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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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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신생교회 http://www.bamjoongsori.org |
[민병석 잠언 강해] 1 잠언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우리가 오늘부터 새롭게 공부하려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는 잠언서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 대답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오게 됩니다.
1. 인생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이다.
대개의 경우 절실하게 우리 인생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돈을 으뜸으로 꼽게 됩니다. 돈이면 제일이냐고 따지려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에게도 역시 돈이면 제일이 다고 하는 인간 본성의 욕망은 물리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돈은 인생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보다 해로움을 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돈이 나쁘다는 말은 없지만 ‘돈을 사랑’하는 일이나 돈을 섬기는 일은 자기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가장 무서운 독소가 된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경종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재물과 겸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재물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든지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생활이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는 생활이냐? 그 기준이 애매하고 설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사 이 문제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재물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기준이 되느냐? 하나님은 그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하셨습니다. 십일조는 내 것이니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지 못하는 생활은 이미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부터 분명히 명백한 선을 긋고 하나님을 섬겨야 내가 이제사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미국에 하이디란 이름의 백만장자가 있습니다. 그는 한때 사업에 실패하여 전 재산을 고스란히 날려버리고 10만 달라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정리하여 10만 달라의 빚을 갚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리하고 남은 얼마 안된 돈을 가지고 10만 달라의 빚에 대한 11조, 만달라를 드렸습니다. 이때 가족과 회사 직원들은 그의 태도에 맹렬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우선 회사 빚부터 갚아야지 십일조가 무엇이냐, 당신은 위선자다. 그런데 하이디는 나는 그간 하나님의 돈을 무수히 도적질했다. 사업이 잘 될 때 십일조를 훔쳤는데 그것을 돌려드리는 일이 더 급하다. 하이디는 회사가 도산하여 망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했던 것입니다. 그 후 하이디는 다시 재기하여 크게 사업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부하려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돈을 관리할 줄을 모르고 돈을 모으는 일에만 전심전력한다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적중하여 그의 인생 길이 파멸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롯의 생애를, 어리석은 부자의 생애를 보세요.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를 보에요. 지금 그 사람에게 체면이고 염치고가 어디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권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얼마나 좋으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백담사로 도망가고 유치장에 들어가는 창피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래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명을 걸고 나서는 사람들이 어디 한두 명입니까?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다, 재벌과 손을 잡지 않는다, 깨끗한 정치를 한다, 부정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거창한 구호로 출발한 공약이 얼마 안가 공염불로 돌아가 5년 후에는 더 흉측한 모습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어디 한두 번 보아 왔습니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권세에만 의지하려는 사람들의 종국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이냐는 것은 우리 한국의 짧은 정치사를 통해서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얻는 것으로 큰 자랑으로 여기며 인생의 가장 보람있는 삶인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이 뒤떨어지면 나라건 개인이건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인간의 지식은 자신에게 유익보다 해로움을 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인류를 파멸시킬 무서운 미래의 전쟁도 핵전쟁으로, 바로 인간들의 최고의 두뇌들이 머리를 짜낸 지식으로 만들어 낸 무기인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인간의 지식을 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학문이나 지식을 배제한 새로운 방법을 쓰시는데 그것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찾아보거나 인류사를 살펴볼 때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을 보면 돈 있는 사람도, 권세 있는 사람도,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한결같이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잠3:5절 말씀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어디서 얻을 것입니까? 성경은 어떤 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까? 다 함께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인간에게 생명을 주고 인간에게 소망과 참 축복을 주는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만이 얻을 수 있음을 성경은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지혜의 가치에 대하여 잠3:18절에서 ‘지혜는 그 얻는 자에게 생명 나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전부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샘이지만 특히 잠언은 우리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특히 삶의 지혜를 공급해 주는 보배 창고입니다. 우리는 매주 찬양 예배 때마다 이 보배로운 창고 문을 열어 그 가운데 가득히 들어차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승리적인 생활을 이룰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은 우리의 생애와 생활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축복 받게 하는 지혜의 샘입니다. 이 샘에서 삶과 성공의 참 비결을 터득하여 여러분의 생애에 새로운 축복의 문이 열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솔로몬의 잠언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1절에 있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 말씀대로 잠언은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글입니다. 그런데 끝에 나오는 30장은 아굴, 31장은 르무엘의 작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왕상4:32절 말씀을 보면 솔로몬은 특출한 지혜의 은사를 받은 왕으로 잠언 3천 개와 노래 천여 개를 남겼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잠언이란 낱말의 뜻은 원래가 성경적인 단어인데 원어로는 ‘미셀레’라고 불리며 ‘격언들’또는 ‘속담들’이란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솔로몬이 그의 오랜 생애 가운데서 터득한 인생 경험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일에 교훈적인 격언들을 모은 책입니다. 그러나 이 잠언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생활을 그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 잠언이 어떤 책이냐에 대하여 2절 이하에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잠언의 말씀을 통틀어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식이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지식이나 지혜와는 판이한 것입니다. 지혜란 과학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도덕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통해서 얻어지는 삶의 방편입니다.
