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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빛을따라간사람들] 이세종

영성묵상훈련 조영란 기자............... 조회 수 1380 추천 수 0 2010.04.21 10: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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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빛을따라간사람들]  이세종
 

 1.성경을 읽고 그대로 실천하였던 이공

 

예수님의 참된 제자 이세종 선생님은 한국의 토속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분이다. 그는 10여년 이상을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다가 40세가 되어서야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얼마나 열심히 성경을 읽고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았는지 몇 해 후에는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그에게 성경을 배우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이처사라 불렀으나 정작 자신은 이제 세상에서 공(空)을 친 사람이니 이제부터 이공(李空)이라 불러달라고 하였다. 이공은 밤이면 성경을 암송하고, 낮에는 인근 마을의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성경공부 시켰다. “파라. 파라. 깊이 파라.”고 하면서 철저한 영적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 중의 한 분이 “맨발의 성자”라고 불리는 이현필 선생이다. 그리고 이공은 특히 순결사상을 강조했다. 이러한 순결사상을 따라 개신교 수도단체인 ‘동광원’이 탄생되었다.
이공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만물을 매우 사랑하였다. 그는 독사도 죽이지 않았고, 자기 발 밑에 깔린 개미의 죽음을 보고 울었다. 산길을 갈 때에는 칡넝쿨이 사람에게 밟히지 않도록 옮겨 놓았다. 이처럼 그는 산천초목과 금수곤충까지도 사랑했으며, 모든 생명 가진 피조물을 경외하며 살았다.
그는 예수님을 믿은 순간부터 세속적인 소유를 모두 버리고 철저히 오직 주님 한 분만을 따르고자 하신 분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이 믿고 실천했던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제 36년의 암울하던 시기에 전남 일대를 밝게 비추는 빛으로 사용하셨다. 이세종 성자의 진실된 삶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밝고 거룩한 빛이 비춰지기를 소망해본다.

 

2.불신자 시절

 

1880년, 전남 화순군 동광리에서 삼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영찬’이었다. 어려서부터 착실하고 정직해서 무슨 일에든지 부지런하고 충직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일찍 부모를 여의었기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하였다. 형님 댁에 같이 살던 그는 28세 때 동광리에서 20여리 되는 청풍면 차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10여년 동안 머슴을 살았다.
남의 머슴을 살면서 혼자 노력하여 한글을 배웠고, 부모대신 형과 형수에게 효도하였다. 짚신을 삼아도 제일 좋은 것은 형과 형수에게 주었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을 자신이 신었다. 성격은 솔직하고 급하였다. 그리고 한 번 자기 비위에 맞지 않으면 천만금이 생긴다해도 하지 않았고, 한 번 결심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그대로 했다. 산에 나무하러 갈 때에도 ‘그 날 몇 짐을 하리라’고 작정했으면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그대로 하였다.
그는 나이 30세에 자신보다 16살이 어린 소녀를 결혼식조차 못 올리고 데려와 살았다. 그녀의 이름은 문순희였는데, 나이도 너무 어렸지만 아주 무식한 처녀였다. 결혼을 한 이공은 십년 작정을 하고 돈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게 발이 닳도록 열심히 일을 했다. 겨울에는 콩 잎사귀 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돈을 모았다. 그래서 10년 후에는 동광리 부락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었다.

 

3.자식을 얻기 위해 산당(山堂)을 짓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많은 돈을 벌었으나 아내가 생산하지 못하였으므로 큰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식을 얻고자 무당의 권유로 천태산 중턱에 산당을 짓기로 했다. 산당을 짓는 동안 그는 상가집의 연장은 빌리지도 않았으며, 재료는 제일 좋은 것을 사용했고, 샘물은 삼중으로 파서 정한 물을 구별시켰으며, 마당에는 연못을 파고 정원도 꾸몄다.
이렇게 산당을 3층으로 준공한 후에 무당과 함께 살면서 제사상을 차리고 정성을 바쳤다. 그런데 얼마 후에 무당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하늘같이 받들던 무당의 장례를 치르면서 그는 모든 정성이 허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 이 산당은 성경을 가르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지도나 가르침이 없이 혼자서 성경을 읽었다. 그러던 중에 ‘레위기’를 읽어보니 거기 나오는 제사법이 자기가 산당에서 차려놓고 지냈던 제사법과 비슷하여 신기하게 생각했다. 성경을 계속 읽는 동안 그는 산당에 열두 제상을 차려놓고 촛불을 켜고 매일 공을 드렸던 것이 헛수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만이 참된 신(神)이며 그동안 자신이 잡신에게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그는 신약성경을 읽는 중에 기독교의 위대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후 그는 그동안 해온 미신 행위를 모두 버리고, 산당에 꾸며 놓았던 것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 잡신을 섬기기에 열심이었던 만큼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도 정성이 지극했다. 그는 나이 40세 때 노나복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예수님을 믿고 너무도 기뻐서 천태산 기슭 바람재 위에 높이 올라서서 아랫도리가 벗어진 줄도 모르고 두 손을 치켜들고 춤을 추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억조창생 만민들아! 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4. 회개와 변화

 

