 전화를 받고 그 집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 집으로 들어선 순간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천국같은 분위기를 느꼈답니다. 남편과 다정히 얘기하는 모습이 더없이 부러웠다고 합니다. 그분은 모 교회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갔는데 말씀을 들으며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니 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위로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위로하시는 예수님께서 그녀의 손길을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술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교회에 나와 백일 작정 기도를 하며 눈덩이처럼 큰 빚을 정리하고 6년 간 새벽기도를 하며 하나님과 교제하였다고 했습니다. 죄책감은 살아지고 마음에 참된 평강이 찾아왔고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게 하시는 하나님"(고후1:4)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로 10년의 싸롱생활을 청산하고 음식점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유흥가 선교를 비전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럴 때 우리를 위로해 주고 같이 있어주고 세워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의 인생 살이에 있어서 참된 위로자는 누구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1. 극한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위로를 받으며
나 홀로 어찌할 수 없는 극한 고난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풀지 못하는 인생의 숙제로 전전긍긍하며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1) 바울이 당한 환란(8-11)
능력의 사람, 기적의 사람, 한 시대를 변화시킨 위대한 지도자 바울에게도 극한 환난이 있었습니다.
(1)교회 내적 환란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바울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부의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관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글은 잘쓰는 데 말이 서툴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설교가 서툴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인 바울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참 마음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2)교회 외적 환란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아시아에서 많은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어떤 환난을 당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8-11절을 보면 얼마나 큰 어려움을 당하였는가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는 말을 볼 때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1)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
힘에 지나도록이라는 말은 환난이 극심해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자신의 힘을 초과한 상태를 말합니다. 고생이란 힘에 겹도록 무거운 짐을 지고서는 주저앉아 버린 기진 맥진한 짐승과 같은 상태입니다.
(2)살 소망이 끊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나아가는 길을 완전히 잃은 상태를 말합니다. 희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3)마음에 사형선고를 당하였다고 했습니다(9).
(4)큰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
내우 외환의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경험들이 있습니까? 혹 아무도 나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 없어, 결국 나는 나 홀로 서 있는거야라고 탄식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극한 고난으로 괴로워하십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오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을 봅니다.(3)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히려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에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을까요? 원망과 좌절 탄식을 하지 않고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2)바울이 만난 위로의 하나님(4-6)
(1)위로의 하나님
바울은 극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3)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동정을 베품),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위로라는 말은 파라클레시스로 곁으로 부르다. 초청하다 낙담한 상태에 있거나 환난 중에 있는 자를 격려하고 용기를 복돋아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10회나 사용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동정(sympathy)이 아닙니다. 어려움 당한 사람을 향해 마음 아파하는 것이 동정이라면 위로(comfort, “com 함께”“fort 힘”의 합성어)는 힘을 가진 사람이 돕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옆에 계셔서 걱정을 덜어 주고 후원을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사야 41장 10절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 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오늘도 말씀합니다.
(2) 하나님의 위로는 어떤 위로입니까?(4-6)
①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위로입니다(4). 우리가 위로 받지 못할 환난은 없습니다.
②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넘치는 위로입니다.(5)
나의 마음이나 사람을 통해 주시는 위로 이전에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주시는 위로입니다.(환난 중에 예수님 생각) 그래서 바울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것으로 표현(골1:24)했습니다. 우리는 위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③ 소망을 견고하게 하는 위로입니다(7)
견고함이란 흔들리지 않는 굳게 세우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견고하게 세우게 하는 위로입니다.
3)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위로자가 없다고 한탄하였습니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시 69:20)"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전 4:1)"
왕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위에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위로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을 녹여 주고 어루만져 주고 같이 마음 아파해주고 번민을 풀어줄 진정한 위로자가 없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 딸 다 죽고, 재산 다 잃어 버리니까 아내까지도 욥을 버려 버립니다. 친구들이 고난당한 욥에게 왔지만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욥은 고백합니다. "이러한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너희의 대답은 거짓뿐이니라 (욥 21:34)"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진정한 위로자가 되십니다. 실패한 모세를 위로합니다. 아브라함을 위로합니다. 사기꾼 야곱을 위로하여 세웁니다. 엘리야가 낙심하였을 때 위로하여 다시 사명을 줍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사야 51장 12절 이하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입니다(12) 황폐한 곳을 위로하십니다(사 51 : 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위로하십니다(사 66:11,13). 위로의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1) 광야가 에덴 같고, 사막이 여호와의 동산 같이 되고(사 51 ; 3), (2)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고(사 51 : 3, 52 : 9),(3) 두려워 안 하게 됩니다(사 51 : 12).
하나님 만이 참된 위로자임을 안 바울은 고백합니다. 9절 이하를 보십시오.
하나님 만을 의지합니다(9,10). 건져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의지하고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합니다(11).
