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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떠나도 십자가 앞에 남습니다.

마가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574 추천 수 0 2010.04.06 14:48:04
.........
성경본문 : 막15:42-47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이번주는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고난 주간입니다. 우리 찬양 519장 부르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질 수 있냐고 물어 보시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의 책찍을 맞으시면서 십자가에 처절히 돌아가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험한 십자가를 지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옆구리는 창으로 찍히셨습니다. 반역자로 처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욕을 돌린 참람죄로 처형이 되었습니다. 민족적으로 볼 때 가장 죄형이 무거운 반역죄입니다.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다는 죄입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도 가장 극형에 처할 죄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죄입니다. 공개 처형을 당하는 이 골고다 현장에서 모두다 등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질병을 나은 사람도 등을 돌렸습니다. 예순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아무도 그 처형이 잘 못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자신이 손해 볼까봐? 자신도 반역자 예수당이라는 죄명을 쓰고 처형될까봐 다 도망가버렸습니다. 다 부인한다하여도 자신만은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 마저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고 물고기 잡으러 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는 아무도 거두어 가지 않았습니다. 추하게 그냥 십자가에 달려 새들에게 찢기고 썩어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신을 거두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역적입니다. 하나님께 참람죄를 지었다고 처형된 분입니다. 누가 거두어 가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 아주 당돌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 요구한 분이 계셨습니다. 오늘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장례식에 장례 위원장이 되신 분이십니다. 43절을 보십시오. 아리마매 사람 요셉입니다. 참으로 감동을 주시는 분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보여 주신 분입니다.

1. 우리는 십자가를 지므로 불이익이 예측된다해도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그 당시 사람들이 십자가를 떠났을까요? 모두다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기를 두려워했을까요? 두려워서 있습니다. 불이익을 받을까봐서입니다. 시신을 거두었다가는 자신의 재산과 자신의 지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릅니다. 이익이 되는대로만 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명분도 신앙도 이기심 앞에서 굴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답니다. 부친이 예배 시간에 맨 앞에 앉아서 예배가 시작하기만 하면 꾸벅꾸벅 졸아 교인들 보기에 민망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묘안을 냈는데 목사님은 어린 아들에게 할아버지를 깨우도록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옆에 있다가 할아버지가 조시면 쿡쿡 찔러서 깨워드려라. 그러면 내가 1불씩을 주마." 아들은 1불씩 받는 기쁨에 옆에 앉아 할아버지가 졸 때마다 열심히 깨워드렸답니다. 몇주간은 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주가 지나자 할아버지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도 깨우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은 아들에게 가서 물었답니다. "1불씩 준다는데두 왜 할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니?" 그러자 이 아들
"할아버지가 안 깨우면 2불 준다고 하셨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의리나 명분 보다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이런 일들을 많이 겪고 삽니다. 저희 교회 개척하고 경제 위기를 당해 참 어려웠을 때가 있습니다. 교역자 사례금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사례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 여전도사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죽기 위해 목회를 하는데 교회가 조금 어려워 사례금을 드릴 수 없게 되었다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드자 마자 교회를 그만 두겠다고 했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은 아닌데 말입니다. 잘 살다가도 조금 어려우면 집을 박차고 떠나 버리는 어머니들을 봅니다. 소년 소녀 가장들의 수필이 매년 나옵니다. 거의 내용이 비슷합니다. 어려워지자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어려워지자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소년 소녀 가장이 13000-15000명 쯤 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 아이들을 돕고 있지만 이익 앞에 도덕도 윤리도 인륜도 없이 매정하게 떠나는 사람들을 봅니다. 6.25, 일제 신사참배를 하며 십자가를 떠난 사람들을 우리는 압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많은 문상객이 모이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모이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받기를 싫어합니다. 좀더 편하게 좀더 즐겁게 좀더 안락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다해도 십자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될 줄 압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를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을 보십시오. 모두가 도망갔습니다. 예수님과 특별한 사연이 많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혈육관계도 아니고, 같은 고향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이라고 불리워졌고 요셉은 아리마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아 살아 계실 동안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장례 위원장이 되어 장례를 치릅니다. 무덤도 자신의 무덤에 안장을 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위험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분을 보십시오.
그는 부자입니다(마27:57). 존귀한 공회원입니다(막15:43). 70명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형수입니다. 로마로 말하면 반역죄를 진 사형수이고, 이스라엘 사람들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참람 죄를 진 사형수입니다. 그의 시체에 손만 대도 부정탄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그가 만약 예수님에게 이렇게 하면 그는 출교가 될 수 있고 그의 재산을 다 빼앗길 수도 있으며 그의 공회원 자격을 하루 아침에 박탈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장사지내는 것입니다. 앞 길이 보장 되어 있지 않습니다. 누가 알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칭찬 받을 일도 아닙니다. 같은 죄를 뒤집어 쓰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있는 재산, 명예 하루아침에 다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일을 담대하게 하였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하였습니다.(당돌히 막 15:43)

2.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은 한 가지 이유를 말씀합니다. (막 15:43)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선 예수님을 통해 선택받는 12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처럼 드러내 놓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오늘 나오는 요셉입니다.
요19:38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두려워 숨어지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을 지낸 후 그의 신앙은 담대해졌습니다. 막15:43에 나오는 당돌히는 '담대히, 용감하게'라는 말입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지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을 잘 시작한 것같은데 나중이 엉망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간, 엘리, 사울 같은 사람들입니다. 모세의 손자 우상 섬기는 제사장(삿18:30)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우상으로 망하는 꼴이 되었습니다(갈3:3). 에베소 교회 처음 사랑 풍성했는데 나중에는 첫사랑을 버렸습니다(계2:4-5). 왜 그렇습니까? 위기 앞에 어려움 앞에 십자가를 져야 할 때 십자가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면 우리 앞에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집니다. 애굽의 국무총리 요셉을 보십시오.
예수님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십자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표식이며 상급을 받기 위한 도구입니다.