이공은 예수님을 믿은 후 철저히 회개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죄를 일일이 떠올리고 모두 배상해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버릇대로 남의 밭머리를 지나다가 콩잎을 뜯어먹은 것을 생각하고 그 콩밭 주인을 찾아가 죄를 자복하고 그 값을 변상해주었다. 또한 자기 돈과 곡식을 퍼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특히 늙은이와 어린애가 많은 집을 찾아다니며 나눠주었다. 거지나 나그네가 찾아오면, 함께 식사를 하였다. 이공은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연구하였다. 밤에 혼자 앉아 성경을 읽을 때면 “오! 그러십니까.”라고 하면서 혼자서 자문자답(自問自答)하였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는 이세종이 하나님과 이야기한다고 소문이 돌았다.
그는 성경을 한구절 읽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예수를 믿으려면 철저히 믿어야 한다.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게 믿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성경에 가르친 대로 실행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행1:8)고 하신 말씀을 보고 전도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살던 동광리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까지 찾아다니며 하루도 쉬지 않고 전도했다. 십자가를 만들어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했다. 때로는 식사도 잊고 전도하였다. 한 번 전도하러 갔던 집을 계속 찾아갔기 때문에 한 집을 다니는 데에만 짚신 세 켤레가 닳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온 삭개오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가 갚겠나이다”(눅19:8). 그는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여 자기에게 빚진 모든 사람들의 빚을 다 탕감해주었다. “여기 있소! 당신의 문서 도로 받으시오. 모조리 탕감해 드리는 것이니 안심하시오.” 그는 빚진 사람을 불러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빚 문서를 불질러 버렸다. 물건이든 돈이든 모두 탕감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이공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마을 안에는 그에게 빚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이러한 덕행을 보고 면(面)에서 그의 송덕비를 경찰지서가 있는 통정리 마을 길에다 세워주었다. 그러자 이를 알게 된 그는 사색이 되어 면사무소를 찾아가 통사정을 하면서 “사람의 유언이나 송덕비는 그가 죽은 다음에라야 하는 것이지 산 사람에게 무슨 송덕비를 세웁니까?” 하면서 자기가 한 일은 그런 비를 세울 일이 못되고 자기의 이름은 세상에 나타낼 만한 것도 못되니 제발 그 비석을 없애달라고 하였다. 여러 번 눈물로 사정하는 그의 진심을 알고는 할 수 없이 면에서 그 비석을 땅에 파묻어 버렸다. 조그만 일에도 생색을 내며 공명심에 사로잡히는 작금의 세태와 얼마나 다른가!
그는 외출할 때는 반드시 몸에 구제할 돈 얼마와 자기가 사사로이 쓸 돈 얼마를 따로 가지고 다녔다. 구제할 돈을 따로 가지고 다니다가 구제를 받아야 할 사람을 만나면 누구라도 주저하지 않고 주었다. 그는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첫째는 복음 전도비, 둘째는 세금, 셋째는 남에게 갚을 것, 넷째는 구제비, 다섯째로 접대비로 책정하였다. 그리고 나서 남은 돈이 있으면 그것으로 생활하고 없으면 굶어 죽는 경우가 있어도 그렇게 쓰라고 했다.
남을 구제하는 정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구제는 자기가 쓸 몫에서 떼어내어서 구제해야 참 구제이다. 자기가 먹을 것 안 먹고 해야지, 먹고 입고 쓸 것을 다 쓰고 남은 것을 구제하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 한 벌 준다해도 자기가 입은 옷이 다 해어져 누더기가 되기까지 입으면서 주어야 참 동정이 된다.”

 

5.청빈거사(淸貧居士)

 

이세종 선생님은 예수님을 믿은 후, 사람들이 자기를 ‘이공(李空)’이라 불러주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자기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위해 공(空)을 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철저한 자기부인의 정신이었다. 하루는 여제자 오복희씨가 이공에게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묻자, “얻어 먹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한마디 할 뿐이었다. 스승의 충고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자기는 도저히 그 교훈대로 실행하지 못할 것 같았으나 여러 해 동안 망설이다가 어느 겨울 눈오는 날 그녀는 맨발로 거지처럼 얻어먹으러 나섰다. 탁발을 실행했다. 구걸하러 다니면서 냉정히 거절하며 주지 않는 집을 거듭 세 번씩이나 드나들면서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을 했다. 입으로는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이란 찬송을 부르면서….
이공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부터는 믿는 일에 아예 퐁당 빠지려했다. 거지가 되려하고, 남 보기에는 미친 사람 같고 이단자 같이 되려고 각오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그 정신을 넣어 주려고 훈련을 시켰다. 이공의 음식이나 행색은 거지나 다름이 없었다. 지나치게 검소했다. 잘 입으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사치스럽고 좋은 듯싶은 것은 저주스러워 못 쓴다고 하면서 헌누더기로 만족했다. 이공은 기도 중에 “도인(道人)은 화려하면 못 쓴다”는 영음을 세 번이나 들었다고 한다. 노자는 말하기를 “성인은 몸에는 거친 옷을 입으나 가슴 속에는 玉을 품고 있다”고 했고, 장자는 “참다운 성인은 혁혁한 광채를 벗어버리고 평민과 범인(凡人) 속으로 피신한다. 덕이 뛰어나면 외형은 잊어버린다”고 했다.
이공도 말하길, “좋은 옷을 입고 길을 가보라. 그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부러워 뒤를 돌아보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간다면, 아무도 돌아다 볼 사람이 없다. 내가 사치한 옷을 입고 다니면, 남들이 부러워서 빚을 내서라도 그 흉내를 내려할 것이 뻔한 일이니, 이는 내가 그 피값을 빨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참 君子는 사치한 옷을 입고 다니지 못하는 것이다.”
유행은 사람들의 모방심리를 이용해서 퍼져간다. 거기서 여러 가지 범죄가 파생되는 법이다. TV에서 어떤 유명 연예인이 입던 옷이나 악세사리 등이 순식간에 유행을 타고 급속히 전파된다. 유행의 죄는 맨 먼저 시작한 사람의 죄다. 이공은 외식(外飾)을 원수라고 믿었다. 꽃뱀이나 독사의 겉모양은 화사한 무늬가 있는 법이다. 그는 “사람은 겉보다 속을 아름답게 단장해야 한다. 속이 진실해야 한다. 겉을 꾸밀수록 속은 텅텅비고 거짓되어 간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겉을 꾸미는 재주에 능하고, 서로 만나면 손잡고 흔들며 웃고 야단이나 속에는 시기, 질투, 미움이 꽉 차있다.”고 탄식했다.
이공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았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생활, 꾸밈없이 사는 일이 그의 즐거움이요 자랑이었다. 그는 늘 말하기를, “내 속을 다스리는 일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다”고 믿었다. 한 번은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하여 갔는데, 세상에서 보기 드문 우스운 모자를 쓰고 거지옷을 입고 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설교보다도 그 꼴이 신기해서 거지가 설교를 한다고 모여들어 법석이었다.
이공은 의식주 문제를 초월하며 살았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를 초월했고, 성(性)문제도 초월했다. 그는 심신을 자기 마음 먹은 자유자재로 통솔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음식에 대한 절제가 철저했다. 육식은 전혀 않고, 생선도 먹지 않았으며, 남의 집에서 명절 음식을 가져온 것도 먹지 않았다. 이공 자신이 금식하는 일은 보통이었으나, 남에게는 장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지나친 음식대접을 극히 조심하여 좀 더 먹는 다 해도 변소 한 번 더 나녀오게 하는 수고 밖에 더 유익한 것이 없다고 가르치면서, 배부르기를 구하기 보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둘러 앉아서 성경 공부를 하는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음식을 들지 않았다. 공부가 끝난 다음에야 “성경 공부는 공사(公事)요, 음식먹는 일은 사사(私事)다. 이제 공사가 끝났으니 사사로 돌아갑시다”하며 음식을 먹었다.
그는 남을 구제할 경우에도 자기가 먹을 분량에서 얼마를 덜어서 구제하였다. 혹시 교회에서 위임식이나 무슨 큰 잔치가 벌어져 초대를 받으면, 이공은 참석은 해도 음식은 먹지 않고 자기 몫으로 내놓은 것을 가지고 나와서 구경꾼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리고는 탄식하기를 “이렇게 하니 전도가 안됩니다. 교인들은 먹지 못하더라도 믿지 않는 마을 구경꾼들을 잘 대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했다. 이세종은 음식 중에 찰밥을 가장 좋아했다. 어느날 그는 찰밥 생각이 너무나서 아내에게 찰밥 좀 하라고 했다. 아내가 5홉 쯤 되는 찰밥을 해 주었더니, 그는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아이구, 이 놈은 죄인 놈이오. 이 놈이 잘못이오”하면서 가난한 사람들 생각이 나서 못먹고 앉았다가 기어이 밥그릇을 들고 나가 이웃에 있는 가난한 집을 찾아다니면서 나눠주었다. 눈이 내리는 어느날, 식혜를 먹고 싶어해서 아내가 찹쌀 식혜를 만들어 주었더니, 두어 술 떠 먹고는 더 먹지 못하고 통곡하면서 “이 놈이 진작 어느 도랑물에라도 빠져 죽지 않고 이제껏 살아온 것이 이런 먹을 것이나 탐내서 죽지 못했던가?”하면서 탄식했다.
언젠가는 능주라는 곳에서 선교사 20주년 기념식이 있었는데, 이세종은 무명옷을 입고 갔다가 불쌍한 거지를 보고는 그만 옷을 바꿔 입었다. 거지의 옷은 검은 옷에 이까지 있고 작아서 볼쌍사나왔지만 그는 태연히 참석했다.
이세종은 한 때 등광리에서 첫째 가는 부자로 삼층 산당을 짓고, 매일 진수성찬에 좋은 옷 입고, 장자(長者)행세를 하던 자였는데 예수를 믿고 철저히 변화되었다.