건지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죽음의 위험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미래의 구원에 대해 확고한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환난 받을 때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를 미워하는 사라들에 의해 왕궁의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은 말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 1) 하나님을 찾을 때 위로와 소망과 새로운 비젼을 주십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에게 기도부탁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치료받았습니다.
2. 우리는 위로 받았으니 위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라고 속이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와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어 새롭게 세워주는 것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요구할까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며 도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어 시대를 변화시키는 주인공으로 사용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시길 원하실까요? 바울이 그 어려운 환난에 처할 때 바울을 위로하여 1세기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 있을까요?
1) 바울은 환난 중에 자신을 위로한 이유가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기를 위함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4, 6). 하나님이 환난 중에 위로하는 것은 자신만 위로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위로 받은 것도 고린도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4). 위로 받은 이유가 분명합니다.
2) 바울은 자신이 받은 환난이 오히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6).
3) 바울은 자신이 받은 환난 가운데 위로를 받는 것은 자신과 같이 고난을 받는 사람들이 고난을 견디게 하는 위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6).
4)우리도 이제는 위로의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하십니까?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립니까? 왜 우리 가정은 이런 어려움이 오고, 왜 이렇게 고생을 하여야 합니까? 회의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유를 모르는 성도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환난받는 이유(6)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1)너희의 위로를 위해서입니다(6). (2)너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6). (3)고난을 견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6)
미우라 아야꼬는 페렴 3기에다 루마치스까지 겹쳐 온몸을 기브스한 상태 가운데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자, 자기와 같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엽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수많은 페렴환자들이 그의 엽서를 받고 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었습니다. 남을 위로하는 가운데 그 녀의 병은 점점 더 나아 져 나중엔 결혼가지 하고 수많은 책을 집필하여 세계인을 감동시켰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스펄존 목사님은 "때로 지독한 영적 침체 때문에 고통과 두려움을 겪는다!"고 고백합니다. 허드신 테일러 중국 선교를 하면서 재정남과 아내와 자녀를 잃었습니다. 입아이 쓰면 사탕은 더 달콤한 것입니다. 구름은 사라지기 전에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뭄 땅에는 구름은 은총의 소식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간증 거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위로]라는 책이 있습니다. 맥스 맥스 루케이도 동화 작가, 목사가 지은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을 보호해야지.'하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구원해야지.'하고 생각하신다. 우리는 봉급이 오르기를 기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가 살아나기를 꿈꾸신다. 우리는 평화를 구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고통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죽기 전에 살 길을 찾아야지.'하며 마음을 다잡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숨을 버리면 살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썩을 것들을 사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것들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성공을 기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솔직한 자백을 기뻐하신다. 우리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 운동선수를 가리키며 "저 사람처럼 되라."고 아이들에게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입술에 피를 흘리며 옆구리에 창 자국 난 채 십자가에 매달린 목수를 가리키시며 "그리스도처럼 되라."고 말씀하신다. "
우리는 이제 위로의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위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위로의 효과는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만한 자리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위로를 받습니까? 고난 속에 위로의 체험을 받은 자의 위로는 힘이 있습니다. 나의 약함, 나의 실패가, 나의 약점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가난함이 고통이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김순권 교수의 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친구인 레이턴 친(Leiton Chinn)이 있었답니다. 미국 컬럼비아에 유학하고 있던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아 크게 낙심하고 있었답니다. 레이턴은 기숙사 룸메이트였는데 영어가 힘들어 공부를 그만둘 생각을 한다고 했더니 “미국 사람인 자신도 철학이나 신학을 공부하는 게 어려운데 외국인이야 오죽하겠느냐”면서 격려를 해주곤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에 들어오니 얼마전 치른 중간시험 답안지가 그의 침대 위에 던져져 있었답니다. 그의 점수는 40점으로 낙제 점수였다고 합니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조지아대 교육학과 출신 미국인도 저렇게 고생하는데 나에게 이 정도 힘든 것이야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용기를 얻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답니다. 알고 보니 레이턴이 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일부러 낙제점수가 보이도록 답안지를 올려놨다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위로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로하신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사야서 40장 1절에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고독한 사람, 죽어 가는 사람에게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위로가 있는 곳에 사막이 오아시로 변합니다. 미움과 질투, 원망과 불평이 있는 곳이 희락과 평강으로 변합니다. 증오가 있는 곳에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위로가 있는 교회가 부흥하고 위로가 있는 가정이 평안하고 위로가 있는 직장이 흥왕합니다. 위로가 있는 기업 노사가 화합니다. 위로가 있는 가정 사랑이 넘칩니다. 위로가 있는 교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행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9:31)"
테레사 수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큰 질병은 결핵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세상에는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위로받으며 위로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위로하며 위로 받으며 삽니다./고후1:3-7/김필곤 목사/200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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