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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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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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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 권 고백 - 20. 복락과 기억.
그러면 주님이시여, 나는 당신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사실 나의 하나님이신 당신을 찾으면 영생 복락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내 육체는 영혼에 의해서 살고 내 영혼은 당신에 의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영생 복락을 어떤 방법으로 찾아야 하겠습니까?
'충분하다. 이것으로 족하다.'라고 말할 때까지는
아직 나에게는 영생 복락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기억에서 멀어져 갔지만
아직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고 회상을 하며 찾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한 번도 안 적이 없거나 그것을 잊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모두 잊어버린 상태에서
그것을 마치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희구하면서 찾아야 하겠습니까?
영생 복락은 모든 사람이 갈구하는 것이며
이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이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이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나는 이것을 어떻게 소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양상은 달라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소망하는 가운데 행복한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는 이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전자보다 조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소유하지도 못하고 소망도 없는 사람들 보다는
더 좋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긴 그 사람들도 이것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행복해 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것을 갈망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것을 깨닫고
어떠한 방식으로 지금 감각에 지니고 있는지를 나는 모르나
이 깨달음이 회상에서 나온 것인지를 규명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한 순간 행복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 각자가 행복했었는지
모든 사람이 처음 죄지은 저 한 사람 안에서만
행복했었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그 한 사람 안에서 죽었고
그에게서 우리가 모두 비참 속으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묻는 것은 단지 우리 기억 속에서 영생 복락이 있는냐 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몰랐더라면 그것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 복락이라는 말을 듣고모두가 그것을 갈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저 그 말 자체만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인이 라틴어로 이런 말을 들을 경우
그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틴 사람들이 들으면 기뻐합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인도 그리스어로 발음되는 것을 들으면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나 그밖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도
모두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갈망하는 것은
그리스어나 라틴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생 복락 그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만인을 향해 단 한 마디로
'너희들은 영생 복락을 누리고 싶은가?'라고 한다면
모두가 서슴치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말이 뜻하는 행복 자체가 기억에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이시여, 나는 당신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사실 나의 하나님이신 당신을 찾으면 영생 복락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내 육체는 영혼에 의해서 살고 내 영혼은 당신에 의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영생 복락을 어떤 방법으로 찾아야 하겠습니까?
'충분하다. 이것으로 족하다.'라고 말할 때까지는
아직 나에게는 영생 복락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기억에서 멀어져 갔지만
아직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고 회상을 하며 찾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한 번도 안 적이 없거나 그것을 잊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모두 잊어버린 상태에서
그것을 마치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희구하면서 찾아야 하겠습니까?
영생 복락은 모든 사람이 갈구하는 것이며
이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이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이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나는 이것을 어떻게 소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양상은 달라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소망하는 가운데 행복한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는 이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전자보다 조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소유하지도 못하고 소망도 없는 사람들 보다는
더 좋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긴 그 사람들도 이것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행복해 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것을 갈망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것을 깨닫고
어떠한 방식으로 지금 감각에 지니고 있는지를 나는 모르나
이 깨달음이 회상에서 나온 것인지를 규명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한 순간 행복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 각자가 행복했었는지
모든 사람이 처음 죄지은 저 한 사람 안에서만
행복했었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그 한 사람 안에서 죽었고
그에게서 우리가 모두 비참 속으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묻는 것은 단지 우리 기억 속에서 영생 복락이 있는냐 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몰랐더라면 그것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 복락이라는 말을 듣고모두가 그것을 갈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저 그 말 자체만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인이 라틴어로 이런 말을 들을 경우
그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틴 사람들이 들으면 기뻐합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인도 그리스어로 발음되는 것을 들으면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나 그밖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도
모두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갈망하는 것은
그리스어나 라틴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생 복락 그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만인을 향해 단 한 마디로
'너희들은 영생 복락을 누리고 싶은가?'라고 한다면
모두가 서슴치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말이 뜻하는 행복 자체가 기억에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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