 

6.자비심은 물결같이

 

그는 무엇 때문인지 종종 거리를 울면서 다녔다. “하나님, 죄인들을 어떻게 하실라우?” 그는 자비심이 충만하여 걸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입으로는 “하나님, 죄인들을 어떻게 하실라우?”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호소했다. 불쌍한 죄인들을 볼 때는 “인간이 이렇게 살다가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지 않습니까?”하면서 측은해서 못 견뎌했으며, 혹시 잘못한 사람을 볼 때는 꾸지람을 했다가도 돌아서서는 눈물지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을 보면 답답해 하며 “그것을 가져다가 유익하게 써보지 못할 것인데, 왜 헛수고 하는고?”하고 안타까와 하였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타락한 사람을 보면 “하나님, 이 사람을 잊지 말아 주소서”하고 밤새도록 기도하였다.
거지가 찾아오면 자기가 먹는 대로 손수 밥그릇을 들고 나가 주면서 다 먹기까지 곁에서 지켜보며 “빨리 먹고 한 집이라도 더 가서 구걸해야지!” 했다. 그는 덕(德)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남에게 덕을 끼치는 일이 아니면 절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덕을 위하는 일이라면 억지로 5리를 가자고 청해도 10리를 같이 가 주었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겐 겉옷까지 벗어 주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나타나 주님을 믿은 뒤 이공이 딴 사람으로 변한 것을 이용해서 그의 살림살이가 전부 자기 것이라고 호통을 쳤다. 그 때 이공은 한 마디도 답변하지 않은 채 다만 스스로 탄식하기를 “이제는 나도 죽을 때가 되었나 봅니다” 할 뿐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그대로 빼앗기는 일이 곧 얻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부자로 살던 그가 예수님 믿고 거지 모양으로 다니니 어떤 때는 친척들이 달려들어 자기들에게 주지 않는다고 발악하고, 이공의 살림을 때려 부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망치 않았고, 그들이 바라는 요구 이상으로 편리를 봐주었다. 이공은 이 세상의 명예와 칭찬 따위는 털끝 만큼도 바라지 않았다. 그런 것은 뜬구름이요 허망한 것이라면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다녀선 안된다. 내가 남에게 무엇을 봉사하려고 해야지,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보고 탐나서 따러갔다간 반드시 시험에 빠질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그는 칭찬받기를 바라는 일에 대하여 말하길, “쓸데 없이 칭찬하는 자도 마귀요, 칭찬받는 자도 마귀이다”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산천초목과 금수곤충에 이르기까지 사랑으로 대하였다. 모든 생명 가진 것을 경외하고 넘치는 사랑으로 대하였다. “만물들아!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세.” 아름다운 산천과 우거진 숲을 바라볼 때면 그는 한량 없이 기뻐했다.
어느 날 부엌에서 갑자기 풍덩하는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구정물을 담아 둔 동이 속에서 쥐가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공은 부엌 구석에서 막대기를 주워다 쥐가 기어오르도록 다리를 놓아 주었고 쥐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하였다. 개미 한 마리라도 자기 발에 밟혀 바둥거리는 것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하는 행위를 보아서는 내가 너에게 깨물려 죽어야할텐데 네가 나한테 밟혀 죽다니” 하면서 울기도 하였다. 이공은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한 죄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하니 만물도 사람에게 반역한다고 말하면서 동물들이나 초목이나 무엇이든지 사람에게 매인 것들을 잘 보호하고 아껴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늘 이공을 따라 다니면서 이런 모양을 곁에서 지켜 본 그의 제자는 말하길, “이공께서는 언제나 말보다 행위로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날 어디가나 가짜만 많은 세상에서 이공 어른만이 순금인(純金人)이었습니다”고 했다. 이공의 가르침은 누가 듣더라도 엄숙하고 두려웠다.
겸손은 매우 역설적이라 할 수 있다. 낮출수록 높아지며 겸손할수록 고귀해지는 역설적인 법칙, 낮추는 이가 사람일 때 높여주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상관관계에 근거해 있다. 겸손하게 섬기는 자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소중하고 큰 미덕일 것이다. 이세종 선생님(이공)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겸손한 생활을 알아보고자 한다.