요셉처럼 가면 갈수록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이 깊어져야 합니다. 처음 신앙 생활 할 때보다 나중이 더 좋아져야 합니다. 룻처럼 되어야 합니다.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룻 3:10)"
두아디라 교회처럼 되어야 합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 2:19)"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되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살후 1:3)"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 8:7)"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 하면 할 수록 교만해 지고 가면 갈수록 게을러 지고 죽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무감각해 지면 안됩니다. 가면 갈수록 겸손해지고 가면 갈수록 예수님을 닮아 더 섬기고, 더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께서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식당에 가서 앉아있는데,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와서 뭘 드시겠냐고 물어보지를 않더랍니다. 참다 못한 장로님은 지나가 버리는 한 종업원을 억지로 붙잡고 따졌답니다. "왜 물도 갖다주지도 않고 뭘 드시겠냐고도 물어보지도 않는거요? 천국에서 서비스가 뭐 이래요?" 종업원이 "장로님, 여기는 셀프서비스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그러면 왜 저기 있는 사람들은 셀프서비스가 아니고, 종업원들이 서비스를 직접 하는거요?" "아 저분들 말입니까? 저 분들은 주방에서 열심히 일한 집사님들과 화장실 청소, 차량안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십자가를 지고 온갖 더러운 것을 감당했던 성도님들입니다. 저분들께서는 지상에서 서비스를 항상 남에게 베풀고 남을 잘 섬겼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종업원의 이 말에 장로님은 다시 물었답니다. "그렇다면 저보다 조금 빨리 온 우리 교회 목사님은 어디에 있소? 보이지를 않는데..." 종업원이 말했답니다. "아 그 목사님요? 지금 막 배달나가셨어요."

아리 마대 요셉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이 깊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믿는 것을 밝히기를 꺼린 사람입니다. 식사하는데도 그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식사하던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진정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확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은혜이지요. 십자가를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망가는데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 바라보는 믿음이 생겼으니까요? 그러니 이제는 자신의 부도 자신의 권력도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선 순위가 바뀐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태양 앞에서 촛불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밤에 촛불은 가치가 있지 태양이 비치면 촛불을 끄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나라를 보면 세상 나라는 다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도취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언젠가는 오십니다. 우리 영원히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을 다 놓고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이 엄숙한 진리 앞에 우리는 겸손해져야 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7)"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 26:64)"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7)"
가장 힘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씻어 줄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그때 어떤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1)"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5:30)"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 살면 주님을 위한 어떤 십자가도 기쁘게 지고 갈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지고 가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아픔을 마땅히 감당해야 합니다.
자신의 무덤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였습니다. 그 무덤에 주님이 장사됨으로 인류 구속의 찬란한 부활의 현장이요 영원한 부활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구속사를 이루고자하시는 하나님의 예언이 그로 하여금 성취되었습니다.
아리 마대 요셉에 의하여 이사야 53장 9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죽음)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그저 자신 한 몸 들어갈 몸인데 인류 구속을 위한 예언이 그 무덤을 이루어집니다. 얼마나 값진 사용이겠습니까?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사용일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사용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되는 것은 가장 가치있는 것입니다. 많은 무덤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부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권력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직 아리마대 요셉의 무덥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사실은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기억이 되며 교훈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을 때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닙니다. 영광의 고통이고 축복과 상급의 도구가 되는 고통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후세인의 동상이 군중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알라신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라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알라를 이용했을 뿐입니다. 알라신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곳곳에 동상을 만들어 놓고 자신을 우상화하겠습니까?
필립 디 네리의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필립 디 네리(Philip de Neri)는 성자로도 불리우는 16세기의 위대한 사람입니다. 하루는 당시의 최고의 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의 교정을 걷고 있는 동안에 어떤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은 법률 공부를 하기 위해 왔습니다. 네리는 그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대학 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 했더니 청년의 대답인즉 "박사학위를 얻겠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계속 질문하길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하겠는가?" 했더니 청년은 답변하기를 "아주 힘든 문제를 몇 개 맡아 웅변과 지식으로 멋지게 변호처리해서 뭇 사람들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청년은 그 후에는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돈을 많이 벌고 드디어 부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계속해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고 했습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 "명성과 재물을 소유한 중에 평안하게 살 것이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지?" 그저자 청년이 대답하기를 "그 다음에는 내가 아마 늙어 죽게 되겠지요."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한번 더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이지?"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는지 몰라하는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로 가버렸습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나를 위해 너가 무슨 고난을 당했느냐고 물어보시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나를 위해 네가 진 십자가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우리는 다 떠나도 십자가 앞에 남습니다./막15:42-47/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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