잠언이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바는 바로 이 같은 지혜입니다. 이 지혜에는 훈계라든가 지식이라든가 학식이라는 낱말들이 들어가지만 이런 표현들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대한 낱말들로 모두 지혜라는 말 안에 들어가는 것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은 지혜는 인간들의 소산물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욥28:12-28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지혜의 근원이 나옵니다.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그 값은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하면서 결론에 가서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일은 지혜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지혜를 많이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올바른 지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지혜란 인간의 재능이나 철학이나 명철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잠언서를 기록한 솔로몬 왕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까? 스승으로부터 배워서 터득한 것도 아니며 왕이 워낙 명철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심으로 지혜자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말년에 한동안 그 많은 처첩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난 생활을 한 적이 있었지만 솔로몬이 왕이 된 초기에는 여호와를 심히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잘 지키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솔로몬 왕을 심히 사랑하셨습니다. 왕이 기브온에 가서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린 그날 밤, 하나님께서 꿈속에 솔로몬에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솔로몬 왕은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아오니 종은 작은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으오리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 같은 솔로몬 왕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받아 드려져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이것을 구하였 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이 같은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솔로몬 왕에게 전대미문의 지혜를 주신 것은 물론 왕으로 그 백성들을 잘 다스리게 하시려는 뜻이지만 또한 이 잠언서를 기록하게 하시어 후세에 하나님의 백성들로 삶의 지혜를 주시기 위한 놀라운 섭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잠언의 유익에 대하여 4절과 5절에서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인간 본래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생각이나 방법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잠언을 읽으면 슬기를 얻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슬기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필요한 지혜를 말합니다. 다음에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올바른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근신함을 준다는 말씀은 사람이 삼가해야 할 것을 삼가므로 자신을 지키는 일을 말합니다. 잠언은 이런 일에 필요한 말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에 학식을 더해 줍니다. 학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다면 잠언은 듣고 따르는 사람에게 그 유익한 학식의 성장 요소가 될 것입니다. 명철한 자는 모략을 더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략이란 어떤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 순간적인 방책이나 재략을 말합니다. 잠언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의 행로에서 부닥치는 모든 문제에 재빠르게 재략이나 방책을 떠오르게 하여 신속히 대처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을 통해서 얻는 지혜요, 다른 하나는 영감으로 얻을 수 있는 지혜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읽으며 연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풍성해져서 그의 생활에 믿음과 소망이 있으며 언제나 평강과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감으로 얻는 지혜로 손로몬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로 받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 은사에 대하여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모두 우리의 생활에 공급해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론 : 7절 말씀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그 근원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지혜는 우리의 생명을 해치며 우리로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지혜를 따르지 않고 인간의 지혜를 찾고 따릅니다. 누가 미련한 자입니까? 잠 24장 말씀을 보면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에 두기 때문에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에 마음을 두고 생각을 두고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파멸의 길을 가게 되며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10년 동안 교회에 잘 나오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 학문은 빈약하고 세상적인 지식이나 지혜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잠언이라고 하는 지혜의 샘에서 참 삶의 지혜를 배우면서 신앙적으로 성장 할 때 여러분은 참으로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혜로 성공적인 생애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0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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