 

7. 겸손(謙遜)

 

어느 날 이공이 거지처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길을 가고 있었다. 그가 가는 길에 마침 마을에서 가장 심술궂고 못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이공에게 말하길 “어디가? 이리와 봐.” 그 사람은 다짜고짜 이공을 끌고 가더니 길가에 있는 나무에다 새끼줄로 꽁꽁 묶어 놓았다. “꼼짝 말고 이렇게 있어.” 이런 말 한마디하고는 그는 자기 갈 길로 가버렸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불같이 급한 성격이었다. 이웃집 닭이 자기 집 마당에 들어오면 얼마나 급하게 쫓았는지 닭이 날갯죽지가 빠질 정도로 혼을 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후 세상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아도 그저 예예하였다. 본래 성질이 불 같으면서도 이런 일을 당하고도 그저 순한 양이 되었으니 얼마나 자기를 죽였겠는가? 이공을 나무에 묶어 놓고 간 사나이는 어디 가서 자기 일을 보면서 아침에 한 일을 깜박 잊었다가 오후에 그리로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이공은 나무에 묶인 채 잠자코 있었다.
“저런, 왜 풀고 가지 않고 여태까지 이렇게 있었소?” 사나이가 미안해 묻는 말에, 이공은 말하길, “매는 것도 법이나, 푸는 법이 또한 있어야 가지오”라고 말하면서 아무런 원망도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박씨 문중의 어떤 사람이 마을 네거리에서 이공을 들어 비석 위에 올려 놓고 “꼼짝 말라”고 했더니 이공은 온종일 그대로 있었다. 이 자식, 저 자식하여도 그저 예예할 뿐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이공은 그를 보고 “이젠 내려가도 괜찮을까요?”하고 묻고서 내려왔다. 박씨는 그때 자기의 소행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했으며 후에 그 또한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공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 개구쟁이들이 길을 막고 서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팔을 비틀고 괴롭게 하고 어떤 때는 문둥이, 비렁뱅이, 내 아들이라 놀려도 묵묵히 지나갔다. 그러면서 이공은 스스로를 반성하기를 “사자의 입도 막으신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의 입 하나 못 막아내서 내게 이런 애매한 말을 듣게 하실 것인가? 아이들이 나를 문둥이라고 욕하는 것은 내 몸이 비록 문둥이가 아닐지라도 내 속에 문둥병이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알려 주심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비렁뱅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내가 세상 사람에게는 비렁뱅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야 빌어먹으니 옳은 말이다”하면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그는 자기 마음에 행여 교만심이 일어날까 봐 길을 다닐 때에는 거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는 항상 겸손을 배웠고, 예수님처럼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 이공은 자기를 높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옷이나 태도, 심지어는 꿈에서까지도 교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옷도 남보다 좋은 것을 입으면 그 옷이 마음에 교만을 일으켜 어느 새 남을 낮게 보고 멸시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그는 상을 차려 먹지 않고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다. 혹시 누가 밥상을 차려와도 마음이 높아진다고 싫어하고, 자기는 죄인이라면서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다. 그는 어디를 가려면 먼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살펴보아 어떤 동기에서 가고 싶어하는가 반성해 보고,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뜻이라고 느껴져야만 비로소 일어섰다. 같은 마을의 어느 집에 찾아 갈 때에도 그랬고, 어디서 유숙하게 되는 경우에도 꼭 성령님의 뜻을 물었다. 어느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선 대문에서 발을 멈추고 자기 마음을 일단 반성해 보았으며, 마음에 지금 찾아가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들어가지 않고 그 길로 발길을 돌려 되돌아갔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이 말씀처럼 사랑이 없이 누구를 찾아간다면 상대편에게도 자기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성령님의 감동이 오는 것인데 이는 누구나 쉽게 받는다. 성령님의 감동은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기 쉽다.
그 다음에는 성령을 받는 것인데 이는 회개하여야 한다. 사람이 햇빛을 받으려면 방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이 자기에게 달렸다. 회개하고 안하고에 따라 성령님은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그 다음에는 성령 충만을 받는 일인데 이것은 성령님을 완전하게 받는 것이다. 완전하게 받으면 그때는 다시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릇에 물이 가득히 담기면 넘쳐 흐르는 듯한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8:9).
사람의 마음은 방과 같다.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 되면 성령님이 들어와 계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항상 깨끗이 준비해야 한다. 사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더러운 짓을 하려고 해도 못하는 법이다. 성령이 더러움에서 나를 지켜 주는 것이다. 우리가 정과 욕심을 순간순간 십자가에 못박아야 성령을 받기 때문에 성령을 받기 위하여 자기도 애를 써야 한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는 신자가 건전한 믿음생활을 하려면 ‘신비’, ‘경험’, ‘지혜’, ‘지식’의 네 가지를 겸전해야 된다고 하였다.
이공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았다. 거지가 구걸하건, 반가운 귀빈이 오건 집 식구들이 먹는 것과 똑같이 대접하였다. 어떤 때 부인이 화를 내면서 거지를 박대하는 눈치이면 아내를 타이르면서 거지도 우리에게 찾아오는 손님이니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성경 말씀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다.
어떤 거지는 구걸하러 와서는 이공 댁에서 평소에 먹는 대로 주니까 너무 형편이 없는 음식이라서 안 먹고 가는 이도 있었다. 때로 이공은 거지에게, “당신은 혹시 마을 잔치 집에 가서 한끼라도 잘 먹었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만 이 놈은 우리 주님의 은혜를 알고 난 후부터는 지금까지 좋은 음식이라곤 입에 넣어 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어느 날 이공이 병중에 있을 때, 미국인 노나복 선교사가 지나가다가 소식을 듣고 귤 몇 개를 이공에게 드리고 간 일이 있었다. 그는 병이 회복된 후 계란 얼마를 가지고 선교사를 찾아가서 문병 왔을 때에 잘 대접하지 못한 일을 사과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을 존대할 줄 알았고, 목사를 험담하는 사람이 있으면 책망했다. 한 번은 사람들이 어느 목사를 험담하는 소리를 듣다가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시오. 그래도 목사라면 교인들을 앞에 놓고 남을 가르치는 분이신데 그럴 수 있겠소. 그만 두시오”라고 했다. 그래도 듣지 않고 계속 험담하자, “여보시오, 그만 두라면 그만 두지 왜 그러시오. 그런 말은 남의 험담이란 말이오. 남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지 않았소”하고 말렸다.
이공은 남들의 칭찬이나 악평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비평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 적도 없었고, 언제나 여전히 한 길을 갔다. 자기의 명예나 호평 따위는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의 생활 태도가 성경에 비추어 보아 맞느냐 안 맞느냐 반성할 뿐이었다. 남이 자기를 칭찬하는 일이나 존대하는 일은 절대로 싫어하고, 그런 것은 마귀 대접이라 여겼다. 칭찬이라는 것은 약자가 받으면 교만이 생기는 법이요, 덕이 장성한 사람이 받을 때는 도리어 괴로울 뿐이라고 하면서, 그러기에 칭찬은 무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예 따위는 털끝만큼도 구하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고 진리대로 살려고만 애를 썼다. 눈 한 번 뜨는 것, 발 하나 옮겨 놓는 것까지도 진리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는 늘 지혜롭게, 솔직하게, 양심대로 살라고 가르쳤다. 그는 솔직했고, 남도 솔직한 것을 좋아했다. 솔직하지 않을 땐 책망했다. 무엇이나 사실대로 해야지, 사람이 일부러 꾸며 만든 것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라고 절대로 금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며 사람의 칭찬을 즐기지 않는다.
바로 이공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오로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 보았다. 자랑은 교만이 되기 쉽고, 교만은 쉽사리 많은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겸손은 온전한 처세를 위하여 빼어 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겸손은 지혜로운 자의 몫이며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聖經)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感動)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義)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
이처럼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그 속에서 진리를 찾을 것이요 문체를 따질 것이 아니며, 성경을 읽으면서 겸손되이 순직하게, 또한 성실하게 읽을 때 많은 유익을 얻게 된다.

