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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전승에 관해서

출애굽기 최용우............... 조회 수 2467 추천 수 0 2010.04.21 07:33:48
.........
성경본문 : 출16:1-15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39853 

emoticon  2008.9.14

만나 이야기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뛰쳐나온 때가 기원전 1290년경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광야를 횡단해야만 했습니다. 그 광야는 신, 수르, 미디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시나이 반도라고도 합니다. 광야를 횡단하는 일이 간단하게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낙타나 수레가 조금 있었을 텐데, 그런 것으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실어 나를 수는 없습니다. 민 11:21절에 따르면 그들이 최소한 60만 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젊은 남자들이었다면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들 중에는 노약자들, 장애인, 불치환자도 많았습니다.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여러 부족들도 이스라엘에게는 위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이나 배회했습니다. 성서의 보도에 따르면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20살 이상 되는 사람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광야에서의 삶이 그렇게 어려웠다는 뜻이겠지요.

 

가장 큰 어려움은 뭐니 뭐니 해도 마실 물과 양식입니다. 광야는 생활조건이 사막과 비슷합니다. 거기에는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물이 없습니다. 물이 없기 때문에 광야가 된 것이기도 하구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오면서 어느 정도의 식수를 준비하기는 했겠지만, 그리고 어쩌다 내리는 빗물을 받아놓기는 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살아서 건널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전에 살던 이집트는 물이 많았습니다. 나일강은 바로 이집트 문명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서러움을 받기는 했지만 물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광야생활을 시작하니 당장 식수가 문제였습니다. 출 15:22절 이하의 말씀에 따르면 홍해를 건넌 그들이 사흘 동안 물을 구하지 못하다가 겨우 도착한 오아시스 마라에는 물이 모두 썩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야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나무 한 그루를 물에 던지자 물이 마실 수 있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 나무가 아마 해독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식수 문제를 그렇게 해결하고 다시 길을 떠난 이스라엘은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는 이집트를 떠난 지 한 달째 되던 보름이라고 하는데, 먹을거리가 다 떨어져갔습니다. 바로 앞에서 마시는 물 문제로 한 바탕 난리를 쳤는데, 이제 다시 먹을거리 때문에 또 난리가 벌어집니다. 그게 바로 오늘 구약본문인 출 16:1절 이하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도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출 16:3)

 

이들의 불평이 나오자 야훼께서 매일 먹을거리를 주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먹을거리가 그 유명한 ‘만나’입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야훼 하나님이 먹을거리를 해결해주겠다고 말씀하신 뒤 어느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을 덮었다고 합니다. 메추라기는 철새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새들을 잡아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안개가 자욱했고, 안개가 걷히자 광야 지면에 마치 “흰 서리가 땅을 덮듯이,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하고 물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것은 야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시는 양식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곧 만나입니다. 만나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이게 무엇이냐?” 하는 발음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캥거루라는 영어 이름도 그 짐승 이름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은 호주 원주민이 “난 널 모른다.”는 뜻의 발음에서 온 것처럼, 만나도 그와 같습니다.  

 

만나는 지금도 시나이반도에서는 흔하게 발견됩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유목민들은 ‘만’이라고 발음한다고 합니다.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연지벌레의 침을 통해서 나오는 분비물이 나뭇잎에 맺혔다가 땅에 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기온이 내려가는 밤에 딱딱하게 굳어져서 사람들이 손으로 모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그것이 대기의 온도가 조금 오르면 녹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모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나는 어느 정도 단맛이 있어서 요즘에도 먹을거리가 부족한 광야의 유목민들에게는 인스턴트 먹을거리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만나가 그렇게 흔한 먹을거리였다고 한다면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초자연적으로 준비한 것이라는 성서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말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요. 몇 년 전에 저는 이 본문으로 설교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간단히 그 요점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거리가 떨어져서 모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모세는 야훼 하나님에게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만나를 기억나게 했습니다. 모세가 누굽니까? 그는 지금 이스라엘이 횡단하고 있는 광야에서 40년이나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어디에 만나가 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그쪽으로 끌고 갔겠지요. 또는 광야 어느 곳에서나 지천으로 널려 있던 만나를 보통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이런 위기상황에서 먹을거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야훼 하나님이 모세의 영적 시각을 열어주셨겠지요. 어떤 방식이든지 생존의 위협을 받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셨다는 사실이, 만나를 먹을거리로 삼은 영적 통찰이 중요합니다.

불평하는 이스라엘

 

저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 본문으로 만나 주제에 관한 설교를 이미 한 적이 있어서 다른 본문으로 설교를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더라도 본문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는 봐야지 하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때 잘 눈에 들어오지 않던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대목은 바로 이스라엘의 광야 역사만이 아니라 그 뒤로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신앙과 더 나아가서 기독교 신앙에서도 역시 중요한 영적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나 사건이 이스라엘의 ‘불평’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좋은 믿음이 있을 때 주어지는 것인데, 만나는 왜 그것과 정반대되는 불평이 쏟아질 때 주어진 것인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나 전승을 보도하는 오늘 본문(출 16:1-15절)은 이스라엘이 불평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2, 7, 8, 9, 그리고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서기자는 전체적으로 이 불평을 결코 좋게 평가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는 어조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8절에 따르면 모세를 향한 불평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한다는 것은 가장 불신앙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그들의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주셨다고 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12절을 읽겠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해거름에 고기를 먹고 아침에 떡을 실컷 먹고 나서야 너희는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하고 일어주어라.”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은 왜 이들의 불평을 그대로 용납하시고, 더 나아가서 그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근본 문제를 해결해주신 걸까요?