 

8. 성경 연구

 

이공은 세상적인 학문은 많이 접하지 못했으나 그토록 유명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적인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누구보다도 성경을 많이 읽었으며,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데 있었다.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너 죽는다. 뿌리도 깊이 팔수록 좁다. 좁은 길이다. 깊이 파고, 깊이 깨닫고, 깊이 믿어라. 어설프게 파면 의심밖에 나는 것이 없다.”
이공은 제자들을 앞에 놓고 성경을 연구할 때마다 이렇게 권면했다. 참 기독교 진리의 세계는 좁은 길이다. 그는 농부가 밭에서 무 뿌리를 파는 비유를 들면서, 신자는 성경을 깊이 파고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공 자신이 성경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 성경을 거의 통달할 정도였다. 낮이면 종일 성경을 읽고, 밤에는 암송을 했다. 성경 요절을 밤을 새워가며 암송하고 요지를 표해 놓았다. 제자들 앞에서 자기의 손가락을 펴들고 “성경에 통달한 사람이라야 비로소 손가락 사이로 세상을 내다보게 된다”고 하면서, ‘남을 가르칠 때는 성경을 눈에 대고 내가 배우고, 자기가 자기를 가르칠 때는 성경을 마음에 대고 읽어야 한다. 성경은 마음의 거울이다’라고 역설하였다.
“성경은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밖에 안 보이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이 이렇고 저렇고 말을 하지만 성경을 들고 앉아 말하는 것만 가지고는 다 모릅니다. 신자는 신·구약 성경과 찬송가를 늘 읽고 부르되, 그것을 생선으로 비유한다면 구약은 머리 토막과 같고, 신약은 가운데 토막과 같은데 찬송가는 꼬리와 같습니다”고도 했다.
또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성경은 밥이요, 찬송가는 국과 같다고 했다. 누군가 무슨 질문을 한다든지,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곧, “성경을 찾아봅시다. 성경 본문 그대로가 참 진리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라고 하였다.
제자들과 같이 성경을 공부할 때에는 이공은 안에는 신(神)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누구나 그 앞에 있으면 유리관 속을 들여다 보듯 자기 마음에 품은 것을 숨길 수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더욱 두려워했고, 그의 앞에서는 괜히 떠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조심할 데 가서는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조심하지 않아도 좋을 데서는 조심하노라 하니 그래선 못쓴다. 병원을 가면 병을 고치고자 다 털어놓 듯이 우리도 서로 털어놓고 고치자는 것이 아닌가?”고 하였다.
그는 남에게 바로 말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면서 남이 말씀대로 살지 않거나 잘못된 것은 바로 가르쳐 고쳐주는 것이 참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나 성경을 읽는다고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그는 성경을 읽는 태도에 대하여,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자에게는 멸망이니라”(잠10:29)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정직한 자는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소화시켜 유익을 얻으나, 악인은 도리어 성경에 걸려 넘어진다고 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1:15-16).
성경을 읽는 사람은 우선 자기를 깨끗이 해야 한다. 음란을 멀리하고 양심이 맑아야 성경을 읽어도 모든 것을 바로 깨닫는다.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아무 것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무나 아무렇게 읽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바로 읽으려면 먼저 자기를 깨끗케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공은 성경을 읽으며 탐구할 때 남들이 엿들어 보면, 그는 혼잣말로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 그렇습니까?”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공이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9. 읽은 말씀을 꼭 실천하였던 이공

 

이공은 단지 성경 연구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한번 읽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주의였다. 그는 성경과 실제생활의 일치에 전력했던 사람이다.
어느날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로마서를 공부하는 중에,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기를 탄식하며 고대한다’(롬8:18-22)는 성경을 설명하다가 바로 앞에 앉아서 듣고 있는 박복만씨에게 말했다.
“당신, 지금 앉았다가 누웠다 하고 있는 그 자리를 좀 보시오.”
박공이 자기가 앉아 뭉게고 있는 풀밭을 보니 마치 멧돼지나 산짐승이 뒹군 자리같이 풀들이 어지럽게 깔려 쓰러져 있었다. 이공은 그 풀을 손짓하며 말했다.
“그 풀들은 지금 탄식하오, 안하오?”
“헤헤, 탄식합니다.”
박공은 그렇게 지적을 받으니 좀 미안했다. 이공은 “모르고 한 일은 괜찮아요. 알고 지은 죄가 벌이 중하오”하고 나서는, “그렇소. 부끄러움을 모르면 인생의 가치가 없는 거지요”했다. 그날 성경공부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길가에서 쉬는 도중에 손에 쑥 한 포기를 뜯어 들고 제자들에게 물었다.
“이 쑥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 있소?”
“예. 색깔이 변치 않는 것, 봄이 오면 다시 돋아나는 것 등 쑥 한 포기에서도 배울 것이 많지요.”
“그렇지요. 그리고 그처럼 변함없이 믿는 마음을 가지려고 피차 애쓰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육신적으로 볼 때는 쑥뿌리보다 더 쓴 것이 진리요, 그러나 영적으로는 꿀보다 더 단 것이 진리이니 이것을 잘 붙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공은 비록 세상 학문은 배우지 못했지만 타고난 지혜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제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처럼 영특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가 살던 도암면 등광리 근처 동두산 마을 박씨촌에 박참봉이라는 한학자(漢學者)가 있어서 시골 마을에서는 내노라 했다. 한 번은 그가 이세종을 찾아와 자기의 한학(漢學)을 자랑 삼아 이공에게 까다로운 질문 공세를 편 일이 있었다.
박참봉은 천자풀이와 주역(周易)으로 이공에게 질문하고, 이공은 성경을 가지고 대답하는데, 그만 박참봉이 감복하고 말았다. 그후에 박참봉은 기독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사재를 들여 그 마을에 교회 건물을 지었으며 다시는 주역(周易)을 보지 않고 성경을 읽으면서 꾸준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10.‘이세종파’를 만들지 말라

 

이공은 남의 일을 비평하지 않았고, 기성교회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교회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좀 불만스러운 점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서 구원의 자녀들을 나게 하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공은 제자들에게 말하길 자기 강의만 듣지 말고 다른 교회 집회나 도시의 큰 교회에 가서 공부하라고 권했다. 누구나 한 편 소리만 들어선 바로 깨닫지 못하는 법이며, 껍데기가 있어야 알맹이도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언제나 제자들에게 경고한 것은 ‘이세종파’를 절대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이공에게서 배운 바를 어디에서 가르칠 때, “그 가르침을 어디에서 받았느냐?” 묻는 일이 있으면, 이공에게 들었다고 말하지 말고 천태산 바위 밑에서 받았다고만 대답하라고 일러주었다.
이공이 제자들과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예배를 드릴 때 연보를 가지고 온 이들에게는 일일이 물어 보았다.
“이 연보를 식구들이 알게 가져왔소? 모르게 가져왔소?”
만일 집안 식구들이 모르게 가져온 연보라면 하나님은 그런 연보를 절대로 안 받는다고 도로 가져가라고 명했다.
“아니, 한 번 가져온 연보를 어떻게 도로 가져가요?” 하는 이가 있으면, 이공은 “이리 주시오. 내가 갖다 드리지” 했다.
성탄절 연보도 그러했다. 쌀 얼마를 가족 몰래 가져온 이가 있었는데, 이공이 자기가 친히 그 연보 쌀주머니를 안고 그 교인의 주인댁에 내놓으며 사유를 설명하자 그 집 가족들이 도리어 황송해 하면서, “이처사, 그러지 마시오. 한 번 바친 것을 어떻게 도로 받습니까?” 했다. 이러한 가족들의 진심을 알고 나서야 “댁에서 허락하신다면 도로 가져 가겠습니다” 하면서 가지고 나왔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이공을 신용했다.
이공은 이처럼 빛을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했던 배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였으며 그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살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서 배우고,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새롭게 다짐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2-16).
인생은 이 땅 위에서는 고역이라는 말씀처럼 시련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시련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어떤 때는 힘들고 어렵지만, 그 시련을 잘 견디어내기만 한다면 매우 유익함이 많다. 사람이 시련을 당하므로 더욱더 겸손해지고 영혼은 더욱더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출애굽 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여보내기 위해서 광야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들을 이런저런 환경 속에서 시련을 주신 것과 같다. 하나님은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 겸손하고 거룩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시키려고 하신다.
이와 같은 원리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인도하시는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많은 시련 속에서 연단을 받아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을 본받아 성화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세종 선생님은 주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신 분이라 하겠다.

 

11. 고난을 사랑한 이공

 

일제 말엽, 일본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당하던 때, 이공은 사람들에게 할 수만 있으면 피해 다니며 숨어 있으라고 권했다. 왜냐하면 “붙잡혀 감옥에 갇히든지 순교하는 일은 내 영혼 구원 얻는 데는 좋으나, 그렇게 핍박하는 이들에게는 범죄할 기회를 주어서 그들에게 살인죄까지 짓게 하는 것이니 차라리 숨어사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이공 자신 또한 신사참배 때문에 피해 다니다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화학산 깊은 산 속에서 3년 간 살면서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게 될 때까지 극심한 고생을 하였다. 방을 작게 짓고 문도 좁은 문으로 만들어 몸을 구부리고 겨우 들어가게 했다. 그곳에 사는 동안 전혀 세수도 목욕도 하지 않았다. 음식은 처음에는 보릿가루나 도토리 가루 등을 먹었으나 시일이 지날수록 음식의 분량을 줄이면서 마지막에는 밥이 죽으로, 죽이 가루로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달은 물로 바뀌고 나머지 한 달은 공기로 변했다. 3개월 동안 음식이라고는 입에 대지 않으니 몸의 살은 빠지고 피골이 상접하여 눈은 우물처럼 움푹 들어가 두 눈동자만 광채가 났다. 제자들은 이런 그를 두고 살아있는 가죽 성경이라고 하였다.
겉사람 즉 육성의 기능이 점점 떨어질수록 속사람 즉 영성은 더욱 맑고 새로워지는 법이다. 육이 살면 영이 흐려진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육신은 더욱 쇠약해가지만, 반대로 영은 더욱 맑아지는 법이다.
이공은 환난과 고난을 기뻐하였다. 그는 인생에 있어서 고난의 섭리를 믿었다. 사는 것이 죽는 것이요, 죽는 것이 도리어 사는 것이라는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를 굳게 믿었다. 그에게는 생활의 어려움, 가정의 고난, 육신의 질병, 정신적인 고통 등이 계속되었다.
이공은 제자들에게 “병들었다고 울지 말고 나았다고 기뻐하지 말고 후에 또 올 병을 생각하라. 부자라고 기뻐하지 말고 가난하다고 한탄 말라. 화가 복이다. 이 이치를 깊이 명심하며 살라”고 가르쳤다.
또한 그는 “사람들은 자기 살림에 특별한 축복이 없을 때에라도 재앙을 당하지 않는 것이 곧 복인 줄을 모르고 있다. 신앙생활에 있었어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믿고 당장 무슨 큰 복이 쏟아져 내려오지 않더라도 재앙이 오지 않는 것만 으로도 복인 줄을 알아야 한다” 고 가르쳤다.
어느 때 이공은 팔에 종기가 나서 무더운 여름날 동안 낫지 않고 계속해서 고통이 더해갔다. 그래도 그는 태연히, “아무 때라도 한 번은 썩을 몸, 죽으면 모조리 썩을 것이니 살아서부터 썩은들 어떠랴” 하면서 약도 쓰지 않고 견디었다.
“의인은 환난을 기뻐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많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 믿음이다.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쓰라린 경험을 많이 겪은 이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는 고난의 경험이 곧 믿음이다. 많이 경험할수록 잘 믿는 것이다.”
“고난은 천국 상을 버는 일이다. 무슨 고통과 어려움이라도 다 당하라. 많이 겪을수록 좋다. 많이 벌어 놓고 빚 갚는 일과 같고 더구나 내가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고난을 당할 때에는 상을 받게 된다. 세상에서의 고난, 학대, 핍박받는 것에 대한 삯이 바로 다시 오는 세상의 영광이다.”
그의 가르침은 고난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기복사상에 사로잡힌 연약한 성도들의 신앙과는 전혀 다른 가르침이었다.
“고난을 자원해야 한다. 고난을 일부러 벌어서 겪으면 값비싼 경험을 얻게 된다. 그런 이는 앞으로 시험이 닥칠 때 넘어질 위험성이 적다.”
“이 세상에서 나 하나를 살리려면, 남을 밟고 그 위에 내가 올라서지 않고서는 어렵다. 남을 넷, 다섯 죽이고서야 비로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이런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려면 항상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고 자기에게 강한 것, 내놓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게 살아야 한다.”
“신자들이 십자가, 십자가 하지만 십자가가 무엇인가? 사람에게 거리끼게 하는 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 형틀은 가로 세로 사방으로 뻗어 있다. 이런 십자가를 등에 지고 좁은 문으로 통과해 보라. 가시덤불 사이로 지나가 보라. 아무 데도 걸림이 없이 쉽게 통과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십자가는 남에게 거리끼는 것이다. 자기의 팔다리를 십자가처럼 두 팔 뻗고 활개치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 보라. 그런 모양으로 자기 집 봉창 문이라도 나가려 해 보라. 어떻게 나갈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공의 교훈이요, 그가 밟고 간 길이다. 고난의 길!