 

일단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조건들이 나빠지면 불평하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뛰쳐나온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생존의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광야생활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먹을 게 다 떨어졌습니다. 자식과 노부모들이 굶어야 할 지경입니다. 그런데다가 가나안에 도착하리라는 약속은 별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을 핑계로 자신들을 생존의 막다른 골목으로 끌어낸 사람이 누구냐, 책임을 져랴, 하는 식으로 인민재판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사실 오늘 우리에 비해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양반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처럼 생존의 위기에 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다는 것은 바로 먹고 살기 힘드니까 경제를 살리라는 대한민국 민중들의 불평이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 신앙도 모두 잘 사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얼만 전에 기독교 티브이로 오스틴 목사의 설교를 잠시 시청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라는 설교였습니다. 감사한 삶을 강조하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감사한 삶의 결과가 곧 출세와 직결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남보다 지위도 빠르게 올라가고, 집도 빨리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장 아무개 목사와 신 아무개 목사의 설교 동영상이 종교편향 문제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모두 가난하고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는 잘 산다는, 아주 비정상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이런 모든 발언들은 삶에 대한 불평에서 나온 것입니다. 정말 생존이 위태로운 사람들의 불평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끝없는 물질적인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정신적인 질병 현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은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불평을 들으시고 만나를 내려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불평이 하나님의 응답을 불러내는 통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만나는 야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12b) 그 앞대목인 만나를 거둬들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에서도 아침에 내리는 만나가 곧 야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이 지적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나 전승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야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먹을거리가 없어서 죽겠다, 왜 우리를 끌어냈느냐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평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며, 야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만나 전승은 민수기에도 보도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전승은 출애굽기 전승과 약간 다릅니다. 민수기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만나를 먹고 있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만나만 먹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에 질려버렸습니다. 이집트에서 먹던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어 했습니다. “아, 고기 좀 먹어 봤으면” 하면서 엄살을 부렸다고 합니다. 모세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하나님께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자 야훼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야훼께서 바람을 일으키어 메추라기를 몰아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 잔뜩 쌓이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이틀 동안 메추라기를 거뒀습니다. 메추라기가 얼마나 많았든지 적게 거둔 사람이 열 섬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고기를 한창 뜯고 있을 때 야훼의 진노가 내려서 그들을 치셨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민 11:31-34)

야훼는 하나님이다

 

민수기는 먹을거리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데 반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본문은 간접적으로 비판합니다. 민수기는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었다고 하고, 오늘 본문은 만나 사건은 곧 야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조금 다르게 전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경험한 만나 사건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을 경고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식수와 먹을거리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이집트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이집트를 뛰쳐나온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 그 증거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생존의 위기가 별 거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업자가 되거나 사업이 망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 전에 자살한 연예인 안재환은 사업실패와 사채독촉에 시달렸던 같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사업실패가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삶의 의욕마저 파괴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 인간을 파괴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불평을 쏟아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불신앙입니다. 야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잘못입니다.

 

야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약속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그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문제는 가나안은 미래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삶이 피곤할 수밖에 없는 광야입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약속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광야에서의 고난으로 인해서, 물론 힘이 들기는 하겠지만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기독교인들도 역시 광야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나안 땅을 향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미래입니다. 지금 우리 손에 구체적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생명이 아예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광야의 목마름과 굶주림이 현재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을 잘 떠서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영적인 만나가 보일 겁니다. 영원한 생명의 씨앗들이 지천에 널려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부분적으로라도 드러났습니다. 생명의 현실들이 거울로 보는 것일지라도 드러났습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기쁨이 여러분에게 있지요? 그래서 불평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한 생각들이 여러분을 끌어가고 있겠지요? 그럴 줄로 믿습니다. *  


댓글 '2'

이영봉

2021.07.03 07:24:07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 아니고 사막에서 흔한 먹거리였다는 것...
그럼 홍해를 건넌것은 당연히 갈대밭이었을것이고
오병이어도 아이가 도시락을 꺼내들자 다들 도시락을 꺼내서 풍성히 먹을 수 있었다는 것...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고 잠시 기절했다가 살아난것뿐
예수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살아나고 말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정목사님 그걸 말하고 싶은거죠?

나무

2021.07.03 08:06:57

'만나' 이야기는 전에 어느 성서학자가 <목회와 신학>이라는 월간지에 쓴 글에서 읽은적이 있는데
다른 이야기들은 본적이 없네요. 댓글을 단 이의 마음속에 있는 상상력이 아닌런지...
한 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다른것도 그럴 것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일으키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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