12.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이공은 수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하길, 한 가지 방법으로만 말고 때로는 도시에서, 때로는 산중에서, 때로는 많은 군중 속에서, 또는 혼자서 고독하게 골고루 경험해 보아야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시작할 때는 몰라도 결론은 모두 좋게 맺어질 것이라고 했다.
“수도는 고생을 겪어보며 연단 받으려는 것이니까 넉넉한 생활 속에서는 수도가 되어질 수 없다. 수도자가 먹을 것, 입을 것이 넉넉하면서 수도한다고 하면 남들이 비웃기도 하려니와 많은 시험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 수도하려는 사람은 아예 빌어먹을 작정을 하고 나서야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금식하는 일에 관해서 말하길, 사람이 보는 데서 자랑하거나 칭찬 받으려고 하는 것이라면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신자는 무엇이나 세상에서는 사람 앞에서 숨겨야 한다. 그는 사람의 존경이나 칭찬을 절대로 받지 말라고 엄히 경고했다. 괜히 “금식, 금식하고 다니면서 말을 듣지 말고, 있으면 감사히 받고 없으면 말라”고 했다.
또한 이공은 “하나님은 큰 사랑이시니 은혜를 주시는 데 있어 누가 고생을 많이 하고 애쓴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은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부자나 깡패에게라도 그 아버지는 주신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마귀가 있기 때문에 믿는 신자들이 고난을 겪는다. 사단이 자꾸 송사하니 그 답변으로 그의 입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고난을 겪게 하신다(욥기1:9-12). 신자는 이 세상에서도 평안하게 살게 하다가 죽은 후에 천국에 보내고, 불신자는 이 세상에서 고생만 겪게 하다가 죽은 후에도 지옥에 보낸다면, 마귀가 참소할 것이다. 마귀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에 몰려 스스로 지옥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신자들이 이 이치를 모르고 고생이 싫다고 야단들이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우편에 달린 강도가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눅23:41)고 겸손하게 고백한 것처럼 우리들도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닥쳐온 고난을 도리어 감사하게 받아야 하겠다.
그는 말하기를 신자는 이사야 53장을 읽으면서 성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 계시는 동안 성부께서 그를 어떻게 대우 하셨는가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남루한 옷 그대로 묻으라고 부탁하면서, “좋은 옷 입혀 땅에 썩히면 죄가 되오. 나의 떨어진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요”라고 하면서, 1942년 음력 2월 추운 겨울에 그토록 사모하였던 주님의 품으로 갔다.
결혼한 여자가 한 남편의 아내가 되어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단란한 가정을 꿈꾸면서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성경적인 높은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여 집을 나가 외갓 남자와 두 번씩이나 살림을 차리며 살던 아내가 있었다. 그의 남편은 그런 그녀를 끝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주었고, 그 여인은 결국 회심하고 그 후부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았다. 이 여인이 이세종(이공) 선생의 부인 문순희 여사다. 필자는 거룩한 한 남편이 강퍅한 한 아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세종은 “백명의 교인들보다 한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공의 부인은 일자무식이었고 생각하는 것도 좁았다. 또한 조급하여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 이런 부인에게 이공은 말하길 “당신은 산골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당신은 샘이 많은 여자라서 도심지에 가서 살게되면 성격이 더 나빠질 것입니다”고 자주 말하였다.
이세종은 예수님 믿기 전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았는데 그때 아내를 얻게 되었다. 그의 나이는 30세였고, 부인의 나이는 14살이었다. 그녀는 이공에게 시집와서 세상의 다른 부부들처럼 재미있게 정을 나누며 살지 못했고, 자녀마저 낳지 못했다.
남편은 예수님을 믿은 후 순결한 삶을 결단하고 “이제 우리는 남매처럼 살아야 한다”고 침소를 같이 하지 않았다. 그 많던 재산마저 다 남에게 주어버리자, 부인은 견디다 못해 “이렇게 사는 내가 그의 아내냐?”면서 같은 마을에 사는 어떤 청년과 눈이 맞아 집을 나가버렸다.
부인이 딴 남자와 눈이 맞아 나가버린 것을 알게 된 이공은 그 집을 찾아가서 아내에게 돌아오라고 권하였다. 이공은 부인과 살림을 차려 살고 있는 그 남자에게도 말하길,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 내 죄 때문이요.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으니 제발 저 여자를 돌려보내 주시오”하면서 그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부탁하였다. 그럭저럭 몇 해 동안은 살았으나 마을 사람들의 여론이 나쁘고, 그 남자는 여자가 썩 마음에 드는 점이 없어 여자를 돌려보내고, 자기는 부끄러워 이사를 가 버렸다. 부인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시 이공에게로 돌아왔다. 이공은 돌아온 아내를 탕자를 맞아들이듯 받아들였고 옛날과 다름없는 태도로 대해주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또 다시 집을 나가 버렸다.
이번에는 능주 고을에 산다는 어떤 홀아비였는데, 아이들만 여럿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부인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듯이 살림을 모조리 가지고 가버렸다. 이 세종은 능주로 가서 홀아비와 살고 있는 아내를 찾아갔다. 마치 사랑의 선지자 호세아가 음녀로 타락한 아내 고멜을 찾아가 타이르듯이 아내를 찾아갔다. 찾아가도 왔느냐는 말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는 아내를 보고, 이공은 “하나님 앞에서 죄 짓는 일은 두려운 일이니 마음을 돌이키시오”라고 일러주었다.
이공은 이렇게 몇 번을 찾아가서 아내를 타일렀다. 이렇게 찾아온 남편에게 부인은 어찌나 싸늘하게 대하는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 무엇 때문에 치근치근 자꾸 와. 나 망신시키러 왔어?”하며 구정물을 퍼서 이공에게 끼얹고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이공은 비 맞은 생쥐꼴을 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마시오. 꼭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마시오. 살다살다 못살겠으면 꼭 돌아오시오”하며 간곡하게 권면했다. 부인은 그 남자와 몇 해를 살았으나 결국 그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공에게로 돌아왔다.
이런 수치스러운 여자를 누가 받아 주겠는가? 부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나돌자,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품행이 나쁜 이런 여자를 우리 동네에서 살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많은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정죄했지만 그 여인을 용서해 주었던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이공은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을 설득시키면서 “제가 부족해서 그렇게 되었으니 용서하여 주시오”하였다. 이세종은 이렇게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인을 다시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이공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로 낙인찍히게 되었으나 정작 이공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전에는 부인에게 무관심하던 이공이 이때부터는 부인을 앉혀 놓고 무식한 그녀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글을 배우시오. 글을 배워 성경으로 벗을 삼으시오. 성경 못 보면 외로워 못 삽니다.” 이때부터 부인은 이공에게 한글을 배워, 그 후 세상을 떠날 때가지 성경으로 벗을 삼고 살았다. 이공은 참으로 한국의 호세아였다. 부인 문순희씨는 그 후부터 마음을 고치고 변하기 시작했다.
말년에 이공이 세상을 버리고 깊은 산 속에 살 때에도, 부인은 끝까지 떠나지 않고 따라 다녔고, 그녀도 남편처럼 청빈하게 살았다. “딴 생각을 버리시오. 당신은 욕심이 많으니 도회지에서는 살 수 없고 이 산 속에서만 살아야 합니다”라고 했던 남편의 권고에 따라, 그녀는 이공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편의 무덤을 3년 동안이나 지키면서 혼자 살았다. 자녀 하나도 얻지 못한 그녀는 고독한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참회의 삶이었다.
3년간이나 그 쓸쓸한 산중에 홀로 살면서 해마다 보릿고개가 되면 아랫마을로 내려와 보리 이삭을 주워 식량에 보태고, 벼가 나면 또 벼이삭을 주워서 연명했다. 그리고는 산나물로 살았다. 남편인 이공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유언하길, “언덕으로 벗삼고, 천기로 집 삼고, 만물로 밥 삼으시오”라고 말했다. 즉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떠나지 말라는 말이다. 그녀의 말년은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고독했으나 꾸준히 지난날을 참회하면서 남편의 가르침대로 살았다.
“나는 세상에 와서 그렇게 예수님을 잘 믿는 남편을 만난 행복 자이다”라고 하면서 감사했다. “내가 예수님을 안 믿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녀는 자신같은 여자가 좋은 남편을 만난 덕분에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은 것을 감사했다. 누구하나 만나주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고독과 고난 속에서 감사하면서 살아갔다. 겨울에도 내복 한 벌 없이 무명 옷 한 벌로 지냈다.
이공의 부인은 깨달음이 점점 깊어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믿어야 참이 오지, 안 믿으면 거짓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주님 안에 있지 않으면 정절을 지킬 수 없습니다”고 하면서 성경을 읽으라고 권했다.
이세종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부인은 수십 년 더 살면서 77세에 임종할 때까지 남의 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믿는 사람들이 혹 나무를 한 짐씩 가져다주면, “이런 죄인이 황송해서 어떻게 그런 나무를 뗄 수 있겠습니까?”하면서 기어이 되돌려 보냈다. 밤에 잠잘 때는 “나 같은 죄인이 어찌 하늘을 마주 보고 눕겠습니까?” 하면서 옆으로 누워 새우잠을 잤다.
병들어 임종이 가까울 때까지 생활 일체를 자기 힘으로 했고, 다른 신자들이 도우려면 절대 사양했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는 거룩한 생활이었다. 이공의 부인은 임종이 가까워 오는 병상에서 돌봐주는 분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그녀가 사랑한 성경구절은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사54:1)는 말씀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길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치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더라”(눅23:29)는 말씀이었다. 이공 부인은 슬하에 자녀 하나 없었으므로 이 말씀들이 더욱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마지막 임종시 그녀에게 보고 싶은 사람이 없느냐고 물으니 없다면서, “나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인데 누가 보고 싶겠어요?”하면서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눈을 감았다. 이세종은 살았을 때, “시종이 여일해야 한다. 사람은 죽은 다음에라야 안다”고 했는데, 그녀의 임종은 참으로 복되고 아름다웠다.
일자 무식하고 생각하는 것이 좁고 성격이 급하여 쉽게 화를 내었고, 남편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해 자신을 불행한 여자라 생각하여 두 번씩이나 집을 나가 딴 살림을 차렸던 여자. 그러나 다시금 남편의 사랑으로 집에 돌아와 남편을 통하여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남편의 사상을 이해하고 남편처럼 청빈과 순결과 순종을 추구하면서 산 속에서 예수님과 자연을 벗삼아 평생을 참회하는 삶을 살았던 여자. 그리스도 안에서 승화된 삶을 사신 문순희 여사를 생각하면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빛을따라간사람들 2000.8-2001.2 ] 이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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